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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감 - 대중문화의 정치적 무의식 읽기
김성윤 지음 / 북인더갭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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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감>

김성윤 지음/북인더갭

 

<덕후감> 자체로덕후스럽다. 스스로대중문화 비평가 불리기 원하는 저자 본인은 동시대 한국 대중문화의 행간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파헤치고 있다. 그리 두텁지 않아보이는 대중문화관련 도서임에도 수많은 한국 대중문화의 키워드가 보이는데, 그동안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수정 보완 작업을 거쳐 완성된 책이다. 저자는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사회학도로서 말하자면학구적 덕후라고 있겠다. ‘대중문화의 정치적 무의식 읽기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저자는 매스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사건들 아니라,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방송 프로그램에 주목하고 영문학 전공 경력답게 문학을 통해서도 한국인들의정치적 무의식 해부하고 있다. 저자는 본인의 책을 읽고독자들이 각자 어떤 질문을 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했다라고 의도를 전하고 있다. 독자 스스로 어떤 질문을 하게 된다는 것은 씌여진 텍스트에 대한 이해 아니라콘텍스트에대한 이해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독자로서나의 생각 어떤지 고민해보고 책과 대화해보길 원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나의 대중문화에대한 이해는 가히 유치원생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아니 요즘 유치원생들은 심지어 어떤 가수를 좋아하고 따라부를수 있는 노래가 곡되는 반면, 나는 초등학생 수준도 아닌 유치원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나로서는 군복무 시절 어쩔수 없이 보게되었던 텔레비젼에서 걸그룹 핑클과 S.E.S. 보았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단서로 나의 연령대를 짐작할 있는 분이라면 나의 나이가 책에서 정의하는 삼촌팬 연령대에 들어있다는 정도로 말할 있겠다. 저자가 정의한 삼촌팬 동시대인으로서 나는 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내고, 90년대 대학교를 다녔다. 책을 읽어가면서 저자의 나이도 아마 나와 비슷한 연령대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짐작해보았다.

 

<덕후감> 삼촌팬세대가 어렸을 때부터 보고 느끼고 경험했을 법한 80년대 정도 이후의 한국 대중문화에 집중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속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만큼, 그간 한국사회에 있었던 일이나 문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면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보인다. 저자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은 책인 만큼, 글과 글의 집필 시기나 순서에도 연대기 같은 구성은 아닐 것이다. 본문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삼촌팬 관심 대상인 걸그룹 대해 알지 못하는 관계로 저자가 전개하는 논리와 주장을 전부 따라가지는 못하였다. 다시말하면 책은 배경적인 이해가 부족한 독자들에게 대중문화에대한 기본적인 기억 갖지 못한 이들에게 친절한 책은 아닌 같다. 예를 들어 우쭈쭈 용어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맥락과 의미를 짐작해볼 있는 단서가 희미하게 보이긴 한다. 아울러 대중문화 속에서 비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들에 대해 나는 알지 못했다. 유명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팬들이 직접 소설을 가리키는 팬픽(fan-fic) 아니라, 여성 팝스타에 열광하는 여덕 현상이라고 표현한 크러쉬(girl crush) 대해서도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대중문화에 비해 표현의 자유가 다소확보되기 시작했던 80년대 이후 남성의 몸을 시각적으로 소비되기 시작 정황도 알게되었다. 이와 반대로 여성들의 여성에 대한 독립적인 시각과 욕구를 반영하는 워너비 신드롬 소녀들의 성정 판타지에 대한 언급은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또다른 흥미로운 관점을 알게 해주었다.

 

아마도 믿지 못할 기억력에 의하면 짝퉁 대한 문제가 대대적으로 기사화되어 드러나 주목을 받게 때가 대한민국이 건국 이후 처음 개최하게 되었던 88 올림픽대회 이후가 아닐까한다. 올림픽을 통해 국제사회의 이목을 받게 한국사회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있던 나름의 생존법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한국사회에 존재했던 진짜 가짜 대립은 (물론 여전히 존재하지만) 한국인의 위신을 충분히 위협할만 했고 무시할 없는 문제였다. 예컨대 시기를 전후하여 국제적인 저자권보호 문제도 국내에 적용되었던 것을 보면 대중 문화 아니라 사회 전반에 짝퉁문화에 대한 경종을 울리게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80년대 후반을 거쳐 90년대 들어서면서 외국 제품을 짝퉁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거쳐 대한민국은 진품에대한 희귀성을 명품이라는 개념의 도입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같다. 반면 희귀성에 기반한 명품 저자가 말하는 대중의 따라잡기현상에 의해 한정판이었던 명품이 만인에 의해 소비되기에 이르게 되었다. 고가의 명품 구입할 있는 계층들은 다시 따돌리기대응을 통해 특정 브랜드의 희소성에서 나아가 브랜드에서도 특정한 개별 모델 자체가 희소가치를 갖는 전략을 취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대목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명품에대한 대중들의 흉내내기’ → ‘따라잡기’ → ‘따돌리기 무한반복 패턴 현대 한국인의 정치적 무의식 일면으로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예를 들어 나는 조선 초기에 존재했던 양반이라는 계층, % 되지 않았을 극소수의 계층이 조전 중기 이후 어떤 이유로 60-70% 넘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양반이란 계층을 소비하고 싶었던 집단 무의식의 욕망이 현대 대한민국의 명품소비 현상에도 반영되어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이다. 논의를 확장하면 명품소비의 문제 아니라, 박사학위나 교수직을 돈으로 사는 관행에도 연결지어볼 있고, 90년대 재즈에 대한 붐이 보여주는 재즈거품’, 나아가 고가의 자전거 구입 수집, 고가의 캠핑 용품 구입 열풍, 등산복을 교복처럼 입는 한국인에대한 논의까지 관심의 폭을 넓혀볼 있을 것이다. 개별성은 인정해야하겠지만, 맥락에서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이벤트 기념일에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벤트 데이는 한국인의 집합의식을 드러내는 표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화라는 것은 어느 지역에서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기억 의존한다. 군사 정권의 역사적 맥락이 보이는 국군의 퍼레이드 아니라, 언제부터인지 새로운 문화 하나로 자리잡은 빼빼로 데이 그러하다. 신종의 집단 기억인 빼빼로 데이가 다른 문화에서는 다른 기억으로 공유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날이 1 세계대전 종전일 기억되고 있을 터이다. 유럽의 누군가에겐 전쟁에 나갔던 아들이 돌아온다는 기쁨의 기억되었을 것이다. 인류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전쟁 중의 하나인 만큼 아들이 생존하여 돌아온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군복무하던 아들이 전역하여 집에 오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의미를 가질 것이다.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역사문화적 문맥은 도외시 , 신종의 강요된 집단 무의식이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저자는 이를 집단의 사회적 묶임(bonding) 과거 국가 매개로 것에서 이제는 시장 매개로 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대기업의 상술이라고 말하곤하는 신종문화는 사실 보다 시야로 보면 우리가 신자유주의 가치 착실히 내면화하고 있는 단계라고 수도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가치의 내면화문제를 6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책에서 이상에 걸쳐 이슈로 다루고 있다. 중에서도 하인스 워드 신드롬이라 불린 다문화주의 등장을 통해 다문화주의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이데올로기 보충물이라 언급한 대목은 상당히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흔히 다문화 표방한 사회의 인식 변화는 좋은 아니냐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책은 나에게 우리가 흔히 마주하게 되는 인식과 표상마저도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하며 다시 바라보고 판단할 것을 일깨워주었다. 어떻게 다문화주의가 신자유주의 가치와 연결될 있을까. 저자는 다문화주의가 스포츠, 문화와 결부되어 국가주의로 수렴될 있다고 경고한다. 과거 미국 이민 1세대의 삶에서 있듯이, 미국에 처음 이민을 가서 고생한 많은 한국인들이 식료품점이나 세탁소와 같은 힘든 일로서 새로운 사회에 발을 내딛곤 했던 것처럼, 저자는 다문화주의 노동의 인종적 분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종적 분리의 경험과 기억이 고착되면 인종에대한 편견이 자라나고 고정되어 버릴 수가 있다. 어쩌면 서구사회가 가지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도 맥락에서 보다 역사가 오래된 다문화주의 오래된 폐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맥락을 이해한다면 미국에 있는 식품가게에서 한국인들이 오리엔탈 푸드 상호명을 쓰는데 다소 고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된다. 다소 이야기가 빗나갔지만, 다시 말하면 저자가 경고하는 다문화주의의 어두운 면은 미국처럼 3D업종에 특정 민족이 종사하게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다시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산업구조에서 민족이 고질적으로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게되는 악순환을 겪을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나에게 매우 흥미로웠던 대목은 (9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던 세대인 만큼)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 관련하여 영화<어벤져스> 비교한 부분이었다. 군복무 당시 IMF체제를 경험했던 나로서는 당시에 한국사회가 어떻게 IMF 맞았고, 어떻게 금모으기 운동 했던가를 보게 되었지만, 매일 뉴스를 없었던 관계로 다소 제한적인 기억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물론 대한민국이 IMF 경험한 이후의 사회에 복귀하여 IMF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 변화를 몸소 느끼긴 했지만 말이다. 저자는 <공각기동대> 이야기하면서 애니메이션 전반에 깔려있는 존재론적 불안 끄집어 낸다. 미래 사회이지만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도입부처럼 기업 네트워크가 행성을 뒤덮고 전자와 빛이 휘젓고 다녀도, 국가와 민족이 사라져 없어질 정도로 정보화되어 있지 않은 가까운 미래 제작자가 상상했던 세계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해 치안마저도 민영화 미래의 모습은 사실 상당히 개연성 있고 수긍이 가는 문제였다. 그런 점에서 <공각기동대> 매우 신자유주의적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충분히 공감을 하게 된다.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가 제작한 의료민영화 관한 영화 <Sicko>에서도 나오듯 손가락이 절단된 환자가 돈이 없다면 본인의 손가락접합 수술의 기회마져도 박탈당할 있는 사회가 도래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치안의 민영화문제는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이미 개인 사설 보안유지/경호업체가 많이 생겨난 점도 주목해볼만한 일이다. 나아가 이런 맥락에서 나라의 국방 마져도 민영화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이런 우려가 나만의 것이 아닐 있다. 프랑스 외인부대가 말그대로 용병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것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테러 대응 조직 또한 민영화된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는 점은 국방의 아웃소싱가능성을 무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저자가  문제는 오늘날 고조되는 위험과 위기, 재난 상황을 만났을 , 무능한 국가 권력이 아니라 유능한 시장권력에 의존하겠다는 심리적 기대를 우리 스스로 정당화한다는 있다.”라고 지적하는 대목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중요하고도 상당히 우려스러울만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이런 문제는 선과 구분을 과거의 전통적인 기준과는 크게 다른 양상으로 만들어나갈 있다는 점이다. 영화 <배트맨> 나오는 대사가 가능성을 여실히 대변해준다.

 

그럼 누구랑 싸워야 하지?’ 나쁜 놈들이랑 싸워야 한다.

그들은 나쁘지?’ 시스템을 위협하니까.

 

초등학생들의 대화 같은 대사는 치안이 민영화된 사회에서 이란 기준이 어떤 것일 있는지 여실히 그리고 아주 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 시스템을 위협하는 것은 모두 으로 간주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이해에 반하는 국가, 집단이 모두 이며 테러리스트라고 지목되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이들이 악인가.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 위협하니까가 이유일 것이다. 미국의 자본주의적 질서를 비판하고 대항하는 행위 아니라 태도나 자세까지도 으로 규정될 있다는 말이다. 태도 자세 페이스북을 통해, 소셜 미디어및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착실하게 기록된 데이터 통해 집단 심리로서 그리고 개인정보로서 시스템을 관리하는 이들에의해 조회되고 점검될 있는 가능성이 언제든 존재하는 사회가 되었다. <덕후감> 이러한 불편하지만 중요한 문제들을 내가 깨달고 생각해볼 여지를 책이라 있다.

 

책에서 저자는 대중문화를 전도된 욕망을 비추는 객관적이고도 주관적인 체계라고 말한다. 대중문화가 성립되어질 있는 규칙으로서 대중문화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줄 아니라 대중이 소망해야하는 것을 (너무 앞서가지만 않는다면) 보여주어야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대중문화는 대중이 갖고 있는 욕망의 거울이라는 관점이다. 집단의 무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저자는 대중문화를 통해 드러나는 현상을 거울을 들여다보듯 구석구석 살펴보고 있다. 책을 끝맺으며 저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로선 싸우는 수밖에 없다.”라는 다소 계몽적으로 들리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책은 대중 문화를 들여다보는 것에 주안점을 것이지 어떤 새로운 대안제시나 훈계를 염두해두지 않은 만큼, 다소 의외의 결말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저자가 한국사회가 IMF체제 이후 변화된 삶의 윤리를 지적하며 각자도생 언급했듯이, 저자의 결론도 각자도생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아니면 어떤 대상에 대한 투쟁을 언급할 새로운 연대 가능성을 염두해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점을 저자가 밝혀놓지 않았으므로 모를일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전혀 수긍이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살아가며 투쟁하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지나치고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무감하게 받아들일 있는 제반 문제에대해 의심하고 의문을 가지라 주문일 것이다. 우리가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고 고민하고 공부하는 이유도 또한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간이 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책을 읽으며 갖게된 저자에대한 인상은 발랄하면서도 날카롭고 명민하면서도 신랄하다는 점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식의 수준으로 보면 저자 자신도 사실 덕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그것도 상당히 학구적인 덕후다. 내가 읽은 <덕후감> 한마디로 발랄한 덕후의 대중문화 독법이라고 있겠다.

 

 

 

[첨언]

<덕후감>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친절한 책은 아니다. 한국 사회/문화에 대한 배경 지식이 부족한 나같은 독자라면 책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일종의 느껴지기도한다. 저자의 설명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다소 학술적인 용어에대한 소개를 하지 않으므로 개념적인 용어에대한 이해에 어려움을 느꼈다. ‘기표혹은 언표 개념이나 사용시의 어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경우라면 독자에게 다소 불편하게 다가갈 수도 있겠다. 나아가 80년대, 90년대 드라마를 가지고 대중문화, 대학 문화를 언급한 부분은 보다 폭넓은 (보다 젊은) 독자에게 공감을 얻기는 힘들 있겠다. 저자는 물론 폭넓은 지식과 안목으로 다양한 주제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지만 독자를 포용하는 자세가 다소 부족하지 않았던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물론 저자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지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을 인정해야겠다.)

  한편, 언어 사용상 눈에 자주 띄는 점이 있는데, 다소 과장적 형용사/가치판단의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아마 기고를 하면서 수많은 논객들과의 논쟁으로 형성된 언어습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이라는 표현이 과하게 눈에 띈다는 점이다. 표현의 모호함이 주는 문제는 저자가 설명하는 어떤 개념적인 문제에대한 이해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역시 나의 부족한 지식과 독서 경험 탓으로 돌리게 되는데, ‘-이라는 표현은 그래도 많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젠더적 위계질서”(82)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마케팅 전략에 힘입은 대량소비 1970년대 신자유주의가 출현하기 전인 실물팽창 국면에서조차 포드주의 축적 논리에 조응하고 있었다.” 이런 표현은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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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 우주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출발점 사이언스 클래식 25
리사 랜들 지음, 이강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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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Knocking on Heaven’s Door)

리사 랜들 (Lisa Randall) | 이강영 옮김 | 사이언스 북스

 

 

 

   우리는 흔히 나노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이 나노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 고려하게 되는 길이의 척도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한 달에 나의 머리카락이 1 센티미터가 자란다고 가정하면, 대략적으로 내 머리카락은 1초에 4 나노미터가 자란다는 계산이 나온다. DNA의 염기 하나의 크기가 대략 0.1 나노미터라고 한다면 그만큼 내 몸안에서 매 순간 격렬하게 단백질이 수 나노의 길이만큼 형성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나에게 나노미터의 과학하면 바로 이런 크기 수준에서 물리적 현상을 탐구하는 과학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읽게 된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는 이보다 훨씬 작은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의 크기에서부터 우주적인 크기의 광대한 영역에 걸친 물리학을 다루고 있다.  

  

   저자 리사 랜들은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 교수로서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바꿔말하면 물질로 이루어진 가장 작은 영역과 가장 큰 영역을 모두 탐구하는 이론 물리학자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특히나 여성 과학자로서 그녀의 이력은 돋보인다. 여성 과학자가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성이 더 많이 있는 과학, 특히 물리학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과학자이다. 번역자가 책의 후반에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리사 랜들은 미국에서 가장 엘리트적인 교육을 받은 과학자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에 유럽에서 이주했던 뛰어난 유럽 과학자가 아니라 리처드 파인만처럼 미국에서 성장한 전형적인 엘리트인 셈이다. 이 책은 2011년에 출간되었는데, 이 책의 중심이 되는 대형 하드론 충돌기(Large Hardron Collider: LHC)로 하는 거대 과학 연구의 최전선을 보여주고 있다. 이 거대한 실험 장치는 2008년에 완성되었으나 초기의 사고로 1년에 가까운 수리과정을 거쳐 2009년에 다시 가동을 시작하고 2010년 첫 실험이 성공을 하고 있다. 2012년에 LHC과학자들이 찾는 입자 중의 하나인 힉스입자를 발견하게되고, 그 결과 기존에 이 힉스입자의 존재를 예측한 이론 물리학자에게 노벨상이 주어진 것이 그 이듬해인 2013년이다. 따라서 이 책은LHC이 양성자 충돌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던 흥분된 분위기(아직 힉스 입자가 발견되기 전이긴 하지만)와 기대를 가진 상태에서 저술되고 출판되었을 것이다.

 

   우선 책의 내용을 들어가기에 앞서 이 책은 상당한 양과 수준높은 물리학적 개념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미 대중에게도 유명한E=mc^2이외의 수식은 보이지 않을정도로 수식이 없는 물리학 대중서를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역히 보인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책은 입자물리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모든 상세한 부분까지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상세한 물리학적, 기술적 지식이 없거나 이해하기 힘들어도 최신의 입자물리학과 우주론 분야에서 어떤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연구의 최전선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으로는 손색이 없다.

 

   저자 리사 랜들이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강조한 전체적으로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행동하라라는 강령을 받아들인다면 우선 이 책에 대한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접근하기 쉬울 것 같다. 이 책은 크게 보아 3부분으로 나뉘어 있다고 이해하면 될 것같다. 어린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상을 가장 크게 그린다는 사실처럼 저자에게 가장 중요한 첫 부분이 가장 크다. 곧 리사 랜들의 주요 연구 분야의 하나인 입자물리학 분야는 1부에서 4부까지에 이르는 (1-18) 영역에 걸쳐있다. 앞부분에서는 스케일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시작으로 입자탐색에 필요한 거대 장치인 LHC연구가 필요한 이유 그리고LHC 건설하는 지난한 과정 장치에 대한 상세 설명, 측정과정과 예측 모형에 대한 이야기, 결과와 데이터 해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두 번 째 영역은 저자의 다른 연구 분야인 우주론 분야를 5 (19-21)에서 다루고 있다. 입자 물리학과의 관련성을 언급하며 서로 다른 대상을 연구하는 영역이 어떻게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우주와 물질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하는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 6부에서 저자는 창조성과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 책은 크게 입자물리학과 우주론 연구의 최전선을 대중에게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이 연구의 방법론과 과학적 사고의 가치에 관하여 세계정상급 과학자가 솔직하고 세심하게 일깨워 주고 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에서 가장 큰 영역인 입자물리학 연구와 관련한 1-4부에서는 일반적으로 크기 척도라고 이해할 수 있는 스케일(scale)에대한 이해를 출발로 하고 있다. 상세한 물리학적 지식을 떠나 스케일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크기가 다른 관심 영역에서 다른 물리학적 법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점이다. 뉴턴 역학으로 대변되는 고전물리학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폭넓은 범위에서 관찰되는 물리현상에 두루 적용할 수 있다. 야구와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 우주탐사및 우주선 개발(물론 우주선에 사용된 반도체 칩은 양자역학을 적용한 것이지만)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전히 유효하다. 반면 보다 작은 스케일 예컨대 앞에서 언급했던 나노미터의 스케일만 하더라도 뉴턴 역학으로 예측할 수 있는 현상말고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작은 크기의 영역에서는 양자 물리학에서 적용하는 물리학의 규칙을 적용해야한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 다른 스케일, 즉 크기 영역에서 다른 물리학의 규칙을 적용해야한다는 점이다. 이는 어느 한 쪽의 물리학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야구와 농구라는 다른 스포츠의 영역에서 다른 규칙을 적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논의가 좀더 확장되면 뉴턴 물리학이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우주에서도 좀더 다른 추가적인 규칙이 필요할 때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일반적인 속도가 아닌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물체를 다룰 때,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여 물리적 현상을 이용할 것이며, 일반적인 우주 공간에서의 밀도와 달리 극적으로 밀도가 높은 공간에서 물리적 현상을 이용할 때,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물리 현상에 적용하게 된다는 식이다. 결국 물리학에서의 연구 방법은 여러 가지 길이 있겠으나 이론에 합당한 가장 단순한 모형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조건을 덧붙이고 새로운 조건에서 물리적 현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따져간다. 그리고 실험을 통해 간단한 모형부터 검증해나가며 복잡해져가는 상황을 추가적으로 점검하게 된다. 따라서 실험이 점점 더 고도화되고 어려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하기에 이 책의 1부와 2부에서 다루는 스케일에 관한 요점은 바로 이러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추가적으로 스케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나서 저자 본인의 연구분야인 입자물리학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은 스케일을 관찰하기위한 도구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본다라는 행위는 가시광선이라는 극히 제한되고 좁은 전자기파의 영역이라면 원자보다도 작은 입자들을 관찰해내기 위해 새로운 도구의 필요성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원자보다 작은 아원자 입자들을 관찰해내기 위해서는 이 원자들을 깨뜨리고 이를 검출하는 방법이 있는데 여기에는 고정된 표적에 가속시킨 입자를 충돌시키는 방식과 두 입자를 가속시켜 이 둘을 충돌시키는 방식이 있다고 한다. 고정된 표적에 가속 입자를 충돌시키는 방식은 보다 쉽지만 물리학적인 이유로 인하여 여러 가지 한계와 결과 분석에 어려운 점이 있으나 두 가속 입자를 충돌시키면 더 높은 에너지를 얻고 보다 풍부한 충돌 사건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두 입자를 가속시키는 방식은 기술적으로도 매우 어려우므로 입자 빔(beam)을 잘 통제하고 조절해야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3부와 4부에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입자물리학 연구의 최전선을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완성된 거대 과학 시설인 대형 하드론 충돌기(Large Hardron Collider: LHC)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장치들, 그리고 지난한 건설과정과 문제해결과정, 관련 연구자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소개되어있다. 이 시설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보다 큰 에너지를 가진 가속 입자를 얻기위해 인류가 만든 가장 큰 과학 시설로서 두 가속 입자를 반대 방향으로 가속시켜 충돌시키는 실험 장치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저자인 리사 랜들은 2부에서 이미 LHC 언급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읽을 때 도대체 왜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를 얻기위해 LHC와 같은 거대하고 값비싼 장비를 건설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이 부분이 불만스러웠는데, 2 5장에 이르러서야 저자는 그 이유를 처음으로 설명하고 있다. 양자 역학에 따르면 보다 작은 세계를 탐구하려면 보다 높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145) 여기서 답을 간단히 얻었다고 해도 저자의 연구 분야인 입자물리학에서 그토록 작은 스케일을 탐구하는데 왜 이렇게 큰 장비가 필요한지는 충분히 납득이 가진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을 저자는 그 다음 장인 2부의 6장에서 또 다시 비밀스럽게 답을 내놓고 있다.

   양자 역학에 따르면 짧은 파장은 높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 양자 역학은 이렇게 높은 에너지와 짧은 거리를 연관시킴으로써 물질의 내부 구조와 상호 작용을 알아내려면 고에너지에서 실험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쳐 준다. 이것이 물질의 기초를 이루는 핵심을 탐사하는 데 입자를 고에너지로 가속하는 가속기가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이다. ()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 원리가 짧은 거리를 큰 운동량과 연결시켜 주고, 다시 특수 상대성 이론이 에너지, 질량, 그리고 운동량을 관계지어 주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밀하게 탐사할 수 있다. (154)

   다시 정리해서 말하면 입자물리학에서 기본 입자를 탐색하기위해서는 양자 역학적 원리에 의하여 아주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기 위해 높은 에너지의 입자를 충돌시켜야하고, 이를 위해 거대한 LHC같은 장비가 필요하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리사 랜들이 이야기하듯 결국 LHC 아주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한 초고성능의 현미경인 셈이다. 높은 에너지를 가지는 파동, 짧은 파장을 갖는 파동과 분해능과의 관계를 저자는 그물 대한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부분은 이해가 되는 좋은 비유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잡동사니 더미 속에 묻혀 있는 여러분의 지갑을 그물로 걸러 찾는 일과 비슷하다. 그물의 (파장의 크기) 충분히 촘촘해 지갑(탐색 입자)보다 작아야 지갑을 찾을 있는 것처럼 아주 작은 스케일 내부를 보려면 그것을 분간해 만큼의 분해능을 가져야 한다. ” (153)

   완벽하진 않지만 정도를 이해하고 나면 이제 입자 가속기가 역사적으로 계속 규모가 커져왔는지를 비로소 이해할 있다. 따라서 기존에 검출이 어려웠던 입자들을 검출할 있다는 기대가  LHC처럼 새롭고 규모가 시설이 생겨남에 따라 더 커지리라 것에도 수긍이 간다. 다만 스케일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장비를 통한 간접 측정의 필요성과 LHC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조금 앞부분에 배치되었다면 부분이 좀더 부드럽게 논리가 연결되어 자연스럽게 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 거대한 LHC시설을 보면서 그토록 작은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이토록 장비를 사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면서 세상엔 공짜가 없다.’ 말은 이런 경우에 (물리학적으로) 적절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LHC 구조와 연구 방식 관해 내가 이해한 바로는 우선 가속기를 운영하는 준비 단계로서 초전도 자석을 냉각시키는 단계, 입자 가속 단계, 검출 데이터 기록 단계, 데이터로부터 물리적 의미를 파악하는 단계가 것이다. 우선 준비 단계로 입자 빔이 통과하는 튜브 주위의 초전도 자석을 냉각시키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온도를 1.9 켈빈(K), 대략 섭씨 영하 271 정도로 낮추어야 자석이 초전도 상태가 되고 강한 자기장을 형성하게되며, 가속하는 하전 입자들을 원형 링의 튜브에 부딪히지 않도록하고 방향을 조절할 수 있으며, 입자들의 뭉치 작은 영역에 고도로 집중시킬 있다는 말이되겠다. 일단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초전도 자석의 링을 1.9 켈빈으로 냉각시키고 나면 입자 빔을 낮은 에너지 상태로 가속시키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에너지 수준에 이르면 링으로 입자 빔을 보내 높은 에너지 상태로 가속시킨다. 여러 단계를 거쳐 가장 링에서 반대방향으로 회전시켜 가장 높은 에너지로 가속된 입자들의 뭉치들을 충돌시키면, 수많은 충돌 사건이 일어나고,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때로는 새로운 입자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때 모든 입자들의 궤적은 거대한 검출기에서 검출된다.  LHC 설치된 검출기의 이름은 CMS ATLAS라는 검출기이다. 검출기들은 무게가 최소 7000 톤이 넘고 길이가 20-40미터에 이르는 거대하고 세상에서 가장 민감한 검출기가 된다. 기본적으로 검출기는 충돌 사건을 통해 나타난 입자들의 궤적을 검출하는데, 전하를 입자와 중성인 입자, 상호작용의 정도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누어 입자를 추적할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 발생하는 , 이를 무리없이 기록하고, 대부분의 쓸모없는 데이터의 바다 속에서 의미있는 데이터를 솎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가려낸 데이터를 다시 실험 이론 물리학자들은 데이터를 구성하여 의미를 파악해내기위해 데이터와 씨름하게 된다.

 

   한편 저자는 LHC건설 과정에서 생긴 기술적인 어려움 외에 예기치 못했던 현실의 문제들과 과학적인 사고와 연구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군데 군데 많이 하고 있다. 물리적인 현상에 대한 이해 부족이 두려움으로 변하여  LHC연구에 대해 일반인이 소송을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가속이 내부에서 고에너지 입자들을 가속시켜 충돌시키는 실험을 하면 순간적으로 매우 강력한 블랙홀이 생길 있는데, 블랙홀이 지구를 집어 삼킬지도 모른다는 것이 소송 내용의 주요 골자이다. 에피소드의 결말은 소송자의 패소로 결정이 났지만 과학자들이 대중에게 과학 연구의 내막을 알리고 소통하는 또한 중요한 일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바로 과학자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리사 랜들은 또한 입자물리학과 같은 기초 물리학 연구의 중요성을 여러 곳에서 역설하고 있는데, 유럽의 입자 가속기 연구소에서 연구원끼리 데이터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려는 용도로 만든 내부 네트워크가 현재의 월드와이드웹으로 발전하게 기초 기술을 제공해주었다고 말한다. 한편 대부분의 자동차에 부착되거나 모바일 기기에 내장되어 있는 GPS장치에는 일반 상대성 이론이 적용되었다는 점이나 의료분야에서 사용되는 양전자단층 촬영 장비(PET) MRI장비를 기초과학의 연구로 우리에게 주어진 혜택이라고 말한다. 이런 부분은 기초과학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 일반인에게 소개하는 구체적인 사례가 되기도 하면서 향후 가속기 연구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들을 설득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할 것이다. 실용주의자로서 리사 랜들은 한편으로 모형만들기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LHC같은 시설에서 검증을 하려는 과학자이다. 저자는 과학에서의 모형이라는 것이 이론과는 다르다고 특징을 부연한다. 모형 외삽의 방법으로서 파워포인트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모형 이론 멋지게 구분하고 있다. 이론을 파워포인트의 템플릿이라고 한다면, 모형이란  여러분이 만드는 프리젠테이션 자료이다. 이론에는 파워포인트의 모든 애니메이션 효과가 포함될 있지만 모형에는 발표의 요점을 전달하는데 필요한 애니메이션 효과만 들어있다.”  (388) 또한 저자는 연구 방법으로서 가지 다른 접근 방식을 하향식 방법(간단하고 기본적인 원리로부터 구체적인 현상을 설명한다, 플라톤적 방법) 상향식 방법(구체적인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근본적인 의미를 파악한다, 아리스토텔레스적 방법)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론을 세우고 현상을 설명하려 , 미학적 기준에 상당히 제한을 받는다는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리사 랜들은 아름다움이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진리에 대해 신뢰할 만한 심판자가 없는 주관적인 기준일 뿐이다.”(372)라고 미학적인 기준에 경도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리고 모형을 만들어 설명하려는 저자의 연구에 대해 생각할 있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고민하여 모형을 만들어가면서 열린 마음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열린 마음은 사람의 지위가 높아지고 권위를 가지려면 견지하기 매우 힘든 자세이다. 하물며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인 저자가 이런 마음 가짐을 가지고 동료들과 경쟁하고 협력하는 모습은 그녀가 최고의 과학자가 있었는지를 반증하는 사례라고 있다.

 

   지금까지는 리사 랜들의 주요 관심 분야인 입자물리학, 매우 작은 세계를 탐구하는 이야기를 했다. 5부에서는 저자의 다른 관심분야인 우주론에 대해 간단히 다루고 있다. 공교롭게도 우주론은 물리학에서 생각할 있는 가장 영역, 가장 스케일에서 나타나는 물리적 현상을 다룬다. 어떻게 저자는 전혀 달라보이는 극단의 영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나같은 문외한의 경우, 영역은 그다지 연관이 없어보이지만 리사 랜들은 극단의 영역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단지 다른 스케일에서 다른 물리법칙을 적용한다는 앞에서의 언급처럼 작은 입자들의 세계에서는 중력은 너무나도 미미해서 무시되고, 입자 사이의 핵력과 전자기력이 주요한 고려 대상이 된다. 반면 우주적인 스케일에서는 짧은 거리에서만 유효한 핵력과 전자기력보다는 중력이 매우 중요해진다고 한다. 우주론을 연구하는 동료 과학자 앨런 구스(Alan Guth) 소개하면서 저자는 분야(우주론과 입자물리학) 관심사가 접근함으로서 우주에대한 비밀을 밝혀내고 있으며 의미있는 고찰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허블 상수에대한 보다 정확한 측정으로 우주의 나이를 137.5년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나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WMAP) 실험을 통해 우주는 실제로 평평하다 사실을 이야기할 매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파이같은 우주라니!) 더욱이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을 검증하는 데는 최고의 정밀도와 정확도가 필요하다.’라는 대목을 읽은 공교롭게도 나는 아인슈타인의 중력파 검출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우리의 실생활에 직접적으로어떤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닐텐데 여전히 세계 어딘가의 연구실에서는 우주를 바라보고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자연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소식이었다. 특히 여전히 정체를 모르고 있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탐색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은 연구분야인 같다.

  

   책에서는 세계적으로 규모가 암흑 물질 탐사 현황을 언급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암흑물질 탐사를 하고 있다. 실험은 지하 깊숙히 들어가야하므로 강원도 양양의 폐광에 검출기를 설치하여 암흑 물질을 검출하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는 모습을 다큐멘터리에서 기억이 있다. 이러한 기초과학 분야는 빠른 시일에 결과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지속적인 연구비 지원과 일반 과학 기술 분야의 연구 평가 방식이 분명 달라야 것이다. 그렇지 않고 논문 수로만 연구 능력을 검증하는 일은 분명 훌륭한 연구자들이 있어도 지반이 아직 튼튼하지 못한 국내 기초과학의 토양마저 황폐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 특히나 기초과학의 연구 분야에 있어서는 효율성과 다산성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리사 랜들 역시 기초과학 연구의 이익이나 포기에 따른 경제적인 비용을 제대로 계산하기는 매우 어럽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한국인이 노벨 과학상을 받는 일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는 장기간의 투자와 튼튼한 인프라 구축(인적, 물적, 문화적 측면에서)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런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노벨상을 타기위해 마치 올림픽에서 메달 따듯 선수를 길러내려는 자세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인프라와 연구에 대한 투자가 진정성있고 내실이 있어야만 LHC연구와 같이 성공적이고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갈 있겠다는 생각을 책을 덮고 생각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리사 랜들은 창조성과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당부를 하며 짧은 장을 할애하고 있다. 천재의 자질을 이야기하는데, 어떤 유전적이고 선천적인 영향보다도 눈앞의 문제에 인내심을 가지고 집념해내는 자질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고공 줄타기 예술가 필립 프티의 사례가 인상적이었는데, 필립이 실제로 줄타기 전에 수많은 건물의 도면과 계산을 통해 엄청난 준비를 하고, 재료의 특성 등을 연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집념을 가지고 예상할 있는 모든 세부적인 사항을 고려하고 몰두해내는 능력이 천재의 자질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상자 밖에서 생각하기라는 표현처럼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것을 우리에게도 권하고 있다. 문학에서 흔히 얘기하듯 낯설게 보기 바로 이러한 접근 방식이 아닐까 한다. 상자의 밖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생각하면 새로운 인식을 통해 새로운 질문하기가 가능해진다. 리사 랜들은 이러한 방식을 커다란 전망과 디테일에의 집중이라는 멋지고 간결한 표현으로 결론짓고 있다. 다시 말하면 넓은 시야를 갖고 전체를 조말할 것과 현재 하는 일의 의미,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라는 이야기에 덧붙여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끊임없이 검증해나가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천국의 문을 두르리며> 읽으면서 생각은 책의 세부적인 사항이 어렵고 수준이 높다는 점이었다. 나만 이해하기 힘들었을까. 아무래도 독서 경험이 짧은 나로서는 이해하는 시간이 좀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속에 너무나 많은 물리학적 개념들이 담겨 있어서 개별적인 의미를 일일이 파악하기 전에는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점이다. 책은 최신 입자 물리학 연구의 현황을 보여주는 대중서라고 있지만, 다만 대상 독자(target reader) 일반적인 대중은 아닐 같다는 것이 생각이다. 입자 물리학에 상당한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 혹은 물리학과 학생들이 입자 물리학의 최신 연구를 살펴보는데 적합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책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씌여진 것이라면 대상 독자를 예상하는데 있어 어긋난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논의하고 결의하는 교토의정서에 반대한 것에대해 비판하는 대목(279) 신자유주의 경제 전문가들의 시각에대해 비판하는 대목(288)에서는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입자 물리학과 우주론의 최전선에 있는 연구를 소개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첨언: 번역에 관해)

   우리 글의 문장 구조에 콤마(,)가 상당히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아마도 영문 텍스트의 문장에 사용된 콤마를 충실히 번역하는 과정에서 우리 문장에도 일괄적으로 적용한 것이 아닐까 생가하는데, 문장 부호가 영문에서 보이는 것처럼 발달되지 않은 언어에서 과연 일률적으로 문장부호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울러 접속사 although내지는 though를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이 너무나 많이 보인다. 이 표현은 일본에서 많이 쓰는 방식으로 알고 있는데, 이수열 선생은 <우리말 바로 쓰기>에서 많은 사람이 필요없이 상투적, 확일적으로 써서 말과 글의 세련미를 해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언어라는 것이 유동적이고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으므로 많이 사용하게 되면 이것을 잘못되었다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에 나오는 글에서는 보다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하는 부분이 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우리가 연구하는 극히 작은 물체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를 발견해 온 과정의 총합이다." (19면)

"전제하고 있는 가정의 불확실성이 아주 크다면, 위험이 적다는 예측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예측이 가치를 가지려면 불확실성을 완전히 고려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268면, 11장 물리학과 위험관리)

"이론을 파워포인트의 템플릿이라고 한다면, 모형이란 여러분이 만드는 프리젠테이션 자료이다. 이론에는 모든 애니메이션 효과가 포함될 수 있지만 모형에는 발표의 요점을 전달하는데 필요한 애니메이션 효과만 들어있다."
(390면, 15장 진리, 아름다움 그리고 그밖의 과학적 오해들)
‘이론’과 ‘모형’의 차이에 관해 설명한 부분


"이러한 이유로 모형을 만드는 사람들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479면)
"지금 우리는 미학적 기준을 가지고 어떤 모형을 다른 것보다 더 좋아하고 있을 뿐이다." (480면)
- 솔직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저자의 면면을 볼 수 있다.

"모든 창조적인 사람에게 필수적인 능력은 옳은 질문을 하는 능력이다. (…) 가장 훌륭한 과학은 대개의 경우 광범위하고 중요한 문제를 인식하는 것과, 몇몇 사람들만이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명백히 작은 문제나 세부 사항에 집중하는 것 모두를 필요로 한다." (557면)
- 과학적 태도. 왜라고 질문하고 의심하라.

이 말은 리차드 파인만이 한 다음의말을 떠올리게 한다.

"Of all its many values, the greatest must be the freedom to doubt."

곧 의심할 수 있는 자유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일게다.

"예비 조사와 기술적인 재능, 집중력과 인내력, 올바른 질문, 자신의 상상력에 대한 주의 깊은 신뢰 모두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법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568면)

"이 책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의 다른 주요한 요소는 스케일, 불확실성, 창조성, 그리고 이성적인 비판적 추론 등의 과학적 사고에 대해 말해주는 개념들이다."
(571면) 이 책의 핵심을 저자 자신이 잘 요약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비판적인 과학적 사고야말로 우주의 구조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데 있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방법이다." (571면)

"과학적 사고는 불확실성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다. 이것은 위험을 적절히 평가하고 단기간과 장기간의 영향을 설명한다. 또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창조적인 생각을 허용한다." (576면)
- 과학은 무조건적으로 `정확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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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업 사회 -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
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 펜타그램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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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업사회 無業社會>

구도 게이 & 니시다 료스케 지음 | 곽유나, 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한 회사의 여러 자리를 지원한 것을 포함하여 200군데 넘는 곳에 지원했으나 면접은 10군데 정도 봄. 대부분은 연락도 없이 낙방. 겨우 한 군데 취직하여 1년 남짓 일하고 관둔 후 1년 정도 히키코모리 생활 경험 있음.

 

   눈치 챈 분도 계시겠지만 이 보잘것 없는 구직 이력은 바로 나의 것이다. 그렇다. 한 때 나는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은둔형 인사였다. 심각한 외톨이는 아니었으나 친구를 보는 것마저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부담으로 다가왔던 적이 있다. 따라서 히키코모리, 니트족, 은둔형 외톨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어떤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는지, 그 느낌이 무엇인지 나는 어느 정도 알고있다. <무업사회>를 읽으며 나는 나의 가까운 과거의 모습들을 떠올리면서 나의 모습들을 또한 그대로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예는 어느 정도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며, 따라서 내 경험이 곧 나만의 것이 아님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두 명으로, 청년 취업을 지원하는 소다테아게넷(길러내는 네트워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구도 게이와 젊은 사회학자 니시다 료스케이다. 이들은 청년의 취업을 실제적으로 지원하는 현장에서의 경험과 사회학적 접근 방식으로 여러 가지 통계적 자료를 통해 사회에 드러난는 현상들을 이해하고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한 사람은 현장에서 직접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젊은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민하고 이를 해결해나간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실제적인 자료를 통해 현상에대한 보편적인 의미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서로가 아주 적절한 보완 관계를 이루고 있다. 한 사람은 구체적인 사례, 실제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에 초점을 맞추며, 통계적인 자료가 가질 수 있는 한계를 보완하며, 다른 한 사람은 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객관화된 시각으로 현상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저자들은 2010년대의 일본사회가 무업사회라고 규정한다. 이들이 정의하는 무업사회란 누구나 무업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무업 상태에 처하게 되면 그로부터 빠져나오기가 힘든 사회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 또한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나의 무식 상태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이제는 내가 어렸을 때 접했던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에 수긍이 가는 사회가 아닌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안락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는 교훈은 이제 그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노력하면 그만한 보상이 따르는 사회는 일본이 패전 후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통해 고도로 성장하던 시기의 이야기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제는 잃어버린 10, 잃어버린 20이란 말처럼 일본의 장기 침체기로 그 회복을 예측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에대한 강한 회의감과 피해의식이 팽배해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신자유주의 경제 가치가 도입되고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이 시점에서는 이러한 무업 상태에대한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는 논리로 포장되고 비판없이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분명히 이 무업사회의 현상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끄럼틀 사회, 도미노 현상과 같이 한 번 추락하면 멈출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은 단순히 어느 개인의 게으름에 기인하는 문제가 아니라 보다 큰 전체의 문제, 구조의 문제,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문제는 사회 구성원들의 핵가족화, 가족해체, 나아가 개개인으로의 원자화 현상과 함께 더욱 사회적으로 고립이 되어버리는 구조에 기인한다.

 

   서경식 교수가 흔히 쓰는 표현대로라면 나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하여 노동 시장의 외부로 밀려나 유동하는 이들을 새로운 형태의 디아스포라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은 이미 전 지구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주도하는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난 개인들은 다시 이 노동시장 카르텔에 진입하는 것이 만만치 않으며, 상당수가 결국 사회에서 탈락하게 된다. 곧 이들은 한 사회 내에서 정당한 시민권을 가지고 한 국가의 정당한 국민임에도 보이지 않는 무한 경쟁의 전장(battle field)에서 밀려나 유동하는 인구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 유동하는  난민들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경제적 요인에 기반한 디아스포라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개개인이 직장을 잃고 고립이 되기 쉬운 무업사회는 인간관계마저 파괴한다. 책에 언급된 실제 사례를 보면 상당수가 내가 처한 상황이나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특히 일단 취직이 어려워지면 경제적인 사정도 안좋아지게되고, 그러면 결국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지게 된다. 사실 이런 경우는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이 곁에서 말없이 도와주고 지원해주고 할 수 있는 운이 좋은 경우에만 해당할 것이다. 내가 힘든 상황일 때 곁에서 격려와 실질적인 도움을 줄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당장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일단 집 밖을 나간다는 것은 차비 및 식비가 필요할 수 있다. 따라서 아주 친한 친구라도 만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이것마저 부담이 된다면 결국 한 무업 청년이 머물게 될 곳은 대부분 가정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무업사회>에 등장하는 청년들은 상당 기간을 집에서, 자신의 방에서 고립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집 밖을 나간다면 주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나는 나스스로 고립이 되지 않기 위하여 아침마다 헌책방을 다니며 구경하고 앉아서 책을 읽곤 하였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에서 마련하는 무료 강연회에 나가기도 하면서 나 스스로를 지켜나가도록 노력했던 때가 있었다. 나는 가족들의 지원과 격려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운이 좋은 경우였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기본적인 인간 관계마저 어긋나게 마련이다. 나아가 자신감을 잃어가고 자신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기도 하는 등 자존감마저 잃기가 쉽다. 결국 장황하게 이야기 했으나 무업사회라는 현상의 기저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 있으며 언론과 미디어에서 표명하기도 하듯 게으른 청년들로 치부하고 비난하기 보다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청년들을 품어주는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저자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무업사회>는 일본 사람에의해 일본 사회의 모습들에 기반하여 지어진 책이지만 우리가 이 책을 들여다 보는 일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조금 먼저 경험한 것들이 많이 있다. 곧 일본 사회의 모습을 보면, 가까운 미래의 우리 사회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가 일본형 시스템이라고 말하는 일본 사회의 단면들의 특징들은 곧 우리 사회가 많이 닮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주로 대기업 위주의 기준이기는 하지만 일본은 신규졸업자의 일괄적인 채용, 종신 고용(평생 직장), 연공서열형 임금(직장 내 호봉) 등의 모습을 최근까지도 유지하였으며, 이는 가까운 과거가 간직하던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본형 시스템은 점점 급변하는 세계화의 추세로 요구되는 변화와 충돌이 일어나고 있으며, 기존의 가치들은 이미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고 새로운 형태의 구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눈에 띄는 사실은 일본 사회에서 저출산/고령화가 일찍부터 예견되었으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개혁을 미루어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이미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으므로 서둘러서 해결책을 찾아야하는 실정이다.

 

   <무업사회>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있는데, 1부는 무업사회의 개념과 현상에대한 고찰을 시작으로 청년 무업자들에 대한 언론과 미디어의 오해를 언급하며 청년 무업자를 지원하는 일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그리고나서 청년 무업자 문제의 구조적 조건과 역사적 측면을 살펴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 구도 게이가 설립한 소다테아게넷과 같은 NPO의 역할에 대해 정리하면서 1부를 마무리하고 있다. 청년 취업 지원 프로그램이 고려해야할 사항으로 첫 째, 작은 성공 사례를 만들 어서 사회에 널리 알리는 것이 필요하며, 둘 째, 오로지 현장에서 축적이 가능한 작은 데이터들을 지속적으로 축적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러한 데이터들은 여러 종류의 가치로 변모될 수 있는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코 시스템을 만들라고 주문하고 있다. 곧 해결하려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기여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생태계(에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도록 알리는 일의 중요성도 잊지 않는다. 이는 사회의 청년 무업자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도록 하는데 중요한 일일 것이다. <무업사회> 1부가 대략 이런 이론적이고 원리적인 내용을 여러 통계적인 자료와 함께 담겨 있다면, 2부에서는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실제로 히키코모리 생활을 경험해 본 6명의 사연을 통해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     

 

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1부에서 저자는 누구나 무업자가 될 수 있다라고 강조하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