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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다시 만나게 된 사진가 필립 퍼키스의 글들.

 

"사진은 그야말로 삶의 방식 그 자체 입니다.

대상에 반응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처럼

우린 항상 무언가에 반응합니다.

그러므로 사진이란 반응하는 법을 배우는 매체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사진가이므로 삶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우린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진정으로 삶이 경이롭기 때문이지요."

 

<필립 퍼키스와의 대화>, 박태희 옮김, 안목출판 (81면)

 

 

- 나는 내 삶에서 무언가 대단한 것을 가지거나 이루었다는 성취감은 없다. 막연한 인생이다. 언젠가 내 일기장에 적어둔 문장이 있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나름대로 힘겹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힘든 일인 것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처럼." 하지만 오랜 '어둠의 터널'을 지나 새롭게 눈을 뜨게 된 '순간'은 있다. 삶의 순간 순간 나는 삶이란 것이 '기적'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조금 다른 눈으로 나의 일상의 풍경을 바라본다면 정말이지 나와 같은 무미건조한 인생경력으로도 삶 속에서 '기적'의 순간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생각은 응당 나만의 것이 아니라, 이미 역사적으로 오래동안 수많은 '소수'의 사람들이 찾아낸 공공연한 비밀인 것이다. 아마도 내가 '기적'의 순간들을 발견하기 시작한 일은 사진에 관심을 가진 이후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는 시를 비롯한 문학작품을 읽으며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도 있겠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시각을 찾을 수 있겠다. 그 계기가 나에게는 '사진'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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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매일 일하라

 

(레프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 86면)

 

 

우리는 매일 일해야 한다.

그것도 늘 힘들게 일해야 한다.

차이점이라면 무슨 일을 하는가에 있다.

 

 

하루의 힘든 일을 마치고 쉬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순수한 기쁨이다.

 

 

무슨 물건이든 사용할 때에는

그것이 누군가의 힘든 노동이

낳은 결실임을 기억하라.

그것을 망가뜨리거나 쓰레기통에 던진다면

그것은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지옥은 즐거움 뒤에 숨어 있고

천국은 노동과 고통 뒤에 숨어 있다.

 

 

- 톨스토이는 육체노동을 매우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 매일 매일 그것도 힘들게 일하라고 말하는데, 톨스토이는 두 손으로 일하는 목수나 요리사를 만나면 부끄럽다라고 하기도 했다. 매일 매일 힘든 일을 마치고 누리는 휴식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기쁨이라고 단언한다. 나는 이 글에서 매일 매일의 노동이 중요하다는 말보다 사물에대한 태도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 주목을 하게된다. 내가 쓰고있는 물건은 누군가가 힘들게 일한 결과임을 기억하는 것이 이 물건을 만든이에대해 그리고 이를 사용하는 나의 노동에대해 존중하는 태도라고 일깨워주는 것이다. 이를 경물(敬物)하기라 할 수 있다면, 이와 관련하여 떠오르는 시가 있다. 박노해 시인의 시 경운기를 보내며이다.

 

 

 

경운기를 보내며

 

11월의 저문 녘에

낡아빠진 경운기 앞에 돗자리를 깔고

우리 동네 김씨가 절을 하고 계신다

밭에서 딴 사과 네 알 감 다섯개

막걸리와 고추 장아찌 한 그릇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무릎 꿇듯 큰 절을 하신다

나도 따라 절을 하고 막걸리를 마신다

 

 

23년을 고쳐 써온 경운기 한 대

 

 

야가 그 긴 세월 열세 마지기 논밭을 다 갈고

그 많은 짐을 싣고 나랑 같이 늙어왔네 그려

덕분에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고

고맙네 먼저 가소 고생 많이 하셨네

김씨는 경운기에 막걸리 한 잔을 따라준 뒤

폐차장을 향해서 붉은 노을 속으로 떠나간다

 

 

경물敬物할 줄 모르는 자는

경천敬天도 경인敬人도 할 줄 모른다는 듯

물건에 대한 예의가 없는 세상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가 남아 있을 리 없어

 

 

사람을 쓰고 버릴 때 어떻게 하더냐고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아픔도 없이

돈만 알고 경쟁력과 효율성만 외치는 자들은

이미 그 영혼이 폐기처분된 지 오래라는 듯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393)

 

 

- 시는 지금과 같은 11월의 어느 날 농부인 김씨가 23년간 함께해온 경운기를 폐기처분하기 전 경운기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장면이다. 나는 시를 잘 감상할줄 모르겠지만,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이 시는 우리가 잃어버린 여러 가치를 보여준다. 자신이 오래 써온 물건에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김씨는 성실한 노동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3번 째 연의 김씨의 말로 보이는 부분을 읽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평생 함께해온 배우자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부부의 모습처럼 숙연해지게 만드는 부분이다. 톨스토이가 말한대로 김씨의 경물하는 태도는 곧 자신의 노동과 경운기를 만든 누군가의 노동에 대한 크고 깊은 존중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물건에대해 이러한 존중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타인에대한 자세를 의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신자유주의 경제학(시카고 경제학파가 중심이된)의 핵심 인물인 밀턴 프리드만의 영향이 전 세계적으로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현재, 나는 이들이 주장한 경제이론들이 지닌 가장 크고 중대한 결함은 여기에서 인간에대한 가치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순수한 상태로의 방임, 무역장벽 철폐 등등의 구호 속에서 이들의 수익성효율성제고를 위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경쟁상대로 몰아가고있는 모습밖에 찾아볼 수가 없다. 평생직장이 이제는 사라진 것도 결국은 인간 자체를 또 하나의 상품으로 보기에 인간을 쓰고 버리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대기업에 취직하기위해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4년동안 긴장한 상태로 취업준비생이 되고,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이라는 기준에 우리는 스스로를 상품화하여 우리를 최적화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그리고는 극소수의 직원을 제외한 대부분이 40대 중반에 권고사직을 통보받기 전까지 죽어라 일하고 받은 월급은 빚갚느라 털린다. 이게 우리의 삶이 되어버렸다. 톨스토이의 글을 읽다, 시를 떠올리고 다시 삼천포로 빠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이라는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 쌀쌀해진 11월의 마지막 주말 아침, 사람의 온기를 더 많이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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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톨스토이 지음 (42)

고통과 실패에서 배우다

 

 

인간에게는 고통과 병이 필요하다.

인간은 고통을 이해하면서

육체가 일시적인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통과 실패가 없다면 기쁨, 행복, 성공을

무엇과 비교하겠는가.

 

인간은 작은 문제들로 균형을 잃는다.

반대로 커다란 문제는

인간을 영혼의 삶으로 인도한다.

 

 

 

-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는 톨스토이가 말년에 소설쓰기를 그만두고 명상을 하며 써낸 모음집이라고 한다. 항생제가 없던 톨스토이의 시대에 그 자신도 폐렴과 장티푸스로 몇 달 간 사경을 헤맨경험이 있다고 하지만, ‘인간에게 고통과 병이 필요하다’는 말은 가족 중에 누군가 큰 병을 겪고 떠나 보낸 사람이나 암과 같은 큰 병을 선고 받은 사람의 가족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게 다가온다. 내 친구, 친구의 부모님 중에 암으로 고통받고 우리를 떠난 사람이 있기에 톨스토이의 말에 수긍은 하지만 내 가슴으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을 간호하느라 병원에서 몇 달이라도 지내본 사람들은 무상함을 많이 느끼게 된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아프구나 하는 사실을 환기할 때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곤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우리는 너무나 사소한 것들에 큰 의미부여를 하고있다라고 사람들은 말하기도 한다. 이 사소한 것들에 우리 삶의 여정이 잠시 빗나가거나 흔들리기도한다. 하지만 한 개인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알았음을 알게된다면, 사소한 문제들은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진실로 영혼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할 것이다. 친구의 부모님이 큰 병을 진단 받은 날,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쿵’하는 충격을 받았다. 거대한 자연불변의 법칙 앞에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겸손해짐을 느낀다. 아울러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라고 썼던 나짐 히크메트의 말을 주문처럼 중얼거리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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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기를 권함>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송태욱 옮김, 샨티, 2003, 118-119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114)

월요일 아침

  월요일 아침, 새 책을 펼친다. 통근 전철 안이다. 새 책은 월요일 아침에 가장 잘 어울린다. 책 속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있고 새로운 풍경이 있다. 지금까지 몰랐던 관계성의 세계가 있다. 그 한 권의 책은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도 읽고, 집에 돌아가 내 방 안에서도 읽고, 그렇게 해서 주말까지는 다 읽는다. 다시 말해 내 독서는 주 단위이다. 일주일에 한 권, 따라서 한 달에 네다섯 권 정도를 읽게 된다.

   특별히 일주일에 한 권 읽기로 정해 놓은 것은 아니다. 하루에 세 번 식사하는 것이 딱 정해진 일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간이 돌고 돌아 아침에서 낮으로, 다시 어스름한 저녁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한 권의 책을 새로운 주가 시작될 때 읽기 시작하여 요일이 돌아 한 주가 끝나는 지점에 다 읽는 것이 내 생활에 익숙해져 있을 뿐이다. 정말 그뿐이다.

   읽는 양과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표준적인 척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다독가들의 독서량에서 보면 일주일에 한 권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터이다. 스기우라 민페이는 나이가 들고 병 등으로 체력이 쇠약해져서, 결국 한 달에 1만쪽, 즉 권수로 해서 평균 34-35권 내지 38-39을 단념하고 새로이 한 달에 열 권 이상이라는 할당량을 정했다. 이제 곧 일흔 살이 되어갈 무렵의 일이었다. 이것과 비교해 보아도 내 분량은 그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나 일주일에 몇 권, 한 달에 몇 권, 일 년에 몇 권 읽으면 표준이고 그 이상은 다독, 그 이하는 과독(寡讀)에 해당한다는 말도 아니다. 누구나 자기 생활에 고유한 시간의 사이클이 있게 마련이다. 생활의 시간 사이클에 의해 책을 읽는 방법은 저절로 형태를 갖추게 된다. 생활보다 먼저 독서가 있고 생활이 그 뒤를 좇아가는 것이 아니다.

   엔도 류키치는 생활의 어떤 일보다 독서를 우선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엔도 류키치는 자신의 저서인 <독서법>밤에서 아침으로 걸치자라고 쓰고 있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자려고 할 때는 베개 위에 책을 놓고서 그 펼친 쪽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좋다. 전등을 끄고 책을 덮었다면 그 책에 대해 생각하자. 이내 졸음이 와 잠이 들고 말지만,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곧바로 그 책을 다시 펼쳐 읽자. 그것이 밤에서 아침으로 걸치자의 의미이다.

 

 

 

 

나는 여기에 발췌한 부분에서 새 책은 월요일 아침에 가장 잘 어울린다.라는 대목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새 책을 들고 첫 장을 읽어 나갈 때의 설레임은 발걸음이 무거운 월요일의 출근길에 새로운 활력을 준다. 새 책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는 박민규 작가의 유머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유머(진지하고 점잖아 보이는 글 속에 반전이 있는 유머)가 담긴 문장을 만나면 출근길이 더 즐겁다. 나 혼자 킥킥 거리며 가기도 한다. 어려운 책보다도 바로 이런 글들을 만날 것 같은 기대감이 월요일 아침을 즐겁게 해주는 존재가 아닐까.

   나는 작년에 거의 매일 야근을 하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지하철에서 책을 많이 보게 된 것 같다. 버스 안은 대개 불빛이 어둡고, 이리저리 많이 흔들리므로 버스 안에서 무언가를 읽으면 멀미가 난다. 하지만 지하철 안은 밝고, 적어도 나에게는 책을 읽을 때 멀미가 나지 않아 나에게 잠깐 짬을 내어 책을 읽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적어도 혼자 다닐 때에는) 지하철을 주로 이용한다. 그리하여 지하철에서 주로 책읽기를 하여 작년에 80권정도의 책을 읽은 것 같다. 물론 간단한 그림책, 사진책을 제외해도 나름 진지한 주제의 책들을 50권은 넘게 읽은 셈이다. 작년에는 태어나서 처음 1년에 20권 넘게 읽은 셈이다! 야마무라 오사무도 장석주 시인도 지적하듯이 자투리시간을 잘만 활용해도 일년에 50권은 읽을 수 있다는 말은 내 경험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읽은 책의 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젊은 시절부터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해온 장석주 시인처럼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매일 2~3권의 책을 읽을 재간은 없다. 나에게 맞는 독서 스타일은 그저 꾸준하게 읽고, 의미를 곱씹어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이 될 것이다. 책에 메모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 주로 스마트폰을 꺼내 페이지와 주목할 부분을 간단히 메모하거나, 그 때 문든 떠오른 생각들을 잊지않기위해 메모한다. 그 외에는 주욱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혹은 책의 성격에따라 지하철에서 집중이 안되거나 이해가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경우에는 잠시 책을 덮고, 눈을 쉬거나 이해가 잘 안되었던 부분에대해 생각을 하곤한다. 책을 덮고 스마트폰을 하지 않은 경우, 지하철에서는 옆 사람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는 줄 알고 나를 처다보는 경우가 많아 민망하다. 그러면 나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거나, 어떤 광고에 시선을 고정시킨채 딴 생각을 하곤 한다.

   참고로 나는 일본 지식인들의 어떤 방법, 기술들을 얘기하는 부분은 좀더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읽는다. 이들은 각자 개인이 선택하여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여기에 오래동안 천착해왔기때문에 나에게 잘 맞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이들이 권하는 어떤 방법(혹은 여기에 나오는 독서술마져도)이 나에게 적절하지 않은이상, 나에게는 잘 맞지 않는 옷처럼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의 편견인지도 모르나, 일본 지식인들의 경우 나에게 적용할만한 범위가 매우 제한되어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좀더 비판적으로 이들의 조언을 살펴보되 나에게 맞는 방법을 따로 찾아보려는 경향이 있다.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읽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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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중에서

레프 톨스토이 지음

'손님' (23면)

 

 

우리가 가진 생각은 손님과 같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손님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나쁜 생각을 몰아내고

좋은 생각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힘은 생각에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많은 악이 사라질 것이다.

 

감정은 의지와 상관없이 생겨난다.

하지만 생각은 그 감정을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진 생각이

모든 거의 핵심이다.

 

 

 

- 여기서는 두 가지를 생각해보았다. 생각의 힘감정이라는 것. 우선 우리의 힘이 생각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많은 악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 말에서 한나 아렌트가 기록하고 평한 아이히만의 재판을 떠올린다. 히틀러 밑에서 그의 명령을 충직하게 실행에 옮긴 아이히만은 결국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주범이 되었다. 아렌트는 평범한 악의 실체인 아이히만에게 생각하지않은 죄를 묻는다. 우리를 둘러싼 많은 조건, 사물, 지식들은 가치 중립적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우리가 소망하는 인문적 교양이라는 것도 인간이라는 가치가 우선적으로 놓여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지능적이고 교활환 착취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가치가 우선하여 생각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한편 감정이라는 것은 외부의 상황이나 자극에대하여 우리의 신체가 반응하는 것처럼 때에따라서는 나의 의지감정을 분리시켜 바라볼 줄 알아야할 것 같다. 곧 나의 감정은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일어난 어떤 감정, 예컨대 분노, 공포, 우울함의 감정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겨나므로 나 스스로 이를 바라보고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 되겠다.

    육체의 자유가 아니더라도 독립적인 존재로서 우리의 생각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은 익숙한 대상에 대해, 기본의 권위에 의문을 던져보는 일이 자유로운 인간으로되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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