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리사 랜들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1 1)에 나오는 오*탈자 수정 권고 및 번역에 관한 메모를 모았다.

사이언스 북스 측에 이 메모들을 전달했지만, 아무런 답을 받지 못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다음 2쇄에서는 오*탈자가 수정되길 바라며, 한편으로는 번역 및 우리말과 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14) 위험(lisk) → risk

 

(62) 상스 상스

 

(591) (후주) 파인만 파인만

 

(164) ‘전기 띠다→ ‘전하 띠다.

 

(165) 전기장 자기장 (?) 

(초전도 전자석을 이용하여 하전입자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자기장만이 할 수 있다. 전기장은 하전입자의 직선 방향으로만 가속시킬 수 있다. 따라서 회전시키는 것은 자기장이 맞을 것이다.)

 

(170) 양전기 양전하

              음전기 음전하

('전하'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고민했었으나 양전기, 음전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문제는 없어 보인다.)

 

 

(202) (그림25) [3]

양성자 싱크로트론(PS)’ 경우 26기가전자볼트라고 나와 있는데, 본문에는 28기가전자볼트라고 나와 있다. 28기가전자볼트가 맞지 않을까한다.

 

(207) (그림26) 초전도 코일 빔가림막 같은 대상을 지시하고. 혹시 빔가림막 빔파이프를 둘러싸는 폐곡선을 가리키는게 아닐지?

 

(260)

오제 실험이 못하리라는 알게 ,’ 

 → ‘ 알게 ,’

 

(280) (페이지 밑에서 네번 )

이런 종류의 논리 과학에서 다루는…’

→ ‘이런 종류의 논리 과학에서 다루는…’

 

 

(280) (페이지 밑에서 두번 )

이익과 위험이 동조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 상태에서 사람들은 누군가 유효한 보증을 주지 않으면 감수하지 것보다 위험을 감수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유혹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문장은 여러 읽어봐도 어딘가 이상한데 좀더 명확하게 다듬는 것이 좋지 않을까?

 

(282)

신중하게 만들어진 적확 질문을 던지지 못하면…’

→ ‘신중하게 만들어진 정확 질문을…’

 

: 사전적으로 적확하다 말은 정확하게 맞아 조금도 틀리지 아니하다.’라고 나와 있다. 표현이 적확하다고 하면 수긍이 가지만, ‘질문 맞다혹은 틀리다라고 있을까? 다시 말하면 질문이라는 단어와 적확한이라는 용어가 서로 어울리게 쓰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282)(밑에서 여섯 )

하지만 이런 이익은 정량화 하기 어렵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일들의 가치를 평가해 내고 확고한 안정성을 만들어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어부와 서술부(때문이다) 호응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298) (밑에서 세번 )

가능성과 함으 폭이 

→ ‘가능성과 함의 폭이

 

(300) (페이지 중간 부분)

계통적 불확실성이 측정의 정확도 좌우하는 반면 통계적 불확실성은 정밀도 영향을 준다.’

 계통적 불확실성 측정 도구 자체의 특징을 반영하므로 정밀도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통계적 불확실성 정밀한 장치로 측정해도 반복측정하게 되면 참값에 값들이 많이 나타날 있는 정확도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본문의 정확도와 정밀도가 서로 바뀐 것은 아닐지 확인이 필요함. 

(362) (주석56) 설명은 362면에 붙어있는 주석의 부분과 내용이 맞지 않는 같다. (주석 56) 오히려 362면의 마지막 단락과 관련되는 같다. 따라서 362면의 마지막 문장에 (주석56) 붙어야 같다.

(388)

모형이라는 용어에서 전시나 사전 쓰이기 위해

→ ‘사전

(393) ( 단락 에서)

‘LHC에너지에서 조사할 있는 가장 작은 거리 스케일에서도, 기초가 되는 이론을 지배하는 규칙이 아주 단순해서, 관계되는 물리 법칙의 영향을 추론하고 계산할 있었으면 좋겠다.’

문장은 뒤의 호응이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문장을 명확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431) (파울리 배타 원리 용어 다음 문장) ‘페르미온의 이러한 성질은 주기율표의 구조를 설명해 주는데, 만약 어떤 양자수에 따라 구분되어 있지 않으면,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서로 다른 궤도로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장의 호응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좀더 명확하게 다듬어졌으면 좋겠다. .

(505) (위에서 번째 )

관측 우주의 역사를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 ‘관측 우주의 역사를…’

 

(513) (밑에서 번째 )

물리학

→ ‘물리학

 

 

(518) (밑에서 여덟 번째 )

암흑 에너지 존재한다고…’

→ ‘암흑 에너지 존재한다고…’

 

(541) (그림79)

그래프의 세로축(잔차?) 어떤 물리량을 의미하는지 의미를 밝혀주었더라면좋았을 것이다.어떤 신호 의미하는 것인지?

 

(551) 예술가 필립 (Philippe Petit)

→ ‘필립 아닐지

최근에는 된소리로 표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같으니 쁘띠라기 보다는 프티 표기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555) 조르주루이 르클레(Georges-Louis Leclerc)

프랑스어에서 단어의 마지막에 c 오는 경우는 발음을 해주는 것이 아니었나? 예를 들면 avec 아베크 같이 읽는 예가 있다.

 

(595) (후주74)

마지막에 닫는 괄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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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1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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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1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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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19-10-15 16:21   좋아요 1 | URL
필독서는 각자의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겠지요. 번역 문화에 관한 이해는 박상익 선생님의 <번역은 반역인가>부터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번역의 탄생>도 많이 거론되는 책이구요. 아직 읽어보진 못했으나, <갈등하는 번역>과 <여백을 번역하라>등도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이 책들에도 몇 권씩 다른 번역관련 서적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하나씩 관심사에 따라 찾아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19-11-05 1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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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눔의 세계> 알베르 카뮈의 여정

카트린 카뮈 지음 |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알베르 카뮈의 카트린 카뮈가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남긴 글이라 한다. 카뮈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아온 가족으로서 딸의 시선에서 아버지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얼핏 보아도 상당히 많은 카뮈의 사진들과 카뮈가 주고 받은 내밀한 서신들이 사진 자료로 보인다. <카뮈-그르니에 서한집 1932~1960> 번역했던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만난다. <서한집>에서는 사제간의 오랜 신뢰와 존경의 모습을 엿볼 있다면, <나눔의 세계>에서는 보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가족의 시선에서 카뮈의 인간적인 면모를 딸의 어께 너머로 엿볼 있을 같다. 책과 <서한집> 겹쳐 읽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2.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자유를 향한 철학적 여정

손기태 지음 | 글항아리

- 출판사의 책소개를 훑어본다. 이미 스피노자에 관한 수십 권이 나와있을 터인데도 내가 관심을 더욱 가지게 구절은 저자는 오로지 스피노자를 읽는다 행위 자체에 집중하며…’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엄격한 유대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드물게 의심하는 자유 누린 사람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고향과 본인이 소속된 유대교로부터 거부당한 이단아로서 스피노자의 삶은 절대 평범해보이지 않는다. 책은 스피노자의 어려운 철학을 해설하기보다는 철학자의 삶을 따라가며 그러한 철학이 잉태된배경을 조명하고 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에 상당히 궁금했다. 과연 스피노자란 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린 스피노자가 어떤 절대성 의심할 있도록 만든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을 만났을까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혹은 어느 수도원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사람들에게 읽히고 근대의 시작을 견인했다는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같은 책을 만났던 것은 아닐까. 고난스러웠던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 스피노자의 운명애 어떤 모습일지 책에서 고스란히 엿볼 있을 것같다.

 

 

 

 

 

 

 

 

 

 

 

 

 

3. <미래의 나라, 브라질>

(원제 Brasilien: Ein Land der Zukunft)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김창민 옮김 | 후마니타스

- 슈테판 츠바이크란 사람은 그가 저작만 보더라도 매우 독특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항상 받게 된다. 특히나 그토록 다양한 위인들(발자크, 에라스무스, 몽테뉴, 톨스토이, 마리 앙투아네트 ) 대한 평전시리즈를 엿보게 되면 사람의 폭넓은 관심과 호기심을 느끼곤 한다. 20세기 초반 인류가 경험했던 가장 암울한 세계 대전을 몸으로 겪은 인물이 어떻게 남아메리카로 닿게 되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나치 하에서 일하던 독일 장교들이 바티칸의 공공연한 도움을 받아 남아메리카로 도피를 했던 사실들을 떠올려보면, 나치에 쫒겨 브라질에 당도한 츠바이크가 들과 어울려 사는 모습은 어떠했을지도 자뭇 궁금하다. 아마도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와 닮은 구석이 있을 것이다.

   책은 완전히 새로운 , 낯선 곳에 정착하게 츠바이크가 절망을 느꼈던 유럽과 달리 브라질에서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고 희망을 느끼게 되었는지, 이방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브라질의 모습이 닮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볍고 원자화된 정보가 넘쳐나는 브라질에 대한 여행책들과는 달리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명이라 불리는 츠바이크가 소개하는 브라질의 모습에 기대가 된다.

 

 

[과학]

 

 

 

 

 

 

 

 

 

 

 

4.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중력파를 찾는 LIGO 인류의 아름다운 도전과 열정의 기록

오정근 지음 | 동아시아

- 지난 12 과학계는 하나의 놀라운 결과를 발표하였다.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중력파검출에 관한 기사였다. 지난 인문분야의 신간 평가 도서였던 리사 랜들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에서도 잠시 언급되었지만, 아인슈타인이 남긴 여러 유산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닿아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론에서 예견된 중력파의 존재가 지금까지 발견되지 못한 것은 분명히 실험으로 관찰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매우 힘든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주가 보내오는 미약한 신호를 포착해낼 있을 정도로 정밀한 관찰 도구를 만들어내기 까지 과학자들은 오랜 시간을 노력했다고 있겠다.

   우리 일반인들은 이런 기사가 나오면 사실 피부에 닿지 않는다. 가끔씩 이러한 실험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궁금해지긴 한다. 중력파의 발견과 검출이 가지는 의의를 일반 상대론과 블랙홀을 전공한 국내 물리학자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우주의 통찰>

 ‘위대한 석학 21인이 말하는 우주의 기원과 미래, 그리고 남겨진 난제들  

(원제 The Inflationary Universe: Quest for a New Theory of Cosmic Origins (1998) )

앨런 구스 지음 | 브록만 엮음 | 김성훈 옮김 | 이명현 감수 | 와이즈베리

- 우리가 흔히 빅뱅이론으로 알고 있는 팽창하는 우주중에서도 MIT교수 앨런 구스가 제안한 이론을 급팽창이론이라고 한다. 책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우주가 매우 빠르게팽창함으로써 우주가 불균질하게되었다는 것이 요점이다. 이는 매우 거칠게 비유하자면 화산에서 용암이 튀어나와 매우 급하게 식을 암석의 입자가 불균일하고 작은 입자로 굳어지는 점과 비교해볼 있을 같다. 매우 천천히 식는다면 암석 내부는 보다 안정적인 결정의 형태를 띠게 것이다. 리사 랜들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에서도 우주론을 다루는 부분에 연구실에 있던 앨런 구스 교수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있다. 리사 랜들 또한 책의 21명의 저자로서 본인의 대표 연구인 브레인() 이론에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지난 2 중력파의 발견으로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우주의 실체, 나아가 우주의 기원에 대해 좀더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있을 것이다.

 

 

 

 

 

 

 

 

 

 

 

 

 

5. <마르크스의 『자본』 탄생의 역사>

마르크스 40 경제 이론 작업의 전모를 밝히다

비탈리 비고츠키 (지은이) | 강신준 (옮긴이) | | 2016-02-22 

- 많은 독서인들이 언젠가 번은 만나게 되는 중의 하나가 마르크스의 저작들이다. 단순히 경제의 원론적인 지식만이 아니라 사람의 삶과 관련한 보다 내밀한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이 조명되고 있다. 서구에서는 이미 일찍부터 그래왔듯이, 우리 사회도 앞으로는 더욱 이런 방향으로 활성화될 것이다. 말하자면 이미 고전으로 받아들여지는(익히 이름은 알려져있으나 아무도 읽지 않은) 책들의 저자들. 이들이 그러한 성취를 이루어낼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고, 어떤 배경에서 자라왔으며, 누구와 만났을까 하는 그런 점들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결국 인간이란 언제나 앞선 인류가 겹겹이 쌓아온 역사의 최종 산물이며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슈테판 츠바이크처럼 자신의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끊임없이 옮겨다니고, 새로운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새로운 사회를 관찰해온 사람이라 있다. 낯선 곳에서 우리의 무의식은 더욱 활발히 기존의 익숙한 삶의 패턴과 비교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책은 흔히 <자본론>으로 알려져있는 그의 두터운 3권짜리 저서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포괄적으로 알려주고있다. 출판사가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아직 국내에 마르크스 저작 전집(114) 완역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게된다. 아직 마르크스 사상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  동아대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 총서 시리즈의 권으로서 앞으로 계속 나오게 마르크스 관련 저작들에  기대를 해본다.

 

 

 

 

 

 

6.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개정판]

(원제 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 반성완, 백낙청, 염무웅 옮김 | 창비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올해 국내에 소개 된지 5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전세계 뿐만 아니라 국내의 수많은 지성인들에게 예술사회학의 고전이 되어왔다는 반증이겠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거나 예술과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언젠가 한번쯤 만나게 되고 도전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책을 읽지 못하고 발췌해서 읽어보긴 했는데, 예컨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읽으면서 기사도에 관한 기사도의 패배부분을 읽으며 작품의 이해를 높이는 방식으로 겹쳐읽기를 해본 적이 있다. 나처럼 끈기가 부족한 독자에게는 번에 도전하기보다, 생활하면서 언제든 찾아와 살펴보고 관련된 내용을 찾아 읽고하는 그런 책이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이 필요없다.  새로 개정된 이번에 장만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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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느릿 느릿 읽기 [2]

 

 

 

 

 

 

 

 

 

 

 

 

   청년 레빈은 여전히 키티에게 청혼을 주저하고 있다. 1부에 보면 레빈이 키티를 만나기위해 스케이트장에 가는 장면이 있다.

   네시에 레빈은 자신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면서 동물원 입구에서 세낸 썰매를 세우고 스케이트장으로 가는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입구에서 쉬체르바쓰키네의 사륜 여행마차를 보았기 때문에 그곳에 가면 틀림없이 그녀를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 그는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환희와 두려움으로 그녀가 거기 있음을 알아챘던 것이다. 그녀는 한 부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스케이트장 건너편 끝에 서 있었다. 그녀의 복장이나 자세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레빈에게는 이러한 군중 속에서 그녀를 찾아내는 것이 쐐기풀 속에서 장미를 찾아내는 것처럼 손쉬웠다. 모든 것이 그녀로 인해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주위의 온갖 것을 환하게 밝히는 미소와 같았다. (1 62-63)

   흔히 내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사람으로부터 같은 아우라가 퍼져나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130년도 전에 톨스토이는 우리가 이야기하듯 그런 빛이나는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키티의 사촌오빠가 레빈을 알아보고 러시아 제일의 스케이터!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대목을 통해 레빈은 스케이트를 매우 잘 타는 것으로 나온다.

   역시나 오늘은 처음부터 삼천포로 빠지자면, 나는 이 대목을 읽고 문득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올렸다. 크리스마스 즈음 기숙학교에서 쫒겨난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여자 친구 샐리를 만나기전 뉴욕 맨하탄을 배회하면서 스케이트장에 이르는 장면이 나왔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사건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도 찾아낼 길은 없지만, <샐린저 평전>(케니스 슬라웬스키 지음)을 보면 꽤 젊은 나이에 단편 소설로 데뷔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1941 12월 일본군이 진주만을 폭격한 이후 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군 복무 중(1943년 즈음으로 보인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책을 열심히 읽어댔다(104)라고 적힌 대목이 보인다. 샐린저는 실제로 맨하탄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실제로도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 콜필드가 나도 어렸을 때 똑같은 장소에서 스케이트 타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라고 혼자 생각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혹은 무의식 중에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레빈이 스케이트장에서 키티를 만나는 장면이 <호밀밭의 파수꾼>과 연결되었을 뿐이다.

  

   딸의 운명은 부모가 결정지어주어야 한다는 프랑스의 관습은 배척당하고 비난받았다. 딸에게 완전한 자유를 줘야 한다는 영국의 관습도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러시아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중매쟁이를 고용한다는 러시아식 관습은 뭔가 상스러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남들처럼 부인 자신도 그것을 비웃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어떻게 시집을 가야 하고 시집을 보내야 하는가는 아무도 몰랐다. 부인이 이 문제에 대해 상의했던 사람들은 모두 부인에게 똑같은 말을 했다. 생각해봐요, 이제는 그 낡은 관십을 버려야 할 때예요. 결혼하는 건 젊은 사람들이지 부모가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게끔 내버려둬야 해요. 딸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부인으로서는 딸이 사내들을 가까이하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그것도 결혼할 의사가 없는 사내나 혹은 남편감이 되지 못하는 사내를 연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95-6)

   결혼 적령기가 된 키티의 어머니인 부인의 입장에서 톨스토이가 써내려나간 이 대목을 보면 작가가 인식하는 당시 결혼 문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톨스토이의 표현에 의하면 프랑스의 결혼은 과거 우리처럼 부모가 정해준 결혼이 대세였을 듯하고, 영국은 자유연애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반면 러시아의 결혼문화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배우자를 선택하기도하는(물론 자유연애와 부모의 주선에의한 결혼도 혼재해있지만) 현재 우리의 모습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아울러 러시아의 문화는 특히나 프랑스 문화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교계 모임에서 러시아어 대신 프랑스어를 쓰기도하고, 하인이 있는 자리에서 비밀스러운 이야기나 껄끄러운 이야기를 할 때 프랑스어를 쓰는 장면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롤리타>의 작가)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연애소설로 꼽은 이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특정 한 사람이 주요 인물이 아니고 바로 두 남자와 두 여자의 사랑과 운명을 대립시키고 있다. 한 쪽은 유부녀인 안나 카레니나와 사랑을 하게되는 브론스키 백작(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이 있고, 그 대척점에 키티(카테리나 알렉산드로브나)와 레빈(콘스탄틴 드리트리치 레빈)이 있다. 따라서 이 두 커플이 조우하고 고백을 하는 시점이 비슷하게 나오는 것도 흥미롭다. 물론 레빈이 키티에게 처음 고백하고 청혼을 했을 때 처음에는 키티에게 거절당하게 되는데, 반면 브론스키와 안나는 기차역에서 서로 첫 눈에 반하게 된다. 이 두 커플의 시작은 이후 이들이 맞게되는 운명과 반대로 레빈은 청혼을 거절당하는 쓰라림으로 시작하며, 브론스키는 무난하고 좋은 분위기로 두 사람사이의 관계가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브론스키와 안나가 처음 만나는 곳이 기차역이라는 것, 그리고 이들이 처음 만난 날 기차역에서 한 남자가 열차에 치여 죽는 사건을 맞게 되는데, 안나가 불길한 징조예요.라고 하는 말은 아무 의미없이 지나가는 말이 아니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기차역은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불행을 잉태하는 장소로서 톨스토이가 사용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톨스토이가 말년에 집을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영면한 곳도 어느 기차역이었다는 점이다. 톨스토이에게 있어 기차역은 인생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을 기억하라는 톨스토이 말년의 잠언집을 읽다보면 인생이 갖는 은유적 의미(지나가는 곳으로서의 인생)또한 떠올리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톨스토이에게는 기차역과 부합하는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한다.

  

   여기서 잠깐 안나 카레니나와 사랑에 빠지는 인물인 브론스키 백작에대해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브론스키는 좋은 집안 배경 출신이며,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손에서 성장하는데, 초반에는 마마보이처럼 보이는 착한 아들로서 등장한다. 그러나 어머니와의 관계가 썩 좋지는 않으며, 그림을 잘 그리는 것으로 나온다. 브론스키는 유부녀인 안나 카레니나와 첫 눈에 반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열정적인 사랑을향해 나아가지만 사교계의 냉담한 시선과 사회의 관습에 고통을 받는다. 좋은 집안에 학식은 있지만 20세 연상인 남자(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와 결혼 후 무덤덤한 결혼생활을 하던 안나는 브론스키를 만나 새로운 삶에 모든 것을 걸고 뛰어든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촛불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사랑하는 아들마저도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지는 못한 듯하다. 이런 사건을 내 주변에서 마주하게 된다면 언제나 타인의 행동을 비난하기는 쉬운일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내게도 일어났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타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 안나의 남편인 카레닌의 입장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타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퍼부으며 복수와 응징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합리적 대안을 선택할 수 있을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이런 문제에 대해 당시( 130여년 전)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억압적이고 배타적인 사회의 분문율에 톨스토이는 소설에서 질문을 던지고 편견에 도전하고 있다. 안나는 단순히 자신의 쾌락을 쫒는 여자일까? 그리고 어쩌면 쾌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쾌락을 구하는 것이 과연 잘못된 일일까하는 의문을 던져볼 수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갖고있는 도덕적인 기준이야말로 모호하고 자의적이며 상대적인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 정답이란 없는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문제는 생각해볼 일이다.  

 

"인생의 온갖 변화와 매력과 아름다움은 모두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는 거니까."
(91면)

"All the variety, all the charm, all the beauty of life are made up of light and shade." (펭귄 북스, 4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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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느릿 느릿 읽기 [1]

 

 

 

 

 

 

 

 

 

 

   앞으로 몇 달이 걸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주 천천히 읽어 나가면서 밑줄 그은 부분을 옮겨 적고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고 그 때 그 때 나에게 든 생각들을 옮겨 놓는 지극히 개인적인 독서 일기가 될 것 같다. 이 독서 일기는 박형규 교수가 번역한 문학 동네의 <안나 카레니나> 3부작에 기반하여 읽어 나갈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한 참 지난 내가 아마도 제작년 부터 문학 책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이름만 들어왔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만나게 되었다. 책의 뒤 편에 나온 유명 소설가들의 <안나 카레니나>에대한 짦막한 서평만이 아니더라도 가깝게는 <책은 도끼다>를 쓴 박웅현 선생이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 최소한 길을 잃지는 않을거에요.라고 한 언급이 이 책에 대해 더욱 흥미를 갖도록 했다. 번역본으로 해설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소설 지면으로 156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나는 어떻게 읽어 나갈 것인가가 처음 이 책 세 권을 앞에 두고 들었던 생각이었다. 그래도 태어나서 한 번은 남들이 고전이라고 하는 책을 읽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사명감에 읽기 시작한 것이 작년 12월 초 였는데, 느릿 느릿(그려나 꽤 부지런히) 읽어나간 지 2달 남짓만에 다 읽어내어 후련하다. 나는 여기에서 나아가 천천히 읽으며 딴 생각으로 멈추기도 하고 메모도 해 둔 부분을 서재에 기록해두고 싶다. 그렇게 해서 나만의 <안나 카레니나> 다시 읽기 프로젝트를 생각해낸 것이고, 이렇게 하면 또 한 번 인상깊었던 부분들, 삼천포로 빠졌던 기억들을 다시금 그러 모을 수 있을 것같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전을 통해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내 삶에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던 것 같다. 자 그럼 시작해보자!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

   소설은 성서에 나온 이 알쏭달쏭한 표현으로 시작한다. 책의 뒷 표지에 언급된 것처럼 미국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안나 카레니나>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연애소설의 하나라고 표현했는데, 이 성서의 표현은 처음 읽을 때 무심코 지나쳤던 문구이다. 지금 다시 책을 펼치고 눈에 들어온 이 문구를 다시 생각해보면 비극적인 소설의 결말과 관계된, 그리고 이 소설을 관통하는 삶과 신앙의 문제와 관련한 문구가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았다. 당연히 작가가 아무런 의도 없이 소설의 첫 페이지를 이 문구로 시작하진 않았을 것이다. 다시 소설을 읽으며 생각해볼만한 꺼리가 생겼다.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면서도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니까.

   소설의 첫 부분은 소설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영역으로서 모든 소설가를 비롯한 작가들이 공을 들여야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1 11) 또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로리타>와 마찬가지로 인상적인 소설의 첫 문장으로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문장이기도 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우리글로 표현한 이 문장은 나름 괜찮은 번역이라 생각했다. 특히 가족이라는 다소 좁게 느껴지는 표현보다 가정이라는 단어의 선택이 복잡한 현대의 삶을 좀더 유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울러 고만고만나름나름의 리듬감과 대칭적인 구조는 역자가 상당히 고민했다고 느껴지는 점이다. 나는 러시아어를 모르니 영역으로 번역(Richard Pevear & Larissa Volokhonsky 번역한 펭귄 북스 참조)한 문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ll happy families are alike; each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이 문장의 원래 의미가 어떻든 나는 이 문장이 참으로 많은 인생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도 느꼈다. 부자든 가난한 이든 누가 더 행복한가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행복해보이는 사람 누구든지 각자 나름의 고민을 안고 이 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데에서 나만의 소심한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것이다. 안정된 직장과 빚이 청산된 내 집을 갖고있고, 행복한 가족이 있다면 그야말로 행복할 것 같지만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들마저도 어김없이 말못할 아픔이나 고통, 고민거리는 늘 존재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내가 견지한 인생의 참모습이다. 곧 고민의 개별적인 대상은 다르더라도 고민 자체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일게다. 그러므로 잘나가는 내 동창들의 모습에 배아파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소설의 두 번째 문장(1 11), 오블론스키 집안은 모든 것이 어수선하게 들떠 있었다. 어수선함이라는 단어는 앞에서 말한 펭귄 북스에서 confusion이라는 단어로 나타나고 있는데, 나중에 더욱 자세히 나타나겠지만, 톨스토이가 이 <안나 카레니나>를 쓸 당시에 고민하던 신앙과 이에 무관한 듯 살아가는 러시아 민중의 현실적인 삶과의 괴리감 내지는 혼란스러움을 더 잘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형규 교수의 해설에도 잠깐 언급되지만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 중이던 당시에 톨스토이는 민중의 삶과 인생의 의의, 그리고 선의 의미에대한 입장이 확고히 정리 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 것처럼 소설가로서의 인생에서 비교적 초기(<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이후에 쓴 대작이다.)에 집필한 소설이기에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소설 전반의 전개 방식이나 주인공의 혼돈스러운 의식의 전개에서 곳곳에 반영되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안나 카레니나>의 첫 부분은 행복한 가정보다는 불행한 가정에대한 암시를 전달하며 소설의 주인공 안나의 오빠인 스테판 아르카디이치 오블론스키가 프랑스인 가정교사와 바람이 나서 험악해진 분위기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잠깐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을 조금 소개하자면, 소설이 시작하는 시점에서 34세로 나오는 스테판(애칭은 스티바)은 모스크바에 거주하며 모스크바나 페테르부르크 지역에서 영향력있는 사람으로 나온다. 스테판의 부인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애칭은 돌리, 여기서 알렉산드로브나middle name으로 보인다.)는 쉬체르바쓰키 공작 집안의 세 째 딸 중 큰 딸로 결혼 전 이름은 다리야 쉬체르바쓰카야 (애칭은 다쉐니카)이다. 둘 째딸은 나탈리 알렉산드로브나이며 나중에 외교관과 결혼하여 외국생활을 주로 하며 소설 전반에 큰 역할을 하지 않으며, 결혼 후 리보바 부인으로 불린다. 그리고 막내 딸 카테리나 쉬체르바쓰카야(애칭-키티, 레빈과 결혼 후 카테리나 알렉산드로브나 레비나 부인으로 불린다.)는 위에서 외도 사건으로 곤혹을 치르는 스테판의 처제인 셈이다. 소설의 시작 당시에는 18세의 앳된 숙녀로 등장하며, 가장 중요한 등장 인물인 레빈과 결혼하는 아가씨이다. 레빈은 원래의 이름이 콘스탄틴 드리트리치 레빈으로서 키티와 결혼하게 되는데, 키티의 큰 언니 돌리의 남편인 스테판과 오랜 친구이다(스테판은 레빈을 코스티야라는 애칭으로 부르곤 한다). 레빈은 대학시절 자연과학을 공부한 과학도로서 시골에서 살며 농사를 지으며 독서와 농업에 관한 저술작업도 하는 젊은이 이지만 사회적으로 아무런 경력이나 지위를 얻는데 무관심하다. 소설의 시작에서 32세의 청년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소설에는 복잡한 이름들이 등장한다. 내가 <안나 카레니나>를 느릿 느릿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단 러시아 이름들이 수도 없이 나오는 이 장편 소설에서 인물들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인물들은 앞으로 조금씩 소개를 하며 기회가 되면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때가 있을 것이다. 

   레빈은 키티에게 연모의 정을 품고 있으며 청혼을 하려고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하지만 시골에서 살던 레빈은 모스크바의 사교계에서도 영향력을 갖고있던 쉬체르바쓰키 공작 집안의 막내 딸 키티에게 다가가려고 하지만 번번이 자신감을 잃고 머뭇거리는 대목이 나온다.(1 53)

   상대방 부모의 눈으로 볼 때 자기는 아름다운 키티에게 도저히 어울리지 않으며 한참 처지는 배필이라는 것과, 키티 또한 그를 사랑할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에 있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서른두 살인 그와 동년배인 누구는 벌써 대령이나 시종무관이 되었는가 하면 누구는 교수, 누구는 은행장이나 철도청장이나 혹은 오블론스키처럼 관청장이 되어 있는데 그는 사회적으로 아무런 경력과 지위를 갖지 않은 사내였던 것이다. 그는 그저 (남의 눈에 비치는 자기의 모습을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암소들을 치고 도요새를 쏘며 건축에 열을 올리고 있는 지주, 말하자면 무능하고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소심하고 전도도 없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사람에 불과했다.

   이 대목은 키티에게 청혼을 주저하는 레빈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단행본이 출간된 해가 1878년이므로 무려 130년도 전에 레빈이라는 청년이 고만하던 것들을 나 자신도 고민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묘한 안도감(?)마저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공자의 말을 제자들이 정리한 <논어>에 등장하는 불혹이라는 나이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타인의 시선을 젊을 때처럼 의식은 하되 이전보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하지 않게 되는 나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소설의 첫 문장처럼 고민의 내용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누구나가 다 고만고만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듯이 이런 보편성을 깨닫게되면 레빈의 고민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되겠지만, 역시 레빈은 32세의 청년이었다. 32세라는 나이는 잘 나가는 동료와 친구가 한다리 건너 누구든 있을 법한 세상 살이에서 여전히 자신의 결핍이 더 크게 느껴지는 나이일 것이다. 그리고 특히나 타인에 대한 동질감이 안정감을 주고 큰 역할을 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공감이 많이 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레빈은 자연과학을 전공한사람 답게 당시에 상당히 논쟁적이었을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다만 소설을 통해 레빈의 사유가 전개하는 양상과 주석을 통해 톨스토이는 인생의 문제나 마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하는 유물론적인 사고 방식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극히 유물론적인 관점으로 보였을 진화론에 대해서도 레빈을 통해 잠깐 잠깐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점이 흥미롭다. 동물로서의 인류의 기원(1 56)에대한 언급은 나 스스로 대학시절 생태학 개론 수업을 들은 후 갖게된 인간관이기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나중에도 물론 생각해보겠지만, <안나 카레니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한 명인 레빈이 자연과학을 전공했다는 설정 또한 톨스토이의 치밀한 의도가 엿보이는 것 같다. 이 소설이 물론 몇 젊은이의 연애사건을 다루기는 했지만, 1800년대 중 후반 사회 변혁이 태동하던 러시아의 사회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해 두어야할 것 같다. 따라서 연애사건을 중심으로 다양한 계급에 속한 사람들과 삶의 현실, 그리고 농노제해방 등의 사회상이 폭넓게 반영되고 있다는 점도 내가 감탄하게 되는 점이다. 특히 톨스토이는 신앙과 무신앙의 문제, 삶의 의미를 찾는 문제(삶과 죽음), 공적 신앙과 개인적 쾌락의 추구의 문제 등을 고민하는 대목을 등장 인물을 통해 표면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또 다른 작가의 일기장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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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벤야민, 세기의 가문> 발터 벤야민과 20세기 독일의 초상

우베-카르텐 헤예 지음 / 박현용 옮김 / 책세상

- 내가 갖고 있는 벤야민에 대한 이미지는 물론 책을 통한 접한 아우라가 될 것 같다. 독일에서 자란 유대인이자 평생 직장에 다녀본 적이 없는 진정한 자유인이면서, 독일보다 프랑스의 파리를 너무나 사랑한 지식인으로 각인되어있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두꺼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엿볼 수 있듯 여러 학문 분야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벤야민의 사유는 무엇보다도 도시의 면밀한 산책자로서 형성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문학비평가 류신이 소설가 구보씨와 발터 벤야민을 끊임없이 불러내고 발터 벤야민을 현재의 서울이란 배경에 등장시키고 있는 것은 그만큼 그의 사유방식이 당대의 사람들과 많이 달랐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사상이 현재 우리의 삶에 잇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고학력 자발적 실업자의 모범이 되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고미숙 선생이 <생각수업>에서 백수가 우리의 미래다.라고 외친 것의 구체적인 실천의 모습이 바로 발터 벤야민이 아닌가 생각해본 적이 있다. 고미숙 선생의 이 발언은 냉소적인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삶을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아가자는, 혹은 우리는 그래야하고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호소일지도 모르겠다.

   나치가 봉쇄해버린 국경 앞에서 자살해버린 이 벤야민이란 지식인, 파리의 거리를 끊임없이 산책하며 파리라는 도시를 사랑하고 관찰하며 사유했던 자유인 발터 벤야민을 키워냈던 가문은 과연 어떠했을까.궁금하다. 벤야민의 삶과 그의 가문을 추적해보면서 아울러 20세기 초 독일의 사회상을 좀더 이해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2.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 한길그레이트북스 141  

에르빈 파노프스키 지음 / 김율 옮김 / 한길사  

- 개인적으로 에르빈 파노프스키하면 떠오르는 책은 인문주의 예술가 알프레히트 뒤러에 관한 책 <뒤러>이다. 이 책도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뒤러는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이반 일리치의 저작 뿐 아니라 이광주 교수의 저작 등 미술과 관련한 여러 주제에 자주 등장하는 판화가이다. 특히 해골이 있는 죽음의 기사멜랑콜리아라는 제목으로 불리는 판화가 수많은 미술관련 저작에 등장하는 단골 판화이다. 많은 이들이 인문학의 꽃이라 부르는 미술사학 분야의 교수를 지낸 파노프스키가 중세를 배경으로 한 고딕 건축과 스콜라철학을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3. <스페이스 크로니클> 우주 탐험, 그 여정과 미래  

닐 디그래스 타이슨 지음 / 에이비스 랭 엮음 / 박병철 옮김 / 부키

원제 Space Chronicles: Facing the Ultimate Frontier (2012) 

- 이 책의 저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천체 물리학자로서 백인 과학자가 주목을 많이 받아온 과학계에서 우뚝 서있는 흑인 과학자로서, 그리고 과거 칼 세이건이 자신의 저작을 바탕으로 한 과학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그동안의 연구 업적을 추가하여 다시 제작한 2014년 작 <코스모스>의 해설자로 잘 알려져있다. 무엇보다도 코메디언에 버금가는 그의 풍부한 표정과 유머는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과학 특히 천체 물리 분야, 우주에 관한 여행에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학자인 것 같다. 대중에게 우주에 관해 더욱 알리고 다가가고 싶은 그의 노력으로 이 책은 나왔을 것이다. 이 책은 <코스모스>와는 조금 다르게 우주 탐험에 관한 전반을 보다 집중적으로 소개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4. <한나 아렌트의 말>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마지막 인터뷰

한나 아렌트 지음 / 윤철희 옮김 / 마음산책

- 나에게 한나 아렌트하면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저작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일 것이다. 악의 평범성사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현대인들에게 회자되는 데에는 분명 아렌트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도 그의 책 <도덕적 불감증>에서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듯이 나치 하의 아이히만은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이며 따라서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책임감있고 명민한 공무원으로서 보여준 아이히만의 행보는 이미 100년도 전에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보여주는 관료제의 비인간성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예견된 사태일지도 모른다. 아렌트의 이 책은 정치 이론가로서 아렌트가 생전에 했던 인터뷰 몇 개를 묶은 것으로, 글로 쓴 그녀의 책보다 좀더 느슨할 수 있겠지만 아렌트의 핵심적인 사상을 바로 앞에서 듣는 기회가 될 것 같다.

 

 

 

 

 

 

 

 

 

 

 

 

 

5. <마네의 회화>

마리본 세종 엮음 / 미셸 푸코 외 8명 지음 / 오트르망.심세광.전혜리 옮김 / 그린비

- 이 책은 9명의 미학과 철학 분야의 학자들이 마네의 그림 13점을 주제로 마네의 시각에서 이 그림들을 논한다고 한다. 미학-철학자들이 잘 알려진 마네의 그림을 분석한다면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푸코가 마네에 관한 강연 기록을 시작으로 8명의 철학자들이 푸코의 시각에서 마네의 그림을 어떻게 바라보았을지를 살펴본다면 마네의 그림에대한 이해 뿐 아니라 푸코의 일면을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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