<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집 [창비]

'지옥의 묵시록'을 읽다가 남기는 잡문




학창 시절에 교과서에 나온 시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시집을 들여다 본 적이 없다. 국어와 문학을 제일 싫어하고 고통스러워했던 내가 아닌가. 그런데 '어쩌다' 나이가 들어 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나 역시 궁금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다만 책을 읽다보면 가끔 책에서 소개되는 시집이나 시인에 대해 알게되고, 궁금해지긴 했다. 아마도 아직 남아있는 '중년의 호기심', 이게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모든 결과는 무언가의 우연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은가. 그렇게 더듬더듬 시도를 해보게 된듯하다.


학창 시절에 무언가를 좋아하고 몰입해본 것이 없는 사람이 나이가 들어 그 무언가에 손을 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은 나이가 들 수록 이전에 형성된 관성으로 계속 살아가게 마련아닌가. 학창 시절에 음악을 좋아하고 그 세계를 탐험해보지 않은 이가 나이들어서 클래식이나 재즈를 듣기란 매우 어렵다.


내가 시에 그것도 뒤늦은 나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 수록 '나도 모르겠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젊은 시절의 치기가 빠져서일까, 아니면 나의 '별볼일 없음'을 이제서야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무의식 속에 쌓아둔 나의 결핍감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면 호기심이란 그럴듯한 이유를 둘러댄 오랜 아쉬움인지도.


어느 책에선가 보았던 이산하 시인의 <악의 평범성>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도 단지 호기심에서. 아직 시를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나마 내게 아직 이런 호기심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따름이다. 그렇게 시읽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첫 번째 시 '지옥의 묵시록'부터 '턱' 걸려버렸다. 머뭇머뭇 문지방 밖에서 주저하면서 방안을 쳐다보는 소심한 강아지처럼 나는 시의 눈치를 살핀다.


시는 울음을 이야기한다. 벤야민과 니체의 울음을 말이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어느 공원에서 아침 산책 중이던 니체는 어느 마부가 모질게 때리는 말의 목을 끌어안고 울었다는 이야기. 니체의 연보에는 그가 우는 동안 간질 발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시의 마지막 문장 "나는 저렇게 표면이 심연인 듯 울어본 적이 없었다."(10)에서 머뭇거려진다. '표면이 심연인 듯'한 울음은 또 무엇일까. 금새 이해가 되진 않는다. 이 부분이 무척 궁금했다. 사람들은 이 시를 어떻게 이해할까. 이런 궁리를 하는동안 반나절이 지났다.


어느 순간 '아이의 울음'을 떠올렸다. '닭똥같은 눈물'을 똑똑 떨어뜨리면서 온 몸으로 우는 아이들의 울음을 말이다. 매일 같이 품에 안고 다니는 인형을 잃어버린 아이는, 세상이 무너진다. 자신의 세계가 무너졌을 때 보여주는 아이들의 울음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아마 그런 것이 아닐까. 표면과 심연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우는 그런 울음이란.


나는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던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러니 이 문장이 곧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내가 '표면이 심연인 듯'한 울음을 울었던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까.


오늘은 시 한 편 읽었다.



"나는 저렇게 표면이 심연인 듯 울어본 적이 없었다."(10)
- 시 ‘지옥의 묵시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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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10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년의 시읽기! 저말입니까 하고 들어왔어요. 표면이 심연인듯? 초란공님 설명들으니 가슴에 와닿네요. 세상이 무너지는. 무너진듯 느껴도 아닌척 무슨무슨척하는게 어른인거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초란공님 ~

초란공 2022-01-10 11:23   좋아요 2 | URL
전 아직 어른이 아닌가 봅니다 ㅜㅜ ‘척‘을 못해요... ^^;;

2022-01-10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0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2-01-11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행복한책읽기님 덕분에 이산하 시인의 시를 조금 맛보게 되었는데 초란공님께서도 좋은 에세이 올려주셔서 감사드려요. ‘닭똥 같은 눈물‘과 ‘표면이 심연인 눈물‘ 아! 깊은 읽기와 느리게 생각하기 과정이 느껴집니다

초란공 2022-01-11 19:34   좋아요 1 | URL
저는 처음 알게된 시인인데 젊은 시절에 정말 고생많으셨더군요 ㅜㅜ

2022-01-11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1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죄와 벌을 읽으며 옆길로 새어 헤매기

 



이번 글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다가 옆길로 새고 헤맨 기록을 모아본다. 지나친 상상이라고 비난하실지 모르겠다. 책을 빨리 읽지 못하는 나는 읽다보면 어느 새 딴 생각을 하곤 한다. 아니면 집중력이 약하여 쉽게 옆길로 새기 때문에 독서를 빨리 못하는 것일까. 오늘 쓴 글을 보니 작품의 이해에는 도움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어느 한 부분에서 마주한 상황과 관련하여, 다른 작가의 작품을 떠올려보고 나름대로 상상력을 가미해본 작업이다. 죄와 벌을 읽으면서 함께 읽기의 제안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읽은 이후 추가 독서를 위한 독서지도 만들기 혹은 독서 계획이 될 수도 있겠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략 6가지 장면에서 출발하여 옆길로 새고 헤매다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한 결과다. 상상력을 가미하긴 했지만 각자 나름의 무모한근거도 곁들인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늘 글은 작품의 이해에 하등 도움은 안 될 것이다. 다만 한 분이라도 재미있었다면 충분하다.

 




[1] 로쟈는 (lice, )'를 왜 그토록 혐오했을까?

 

어릴 때 어머니가 내 머리 속에 있던 하얀 벌레를 잡아 죽이셨던 기억이 난다. 손으로 누를 때마다 빨갛게 터지던 녀석들. 바로 머릿니다. 머리에 가루약을 넣었던 것 같기도 하다. 죄와 벌에서 로쟈는 소냐에게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면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댄다. “난 단지 이를 죽였을 뿐이야, 소냐. 무익하고 혐오스럽고 해악을 끼치는 이 말이야.”(문학동네, 2, 226) 아무리 전당포의 고리대금업자라고 해도 힘없는 노파를 라고 규정하고, 혐오발언을 일삼으면서 생명을 빼앗은 일은 경악스럽다. 게다가 로쟈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한다. 자본의 힘으로 법을 다루는 이들과 공모하여 죄를 면하거나, 초범에 반성문 열심히 쓰면 풀어주는, 망가져버린 우리나라 법정에서나 먹힐만한 이유 아닌가. 문장만을 따로 떼어 보자면 로쟈의 변명처럼 심각한 인간혐오표현이 따로 없다. 다시 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는 에 대해 혐오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던 것인지 모른다. 도대체 이 작은 녀석들이 어떻게 내 몸에 들어와 기생할 수 있었을까.


 

최근에 읽은 치명적 동반자, 미생물(도로시 크로퍼드 지음, 김영사, 2021, 이하 미생물)을 읽으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을 때 등장인물들이 살았을 법한 환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이 보인다. 미생물에 따르면 밀집되고 위생이 불량한 열악한 환경에서는 이질,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콜레라 등 대변-구강 경로로 전파되는 병원체가 퍼지기 쉽다. 이 중에서 발진티푸스를 선택해본다. 이 질병은 리케차라는 미생물에 의해 발병한다. 이 녀석은 DNA염기분석 결과 오래전부터 쥐의 몸에 기생해온 발진열 리케차에서 진화된 것으로 추정’(238)된다. 무엇보다 인간이 수렵채집생활(이동생활)에서 농경생활(정착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인구가 급증하고, 집에 함께 머물던 쥐들을 통해 인간과 접촉이 증가했을 것이다. 그 결과 발진티푸스 리체차라는 병원체는 몸니(body lice)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발진티푸스에 얽힌 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로쟈가 되고 싶어 했던 나폴레옹, 그가 일으킨 전쟁과도 관련이 있다. 미생물에서 저자는 나폴레옹이 유럽 정복을 위해 감행한 1812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정복을 위해 50만 명이 넘는 병사를 거느리고 모스크바로 출정했다. 이 과정에서 질병과 굶주림으로 수많은 병사들이 사망하고 낙오했는데,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는 병력이 13만 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나아가 최종적으로 모스크바에서 생환했던 병력은 불과 35천 명에 불과했다. 나폴레옹이 제대로 된 전투를 하기도 전에 대부분의 병력을 잃었던 것은 무엇보다 발진티푸스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듬해인 1813년에 나폴레옹은 또다시 50만 명을 징집하여 독일과 전쟁을 벌이는데, 결국 발진티푸스 리케차라는 병원체가 유럽을 정복하고자 했던 나폴레옹의 열망을 꺼뜨리는 주요 원인이 되고 만다.


 

미생물에 따르면, 1880년대 중반에 발진티푸스는 개인과 사회 위생의 향상으로 서유럽에서는 보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반면 동유럽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심각했던 모양이다.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 전선에서는 수천 명이 발진티푸스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도 발진티푸스가 대규모로 유행하여 약 300만 명이 이 질병으로 사망했다. 죄와 벌이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했던 해는 1866년이었다. 도스토옙스키가 이 소설을 쓰던 이 시기에 러시아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괴롭히던 질병이었다. 여기에서 바로 몸니가 이 병원체(리케차)를 매개하던 존재였던 것이다. 특히 가난하고 불결한 환경에서 모든 이들의 몸에 예외 없이 기생했을 는 그저 혐오와 박멸의 대상이었을 것이 분명해진다. 오죽하면 사상가, 정치가인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회주의가 이를 박멸하지 못한다면 이가 사회주의를 박멸할 것이다.”(같은 책 재인용, 243)라고 와의 전쟁을 선포할까. ‘를 보기 힘들어진 요즈음 도스토옙스키가 소설에서 를 그토록 혐오하며 썼던 이유를 역사 속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2] 로쟈의 꿈과 니체와의 관계


 

죄와 벌의 전반부에서 로쟈가 범행을 저지르기 하루 전에 거리를 방황하고 술을 마신다. 찌는 듯 무더운 여름에 삼일 째 거의 먹은 것이 없는 상태에서 술을 퍼마신 로쟈는 돌아오던 길에 숲에서 다리가 풀리고 기절하듯 잠을 자버린다. 이 때 로쟈는 무서운 꿈을 꾼다. 꿈속에서 어린 로쟈는 아버지와 묘지로 가는 길에 술집 옆에서 벌어진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비쩍 마른 암말에 매어둔 짐마차에 여러 명이 탄 채, 말주인은 채찍과 몽둥이로 말을 죽도록 때린다. 결국 주인은 쇠 지렛대로 말의 등을 내려치면서 숨통을 끊어놓는데, 꿈속의 어린 로쟈는 비명을 지르며 피투성이가 된 말의 얼굴을 끌어나고 입을 맞추고, 눈과 주둥이에도 입을 맞추며 흐느껴 운다.


 

아마 많은 분들이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 부분은 니체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에피소드를 연상케 한다. 니체의 연보를 보다가 발견한 사례인데, 니체가 45세이던 18891월에 있었던 사건과 관련이 있다. 니체가 머물던 이탈리아 토리노의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그는 채찍에 맞는 말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싸 안다가 간질 발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때 니체의 친구 오버베크가 바젤로 데려가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니체는 죄와 벌에서 이 장면을 읽고 영향을 받은 바가 있을까? 사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니체에게 아주 큰 영향을 준 소설가임에는 분명하다.


 

니체는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도스토옙스키는 내가 뭔가를 배울 수 있었던 유일한 심리학자다. 그를 알게 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행운 중 하나다.이 정도라면 니체가 타인에 대한 연민과 인간에 대한 치밀한 심리묘사를 보여준 도스토옙스키를 정밀하게 읽고 그 영향이 고스란히 몸에 각인되지는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두 사람 모두 간질환자라는 공통점 혹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예민한 감수성 같은 것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의학적인 소견은 아니지만, 간질 발작은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의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후 두드러지는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도 간질로 고생했다. 그는 28세였던 1849년에 한 비밀모임에서 급진적인 비평가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미 짜인 각본에 의한 가짜 처형식이었지만 총구 앞에 섰다가 감형된 이후, 그는 이듬해에 수감된 감옥에서 처음 간질 발작을 경험했다. 니체도 말이 무자비하게 채찍을 맞는 현장에서 말에 대한 연민과 고통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것이 간질 발작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죄와 벌에서 로쟈의 꿈과 니체가 20대 초반에 이 소설을 읽고 영향을 받았던 것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흥미로운 심리학적 주제가 될 수 있겠다. 분명한 사실은 니체가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3] 알베르 카뮈의 전락(轉落)죄와 벌의 연관성


 

알베르 카뮈는 생의 말년이던 1956(당시 43)전락(轉落)(이정림 옮김, 범우사)이란 제목의 소설을 발표한다. 이 소설은 카뮈가 정치 활동에서 은퇴한 후 언론계로 복귀한 시기에 쓴 장편소설이다. 파리에서 유명한 변호사로도 활동했던 소설의 화자는 어느 날 밤 파리의 센 강에 있는 다리를 건널 때, 물속으로 투신한 여자의 소리를 듣고서도 뒤돌아보지 않고 지나친다. 양심의 가책이 내는 소리였을까. 그는 이후에 갑자기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이후 네덜란드로 와서 사는 이 남자는 자신을 고해 판사라고 말하면서 소설 내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독백을 이어간다. 상황 자체가 그야말로 부조리한 경우다. 이런 모습은 어쩌면 수많은 도시 사람들이 익명성 속에서 살면서 접할 법한 상황은 아닐까. 이 작품이 오로지 독백으로만 채워지기에 카뮈의 다른 책보다는 수월하게 나아가진 않지만, 꽤나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부조리한 연극의 한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것만 같다.


 

나는 이 장면을 죄와 벌에서 다시 떠올렸다. 로쟈는 동생 두냐의 약혼자 루진과 충돌한 장면이 나온다. 이후 라주미힌이 로쟈의 돈으로 사다준 옷을 입고 술집에 들르는데, 이곳에서 로쟈는 경찰서 서기관 자메토프를 만나 내가 살인자라면 어쩔거냐고 협박하기도 한다. 범행 후 예민해져 있던 로쟈가 루진과 충돌하고, 술을 마신 다음 어느 다리를 지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로쟈는 다리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든 여자를 바로 앞에서 목격한다. 이 장면에서는 목격자가 많은데다 순경이 곧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여자를 구한다. 나는 카뮈가 이 장면을 읽고 부조리한 상황을 설정해본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물론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 나의 관심사는 아니다. 전락(轉落)을 번역한 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카뮈는 이 소설에서 부조리와 모순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만약 죄와 벌에서 나온 장면에서, 목격한 사람이 한 밤중에 나 혼자였다면, 나는(혹은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카뮈는 바로 이 지점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까.


 

물론 이건 다소 무리한 상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찾아낸 무모한근거는 카뮈가 일종의 도스토옙스키 전문가(혹은 덕후?)’였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카뮈는 젊은 시절 알제 방송국 극단의 희곡 배우로 활동했고, 희곡 <아스튀리의 반란>을 비롯한 여러 희곡을 썼던 극작가이기도 했다. 아마추어 연극단체를 조직하기도 했고, 극단을 운영하며 배우 및 단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특히 1959(46) 2월에는 앙트완느 극장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을 각색하고 공연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이 연극으로 지방 순회공연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공연한 연극에서도 이반 역으로 무대에서 열연했다. 이 두 소설을 수도 없이 읽었을 카뮈가 죄와 벌을 읽지 않았을까? 그는 이미 생활이 극단 및 연극과 분리가 불가능한 인물이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것이다. 그런 그가 죄와 벌의 운하 위 다리 장면에서 부조리한 상황을 설정해보지 않았을까. 옆길로 새어 해본 상상이다.


 

여기에 카뮈가 도스토옙스키의 전작을 꿰고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근거가 한 가지 더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전락(轉落)은 화자 혼자 등장하는 모노드라마 같은 소설이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화자의 장광설로만 채워진다. 이러한 형식은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인간이다.”(도스토옙스키 고백록, 제윤 편역, 을유문화사, 이 책에 실린 소설)로 시작하는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견주어볼 수 있다. 이 중편 소설에서 화자인 는 소설 내내 전락(轉落)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독백을 이어간다. 카뮈는전락(轉落)에서 도스토옙스키가 사용한 형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결국 카뮈 역시 도스토옙스키의 전작을 열심히 탐구하면서, 그로부터 발견하고 알아낸 것들 준거로 삼아(다시 말해, 적극적으로 아주 잘 훔치고 베껴서) 자신의 창작으로 활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카뮈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도스토옙스키 덕후였으니까.



 

[4] 프란츠 카프카 변신과의 관계


 

죄와 벌을 읽다가 어느 한 대목에서 카프카를 떠올렸던 것은 이 소설에 계속 등장하는 때문이 아니었다. 죄와 벌에 거미가 한 번 언급된다는 걸 알고 계시는지? 로쟈가 소냐를 찾아가서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며 나누는 대화 중에 등장한다.


 

방금 당신에게 대학 다닐 돈이 없었다고 말했지. 하지만 알아? 난 다닐 수 있었는지도 몰라. 필요한 돈은 어머니가 보내주셨을 테고, 신발이나 옷, 빵을 살 돈은 내가 직접 벌 수도 있었어. 분명 그랬어! 과외 자리도 들어왔었어. 은화 반 루블씩을 제안했지. 라주미힌은 일을 하잖아! 근데 난 악에 받쳐서 하려 하지 않았어. 정말 악에 받쳤지! (좋은 단어야!) 그때 난 거미처럼 방구석에 몸을 숨겼어. 당신도 개집 같은 내 방에 와서 봤잖아... 소냐, 낮은 천장과 비좁은 방이 마음과 생각을 억압한다는 걸 알거야!”(2, 227)

 


카프카가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로쟈가 범행 후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천장이 낮고 좁은 자신의 방속에 거미처럼 몸을 숨겼던장면에서 카프카는 책을 멈추고 새로운 상상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이를 테면 자신의 방 속에 해충으로 변신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카프카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지만, 특별한 상황에서 카프카의 작품을 읽었기에 20년이 지나도 기억이 남아 있다. 나는 변신을 훈련소에서 처음 읽었다. 기초 훈련을 마치고 훈련소에서 추가 직무 훈련을 받느라 몇 개월 더 머물던 때였다. 당시 저녁 시간 2시간 정도는 훈련생이 무언가를 읽을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책을 읽지 않던 시절이어서 내가 문고에서 고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작품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얇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공지영의 고등어같은 책을 진중문고에서 찾아볼 수 없었는데, 카프카의 이 소설은 어떻게 부대 내에 배치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 소설 역시 부조리한 현실 혹은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무자비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말이다.


 

변신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활 모양의 각질로 나뉘어진 불룩한 갈색 배가 보였고, 그 위에 이불이 금방 미끄러져 떨어질 듯 간신히 걸려 있었다. 그의 다른 부분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 맥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전영애 옮김, 민음사)

 


지금 다시 이 부분을 보면 그레고르 잠자가 변한 해충은 죄와 벌에 등장하는 거미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한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이 실직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어느 사회든 위기가 찾아온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상황이 한 가족에게 닥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일을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이들에게 말이다. 카프카는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지식인이었지만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서도 일했던 경험이 있다. 그가 내일을 담보로 수익을 얻는 자본주의의 구조를 간파하지 못 할리 없다. 특히 폐결핵을 비롯한 질병으로 여러 번 병가를 내면서 불안정한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였다. 그러므로 카프카는 보험도 없이 위태롭게 살아가야 했을 수많은 가족들이 겪을 수 있는 현대인의 조건을 부조리한 상황으로 설정해놓았던 것이다. 가족에게 돈을 벌어다주지 못하는 가장, 혹은 구성원은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는 존재, 나아가 저거라는 사물로 지칭된다. 심지어 가족들로부터 혐오를 고스란히 받게 될 상황을 떠올려보는 일은 그에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은 서로에게 지옥이 될 수밖에. 이 소설이 지금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전염병으로 일상이 통제받는 상황에서 문을 닫는 많은 상점 주인들은 누구나가 우리 시대의 그레고르 잠자. 카뮈뿐만 아니라 카프카의 작품처럼 이렇게 부조리한 현실을 그려낸 작가는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카프카가 도스토옙스키를 탐독했다는 기록을 찾아내진 못했지만, 로쟈가 전당포 노파를 무익하고 혐오스럽고 해악을 끼치는 이라고 대상화했던 장면에서 카프카는 작품의 모티프를 얻었을 법하지 않은가.



 

[5] 톨스토이 부활과의 유사성 및 함께 읽기


 

도스토옙스키와 동시대 사람인 톨스토이(7살 연하임) 역시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톨스토이가 53세이던 1881년에 도스토옙스키가 사망했을 때 톨스토이가 크게 슬퍼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탐독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죄와 벌에서 로쟈는 유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로 떠나는데 이때 소냐가 로쟈를 따라간다. 소냐는 그의 곁에서 인간이 새로워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마련해준다. 반면 부활에서는 카튜사 마슬로바라는 여인이 죄를 선고받고 시베리아로 이동하는 과정에 귀족인 네흘류도프가 동행한다. 그는 귀족의 신분으로 젊은 시절 카튜사를 범했는데, 이 일로 그녀는 억울하게 쫓겨나 매춘부가 되었던 것이다. 죄와 벌에서 소냐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춘부가 되는 상황과도 유사하다. 다만 이렇게 표면적인 유사성 말고도 두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부활은 톨스토이 사상의 진수가 담겨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소설에는 인간 특히 민중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닮아 있다. 다만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한 인간의 부활 과정이 가능성으로만 암시가 되면서 소설이 끝나는 반면, 톨스토이의 작품은 바로 이 부분을 작가가 깊이 있게 탐구해나갔다.


 

나아가 집필에 10년이 걸린 부활에서 톨스토이가 참고한 실제 사건은 토스토옙스키가 작품에 활용했던 사건과는 별개의 사건에 기반한다. 역자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이 작품의 전신인 코니의 이야기불쌍한 로잘리야 오니와 그녀의 유혹자 이야기라 불리는 사건에서 소재를 취했다. 대신 톨스토이는 젊은 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한 인간(네흘류도프)과 엄혹한 현실에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했던 취약한 여인(카튜사) 두 사람이 고통과 불행을 겪으면서도 정신적으로 새로워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두 작품 사이의 유사성을 비교하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두 작품을 함께 읽기를 제안해보는 것이다. 비슷해 보이는 설정과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며 각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는 일이 내게는 흥미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두 사람은 동시대를 살았지만, 삶의 모습은 크게 달랐다. 한 사람은 도박과 간질로 힘든 삶을 살았다. 다른 한 사람은 부유했지만 작품의 저작권과 재산분배로 말년에 부인과 자녀 사이에 분쟁을 겪었다.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처럼 불행의 이유도 가지가지였던 셈이다. 그래도 두 작품을 비교해보니 두 작가가 사람에 대해 던지는 연민의 시선과 인간애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6] 메리 셸리의 최후의 인간과 도스토옙스키


 

글을 마치면서 죄와 벌에서 눈여겨본 대목 하나를 골라본다. 로쟈가 시베리아 감옥에서 앓아누워 있을 때 꾸었던 꿈에 대한 대목이다. 다소 길지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라 빠르게 지나쳤을 수 있는 이 부분을 다시 읽어 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그는 사순절이 끝날 무렵부터 부활절 내내 병원에 누워 있었다. 이미 회복되고 한 후 그는 아직 고열로 헛소리를 하며 누워 있을 때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병중에 그는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무서운 전염병이 아시아 깊숙한 곳에서 유럽으로 퍼져 전 세계가 희생될 운명에 처한 꿈을 꾸었다. 선택받은 아주 소수의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새로운 선모충, 사람의 몸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미생물이 출현했다. 그런데 이 생물체는 지능과 의지가 부여된 영적인 존재였다. 그걸 몸에 받아들인 사람들은 바로 귀신이 들린 듯 미쳐버렸다. 하지만 전염된 사람들은 결코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자신을 대단히 똑똑하고 진리를 흔들림 없이 따르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자신의 판단, 학문적 결론, 도덕적 신념과 믿음을 그 누구보다 더 확고부동하게 여긴 것이다. 마을 전체, 도시 전체와 사람들이 전염되어 미쳐버렸다. 모두들 불안에 떨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다들 진리가 오로지 자기에게만 있다고 생각했으며,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괴로워했고, 자기 가슴을 치면서 울고 손을 쥐어뜯었다. 누구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알지 못했고, 어떤 걸 악으로, 어떤 걸 선으로 여겨야 할지 합의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무분별한 적의 속에 서로 죽여 댔다. 서로를 향해 온전한 군대로 뭉쳤지만, 이미 출정한 군대가 갑자기 자기 편을 죽이기 시작했고, 대열이 무너지면서 군인들은 서로에게 덤벼들어 찌르고 베고 물어뜯고 잡아먹었다. 도시에서는 온종일 경보를 울려댔다. (...) 각자 자신의 생각, 자신의 처방만을 주장해 합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장 일상적인 생업마저 내팽개쳐졌다. 농사도 짓지 않았다. 어디선가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몰려들어 뭐든 함께하는 데 동의하고 헤어지지 않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금세 방금 결심한 것과 완전히 다른 짓을 벌여서 서로를 비방하기 시작하더니 주먹다짐과 칼부림이 일어났다. 전염병은 기세를 떨치며 멀리, 더 멀리 퍼져갔다. 전 세계에서 단지 몇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그들은 순결하고 선택된 사람들로, 새로운 인류를 낳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땅을 새롭게 정화하도록 예정된 사람들이었지만, 누구도 어디서도 그런 사람들을 보지 못했고, 누구도 그들의 말과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2, 429)

 


우선 아시아 깊숙한 곳에서 무서운 전염병이 유럽으로 퍼져나갔다는 대목에 눈길이 멈추었다. 표면적으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팬데믹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깊숙한 곳에서 유럽으로 온 전염병에 흑사병이라고 불리는 페스트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이 질병은 유라시아 초원의 설취류에서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계로부터 날아와 덮치는 무소불위의 존재,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공포심이 느껴진다. 인용한 부분을 좀 더 읽어 내려가면 소수를 제외하고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언급된다. 이 부분에서 프랑켄슈타인으로 유명한 메리 셸리의 최후의 인간을 떠올려본다. 이 소설 역시 전염병으로 인류가 모두 죽고 한 사람만 남는 이야기가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셸리가 남편과 한 명을 제외한 아이들을 모두 어려서 잃었던, 개인적인 아픔이 반영된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셸리가 29세였던 1826년에 출간되었는데, 이 때는 도스토옙스키가 5살일 때다. 의사인 아버지를 두었던 도스토옙스키가 전염병과 선모충에 대한 지식에 무심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다만 이 부분을 좀 더 읽어 내려가면 전염병이 추상적인 대상을 빗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도스토옙스키는 어렸을 때 셀리의 소설을 읽었을까. 알 수 없지만 상상해볼 뿐이다. 시기적으로 그가 이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다. 무엇보다 내가 여기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불신과 혐오만 남게 될 때,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도스토옙스키가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비판과 성찰능력을 잃어버린 인류가 개별적인 존재로 분열되고 소외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우리에게 불신과 혐오만 남게 되면 인류는 이렇게 극한 상황으로, 나아가 멸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공상과학 소설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 도스토옙스키는 마지막으로 로쟈와 소냐 사이에 형성되는 신뢰와 사랑의 감정을 암시하게 된다. 이제 죄와 벌을 읽으면서 옆길로 새고 헤매는 읽기는 여기서 마치기로 하고, 다음에는 악령을 읽어보려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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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1-07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유, 이건 뭐 재미로 읽을 수 있는 게 아닌데요?
전 오래 전 <죄와벌>을 나름 인상 깊게 읽은 정도지 이렇게 저렇게
상상하고 연결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단순히 도 선생님이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건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몰랐는데 이제 좀 그림이 그려지네요.
참말로 고맙슴다. 수고하셨습니데이~^^

근데 이를 달고 사셨다니 대충 70년대 유년시절을 보내셨을 것 같군요.ㅋ

초란공 2022-01-07 22:03   좋아요 1 | URL
당분간 <죄와벌>은 잊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
명탐정 코난같으세요. ㅋㅋ 연대측정을 ^^;;

mini74 2022-02-10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초란공님 도선생님으로 2관왕 !!! 축하드려요

초란공 2022-02-10 21:11   좋아요 1 | URL
지난 달에 도선생님을 너무 들들볶아대었군요. ㅋㅋ 자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2-10 18: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2관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초란공 2022-02-10 21:12   좋아요 1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2-02-10 18: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축하드립니다^^

초란공 2022-02-10 21:12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감사해요~^^
 


1111,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 1차 대전 종전일

 


[1]

어제 다른 날보다 늦게 퇴근하는 아내와 따듯한 국수 한 그릇 먹고 들어오려고 지하철에 마중을 나갔다. 개찰구 옆에서 기다리는 동안 몇몇 젊은 남자들이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싶었는데, 다음날(1111)이 일명 *로 데이라서 그랬나 싶었다. 학창시절에 이 날이 있었던 게 생각난다. 족히 25년은 더 되었을 테다. 정체불명(?)의 명절처럼 되어버린 할로윈을 포함해서 이제는 새로운 세대의 문화가 되었구나 싶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문화를 만들어가는 세대가 주인공이지 싶다.



 

[2]

오늘이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탄생 200주년 되는 날이라고 한다. 그는 18211111일에 태어나 188129일 사망했다. 여러 출판사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작가의 탄생 200주년 기념판으로 제작해서 내놓았다. 학창 시절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기에 중년의 나이가 되어 처음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죄와 벌이다. 아니면 내가 예전에 백치를 읽었던 작품인지 가물가물하다. 죄와 벌은 작년에 읽었는데, 한 번에 다 수긍이 가는 작품이 아니었다. 작가의 삶과 사상에 대해 좀 더 조사와 이해가 필요한 것 같다. 그의 삶 자체가 마치 소설과도 같이 극적인데다 다채로운 사건들이 많아, 그의 삶에서 있었던 전환점들을 다시 살펴보고 이해해야하지 싶다.









































최근에는 그의 작품 악령을 구입했는데, 아직 시작하진 못했다. 어디선가 읽은 글에 따르면 이 작품은 좀 더 어렵지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악령을 읽은 다음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면서 작가의 세계에 다가가면 좋지 않을까, 언제나 그렇듯이 일단 읽을 계획() 세운다.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경우, 작년에 코너스톤 출판사에서 나온 두 권짜리 기념판이 제일 아름답게 보인다. 











   

 


[3]

‘1111하면 또 떠오르는 것이 있다. 오늘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이 선언된 지 103년 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은 1914728일 시작하여 19181111일에 공식적으로 끝이 났다. 현재 우리에게는 연인들을 위한 기념일처럼 되어 기대와 흥분을 가져다주는 날이기도 하지만, 유럽의 누군가에게는 돌아오지 못했던 이들을 떠올리고 그리워했던 날이리라. 그들은 전쟁 속에서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했던 누군가의 아들, 남편, 아버지 혹은 딸, 아내, 어머니였을 것이다.


 

이 날을 배경삼아 나온 소설이 생각난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 이 소설은 2013년 콩쿠르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소개글에 따르면 문학성과 예술성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문학상에 대중 문학 작가가 선정된 것은 이례적인 일인 모양이다. 자세한 내용을 피하고자 간단한 정보만 언급하자면,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여했지만 부상을 입고 귀환한 이들을 국가는 나몰라라 했다. 오히려 이들은 국가에 짐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참전 용사인 주인공은 종전 기념일인 1111일을 기념하는 기념탑 건립사업에 참여하여 국가를 상대로 거대한 사기극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긴다.

















 


[4]

프랑스 작가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니 프랑스와 관련한 사건이 하나 떠오른다. 요새 매일 조금씩, 성경을 읽듯이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의 대표작 뿌리(Roots)를 읽고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책장에 이 책이 꽂혀 있던 게 생각난다. 그저 일하시느라 바빠서 책 읽으시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대학생이 된 내가 어느 날 중고 서점에서 Roots를 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지난주에 부모님 집에 들러 책을 넣어둔 박스를 뒤져 20년 넘게 읽지도 않은 상태로 먼지 쌓인 이 책을 다시 찾아 보았다. 감회가 새롭다. 이 책은 꽤나 긴 소설인데다, 가지고 있는 번역본은 행간이 너무 작아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마음을 다스리는 셈치고(?) 천천히 읽게 되었다.














잘 알려져있는 것처럼 소설의 주인공은 쿤타 킨테라는 흑인이다. 쿤타 킨테는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7대 조상으로 알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의 서부 끝에 있는, 현재 세네갈 지역의 숲에 있던 푸아레 부족 출신이었다. 17세가 된 어느 날 자신의 북을 만들려고 나무를 구하러 숲에 들어간 사이, 백인 노예 사냥꾼들에게 납치되어 미국 남부로 끌려왔다. 네 번의 탈출을 시도했지만, 백인들에게 결국 붙잡혔다. 그들은 쿤타의 한쪽 다리를 도끼로 잘랐다. 이렇게 이어지는 작가 집안의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와 노예제의 면모를 고발하며 보편성을 얻는 역사가 되었다.


 

이 작품에서 프랑스와 관련한 사항은 아이티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당시 아이티는 3만 명 미만의 프랑스인이 지배하던 식민지였고, 이들이 중심이 되어 아프리카 흑인 50만 명 이상을 아이티로 데려와 사탕수수, 옥수수 등의 농장에서 가혹하게 일을 시키고 착취했다. 인간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혹독한 노동환경과 현실에 불만을 품은 투생이라는 흑인이 아이티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쿤타는 백인들이 하는 말을 듣거나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흑인 반란군 지도자 투생을 마음속으로 지지하고 응원했다. 이 반란은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난다. 나폴레옹이 협상을 구실로 투생을 끌어내어 붙잡은 다음 프랑스의 어느 토굴 감옥에 가두어버렸던 것이다. 투생은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프랑스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올해 언제인가 큰 지진이 났다는 아이티 생각이 났다아이티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끌려온 흑인들의 후예들로 유지되던 프랑스 식민지였기에 프랑스어를 사용하게 된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다.


 

눈 상태도 좋지 않고 책의 행간이 너무 좁아 뿌리(Roots)를 다 읽으려면 11월 한 달 내내 조금씩 읽어야할 것 같다. 작가 알렉스 헤일리 연보를 보니, 1921811일 생이다. 올해는 헤일리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셈이다. 그는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을 이끈 맬컴 X에 관한 전기 The Autobiography of Malcolm X: A Life of Passion and Struggle를 쓰기도 했다. 맬컴 X의 자서전이긴 하지만 그와의 대담 및 인터뷰를 통해 구술한 사항을 기록한 책으로 보인다. 맬컴 X에 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뿌리(Roots)의 주인공 쿤타 킨테처럼 무슬림이면서, 무장투쟁을 지지했던 입장으로 기억한다.
















이 부분은 또 다른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의 에세이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The Fire Next Time)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에서 볼드윈이 맬컴 X와 만나 이야기하는 부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책 제목은 성경에 나온 하느님의 말씀 다음번엔 불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표현에서 가져온 것이다. 노아의 홍수 이후 인류의 죄를 벌하는 심판으로 말이다. 제임스 볼드윈은 흑인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지향하는 입장에는 동의했지만, 흑인 인권 운동을 실행하는 방법에 대해 맬컴 X와 상반된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있다. 제임스 볼드윈은 오히려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주의에 가까운 방식을 지지했던 것 같다. 출판사에서는 알렉스 헤일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보다 읽기 쉽게 행간을 넓힌 기념판을 내주었으면 한다. 뿌리(Roots)는 나머지를 다 읽고 정리를 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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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11-11 14: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도끼샘 200번째 벌쓰
데이로군요.

카페이 투자로 땡긴 책이 오늘
쯤 오나 학수고대하고 있었는데
벌쓰데이 수령은 안될 것 같네요.

내일은 받을 수 있겠죠?

오르부아르는 5년 전에 사두었는
데, 아직 못 읽고 있네요. 그래픽
노블로라도 만나야 하나 어쩌나
싶네요.

초란공 2021-11-11 21:52   좋아요 3 | URL
도끼샘 책을 주문하셨나 봅니다^^ 내일 받으시길~ 저는 르메트르 선생이 국내 왔을 때 사인받아놨는데 책이 오디로 갔는지 못찾겠네요 ㅋㅋ

scott 2021-11-11 14: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퇴근 하는 아내를 기다리며 따뜻한 국수 한그릇 사주는 초란공님 따숩
빼빼로 보다 더 달콤 ^^
코너스톤 첫판 완판시키고 재판 찍고 있다고 합니다 ^^

초란공 2021-11-11 21:55   좋아요 3 | URL
아내가 오늘 빼빼로 사왔습니다~^^ 추운데 편의점 밖에 떨고 있는 누드 빼빼로가 가엽다고요 ㅋㅋ 코너스톤 3쇄도 찍으시길~!

stella.K 2021-11-11 2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TV 시리즈 유명했죠. 70년대 후반에 나오고 나중에 또 만들어졌던 모양인가 본데
저는 오리지널판은 봤습니다. 나중에 만들어진 건 잔인해서 결국 안 봤죠.
영화가 하도 감동스러워 책을 샀는데 결국 읽지는 못했습니다.ㅠ

초란공 2021-11-11 21:56   좋아요 3 | URL
와~ 그럼 지금 넥플릭스 처럼 대단한 인기였을 것 같습니다!! 저도 오리지널판이 궁금해지네요.

레삭매냐 2021-11-13 07: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피에르 르메트르 아자씨의 책들
도 예전에 사두기만 하고 당최
읽지 않았네요.

초란공님의 글을 보고 나서
도서관으로 달려가 그래픽 노
블 <오르부아르>를 빌려다
읽었는데 아리까리하네요.

아무래도 원전으로 다시 읽
어야지 싶습니다.

초란공 2021-11-13 11:36   좋아요 2 | URL
그래픽 노블이 이미 나와있었군요! 그래픽 노블은 정말 별개의 작품일듯합니다^^; 모비딕 그래픽 노블도 상당히 낯선 느낌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레이스 2021-12-09 1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집이 곳곳에 출몰하고 있어서 지뢰밭 지나가듯하고 있습니다.^^
축하드려요~~

초란공 2021-12-09 23:21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scott 2021-12-09 1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

도끼옹 전집
반쯤 완독 하셨을 것 같습니다 ^^

초란공 2021-12-09 23:24   좋아요 3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사실 마구 진도나가기 보다는 작년에 처음 읽어본 <죄와 벌>을
읽는 것으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읽은 내용이 가물가물해서요. ㅜㅜ
이제 <악령> 읽어보려구요~

페크pek0501 2021-12-10 14: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 님 같은 분을 능. 력. 자. 라고 하지요. 두 편의 당선작을 내시다니... (혹시 더 있는 건가요?)ㅋㅋ
진심을 담아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 2021-12-10 19:29   좋아요 3 | URL
페크님, 감사합니다! 올해 페이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선된 것 같아요. ^^
 

오늘 쓰는 글은 그냥 끄적거리는 잡문이다. 


오후에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하늘로 올라가는 영상을 보았다. 

화면으로 로켓이 하늘로 치솟아 점점 작아지는 모습이 매우 생경했다. 

이 장면을 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시행착오가 더해졌을까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뉴스를 보니 크게 두 가지 반응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이 일에 무관한 이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 심지어 어느 뉴스 앵커는 '이번 누리 호의 발사 실패'라는 말을 하다가 다시 '실수'라는 표현으로 정정했다. 하지만 인공위성이 목표로한 궤도에 안착하지 못한 마지막 단계의 아쉬움을 보고 너무나 쉽게 '실패'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반응하는 이들은 미국을 비롯한 우주개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적, 물적 손실을 입었는지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발사체가 폭발한 것도 인명을 해친 것도 아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이 될 문제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의 성과는 '정말로' 대단한 것이라 칭찬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또 눈에 들어오는 다른 반응 하나는 우주 개발에 직접 참여하거나 관여하고 있는 과학자 집단의 반응이다. 우주 개발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고,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달이 되니 이 사업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은 마땅히 우주 개발의 성공에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문득 우리 나라가 특히나 실패에 민감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언론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과학자들은 이 우주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국가 사업의 성패, 결과에만 주목하는 정서에 길들여있어서인지 누리호 발사 이후 인터뷰를 한 과학자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해 보였다. 이들이 내년 5월에 예정된 다음 발사 준비에 얼마나 긴장을 하고 준비할지 눈에 선하다. 국민이나 해외에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정서야 어디나 다를바 없겠지만, 개발에 관하는 과학자들이 지나치게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쉬운 부분은 아쉬운대로 보완하고 개선할 수 있고, 실수는 반복하지 않도록 이들을 신뢰하고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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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이 아니라 다른 글을 끄적거리는 이유는 자료를 검색하다가 오늘이 성수대교 붕괴한 지 27년이 되는 날인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날의 기억이 갑자기 생각나서 남겨두고자 한다. 이 사고는 27년 전(1994) 오늘, 738분에 발생했다고 한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고, 나는 중간고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뉴스 속보를 보고 계셨던 것 같다. 성수대교는 매일 아침 아버지가 출근하시는 길에 지나는 다리였다.


사고 당일 오전에 어머니는 황당한 뉴스 속보를 보고 아버지께 전화를 하셨던 모양이다. 바로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한참 애가 탔던 순간을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얼마나 긴장하셨을까. 짐작하건데 아버지도 출근하여 문을 열고 가게를 정리하시느라 전화를 빨리 받지 못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정리를 마치고 켠 TV에서 방금 지나온 다리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뉴스에 집중하느라 전화를 빨리 받지 못하셨던 것이 아닐까


아무튼 사고가 발생한 시간을 보신 아버지는 당신이 다리가 무너지기 10분 전 즈음에 다리를 통과한 것 같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그날따라 다리가 많이 휘청거렸다는 말씀과 함께. 과거에 올라왔던 기사를 보니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 그 중 9명이 내 또래의 고등학생, 중학생이었다. 특히 시간대가 학생들의 등교 시간, 출근 시간과 겹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사는 곳 특히 도시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사고는 사실 인재(人災)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것이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하지만 내가 잘 알고 있거나 자주 다니던 장소에서 큰 사고가 나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 누구든 이러한 사고에 예외란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죽음은 우리 곁에 언제나 가까이 있기도 하다는 것


초등학생일 때 동네에 들어오는 길목에서 한 겨울에 동사했던 할아버지, 중학생 때 아파트에서 투신한 뒤 잔디밭에 누워 있던 남자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나의 가족이 이렇게 예기치 않은 죽음에 가까이 노출되어 있다는 감각은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사건이 더 생각났다. 성수대교 붕괴의 충격이 전국에 전해진 지 이틀 후인 1994년 10월 23일. 그 날은 일요일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동창모임에서 준비한 충북 단양 지역 관광에 참여하고 오셨다. 어머니는 충주호에서 유람선도 타고 왔다고 하셨다. 


그런데 다음날인 24일 저녁 뉴스에는 또 다른 대형사고 소식이 도배되었다.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망자 29명, 실종자 1명' 이런 문구가 끊임없이 여러 방송사의 뉴스 자막으로 등장했다. 


"엄마, 저거 엄마가 어제 타신 배 아니에요?" 나의 물음에, 늘 큰 기복이 없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제 당신이 저기에서 유람선을 타고 왔다고 하시는 거였다. 단 하루 차이로 어머니는 대형 사고를 피하셨던 것이다. 나는 3일 사이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사고에 부모님 중 한 분이 사고 희생자 될 수 있었던 경험을 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나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고가 희생자 규모가 비슷함에도 유독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사람들의 뇌리에 더 강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하지만 두 사고 모두 안타까운 인재로 일어난 일이다. 희생자들은 누군가의 아들과 딸이기도 혹은 누군가의 부모이기도 했을 것이다. 왜 이들이어야만 했나?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되묻고 싶어진다. 오늘이 가기 1 시간 정도 남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일들을 이유없이 끄적거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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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0-22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충격적인 뉴스가 생각나요. 그러다 잊고 살다가 벌새 란 영화를 보며 다시 떠올렸지요. 정말 작은 예산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도 눈치보기 바쁜 과학자들과 관계자들을 보면서 언론이 악의 축인가 과학자들은 정말 여기서 일하기 싫겠단 생각했어요. 그러고보면 어릴 적 국민학교때 실험 수업이 참 싫었어요. 비커 하나라도 깨면 그게 얼만데 사오라는 둥 하던 요상한 선생님 ㅠㅠ 이기억나요 ~ 초란공님 글에 무지 공감합니다 *^^*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의 씨앗을 뿌린 서방 국가, 그리고 모비 딕

 


어제 날짜(831)를 기해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20년 주둔을 종료했다는 공식 발표를 했다. 그러고 보니 미군 주둔의 역사는 2001911일 직후 시작되어 이제 만 20년을 맞게 된 셈이다. 신문 기사를 살펴보니 메켄지 중부사령관은 ‘20년 간 이어진 아프간 전쟁 종전을 의미 한다고 하면서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공모자들을 끝내는 임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지난 17일 간 미군은 12만 명 이상의 미국 시민과 동맹국, 미국에 조력한 아프간 인들을 대피시켰다.


 

또 다른 매체에서는 “197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사회주의 정권 성립 이후 43년간이나 계속되던 전쟁이 301159(현지시각) 미군 철군 완료로 종료가 선언됐다.”라고 전했다. 그러니까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70년대 말에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개입으로 미국과 나토 회원국의 충돌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미국은 미군이 주둔했던 지난 20년 만을 언급했지만, 소련과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에 이미 아프가니스탄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며칠 전 기사를 훑어보다가 어느 영국인이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관련한 모든 건 다 영국 때문이다’, 라고 비판하는 대목(혹은 영상)을 본 기억이 난다. 지금 그 출처를 다시 찾을 수가 없는데, 당시에 이 기사를 보면서 지금 아프가니스탄과 충돌해온 것은 미국인데 왜 영국 때문이라고 비난을 할까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관련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는 아프가니스탄과 서방 세계의 충돌에 더 오랜 역사가 있었던 것을 모르고 그 영국인이 비난의 화살을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시 펼쳐본 모비 딕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언급된 대목이 나와서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도 소설의 제1장에서 말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관련한 자료를 조사해보니 이 부분을 이해할만한 실마리를 발견했다. 소설의 1장에서는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화자 자신이 다시 고래잡이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상선 선원으로서 여러 번 바다 냄새를 맡아본 내가 이제 와서 고래잡이배를 타기로 마음먹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 내가 이 고래잡이 항해에 나선 것은 신의 섭리에 따라 오래전에 작성된 웅대한 프로그램의 일부를 이루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것은 좀 더 긴 연극 사이에 끼여 있는 일종의 짧은 막간극이자 일인극이었다.

(36, 모비 딕,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2011)


 

신의 섭리까지 들먹이면서 자신이 고래잡이배를 타는 것이 웅대한 프로그램의 일부로, 긴 연극 혹은 역사적인 사건 사이에 낀 막간극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예시를 든다.

 


미합중국 대통령 선거전

이슈메일 아무개의 고래잡이 항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

(모비 딕 1장에서 인용)

 


대통령 선거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투라는 긴 연극 사이에, 일인극에 불과한 자신의 고래잡이 항해가 위치한 신의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비 딕1850년에 주로 쓰였으므로, ‘아프가니스탄 전투는 이 시기 이전에 있었던 모종의 역사적 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에 이 소설을 읽을 때에는 좀 더 조사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사건을 계기로 19세기 중반 이전의 아프가니스탄을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오늘 조사한 자료는 인터넷에 있는 자료를 검색하여 대강을 정리한 것으로, 큰 흐름에서 역사적인 사건들만 참고하면 될 듯하다. 이를 제외하고 자세한 사항이나 구체적인 연도 등의 정보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우선 아프가니스탄 지역은 지정학적인 위치로 봤을 때, 북으로 러시아, 동쪽과 남쪽으로 인도·파키스탄과 접해있으며, 서쪽으로 과거에 페르시아로 불린 현재의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아울러 이 지역은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혹은 심장부)에 위치한 셈이어서 문명의 교차로라고 할 만 했다. 오랜 교역로인 실크로드가 지나는 길목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동서양 그리고 북방계 민족 및 제국이 충돌하는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19세기에 이르러 제국주의 시대가 한창일 때, 여러 열강은 서아시아로 진출했으며 바로 아프가니스탄 지역이 열강들의 충돌과 갈등이 표출되던 공간이었던 모양이다. 러시아는 남하정책으로 이미 현재의 이란 지역인 페르시아에 진출해있었다. 당시에 영국은 이미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듯이 인도를 식민지 삼고 있었으며 러시아의 남하에 위협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영국이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놓고 대립했던 것이다. 당시 영국은 말하자면 지금의 미국처럼 세계의 경찰 노릇까지는 아니더라도 막강한 군대를 기반으로 세계의 판을 쥐락펴락하는 국가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세기에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근거로 하여 북상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러시아와 충돌하는 형국을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특히 영국은 이슬람 제국이 있는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자신들의 무리한 요구에 저항하는 정부를 축출하고 내정간섭을 일삼았다. 혹은 통상을 빌미로 무리한 요구를 하며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들이 영국의 요구를 거절하면 군사력을 동원해서 점령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주목했던 사건은 영국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이슬람 제국과 3차에 걸쳐 벌인 아프간 전쟁이다.


 

1차 아프간 전쟁은 1838-1842년 사이에, 2차 아프간 전쟁은 1878-1880년 사이에 일어났다고 한다. 따라서 허먼 멜빌이 모비 딕에서 언급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바로 제1차 아프간 전쟁, 혹은 당시의 큰 전투 중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차 아프간 전쟁은 이 소설이 출간(1851)된 이후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1차 아프간 전쟁에서 인도 용병을 앞세운 영국 군대는 카불을 점령하여 다른 왕을 옹립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허수아비 지도자를 앉힌 것인데, 이는 일본군부가 중일전쟁을 벌이고 만주국과 같은 괴뢰 정부를 세운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서 놀라운 점은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저항이 너무나 격렬해서 영국군이 카불에서 철수했다는 점이다. 최근 카불에 아직 남아서 숨어 지내는 어느 서양인이 국내 취재진과 영상 인터뷰를 진행한 장면을 보았는데, 이 사람은 아프가니스탄의 겨울이 너무나 혹독해서, 현재 아프가니스탄이 겪고 있는 경제난, 식량난과 더불어 이번 겨울은 이 곳에 남게 된 사람들에게 매우 힘든 겨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군/인도용병이 거의 전멸했던 제1차 앵글로-아프간 전쟁의 전투 그림

 


18421월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차 아프간 전쟁의 막바지에 영국군은 아프간에서 철수 중이었다. 한 기록에 의하면 대략 2피트(60 cm)의 눈 쌓인 계곡에서 영국군 700, 인도 용병 3800, 그리고 이들의 가족 등을 포함한 12천 여 명이 아프가니스탄인들의 공격으로 전멸했다고 한다. 이 소식은 아마도 전 세계에 퍼졌을 것이고, 1841-1842년 당시 한창 젊은 22-23세로 포경선을 타던 멜빌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모비 딕을 쓰기 시작할 때까지 8년의 시간은 더 있었으니 자세한 내막을 알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멜빌이 소설에서 썼던 아프가니스탄 전투는 제1차 아프간 전쟁 혹은 영국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저항군에게 거의 전멸 당했던 어느 계곡의 전투를 가리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주목해보는 부분은 멜빌이 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Bloody Battle In Affghanistan)라는 표현은 백인의 관점에서 보기에도 꽤 중립적인 관점으로 묘사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많은 백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야만인과 같은 비하적인 표현을 멜빌은 사용하지 않았다.

 


거의 몰살을 당하다시피 하고 철수를 하게 된 영국이 완전히 의욕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2차 아프간 전쟁은 26년 후인 1878년에 발발하는데, 이번에도 인도의 지원을 받아 카불을 침공한다. 이 때 영국군은 일본군이 한일합방을 강요했듯이 영국 군대의 주둔을 인정하는 조약에 강제로 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때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 일부 병합되어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다고 한다. 큰 희생을 겪었지만 대국 미국을 상대로 이겨본 베트남인들이 자부심과 사기를 잃지 않은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인들도 그대로 앉아 있을 리가 없다. 민중은 또 다시 영국에 대항했고, 이들은 제3차 아프간 전쟁을 통해 1919819일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야 만다.


 

다시 정리를 하면 어느 뉴스 영상에서 한 영국인이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이 모두 영국때문이라고 한 발언은 그 사람이 잘못 언급했거나 무지 때문이 아니라, 3차에 걸쳐 아프가니스탄을 유린한 대영제국의 역사적인 침공사건을 염두에 둔 것일 테다. 멜빌의 시대인 19세기 중반에 그가 이미 목격한 제국주의 열강의 행적과 그 영향은 이제 20세기와 21세기에 미국이 대신하여 그 역할을 맡은 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여전히 제국주의·식민주의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간다고 이해된다. 미국은 이 곳에 탈레반의 씨앗을 심은 것에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이 현상의 근원에는 허먼 멜빌도 목도했던 것처럼 19세기에 이미 영국의 제국주의·식민주의적 행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철수를 계기로 그동안 모비 딕 1장에서 멜빌이 썼던 문구의 역사적 맥락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에서 카발라를 언급하는 멜빌은 분명히 유대 신비주의적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영원 회귀의 개념을 담고 있는 이 신비주의는 이 회귀의 구조가 모비 딕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떠오른 관을 붙들고 홀로 살아남았던 이슈메일은 언젠가 또 다시 바다로 나갈 것 같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역시도 카발라적이다. 그런 까닭에 모비 딕 1장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라는 표현을 보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이해하고 나니 더욱 멜빌의 통찰에 소름이 돋는다. 인간인 우리는 정말 다르게 행동할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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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1-09-02 03: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동의합니다. 미국의 서진으로 인해 멸망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을 딴 배를 등장시킨 것으로 보아도 멜빌은 폭력적인 서구 근대 문명의 파국을 경고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초란공 2021-09-02 22:13   좋아요 3 | URL
아 그렇네요. 피쿼드호를 잠시 잊었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에 더하여 저는 ‘모비 딕‘을 백인 문명의 질서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에이해브처럼 덤비는 이들은 ‘모두 죽는다‘는 위협적인 백인 문명으로요.
나중에 이 부분가지고 쓸 기회가 되면 또 준비해보겠습니다. ^^

mini74 2021-09-02 17: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읽었습니다 무심코 읽었던 모비딕 앞부분으로 이렇게 역사까지. 유익하게 잘 읽었어요 초란공님. *^^*

초란공 2021-09-02 22:16   좋아요 4 | URL
읽어주신 소감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조사가 미흡하여 책을 많이 읽으신 분들의 지적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아무튼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매력이 있네요~

초딩 2021-09-03 00: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피쿼드호도 이민자들이 처음 멸한 인디언 부족 이름이죠? 정말 모비딕의 그 방대함과 그 속의 빗댐은 대단합니다!

초란공 2021-09-03 12:17   좋아요 3 | URL
정말 <모비 딕>은 ‘모비 딕‘ 같달까요? ㅋㅋ

scott 2021-09-04 1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주말 독서 모비딕 꺼내놨어여 ㅎ 주말 화창한 날씨처럼 멋지게 ~

초란공 2021-09-04 11:55   좋아요 2 | URL
‘저도 <모비 딕> 읽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ㅋㅋㅋ 스콧님도 화찬한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