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0 : 구상섬전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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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0>로 류츠 신 입문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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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올리버
올리버 색스.수전 배리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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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애가 아름다운 감각들로 충만한 기억이기를

- 디어 올리버


: 두 신경과학자가 나눈 우정, 감각, 그리고 인생의 두 번째 시선

 

수전 배리+올리버 색스 지음

김하현 옮김 [부키] (2025)

 




한동안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손에 쥔 책들은 얇은 책이거나 편지를 엮은 책이었던 것 같다. 화가 세잔과 작가 에밀 졸라의 30년 넘는 우정이 담긴 교차된 편지들에 이어서 이번에는 두 신경과학자가 10여 년간 주고받은 편지글을 모은 디어 올리버를 읽었다. 올 여름 집안의 어르신을 떠나보낸 후 황망하고 헛헛한 마음에 작은 위안을 주었던 책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수신자, 곧 독자가 분명히 정해진 서간문이 지닌 고유한 친밀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편지는 지금 내 곁에 부재한 대상을 다시 불러들이고 당신과 나누는 대화이기 때문일 터다. 그러므로 서간문은 쓰는 이의 상실, 결핍을 전제로하며 지금 내 옆에 있지 않은 상대에게 다가가려는 마음을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흔적이기도 하다.


 

특히 오늘(830)은 신경과학자이자 의사인 올리버 색스의 10주기가 되는 날이기에 이 책을 읽고 난 인상은 더욱 특별하다. 그의 기일에 맞춰 출간된 이 편지글에 그와 우정을 나누었던 또 다른 사람의 손길이 더해져 미래의 독자에게 전해진 셈이다. 책의 또 다른 저자인 수전 배리는 신경과학자로, 올리버의 말년에 10여 년 간 편지와 만남을 통해 삶과 연구 주제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던 멘토이자 친구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삶에서 이런 대상을 만나기란 얼마나 드물고 어려운가.


 

한편 무엇보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수전 배리의 시각과 관련한 경험이었다. 50여 년간 단안시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수전이 훈련을 통해 입체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경험은 한 존재가 새로 태어나는 것과 다름없는 존재론적인 사건이었다. 당시에는 어린 시절에 단안시를 지닌 사림이 성인이 되어 입체시로 된 사례가 없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그러니 이 사연을 흥미롭게 여긴 올리버가 수전을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를 듣고자 한 것은 평생 호기심을 잃지 않았던 올리버다운 행위였다. 이처럼 올리버의 호기심은 지구인의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상대를 단순히 조사 대상으로서 바라보았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상대를 보다 순수하게 인간이라는 동료로 관심을 갖고 상대를 인정해주었다는 점이 달랐다. 수전이 바라보기에 올리버는 누구든, 혹은 어느 것에든 관심을 주었던 사람이었나 보다.


 

올리버의 관심과 공감을 받지 못할 만큼 시시하거나 사소한 것은 세상에 없었다.”(92)라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리버가 직접 수전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대목도 있다. “우리는 연구자연구 대상이 아닌 좋은 파트너였습니다-정말로요. 제게도 전례 없는 경험이었습니다.”(124)라고 편지의 수신인에게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올리버는 자신이 관심을 나누어 준 어느 누구에게도 그들만의 고유함을 인정해주는 인물이었다.


 

두 신경과학자 수전 배리와 올리버 색스는 수전이 나이 50세 즈음 획득한 입체시에 대한 경험을 올리버에게 전해준 2004년 즈음부터 교류를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머지않아 올리버는 망막에 종양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고, 이를 수전에게도 알렸다. 10년 후에 올리버는 안구 흑색종이 간으로 전이가 되었다는 소식을 역시 편지로 수전에게 전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수전 배리가 나이 50세 즈음 단안시로 살았다가 입체시를 획득하며 갑작스러운 환희의 순간을 맛보기 시작했던 반면, 올리버는 이와 반대로 70 년 가까이 입체시로 살다가 한쪽 눈에 생긴 종양으로 시력을 잃게 되면서 단안시로 되어갔다는 사실이다. 수전의 표현대로 그녀는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방대한 공간감을 만나는 동안, 올리버는 3차원의 세계가 2차원으로 압축된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셈이다.

 


올리버의 생애에서 한 가지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자 정성을 다하고, 그 삶을 매순간 기념하듯 살았다는 점이다. 10여 년 옆에서 올리버를 지켜보았던 수전은, 그가 어떤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 나가는”(140) 사람이었음을 증언한다. 물론 올리버 자신도 이렇게 편지에 남기고 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가 열심히, 꾸준히, 의욕적으로, 또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쳐서 나가떨어질 정도지요.”(140) 종양으로 시력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올리버의 삶, 그리고 매 순간 그가 삶의 주체로서 선택했을 행위들을 떠올려본다. 그에게 글쓰기는 매일 거르지 않는 끼니처럼, 혹은 쉬지 않고 발을 내딛으며 걷는 의식과도 같은 행위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이해하는 세계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세계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각자 나름의 감각을 통해 받아들여진 정보가 재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저마다 다르게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감각의 중요성을 축소하거나 폄하해서도 안 될 것 같다. 수전과 올리버가 주고받은 편지글은 오랜 우정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두 존재가 함께 만들어 나간 충만한 감각의 기념비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각과 관련하여 두 사람이 극적으로 상반된 방향으로, 극적으로 다르게 인식되는 현실을 경험하는 이들이 나누는 대화였기에 더욱 숙연해지기까지 한 읽기 경험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우리가 매일 누리는 감각의 향연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두 사람은 누구보다 일찍 이해하고 있었을 테다.


 

두 신경과학자가 주고받은 편지글에는 늘 상대에 대한 진심과 귀 기울임이 보이는 듯했다. 상대와 마주하여 진심으로 연결되고, 또 연결되기를 희망하던 두 주체가 서로 조응하며 변해가는 과정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러므로 진심이 담긴 한에서 편지글은 어느 한 사람만이 영향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 모두 함께 변해가는 공진화가 수반되는 과정이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어떤가.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사회다. 때론 이 연결됨이 지나쳐 보인다. 올리버는 전자 기기와 네트워크에 지나치게 연결된 나머지 내적인 사생활이 사라진 세대를 걱정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은 사생활과 자유로울 수 있는 내면의 빈 공간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 여겼다. 나아가 이렇게 전자 기기에 연결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도 똑같이 눈과 귀를 닫는 것 같다고 올리버는 우려했다. 성인이 된 누군가에게 어린 시절, 감각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일종의 배경 음악처럼 작동하는 기억이야말로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올리버와 수전이 나누었던 교감과 신뢰의 대화는 우리가 유한한 생애동안 함께 만들어가는 기억이 아름다운 감각으로 채워진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수전이 쓴 편지 가운데 아흔이 넘은 아버지의 임종에 관한 언급이 생각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잠들지 못하던 어린 자녀들(수전과 오빠)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아이들을 재워주었던 아버지였다. 음악을 들을 때 음마다 뚜렷한 색을 떠올리는 공감각을 지닌 수전에게 아버지의 바이올린 소리는 어느 것보다 소중한 아버지의 사랑과 자상함이 함께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녀에게는 아버지의 바이올린 음악 소리가 어린 시절의 배경음악”(351)이었다고 올리버에게 말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감각이 남겨준 기억은 부재한 아버지와의 연결됨을 유지해주는 마들렌과 같은 것이었을 테다.


 

올리버가 사망하기 몇 주 전인 201589일자 편지는 수전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되었다. 몸이 극도로 약해져 지인의 도움을 받아 구술로 써 내려간 이 편지에서 올리버는 수전을 알게 되어 기뻤으며 그녀와의 돈독한 우정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수전의 편지는 늘 즐겁게 받아보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편지가 마지막 작별 인사는 아니지만, 그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이번 달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간 교수님과 나눈 깊고 고무적인 우정은 지난 10년간 제 삶에 추가로 주어진 뜻밖의 멋진 선물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382)


 

올리버는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했던 것일까. 같은 달 30일에 그는 이승에서의 삶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10년 후인 오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느 독자는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 속의 단어를, 그리고 그의 마음을 상상해보고 있다. 이 마지막 편지에서 올리버는 평소에 쓰지 않던 친애하는’(Dear)라는 표현을 쓰고 있음에 눈길이 갔다. 생전에 자신이 쓰는 글에서 단어 하나하나를 까다롭게 고르던 올리버의 습관을 떠올려본다면, 이 표현은 수전과 나눈 우정과 삶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나 역시 가족 한 명이 병으로 주저앉고 생의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던 모습을 지켜본 이번 여름의 시간을, 올리버와 수전이 나눈 마음들로 위안을 얻고 지나올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그들에게 남은 삶이 아름다운 감각으로 충만하게 기억되길 바란다




[책속으로]

[1] "장애를 극복하면 힘들게 얻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된답니다."(60, 수전의 편지) - P60

[2] "올리버가 관심을 보이며 내 경험을 인정해 주자 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70) - P70

[3] "내 이야기를 검토하고 정리하고 결국 책으로 낼 수 있었던 건 올리버와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은 덕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환자에서 주체로, 다시 저자로 변신했다."(81, 수전의 편지) - P81

[4] "올리버의 관심과 공감을 받지 못할 만큼 시시하거나 사소한 것은 세상에 없었다."(92) - P92

[5] "역에서 한낮의 햇빛 속으로 걸어 올라가는데, 갑작스러운 환희의 순간이 찾아왔어요. (...) 길 건너편 건물의 둥근 파사드가 저를 향해 불룩 튀어나와 보였어요."(105, 수전의 편지) - P105

[6] "우리는 ‘연구자’와 ‘연구 대상’이 아닌 좋은 파트너였습니다-정말로요. 제게도 전례없는 경험이었습니다."(124, 올리버의 편지) - P124

[7] "올리버는 어떤 질병이나 장애를 이해하려면 과학과 심리학, 역사, 철학을 폭넓게 아우르며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책을 통해 내게 알려 주었다."(133) - P133

[8] "(...) 진정한 의사가 되려면, 자신이 치료하고자 하는 질병을 전부 경험해봐야 한다..."(137, 올리버가 재인용한 몽테뉴의 말) - P137

[9] "지금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가 열심히, 꾸준히, 의욕적으로, 또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쳐서 나가떨어질 정도지요."(140, 올리버의 편지) - P140

[10] "나는 그때, 그리고 훗날에도 여러 번, 어떤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 나가는 올리버의 능력에 크게 감탄했다."(140) - P140

[11] "입체시가 내게 얼마나 기적과도 같은 일인지를 보는 즉시 알아차렸던 바로 그 사람이 자신의 입체시를 잃게 되었다는 사실은 슬픈 아이러니였다."(203) - P203

[12] "피아노를 조율하려면 연주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해요."(212, 수전의 조율사가 수전에게 해준 말) - P212

[13] "올리버는 이 세상 모든 생명체 중에서 두족류, 즉 앵무조개와 오징어, 문어, 갑오징어를 가장 좋아했다."(249) - P249

[14] "제 어머니가 78세에 돌아가셔서, 저는 78세라는 제 나이에 어떤 미신적인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운명의 여신들이 부디 고관절 골절에 만족했으면 좋겠습니다."(302, 올리버가 편지에 남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 - P302

[15] "그 말은 사실상 학생들에게 내적인 사생활이 없고 뇌의 ‘디폴트 네트워크’가 자유로울 수 있는(상상에 빠지거나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내면의 빈 공간이 없다는 뜻입니다. (..) 이처럼 전자기기에 ‘연결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도 똑같이 눈과 귀를 닫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연결을 끊는 것이지요."(327, 올리버의 편지) - P327

[16] "아마도 ‘생존’기간을 6-9개월에서 15-16개월로 늘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늘린 몇 달이 좋은 시간이라면, 그 동안에 글을 쓰고(일부 또는 거의 다 쓴 책이 여러 권 있습니다), 친구를 만나고, (조금) 여행을 다니고, (철없이 군다거나 하면서) 인생을 즐길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361, 올리버의 편지) - P361

[17] "이 편지가 마지막 작별 인사는 아니지만, 그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이번 달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간 교수님과 나눈 깊고 고무적인 우정은 지난 10년간 제 삶에 추가적으로 주어진 뜻밖의 멋진 선물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382, 수전에게 보낸 올리버의 마지막 편지)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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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올리버
올리버 색스.수전 배리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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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는 장애/질병을 가진 이들에 진심으로 공감하던 의사였을 듯합니다. 입체시를 갖게된 신경 학자와의 교감과 공감의 편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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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오펜하이머 청문회
하이나어 키파르트 지음, 양도원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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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성공하기로 할 것인가, 실패를 선택하고 책임을 질 것인가?’

-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 풍경을 조명한 희곡

 

<오펜하이머 청문회>

하이나어 키파르트 지음

양도원 옮김 [지만지드라마] (2024)




 

(원폭실험을 하던) 그때 나는 두 가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 실험이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이 실험이 성공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오펜하이머가 보안청문회에서 언급한 말)

 


눈을 떴을 때 나는 아주 조용한 가운데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광선이 눈부시도록 하얀 불덩어리가 되어 점점 커져서는 하늘과 산을 삼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에 나는 내가 그때 가지고 있었던 힌두교의 찬가에 나오는 두 가지 시구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는 수천 개의 태양으로 된 햇빛이 하늘에서 홀연히 비친다면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는 모든 것을 삼키는 죽음이다. 세계를 모두 흔들어 놓는 자다였습니다.”

 



올해(2025)는 대한민국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 가운데 의식 있는 꽤 많은 시민들, 심지어 명사들 마저도 우리의 광복이 미국의 덕분이라고, 특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 폭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의 기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표현으로 정리해버리고 마는 이들이 내게는 온전한 인식을 갖춘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 까닭이다.


 

1945년 초부터 일본 군부는 연합국 측에 항복 의사를 비공식적으로 타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 군부는 원자 폭탄의 위력을 실제로 사용해서 위력을 검증하고자 결정을 내린다. 여기에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문제가 있다. 미국의 역할 없이는 우리의 광복이 분명히 쉽지 않았을 테지만, 우리가 국외에서 활동하던 임시 정부와 국내 진공 작전의 준비, 그밖에 수많은 독립지사들의 목숨 건 투쟁과 희생, 여기에 더불어 이름도 남기지 못한 이들의 희생을 놓쳐서도, 잊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세의 도움만으로 무기력하게 독립을 얻어낸 것이 결코 아니다.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지우려는 세력은 바로 이런 부분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 군부가 일본에 투하하기로 결정한 우라늄과 플루토늄 기반의 원자 폭탄은, 일본에 대한 승리를 목적으로 떨어뜨린 것이 아니었다. 원래는 나치 독일이 먼저 원자 폭탄을 개발하기 전에 미국에서 개발하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먼저 패망한 후 개발된 원자 폭탄 제작 사업은 사라진 초기의 목적 대신 새로운 명분이 필요했을 터다. 이는 오펜하이머가 청문회에서 지적하며 이후의 수소 폭탄 계획에 비판적이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원자 폭탄 제조 이후 수소 폭탄 제조로 경쟁하듯 이어지는 대량 살상 무기 개발 사업은 그 한계 설정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성격을 간파한 오펜하이머는 수소 폭탄 개발 경쟁이 결국엔 인류의 실존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미 군부가 우리의 독립에 관심을 두고 있기 보다는(이건 이들이 내세울 수 있는 부수적 효과에 불과하다) 한 때 손을 잡았고 일본과 싸웠으나 이제는 적대 국가로 부상한 소련(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견제의 측면이 더 중요했다는 점을 읽어낼 수 있다. 이는 미국 내에서 거세지고 있는 반공주의의 서막을 알리는 불길한 사건으로 볼 수 있을 터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이자 극작가 하이나어 키파르트의 희곡 <오펜하이머 청문회>를 관심 있게 읽으며, 영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서 보았던 오펜하이머 청문회 과정을 다시금 떠올려 볼 수 있었다. 미국 상원 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시작한 보안청문회의 기록을 바탕으로 원자 폭탄 제조 계획(맨해튼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이었던 오펜하이머가 얼마나 고립된 상황이었는지, 그리고 만들어진 신과 같은 국가라는 실체가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국가 폭력의 메커니즘과 더불어 오펜하이머 개인의 복잡한 심경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은 지극히 복잡하고 다층적인 존재인데 말이다. 분명하게 무언가를 경계 짓고자 개인을 강요하고 폭력적으로 재단할 때 그 공동체에는 무엇이 남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희곡 대본은 단순히 공적 인물로서 오펜하이머의 고난과 희생의 국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가 마주해야 하는 부조리한 현실과 강요된 선택의 딜레마에 초점을 맞추고 독자에게 질문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국가 주도 사업(첫 원폭 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의 성공 여부에 대한 공인으로서의 입장은 어떠해야 하는지, 공동체에게 큰 영향력을 지닌 한 인간이 갖게 되는 무거운 책임감과 윤리적 결정의 경계에서 주저하던 인물의 내면을 상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만, 과학자의 책임 문제에 대해 오펜하이머는 일본에 투하된 무기에 희생된 일본인들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무기를 투하할 만한 지점을 선정하는 데 과학적기술적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언뜻 이해가지는 않지만, 그의 논리에 따르면 개인적인 양심과 국가 혹은 공동체를 위한 공인으로서의 행보 사이에서 주저했을 법하다. 그는 과학적/기술적 정보만을 제공한 것이라 말했다. 최종적인 결정은 정치인들이 내린 것이라고 선을 긋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무기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의 책임은 면제되는 것일까? 정답은 없지만 생각해 볼만한 문제다. 애초에 폭탄 제작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다 하더라도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제만을 가지고 그를 비롯한 당대의 과학자들을 비난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런 문제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또 개개인의 복잡한 심리와 입장 차이에서부터 국가 간의 민감하고 첨예한 이해관계 등을 고려할 때, 개인의 양심에 따른 결정과 행동이 늘 간결하고 명료하게 정리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과학 활동이 수행될 때, 이는 이미 과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을 넘어 공적인 역할을, 다시 말해 정치적인 결정을 수반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가 과학적 연구 결과의 책임을 온전히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특히 현대 과학 연구는 특성상 개인의 아마추어적인 유희적 특성을 훌쩍 뛰어 넘어 버린 지 오래다. 공공에 대한 의무, 공적 특성과 보다 많이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의 책임은 그가 속한 사회, 나아가 지구 위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무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성공적으로 원자 폭탄을 만들어 내었으나, 이후 이어지는 (원자 폭탄 위력의 1만 배 이상 강력한) 수소 폭탄 개발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매카시 광풍의 희생자가 되었다. 개인의 모든 사생활이 낱낱이 파헤쳐 공개되었다. 이후로도 오랜 세월 감시 및 도청당했으며, 학자로서의 길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사실상 막혀버린 셈이었다. 청문회 과정에서 잠시 언급된 수소 폭탄 개발과 사용에 있어서, 만약 한국 전쟁 당시에 한반도에서 수소 폭탄이 사용되었더라면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오펜하이머 청문회>에 언급되는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의 핵무기 중에서 현재 러시아에만 핵무기가 1만 여기, 미국에는 9000 여기가 있다. 오펜하이머의 우려대로 전 세계의 핵무기 경쟁에는 상한선이 없어졌던 셈이다. 핵무기 경쟁에서 유일한 제약이 될 수 있는 조건은, 오로지 폭탄 제조에 필요한 원료의 수급가능성 밖에 없는 듯하다. 이제 우리 인류는 잠재적 인류 공멸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사실이야말로 그로테스크하지 않은가. <오펜하이머 청문회>는 올해 80주년이 되는 광복절을 맞아 눈에 들어와 읽게 되었으나, 영화 <오펜하이머> 보다 오펜하이머가 겪어야 했을 개인적 고통과 청문회의 풍경을 좀 더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는 텍스트였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고 여겨진 국가 주도 사업의 책임자가 자신이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성취해내면 인류가 위기에 처하게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을 때, 당신은 일단 성공하고볼 것인가, 아니면 성공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인류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음에 안도하고 실패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감수하겠는가. 여기에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좀 더 높은 기댓값으로 예측할 수 있는 사실은, 오펜하이머라면 또다시 똑같은 행보를 선택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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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 역사적 트라우마에 저항하는 단독자 1949~1992 아티스트웨이 2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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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 따라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누기도 하는 하루키. 보다 진득하고 작품과 작가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물씬 느껴지는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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