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시티
테주 콜 지음, 한기욱 옮김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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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조건, 그리고 불안을 읽다

- 오픈 시티

 

테주 콜(Teju Cole) 지음 | 한기욱 옮김 | [창비] | (2023)

 




오픈 시티의 화자 줄리어스는 뉴욕에서 일하는 정신과 전문의다. 성공한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상상하려면 몇 가지 정보가 최소한 더 필요하다.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독일에서 부모와 함께 난민의 지위로 지내기도 했던 것들 말이다. 이제 좀 더 윤곽이 보인다. 화자는 인생의 여러 국면에서 수차례 경계를 넘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삶을 하나의 연속으로 경험하고 오로지 삶이 사라진 후에, 과거가 된 후에야 비로소 삶의 불연속들을 본다. 과거란,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대부분 텅 빈 공간이며 의미심장한 인물과 사건이 떠다니는 무()의 거대한 확장이다. 나이지리아가 내게 그랬다.”(311)

 


이제 독자는 줄리어스를 따라가며 동시에 그의 의식도 들여다본다. 줄리어스는 회계사와 만난 후 맨해튼의 브로드웨이를 따라 걸어 내려간다. 맨해튼의 남단에 위치한 배터리 파크에 닿은 그는 뉴욕시의 과거를 소환한다. 뉴욕시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유럽의 이민자들이 배 위에서 보았을 법한 자유의 여신상과 이들이 피곤과 희망이 섞인 몸과 마음으로 내렸을 엘리스 아일랜드가 보이는 장소다. 하지만 미국으로 들어오던 사람들 중에는 이민국이 있던 엘리스 아일랜드마저 구경하지 못했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을 타고 왔던 사람들이었다. 줄리어스는 이 도시의 공간 이면의 역사를 생각한다.

 


배터리 파크는 19세기 중반에 이 도시의 활발한 상업지구였다. 노예무역은 1820년 미국에서 사형제가 되었지만 뉴욕은 오랫동안 노예무역선의 조선, 설비, 보험, 진수에 가장 중요한 항구로 남아 있었다. 그런 노예무역선의 인간 화물인 노예들 대다수는 쿠바로 갈 것이었다. 아프리카인들은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325)


 

노예제로 이익을 얻는 데서 뉴욕의 씨티은행은 동시대 상인들과 은행가들이 세운 다른 회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중에 AT&T와 콘 에디슨이 된 회사들이 바로 이런 환경에서 부상했다. 전세계 최고 부자들 중 하나인 모지스 테일러는 오랫동안 설탕 상인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뒤 1837년에 씨티은행 이사진에 합류했다. 그는 1855년에 은행장이 되었고 1882년 죽을 때까지 그 직책에 복무했다. 테일러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 측의 군수물자에 자금을 지원했지만 뉴욕항에서 쿠바산 설탕 판매 중개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기도 했다. 그는 사탕수수 농장주들의 수익에 투자하고 뉴욕시 세관의 화물 수속을 용이하게 하며 노동력획득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했다. 달리 말하면 그는 농장주들이 노예 구매 비용을 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일을 실행하는 일환으로 자기 소유의 배를 가동하기도 했다. 그는 여섯 척의 배를 공해에 출항시켰다. 테일러와 그와 같은 다른 은행장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들의 그런 낙관주의는 크게 수지맞았다. 수익률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완전한 장비를 갖춘 약 13,000달러짜리 노예선 한척이 20만 달러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인간 화물을 실어나를 것으로 예상되었다. 1852년 씨티은행이 최대 수익을 거두었을 때, <뉴욕 타임즈>는 만약 당국이 이런 부당 이익 취득을 중지시킬 수 없었다고 변명한다면 그건 단지 당국 자체의 우매함을 실토하는 꼴이며, 그게 의지의 문제라면 당국이 초래한 도의적 죄는 다름 아닌 노예무역상들의 죄와 동급이라고 지적했다.”(325-326)

 


줄리어스는 은행들이 하는 행적에 대해 비판의 언어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저 브뤼셀에서 만나 열띤 정치토론을 벌였던 파루크가 한 말처럼, 독자에게도 네가 이걸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듯했다. 줄리어스가 휴가 중 브뤼셀에서 만난 파루크는 정치철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던 독립 연구자였다. 그 역시 아프리카인이며, ‘2의 에드워드 사이드가 되고 말하던 청년이었다. 정치철학자로서 파루크는 다름의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주목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소설이 12년 전인 2011년에 출간된 것을 고려하면, 식당에서 이들이 토론하던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문제는 특히나 놀라울 정도로 시의성이 있는 문제였다. 사실 꽤나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정치적 문제였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것처럼 현재진행형인 장면이었다.

 


파루크는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의 생각을 보여주는 줄리어스와 여러 면에서 견해를 달리하지만, 다름에 대해 기꺼이 수용하고 의견을 나눈다. 나아가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 문제의 핵심에 시오니즘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물론 하마스나 헤즈볼라 등의 과격하고 무모한 테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을 둘러싼 문제에서 진보적인 미국지식인의 이중적인 입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어 뱀과 벌의 가르침을 전하는 솔로몬 왕의 놀라운 전래 설화를 이야기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결국 파루크는 미국에 의해 의 세력으로 불리는, 이들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솔로몬 왕의 이야기를 통해 전한다. 파루크가 우린 개별자들이야.’(255)라고 한 말에는 서로 다른 존재의 다른 의견은 필연적이면서도,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동시에 서로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여기서 처음에는 의문 한 가지가 들었다. 이 모든 문제들이 나와는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현재 내 삶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종종 나의 삶이 겨울을 준비하는 마른 나무에 간신히 매달린 나뭇잎 같다고 여길 때가 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존재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나는 보이지 않는 타자에 너무나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다. 내가 사는 공간의 실질적인 주인은 은행이며, 나는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내 생활의 중요한 활동을 이어간다. 또 이를 위해 통신망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고,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사더라도 택배서비스를 이용한다. 나의 먹거리는 지방 현지에서 직접 나는 것도 있지만, 공장을 거쳐 나오는 가공식품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또 이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문명의 동력인 발전소의 신세를 져야만 한다. 나의 외모와 행동은 어떤가. 이 역시 사회 규범의 제약을 받고 있어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생각해보면 내 삶의 절대적인 부분을 자본과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연결망을 유지하는 이들은 결핍된 자원과 동력을 어딘가에서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든, 팔레스타인이든 공격을 주고받으며 아이들, 누군가의 가족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에 우리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삶을 구축하는 연결망에 대한 교란, 연결망의 유지에 관여하는 집단의 활동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삶도 이 사건들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적어도 내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한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종종 세상에서 노예 아닌 자가 어디 있는가? 있다면 나와보라.”(1, 모비 딕, 현대지성, 이종인 옮김)라는 이슈메일의 외침이 떠오른다. 이 말은 사실 고대 로마제국의 정치인이자 연설가, 철학자였던 세네카의 말이라고 한다. 삶을 붙들어 매는 인간의 조건은 시대마다 다를 것이지만, 시대를 넘어 여전히 개개인의 삶을 구속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장, 혹은 자기장처럼 말이다. 어쩌면 인류사(특히 서양사상사)에서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그토록 천착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자유였던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지식인들은 인간의 조건으로서 자유의 문제를, 자신과 인간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고민함으로써 나름의 유산을 남겼다. 인간사의 전제 조건은 아마도 지배하고 규제하는 소수의 세력들과 그 대상이 되는 인간 집단이 설정되어야 전개될 수 있는 것일까. 오픈 시티의 화자 줄리어스는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문명의 흔적을 통해 그 안에 깃든 역사를, 그리고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소설의 제목 오픈 시티전시에 비무장 상태로 있는 대신 적의 가혹한 폭격을 면하는 도시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소설에서 배경이 되는 브뤼셀과 뉴욕에 대응하는 것일 테다. 특히 주 무대가 되고 있는 뉴욕은 세계의 이민자들과 노예가 유입되던 도시이기도 했으니 환대혹은 수용의 의미와 연관지어볼 수도 있겠다. 다만 뉴욕은 세계무역센터가 가혹한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소설의 제목은 꽤나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한편 유색인의 정체성을 지닌 줄리어스의 제국주의·식민주의에 관한 견해는 브뤼셀에 사는 29세의 독립연구자 파루크와의 토론에서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파루크가 원래 공부하려던 정치철학의 길이 무산되고 번역학을 공부하는 설정도 그런 의미에서 주목해본다. 번역가 안톤 허가 자신의 에세이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에서 식민주의자들은 절대 현지 언어를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215)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타국의 언어를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그들(식민주의자들)의 언어를 출발어로하여 자신의 언어를 도착어로 번역하거나, 이들의 논리를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 비판할 수 있을 때, 상징적으로 또 다른 번역의 기능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언어가 사용되는 방식은 권력관계의 산물임을 반증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아프리카 출신의 청년 정치철학자가 번역을 공부하는 설정이 새롭게 다가왔다.


 

함께 읽었던 또 다른 산책자 이야기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를 생각해본다.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 구보는 현재의 도시 경성을 걸어 다니며 줄리어스와 비슷한 시도를 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번번이, 그리고 불현 듯 중단되고 만다. <대학노트>를 들고 사람들의 모습이나 사건, 도시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려하면, 늘상 자신을 감시하는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복 경찰로 보이는 이들의 시선에 예민하게 감지하는 구보의 모습은, 식민지 현실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공개된 거리에서도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위한 메모마저 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이처럼 식민지 현실은 도시에 살던 이들을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고 이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구보는 주점에서나마 자신의 노트를 펼칠 수 있었다. 감시의 시선이 멀어진, 은폐된 주점에서나마 마음 놓고 펼칠 수 있었던 장면이 인상 깊다. 여기에 쓰인 단어들은 여러 가지 정신적인 이상 징후를 알려주는 병명이었다. 식민지 공간을 살아가는 청년 지식인들의 분열적인 자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한편 구보는 식민지 공간의 지식인 청년으로서 현실의 한 부분과 거리를 두는 듯 보인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는 자본주의현실에 대한 세태에 국한될 뿐이었다. 독립운동을 하거나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이런 활동을 하는 동료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현실에 대한 구속감 혹은 공포와 두려움 때문일까. 소설의 장면에서 식민지 현실을 떠올릴만한 장소나 상황 앞에서 구보는 어김없이 신경쇠약을 들먹이며 의욕을 잃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매여 있는 구보 자신에 대한 초상이 바로 신경쇠약이란 증상으로 나타나는 듯했다.


 

취직도 쉽지 않아 주머니 사정도 변변치 않았던 구보는 타인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다. 공개된 장소에서도 자신의 뜻대로 어찌하지 못하는 구보의 시선은 외부의 현실에 부딪쳐 되돌아와 내부로 향하곤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문인들마저 금광사업에 뛰어드는 황금광시대였다. 많은 사람들처럼 현실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자신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거리를 정처 없이 부유하며, 하루를 보낸다. 저자 박태원의 위트가 재미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작품 전반에 걸쳐 우울의 정서 역시 두드러진다. 구보는 여러 장면에서 금전과 행복의 관계, 행복의 조건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90년 전의 삶도 지금처럼, 혹은 이미 자유롭지 못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2000년 전의 철학자 세네카가 말했던 진실은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시대와 정서, 지역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두 소설(오픈 시티,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유사한 점은 아마도 특정한 플롯이 없다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특별히 극적인 사건 없이 산책자의 동선과 시선을 따라 우연히 만나는 대상으로부터 새로운 기억이나 이야기가 파생된다. 단지 일상의 장면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주목해본 소설의 특징은, 두 작품 모두 화자가 생각할 때, 이들의 생각이 그대로 화면에 받아쓰기로 나타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 두 소설 모두, 어떤 부분에선 대화 도중에 누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줄리어스가 브뤼셀의 거리를 걷든, 뉴욕의 거리를 걷든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만나는 문명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과거의 기억은 개개인에게 다르게 간직될 것이었다. 우리가 연속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대부분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개별적으로 다르게 기억되는 사건들만 남아 불연속적인 모습을 하게 될 것이었다. 거리를 걷는 줄리어스를 따라 읽는 동안에도 나는 어떤 현실을 살고 있는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했다. 미디어를 통해서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받고, 미사일에 공격받아 시신이 산적해가는 현실, 거대한 자연 재해든 인재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은 과연 내가 정말로 속해 있는 현실이 맞을까 싶은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존재일 뿐이고, 다행히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살고 있다는 상황자체가 비현실적이기도 혹은 아찔해지기도 한다. 두 소설을 읽으면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조건들을 또 다시 발견한다. 이것이 우리 삶에서 불안이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이유인지 모른다.  




[1] "나는 종종 밤늦게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음을 깨닫고는 지하철을 타고 귀가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정신의학과 전임의 과정의 마지막 해가 시작될 때, 뉴욕시는 걷기의 속도로 내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25)

[2] "거대한 사람들 무리가 지하의 막힌 공간들 속으로 서둘러 내려가는 광경은 언제나 낯설었으며, 나는 인류 모두가 본능에 반하는 죽음충동에 떠밀려 이동식 카타콤 속으로 몰려가고 있다고 느꼈다."(33)

"그리고 그녀가 써준 전화번호를 바라보면서 (...) 수백만의 우리가 도시들 밑에서 이동하는 지하 여행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인간이 땅 밑에서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이 보통이 된 시대의 주민들인 것이다. 나는 또한 잊힌 도시들, 대규모 공동묘지, 카타콤에 있는 무수한 사자(死者)들을 생각했다."(194)

[3] "하지만 나를 건드린 것은 내 정신 지형에서 붙박이 같은 이들 기업의 사라짐뿐 아니라 가장 탄력적인 기업들조차 삼켜버리는 시장의 신속성과 냉정함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확고부동하게 보였던 업체들이 얼핏 보기에 몇 주라는 기간 사이에 사라져버린 것이다."(56)

[4] "작년에 봤던 다른 영화, 동아프리카 거대 제약회사들의 범죄에 관한 영화가 내게 좌절감을 안겨준 것은 플롯 때문이 아니라(플롯은 그럴듯했다), 아프리카의 선량한 백인이라는 틀에 박힌 설정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는 항시 대기 중이었고, 백인 의지의 토대이자 백인 활동의 배경이었다."(74)

[5] "약 이백년 후에 포트 오렌지 지역의 한 청년이 허드슨강을 따라 내려와 맨해튼에 정착했을 때, 그는 흰 리바이어던을 소재로 걸작을 쓰리라고 결심했다. 한때 트리니티 교회의 교구 주민이었떤 저자는 자신의 책을 ‘고래’The Whale라고 이름 지었는데, 첫 출간 이후에야 ‘모비 딕’Moby-Dick이라는 부제가 덧붙었다."(114)

[6] "엘리스 아일랜드는 주로 유럽 난민들의 상징이었다. 흑인들, 이른바 ‘우리 흑인들’은 훨씬 거친 입국항을 알고 있었다."(121)

[7] "줄리어스Julius라는 이름은 나를 또다른 장소와 연결해주었고 내 여권과 피부색과 함께 내가 나이지리아에서 다르다는, 따로 놓여 있다는 감각을 강화해주는 것들 중 하나였다. 나는 올라튜보선이라는 요루바식 중간 이름이 있었지만 결코 쓰지 않았다."(165)

"어머니는 이십대 초반에 독일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도망쳤고 율리아나 뮐러Julianna Müller는 줄리앤 밀러Julianne Miller가 되었다."(166)

[8] "브뤼셀의 통치자들이 이 도시를 비무장 도시로 선언하고 그럼으로써 2차 대전 동안 폭격을 면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브뤼셀은 잔해 더미가 되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드레스덴이 되었을 것이다."(199)

[9] "에드워드 사이드가 내게 그토록 소중한 이유가 바로 그거야, 그(파루크)가 말했다. 알겠지만, 사이드는 젊었을 때 골다 메이어가 발표한 그 성명, 팔레스타인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고 그 말을 듣고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여하게 됐어. 그는 다름이 결코 수용되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지."(213)

[10] "얀 반에이크가 14309년대에 크고 붉은 터번을 쓴 자화상을 그렸을 때, 그건 이방인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는 15세기 겐트의 다문화주의를 입증한 것이었다."(217)

"그들은 단일한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얼마나 흔하고 얼마나 부질없는지 감지하지 못했다. 이런 무지는 분노하는 젊은이들과 강력한 정치적 수사로 그들을 옹호하는 나이 든 사람들이 전세계에 걸쳐 공유하는 특징이다."(217)

[11] "그러더니 그가 우리 전래 설화, 솔로몬 왕에 관한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 하고 말했다. 솔로몬 왕이 한번은 뱀과 벌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어. 솔로몬 왕의 말에 따르면, 뱀은 죽임으로써 자신을 방어해. 하지만 벌은 죽음으로써 자신을 방어하지. (...) 그러니, 모든 피조물은 자기 힘에 걸맞은 방법을 지니고 있어. (...) 전에 말했듯이, 줄리어스, 나는 네가 이걸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 내 생각에, 팔레스타인 문제야말로 우리 시대의 중심적인 문제야."(245)

[12] "유대인들은 세상을 침묵시키기 위해 그 숫자를 이용해. 난 사실 정확한 숫자가 뭔지 아무 관심 없어, 젠장. 모든 죽음은 고통이야. 타자들도 역시 고통을 겪었고, 그게 바로 역사인거야, 고통이."(249)

[13] "내게 중요한 건 아랍 세계라고 불리는 곳에 있는 우리도 단일체가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개별자들이라는 걸 세상이 알아보는 거야. 우린 서로 의견이 달라. 방금 내가 내 절친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걸 봤잖아. 우린 개별자들이야."(255)

[14] "어떤 상실이 그들의 웃음과 추파 이면에 놓여 있는지 궁금했다. 이들(르완다인들) 대다수는 르완다 인종대학살 시기에 십대였을 것이다. 여기 있는 저 사람들 중에 누가 살해를 했을까, 아니면 살해 현장을 목격했을까, 나는 자문했다. 조용한 얼굴들에는 분명 내가 볼 수 없는 어떤 고통이 가려져 있었다."(280)

[15] "본능적으로 아기를 구한 것은 작은 행복이다. 르완다인들과, 그 살아남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 것은 작은 슬픔이다. 최종적인 익명성이라는 생각은 조금 더한 슬픔이다. 아무런 말썽 없이 성욕을 충족한 것은 조금 더한 행복이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이런 식의 상념이 계속되었다."(293)

[16] "생각들이 서로 재빨리 뒤엉켜서, 비행기를 탔을 때 으레 하게 되는 보통의 병적인 생각 외에도 나는 이상한 정신적 전위(轉位) 상태를 떨치지 못했다. 비행기가 하나의 관이고 아래의 도시는 다양한 높이와 크기의 흰 대리석과 석조물이 있는 거대한 묘지라는 생각이었다."(300)

[17] "이 도시(뉴욕) 곳곳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작은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다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310)

[18] "우리는 삶을 하나의 연속으로 경험하고 오로지 삶이 사라진 후에, 과거가 된 후에야 비로소 삶의 불연속들을 본다. 과거란,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대부분 텅 빈 공간이며 의미심장한 인물과 사건이 떠다니는 무(無)의 거대한 확장이다. 나이지리아가 내게 그랬다."(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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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B. 기후 변화 그리고 새로운 숭고
니콜라 부리오 지음, 김한들.노태은.안소현 옮김 / 이안북스(IANNBOOKS)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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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문제는 이제 우리의 존재 자체와 무관할 수 없고 마주쳐야만 하는 당위가 되었네요. 이를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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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과 뉴욕의 두 산책자가 걸으며 사유한 두 도시 이야기

- 테주 콜의 오픈 시티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출간

 




최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소설 가운데, 도시를 거닐며 사유한 작품에 주목해본다. 하나는 우리나라 모더니즘 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소설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판형이 작은 핑크색 바탕의 양장본으로 나왔다. 표지와 글 속의 삽화는 동년배 작가 이상(책에는 필명인 하융으로 기재되어 있다)이 맡아 완성한 판본이다. 박태원과 이상은 각각 1909년과 1910년에 태어난 식민지 키드이자 지식 청년들이었다. 이 소설은 두 사람이 20대 중반이던 1934년에 30회에 걸쳐 일간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신문에 연재만 되었지 단행본으로는 정식 출간된 적이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 없다는 점이 흥미롭다. 소설의 주요 인물인 구보는 26세의 소설가다. 게다가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었다. 만 소속된 직장이 없고 미혼인 상태다. 여기에 중이염을 앓고 시력도 좋지 않아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쓴 문학도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된다. 제목이 말해주듯 소설은 한 소설가의 하루를 담고 있다.

 

이 책과 비슷하게 주인공이 산책하는 소설이 있는데, 이제 막 출간된 장편소설 오픈 시티저자 테주 콜은 미국에서 태어난 유색인(흑인작가다이 작품이 그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한다이 소설에서도 주인공 는 뉴욕을 걷는다그가 만난 장소와 풍경사람들과의 대화와 사유로 소설이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물론 박태원의 소설과 이 소설이 묘사하는 시대를 비롯해서 많은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지만두 소설 모두 경성과 뉴욕이라는 도시를 걸으며 만난 장면들이 특별한 플롯 없이 전개된다는 공통점이 있다게다가 오픈 시티의 작가 이력이 남다르다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나이지리아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다시 미국에 와서 공부했다특히 미술사를 공부하고 졸업 후에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서 4년 간 사진 비평가로 일했다는 점그리고 현재는 하버드 대학에서 문예창작 교수로 재직 중인 점이 특이했다많은 부분에서 백인 지식인이 거쳤을 법한 경로를 밟았던 까닭이다.




 
















 

두 소설에서 두 인물이 주로 하는 일은 그저 도시를 걸으며 눈앞의 풍경을 보고, 생각하는 일이다. 우선 도시적인 장소가 언급될 것이고, 장소가 간직하는 역사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또 산책자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다가도 아는 사람과 마주하기도 할 것이다. 이 때 도시는 새로운 만남의 지점이 되고 대화의 장이 된다. 때론 오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는 오랜 기억을 불러오니 말이다. 두 청년이 각각 두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지를 때, 과거와 현재를 찬찬히 뜯어보기도 할 것이다. 걷기의 목적 없음은 오히려 모든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어디 갈까, 생각해본다. 모두가 그의 갈 곳이었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22) 하지만 두 청년의 도시 걷기는 매우 상반된 입장에서 출발한다. ‘구보씨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 중이염까지 앓고 있다. 자존심은 강하지만 궁핍한 청년이 바라본 하루가 담겨 있는 것이다. 식민지 현실 속에서 빈부격차와 같이 근대화가 가중시킨 여러 사회 현상들을 지켜보며 사유가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많이 든다. 예를 들면 갈 곳 없는 자신(구보)과 달리 안전지대에서 전차를 기다리는 이들을 보고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갈 곳만은 가지고 있었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29) 나는 이 기분이 어떤 느낌인지 아주 잘 알 것 같다. 구보는 번잡한 도시의 군중 속에서 외로움과 애달픔의 감정을 느끼는 인물이다.


 

반면 오픈 시티는 정신과 의사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는 인물이다. 대신 유색인으로서 자신이 지닌 정체성으로부터 세계를 탐구해나간다. 특히 미국이 주도한 국가 폭력의 역사가 도시의 기억과 교차하는 지점을 찬찬히 뜯어본다. 아직 끝까지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가 펼치는 생각과 의식은 구보씨의 경우와 다소 다르다. 오히려 시선이 외부로 향하는 인상을 준다. 백인이 자행한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과 노예제도 문제, 나아가 9·11참사까지, ‘의 기억과 얽키며 교차한다. 두 소설 모두 특별한 플롯이 없기에, 산책하며 떠오르는 사유들을 병치하는 구도가 소설의 줄거리를 이룬다고 봐야할 것이다. 공간에 인간의 시간·역사가 더해진 장소와 만날 때, 이들의 사유는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되어 방향을 전환하며 새로운 사유로 이어진다.


 

오픈 시티에서 흥미로운 점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W.G. 제발트와 J.M. 쿳시, 그리고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저자가 제발트와 쿳시, 그리고 멜빌에 주목한다는 것은 인종차별과 식민주의 역사에 대한 견해가 소설 속에 반영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 프리모 레비를 비롯한 여러 문인뿐만 아니라 재즈 연주자들을 비롯한 예술가들도 언급된다. 사진가이자 사진비평가로 활동했던 오픈 시티의 저자 테주 콜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이 부분만 보아도 그는 영국의 국보급 작가라 불리는 제프 다이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제프 다이어 역시 미술 비평가 존 버거의 책 사진의 이해를 편집했고, 사진 비평서 인간과 사진지속의 순간들를 썼으며, 재즈 연주자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그러나 아름다운을 쓰기도 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테주 콜이 미술사를 공부하던 2007년에 출간된 그의 첫 데뷔작 매일이 도둑을 위한 날 Every Day is for the Thief은 아프리카 라고스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일화 형식으로 포착한 중편소설이다이 소설의 형식이 특이했던 것은 소설의 텍스트에 사진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여 테스트-이미지를 병치시키는 구조를 선택했다는 점이었다다시 말해 사진이 등장하는 소설이었는데어쩌면 이 전에 이미 텍스트에 이미지를 활용하는 W.G. 제발트의 글쓰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그의 첫 소설이 글에 이미지를 사용한 작업이다보니최근에 읽은 죽음의 도시 브뤼주가 떠오른다이 소설은 19세기에 이미 최초로 소설에 사진을 적극 활용했던 작품이었다다만 여기에 사용된 도시의 이미지들은 대부분 당시 사진기술의 제약 때문에 사람은 모두 사라지고 도시의 풍경만 남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또 사진들은 소설의 분위기나 복선을 보여주는 듯 상징적인 기호로서 사용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테주 콜의 첫 중편 소설을 확인하면 차이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저자에 관해 궁금했던 부분은 작가의 정체성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거나 드러날까 하는 부분이다. 이는 소설을 다 읽고 더 생각해볼 일이다. 오픈 시티는 여러 면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요소들을 많이 지닌 작품이다. 아마도 올해 나의 소설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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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1-02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의 독법讀法을 보여주는 좋은 리뷰입니다.

초란공 2023-11-02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황과 이야기 - 에세이와 회고록, 자전적 글쓰기에 관하여
비비언 고닉 지음, 이영아 옮김 / 마농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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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소리, 나의 진실에 가 닿는 글쓰기


<상황과 이야기>

: 에세이와 회고록, 자전적 글쓰기에 관하여

(원제: The Situation and the Story)
 

비비언 고닉(Vivian Gornick) 지음
이영아 옮김 [마농지] (2023)

 

 


 

최근에 비비언 고닉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이번에 읽게 된 상황과 이야기외에 멀리 오래 보기라는 비평집도 최근에 나온 계기로 주목하게 되었다. '작가들의 작가'로 불린다는 작가 소개를 보니, 유도라 웰티, 마거릿 애트우드, 어슐러 K. 르 귄 등등 내가 더 읽고 알고 싶은 대가들처럼, 그녀 역시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지금도 그런 작가인 듯하다. 이번에 읽은 책 상황과 이야기에서는 자신을 꺼내어 보여주는 글쓰기, 곧 에세이나 회고록 등의 자전적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고닉은 흥미로운 회고록 작가로 영국인인 애컬리(J.R. Ackerley)를 꼽는다. 그는 아버지의 사후,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의 비밀스러운과거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딴살림을 차리고 이중생활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젊은 시절 아버지가 남창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동성애 작가로서 아버지의 삶에 호기심을 느꼈던 걸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고닉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그것만은 아니었으리라 깨닫게 된다

 

애컬리는 아버지에 관한, 그리고 부자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회고록 아버지와 나 My Father and Myself에 담았다. 하지만 그는 이 이야기를 오랜 세월이 지나 들려주는데, 그동안 아버지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것보다 결국 자신이 아버지를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음을 말한다. 나아가 그가 회피해왔던 진실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는 점을, '작가 중의 작가' 고닉이 독자들에게 차근차근 일러주는 것이다.


 

고닉은 여기에서 상황이야기의 차이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애컬리는 이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왜 30년이나 걸렸을까? 3년이 아니라.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들려준 것은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상황'이기 때문이다. 꺼내 놓는 데 30년이 걸린 것은 이야기였다."(25)


 

처음엔 곧바로 다가오지 않는 말이었지만, 이는 작가가 자신의 진실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1896년에 태어났고 내 부모님은 1919년에 결혼했다." 이런 문장을 말하는 목소리라면 어떤 주제든 품위 있고 허심탄회하게 이여기할 것이다. 이 목소리로부터 짙은 감정과 선명한 지성, 독창적인 표현과 놀라운 솔직함이 흘러나올 것이다.(25-26)


 

자신과 부모님에 대해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도 이렇게 간결한 문장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폭발하게 만드는 문장이라니. 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위해 30년을 기다린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선전포고문이다. 고닉 역시 이야기를 소재삼아 독자가 자신의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당연히 애컬리의 책 역시 읽고 싶어진다.

 


아버지와 나의 서술자 애컬리는 아주 호감 가는 사람이다. 그가 세련된 정직함을 내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감상적인 자존심의 매끄러운 표면 아래 있는 단단한 진실에 닿을 때까지 불안을 벗겨내고 또 벗겨내며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그를 독자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26)


 

에세이라는 장르를 그동안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던 이유는, 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고난과 상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솔직함이라고 여긴 듯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강박적인 피해의식까지 덤으로 독자에게 얹어주거나 작가의 솔직함을 강요하는 느낌을 받곤 했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의 소설은 아주 마음에 들어 감탄하기도 하지만, 막상 같은 작가의 에세이는 읽기 부담스러운 경우도 있었다고닉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런 에세이들은 아직 자신의 내면 깊숙이 묻혀 있는 자신의 고갱이, 진실에 가 닿는 노력을 다 하기도 전에 출간부터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에세이든 회고록이든 화자와 이야기 사이에도 독자가 숨 쉴 여지가 필요하다. 자전적 글쓰기 작가라면 과거의 자신과 거리를 두는 훈련이 중요할 것 같다. 적어도 읽는 독자로서 나는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는 점, 아울러 그만큼 어려운 지점이라 생각한다. '작가들의 작가' 비비언 고닉은 대가답게 바로 이 지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고닉은 자전적 에세이나 회고록이 청승맞거나 피해의식으로 범벅된 글이 아니라, 단단한 껍질 속에 감추어져 있던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매력적인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 책을 펼쳐 고닉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1] "애컬리는 이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왜 30년이나 걸렸을까? 3년이 아니라.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들려준 것은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상황‘이기 때문이다. 꺼내 놓는 데 30년이 걸린 것은 ‘이야기’였다."(25)

[2] "나는 1896년에 태어났고 내 부모님은 1919년에 결혼했다." 이런 문장을 말하는 목소리라면 어떤 주제든 품위 있고 허심탄회하게 이여기할 것이다. 이 목소리로부터 짙은 감정과 선명한 지성, 독창적인 표현과 놀라운 솔직함이 흘러나올 것이다.(25-26)

[3] "<아버지와 나>의 서술자 애컬리는 아주 호감 가는 사람이다. 그가 세련된 정직함을 내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감상적인 자존심의 매끄러운 표면 아래 있는 단단한 진실에 닿을 때까지 불안을 벗겨내고 또 벗겨내며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그를 독자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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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만든 종이 인형을 사용함)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일까

-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가제본을 읽고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 (2023)




 

저주토끼, 고통에 관하여를 읽고 이제 보라 월드의 세 번째 작품과 만났다. SF 및 환상소설 작가로 널리 알려지기 전에 정보라 작가는 이미 문학연구자이자 번역가로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번역가로 내놓은 도서를 고려하면, 폴란드의 세계적인 과학소설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SF 작품집 로봇 동화까지 네 번째 만남이다. 내게 SF는 테드 창을 비롯하여 비교적 익숙한 장르다. 하지만 환상문학은 아직 적응하는데 여전히 애를 먹고 있다. 아직 문학이라는 자유공간에 적응하는 단계가 필요한가보다.


 

이번에 만난 단편 소설집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수록될 작품 10편 가운데 4편이 묶인 가제본이다. 이 중에서 <감염>은 다른 단편보다 조금 긴 작품으로, 중편소설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이번에 읽은 환상소설 중에서도 특히 몰입하며 읽었다. 이제 겨우 정보라 작가의 작품 몇 편을 가지고 작가의 작품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괜찮을까 싶기도 하지만, 대신 나의 엉뚱한읽기를 독서의 과정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해석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정보라 작가의 작품에는 작가 나름의 고유한 결이 있는 것 같다. 무언가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주는 괴상한 독특함이 있다.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저주토끼에서처럼 죽음과 더불어 초자연적인 현상이 공기처럼 공존하는데, 이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바로 이 기운이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고 해야 할까. ‘죽음이란 현상만 해도 살아있는 존재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 미지의, 불가해한, 삶의 필연 아닌가. 그런데 여기에 첨단 과학의 시대를 비집고 줄곧 존재하는 무언가가 감지되는 것이다.

 


스포를 피하기 위해 부분적인 내용과 감상을 남겨본다. 조금 긴 작품 <감염>에서는 전통적인물리적 폭력과 현대 사회의 미디어 기술로 새로 발명된 수단으로서의 폭력 문제가 얽혀 있다. 저자는 인간이 자행하는 폭력에 대해 주목하고 탐구한다. 평생 무고한 삶을 살아온 인간이 현대 기술의 마수에 붙들려 폭력을 자행할 수밖에 없게 되는, 숨 막히게 갑갑한 상황이 설정되어 있다.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괴이한 상황이다. 폭력이 싫어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은, 또다시 폭력을 사용해야만, 이 부조리하고 섬뜩한 상황을 벗어날 가망이 보일뿐이다. 작품 속의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당신이라면, 그러니까 파리잡이풀에 걸려든 파리처럼 걸려든 덧으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몸의 움직임은 점점 더 둔해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나는 이러한 감각을, 기업과 자본이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규정하고 통제하고 있는 현실로도 치환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환상소설은 우리 사회의 내면을 비추어주는 우화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소설 속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일지 모르지만, 맥락에 따라 우리 사회의 다양한 진실을 비추어줄 수 있겠다.


 

원래부터남을 때리는 취미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과연 나는 원래 착한 사람이기에, 앞으로도 죄를 짓지 않겠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이란 존재는 상황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을 소설은 충격적인 설정으로 보여준다. 어쩌면 이것은 폭력의 속성을 서늘하게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말 폭력이란 이상한 것”(63)이다. 처음에 폭력 가해자가 벌벌 떨면서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했더라도, 자기혐오의 지점을 지나 무의미한 폭력 행위가 반복되고, 점차 폭력에 무뎌져간다. 폭력에 대한 몸의 중독이라고 해야할까. 오래 달리는 마라톤 주자들이 먼 거리를 달리며 극심한 고통을 느끼다 결국에는 이 고통에 몸이 적응하며 심지어 쾌감까지 동반하는 러너스 하이상태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가해자는 폭력 자체에 점차 익숙해져가는 것이다. ‘원하지 않은폭력 가해자는 피해자를 점차 대상화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기도 한다. 이건 피해자의 고통과 가해자의 쾌락이 조응하는, 괴이한 상황이다. 내가 폭력을 가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혐오하고, 동시에 몸이 기억하는 쾌락의 감각을 또다시 갈망하는 존재가 된다고 상상해보라. 허리띠로 상대방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상황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가해자의 모습을 상상하면 섬뜩하다. 작가의 장편소설 고통에 관하여에서 읽었던 고통과 쾌락의 근원은 같다란 대목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이것이 폭력에 저항하면서도 폭력에 길들여진 인간이 상황에 따라 또 다른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저자가 어떤 모티브로 이 이야기를 구상한 것인지 궁금하다. 다만 이 묘한 상황을, 현대인의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문제에 있어서 여러 사례를 꼽아볼 수도 있겠다. 현재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서 무고한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은 화면을 통해 지구의 한 지역에서 공포와 고통으로 절망하고 일그러지고 피를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이 때 관련 기사를 트위터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 나르는 우리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기사를 결코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플랫폼에 있는 좋아요를 누르고 있지 않은가. 물론 어려운 처지에 빠진 이들의 소식을 알면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여지도 분명히 있을 테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이 뉴스를 리트윗하는 것 말고 무엇을 더 하고 있을까. 당장 화면 속에서 울부짖는 이들의 고통보다, 종이에 베인 내 손가락이 더 아프지 않은가.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화면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들을 위해 방영되는 라이브쇼와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특히 소설 속 사건이 시작하는 계기는 한 남자가 폭행과 강간을 당하는 동영상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에게 전송된 사건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감염>이란 작품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다른 두 단편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리발관의 괴이>에서도 예측할 수 없는 괴이한 상황이 벌어진다. 공포는 존재가 정체를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갖는 두려움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작가의 작품에서 죽음은 의인화되고 있지만, 얼굴은 없다. ‘죽음은 상상하기 힘든 검은 형체로 상상되는 듯하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에서 죽음은 단지 불시에 닥치는 현상만이 아니다. 두 남자의 죽음은 묘한 상황에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살인이면서 동시에 자살이 되는, 기이한 죽음이었다.


 

이 대목에서 해당 단편을 읽던 밤,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밤늦게 이 단편을 읽고 양치질을 했는데, 이날따라 혀에 상처를 입었다. 거품을 뱉어내던 순간, 피가 섞인 시뻘건 액체가 입에서 나왔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보시라. 지금까지 한 번도 칫솔모에 혀가 깊게 찔린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새빨간 눈의 저주라는 생각을 하며 얼얼한 혀를 느끼며 겨우 눈을 감았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눈을 뜨니, 방의 윤곽이 어슴프레 보였다. 붙박이 장 옆의 구석에서 새빨간 눈이 나를 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조금 늦게 잠들었던 날이다. 밤늦게 소설을 읽은 후유증이다. 잠이 드려는 순간 카톨릭 기도 영광송의 한 구절을 닮은,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라는 문구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 문구는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리발관의 괴이>에서는 예측 불가한 진행이 있고, 사명감으로 사람을 죽이려는이발소 주인과 역사학자 사이의 몸싸움이 단편의 하이라이트였다. 이 단편은 잔인한 모티브임에도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았고, 대신 작가의 블랙유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옛날 서부 영화에서 착한 주인공이 악당을 총으로 쉽게 죽이는 반면, 주인공은 악당에게 붙잡혀 있다가 살아난다. 대부분 그 이유는 악당이 자신이 잡은 주인공 앞에서 말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과묵한 악당보다 말이 많은 악당이 더 흥미롭긴 하지만, 악당은 항상 말이 많아 주인공에게 당한다. 역사학자와 이발소 주인의 엉뚱한 대화 역시 그런 느낌이었다. 정작 할 일을 하지 않는 경찰의 목숨을 빼앗는 존재는 키작은 노인이었다. 죽을 법한 사람은 살아나는 대신, 공무에 태만한 경찰은 죽임을 당한다. 노인은 사람들 앞에서 태연하게 살인을 하며, 머리 없는 경찰의 시체를 끌고 사라질 뿐이었다. 이 상황적 괴이함이 정보라식 환상소설의 한 가지 결일까 싶었다. 그의 소설에는 전형적인 대결과 해결의 구도 대신,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 예상치 못한 탈주로다. 어쩌면 그의 작품들에서 발생한 사건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리발관의 괴이>의 묘미는 무시무시하고 긴급한 상황에서도, 역사학자와 이발소 주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역사 논쟁이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내 친구 좀비>30대 중반의 대학 동창들에 관한 이야기다. ‘선이라는 동창이 보이는 이상행동은,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산만한 성격에서 그치는 것 같진 않다. 결혼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다른 두 동창과 달리, ‘선이는 점차 친구들의 옷차림과 말투, 행동 등을 따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때 선이의 행동은 아이들의 그것과 닮았다. 유아가 있는 집의 엄마가 이유식을 아이에게 먹일 때를 떠올려보자. ‘선이는 엄마가 숟가락에 이유식을 떠서 하고 입을 벌리면 아이도 입을 벌리고 따라하는, ‘거울 단계에 있는 유아를 닮은 것이다. 또 그가 유학생활을 한 친구를 보면 선이나도 유학갈거야, 엄마가 보내준댔어라고 대응하며, 결혼한 친구를 보고 나도 결혼할거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소설의 설정에서 내 시야에 들어온 부분은, 동창들이 선이에게 전화할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며 근황을 묻는 선이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선이30대 중반이 된 지금도 그림자처럼 선이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선이는 이유식을 먹으며 엄마를 따라하던 단계에서 나아가 정신적으로 더 성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육체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정신적으로는 아직 유아의 거울 단계에 머물고 있었다. 이 모든 장면의 배후에 바로 선이의 엄마가 있었다. 이 단편에서는 새빨간 눈을 가진 존재나, 검은 덩어리의 죽음과 같은 초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평생 선이의 뒤를 따라다니며 지켜보는 어머니의 존재만으로도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이제 선이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종종 좀비같이 초점을 잃은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여전히 엄마로부터 벗어하지 못했던 것이다. 30년 넘게 엄마의 욕망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내면화하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선이와 엄마의 관계를 보면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자녀를 비롯하여 타인의 욕망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욕망으로부터, 혹은 관습의 구속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보라의 환상소설은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서 진실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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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0-25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제본은 어떻게 얻으셧나요?
저는 정세랑과 정보라가 같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서로 다른 사람이었네요.
이를테면 정세랑이 SF도 써? 했다능. 제가 못 삽니다.ㅠ

근데 아내분께서 만든 종이 인형을 책갈피로 사용하시는군요.
재미있게 잘 만드시네요.^^

초란공 2023-10-25 20:37   좋아요 0 | URL
어쩌다 본 인스타그램에 공지가 불쑥 나타나서 신청해봤어요. ^^;; 이런거 다시 찾으려면 잘 못찾겠더라구요! 잊고 있다가 읽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