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젠가부터 과거의 특정한 날에 있었던 사건 혹은 

특정 인물이 겪었을 사건들에 대해 알게 되면,

이것 저것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고 멍때리곤한다.

아마도 모든 고민의 근원은 우리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일 것 같다. 모든 예술의 전제 조건 또한 필멸의 삶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우연한 기회에 어제는 미국의 작가 토니 모리슨의 2주기가 되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1931.02.18-2019.08.05) 


<칼라 퍼플>, <빌러비드>, <솔로몬의 노래>, <재즈>, <술라>, <자비>,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 <누가 승자일까요?>, <얄미운 사람들에 관한 책>, 그리고 가장 최근에 출간된 산문집 <보이지 않는 잉크>까지.... 자신의 입장과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 인종차별/젠더 갈등에 관한 문제 제기 등을 글로 보여준 흑인 문학의 거장이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서양의 백인들로부터 오랫동안 인종차별을 받아온 흑인들의 

예기치 못한 심리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인종차별을 그토록 받아왔으면서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분노를 아시아인에게 분출하는 

일부 흑인들의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까하는 것들.... 


또 미국에서 흑인이 아시아인의 물건 혹은 돈을 훔쳤을 때,

신고하려는 사람에게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는 백인들의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참고 기사: https://news.v.daum.net/v/20210806105602103)

 

그들 역시 희생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조리한 일에 가담하는

가해자가 되는 상황 역시 상처받고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은 이들에게

보이는 패턴인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이들을 비난하기 전에

이 상황에 대해서 보다 면밀히 들여다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2] 

76년 전 오늘(2021.08.06)이 76년 전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일본 도쿄에서 하계 올림픽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 상황에서 일본인들에게 오늘은 어떻게 다가올까 궁금해진다. 그 와중에 대통령 선거에 나오겠다고 하는 어느 후보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적이 없으며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나라 전체를 경악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제는 소름끼칠 정도다. 


몇 년 전에 회사 외부 미팅을 나가 상대 중소기업 회사의 임원과 면담을 한 기억이 있다. 대화를 나누다가 어떤 계기인지 모르겠으나 그 사람은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지 않았어야 더 잘 살았을 거다'라는 말을 해서, 태극기 부대 집회에 열심히 나가고 아침마다 '일베' 사이트에서 놀곤 하시던 울 회사 부사장이 놀라셨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니 그 말은 좀 심한거 아니요? 허허...' 아직은 내가 사람들에 대해, 현실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내가 계속 공부해야할 이유가 된다. 앎으로 인해 내가 좀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말이다. 


아무튼 76년 전 오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기록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페이퍼로 끄적였던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에 까지 생각이 미쳤다. 주중에는 책 읽을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아 중단했던 <파친코>읽기를 오늘부터 다시 해보려한다. 주말에는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사람들의 작품을 읽고 사람들과 이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면서 배우는 것은 모든 이들이 태어나 소멸한다는 것일테고,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하는 데까지 생각이 나아간다. 백신의 과학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상황이다. 백신을 맞고 멀쩡하던 내가 다음 주에는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유서 같은 것을 써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매년 유서를 새로 쓴다고 하는데, 나도 그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백신 때문만이 아니라, 불시에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이란 대상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를 잠시 생각해보곤 한다. 


[3] 

딴 생각을 하고 멍 때리다가 문득 어디선가 봤던 문장을 찾아보려고 

여기 저기 책을 뒤적였다. 제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이었던 '맨해튼 계획'을 지휘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1945년 7월 16일, '트리티티 테스트'라고 알려진 원자 폭탄 실험 광경을 보고 인용했다는 문장이다.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Bhagavad Gita>


'이제 나는 세상의 파괴자, 죽음이 되었도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일본에 원자 폭탄이 떨어지고 그 피해 상황을 알게 된 오펜하이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어떤 이유에선지 이번에는 원자력을 이용한 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강연과 운동을 벌였다. 반공주의자들의 눈에 좋게 보일리가 없었다. 50년대 초에 미국을 휩쓸었던 공산주의자 색출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그는 하원 청문회에 불려가 증언해야 했다. 이 때 맨하탄 계획에 함께 했던 동료 에드워드 텔러라는 헝가리 출신의 물리학자가 오펜하이머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했다. 말하자면 동료를 배신하는 행위를 한 셈인데, 이후 오펜하이머는 비밀인가 취급 허가를 박탈당하고 그의 인생은 말그대로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대신 에드워드 텔러는 영전하여 맨하탄 계획 이후 폭발력이 훨씬 강한 '수소 폭탄' 계획을 지휘하게 된다. 그가 '수소 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일 테다. 권력과 명성을 얻은 그 였지만 동료들을 배신한 대가는 과학계의 냉대였다. 이런 사람은 어디에나 반드시 있다.  



 


[4]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나는 잡생각의 왕이다.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Little Boy)이 하나 떨어졌고,

다시 미국은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Fat Man)을 하나 더 떨어뜨린다. 그런데 두 원자 폭탄이 종류가 다르다는 걸 방금 알았다. 

히로시마에 떨어 졌던 원자 폭탄(Little Boy)는 '농축 우라늄'을 사용한 건배럴 방식(포신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길이 방향의 두 방사성 물질을 강제로 합치는 방식으로 임계질량에 도달하게 하여 '연쇄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반면, 나가사키에 떨어뜨렸던 원자 폭탄(Fat Man)은 '플루토늄239'를 사용했는데, 인플로젼 방식(내폭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길이형으로 방사성 물질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플루토늄이 들어 있는 구형 질량 외부에서 '느린 폭발'을 일으키면, 이 압력이 내부에 있는 플루토늄을 구의 중심 방향으로 수축시켜서 임계질량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이 방식을 개발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양자 물리학 이론 개발에 기여하기도 했던 물리학자, 수학자이자 컴퓨터 이론의 선구자 '존 폰 노이만'이라니 아이러니 하다. 


일본과 독일은 20세기에 수많은 인간을 학살하고 인류에게 큰 고통과 트라우마를 남긴 바 있다. 동시에 우리 인류는 이들이 이 기간동안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학실험이나 그 밖의 과학기술을 통해 축적한 지식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 또한 아이러니하다. 두 나라 모두 자국 내에 가해진 엄청난 폭격으로 국가가 망했음에도 타국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부를 얻고 다시 일어난 국가들이기도 하다. 이 역시 역사의 아이러니다. 




[5] 

또 딴생각을 해보다가 두 사람 생각이 났다. 50년대 말에 미공군에서 일했던 두 사람이며 전역한 후 모두 사진가가 되었다. 

한 사람의 이름은 미국의 사진가 게리 위노그란드 Garry Winogrand.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름은 국내에서 <사진강의노트>로 잘 알려진 사진가이자 교수인 필립 퍼키스 Philip Perkis이다.


두 사람 모두 공군에서 폭격기 승무원이었다. 이들은 50년대 말 냉전이 한창일 때 언제든 원자 폭탄을 싣고 적지로 날아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끊임없이 폭격 장소를 확인하고, 항로를 검토하고, 비행 상태를 점검해야해서였을까... 이들은 모두 민첩하게 반응해야하는 스냅 사진의 대가들이었다. 공군에 복무했기에 이들이 사진가가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이들 모두 당시에 고급 취미로 인기있던 사진찍기를 군복무 시절 동료로부터 접하고 PX에서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사진을 시작한 것 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관조해야했던 이들의 임무가 영향을 주기는 했을 것이다. 핵무기를 실어나르는 일을 해야 했던 이들이 공교롭게도 사진가가 되었다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그저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멍때리다가 핵무기, 그리고 이 환경에서 사진가가 나오기도 하는 우연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카메라 역시 전쟁으로 더욱 기술이 발전하고 완성된 제품이다. 공교롭게도 독일의 라이카와 일본의 니콘과 캐논 같은 회사가 카메라의 발달을 더욱 앞당겼다. 갈릴레오가 만든 천체 망원경이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만든 천체 망원경, 스피노자가 갈아서 만들었다는 렌즈로 만들었을 현미경 혹은 망원경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 새로운 발견을 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로버트 훅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기도 한 것처럼. 하지만 카메라 기술과 독일/일본과의 관계는 전쟁을 매개로 한다. 이 기술과 지식 역시 오늘날 전 인류에게 나누어주는 수혜에 희석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자야겠다. 


하루가 지났으므로 다시 오늘 부터 <파친코>를 읽어보기 시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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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8-07 00: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생각의 흐름을
오늘 코스트코 갔다가 와인앱으로 진열된 와인을 거의다 찍다가 1865보다 높은 평점인데 싼 완인을 기쁘게 사서 홀짝 거리며 (아 ㅜㅜ 따는 순간 오늘 끝날 것 같아요를 예감합니다) 따라가며 즐거워 하고 있습니다.
전 예전에 어느 사업부 부장님이 전쟁이 한 번 일어나줘야한다는 트윗을 해서 그 분과 모든 사회적 관계를 끊기도 했습니다 ㅎㅎ

그리고 사진
이건 제가 좀 할 말이 많은데
사진을 찍는 사람은 모든 이유를 용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그리고 두 폭탄이 결국 다른거 였군요.

제목만 보고는 아우렐리우스의 죽음에 대한 먼지 이론이 생각되었는데 그것 보다는 더 잼있네요 ㅎㅎㅎㅎㅎ
아~ 초란공님 건배요~~~

이상 취권이었습다
시원한 밤 되세요~

초란공 2021-08-07 00:57   좋아요 4 | URL
잠실 알라딘과 코스트코를 애용하시나봅니다 ㅋ
저는 따놓은 고량주를 홀짝 해볼까요 ㅋ

조금 덥지만 또 잠시 낼 수 있는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멍때리고 혼자 보내는 시간 말이지요. ^^

저도 아우렐리우스 수준까지 가보았으면 합니다.
아직 갈길이 멀지요^^;;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

초딩 2021-08-07 01:01   좋아요 4 | URL
알라딘은 잠실이고
코스트코는 하남이요 ㅎㅎㅎ

하남 코스트코 간다고 온 가족이 이야기해도,저는 하남 스타필드 출발~ 이라고 이야기하다 핀잔을 듣습니다 ㅎㅎ

항상 감사합니다 ~ :-)

페넬로페 2021-08-07 01:02   좋아요 4 | URL
초딩님께서는 와인을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좋은 글은 와인으로 인한 취중집필이신건가요 ㅎㅎ

페넬로페 2021-08-07 01: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삶과 죽음에 관한 글 너무 좋네요.
멍 때리기로는 너무 심오합니다.
이 딜레마들에 대해 계속 생각해봐야겠어요^^
얼마전 라디오 북클럽에서 들었는데 토니 모리슨 작가가 글도 잘 쓰지만 랜덤 하우스 편집장에다 흑인 여성 최초의 타이틀이 많이 붙는 작가더라고요~~
저는 두 작품 정도 읽었는데 저도 다시 읽고 싶습니다^^

초란공 2021-08-07 01:15   좋아요 4 | URL
아 그러고보니 제가 좋아하는 줌파 라히리도 프린스턴에서 토니 모리슨과 같이 글쓰기를 가르쳤던 것 같아요. 라히리의 <저지대>가 3대에 걸친 가족사라면, 이민진의 <파친코>는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의 가족사라는 점에서도 비슷한 것 같아요.

또 흥미로운건 위에 언급한 이민진 작가도 프린스턴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고...아무튼 토니 모리슨과 이민진 작가의 공통점도 있네요^^ 제 잡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ㅋㅋㅋ
 



우리가 되돌아갈 길은 없다

: 크리스 조던(Chris Jordan) 감독의 영화 《알바트로스 Albatross》를 보고




영화는 영국 시인이자 문학비평가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 늙은 수부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 구절로 시작한다.


The spirit who bideth by himself

In the land of mist and snow,

He loved the bird that loved the man

Who shot him with his bow.

 

연무와 눈의 나라에서

혼자 사는 정령,

그는 사랑했소

활로 자신을 사람을 사랑했던 새를.


[번역 출처: 윤준 지음, 코울리지의 시연구, 도서출판 동인, 144p]



     시에서 물안개와 눈의 나라에 사는 정령을 가리키며, 시에서 가리키는 바로 알바트로스이다. 알바트로스는 자신을 쏘아죽인 인간을 사랑했다. 정령은 인간에 의해 죽어간 무고한 새를 사랑했다. 구절에서 무엇보다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새를 사랑함이다. 새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사진작가이기도 영화감독 크리스 조던은 처음에 북태평양 가운데에 버려진 미드웨이 섬에 와서 새를 카메라에 담는 작업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인간이 버린 온갖 종류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된 알바트로스 사체를 촬영하는 작업으로 시작했지만, 감독의 시선은 점차 알바트로스라는 자체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감독은 인간의 영향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알바트로스에 대한 연민을 넘어 존재에 대해 진정한 애도 보내게 것이다. 감독은 이를 사랑이라고 표현했는데, 영화의 부제를 우리 시대를 위한 사랑이야기라고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감독은 알바트로스가 겪는 재앙의 단면을 마치 다른 알바트로스가 옆에서 지켜보듯이, 새의 눈높이에서 가까이 다가간 시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독특한 시점이 가능할 있었던 이유는 알바트로스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드웨이섬은 태평양 가운데에 위치해있는 섬으로, 2차대전 당시 미해군의 태평양 기지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병력이 모두 철수하고, 최소한의 인력이 관리하는 정도로 버려진 섬이 되어버렸다. 영상 중간중간에는 인간이 떠나간 적막한 군사시설물을 있다. 이런 미드웨이섬은 가까운 육지가 최소한 3,000 km 이상 떨어져 있는 고립된 섬이다. 알바트로스는 섬에서 처음부터 천적을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새들은 낯선 존재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인간에 의해 멸종한 새로 알려진 인도양 모리셔스 섬의 도도새처럼 새도 역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모리셔스섬의 도도새 역시 천적이 없었기 때문에, 심지어 날개도 퇴화되어 날지 않게 되었다. 다만 도도새는 섬에 처음 상륙한 유럽인들에 의해 학살당했다. 식용을 위해서든 단순한 오락거리를 위해서든 총과 칼을 들고 다가간 사람 앞에서 날지 못했고, 심지어 빠르게 도망가지도 못했던 도도새들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유럽인들을 바라보다가 죽어갔을 것이다. 알바트로스는 있지만 카메라를 들고 이들 무리 속에서 가만히 자신들을 지켜보는 감독에 적응하게 되었을 것이다. 감독이 카메라 렌즈를 새의 얼굴에 가까이 내밀어도 이들은 신경을 쓰지 않은 보였다.


     알바트로스는 현존하는 가장 새로 알려져 있다. 태평양에 폭넓게 서식하며, 펼친 날개의 길이가 2 미터에서 최대 3.7 미터까지 달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양쪽 팔을 펼쳤을 길이보다 길고, 심지어는 길이 가까이 되는 셈이다. ‘신천옹이라고도 불리는 새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에도 등장한다. 소설에서는 바다 가운데에서 만난 신천옹이 뱃전에 내려 앉아 쉬는 동안 선원들이 손으로 잡아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나아가 모비 색과 더불어 새의 색은 불길함 암시하는 대상으로 등장한 있다. 하지만 크리스 조던의 《알바트로스》에서는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다른 의미에서 불길함 암시하는 대상으로 등장한다.  


     알바트로스가 환경운동가들의 주목을 받게 이유는 영화에서도 분명히 보여주듯, 알바트로스 사체에서 발견된 수많은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알바트로스는 대개 개의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데, 점점 원기 왕성해지는 새끼에게 먹일 음식을 구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한다. 연구자들이 보고한 추적조사에 의하면, 알바트로스는 일단 새끼에게 먹일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나가면, 일주일 이상 바다 위에서, 통상 16,000 km 비행한다고 한다. 결코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말이다. 알바트로스는 과정에서 바다에 떠있는 각종 쓰레기들을 먹이로 오인하고 삼켜버린다. 인간이 버린 각종 쓰레기를 뱃속에 가득 채운 어미 알바트로스는 둥지로 돌아와 자신이 먹은 것들을 다시 게워내어 새끼에게 먹인다. 바로 여기에 지속되는 재앙 있었다. 문제는 미드웨이섬이 오염되어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의 인간이 무심코 버린 각종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었고, 알바트로스는 쓰레기조각들을 수집하여 배에 채우고 돌아오게 것이 문제였다. 반면, 같은 섬에 사는 흰제비갈매기 알바트로스처럼 새끼에게 먹이를 바다에서 구해오지 않기 때문에 플라스틱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는다.  알바트로스에게 닥친 재앙은 1차적으로 이러한 정황에서 비롯되었다.


     영화를 통해 감독은 죽은 알바트로스의 배를 갈라 새의 뱃속에 있는 소화되지 않은 잔존물을 카메라에 담아 보여주었다. 새의 사체에서 나온 물건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영상에서만 알아본 물건들은 주로 물에 뜨는 플라스틱 조각 병뚜껑, 칫솔, 그물, 낚시줄 등으로 보였다. 영화에서 감독은 자신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인간인 자신이 알바트로스의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반면, 새들은 자신이 이유도 모른 죽어가야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이라고 말했다. 영화에서 감독은 직접 죽은 새의 몸에 손을 얹고, 죽은 새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새들에게 닥친 -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화자인 감독은 이러한 자신이 경험을 두고, ‘애도의 진정한 본질은 사랑과도 같다. 바로 상실에 대한 사랑의 경험인 이라고 말하고 있다.  


     언젠가 코끼리에 관한 어느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를 적이 있다. 코끼리는 뼈만 남게 어미 코끼리의 잔해에 매년 찾아와 끌어 앉고 마치 울부짓듯 소리를 내었더랬다. 코끼리 역시 일종의 애도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코끼리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는 감독이 담담하게 꺼냈던 말을 보다 이해하게 되었다. 크리스 조던 감독에게도 마찬가지로, 그가 해변에서 발견하여 뱃속의 잔존물을 꺼낸 대상은 알바트로스라고 불리는새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며, 한때 현존했던 바로 였던 것이다. 이제 살아남아 비행에 성공한 알바트로스들은 일단 섬을 떠나면 3년에서 5년간 번도 땅을 밟지 않고, 바다 위에 혹은 씩이나 하늘에 떠있게 것이었다. 알바트로스들이 떠난 미드웨이섬은 고요했다. 다만 섬의 해안가에는 뱃속의 이물질들로 인해 죽은 알바트로스의 사체들만이 말없이 남아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느꼈던 점은 단순히 새가 마주해야 했던 재앙에 대한 연민을 넘어선 감정이었다. 만약 어떤 이유로 알바트로스 대신 인간이 이러한 운명을 맞았다면, 알바트로스 혹은 다른 존재가 인간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지금은 이처럼 인간이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재앙을 피할 있었지만, 과연 죽은 알바트로스의 운명 대신 인간의 운명이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있을까? 과거의 역사가 교훈은 지구상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무차별적이다. 인간도 예외가 없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영화  《알바트로스》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보다 알바트로스의 재앙을 통해 여기에 투영된 우리 인간의 모습을 읽어낼 있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은 알바트로스를 쓰다듬으며 흐느끼던 감독은 인간의 운명 또한 예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누리는 문명으로 인하여 강제로, 공동운명체가 되어버린 알바트로스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알바트로스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나아가 인간의 운명은 알바트로스가 겪고 있는 삶과 운명의 연장선에 있음을 새로이 깨닫게 되었다


     영화에서 감독이 남긴 마디가, 영화가 끝나고서도 특히 기억에 남았다. 바로 There is no going back.이라는 말이었다. ‘되돌아갈 길은 없다, 후퇴는 없다정도의 의미로 번역될 있는 표현은 영화에서 새끼 알바트로스들이 처음 비행을 시도하기 위해 해변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나온 표현이었다. 하지만 나는 표현이 알바트로스와 인간의 운명이 오버랩되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직간접적으로 인간이 유발한 모든 원인으로 인해 현재의 알바트로스와 미래의 인간이 겪게 운명을 경고한 메시지로 읽힌다. 이미 우리 인간에겐 순수의 상태 되돌아갈 방도는 없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현재를 바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영화는 미래 인간의 운명에 보내는 과거 인간의 애도와 사랑의 노래다.  



Farewell, farewell! But this I tell

To thee, thou Wedding-Guest!

He prayeth well, who loveth well

Both man and bird and beast.


가시오, 가시오! 하지만 한마디는

당신에게 해야겠소, 결혼식 하객이여!

사람뿐만 아니라 새와 짐승을

사랑하는 이가 기도를 하는 이라고.


[번역 출처: 윤준 지음, 코울리지의 시연구, 도서출판 동인, 154p, Part V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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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대한 간략한 보고서

 


작년에 일본계 미국인 문학비평가이자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의《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알게 되어 찬찬히 읽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쿠타니는 미국의 일간지 《뉴욕 타임스 New York Times에서 34 (1983-2017) 서평을 담당했는데요, 그녀가 은퇴 처음 발표한 정치·문화비평서가 바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이하 《진실》 표기)입니다. 책을 읽던 알게 소설 편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입니다. 《진실》  서론에 해당하는 들어가며에서 가쿠타니가 단편 소설을 언급한 대목이 나옵니다

 


물론 상대주의는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울프가 말한 자기중심주의 시대부터 시작해 자부심 넘치는 셀피(selfie) 시대를 거치며 부상한 나르시시즘 주관주의와 정확히 동시에 떠올랐다. 그래서 모든 우리 자신의 관점에 달려 있다는 라쇼몽 효과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 같은 대중 소설부터 < 어페어>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까지 우리 문화에 스며든 놀라운 일은 아니다.”

 


처음 책을 읽을 당시에는 라쇼몽 효과 의미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가쿠타니는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라면 류노스케의 「라쇼몽」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가정한 같습니다. 제가 소양이 부족한 면도 있지만, 가쿠타니의 글도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언급한 대목만 가지고는 어림짐작만 해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라쇼몽 효과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류노스케의 「라쇼몽」 찾아 읽어보면 되겠죠. 가쿠타니는 과연 「라쇼몽」 자신의 글에서 어떻게, 어떤 맥락에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일까. 점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동안 잊고 지내다가, 가끔 라쇼몽 효과 의미가 무엇일지만 가끔 떠올렸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여러 글에서 만나게된 라쇼몽 대한 언급과 자료들을 모아 라쇼몽 효과의미를 이해해보려 합니다.

 




우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 읽어봤습니다. 10페이지짜리 단편이라 금방 읽을 있습니다. ‘라쇼몽 한자어로 읽으면 라생문(羅生門)’ 해당합니다. 어떤 마을 외곽의 폐허가 2 누각의 문이 라생문이라고 불리는 합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곳이기에 동물이 들락거리고, 가난한 백성들이 누각의 나무를 뜯어다 내다팔기도 하고, 시체를 버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비오는 어느 , ‘화자 라생문을 지나다가  2 누각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화자 조심스럽게 누각 안을 보니 시체들이 즐비해 있었고, 어느 노파가 횃불에 의지해 시체의 머리털을 뽑고 있었습니다. 순간 화자 노파의 악행에 분노하여 칼을 들고 노파를 위협합니다.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 이유를 말하라고 요구합니다. 물음에 노파는 대답합니다. ‘ 여자 시체는 사람을 속여 고기를 여자로 악행을 저질러 왔던 여자인데,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아 가발용으로 팔려고 한다고 말이죠. 결국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겁니다. 배고프고 가난한 화자 말을 듣고 노파의 옷을 벗겨 달아납니다. 노파의 옷을 팔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가쿠타니가 말한 라쇼몽 효과 의미를 조금은 이해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가쿠타니는 《진실》  3장에서 다시 라쇼몽 언급합니다.

 


울프는 1989년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어느 글에서 이런 상황 전개를 한탄하며, 미국 소설의 전통적 리얼리즘이 사망했다고 애도했다. 그러면서 소설가들이 “(자아의 세계로부터 나와) 이렇게 요동치는, 기이하고, 예측불가능하며, 돼지들이 발을 쿵쿵 구르며 걷는 바로크적인 우리의 나라로 향해 그것을 문학 자산으로 되찾 것을 촉구했다. (…) 울프는 기자의 목소리와 관점을 새로이 강조한 1970년대 뉴저널리즘의 영향력 있는 주창자였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선언이 문학계의 많은 이들을 전향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루이스 어드리크, 데이비드 미첼, 드릴로, 줄리언 반스, 팔라닉, 길리언 플린, 로런 그로프 같은 작가들은 수십 윌리엄 포크너, 버지니아 울프, 포드 매덕스 포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같은 혁신자들이 「라쇼몽」같은 새로운 현실을 포착하고자 개척한 다중시점, 신뢰할 없는 화자, 뒤엉킨 이야기 구성 같은 장치를 여러모로 활용했다.”  

 


대목에서 가쿠타니는 「라쇼몽」 언급하며, ‘다중시점이란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 다시 읽어도 다중시점이란 표현이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소설에 다양한 시점이 등장한다면 저처럼 소설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시점의 변화만큼은 비교적 쉽게 알아볼 있을텐데요. 다양한 시점이 저에게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다만 소설 속의 노파와 화자 각자 자신의 행위에 대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하듯 아전인수격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해석만 찾아볼 있었습니다. 아니면 소설의 행간을 읽어 감지해 내야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되더군요.

 


다시 가쿠타니가 언급한 대목이 소설과 맞지 않는 듯하여 혼란을 느끼던 , 단편 소설에 대한 작품해설 읽게 되었는데, 여기에 가지 실마리를 찾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단편 소설 「라쇼몽」말고,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의 줄거리가 사실은 류노스케의 다른 단편 소설 「덤불 속」이라는 것입니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의 배경만 단편 소설 「라쇼몽」에서 가져와 적용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실제로 소설 「덤불 속」에는( 단편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각자 자신의 진실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포스터 출처]

By Daiei, (c) 1962

http://entertainment.webshots.com/photo/2011951000055228984dXleQp[dead link] accessed 01-March-2008,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644246



그러므로 가쿠타니가 《진실》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비판하며 언급하는 라쇼몽 효과 「라쇼몽」이란 작품은 사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가리킨다고 봐야합니다. 소설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영화  <라쇼몽>에서 분명히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해, 영화 <라쇼몽> 사실 류노스케의 다른 단편 소설  「덤불 속」 내용이었던 것이죠. 실제 단편 「라쇼몽」 아니구요. 그렇다면 가쿠타니가 말하는 다중시점 라쇼몽 효과 엄밀히 말하자면 덤불 효과 옳은 것이겠죠. 따라서 라쇼몽 효과라는 표현의 유명세는 사실  단편 소설 「덤불 속」에게 주어져야 마땅합니다.

 


퓰리처상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저널리스트 하트(Jack Hart) 글쓰기 《논픽션 쓰기》(정세라 옮김, 유유)에서 저자는 논픽션 글쓰기를 이야기하는데, ‘시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의 마지막에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시점이 오락가락하는 영화로 자주 인용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조차 명의 시점인물을 통해 같은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준다.”


 




정리해봅니다. 가쿠타니의  《진실》 하트의 《논픽션 쓰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라쇼몽 효과 모두 다중시점 이야기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사실 경우 모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염두에 두고 언급한 겁니다. 그리고 사람이 언급한 라쇼몽 효과 맥락은 사실 류노스케의 단편 「덤불 속」 내용에서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실제 단편 소설 「라쇼몽」 제가 처음 소설을 읽으면서 시점 변화를 찾을 없었다 판단이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해주었던 것이구요. 가지 이해하게 점은 미국의 문단에서 주로 회자되고 소비되고 있는 작품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실제 「라쇼몽」보다는 다중시점이란 맥락에 초점을 맞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이라는 점입니다.

 


라쇼몽관련 자료를 찾다가 한홍구 교수가 시사주간지 <한겨레21> 역사이야기코너를 연재하며 글에서 라쇼몽 언급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번에 발간한 역사서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이영채·한홍구 지음, 창비, 2020) 공저자 한홍구 교수라서 흥미롭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문학비평가들이나 역사학자가 라쇼몽 언급할 ,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는지가 궁금했었고, 실마리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아래에 라쇼몽 언급한 한홍구 교수의 글을 링크해두겠습니다.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수많은라쇼몽 진실을 찾아」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487.html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https://ko.wikipedia.org/wiki/라쇼몽_(1950_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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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의 SF소설 달나라 탐험 플로리다에서 우주비행사 명과 마리를 태우고 달에 가는 모험이야기이다. 소설에서 우주선은 달에 도착하는 97시간이 걸렸을 뿐이고, 실제로도 아폴로 11호는  4일째가 되어 달에 도착했다. 반면 1975 출발한 바이킹1호는 평균 초속 20 km정도로 날아갔음에도 10개월이 걸려 화성에 도착했다. 베른은 달에 가는 여정에 유성과의 충돌이나 산소의 부족 문제, 그리고 궤도이탈과 같은 구체적인 난관과 모험을 설정한 있다. 1860년대에 지어진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 화성에서는 일단 우주선이 평평한 지대인 북부 지역에 안전하게 착륙했다고 가정해본다. 물론 지구로 되돌아 오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들의 임무는 생존이며, 이것은 필연이다. 이들은 20 이루어진 바이오스피어2 실험에서 얻어낸 지식과 교훈을 기반으로 화성에 도시를 건설할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들이 지구에서 출발할 잇달아 발사된 화물로켓은 중장비와 건축재료를 싣고 조만간 산화철이 주성분인 모래 지역 아라비아의 도착할 것이다. 곧바로 이들 착륙선들이 도착한 위치를 찾고 중장비와 건축 재료들을 우리가 착륙한 곳으로 이송해와야 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화성 도시 건설이 필요하다. 과거의 바이오스피어2 폐쇄순환계이긴 했지만 간의 준비를 통해 사막, 대양, 열대우림과 습지 같은 야생 생물군계와 150 종에 이르는 다양한 농작물 4,000 종에 달하는 생물들을 직접 키우며 독립된 생태계를 빠르게 구성할 있었다. 밀폐된 공간의 기압조절을 까다롭게 따로 필요가 없었다. 물론 실험의 초기에 산소가 빠르게 사라진 사건만 제외하면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과도한 퇴비를 줄이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 않는 특수콘크리트를 준비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귀한 산소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차단할 있다.  하지만 이곳 화성에서는 바이오스피어2 경우처럼 폐쇄순환계를 구성하지만 상황은 지구에서의 경우와 상당히 다르다. 화성의 대기압이 지구의 100분의 1 수준이기에 모듈 내부에서 주자가 생활에 무리가 없도록 하려면 실내 기압을 증가하여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모든 도시 설계를 위한 동력 공급원을 마련한다. 태양열판을 우선 도시 주변에 설치하여 규모는 작지만 기본 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있도록 준비한다. ‘화성의 흉터라고 불리는 협곡의 입구에는 극심한 일교차를 이용한 일교차 발전 설비와 송전선을 설치하여 도시의 전력 공급원을 마련한다. 대기가 희박하기 때문에 햇볕을 받는 부분은 온도가 상당히 올라가기 때문이다. 아울러 협곡 아래에 설치한 부분은 햇볕이 닿지 않고 항상 그늘 속에 있으므로 상당한 온도차를 유지할 있게 된다. 극지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게 되면 극관 지역의 얼음을 이용하여 낮은 온도 부분에 접목하면 것이다. 화성에선 여름의 최고 온도가 영하 33도인데다, 겨울에는 영하 100도까지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극지역에서는 희박하지만 대기의 주성분인 이산화탄소가 드라이아이스로도 존재한다. 이렇게 도시의 주동력 공급원 보조 전력 공급원을 마련할 있다.

 


동력이 마련되면 화물착륙선에서 이송해온 주거 모듈을 설치하고 이들을 연결한 다음, 준비해간 식량과 액체 산소통을 기화시켜 실내에 산소를 공급해둔다. 이어서 기압 조절 장치를 작동시켜 모니터링하며 공기가 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24시간 기밀테스트를 실시하도록 한다. 작업이 마무리되면  준비해온 식물들의 씨앗을 심을 있는 소형 하우스 모듈을 설치해야 한다. 화성의 표면은 붉은 색을 띠는데, 이것은 대부분이 산화철 성분의 먼지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져간 퇴비를 이용하여 소형 하우스 모듈에서 식물 재배를 우선 시도할 있도록 토양 개선을 진행한다. 작업과 동시에 생활에서 배출되는 부산물(인간의 배설물, 생활 하수 ) 이용하여 퇴비를 만들기만 하면 지속적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데 활용할 있는 순환시스템을 구성할 있게 된다. 부산물 처리 유닛은 주거 공간과 독립된 공간을 이루되, 대부분의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들을 키우는  소형 대형 하우스 모듈과 가까운 거리에 설치한다.

 


이제 물을 얻기 위한 제너레이터 탱크가 필요하다. 화성에서 물을 얻기 위해서는 크게 가지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빠르게 물을 얻을 있는 방법은 화물 소송선에 실려온 액체수소와 화성에서 비교적 풍부하게 얻을 있는 산소 생성 시스템을 통해 나온 산소와 반응하여 순수한 물을 제조하는 것이다. 화성의 대기 성분의 95% 이산화탄소이므로 탈기 시스템을 이용하면 탄소와 산소를 분리하여 산소를 비교적 풍부하게 얻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화성의 대기는 희박하고 중력은 지구의 절반 이하 수준이기 때문에 수분을 대기에서 직접 얻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선 시스템을 설치하게 되면 저수조로 이어지는 배관을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 물을 얻기 위한 번째 방법은 조금 멀리 떨어진 극지방의 얼음지대에서 물과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진 얼음을 공수해오는 일이다. 그러나 방법 역시 물과 이산화탄소의 얼음에는 물의 함량이 매우 적으므로 물을 얻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마지막 방법은 과거에 물이 존재할 대지에서 생성된 것으로 보이는 화성의 침철석[FeO(OH)]으로부터 하드록시기(-OH) 분리하고, 여기에서 다시 순수한 수소기체를 분리해내는 것이다. 하드록시기는 반응성이 좋기 때문에 곧바로 수소기체를 분리해내어 산소와 반응시켜야 한다. 역시 시간이 다소 오래걸리긴 하지만 극지의 얼음에서 물을 얻는 방법보다는 안정적이다. 이렇게 얻은 수소와 대기에서 분리한 산소를 반응시켜 순수한 물을 얻을 있게 된다. 참고로 하드록시기(-OH) 높은 반응성은 지니므로 살균소독제로 활용할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화성에서 발견되는 다른 광물인 암염(NaCl) 물에 녹여 내어 전기분해를 이용하면 살균소독성분이 훨씬 강하고 보다 안정적인 잔류염소 성분을 만들 있다. 이를 상수 공급원에 투입하여 보급수 라인에 잔류염소 수준을 0.5 ppm정도로 유지하면 지구의 수돗물과 같은 살균되고 안정적인 물을 얻어낼 있게 된다.


 

이제 기본적인 도시의 구조가 마련되었으므로, 매일 식물을 재배하고 데려온 동물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과에 집중한다. 지난 바이오스피어2 실험에서는 주변 환경과 완벽히 차단된 폐쇄순환계를 구성하긴 했지만, 당시에는 창문을 통해 방문하는 가족들을 매일 있었다. 하지만 이곳 화성은 우리 뿐이다. 지구는 이제 푸른 점으로 보일 뿐이다. 당분간은 해야 일이 많고, 가져온 코카콜라와 땅콩버터를 먹으며 잠시나마 지구의 가족을 잊고 지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성에서 인간은 정말로 우리뿐이라는 사실이 팀원들을 의기소침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도 화성이 흥미로운 점들을 가지 발견할 있다.  화성의 중력은 지구의 40% 수준이므로 몸무게가 190 kg까지 살이 쪄도, 지구에서처럼 75kg정도로 느껴질 것이다. 관절에 무리가 가진 않을 것이고 당분간은 다이어트에 신경쓰지 않아도 같다. 다만 넘어졌을 땅을 짚을 있게 팔을 돌릴 수만 있다면 말이다. 태양과 같이 행성이 아니라서 다행인 점도 있다. 중력이 너무 나머지 코카콜라를 마시기위해 기중기를 이용하고 싶진 않으니까 말이다.

 


화성의 하루는 지구와 거의 비슷한 24시간 39 정도이므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화성의 자전축도 지구와 유사한 각도로 기울어져 있어, 창문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이따금씩 즐길 있을 것이다. 다만 공전 주기가 686.98 이기에 계절은 지구의 2 길이에 가깝다. 물론 모든 생활은 모듈 내에서 이루어지므로 이곳에서는 천둥번개나 비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루의 바쁜 일과가 끝나면 무척 심심하고 단조로울 것이다. 바이오스피어2처럼 커다란 돔으로 이루어진 대형 하우스 모듈을 설치하는 동안은 상당기간을 땅콩만한 모듈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껴야 한다. 하지만 그대신 설치되어 있는 실험 모듈에 뿌려 보리와 홉이 자라게 되면 이들을 수확하여 함께 배양한 효모를 넣고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만들어 마실 있게 된다. 이것이 하나의 위안이 되고 있다. 화성에서는 산소를 싫어하는 효모들을 배양하기에 좋은 조건을 마련할 있다는 장점도 있다. 게다가 월동 작물인 보리를 키우기에 이곳은 안성맞춤이다. 이제 달만 기다리면 줄리 런던이 부른 Fly to the Moon 우주소녀(Cosmic Girls) 우리를 위해 지어준 Fly to the Mars 들으며 맥주를 마실 있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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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가게 고양이는 삼청동 골목을 누비는 고양이었다. 문 밖에서 빼곰 고개를 빼서 갤러리 안을 들여다본다. 날 쳐다보면서 문열어달라는 모양으로 울어댄다.

문을 열자 잽싸게 들어온 녀석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그림과 사람을 구경하다 곧바로 낮잠을 자기 시작....

한동안 낮잠을 잔 후 볕이 좋은 곳에 앉아서 어슬렁거리기 시작. 햇볕 쬐며 나와 마주보기 15분...^^;;
다시 뒤돌아서 면벽수행(?) 한 15분...
갤러리에 나타난 손님은 오후의 햇살을 즐길줄 안다. ^^

갤러리 대표님이 말씀하시길, 이전에 이녀석은 계단 중간에 이렇게 앉아있거나 낮잠을 잔 적이 없었다고...

내가 만만한 것이구나 ...ㅋ

오늘 나타난 “내 눈에 예쁜 것”



#삼청동고양이 #갤러리포트폴리오 #GalleryPortfolio #내눈에예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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