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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에 관련한 글이 나의 주목을 끌게 된 계기가 있다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처음 읽었을 때이다. 쿤데라는 소설에서 '미녀의 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키치'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사전을 찾아봐도 이 키치라는 단어를 명확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답답해하던 중에 마침 어느 저자의 강연을 듣는 와중에 '키치'라는 용어를 언급한 시점부터 어느 정도 그 의미가 와닿았다.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니, 다시 쿤데라의 경우로 돌아가 곰곰히 되새겨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미녀의 똥'을 언급하는 것은 쿤데라가 '키치스러운 모든 것'에 대한 혐오를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랄까. '미녀는 화장실도 안가고 이슬만 먹고 살 것 같다'라고 하는 소름돋는 멘트도 키치의 전형적인 멘트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미녀의 똥'은 이를 단박에 깨버리는 쿤데라의 도끼였던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분위기가 보다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작가가 있다. 쿤데라처럼 나에게는 제프 다이어(Geoff Dyer)도 그러한 사람이다. 사실 글을 쓰는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겠지만, 특히나 제프 다이어의 경우에는 '키치'에 대한 거부반응이 느껴지는 작가이다.

20대 젊은이들의 객기에 가까운, 때로는 유치해보이는 사랑의 단면을 보여준 그의 소설 <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에도 '미녀의 똥'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 화장실에서 나오는 니콜과 마주쳤다.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는 모습이 조금은 당혹해하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들어와 문을 잠그며 알렉스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화장실 안에 똥 냄새가 가득했다. 그녀의 똥도 남자들의 똥과 마찬가지로 안 좋은 냄새가 나는 게 당연하겠지만, 이런 환경에서는 - 환하게 빛나는 거울과 호텔에서처럼 깨끗한 수건이 준비된 고급 화장실이었다 - 그 냄새가 오일과 로션의 딸기 향과 섞여 있어서, 게다가 오줌을 누면서 내려다본 변기에 니콜의 배설물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여성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쁘지 않은, 거의 이국적이라고 할 수 있을 느낌이었다."

(187-188면)

 

물론 소설의 전개과정에서 전혀 중요하지도 않을 수 있는 이런 부분에 관해 엉뚱한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은 소재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작가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 혹은 태도에 대한 흥미로운 공통점을 보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작가의 사랑에 대한 철학을 드러내는 두 소설에서 '똥'에 대한 유사한 태도를 발견하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일 수 있다는 점이다. 뭐 싱겁지만 전혀 쓸모없는 생각도 해보는 것 그게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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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서점에서 눈에 띈 책
스스로 존재가치가 없음을 `예언`한 책으로 인정하겠다.
이 글도 사실 순실여사가 검토해줬을까.
이 책이 팔릴 것이란 기대로 구입한 책방도 안타깝다.

가수 조영남의 cheating사건 이후 중고 서점에 조영남이 쓴 책이 매물로 많이 나온 기억이 난다. 이번에도 중고서점에서 박 대통령이 `썼다는` 혹은 대통령에 관한 책들이 많이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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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온 똥에 대한 사색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소란> 송찬호 시인의 <산토끼 >이라는 시로부터 출발한 꼭지 하나가 있다. 시인에게 똥이란 나의 일부였으며 방금 전까지 나와 깊이 연루되어 숨쉬던, 뜨끈뜨근하고 (어쩌면) 아직도 살아 있는 존재이자 사건이다라고 하였다. 시인에게 똥은 싸는 아닌 두고 오는 이란다. 나아가 두고 오는 가해자의 입장이고, 당하는 똥의 입장에서 똥은 홀로 남겨진, 버려진 존재라고 바라본다. 따라서 똥을 두고  오는 사건은 시인에게 일종의 이별로서 다가가는 모양이다. 나아가 똥을 누는 것은 칼로 베어내듯 단호한 이별이 아니라, 몸에서 자연스럽게 이탈하는 이별인 것이다. 똥울 두고 오는사건은 친절했던 엉덩이들의 개체가 맞이하는 타자화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송찬호 시인의 <산토끼 > 읽어보면 신기하게도 읽힌다.’

토끼가 똥을

누고 후에

혼자 남은 산토끼 똥은

까만 눈을

말똥말똥 하게 뜨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지금 토끼는

어느 산을 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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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면)

"'바라보다'함은 시선을 떼지 않고, 공들여 바로 본다는 것이니까.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하고 한 곳을 선택한다는 뜻이며, 눈과 마음과 몸이 합작하여

(대상을) 바라 (대상을) 보는 일이다."

 

그리하여 박연준 시인은 그를 '자주 바라보았'노라 고백한다.

 

(44면)

"그를 생각하는 일을 '손톱 걸음'이라고 불렀다. 손끝이 눈을 시켜, 생각을 걷게 하는 일이니까."

 

시인은 또 한 명의 시인인 '그'에 대해 좋은 것을 질투나게도 구구절절 이야기한다.

도대체... 시인은 '그를' 얼마나 바라보고 사랑했기에

이렇게 그에 대해 좋은 것을 술술 이야기할수 있을까싶다.

 

또 시인은 그를 생각하며 손톱 걸음을 걸을 때면, 모래알처럼 쏟아지고 싶다라고 표현한다.

물에 젖게되면 무거워지는 모래알 처럼, 한 사람을 생각할 때 모래알만큼 무거워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45면)

 

'손톱 걸음'을 걸으며 시인이 지은 시는 그야말로 타작을 거친 알곡만 모아놓은 소쿠리 같은 시이다.

 

(46면)

'한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그의 육체와 정신, 영혼뿐 아니라

장점과 강점, 눈부심이나 의협심뿐 아니라

 

비겁함과 비루함

어두운 미래와 헝클어진 과거,

때와 땀과 똥을

 

똑같이!

사랑하는 일이란다.

 

바다가 뒤척이는 것은 바다가 덜 무겁기 때문

사랑이 뒤척이는 것은 사랑이 덜 무겁기 때문'

 

 

 

그리고 이어 시인은 '나는 자주 그를, 바라보았다.'라고 되뇌인다.

이 과거형의 문장은 내겐 미래형이자 다짐으로 보인다.

 

이 시에서 '남자'를 '여자'로 바꾸면 나에게 그대로 해당될 수 있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대상을 보다 면밀히 그리고 공들여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내겐 꽤 인상적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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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부부'라는 제목의 (10년도 더 된)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고 김정흠 교수의 에피소드를 본 기억이 난다. 고 김정흠 교수는 해외 유학 1세대에 속하는 물리학자로서 한국전쟁 당시 국내 물리학계를 일으켜 세운 분이다. 다큐멘터리 방영 당시 사모님은 10년 넘게 '식물인간'과 같은상태로 집에 누워계셨던 모양이었다. 내가 십 수년도 지난 이 프로그램의 장면을 기억하는 것은 김정흠 교수의 매일 매일의 일과 때문이었다. 그는 매일 출근 할 때, 그리고 퇴근 하고 나서 항상 부인의 사진을 하루도 빠짐없이 담으셨다. 언어로 의사 소통도 안되고, 본인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부인 앞에서 매일 부인의 사진을 찍고, 때로는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고 기사를 매일 읽어주셨던 모양이었다. 부인이 언젠가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나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서 알려주고 있노라 말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울러 부인의 사진을 찍는 이유를 담당 PD가 물어보자, 김정흠 교수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부인의 사진을 매일 찍는 이유는 평소에는 부인을 제대로 보지않기 쉬운데, 사진을 찍게 되면 부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있다."

 

결국은 부인의 사진을 매일 찍었던 고 김정흠 교수의 일과는 박연준 시인의 '손톱 걸음'과 '바라보기'와 결국 같은 행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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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우산 (양장) 보림 창작 그림책
류재수 지음, 신동일 작곡 / 보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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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음악에 무지한 내가 그림책을... 그것도 중년이 되어 샀다. CD음악이 길었다면 듣고는 분명 졸았을텐데, 짧으니 아쉬워서 여러 번 듣게된다. 반복해서 들으니 노란 우산을 든 아이가 마치 내 조카 모습같고, 비오는 날의 등교길을 엿보듯 정겹다.

큰 가방을 메고, 노란 장화를 신고 등교길에 만나는 친구들과 도란 도란 이야기하는 모습. 냇가에 떨어지는 비와 이들이 만드는 수면 위의 물결 무늬를 보느라 정신없이 한눈을 팔다가도 이내 친구들과 허겁지겁 횡단보도를 걷는다. 아이들은 곧 계단을 총총 걸어 내려가는 듯 통통거리는 피아노 소리에 맟추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듯하다. 자꾸 들으니 이내 다시 내가 어렸을 때 우산을 들고 등교길에 보던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우리가 흔히 아동을 위한 동화책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음을 열고 보면 행복해지는 그런 그림책이란 바로 이런 그림책이 아닐까. 아내와 싸우고 몇일간 냉전 상태였는데, 그림을 좋아하는 아내 앞에 이 책을 불쑥 내밀고 (서먹한 상태에서) 음악을 같이 들었다. 그리고 화해했다. ^^;; 이 책에는 아무런 텍스트가 없다. 때로는 사람사이의 관계도 말이 필요없이 마음만이라도 교감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 사람이 있어 참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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