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기록
신상웅 지음 / 소요서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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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지에서 저자가 만들어가는 인연과 인간적인 섞임/어우러짐이 인상적인 여행기입니다. 아시아 지역의 쪽 염색 전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면서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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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0-28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있는 책 만나니 기분 좋네요^^
 
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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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남긴 사랑과 회한의 기억 그리고 복원의 기도


김이정, <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2024

 



상실의 경험 없는 인생이란 존재하는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때론 우리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장편소설 <유령의 시간>은 작가 김이정의 가족사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소설에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 초래한 어둠의 시간을 통과하며 상실과 상처를 화인처럼 짊어진 사람들로 그득했다.


작품 속 주요 인물인 김이섭은 일제 강점기에서 30, 해방 공간에서 전쟁을 겪고 30년 생애를 살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끝내 찾지 못했다. 특히 이념의 대립으로 손 쓸 기회도 없이 아내와 세 아이를 잃었던 그였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그리움이라는 깊은 우물의 심연 속에 평생 갇혀 살았다. 사회주의라는 이상과 타인을 위한다는 대의를 따르다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자각은 그의 삶을 평생 갉아 먹었다. 한차례 가족을 잃고 난 후 주변 사람들의 손에 떠밀려 한 여인, 미자가 그 앞에 나타났다. 그녀 역시 전쟁 중 눈앞에서 남편이 죽고 안식처마저 잃었던 여인이었다.


이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새로운 가족을 꾸리게 된 이섭과 미자는 엄혹한 시절, 가족을 지키고자 발버둥 쳐온 우리 선배 세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별 인사도 미처 하지 못한 채 역사의 거대한 파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주었던 이섭에게는 잃어버린 피붙이들의 목소리와 이름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시간 속에서 부유해야 했던 이들이기도 하다. 이섭, 미자, 그리고 월남전에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로 돌아온 남편을 지켜보아야 해던 순희의 생을 상상해 본다. 이들처럼 인생의 고비를 넘는 동안 삶에 대한 신념과 열정이 배반당했을 때, 그러니까 이 방향감각의 상실감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이섭이 건너야 했던 기구한 삶은 내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섭은 물 밖에 나온 새우의 모습처럼 강하지 못한 생명을 무엇보다 혐오했다. 그가 이런 무기력함을 가장 잔혹한 형벌로 여겼을 속사정을 헤아려본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던 가장으로서의 수치심과 죄책감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섭과 미자, 그리고 가족이나 다름없던 이웃집 순희 같은 이들은 모두 고통스러운 상처를 끌어안고서 각자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고자 분투했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우리 삶의 비루한 취약성을 선명히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이토록 버텨낼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등과 보듬을 수 있는 팔을, 살가운 손길을 서로에게 내어줄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첫 아내이자 한 집안의 사랑을 받던 맏딸을 잃고 삶의 의욕을 놓아버린 장인을 바라보던 이섭의 마음처럼, 사람이 사람을 잃고 무언가를 지켜낼 힘을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게 인상적으로 남은 장면 하나는, 지형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저렇게 모든 걸 잃고도 여전히 인간을 사랑한다는 게 가능할까?”, 자문하는 대목이다. 지형의 형제들이 아버지가 평생 잃어버린 것들을 복원하자고 손을 모으는 장면이 오롯하게 떠오른다.


인생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다시 살리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는 갓 태어난 아이의 천진한 검은 눈동자일 수도, 또 누구에게는 마음껏 울 수 있도록 등을 내어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상실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고 꿈을 꾸는 일일 수도 있겠다. 지형이 꿈에서 보았던 노란 두메양귀비를 백두산에서 발견한 순간 아버지의 존재를 다시금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존재를 느끼며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리운이복형제에 가 닿고자 했다. 지형의 이러한 간절함은 다시 이생에서 누군가를 추억하고 사랑하며 꿈꾸길 멈추지 말 것을, 기도하듯 요청하는 듯했다. 불현듯 이섭이 남긴 오래된 일기장의 한 구절이 어른거린다. “인간의 생이여, 헛되고 헛되도다. 하물며 이념과 꿈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꾸지 않는 생은 또 얼마나 헛될 것인가.지형이 이복 오빠가 있을 방향을 향해 무언가를 외칠 때, 나 역시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메마르고 헛헛한 유령의 시간을 보내온 모든 이들이 이제는 꿈꾸는 시간으로 생을 채워 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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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24-10-31 13:44   좋아요 0 | URL
네~ 괜찮습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 거장의 재발견, 윌리엄 해즐릿 국내 첫 에세이집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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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감정은 소중하다. 정말 그렇다.
그런데 여기에 잊지말아야 할 것은 타인의 감정도 그렇다는 것.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생각해봅니다. 피할길 없는 혐오의 감정도 포함하해서 말이죠. 나의 혐오 감정을 솔직하게 발견하는 시산이 될까요? ^^ 잘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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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경계를 부단히 넓히고자 했던 삶의 여행자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민음사] (2004)

 




출근하면서 슬쩍 읽은 구절.


 

자신의 몸 주변을 바다로 둘러 싸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세계라는 개념도, 세계와 자신의 관계도 이해할 수 없다. 이 위대하고도 단순한 선(, line)은 풍경 화가로서의 나에게 전혀 새로운 사상을 불어넣어 주었다.


 

문인이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 그리고 필연적으로 면밀한 관찰자였던 괴테는 귀족 출신이라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비판자들 역시 자신의 개성/고유성/취향을 발견하고 이를 고양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하지 않나. 그렇다면 이런 비판자들도 괴테의 방황부단한 노력에서 배울만한 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괴테를 연구하거나 특별히 좋아한다고 말하는 독자들 외에 인간으로서 괴테를 이야기하는 이는 많이 보질 못했다. 한 인간은 출신성분으로만 요약되기에는 너무나 복잡다단한 존재다. 만일 괴테가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이토록 성공했다면 우리나라의 정서상 더 많은 영감을 주었을까도 싶지만, 그럼에도 이 때문에 인간 괴테로서 많이 간과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앞서 인용한 이 구절은 나폴리에 머물던 괴테가 시칠리아로 가는 길에 쓴 여행 기록의 한 구절이다. 일기를 보면 괴테가 시칠리아로 가게 된 것도 미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시칠리아에서 배가 도착하는 시일 직전까지 로마로 돌아갈지, 아니면 시칠리아로 떠날지를 미처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신이 마련해놓은 섭리 속에서 신이 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합리적 이성이 자신을 길을 찾느라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나폴리를 떠나기 전까지 갈까-말까를 망설이던 젊은 시절의 괴테를 엿볼 수 있었다.


 

이 여행에서 그는 오래전에 쓴 <이피게니에><타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고쳐 쓰는 이야기도 기록하고 있다. 독일의 대문호라는 이름의 (일회적) ‘아우라와 달리, 그는 평생 자신의 글이든 그림이든, 어떤 목표(destination)라는 지향점을 향해 부단히 다가가고자 노력했던 인간의 모습을 후세에게 남겨놓았다.


 

독문학자 전영애 교수의 말에 따르면, <파우스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구절은 지향이 있는 한, 인간은 방황한다.”라는 문장이다.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가 사망하기 두 달 전까지이던가... 이 작품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낫게 다듬어 나갈 수 있을지 숙고했던 인물이었다. 말년에 이르러 대문호가 발견한 중요한 인생의 진실 하나가 이 문장이라면, 어쩐지 김이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한 문장에서 발견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가여운 인간의 모습으로 읽혔다. 그렇다. 자연의 최상위 층에 자리를 잡고, 놀라운 이성의 디딤돌 위에서 자연 세계를 군림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무한한 연민을, 이 귀족 출신의 대문호는 거대한 아코디언처럼 주름잡힌 <파우스트> 속에 감추어두었던 셈이다. 이 책에서 내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에 대한 회의와 삶의 덧없음,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애정이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오늘 출근하며 읽은 여행기의 한 구절에서도 세계를 바라보는 한 인간의 시선, 움벨트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 움벨트(umwelt)는 독일어로 환경, 주변 세계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개인에게 보여 지고 지각되는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결국 그의 <이탈리아 여행기>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움벨트를 확장해나간 한 인간의 발자취다. 때로는 머뭇거리기도하고, 망설이기도 하지만, 결국 어느 쪽으로든 발길을 내딛었던 것이다. 물론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주어진 특별한 삶의 조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 조건들이 나의 조건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한 인간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폄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는 움벨트라는, 한 인간에게 주어진 시선이자 제약 조건이기도 한 이 경계를 평생 부단히 넓히고자 노력했던 여행자 괴테를 만났다.

 





 

 




































#괴테의이탈리아여행#움벨트 #세계의경계 #출근하며읽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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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심장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1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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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의 사망 100주기에 새로 번역된 작품이기도하고 꼭 읽어봐야지 하고 한동안 생각만 하다가 만났습니다.
앙드레 지드의 <아프리카 콩고 여행>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듯합니다. 식민주의 시대의 기득권 속 ‘아웃사이더’(?)의 시선이 인상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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