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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과정을 겪은 이후, 우리 사회의 전과 후는 더이상 같지 않다고 한다.

스스로를 소진해나가도록 만든 업그레이된 자본구조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개발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부족하니 반성하고, 좀더 나의 능력을 키우자'는 후기 새마을 운동 전사들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자기 계발 열풍이 주춤해질 무렵,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분위기가 휩쓸더니, 기업의 오너들이 인문학 코스프레를 하고, 다시 우리들은 이들이 던지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열광한다. 인문학 열풍의 시대에 대학의 인문학과는 사라져가고, 경영학과만 거대한 괴물처럼 규모가 커지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가만히 보면 많은 사회 지도층이 말하는 인문학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인문학을 말하는 듯하다. 회사를 유지하고, 사람들을 관리하고, 최고의 효율을 얻기위한 자기 주도형 인문학. 한병철 교수가 그의 저서에 언급한 바처럼 각자 도생의 자본 구조에서 스스로를 무한 착취하고 스스로 소진하도록 부추긴다.  

 

오늘 온 스팸메일 중에 다음과 같은 홍보 문구가 있다.

***와 함께 Peter Drucker Society(PDS) 함께, 
AI
창시자 Ron Fry 교수에게 긍정혁명 구축 방법론을

직접 사사받을 있는 최고의 교육...."

 

우리가 접하게되는 권위있는 이론, 경영법 등은 모두 서양인들이 공부한 것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놓은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여전히 경영이론은 우리를 무제한으로 '긍정'하게 만들고, 소진지킬 방법과 동기부여를 제안한다. 우리의 것, 전통과 단절된(보다 정확히는 우리 스스로 우리를 소외시킨 것) 상황에서 우리는 빈약한 정신을 채울 대상을 또 다시 외부에서 받아들인다. 다람쥐 쳇바퀴도는 형상이다. 무한반복이 계속된다.

 

서양은 과거 수백년 전의 글도 후손에게 잘 전달이 되고 연속성이 있으나, 어쩌면 우리는 조상들의 값진 사상들이 우리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 무언인지 반문해본다. '한글 전용'이 옳은가하는 문제는 또 다른 진지한 주제가 될 수 있겠지만, 한글 전용이 '과거의 부정'을 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될 것 같다. 후손이 조상의 사상과 기록을 받아들이는데 제약이 있다면 아마 우리는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보수적인 견해를 갖고있다. 전통은 좋고 나쁨의 판단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지킬만한 것들은 분명히 많다. 조상의 지혜는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 나라 사람들 중 100년 전 문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문맹률은 거의 제로에 가깞지만, 그리고 모두가 영어에 목을 매달지만, 100년 전 문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가될 것인가.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문맹률은 99%가 아닐까.

 

평생 아이들을 생각하셨던 이오덕 선생의 <이오덕의 말꽃 모음>을 읽었다. 선생의 많은 글 중 일부분을 모은 책이라 전반적인 글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 아쉽긴 하지만, 상당부분 공감을 하게된다. 물론 한글 전용에 대한 생각은 선생과 다르긴 하지만. 우연히 보게된 스팸 광고 문구 하나를 보고 또 이런 저런 잡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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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

롤랑 바르트의 <밝은 > 만나는 접점에서 머무르기

 

 

한병철 교수의 <에로스의 종말> 다시 읽는다. 전체에 대한 서평을 정도의 실력이 나에겐 없음을 통감하지만 책읽기의 매력이 책의 어떤 부분에서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에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은 롤랑 바르트의 <밝은 (영어판 제목: Camera Lucida)>에서 카프카(Franz Kafka) 말했다는 대목에서 멈춰서 저녁 내내 생각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목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사물에서 의미를 몰아내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나의 이야기들은 일종의 감기다.”(79)

 

저자 한병철 교수는 이에 사물의 내밀한 음악 눈을 감을 비로소 울려 나온다. 눈을 감는 순간에야 사물 앞에서의 머무름 시작된다.”라고 덧붙이고 있다.(5 환상, 79)

 

롤랑 바르트가 인용했다는 카프카의 말과 한병철 교수가 덧붙인 말은 얼핏보면 서로 연관성이 희박하다. 나는 대목에서 과연 부분이 서로 어떤 연관성에서, 어떤 맥락에서 이렇게 병치되어 나오게 되었는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카프카의 말이 인용되는 롤랑 바르트의 <밝은 > 맥락은 이 책 22장에서 롤랑 바르트 자신이 사진을 보는 행위를 언급하며 맥락에서 나온 말로, “사실 또는 결국 하나의 사진을 보기 위해서는, 머리를 치켜들거나 혹은 눈을 감는 것이 좋다.라고 말하며 야누흐(Janouch) 카프카의 대화를 인용하고 있다.

 

“'이미지에 선행하는 조건은 시선이다.’라고 야누흐는 카프카에게 말하곤 했다. 카프카는 미소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사물을 촬영하는 목적은 그들을 자신의 정신으로부터 쫒아내기 위해서이지. 나의 이야기들은 눈을 감는 하나의 방법이네.’ 사진은 말이 없어야 한다.

 

책에서 롤랑 바르트가 썼던 동일한 문장에 대해 사뭇 다른 느낌의 문장이 나왔다. 한병철 교수는 롤랑 바르트의 독일어판 <밝은 >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이며, 내가 가지고 있는 <밝은 > 불어판 번역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독일어 판으로부터 나온 번역은 매우 간결하다.

 

카프카의 인용구가 있는 <밝은 > 22장은 현대 사진론에 영향을 끼친 바르트의 스투디움 푼크툼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가지 사진을 이야기 한다. 1882 나다르라는 사진 작가가 찍은 이태리계 프랑스 탐험가의 사진으로부터 바르트 자신의 푼크툼 언급하며 시작하고 있다. 바르트에게 있어 푼크툼 사진 관람자에게 고통의 확실한 징후 되는 것으로서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으로부터 환기되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같다. (모두 사망했을)타인의 오래된 가족사진에서 인물이 신던 구두 혹은 목걸이로부터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요소가 바로 푼크툼 요소라고 있겠다. 바르트가 생각하는 사진(혹은 사진 감상)이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은 평범한 세부가 홀로 (푼크툼을 발견하게 해주는) 감정적인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도록 내버려둠을 통해서 가능한 행위인 같다.

 

다시 카프카의 (밑줄 인용구) 돌아가자면, 롤랑 바르트에게 사진’은 사진에 담긴 대상이 전달하는 정보, 의미를 사진 관람자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점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점에서 이러한 강요 하나의 폭력일 수도 있을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이런 정보, 의미 수다스러움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 사진은 수다스러움 제거된 사진이라고 말한다. 바르트는 수다스러움 범주에 테크닉’, ‘현실감’, ‘르포르타쥬’, ‘예술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에로스의 종말>에서는 사치스러움' 현대 사회의 과도한 가시성(혹은 정보)이라는 보다 확장된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한병철 교수가 언급한 사물의 내밀한 음악 사물의 본질에 대한 이미지 혹은 단상 정도로 이해할 있지 않을까.

 

여기에서 이미지 혹은 단상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도움이 만한 부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목이 있다. 이 대목은 프랑스 작가이자 대학교수인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소설 <단순한 열정> 마지막 부분에 있다. 작가 아니 에르노는 50 중반이던 1990년대 초에 30 후반의 외국인 유부남과 사랑을 나눈 체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그녀는 내가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적은 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이라고 말하며 평생 글을 써왔다. 내가 보기에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사건이 사실이므로 소설이라기 보다는 '시간 개념이 없는 일기'라고 하는 것이 어울릴 같지만 아무튼 그건  책의 분류를 '굳이' 원하는 사람의 몫이다.

 

<단순한 열정>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하고 말했었다. 나는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사람의 존재 자체로 인해 내게로 단어들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사람이 읽으라고 글을 것도 아니다. 이것은 사람이 내게 어떤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대목에서 언급된 작가가 떠올린 단어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실존적 인식 한병철 교수의 사물의 내밀한 음악 동등한 의미를 갖는다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에로스의 종말> 돌아간다. 책의 옮긴이에 따르면 독일어 눈을 감는다라는 동사는 닫다, 끝내다 등의 의미를 지니는 동사를 사용한다고 한다.  눈을 감는다 종결 의미를 내포한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시각적 정보의 결핍을 의미하며 이는 에로틱한 환상을 자극한다고 한병철 교수는 말한다. 여기서 에로틱한 환상은 기본적으로 상상력을 매개로 타자 갖는 욕망을 대변한다고 있다. 한병철 교수는 쿠스타브 플로베르(Gustav Flaubert) 소설 <마담 보바리>에서 보바리와 레옹이 달리고 있는 마차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인용한다. 대목에서는 사랑의 행위에 대한 어떤 시각적 묘사도 나오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에로틱한 환상을 자극하는 것이다. 대목은 <시를 읽은 그대에게> 정재찬 교수도 '가장 에로틱한 장면'이라고 손꼽는 장면이기도 한데, 여기에 시각적 정보가 자세하게 주어진다면, 에로틱한 환상은 곧바로 파괴될 것이다. 롤랑 바르트가 얘기한 혼란되고 균열된 포르노로서의 성애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린다.

 

지나친 정보가 주는 환멸 떠올리자면 나는 언제나 소개팅에 나가기 전에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 통해 상대방의 사진을 검색하는 젊은 세대를 떠올린다. 개인에 대한 과도한 정보와 가시성(프로필 사진, 셀피 사진 ) 확보한 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기대 커지거나 아니면 환멸 따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의 인간다운 매력에 대한 환상(또는 상상력) 머물 여유가 정보 검색과 더불어 곧바로 박탈당한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상대를 결정지어버린다. 이처럼 과도한 정보가 주어지는 세대에게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관심이 머물 여유가 사라진 세대가 것이다.   

 

오늘날 무한한 긍정성 양상이나 과도한 가시성 성과주체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런 가속화 사회에서 눈을 감는 행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병철 교수가 언급한 눈을 감는 행위 문자 그대로 눈을 감고 거부하는 행위에서 나아가 종결 형식으로서 사색적인 머무름 또는 사색적인 안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해야 것이다.  

 

한병철 교수가 <피로사회>에서도 언급했듯이 신자유주의의 성과주체는 자기착취적인 존재이다. ‘과도한 긍정성의 강박 성과주체를 소진시키는 원인이 되며, 이는 오늘날의 우울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병철 교수는 우울증이 신자유주의적인 사회의 특징적인 질병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에로스 환상( 상상력) 매개로 하는 타자에 대한 욕망이다. ‘타자 경계가 분명한 것이다. 반면 신자유주의적인 사회에서는 자아의 나르시시스트화 경향이 강화되어가기에 이는 타자 침식이 진행되어 결국 타자 소멸로 이어진다고 한다. 나아가 자아 타자 경계가 해체되어 사라지게되면, ‘타자 대한 환상 사라지며, 이는 에로스의 종말 의미한다는 , 그리고 나아가 오늘날 예술과 문학이 직면한 위기의 원인이 된다고 한병철 교수는 역설하고 있다. 따라서 에로스의 종말이란 사태는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병폐라고 진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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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의 관심도서 선정은 공교롭게도 지난 두 가지 큰 사건들을 기억하자는 맥락에서 결정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한국과 일본에서 겪은 아픔을 기억하자는 것. 하나는 다가오는 4 16일이 2주기가 되는 세월호와 관련한 책 한 권, 다른 하나는 이제 지난 3 11 5주기를 맞았던 동일본 지진 이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작업에 관한 책을 선정하였다 

 

 

 

 

 

 

 

 

 

 

 

1.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

서경식, 정주하, 다카하시 데쓰야, 한홍구 외 지음 | 형진의 옮김 | 반비

사진작가 정주하 작가의 후쿠시마 지역에 대한 기록과 서경식 교수, 다카하시 교수의 후쿠시마 지역 답사 이후 비가역적으로 변해버린 일본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특히 원전사고 이후 사람 뿐 아니라 동물마져도 사라져버린 듯 적막한 후쿠시마 지역의 모습을 담은 정주하 작가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스스로를 일본에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로 자처하는 서경식 교수, 그리고 이방인인 정주하 교수 및 한홍구 교수 그리고 여러 일본인 지식인들과의 대담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은 이미 2013년 출판사 반비를 통해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된 <후쿠시마 이후의 삶>의 후편의 성격을 띠고 있다. 아울러 여러 일본 학자와 사상가가 311 대지진으로부터 비롯된 일본 원전 문제이후의 문제에관하여 논의한 <사상으로서의 3∙11> (쓰루미 슌스케 16| 그린비 ) 같이 참조해도 좋을 하다.

 

 

 

 

 

 

 

 

 

 

 

2. <다시 봄이 올 거예요>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세월호사건은 한국사회에 지울 수 없는 큰 트라우마를 안겨준 참사이다. 이 책은 이제 세월호참사 2주기를 앞두고 세월호사건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과 유가족들이 보낸 지난 2년의 시간을 기록한 책이라고 한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이 생존 단원고 학생 및 유가족과 만나 이야기했던 구술의 기록이다. 아프니까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더 아픔을 살피고 어루만지고, 생존자 및 유가족과 함께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 아닐까. 물론 말하기 조심스러우나 작가기록단과 단원고 학생 및 유가족이 만나 사건을 기억하고 희생된 이들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조금은 치유의 역할도 되었을 것 같다. 목련이 활짝피고, 벗꽃이 만개한 봄이 다시 왔다. 활짝 핀 꽃을 보며 살아 있음이 다르게 느껴진다.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를 다시 읽어보게되는 봄이다.

 

 

 

 

 

 

 

 

 

 

 

 

 

 

3. <지미 헨드릭스> ‘새로운 록의 신화를 뮤지션의 자서전

원제 <Starting at Zero: His Own Story> (2013)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 지음 | 최민우 옮김 | 마음산책

 

 

 

 

 

 

 

 

 

 

 

<음반의 역사>

원제 His Masters Voice (2011)

헤르베르트 하프너 지음 | 홍은정 옮김 | 경당

이번엔 예술분야 중에서 그동안 선정하지 않았던 음악분야에 관심을 가져본다. 특히 록이란 음악 장르의 역사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음악인인 지미 헨드릭스가 자서전이 출간되어 주목해본다. 다시 보니 지미 헨드릭스는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을 했다고 하는데, 책은 전기 영화 제작자 피터 닐이라는 사람이 지미 헨드릭스에 관한 자료, 지미 헨드릭스가 직접쓴 글들과 육성을 모았다고 한다. 우리 사회를 떠올려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디딜만한 나이에 요절한 천재 기타리스트의 삶은 분명 우리의 젊은이들과 달랐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독서의 관심영역이 넓어지면서부터, 해가지날수록 나는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점점 관심을 갖게된다. 시간의 무게가 커질 수록 타인의 자취에 관심을 갖게되는 아이러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의 삶이 유한하다는 자각에서 것일까. 타인의 삶을 통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같다.

 지미 헨드릭스의 자서전 아니라 지난 3월에 출간된 음악분야의 도서로 <음반의 역사>도 흥미롭다. 소리를 기록하는 매체의 역사로서 관심을 가진 독자, 오디오에 관심을 가진 독자, 음악을 즐겨듣는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내용인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에디슨의 축음기를 떠올리게되고,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소리기록 매체인 MD(Mini Disc)에 대한 기억도 새롭게 해보게 된다. 만물이 소생하고 생명이 튀어오르는 봄이다. 봄에 어울리는 음악을 다시 찾아 들어봐야 겠다.  

 

 

 

 

 

 

 

 

 

 

 

 

 

3. <내 방 여행하는 법>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위하여

원제 Voyage autour de ma chambre (1796)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지음 | 장석훈 옮김 | 유유

내 방 여행하는 법이라는 제목이 흥미롭다.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이라는 부제가 나를 자극한다. 이 책의 정체가 뭐길래, 알랭 드 보통이 반했다거나 수잔 손택의 추천글이 있는 책일까 궁금해진다. 이 책의 출판년도를 보니 1796년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는 누구였을까가 다시 나의 관심 대상이 된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저자의 정보를 보면 예사롭지 않다. 저자는 평생 직업군인으로 보낸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느 날 결투를 벌이고 42일간 가택연금형을 받은 후, 방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쓴 글이라고 한다. 책의 제목은 <내 방 여행하는 법>인데 목차를 보면 심상치 않다. 의자침대와 같은 제목이 나오다가 대뜸 형이상학, 영혼, 철학 등의 제목이 나온다. 우리가 흔히 여행을 이야기할 때 언급하는 특정 장소 및 소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물신숭배적인 집착이라 볼 수 있다면, 이 책은 인간 개개인이 갖고있는 발견의 능력을 다시 보게끔하는 책이라 보인다. 인간의 능률을 제고하기위해 만들어진 현대의 수많은 이기들은 다시 인간의 삶을 구속하고 분주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항상 어딘가에 연결되어있어 혼자 있을 때 무료함때문에 스스로 못견뎌하기도한다. 아주 오래전 키케로가 <공화정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언급했다는 경구가 생각난다. 겉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는 때는 없으며, 홀로 고독에 빠져 있을 때만큼 덜 외로운 때도 없다. 이 경구를 다시 떠올려보니 왜 알랭 드 보통과 수잔 손탁이 흥미를 가지고 추천글을 쓰고, 많은 이들에게 되풀이 되어 읽혀왔을지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다. 가장 값싸지만, 가장 알차다는 표현이 전하듯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시간을 줄 것같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이 곧 여행의 본질 아니겠는가. 

 

 

 

 

 

 

 

 

 

 

4. <타인의 땅>

이갑철 지음 | 이영준 | 열화당

사진작가 이갑철의 사진집이다. <충돌과 반동>이라는 대표적인 사진집을 통해 큰 충격과 울림을 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열화당에서 그의 새로운 사진집을 선보여 무척 반갑다. 기울어진 프레임, 정면의 응시, 부분적인 신체의 포착, 원시적인 정신세계에 대한 직시의 시선을 보여준 그는 독학을 했다는 독특한 이력으로도 기억에 남는다. 오랜 시간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자신을 온전히 던져 주제를 탐구했던 작가의 사진들이기에 그가 담은 사진 한 장 한 장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미국의 50년 대 말 비트 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는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 <The Americans>는 수많은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준 책이기도하다. 50년 대 말 공군에 복무하던 필립 퍼키스가 이 <The Americans>을 보고 본격적으로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되었듯이, 이갑철 작가에게도 큰 울림을 준 모양이다. 이번 사진집 제목은 타인의 땅인데 사실은 우리의 땅을 담았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밀턴 로고빈(Milton Rogovin)이 그의 사진집 <The Forgotten Ones>에서 잊혀지고 소외된 계층의 가족들을 수십 년에 걸쳐서 담아냈듯이 이갑철 작가도 소외되고 잊혀져가는 사람들과 풍경을 담으려고 노력했을 듯하다. 사진은 글보다 보는 매체이므로 훨씬 자유로운 반면, 또 그만큼 더 모호하기도하다. 이번 이갑철 작가의 사진집은 어떤 시선을 선보였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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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리사 랜들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1 1)에 나오는 오*탈자 수정 권고 및 번역에 관한 메모를 모았다.

사이언스 북스 측에 이 메모들을 전달했지만, 아무런 답을 받지 못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다음 2쇄에서는 오*탈자가 수정되길 바라며, 한편으로는 번역 및 우리말과 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14) 위험(lisk) → risk

 

(62) 상스 상스

 

(591) (후주) 파인만 파인만

 

(164) ‘전기 띠다→ ‘전하 띠다.

 

(165) 전기장 자기장 (?) 

(초전도 전자석을 이용하여 하전입자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자기장만이 할 수 있다. 전기장은 하전입자의 직선 방향으로만 가속시킬 수 있다. 따라서 회전시키는 것은 자기장이 맞을 것이다.)

 

(170) 양전기 양전하

              음전기 음전하

('전하'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고민했었으나 양전기, 음전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문제는 없어 보인다.)

 

 

(202) (그림25) [3]

양성자 싱크로트론(PS)’ 경우 26기가전자볼트라고 나와 있는데, 본문에는 28기가전자볼트라고 나와 있다. 28기가전자볼트가 맞지 않을까한다.

 

(207) (그림26) 초전도 코일 빔가림막 같은 대상을 지시하고. 혹시 빔가림막 빔파이프를 둘러싸는 폐곡선을 가리키는게 아닐지?

 

(260)

오제 실험이 못하리라는 알게 ,’ 

 → ‘ 알게 ,’

 

(280) (페이지 밑에서 네번 )

이런 종류의 논리 과학에서 다루는…’

→ ‘이런 종류의 논리 과학에서 다루는…’

 

 

(280) (페이지 밑에서 두번 )

이익과 위험이 동조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 상태에서 사람들은 누군가 유효한 보증을 주지 않으면 감수하지 것보다 위험을 감수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유혹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문장은 여러 읽어봐도 어딘가 이상한데 좀더 명확하게 다듬는 것이 좋지 않을까?

 

(282)

신중하게 만들어진 적확 질문을 던지지 못하면…’

→ ‘신중하게 만들어진 정확 질문을…’

 

: 사전적으로 적확하다 말은 정확하게 맞아 조금도 틀리지 아니하다.’라고 나와 있다. 표현이 적확하다고 하면 수긍이 가지만, ‘질문 맞다혹은 틀리다라고 있을까? 다시 말하면 질문이라는 단어와 적확한이라는 용어가 서로 어울리게 쓰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282)(밑에서 여섯 )

하지만 이런 이익은 정량화 하기 어렵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일들의 가치를 평가해 내고 확고한 안정성을 만들어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어부와 서술부(때문이다) 호응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298) (밑에서 세번 )

가능성과 함으 폭이 

→ ‘가능성과 함의 폭이

 

(300) (페이지 중간 부분)

계통적 불확실성이 측정의 정확도 좌우하는 반면 통계적 불확실성은 정밀도 영향을 준다.’

 계통적 불확실성 측정 도구 자체의 특징을 반영하므로 정밀도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통계적 불확실성 정밀한 장치로 측정해도 반복측정하게 되면 참값에 값들이 많이 나타날 있는 정확도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본문의 정확도와 정밀도가 서로 바뀐 것은 아닐지 확인이 필요함. 

(362) (주석56) 설명은 362면에 붙어있는 주석의 부분과 내용이 맞지 않는 같다. (주석 56) 오히려 362면의 마지막 단락과 관련되는 같다. 따라서 362면의 마지막 문장에 (주석56) 붙어야 같다.

(388)

모형이라는 용어에서 전시나 사전 쓰이기 위해

→ ‘사전

(393) ( 단락 에서)

‘LHC에너지에서 조사할 있는 가장 작은 거리 스케일에서도, 기초가 되는 이론을 지배하는 규칙이 아주 단순해서, 관계되는 물리 법칙의 영향을 추론하고 계산할 있었으면 좋겠다.’

문장은 뒤의 호응이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문장을 명확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431) (파울리 배타 원리 용어 다음 문장) ‘페르미온의 이러한 성질은 주기율표의 구조를 설명해 주는데, 만약 어떤 양자수에 따라 구분되어 있지 않으면,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서로 다른 궤도로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장의 호응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좀더 명확하게 다듬어졌으면 좋겠다. .

(505) (위에서 번째 )

관측 우주의 역사를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 ‘관측 우주의 역사를…’

 

(513) (밑에서 번째 )

물리학

→ ‘물리학

 

 

(518) (밑에서 여덟 번째 )

암흑 에너지 존재한다고…’

→ ‘암흑 에너지 존재한다고…’

 

(541) (그림79)

그래프의 세로축(잔차?) 어떤 물리량을 의미하는지 의미를 밝혀주었더라면좋았을 것이다.어떤 신호 의미하는 것인지?

 

(551) 예술가 필립 (Philippe Petit)

→ ‘필립 아닐지

최근에는 된소리로 표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같으니 쁘띠라기 보다는 프티 표기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555) 조르주루이 르클레(Georges-Louis Leclerc)

프랑스어에서 단어의 마지막에 c 오는 경우는 발음을 해주는 것이 아니었나? 예를 들면 avec 아베크 같이 읽는 예가 있다.

 

(595) (후주74)

마지막에 닫는 괄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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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1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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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1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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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19-10-15 16:21   좋아요 1 | URL
필독서는 각자의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겠지요. 번역 문화에 관한 이해는 박상익 선생님의 <번역은 반역인가>부터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번역의 탄생>도 많이 거론되는 책이구요. 아직 읽어보진 못했으나, <갈등하는 번역>과 <여백을 번역하라>등도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이 책들에도 몇 권씩 다른 번역관련 서적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하나씩 관심사에 따라 찾아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19-11-05 1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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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눔의 세계> 알베르 카뮈의 여정

카트린 카뮈 지음 |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알베르 카뮈의 카트린 카뮈가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남긴 글이라 한다. 카뮈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아온 가족으로서 딸의 시선에서 아버지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얼핏 보아도 상당히 많은 카뮈의 사진들과 카뮈가 주고 받은 내밀한 서신들이 사진 자료로 보인다. <카뮈-그르니에 서한집 1932~1960> 번역했던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만난다. <서한집>에서는 사제간의 오랜 신뢰와 존경의 모습을 엿볼 있다면, <나눔의 세계>에서는 보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가족의 시선에서 카뮈의 인간적인 면모를 딸의 어께 너머로 엿볼 있을 같다. 책과 <서한집> 겹쳐 읽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2.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자유를 향한 철학적 여정

손기태 지음 | 글항아리

- 출판사의 책소개를 훑어본다. 이미 스피노자에 관한 수십 권이 나와있을 터인데도 내가 관심을 더욱 가지게 구절은 저자는 오로지 스피노자를 읽는다 행위 자체에 집중하며…’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엄격한 유대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드물게 의심하는 자유 누린 사람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고향과 본인이 소속된 유대교로부터 거부당한 이단아로서 스피노자의 삶은 절대 평범해보이지 않는다. 책은 스피노자의 어려운 철학을 해설하기보다는 철학자의 삶을 따라가며 그러한 철학이 잉태된배경을 조명하고 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에 상당히 궁금했다. 과연 스피노자란 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린 스피노자가 어떤 절대성 의심할 있도록 만든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을 만났을까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혹은 어느 수도원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사람들에게 읽히고 근대의 시작을 견인했다는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같은 책을 만났던 것은 아닐까. 고난스러웠던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 스피노자의 운명애 어떤 모습일지 책에서 고스란히 엿볼 있을 것같다.

 

 

 

 

 

 

 

 

 

 

 

 

 

3. <미래의 나라, 브라질>

(원제 Brasilien: Ein Land der Zukunft)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김창민 옮김 | 후마니타스

- 슈테판 츠바이크란 사람은 그가 저작만 보더라도 매우 독특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항상 받게 된다. 특히나 그토록 다양한 위인들(발자크, 에라스무스, 몽테뉴, 톨스토이, 마리 앙투아네트 ) 대한 평전시리즈를 엿보게 되면 사람의 폭넓은 관심과 호기심을 느끼곤 한다. 20세기 초반 인류가 경험했던 가장 암울한 세계 대전을 몸으로 겪은 인물이 어떻게 남아메리카로 닿게 되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나치 하에서 일하던 독일 장교들이 바티칸의 공공연한 도움을 받아 남아메리카로 도피를 했던 사실들을 떠올려보면, 나치에 쫒겨 브라질에 당도한 츠바이크가 들과 어울려 사는 모습은 어떠했을지도 자뭇 궁금하다. 아마도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와 닮은 구석이 있을 것이다.

   책은 완전히 새로운 , 낯선 곳에 정착하게 츠바이크가 절망을 느꼈던 유럽과 달리 브라질에서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고 희망을 느끼게 되었는지, 이방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브라질의 모습이 닮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볍고 원자화된 정보가 넘쳐나는 브라질에 대한 여행책들과는 달리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명이라 불리는 츠바이크가 소개하는 브라질의 모습에 기대가 된다.

 

 

[과학]

 

 

 

 

 

 

 

 

 

 

 

4.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중력파를 찾는 LIGO 인류의 아름다운 도전과 열정의 기록

오정근 지음 | 동아시아

- 지난 12 과학계는 하나의 놀라운 결과를 발표하였다.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중력파검출에 관한 기사였다. 지난 인문분야의 신간 평가 도서였던 리사 랜들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에서도 잠시 언급되었지만, 아인슈타인이 남긴 여러 유산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닿아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론에서 예견된 중력파의 존재가 지금까지 발견되지 못한 것은 분명히 실험으로 관찰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매우 힘든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주가 보내오는 미약한 신호를 포착해낼 있을 정도로 정밀한 관찰 도구를 만들어내기 까지 과학자들은 오랜 시간을 노력했다고 있겠다.

   우리 일반인들은 이런 기사가 나오면 사실 피부에 닿지 않는다. 가끔씩 이러한 실험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궁금해지긴 한다. 중력파의 발견과 검출이 가지는 의의를 일반 상대론과 블랙홀을 전공한 국내 물리학자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우주의 통찰>

 ‘위대한 석학 21인이 말하는 우주의 기원과 미래, 그리고 남겨진 난제들  

(원제 The Inflationary Universe: Quest for a New Theory of Cosmic Origins (1998) )

앨런 구스 지음 | 브록만 엮음 | 김성훈 옮김 | 이명현 감수 | 와이즈베리

- 우리가 흔히 빅뱅이론으로 알고 있는 팽창하는 우주중에서도 MIT교수 앨런 구스가 제안한 이론을 급팽창이론이라고 한다. 책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우주가 매우 빠르게팽창함으로써 우주가 불균질하게되었다는 것이 요점이다. 이는 매우 거칠게 비유하자면 화산에서 용암이 튀어나와 매우 급하게 식을 암석의 입자가 불균일하고 작은 입자로 굳어지는 점과 비교해볼 있을 같다. 매우 천천히 식는다면 암석 내부는 보다 안정적인 결정의 형태를 띠게 것이다. 리사 랜들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에서도 우주론을 다루는 부분에 연구실에 있던 앨런 구스 교수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있다. 리사 랜들 또한 책의 21명의 저자로서 본인의 대표 연구인 브레인() 이론에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지난 2 중력파의 발견으로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우주의 실체, 나아가 우주의 기원에 대해 좀더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있을 것이다.

 

 

 

 

 

 

 

 

 

 

 

 

 

5. <마르크스의 『자본』 탄생의 역사>

마르크스 40 경제 이론 작업의 전모를 밝히다

비탈리 비고츠키 (지은이) | 강신준 (옮긴이) | | 2016-02-22 

- 많은 독서인들이 언젠가 번은 만나게 되는 중의 하나가 마르크스의 저작들이다. 단순히 경제의 원론적인 지식만이 아니라 사람의 삶과 관련한 보다 내밀한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이 조명되고 있다. 서구에서는 이미 일찍부터 그래왔듯이, 우리 사회도 앞으로는 더욱 이런 방향으로 활성화될 것이다. 말하자면 이미 고전으로 받아들여지는(익히 이름은 알려져있으나 아무도 읽지 않은) 책들의 저자들. 이들이 그러한 성취를 이루어낼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고, 어떤 배경에서 자라왔으며, 누구와 만났을까 하는 그런 점들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결국 인간이란 언제나 앞선 인류가 겹겹이 쌓아온 역사의 최종 산물이며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슈테판 츠바이크처럼 자신의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끊임없이 옮겨다니고, 새로운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새로운 사회를 관찰해온 사람이라 있다. 낯선 곳에서 우리의 무의식은 더욱 활발히 기존의 익숙한 삶의 패턴과 비교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책은 흔히 <자본론>으로 알려져있는 그의 두터운 3권짜리 저서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포괄적으로 알려주고있다. 출판사가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아직 국내에 마르크스 저작 전집(114) 완역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게된다. 아직 마르크스 사상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  동아대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 총서 시리즈의 권으로서 앞으로 계속 나오게 마르크스 관련 저작들에  기대를 해본다.

 

 

 

 

 

 

6.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개정판]

(원제 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 반성완, 백낙청, 염무웅 옮김 | 창비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올해 국내에 소개 된지 5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전세계 뿐만 아니라 국내의 수많은 지성인들에게 예술사회학의 고전이 되어왔다는 반증이겠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거나 예술과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언젠가 한번쯤 만나게 되고 도전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책을 읽지 못하고 발췌해서 읽어보긴 했는데, 예컨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읽으면서 기사도에 관한 기사도의 패배부분을 읽으며 작품의 이해를 높이는 방식으로 겹쳐읽기를 해본 적이 있다. 나처럼 끈기가 부족한 독자에게는 번에 도전하기보다, 생활하면서 언제든 찾아와 살펴보고 관련된 내용을 찾아 읽고하는 그런 책이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이 필요없다.  새로 개정된 이번에 장만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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