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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숨바꼭질할까 - 꿀샘의 오순도순 학교 이야기
김향숙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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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교장 선생님

- 우리 숨바꼭질할까

 김향숙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2021)




학교에 대해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좋아하는 선생님 몇 분이 있긴 했지만, 교사의 폭력적인 언어와 체벌도 흔하던 시절이었다. 책상에 올라가서 주먹과 발로 학생들을 내려찍던 수학 선생, 커다란 주먹으로 얼굴을 날리거나 나무 분필통을 학생들 얼굴에 집어 던지던 체육 선생, 테잎을 감은 각목으로 한 시간 내내 돌아가며 반 전체 학생을 400대나 때렸던 불어 선생도 여전히 기억난다. 지금쯤 은퇴했거나 은퇴할 나이가 다 되었을 것이다. 또 나보고 지진아라고 했던 여자 선생(심지어 도덕 선생님!)도 기억난다. 당시에 나이가 20대 후반 아니면 30대 초반 아니었을까 싶은데, 모든 남자 아이들에 대한 적개심을 분출하던 분이었다. 이제는 교사와 학생의 입장이 반대가 된 상황이라 학교 교실의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다.

 


주말에 도서관에서 발견한 에세이집 우리 숨바꼭질할까를 읽게 되었다. 저자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은퇴한 분이었다. 읽는 글마다 뭉클한 감동이 느껴졌다. 저자는 500명이 넘는 전교생을 매일 아침마다 등교시간에 맞아주고 이름을 외우는 교장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이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놓는 교장선생님을 상상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교장 선생님을 만나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표정만 보고도 아이들의 심리 변화나 형편을 읽어내는 일은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전교생의 이름을 외우는 과정을 통해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아이들 이름을 알아가는 과정은 학교의 실태를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32)


아이들 이름을 알기 전의 학교와 이름을 알고 난 이후의 학교는 나에게 전혀 다른 세계였다.”(33)

 


아이들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른인 나의 기준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아이들에겐 아이들만의 세계가 있음을 자주 잊곤 한다. 엉뚱해 보이고 때론 기발한 생각을 해내는 아이들에게 내 선택을 종용하고 있지나 않은가 점검해본다. 그래서 저자는 독자에게 아이들의 질문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한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직접 임명장을 받기도 하고, 아이가 직접 쓴 하나 뿐인 동화책을 선물로 받는 교장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은 저자로부터 감화를 받고, 저자의 상냥한 말투를 따라하며 성장해가고 있었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교장 선생님을 상상한 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아니 나는 그런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겐 그게 당연하게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 책은 나의 예상과 편견을 뒤집는다.


 

저자의 에세이를 읽는 내내 어른인 내가 아이들로부터 배울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의 말마따나 아이들은 저마다의 고유함을 지닌 존재’(113)인데, 어른들은 아이들을 단지 덜 발달된 사람 혹은 더 배워야하는 사람으로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를 지키려고 학교에 나오지 못하던 한 아이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저자는 아이의 집을 찾아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당장 도와줄 수 없어 무력감과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책에는 5학년 선배들이 1학년 후배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오일장 책 나들이행사도 소개되어 있다. 이는 저자가 재직하던 초등학교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5학년 아이들은 후배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보다 진지하게 책을 이해하게 되고, 후배를 챙기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책임감을 배운다.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에 익숙해져 갈 것이다. 저자가 있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은 이렇게 성장해가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만으로 스스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상태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여기에 더하여 이런 경험을 마련해준 저자와 교사들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교사 업무 가운데에도 전교생과 손편지를 수시로 주고받는 저자의 모습을 보고 학창 시절에 이런 선생님이 있었다면 그 시절이 누군들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에 실린 에세이 중에서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던 어느 1학년 아이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저자를 비롯해서 다른 교직원이 이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산책하기를 한 학기 내내 했던 것 같다. 방학이 지나고 다시 개학날이 되자 이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 교실에 많은 걸 보고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한 아이와 함께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저자와 교직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 경험을 한 이후 저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한 아이를 위해 모두 함께 손을 잡는 것이 아닐까.”(107)하고 말이다. 어쩌면 교사는 아이가 집을 떠나 사회(학교)로 나왔을 때 돌보아주는 부모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조카나 아이들에게 나의 견해를 이해시키려고 조급하게 떠밀었던 내 모습이 생각나 당황스럽기도 했다.


 

가히 폭력 교실의 시대를 거쳐 온 내게 40년 동안 저자가 몸소 실천해낸 교육 현장의 모습이 때론 생소하기도 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이러한 저자의 모든 노력에는 무엇보다 아이들에 대한 인정과 사랑이 우선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나름의 세계가 있었다. 책 중간 중간에 아이들이 저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아이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각이 깊다. 또 아이들은 각자 고유한 이름을 가진 존엄한 존재이기도 하다.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많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아이들로부터 배워야할 것이 많다고 느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법을, 인내심을 가지고 더 배워야하는 어른이었다.

 

[1] "아이들 이름을 알기 전의 학교와 이름을 알고 난 이후의 학교는 나에게 전혀 다른 세계였다."(33)

[2] "아이들은 하나의 숫자나 번호가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존엄한 존재이다. 이름부르기는 서로를 환대하고 존중하는 일이다."(33)

[3] "우리는 자신의 선택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종종 착각한다. 어떤 일이든 아이들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언제나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리."(36)

[4] "우리 교직원이 경서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고 경서와 함께 산책했다. 그것이 전부이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한 아이를 위해 모두 함께 손을 잡는 것이 아닐까."(107)

[5] "아이들은 내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그것은 단지 호칭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 ‘너‘와 ‘내‘가 인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123)

[6] "저는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추억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132)

[7] "나는 왜 굳이 손편지를 쓰는가? 나는 손편지를 쓰는 동안 오직 편지를 받는 대상에게 빠져든다. 한 획, 한 글자를 꼭꼭 눌러 쓰면서 그를 불러온다. 그가 나의 펜 끝에 닿으면 우리들만이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즉 우리의 세상이 된다. 손편지는 이렇듯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힘이 있다. 이것이 내가 한 아이도 빠뜨리지 않고 해마다 손편지를 쓰는 이유이다."(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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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거나 말거나 - 쉼보르스카 서평집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봄날의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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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의 시와 장미허브

- 쉼보르스카의 읽거나 말거나

 



새로운 일을 하게 되어 책읽기가 쉽지 않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핑계겠지만, 일이 끝나면 거의 탈진 상태로 집에 돌아와 책을 펼치면 10분이 안되어 책상에 머리를 박고는 한다. 무언가를 읽는 게 힘들어졌다. 쓰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요새는 여러 블로그나 서재의 좋은 글들을 읽을 기력도 나지 않아 아쉽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수입은 줄어들어도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좀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으려나 했건만, 내 몫의 삶을 살아내는 일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그래서인지 매일 아침 흔들흔들 언덕을 오르내리는 마을버스 안에서 잠시 펼쳐보는 책읽기가 꿀맛이다.


 

최근에 아내가 직장에서 장미허브 하나를 받아왔다. 톡톡 건드리고 쓰다듬으면 기분 좋은 향이 공기에 가득해지고, 못생긴 내 손에서도 향기가 난다. 햇빛이 잘 안 드는 집이건만 그래도 거실 창가에 가까이 해놓고 통풍을 신경써주어서 그런지 잘 자라고 있다. 조금 웃자란 부분을 끊어서 빈 화분에 장미허브를 옮겨 심었다. 아내가 장미허브는 이렇게 해도 잘 자랄 수 있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며칠간 시들지 않고 상태를 유지하는 걸 보면 생존의 기로에서 한창 사투를 벌이는 모양이다.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매일 지켜보고 있다. 새로 심은 녀석도 톡톡 건드리고 쓰다듬어 보면 여전히 향이 퍼진다. 제약이 있긴 하지만 식물의 경우 본체로부터 나누어진 일부가 살아내는 모습을 보면 늘 감탄하게 된다.


 

장미허브를 톡톡 건드리다가 쉼보르스카의 서평집 읽거나 말거나에 눈이 가서 펼쳐보았는데, 마침 사포의 시집에 대해 짧게 리뷰를 남긴 페이지가 나왔다. 쉼보르스카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었던 사포가 남긴 시는 1만 여 편으로 추산된다. 그 중에서 전해지는 시는 550편이고, 다시 이 가운데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은 불과 몇 편이란다. 규모로만 보자면 빈약한 파편만 남아 있는 상태다. 하지만 쉼보르스카는 그의 시대에도 여전한 사포 열풍을 깎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대했던 시인의 모습을 상상한다.


 

여기에서 시인은 머리와 팔, 발이 소실된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언급한다. 니케 상 주변에 떨어져 있는 손과 발 일부 조각들을 가리키면서 만약 니케상에서 단지 몇 개의 발가락만 남았더라면, 과연 감탄할 사람이 있겠는가”(44)라면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간결하면서도 절제되고 정곡을 찌르는 언어를 사용하기로 유명했던 시인, 자신이 쓴 시를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쳤던 시인 쉼보르스카가 생각하는 시의 본연은 뺄 단어가 보이지 않는 그런 완전체에 가깝다.


 

몇 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는 단어 하나만 사라져도 시 전체 의미가 훼손될 수 있다.”(44)

 


하지만 시인은 비록 사포의 시가 대부분 잘게 부서진 조각 같긴 하지만 란 돌을 깎아내어 만드는 조각품이 아니다”(44)라고 말한다. 오히려 파편처럼 남아 있는 시와 시어를 통해, 시인의 숙련된 경험과 직관을 통해, 오히려 위대한 시인을 상상했다. 사포의 시집에 대한 아주 짧은 리뷰이지만, 나는 사포의 시들이 오히려 이 장미허브를 닮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조각처럼 몇 개의 이파리만 남은 생명이 빈 화분을 만나 다시 살아내듯이, 단어만 남은 시어, 빈약한 파편들로 이루어진 사포의 시를 통해 고대의 시인은 여전히 살아남아 우리 곁에 있는 셈이다.


흐린듯하지만 바람이 살살 부는 주말, 2000년 넘게 단어 몇 개가 살아남아 전해지고 여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해지는 시와 시인의 삶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혹독한 전쟁을 겪으면서도 이 시를 읽었거나 시인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또 다른 시인의 삶도 떠올려본다. 모처럼 새로 심어 놓은 장미허브 앞에 앉아 잎을 톡톡 건드려보기도 하고 쓰다듬으며 향기를 맡아 보는 아침이다.

 



 


 

[1] "시詩란 돌을 깎아내어 만드는 조각품이 아니다" (44)

[2] "몇 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는 단어 하나만 사라져도 시 전체 의미가 훼손될 수 있다."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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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6-05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쁠때 잠깐 시간 내어 읽은 책들이 더 기억에도 많이 남는거 같아요. 다 읽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요~!! 허브향과 함께 좋은 연휴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

초란공 2022-06-06 09:35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항상 남기도 하구요^^ 평안한 연휴 보내세요~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 - 가난은 일상이지만 인생은 로큰롤 하게!
강이랑 지음 / 좋은생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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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옷자락을 내어줄 수 있다면

-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

 강이랑 지음 | [좋은생각] | (2022)




20년 가까이 피우던 담배를 8년 전 즈음 끊었다. 지인들은 나를 독한 놈이라며 별종으로 취급했다. 내가 담배를 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염치때문이었다. 지인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담배 끊는 비결은 사실 간단했다. 하루 한 갑 이상 피우던 담배를 살 돈이 없어서였다. 직장을 그만 두기 전에 다른 일자리를 구한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지 않고, 막연히 일자리를 금방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주변머리가 없어도 이정도 일 수 있을까. 구직기간 동안 저축해둔 자금은 금방 바닥이 났다. 돈 버는 재주도, 주변머리도 없던 흡연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우선 담배를 끊는 수밖에. 마음 편히 부모님의 도움을 계속 받을 만큼 느긋하지도 못했고, 또 타인이 준 도움으로 담배를 사 피울 염치도 없었다. 경험은 누구에게나 상대적이지만, 가난한 상황이 수반하는 구차함의 생생한 경험을 나는 이렇게 맛본 적이 있다.


 

내가 잠시 경험했던 이런 삶의 순간들을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의 저자 강이랑은 어떻게 이렇게 담담하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 당장 여유 자금 없이 삶을 누군가에게 온전히 의지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는 도시 생활자로서 나는 책에서 아프면 큰일이다라고 한 저자의 한마디가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더 물러설 공간 없는 마지노선 위의 삶. 그럼에도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다는 저자의 말이 더 뚜렷하게 각인되어 남는다.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것을 나누는 일은 부유한 이가 나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넉넉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실존적인 결단이 개입되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가난하지만 타인과 나눔으로써 더 넉넉해질 수 있었던 저자의 일상이 투명하게 담겨있다.


 

저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에서 글쓰기 강사를 하던 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다. 아동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한다. 일본어를 할 줄 알았기에 일본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학위를 받고 국내에 돌아온 저자는 국내 대학에 자리를 얻고 평범해 보이는 연구자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찾아온 공황장애 증상으로 소속이 있는 직장을 떠나기로 했고, 대신 독립 연구자의 길을 선택했다. 이 정도가 책에서 이해한 저자의 간단한 이력이다. 이 중에서 그가 유학 시절에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클럽에 가입하여 일본 아이들과 만난 경험을 이야기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은 외국인인 그를 편견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독립 연구자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해서도 삶에 매몰되지 않고 당당히 나아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림책을 사랑한다”(62)고 고백하는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유학 시절 아이들과 만나면서 아이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저자가 산책하는 들판에 자라던 풀을 누군가가 베어냈다. 하지만 다시 자라나는 들풀처럼 아이는 모두 성장하는 힘을 지니고 태어난다”(74)라는 믿음이 그에게 남아있었다. 이처럼 저자가 아이들과 만나고 스스로도 더욱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 그림책이 주는 힘이 컸던 것 같다. 그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림책이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143)라고 하는 점이었다. 타국에서 외국인이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마음이 맞는 좋은 사람들과 계속 만나며 삶을 나눌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림책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한편 그림책뿐만 아니라 아동문학과 동화를 연구하는 저자에게 글쓰기는 삶의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중학교 입학식 때 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써서 동화책을 만든 적이 있었다. 물론 이 동화책은 출판되지 않았으므로 그에게는 유일무이한 책이었다. 성인이 되어 동화책을 발견한 뒤 이 책을 함께 읽고 저자가 노모와 교감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 깊다. 물론 노모는 그 책 읽었다정도의 반응만을 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저자와 노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책을 통해 서로가 마음을 확인하는 모습은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굳이 말이 없어도 교감할 수 있었는 것은 가족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두 모녀의 모습을 보면서 키티 크라우더의 그림책 메두사 엄마에 나오는 이야기도 떠올려 보았다. 메두사 엄마와 딸의 관계처럼 엄마와 아이는 서로를 성장시키며 삶을 나누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간결하게 적어 낸 저자의 에세이가 토대를 두는 삶은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는 글을 마치면서 가난한 지금을 오롯이 살아 내며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니 이 책에 실을 글들을 얻을 수 있었다”(163)라고 담담히 말한다. 하지만 그의 글에선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공황장애 증상을 겪었을 때, 그가 잠시 붙들 수 있게 옷자락을 내어주었던 사람을 결코 잊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 주저앉으려는 사람에게 잠시라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마음들이 저자를 통해 나에게 이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우리의 지난한 삶을 또다시 견디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스스로를 돈길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오히려 재화의 쓰임새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는 죠리퐁도 주변과 나누는 사람,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다는 그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나누어도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까지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1] "한 마디로 나는 돈길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고 쓸 수 있는지 도통 모른다. 이렇다 보니, 아프면 큰일이다."(38)

[2] "아이들은 자신의 말에 성의껏 반응해 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며 말을 건넨다."(53)



[3] "아이는 모두 성정하는 힘을 지니고 태어난다. 자신 안에 갇혀 불평만 하는 어른은 타고난 강점마저 잃은 것이다."(74)

[4] "‘여주‘같은 무언가를 건네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소박한 채소 하나가 여름 보양식이 되듯,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기에."(116)

[5] "나는 그림책을 사랑한다."(62)

"그림책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장 간결하게 이야기한다."(136)

"그림책은 함께 읽어야 제맛이고, 다른 사람에게 읽어줄 때 빛을 발한다. (...) 그림책은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다."(143)

[6] "엄마와 아이는 서로를 성장시키는 존재인 것이다."(159)

[7] "아이가 건강하게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아버지의 이름‘이 중요하다. (...) 어머니가 아버지의 존재를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아버지의 이름‘을 가질 수 없게 된다."(160)

[8] "가난한 지금을 오롯이 살아 내며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니 이 책에 실을 글들을 얻을 수 있었다."(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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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5-30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재미있네요
개인적으로 조리퐁 우유에 타먹는거 안 좋아하는데...^^

초란공 2022-05-30 11:47   좋아요 1 | URL
저도 우유는 몸에 뭐가 많이 나서 안먹고 두유로 ㅋㅋ 죠리퐁은 두유에 타먹는것 보다 뿌려먹는결 좋아하지요 ㅋ
 
배움의 기쁨 - 길바닥을 떠나 철학의 숲에 도착하기까지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 지음, 김고명 옮김 / 다산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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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발현하기 위해 물어야 할 것들


-배움의 기쁨(2022)을 읽고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 지음 | 김고명 옮김 | 다산책방

 




라디오에서 재즈 가수 빌리 할리데이(Billie Holiday)가 부른 <Strange Fruit>이 흘러나와 깜짝 놀랬다. 이 노래는 이제 막 읽은 배움의 기쁨이란 책에서 알게 된 곡이었기 때문이다. 이 곡의 제목인 이상한 열매는 백인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나무에 매달렸던 흑인들의 시신을 가리킨다. 차별과 수모를 당했던 흑인들의 아픈 역사를 말하는 노래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문화비평가이자 작가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다. 남부 흑인 노예의 후손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인들의 통상적인 표현으로 부모 중 한 명만 흑인이어도 자손 역시 흑인으로 취급되곤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말이다. 저자 역시 학창시절 자신의 정체성을 속된 말로 깜둥이로 여기고 지냈다. 이 책을 읽은 후 이들이 이런 표현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일에 얼마나 큰 문제가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 표현은 혼혈인들을 깜둥이취급하는 자들에게는 타인을 혐오하는 관습에 젖게 한다. 반대로 이렇게 불리는 자들 곧, 당사자들은 자기혐오정서에 얼마나 빈번히 노출되며 심지어 이를 내면화시키는지 깨닫게 된다. 일부이긴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현대 미국 흑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 말이 얼마나 파괴적인 역할을 해왔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평론가 자신이 읽고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기까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종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태어난 흑인의 정체성을 매개로 자신과 어버지의 삶을 연결시키며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미국 동부 뉴저지주에서 태어난 저자는 고등교육을 받고 교양을 쌓은 부모의 노력으로 중산층의 환경에서 성장했다. 집에는 1만 여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가 있었고, 자녀가 교양을 쌓고 책을 읽는데 큰 관심과 열정을 지닌 부모가 있었다. 하지만 학교를 포함한 집밖의 세계는 정글이나 다름없었다. 학교와 농구장에서는 폭력이 일상이었고, 흑인 학생들은 자기 및 타인에 대한 혐오적인 힙합 가사를 능숙하게 따라할 줄 알아야 집단에서 무리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매일 아버지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대화를 해야 했지만, 집 밖에서는 외모와 자존심을 내세우고, 거친 욕설을 내뱉을 줄 알아야 했으며, 나아가 책과 배움 자체를 경멸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 저자는 이것이 사회 계층을 막론하고 흑인 사회에 팽배해 있던 문화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흑인 아이들이 내뱉던 가시 돋친 말들이나 거친 욕설들은 이 아이들이 그만큼의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음을 암시하는 징후였다. 저자는 이런 흑인 문화에서 학생들이 일종의 가면을 쓰게 되었고, 누구나 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고 진단한다. 고등학교 시절 저자의 여자 친구 스테이시는 재능 있고, 아름다우며, 똑똑한 학생이었다. 그녀 역시 중산층 집안의 자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또래 흑인들이 공유했던 역할극에 참여하여, 스스로를 좁은 물에 고립시켰다.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스스로 닫아버렸고, 결국에는 다른 흑인 학생의 아이를 임신하기에 이르렀다. 또래의 많은 흑인 학생들처럼 그녀의 미래도 이렇게 닫혀버렸던 것이다.


 

저자도 이렇게 또래들과 같은 역할을 연기했지만, 아버지의 관심과 격려로 책읽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결국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저자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우물 안 개구리와 같았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다. 결국 새로운 환경에서 경험하며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눈을 갖추기 시작했다. 힙합 문화를 비롯하여 학창시절을 지배했던 흑인 문화와 정서를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항상 책을 들고 다니며 연필로 밑줄을 긋던 아버지의 삶에 대해서도 점차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가 대학교 2학년을 마치면서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집에 와서 아버지와 예술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기억난다. 아버지는 책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읽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저자는 책읽기가 순수한 즐거움이기도 해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던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아버지가 책을 이렇게 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고 부끄러움과 아버지에 대한 부채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도 무조건 펜을 쥐고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었다, 아들아. 밑줄 긋는 걸 좋아해서 그런 게 아냐. 뭐라도 지식을 건져서, 뭐라도 실용적인 지식을 건져서 내 인생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거였지.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나한테 뭐라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226)

 


저자는 아버지의 삶을 생각했다. 1930년대에 인종차별이 횡행하던 남부의 텍사스에서 아버지 없이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홀로 용돈을 벌고 학교를 다녀야 했다. 1950년대에는 땅콩버터 한 숟가락으로 아침과 점심을 때우며 사회학 석사 과정에 입학하여 공부를 했다. 식비를 아낀 돈으로 책을 사 모았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책읽기는 그만큼 절실한 행위였다. 저자는 아버지의 책읽기를 이렇게 전한다. “파피(아버지)는 인생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듯이 텍스트와 사투를 벌였다.”(188) 또 아버지의 책을 펼치면 책장에서 문제 제기, 행간의 해석, 동그라미로 표시한 난해한 표현의 정의, 주장의 해부와 파훼, 반박과 반론 제시와 전개를 여백에다 빼곡하게 적어놓은 글씨”(190)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자기 경멸적인 문화에 젖어 있던 흑인 학생이 책을 통해 교양을 쌓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기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서재를 매개로 책과 체스, 부자 간 진솔한 대화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배움의 기쁨이지만 이 제목은 이 책의 진가를 다 담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다소 협소하고 수동적인 느낌의 배움에만 그친 것 같아 아쉽다. 이 책은 배움의 효용뿐만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기준점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저자의 경험담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철학을 전공한 비평가답게 헤겔이나 니체,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실존 철학, 그리고 여기에 큰 영향을 준 작가 도스토옙스키를 넘나든다. 그는 학창시절 자신이 흠뻑 젖어 지냈던 흑인문화, 이를테면 소유물, 겉멋, 외모, 돈 등에 경도되어 있는 문화를 비판한다. 자신이 속했던 흑인 또래 집단은 피상적인 가치들만을 따르며 연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현상을 간파하는 기준점의 하나로 실존주의 철학을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실존주의란 우리의 행동이 우리를 규정하고, 따라서 우리가 우리 행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철학’(240)이라고 소개한다. 흑인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이 깡패처럼 되고자 각자 선택했다는 의미다. 각 개인이 자신을 속여서 깡패 역할을 연기한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앞에 놓인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주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저자에게 철학은 자신에게 솔직하기’, 혹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를 알려주는 길잡이였던 셈이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선택 앞에 서 있는 존재다. 깡패 연기를 하며 자신을 속이고 연기하는 삶을 계속 살아가길 선택할 수 있다. 또는 보다 넓은 세계에 호기심을 갖고 탐험하며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살아가도록 선택할 수도 있는 셈이다. 누구나 원하는 답과 선택이 다를 수 있다. 다만 선택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를 뿐이다. 때로는 우리가 내린 선택으로 다른 선택보다 훨씬 혹독한 환경에 처할 수도 있겠다. 삶에서 이런 선택의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면, 최근에 읽은 사르트르의 구토(1938)와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이 반영된 소설이다. 처음에 읽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배움의 기쁨을 읽으면서 저자가 이야기해주는 경험과 사례들을 함께 떠올려보면, 실존철학의 구체적인 적용으로서 두 책 모두를 더욱 풍성하게 읽을 수 있겠다.

 


저자가 아버지의 서재에서 아버지와 나눈 교감, 장서들을 통해 배운 깨달음의 힘은 강력했다.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면서 흑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자존감을 어렵게 되찾았다. 아울러 힙합 문화로 대변되는 자기 경멸적인 흑인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적 빈곤과 기계적인 순응 속에 미래가 닫혀버린 많은 또래들도 떠올린다. 저자는 우리가 자신에게 미치는 악영향으로부터 벗어나게 행동하는 방아쇠는 각자의 손에 놓여 있음을 환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본질적인 삶의 문제 해결에 있어서 고독한 존재라는 점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배움의 기쁨구토를 함께 읽으며 실감하게 된 실존주의 철학의 한 조각이다.


 

이 책은 단지 책읽기나 배움의 기쁨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버지가 정성을 들여 모은 책들과 서재, 부모와 자녀 간의 친밀한 대화의 시간이 갖는 강력한 힘도 보여준다. 성인이 된 저자가 아버지의 서재에서 체스를 두다가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아버지의 생을 이해하고 비로소 공감하게 된 저자의 성숙함이 내게도 전해졌다. 또 인상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대학생이던 저자가 방학을 맞아 집에 와서 어머니와 산책하던 장면이었다. 어머니는 햄릿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며 아들에게 자신에게 진실해라고 당부한다. 이 대사는 햄릿의 등장인물인 폴로니어스가 멀리 떠나는 아들을 걱정하며 당부하는 대목에 나온다.


 

무엇보다 이점 - 네 자신에 진실되거라.

그러면 당연히, 밤이 낮을 따르듯,

네가 누구에게든 거짓될 수 없다는 결론이 따르지.

 

[햄릿, 김정환 옮김, 아침이슬, 2008, 33]

 


흑인 문화 속에서 스스로 장벽을 치고 연기하기를 그만두고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자기 발견의 기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홀로 감당해야 하는 고독한 존재이지만,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지닌 존재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므로 배움의 기쁨은 배움의 기쁨과 개인의 성공담 그 이상을 보여준다. 바로 독자에게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진실할 것인가를 묻고 생각할 기회를 준다.




[1] "어휴, 빈민가 애들 입양해서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죠?" (20)
- 백인인 저자의 엄마가 마트에서 만난 백인들로부터 들은 말들.

[2] "파피(아버지)는 특별한 사람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자신과 같이 생긴 사람에게 무조건 광적인 혐오를 보이는 세상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109)

[3] "초등학교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내게 상황을 좌우할 실질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149)

[4] "두 번째 시나리오는 나에게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것이었다. 자존심을 억누르고 호기심을 해방함으로써 타인을 통해 낯선 문물을 접하는 것." (149)
- 바게트 빵을 몰라 창피함을 느낀 저자가 했던 생각들.

[5] "신을 믿지 않는 파피에게는 독서가 유일한 구원이었다. 파피는 단순히 책을 모으고 정독하는 수준을 넘어 책과 분투했다. (...) 파피는 인생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듯이 텍스트와 사투를 벌였다." (188)

[6] "내가 살던 곳에서 흑인에게 책이란 슈퍼맨에게 크립토나이트와 같은 것이었다. 심한 발진과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알레르기원." (192)

[7]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를 존중하는 법을, 여자를 철천지원수가 아닌 소중한 존재로 대하는 법을 배워갔다." (211)
- 대학에 가서 변화해가는 저자의 모습들.

[8] "후자(흑인문화)는 철저히 소유물, 겉멋, 외모, 맞대응 등 피상적인 면만을 따지는 반면, 전자(철학)는 그런 허울을 뚫고 들어갔다. 철학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 자신이 플라톤이 말한 동굴에서 탈출한 죄수 같았다." (217)

[9] "그들(흑인들)이 존경할 수 있고 실제로 존경하는 것은 전능하신 돈이었다." (218)
-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10] "윌의 본질은 깡패가 아니었다. (...) 다만 깡패가 됐을 뿐, 깡패가 되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윌도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님을 알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말한 ‘자기기만‘이다. 자신을 속여서 어떤 역할을 연기하는 것." (242)

[11] "사르트르에 다르면 우리는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절대적으로 자유롭다. (...) 사르트르라면 우리 각자가 오로지 자유에 대해서만 노예일 뿐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244)

[12] "개인으로서 나를 발현하려면 반드시 내가 자라온 흑인문화를 장기간 이탈해서 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악영향으로부터 나 자신을 완전히 단절시켜야 한다는 결단이었다." (276)
- 대학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프랑스에서 일하기를 선택한 저자의 이유

[13] "논 노비스 솔룸 나티 수무스(우리는 누구도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 (282)
- 저자의 대학 졸업식에서 아버지가 ‘공익에 대한 의무‘를 잊지 말라며 해준 라틴어 축사(키케로가 한 말)


[14] "우리가 대개 혼자서는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없으며 타인을 통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나 자신의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거나 이해할 수 있다는 이치를 알아가고 있었다." (291)

[15] 거리에서 비싼 옷을 입고 쇼핑백을 가득 들고서 랩가사를 읊조리는 흑인을 보고 저자가 한 생각.
"바로 그런 정신적 빈곤, 피상적 사고, 도덕적 미성숙, 기계적 순응이야말로 현재 흑인의 삶에 뿌리내린 근본적인 문제이자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진짜 주제다."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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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3-13 11: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경험한 즐거움 중 가장 길게 누릴 수 있는 게 배움의 기쁨이에요.
배워도 배워도 새로 배울 게 있어 싫증이 나지 않거든요. 배움은 매력적인 세계에 빠지는 일이에요.

˝네 자신에게 진실되거라˝ ˝텍스트와 사투를 벌였다.˝
멋진 문구를 많이 보고 갑니다.^^

초란공 2022-03-13 16:59   좋아요 2 | URL
아무리 바빠도 배움도 항상 함께 해가야 하는 것 같아요. 나중에 하라고 하면 잘 안될 것 같습니다. ^^ 조금씩이라도 매일매일! ^^
 
구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7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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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진실한 삶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 사르트르구토 읽고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그날, 그 시간이다, 라고 말할 때가 오리라.”(330)

 


장 폴 사르트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철학자다. 정작 그는 철학과 문학 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문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후세에 작가로 기억되기 바랐다는 말이다. 그의 첫 소설 구토 La Nausée(1938)에 등장하는 화자 앙투안 로캉탱은 소설의 마지막에 공간적 배경이 되는 도시 부빌을 떠난다. 파리에서 소설을 쓰기 위해서다. 위에 인용한 대목은 로캉탱이 기차에 오르기 전에 하는 독백이다.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그날은 언제일까?


 

소설의 화자 로캉탱은 서른 살에 이미 30만 프랑의 재산을 상속받고 유유자적하게 지낸다. 여기에 매년 144백 프랑의 연금을 받는 잉여계급이었다. 그는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을 만족스러워하지만 친구 하나 없는 고독한 인물이었다. 세계 여러 곳을 수년 간 여행하고 돌아와 부빌에서 지내고 있다. 이곳에서 프랑스 혁명기의 드 로르봉 후작에 관한 역사책을 쓰는 중이었다. 그는 관련 자료가 있는 도서관을 일과처럼 드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병에 걸리듯 갑작스럽게추상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들고 던지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호텔 앞에 떨어진 종이를 주우려다가도 빈손으로 일어섰다. 역시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꼈다. ‘시큼한, 일종의 구토증을 느꼈던 것이다. 이제 그 증세는 식당이나 역전 회관, 그리고 어디든 로캉탱을 따라다녔다.



 

구토의 원인과 존재개념


 

도대체 이 구토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로캉탱의 눈앞에 놓인 사물의 존재자체가 이 증상을 유발하는 것이 분명했다. ‘사물이 존재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존재는 필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존재란 단순히 거기에 있다는 것뿐이다.”(245)라고 생각한다. 존재는 우연히있게 된 것이다. 또 이 우연성은 절대이므로 완전한 무상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포함하는 모든 것이 무상이라는 것이다. 로캉탱이 말하는 이 존재의 우연성혹은 무상성은 사르트르가 소설을 발표한 후 5년이 지난 1943년에 출간한 존재와 무에서 다루는 개념이다.


 

사르트르가 사용하는 존재의 개념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언급된 존재개념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고대 서양 철학에서 존재불변하는 것, 언제나 있는 것, 영원한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거기에 있다고 믿어졌던 우주’, 한결같은 지식을 담고 있는 진리와 같은 대상이 존재의 영역에 속했다. 이들은 앎의 대상, 사유의 대상이었다. 반면, 생성과 소멸을 겪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상은 감각 혹은 경험을 통해 감지될 수 있는 대상이었다. 반면 로캉탱은 단단하고 움직이지 않는 돌뿐만 아니라 자신도 존재의 영역에 포함시켰다. 다시 말해 존재의 범주에는 생성과 소멸을 겪고, 먹고 마시며 움직이는 인간이 포함되어 있다. 나아가 존재는 이 모든 세계에 있게 된 대상이며, 존재들은 그저 우연히있게 된 것들이다.


 

여기에서 로캉탱이 느꼈던 구토증세의 원인을 짐작해볼 수 있겠다. 하나의 존재(화자)가 다른 존재(조약돌)를 자각할 때 찾아오는 낯선 감정이 아닐까. 다시 말해 생성·소멸을 겪는 존재(화자)가 불변하는 존재(조약돌)와 마주하여 대상의 우연성을 자각하고, 대상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자각이 낯설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에게 존재란 그 속성을 말할 수는 있어도, 결코 그 자체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존재자로서 화자 자신뿐만 아니라 대상인 조약돌의 존재 이유나 원인을 알 길은 없다. 대신 대상을 사유하는 자신을 인지하는 것이다. 이 때 존재가 느끼는 낯설음과 불안감. 그게 바로 구토증세였다.



 

우연성의 세계 vs. 필연성의 세계

 


로캉탱은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역전 회관을 습관처럼 찾았다. 이곳 종업원이 틀어주는 음악을 들을 때면 구토 증세가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랙타임 형식의 스탠더드 재즈곡 머지않아서 Some of These Days를 들을 때, 행복을 느꼈다. “그것은 구토속의 조그마한 행복”(47)이었다. 그는 자신이 음악을 들을 때 구토가 사라진 이유를 음악의 필연성에서 찾았다. 한 곡의 음악은 필연성의 질서에 따라시작과 끝을 지닌다. 게다가 몇 초 후면 흑인 여자가 노래를 부를 것임을 아는 시간성 속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내적 질서를 지닌 음악의 필연성은 설명될 수 있고, 규정될 수 있었다. 로캉탱은 이 음악의 필연성 에 있을 때 행복감을 느꼈다.

 


한편 역전 회관에서 여주인을 기다리던 로캉탱은 몇 사람이 술을 마시며 트럼프 놀이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들의 보여주는 삶의 방식은 우연성이 지배하는 영역에 속했다. 트럼프 게임의 승부마저 우연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일요일마다 아페리티프를 마시며 트럼프놀이를 하거나, 맥주와 슈크루트를 먹었다. 혹은 일요일마다 식당에서 보르도산 포도주와 소갈비를 뜯는 부부처럼 습관적인 삶을 산다. 상류 인사들도 일요일 오전마다 투른브리드 거리에서 모자 춤에 참여한다. 타인의 시선과 체면에 신경을 쓰고, 관습에 순응하는 옷차림을 하고 거리를 나서는 것이다. 이들은 각본에 따라 말하고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행동했다. 이 대부분의 부빌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사르트르의 용어로 자기기만에 해당할 것이다. 로캉탱은 이들 모두를 세계에 우연적으로 주어진 여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러한 여분의 존재를 자각할 때마다 구토증세를 느꼈던 것이다. 이 여분의 존재들은 음악 에서 행복을 느꼈던 로캉탱과 분명히 다른 세계에 있었다.


 

우연성이 지배하는 현실 세계에서 로캉탱이 거의 유일하게 교류하는 인물이 있다. 오지에 P.라는 이름의 독서광이었다. 그는 7년 째 도서관에 있는 책을 저자 이름의 알파벳순으로 읽고 있었다. 로캉탱처럼 언젠가는 여행을 하고 싶어 하지만, 스스로 만든 습관과 자신의 천성에 따르는 인물이다. 그가 로캉탱에게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파스칼의 말을 꺼낸 것처럼 자신이 정한 습관 속에서 사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천성(동성애적 성향)을 따르다가 도서관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이처럼 우연성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습관에 따라 반복되는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다른 세계 속에서 사는 이들에게는 서로 다른 시간성이 존재했던 셈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우연성이 지배하는 세계필연성이 지배하는 세계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로캉탱이 필연성이 지배하는 세계를 지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그가 머물고 싶어 하는 세계가 레코드판의 음악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로캉탱은 우연성의 세계를 극복하려고 했던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필연적이며 자기 원인이 됨직한 것을 발명함으로써, 이 우연성을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다.”(245) 우연히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스스로 만들어내면 된다는 것이다. 로캉탱은 점차 존재를 자각하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연성이 지배하는 세계는 일종의 무질서적인 세계다. 이로부터 필연성이 지배하는 질서의 세계 속에 이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결단과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이 혼돈(카오스)의 세계에서 질서 잡힌 세계(코스모스)를 창조했다고 믿었다. 사르트르의 철학 체계 전체가 신의 부재위에 놓여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연성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일 수밖에 없다.


 

로캉탱은 결국 드 로르봉 후작에 대해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떤 필연적 존재도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245)고 말했다. 그는 작곡가나 가수가 아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우연성을 극복하는 발명은 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다만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이길 원했다. 로캉탱이 필연성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질서를 부여하는 방법이 소설쓰기였다. 이 작업은 작곡가가 소설 속에 흐르는 재즈음악을 만들었던 것처럼 우연성의 세계에서 일탈할 수 있는 창조행위였다.



 

나다운 내가 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나름의 완결성과 내적질서를 갖는 구조를 창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곧 우연성을 극복하기 위한 자기창조의 과정에 필요한 것이 바로 상상력일 것이다. 사르트르는 1936년에 상상력, 1940년에는 상상적인 것이란 책을 썼다. 그는 작가가 되기를 열망했을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란 주제를 진지하게 탐구했다. 이런 맥락에서 로캉탱이 말하는 우연성의 세계는 상상력이 결여된 세계라고도 할 수 있겠다. 기계적으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상상력이 소멸되어 있었다. 돌처럼 단단하고 움직이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러한 삶에 일탈을 가져올 수 있는 촉매제가 바로 상상력혹은 상상력을 통한 창조 행위가 아닐까. 물론 여기에 개입되는 행위는 필연성의 세계에 정교한 내적질서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첫 단락에 인용한 대목은 로캉탱이 유복한 상속자의 권태로움, 순응하는 삶을 단절하고자 부빌을 떠날 때 하는 독백이었다. 부빌을 떠나게 된 것은 단순히 역사책 쓰기를 중단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뿌리내린 세계와의 단절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로캉탱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음악을 들으며 나는 있기를 원했다.”(324)라고 되뇐다. 여기서 그는 있기’(‘있음’)존재를 구별해서 사용하며, “그것밖에는 바라지 않았다. 이것이 내 인생의 결어(結語)이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때 존재라는 표현은 상상력 혹은 의미가 결여된 상태 혹은 그 대상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반대로 자신이 내린 인생의 결론에 따라 있기를 원했다는 말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의 본모습(본질)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갈망이기도 하다. 곧 자신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선택해나가는 존재이길 원했다는 의미다. 여기에 로캉탱의 상상력과 결단(용기)이 필요했다. 로캉탱에게 소설쓰기는 자신이 필연성의 세계와 만날 수 있는 자기창조 행위였다. 이것이 어쩌면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서 영원성을 맛볼 수 있는 행위였을지 모른다.


 

구토에서 로캉탱은 어느 면으로 보나 사르트르의 분신이었다. 몇 년 후 출간되었던 존재와 무에 담긴 그의 사상은 이미 이 소설에 반영되어 있다. 습관처럼 존재하는 삶을 극복하려는 사르트르의 의지는 1964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그의 행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서 분명히 스스로의 질서를 발명한 사람이었다. 습관적으로 존재하는 삶에 저항하고 이로부터 일탈을 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그의 삶과 작품에서 새로운 상상력과 영감을 얻게 된다.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과 함께 말이다.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찾아 파리로 떠나는 로캉탱처럼, 우리의 삶도 그저 존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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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9 17: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존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구절 좋아요 초란공님. 읽다 던져버린 자크모노의 우연과 필연도 쪼금 생각납니다 ㅎㅎ 편한 저녁 보내세요 ~

초란공 2022-03-13 16:5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우연과 필연>에도 카뮈의 문장이 나오는 걸 보면 ‘실존주의‘가 당대에 큰 영향을 미치긴 했나봐요. 무엇보다 신 없는 인간의 운명을 생각한다면 더 그럴 것 같습니다. 평안한 주말 보내시구요.

페크pek0501 2022-03-13 11: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분명히 이 책을 읽었는데 왜 남아 있는 게 없을까요?
제가 꼼꼼히 읽지 않았나 봅니다.

초란공 2022-03-13 16:57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은 덮으니까 기억이 잘 안납니다^^;; 아직도 철학이 생소해서 그런가봅니다.

새파랑 2022-04-09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축하합니다 ^^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초란공 2022-04-10 21:29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2관왕 뒤늦게 축하드립니다. 저는 코로나가 찾아와서 숙주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바이러스를 최대한 편하게 모시기 위해 안정을 취하는 중입니다.^^;; 바이러스의 분열에 최적인 환경을 조성하고자 최상의 영양분도 섭취하여 공급하고 있지요.

새파랑 2022-04-10 21:42   좋아요 0 | URL
저도 한달전에 걸렸었는데 이제 걸리셨군요 ㅜㅜ 후유증없이 완쾌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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