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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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자유와 상상력을 품었던 공간, 이제는 우리의 바다


- 주경철의바다 인류(휴머니스트, 2022)



 

바다는 인류사의 중요한 무대다. 지구 표면의 70%가 넘는 바다는 인류에게 미지의 세계이자, 장애물이었던 반면, 육지와 다른 장점을 갖춘 통행로이기도 했다. 이 논지는 일요일의 역사가, 대항해 시대,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를 비롯한 많은 역사서로 대중에게 역사를 친숙하게 소개해온 주경철 교수의 신간 바다 인류(2022)의 큰 주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연구 분야인 역사뿐만 아니라 문학과 경제 분야에 대한 폭넓은 안목으로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시리즈와 같은 주목할 만한 번역서도 소개한 바 있다. 이번 도서는 바다와 함께 해온 인류 문명사에 대한 오랜 관심과 연구 사항을 총정리한 작업으로 볼 수 있겠다.


전작 대항해 시대역시 바다를 매개로한 역사를 면밀하게 다루었다. 다만 이 책은 세계를 거대한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준 근대의 형성 배경에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 이번 작업은 인류가 바다와 상호작용해온 역사를 보다 긴 호흡으로 추적한 역작이라 볼 수 있다. 대항해 시대가 중세가 마무리되고 근대가 시작하는 인류사 시기의 여러 장면을 해양이라는 무대 속에서 현미경적으로 들여다본 작업이었다면, 바다 인류는 같은 맥락에서 바다를 탐험하고 도전해온 인류 역사의 흐름을 보다 높은 곳에서 전체적으로 조망했다.


고고학 연구가 아닌 이상 인류의 역사는 무엇보다 먼저 살았던 이들이 남긴 문자기록에 크게 의존한다. ‘역사 시대란 이런 특성을 반영하고 여기에 의존하던 시기이므로, 문자가 등장하여 기록된 매체가 역사 연구의 주요 대상이다. 현재 인류에게 남겨진 가장 오랜 문자로 수메르 설형문자/쐐기문자를 들 수 있다. 이들 문자와 기록은 5000년에서 8000년 전의 인류가 이미문명을 이루고 있었고, 또 이들이 이미 바다로 나가 필요한 물자를 운송했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이런 관심을 지니고, 고대 문명이 바다로 나아가 바다를 개척했던 역사가 궁금했다. 문명 초기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해양으로의 진출은 문명의 시작과 함께 진행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메소포타미아나 아프리카 고대 왕국에서 신전과 같은 건축물, 선박과 같은 목재 구조물을 짓기 위해 바다를 이용하여 거대한 바위와 목재를 나르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최근 그리스·로마의 역사와 철학 등 고전에 대한 소개가 활발하다. 내게도 조금 익숙해진 지중해 지역(유럽과 아프리카, 근동 지역이 만나는 곳)의 문명이 눈에 들어왔다. 지중해 주변의 문명과 인도양 지역의 문명(아프리카 북동부와 인도)이 홍해와 페르시아만을 통해 연결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 흐름이 아프리카-인도-동남아시아-중국으로 이어지는 근대 해양 네트워크의 한 축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육상의 실크로드뿐만 아니라 해양의 진주길이 만들어진 역사는 도전적이고 동시에 역동적이었다. 이 역사의 한 가운데에 목숨을 건 말레이인들의 중개무역과 같은 과정이 있었다. 서양인의 시선에서 해석된 역사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이번 독서에서 인상 깊게 주목한 부분은, 저자의 세심하고 균형감 있는 역사적 안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우리는 그리스 문명을 이어받은 로마 제국이 서구 문명의 모태가 되었다는 설명에 익숙하고, 이것이 상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초기 지중해 세계가 그리스-로마의 독무대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양한 민족들이 협력과 투쟁을 하며 복합적인 역사 흐름이 이어지는 곳’(69)이라고 말한다. 서양 역사가 혹은 이들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역사가들의 설명을 왜곡된 설명이라 지적하고 편견을 바로잡고자 한다. 저자는 그 역사 흐름은 일직선의 단순한 발전이 아니라 성장·후퇴·갱신을 거듭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이었다. 바다는 다양한 문명들의 혼합을 통해 새로운 문명이 떠오르는 창조적 공간이었다”(69)라고 알려준다.



[로마제국의 지중해 점령지역]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 식민지화에 대한 저자의 해박하고 균형 잡힌 설명이 눈에 띄었다. 이를 테면, 페리클레스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문명)그들(야만)‘간의 대립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들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불렀다. 나아가 그리스라는 문명이 일사분란하게 지중해 지역의 식민지를 건설하고 문명을 수호했다는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구도가 지중해 세계의 식민지화 양상을 고려할 때 흔히 적용되어 온 셈이다. 이에 저자는 단일 구조 아래 일부 주민을 내보내 식민지를 건설한다는 설명은 환상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실상은 인간이 항해를 통해 끊임없이 다른 세계와 소통했고, 그 가운데 형성된 네트워크가 확대되어 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연결고리에는 광대한 지역과 다양한 종교 및 문화가 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보와 지식, 물자가 유통되어 왔다는 점이 핵심이 되겠다. 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지중해 세계는 지리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단일한 구조가 아니며, 페니키아와 그리스 민족의 해상활동을 두고 해양 식민 제국을 건설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보다는 여러 문화 자산이 전달되는 해상네트워크의 중첩이다.”(109)


 

이처럼 지중해 네트워크는 점차 확대되어 인도양 네트워크 및 태평양 네트워크와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갔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지역의 해양 네트워크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섬을 포함하는 동남아시아 해양 네트워크의 형성 과정 역시 복잡하고 역동적이었다. 이 부분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저자가 유럽과 중국의 역사를 운하와 해운의 관점에서 비교하는 대목이었다. 중국의 수나라는 단명했지만 양쯔강과 황허 강을 연결하는 대운하공사를 2대에 걸쳐 단행했다. 이 공사가 국가의 운명을 단축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제·문화적으로 화려한 중세 황금기를 견인했다. 중국이 상이한 지역의 인적/자연 자원을 이용하는 길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거대한 땅에서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어 역사가 진행되었다. 여기에 대운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면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유럽은 개방된 바다에 접해있었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의 국가들에 대한 통제가 훨씬 어렵고 그 역할도 미진했다. 이 지역에서는 역사적으로 지역을 통합하는 추진력이 발휘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로마 제국의 몰락은 이후 유럽의 역사에서 중국과 매우 다른 길로 나아가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보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유럽 주변의 전쟁처럼, 저자는 유럽 대륙은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의 분열된 조합 양상으로 역사가 진행’(220)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백성들의 삶을 궁핍하게 만들었던 중국의 대운하 사업이 역사에 영향을 준 유일한 부정적 요소는 아니었다. 저자는 대운하가 경제 성장을 가속하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폐쇄와 내향화를 촉진하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보았다. 결국 중국과 유럽 문명이 각각 제국과 국민국가라는 상이한 길로 가게 된 이유를 통찰하면서 대운하를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국내 학자가 주목한 주제를 저자가 직접 짚어주고 해석하는 대목과 만나는 부분이 이 책을 읽는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이후 중국과 이슬람권의 역동적인 교류 및 교역이 아시아 해양 세계를 한동안 특징지었다고 한다. 여기에 팽창하게 되는 이슬람 문명이 가져온 세계사적 영향은 근대의 기원을 열어젖힌 대항해시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로서 인류의 역사는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한 해양 네트워크를 매개로하여, 질적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졌다. 지구적인 해양 네트워크를 통한 팽창이 제국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예비했기 때문이다. 역으로 바다를 거치지 않은 제국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인류 역사에서 바다가 지니는 함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커져왔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바다에 초점을 맞춘 인류 역사를 문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통찰하고 있다. 오늘날의 바다를 다룬 장에서는 무엇보다 현재 인류가 마주하는 여러 심각한 문제들을 환기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 및 미국과 같은 제국사이의 새로운 경쟁과 충돌 양상은 곧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인류 역사의 어느 때보다도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우리에게 지구 환경 변화의 문제, 지구적 오염 문제보다 더 큰 위기감을 주는 문제가 있을까싶다. 이 문제의 징후가 무엇보다 바다에서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빙하가 영구적으로 사라져버리고, 공유 영역으로서의 바다는 플라스틱 오염원의 배출구가 되고 있다. 이 심각성을 제대로 실감하고 인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태평양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해구 바닥에서 발견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례일 뿐이다. 바다에 떠다니는 비닐봉지를 먹는 거북이나 몸 안의 소화관에 미세 플라스틱을 지니고 있는 해양 생물 역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걸까. 이제 인류는 전체의 운명이 걸린 실존적인 문제 앞에 놓여 있다. 어쩌면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바다에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인간의 역사, 특히 문명이 바다로 진출한 역사는 자연과의 대결을 오롯이 보여주었다. 앞에 놓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지혜를 모았다. 우리가 현재 직면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역사는 우리가 다시금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경고를 준다. 저자는 로마인들이 바다(지중해)로 나갔을 때, 바다를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말했다. 인류가 직면한 환경 변화와 오염을 고려할 때, 자연 변화와 환경 오염은 특정 국가나 이들에 속한 영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는 하나의 전체로서 바라보아야 할 때다. 그러므로 지구의 바다 전체가 곧 우리의 바다가 되어야 한다. 지구에서 운명을 공유하는 지구인으로서 말이다.


 [오스트로네시아족인들의 인도양-태평양지역 확산 흐름]



이 책은 인류에게 바다란 무엇인가?라는 큰 물음으로 시작했다. 이 물음은 태평양의 오스트로네시아족 사람들이 바다를 통해 확산했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정교한 문양이 들어간 라피타(Lapita) 도자기 문화는 바다를 건너 확산되고 공유되었던 역사를 보여준다. 이들에게는 바다가 무한한 자유를 가진 공간이자 하나의 거대한 모험이 기다리는 세계였을 것이다. 바다라는 세계를 마주했던 인류는 대상 세계를 해석하고 반응했다. 세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협력을 통해 지식을 개발하고 집단 지성을 이루어왔다. 이번 독서에서는 인류가 바다라는 공간을 통해 과감하게 도전하고 모험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구적인 해양 네트워크를 완성한 우리는 이제 완전히 다른 도전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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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3 0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 초란공님 정리 넘 잘하신거 아닌가요 !!! 전 읽긴 읽었는데 정리가 안돼요 ㅠㅠ초란공님 👍

초란공 2022-03-03 20:35   좋아요 1 | URL
저도 방대한 양이라 관심가는 부분만 뽑은거지요 ^^;; 통나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넌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워요!
 
최초의 역사 수메르 - 국내 최초 수메르어 점토판 해독본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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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역사 수메르

: 국내 최초 수메르어 점토판 해독본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

 



한 역사학자가 오롯이 담긴 최초 문명의 역사

 


지금부터 약 150년 전, 32세의 한 영국 청년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사실을 발표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대홍수보다 2000년 이상 앞서 발생했던 대홍수에 관한 역사를 공개했던 것이다. 조지 스미스라는 이름의 청년은 서구인에게 진리의 기준이 되었던 성서의 기록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가 발표한 길가메쉬 서사시로부터 최초의 문명국 수메르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에 알려져 있던 고대의 셈족보다 앞섰던 수메르족의 존재, 최소한 4000년 전에 묻혀버렸던 진실이 부활했다. 우리가 설형문자, 쐐기문자 등 이름을 들어본 적 있던 수메르의 점토판들을 해독하여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한 것이다. 19세기는 인류의 지성사에서 격변의 시대였을 것이라 상상해본다. 진화론이 등장하여 지구의 생명체에 관한 역사뿐만 아니라 인간의 위치에 대해 달리 바라보도록 화두를 던졌고, 고대의 셈족보다 먼저 존재했던 수메르족의 존재를 밝힌 일은 기독교적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한 일이었다.


 

오늘 읽은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국내 연구자가 직접 수메르 점토판을 해독하여 써내려간 역사책이다. 무엇보다 승자가 된 한 왕국의 필경사들에 의해 역사가 왜곡되고 사라져버린 고대 왕국을 되찾은 과정이 담겨있다. 저자는 문명의 본향인 수메르의 잃어버린 역사를 되돌려 놓았다. 그는 이 최초의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노라 말한다. 이 책의 서술방식이 독특한 이유는 역사책에 역사가가 적극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연구 중에 알아낸 일들에 대해 벅찬 감격을 느끼기도 하고 이를 역사책에 기록했다.


 

수메르 최초의 황제로 밝혀진 에안나툼은 라가쉬라는 도시 국가의 지배자였으며, 보기 드문 성군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백성의 빚을 탕감하여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었다. 최초로 노예해방을 선언하여 노예로 살아야 했던 아들, 혹은 어머니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예를 들면, ‘자유를 의미하는 설형문자 아마-를 설명한 대목이 나온다. ‘아마어머니를 가리키고, ‘돌아가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니까 에안나툼의 노예해방선언으로 노예였던 자식이 어머니에게 돌아가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폭정과 수탈로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던 힘없는 고대 수메르인들에게는 얽매인 신분에서 벗어나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바로 이들에게 절실했던 자유의 정의였단다. 저자는 최초의 역사 이야기에서 가장 가슴이 벅찬 순간”(225)이었다고 고백했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느꼈을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수메르의 역사를 읽으면서 신기하고 놀랐던 것은 5000년 전의 고대 세계와 지금의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수메르는 문자를 통해 기록이 남아있는 최초의 문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5500년 전에 수메르의 상형문자가 등장했다. 하지만 적어도’ 8500년 전에 수메르의 남부 지역에서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들 문명은 기본적으로 농경문명이었다. 농사를 짓기 위한 물이 중요했다는 의미다. 물을 확보하기 위해 이 고대 국가들은 운하를 만들고 관개시설을 마련했다. 또 새로 왕이 즉위할 때면 국론을 모으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시의 중앙에 언제나 신전을 짓거나 개축했다. 운하든 신전이든 이를 건설하는데 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필요했다. 사람들을 부리고 통제하기 위해서 중앙집권적인 지배자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렇게 수메르의 농경문명은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의 기본적인 요건을 이미 모두 갖추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도시가 발달하고, 그에 따른 필요가 증가했다. 이는 곧 자본과 자원이 도시로 모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특히 수메르 지역의 남부는 유프라테스/티그리스 강의 하류가 있는 비옥토 지역이었기에, 곡식을 비롯한 농산물로 풍요로웠다. 이 지역이 바로 성경에서 신화로 여겨졌던 에덴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잉여 산물이 생겨나 물물교환을 비롯한 교역이 성행하고, 수메르 남부에서는 아라비아 만을 통한 해상무역도 발달했다. 작은 도시 마을에 인구가 증가하고 자원이 부족해지면 전쟁을 통해 자원을 확보하는 등 도시 사이에 끊임없이 경쟁과 전쟁이 벌어지던 곳. 수메르는 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이 쉬지 않고 벌어졌던 역동적인 국가였다. 또 지금과 다름없이 권력을 향한 암투가 극심하여 위정자들은 심심치 않게 급사를 했다. 이는 자국의 신하들 혹은 가족들에 의해 살해당했던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수메르의 왕들이 급사하는 경우 대부분은 지병 때문이 아니라 암살당했기 때문인 것 같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지배자가 사망한 대다수의 경우는 자국 내에서 암살당한 사례가 더 많아 보였다.


 

저자는 5000년 전 고대인들의 삶을 해독하면서 우리의 삶을 통찰한다. 수많은 영웅들이 일어났지만, 대개 한 세대를 지나면 사라져갔다. 필멸자, 유한한 생이 주어진 인간의 운명 앞에, 나타났다 사라져간 선조의 모습이 기록되어 5000년이란 시간을 건넜다. 탐욕과 어리석음을 이토록 지독하게 반복하는 동물들이라니! 앞서 언급한 수메르 최초의 황제이자 성군이었던 에안나툼 역시 뒤를 이은 후손들이 잠깐의 틈을 보인 사이 주변 국가가 침략하고 신하가 배신을 했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인류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호기심과 흥분을 느꼈다. 반면 오랜 역사를 통해 변하지 않는 인간의 면모를 고대의 기록에서 재확인하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토록 영원히 어리석음과 이기적인 행동을 반복하고 사라져간 인간들의 운명이 점토판에 기록되어 있었다.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달라졌다고 해도, 본질적인 인류의 습성과 행동방식이 크게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나 역시 이 환경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인간의 구체적인 살림살이는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인간의 역사는 결국 비슷한 모양으로 되풀이 되고 있었다. 수많은 영웅들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권력과 재화를 탐냈다. 전쟁을 일으키고 약탈하여 전리품을 챙겼다. 뺏고 뺏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영상을 빠른 속도로 재생한 것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대의 필경사이자 역사가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밝히고 이를 바로 잡고자 했다. 잃어버린 최초 문명의 역사를 되찾았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동시에 5000년 동안 반복되어온 인간의 모순과 어리석음을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도 발견하고 안타까워했다. 고대의 수메르 지역은 현재 이란과 이라크 지역에 해당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고대와 현대의 역사를 연결 지으면서 자신이 일생의 연구를 통해 얻은 결실을 마무리한다.


 

고대의 이란-이라크 전쟁은 이란의 승리로 끝났다. 고대 이란인이 수메르의 황금 들판에덴의 자본을 차지했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고대 셈족이 에덴을 빼앗았다. 오늘날에도 이란과 이라크에서 전쟁이 되풀이되고 있다. 미국이 두 나라 사이에서 제국의 검은 손을 줄곧 뻗고 있다. 작금의 유일한 제국800개의 해외기지를 세웠다. 지구는 제국의 놀이터로 변했다.”(445)


 

과거에는 귀금속, 목재, 농산물 등의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면, 현대에는 석유, 천연가스 등을 비롯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는 정도가 다를까. 저자를 비롯한 우리가 그 밖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저자는 후손에게 어떤 역사를 남겨줄 것인가를 독자에게 물었다. 그는 제국, 전쟁, 국경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이 저자의 유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년(2021)에 원고를 마지막으로 출판사에 넘기고 몇 달이 지나 작고했다고 한다. 책이 나온 후 저자가 직접 수메르와 설형 문자에 대해 설명해주는 강연은 없을까 기대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수메르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느꼈을 저자의 감동을 나도 느끼길 바랐다. 그래서 그가 책의 마지막에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우리는 후손에게 어떤 역사를 남겨줄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는가라는 문구가 더더욱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저자가 30년 넘게 연구하는 동안 여러 번의 병치레를 겪으며 남긴 역작이다. 고대의 점토판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해독하면서 역사를 바로잡고, 이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역사가의 사명이 담긴 결과물이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독특한 서술방식을 따라가는 동안 나는 그의 역사 서술이 절박함과 간절함을 담은 서사시처럼 읽혔다. 개인적으로는 수메르 최초의 황제 에안나툼이 국가의 평화를 갈망하며 평화의 전령인 야생비둘기를 날려 보냈다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노예를 해방했던 수메르 황제에 대한 기록을 읽으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을 저자의 모습도 상상해본다. 저자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그가 자유’, ‘평화’, ‘비둘기를 의미하는 설형문자를 소개한 부분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며 글을 마칠까한다.




 

*수메르의 설형문자 '자유', '평화', '비둘기'

*비둘기는 수메르 최초의 황제 에안나툼의 평화 기원 메시지를 수메르 최고의 신 '엔릴'에게 전했던 전령이었다.

 


[1] "우루크에서 문자가 출현했고, 문명이 탄생했다. 우루크 문화가 기어이 문명을 일으켰다. 수메르는 최초의 문명국이었다. 우루크는 최초의 문명도시였고, 문명의 도가니였다." (68)

"문명의 본향은 수메르였다." (69)

[2] "에덴을 끼고 있는 라가쉬와 움마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적수였다. 에덴전쟁은 물전쟁이었고 식량전쟁이었으며, 영토전쟁이었다. 수메르에서 벌어진 ‘자본전쟁의 시작’이었다." (110)

[3] "에안나툼은 평화를 갈구하는 자신의 마음을 엔릴에게 전하고 싶었다. 왕이 선택한 ‘평화의 전령’은 야생비둘기였다. (...) 왕은 비둘기를 눈화장과 삼나무 진액으로 치장했다. 삼나무는 수메르에서 구할 수 없는 값비싼 ‘신의 나무’였다." (174-175)

[4] "‘자유’를 의미하는 설형문자는 ‘아마-기(ama-gi4)’이다. ‘아마(ama)‘는 ‘어머니’이며, ‘기(gi4)‘는 ‘돌아가다’라는 뜻이다. 엔메테나가 세상에 내놓은 자유는 ‘어머니에게 돌아가다’에서 탄생한 철학적인 수메르어이다. 수메르어 ‘아마’의 악카드어는 ‘움무(ummu)‘이다. 여기서 영어의 ‘마마(mama)’나 한국어의 ‘엄마’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아마, 움무, 마마, 엄마’의 품에 안길 때 가장 평온하다. 이때가 고달픈 삶의 무게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운 순간이다. "32행: 어머니를 자식에게 돌려보냈고, 33행: 자식을 어머니에게 돌려보냈다." 최초의 역사 이야기에서 가장 가슴이 벅찬 순간이었다." (225)

[5] "수메르는 ‘적어도’ 8,500년 전에 ‘(수메르) 남부의 남쪽’ 오우에일리에서 출발했다. 4,000여 년 도안 이어져온 수메르의 역사는 수메르인의 몫이었다. 그러나 수메르는 악카드인 사르곤에게 국권을 넘겨주었다." (301)

[6] "이씬의 《수메르 왕명록》은 악카드인을 위한 역사 기록이었고, 악카드인에 의한 역사 기록이었다. 어느 역사가라도 조국의 정체성·정당성·정통성에만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몰입한다면 역사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누르-닌슈부르의 "애국심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었다." (428)
- ‘애국심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란 말은 오스카 와일드가 한 말.

[7] "1064년에 세상을 떠난 에스파냐학자 이븐 하즘(Ibn Hazm)이 가장 처음 사용한 ‘셈, 셈어, 셈족’이라는 신조어가 1781년 독일의 역사학자 루트비히 폰 슐뢰처에 의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 서구인이 가지고 있던 최초의 기억은 진실이 아니었다." (439)


[8] "라가쉬의 필경사들이 4,600년 전부터 가열된 에덴쟁탈전의 실제 상황을 기록했다. (...) 그 당시 라가쉬와 에덴은 수메르 역사의 중심이었다. (...) 수메르는 우르 3왕조를 마지막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3,840년 전쯤(B.C.E. 1817) 이씬의 필경사 누르-닌슈부르가 수메르 역사를 ‘크게’ 왜곡했다."

"그로부터 약 1,200여 년 후 히브리인은 ‘수메르의 비옥토 에덴’을 ‘에덴동산’으로 바꾸었다. 수메르에 실재했던 ‘황금 들판’ 에덴은 신화 속으로 들어갔다. (...) ‘구약성서’와 ‘에덴동산 신화’를 쓴 역사가들은 누르-닌슈부르보다 훨씬 더 ‘적나라하게’ 수메르와 최초의 역사를 지웠다." (440)

[9] "에덴전쟁사와 라가쉬가 없는 《수메르 왕명록》은 거짓되고 망령된 역사이다! 이는 필자가 대한민국 산방에 홀로 앉아 세상에 던지는 화두이다. 약 3,840년 동안 잃어버린 ‘최초의 역사’를 되찾아 한없이 기쁘다." (443)

[10] "잊지 못할 전쟁이 있다. 1990년에 시작되어 2011년에 끝난 미국 대통령 부자(父子)가 일으킨 전쟁이다. 부시 부자는 수메르의 옛 땅을 ‘부수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숱한 수메르 유적지와 유물이 사라졌다. ‘희대의 제국’ 미국의 광기였다." (444)

[11] "역사는 거대한 조기경보시스템이다" (447)
- 미국 저널리스트, 평화운동가 노먼 커즌스의 말

[12] "나는 제국 없는 세상을 꿈꾼다.
나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꾼다.
나는 국경 없는 세상을 꿈꾼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는가." (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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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9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22-01-19 19:22   좋아요 0 | URL
네~! 알겠습니다! ^^

2022-01-20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20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역사에 없는 사람들의 미국사


(A Different Mirror For Young People)

로널드 다카키 지음 | 레베카 스테포프 엮음 | [갈라파고스] | (2021)

 



이민자의 관점에서 역사 새로 쓰기

 



노파심인지도 모르겠지만, 소위 빅 히스토리라는 관점이 유행하는 현상을 다소 우려하면서 바라보는 이유가 있다. ‘빅 히스토리관점에서는 우주의 역사나 지구의 역사, 혹은 각 나라의 역사에 관한 서술을 하나의 거대한 시간성 속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흐름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 우려하거나 문제될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내가 우려하는 부분은 이런 관점이 여러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의미와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화된 지식과 판단에 접하게 되는 경우다. 독자가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 인간에 대한 관심이 희석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결국 나만의 노파심일까.


 

예를 들면 미국은 북미 원주민이 살던 땅에 유럽인이 유입되어 형성된 이민자들의 나라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역사를 설명할 때 일반화된 핵심 개념과 설명만으로는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현실이 은폐되기 쉬울 것이란 생각이다. 이런 문제는 이미 많은 역사학자들이 부지런히 고민하고 기록을 남기고 있을 것이므로 나만의 노파심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유행처럼 느껴지는 빅 히스토리의 관점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일도 새로운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자칫하면 역사적 설명뒤에 정작 사람이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독자들의 지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일까.


 

에르난도 코르테스는 1519년에 16명의 기병과 600명의 보병을 이끌고 멕시코 해안에 상륙했다. 그가 다녀간 후 50년 만에 멕시코 중부 지역의 아메리카 원주민수가 3000만 명에서 300만 명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천연두와 같이 유럽에서 들어온 질병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아즈텍 문명을 몰락하게 만든 유럽인들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는 16세기 멕시코 지역의 역사를 ‘16세기에 멕시코 중부 지역의 인구가 유럽인의 유입과 질병으로 90% 감소했다라고 간결하게 정리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술만을 역사책에서 접했을 때, 후대의 독자들은 과거의 선조들이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이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을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인간의 역사가 인구, 그리고 숫자로만 기록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닐까. 역사책을 읽을 때 직관적이고 깔끔하게 정리된 빅 히스토리책들을 보면 내가 이따금씩 우려감을 느끼는 이유다.


 

역사에 없는 사람들의 미국사는 이런 개인적인 우려를 상당히 불식시켜주는 책이다.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에서 주목하고자 했던 노력들의 계보를 잇는 책이 아닐까 싶다. 하워드 진은 이 유명한 미국사의 첫 장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의 수난사로 시작했다. 그의 저술을 처음 접했을 때, 신선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워드 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에 복무하면서 폭격기에 올라 폭탄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책에서 내가 무슨 일을 했던가를 솔직하게 고백했던 부분도 기억난다.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높은 상공에서 무감각하게 폭탄을 떨어뜨렸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폭격 받은 도시 현장을 지상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가 받았을 충격을 상상해본다. 내게는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바라보는 경우는 폭격기에서 무심히 풍경을 바라보는 폭격수의 입장과 비슷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로널드 다카키가 쓰고, 이를 논픽션 작가 레페카 스테포프가 청소년용으로 다듬고 엮은 이 책은 폭격을 받은 현장을 지상에서 바라보는 일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에 특히 주목하게 된 이유다.


파도가 좋아 서퍼가 되려 했던청년 다카키는 하와이로 이주한 일본인 후손의 3세대다. 그의 할아버지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던 노동자였다. 저자가 살았던 마을은 일본인을 비롯하여 한국, 중국, 포르투갈, 하와이 혈통의 노동자들이 모인 다문화 공동체였다. 특히 그가 저술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From the Land of Morning Calm다른 해변에서 온 이방인들 Strangers from a Different Shore(1998)은 구한말부터 시작된 한인 이주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이 책들도 국내에 소개되지 않을까한다. 이 책을 엮은 레베카 스테포프 역시 인문분야의 논픽션 도서들을 선보인 작가다. 특히 청소년을 위해 하워드 진, 제레드 다이아몬드, 다윈, 찰스 만의 저서들을 편집하여 새롭게 발표한 시리즈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원저자 다카키 교수가 평생 붙들었던 관심사는 이민자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었다. 이번에 출간된 역사에 없는 사람들의 미국사에서는 저자의 그런 의도가 개별 인구 집단에 적용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 흑인 노예의 삶, 아일랜드인들의 이민, 중국인들의 역사, 러시아를 탈출하여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들 등에 관해 서술되어 있다. 허먼 멜빌의 장편소설 모비 딕(1851)에 등장하는 포경선 피쿼드호가 백인들에 의해 멸종한 원주민 부족의 이름인 것, 그리고 이 배에 10여 개국에서 온 선원들이 있던 설정은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은 한 국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미국의 족보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국은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유입되어 이루어졌다. 미국인들은 각자 자신에게 익숙했던 영역의 경계를 넘어온 이들이었다. 미국이야말로 다양한 경계인들의 나라였다. 하지만 백인 남성 위주의 성채를 세우고 이를 지키려고 했던 행보는 미국 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분열과 충돌의 씨앗을 심어놓았다. 2021년에 백인 인구가 사상 최초로 감소하고 있다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는 이 백인들의 우려와 불안감을 투명하고 절박하게 비춰주는 듯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멕시코 국경의 담장을 높이려 했던 시도 역시 그런 백인들의 두려움을 짐작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최근의 뉴스보도에 근거한 역자의 설명 따르면, 국내 전체 학생 중에서 한명 이상의 외국계 혈통 부모를 가진 다문화 가정의 학생이 3% 넘게 차지한다. 비록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동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다문화가정의 비율은 당분간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우리나라의 인구 구성도 지속적으로 다양화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둘 때, 다카키 교수가 서문에서 밝힌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개별 집단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이것들이 모두 모여 세계 시민국가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11) 대한민국도 결국 현대사를 새로 써야 하지 않을까싶다. 각 다문화가정의 후손들 역시 언젠간 자신이 속한 역사를 새롭게 써야하고, 누군가는 결국 다시 쓰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점차 다양해지는 집단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다시 새롭게 기술되어야 할 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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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1-14 0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초란공님 미국사 시작하시는 건가요?!

초란공 2022-01-14 01:24   좋아요 2 | URL
아주 느리게 읽을 듯합니다^^;; 이 책은 특히 흥미롭네요. 미국에서는 아주 소수파에 속했던 역사학자인 듯 하고요. 지금은 돌아가신 듯하여 아쉽네요.

mini74 2022-01-14 16: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국 민중사가 있군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

stella.K 2022-01-14 2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도 벽돌책을 좋아하시는군요.
저 하워드 진은 읽어보고 싶은데
아마 평생 못 읽지 싶어요.ㅠㅋ

2022-01-16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6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폭력에 반대합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스티나 비르센 그림, 이유진 옮김 / 위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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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그림: 스티나 비르센(Stina Wirsen)



폭력에 반대합니다

: 1978년 독일 출판서점협회 평화상 수상 연설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 지음 | 이유진 옮김 | [위고]

 



짧지만 큰 울림을 주는 연설문 - ‘폭력에 반대합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평전을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난다. 이후 그에 관한 영화를 보았고 오늘은 그가 남긴 연설문을 읽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최근 국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던 일부 어린이집 교사의 아동 폭력, 부모 혹은 보호자에 의한 아동 학대와 사망 사건을 함께 떠올려 보았다.


   아동 폭력 유엔 사무총장 마르타 산토스 파이스의 기고문(2018)에는 전 세계의 어린이가 5분마다 한 명이 폭력으로 숨진다는 통계를 언급한다. 해마다 세계어린이의 절반에 달하는 아이들이 자신이 알고, 신뢰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정신적, 신체적, 혹은 성적 폭력을 당한다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신체적, 성적 학대 이력이 있는 어린이들이 다른 어린이들보다 반응적 공격성과 언어적 공격성의 수준이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을 제시하며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현실을 지적한다.

   

   아동 폭력, 아동 학대 문제는 무엇보다 인권에 관한 문제다. 스웨덴 최초로 아동 체벌금지를 지지하고 관련법을 제정하는데 기여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주장은 무엇보다 사랑상호존중의 맥락에 있다. 아동에 대한 체벌이 없다면 버릇없는 인간으로 성장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체벌 없는 방식이 무규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라며 이를 구분한다.


 

물론 아이들은 부모를 존중해야 하나, 부모 또한 아이를 존중해야 하며 아이보다 언제나 우위에 있기 마련인 상황을 잘못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바라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부모와 아이들에게 서로에 대한 애정 어린 존중이 함께하는 것입니다.”(39)


 

   여기에 더하여 린드그렌은 어느 여인이 자신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연설문에 담았다. 그 여인의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아아 자신이 맞을 회초리를 구해오라고 했다. 한참 후 아이가 구해온 것은 회초리가 아니라 작은 돌멩이였다. 회초리는 구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자신이 벌을 받아야 한다면 돌멩이를 사용하라는 의미였을 듯싶다. 그 여인은 아이의 두려움과 고통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여인은 그 돌멩이를 부엌 선반에 놓아두고 그 돌멩이를 볼 때마다 폭력에 반대한다는 약속을 되새기고 상기하고자 했다.


   린드그렌은 자신의 연설문을 마치면서 이 돌멩이 하나가 마침내 세상의 평화에 작은 보탬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녀는 부모의 존중과 사랑, 관용 속에서 자라난 아이가 성장했을 때 이들이 자신의 주변에 다정한 태도를 견지하고 이러한 태도를 평생 이어간다는 믿음을 가졌다. 린드그렌의 삶을 떠올릴 때마다 큰 감동을 받곤 하는데, 이 짧은 연설문은 아이들에 대한 그녀의 흔들림 없는 신념과 사랑을 전하는 울림이 있다.




"5분마다 어린이 한 명이 폭력으로 숨집니다.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의 어린이들이 자신이 알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정신적, 신체적 또는 성적 폭력을 당합니다. 이는 세계 어린이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17)
- 아동 폭력 유엔 사무총장 마르타 산토스 파이스의 기고문(2018년)

"폭력 속의 삶은 삶이 아닙니다." (20)
- 어느 소년의 말 재인용

"요컨대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배우는 법이다." (32)
- 괴테의 말을 린드그렌이 재인용 한 문장

"부모를 사랑하며 사랑으로 둘러싸인 아이는 부모로부터 자신의 주변을 향한 다정한 태도를 배우고 이런 태도를 평생 이어갑니다." (32)

"모두가 바라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부모와 아이들에게 서로에 대한 애정 어린 존중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39)

"이 돌멩이 하나가 마침내 세상의 평화에 작은 보탬이 될 것입니다."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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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23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님인데 이런 멋진 연설문도 쓰셨군요. 아이 사랑하는 진심이 가득. 큰 손과 작은 손의 그림이 참 따뜻해 보여요.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

김명호 지음 | [돌베개]

 


'책꽂이에서 다시 발견한 책' -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


 

조선 후기를 무대로 등장하는 북학파와 관련해서 정리해본다. 북학파의 거두라고 불리는 연암 박지원 선생이 남긴 유명한 열하일기(김혈조 옮김, 돌베개, 2017, 개정신판) 외에 연암의 면모를 보다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다고 알려진 문집이 바로 연암집(신호열, 김명호 옮김, 돌베개, 2007)이다. 그리고 이 연암집 번역에 참여했던 김명호 교수가 북학파에 속하는 홍대용의 북경기행의 면모를 보다 면밀히 연구하여 펴낸 책이 오늘 소개할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김명호 지음, 돌베개, 2020). 공교롭게도 모두 돌베개 출판사의 작업물이다. 이렇게 한 분야에 대해서도 꾸준히 책을 번역하고, 책을 내는 사명을 지닌 출판사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보다 나는 열하일기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한국사에 대한 무지를 탈피할 실마리를 이 주제/분야에서 얻었다. 블로그와 서재에서 사용하는 내 닉네임 초란공역시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정진사라는 인물의 별명이다. 연암 선생은 청나라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러 떠나는 북경행 사신 행렬을 따라가는데, 여기에 새로운 문물의 이면을 보지 못하고 마음을 닫은 채 음식은 볶음계란만 찾던 정진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연암은 정진사에게 볶을초’()자를 사용한 초란공(炒卵公)’이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정확하게 어떻게 하는 요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부추와 같은 채소를 넣은 계란 스크램블같은 간단한 요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초란공은 연암 선생이 열하일기에서 희화화한 인물이면서도, 나에겐 세상에 대해 보다 호기심을 갖고 나를 세상에 던져 넣어 보라고 주문하는 반면교사인 셈이다.


이렇게 열하일기를 읽은 경험이 연암 선생과 북학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이덕무와 박제가, 그리고 홍대용이란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아직 제대로 읽은 저작은 거의 없다. 앞서 언급한 3권짜리 연암집860페이지(본문550여 페이지 + 주석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을 소장하고 있지만, 아직 읽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뭐 언젠간 읽겠지상태). 열하일기를 읽을 때, 특히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연암 선생이 북경에서 청나라 문인/학자들과 글을 써서 대화를 나눈 필담장면이다. 이 필담은 연암 일행이 청나라 강희제의 여름 별장(이 시골에 있는 황제의 별장은 세계 최대 수준이다. 역시 중국의 스케일은 남다르다.)이 있는 열하(현 지명은 승덕)에서도 이어진다.


열하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필담에는 엄성, 반정균, 육비라는 청나라 선비의 이름도 등장한다. 이 책은 연암 선생이 연행을 다녀온 1780년 이후 3년 간 메모해둔 종이 뭉치와 고증작업 등을 거쳐 탄생한 책이다. 홍대용은 연암이 처음 청나라 땅을 밟기 15년 전인, 1765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반년 간 이미 중국의 문물을 보고 새로운 체험을 하고 돌아온 상태였다. 이 때 홍대용이 과감하게접근하여 대화의 물꼬를 텄던 청나라의 학자가 바로 위에 언급한 세 사람이었다. 이들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된 이어져 연암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나이는 연암이 위였지만, 홍대용은 정말 혈기왕성할 시기에 청나라를 경험했던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에 출간된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은 바로 홍대용과 청나라의 세 선비가 만남에서부터 서신으로 교류를 지속하고, 나아가 대를 이어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졌던 양국 지식인의 국제 교류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그동안 이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꺼내들게 된 것은, 우선 이 책의 가치에 비해 주목을 많이 받고 있지 못한 것 같아 나의 생각을 기록해두고 또 소개를 하고 싶어서였다. 또 결정적으로 마침 계간지 창작과비평 191(2021년 봄)에 울산대 노경희 교수가 기고한 서평에서 다시 이 책과 만났기 때문이다. 세심한읽기와 대담한해석 이라는 제목의 서평에서, 노경희는 조선 후기 조선과 중국 지식인의 교류사에 대한 연구 결과물의 의의와 맥락을 개인적인 경험과 더불어 짚어주었다.


사실 열하일기에서 묘사되는 필담 에피소드에서 상황을 관통하며 대화 사이에 흐르는 뭔지 모를 긴장감은 당시 청나라에서 시행했던 문자옥때문이었다. 이 문자옥은 청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한족과 관련된 어떤 말이라도 했을 때, 당사자 본인을 포함하여 일가친적 9족을 멸하는 징벌이 따랐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티벳 불교를 받아들이고 타민족에게 포용력있는 모습으로 비춰진 청나라의 이면에는 한족 지식인들에 대한 억압/탄압 정책이 함께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에서 간 선비들이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비난하면서, 한족 지식인들을 만나 자꾸 이들로 하여금 한족의 역사나 정신과 관련한 문제를 묻고 대답을 요구하는 상황(특히나 증거나 남는 필담 과정에서)은 한족 선비들에게는 목숨을 건 아찔한 상황 속에서 몰래 나누는 대화였던 셈이다. 그러므로 서평에서 저자도 지적했듯이 청나라에 간 조선사신이 한족 선비와 만나 대화하는 일 자체가 단순한 교류를 넘어서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노경희의 서평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자가 일본에 유학하던 시절에 교토대 후마 스스무 교수와의 개인적인 인연과 이 책이 놓여 있는 맥락을 짚어준 점이다. 그는 후마 스스무 교수의 연구를 이렇게 평한다. “한국 학계에서는 그(후마 스스무 교수)의 풍부한 자료 활용 능력과 근거를 중시하는 엄격한 학문 태도를 인정하면서도, 18세기 조선 학계가 보이는 복잡다단한 현상의 이면보다 남겨진 기록에만 집중하는 모습에 당혹감을 느꼈다.”(454) 곧 저자에 따르면 후마 스스무 교수가 바라본 조선 후기는 주자학만 신봉하는 단선적이고 평면적인’(454) 조선이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노경희는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에서 저자 김명호가 양국 지식인 교류의 모습을 홍대용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보다 다면적이고 역동적인 국면으로 과감하게해석한 점을 지적한다. 당시 조선의 지성계에 존명배청사상이 강력하게 지배하던 상황이었지만, 저자는 홍대용이 청나라에 다녀온 이후, 특히 엄성, 반정균, 육비로 지칭되는 청나라 지식인들과의 교류로 이 존명배청사상이 흔들리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하자면, 당시 조선 지식인의 입장에서 중화란 명나라의 계보를 잇는 강남 한족의 역사와 문화에만 해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문물을 보고 돌아온 여행 이후 홍대용의 입장에서는, 중화가 조선도 될 수 있으며, 같은 논리로 청나라 또한 중화가 될 수 있다는 논리로도 이어졌다는 것이다(창작과비평, 455). 그러므로 저자 김명호는 조선 지식인들의 세계관에서 존명의식에 균열을 겪고, ‘존명의식과 북학사상 사이의 모순사이에서 고민하고 자신의 논리를 찾아갔던 이로 홍대용을 호명하고 있다(창작과비평, 455).


끝으로 서평에서 노경희는 김명호가 책에서 지적하는 후속 과제에 주목한다. 귀국 이후 항주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통해 홍대용의 후반기 사상이 어떻게 변모해가는가’(창작과비평, 456)라는 문제다. 이 부분은 저자 김명호와 후학들의 연구 활동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되길 바란다. 나를 비롯한 일반 독자들에게도 궁금해지는 지점일 것이다. 노경희는 국내 학계에 대해 다소 아쉬운 상황(보다 자주적인 해석이 필요하다는 견해)과 이 책의 의의를 정리했다. 현재 우리 역사 연구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학자들이 자신들의 배경과 관심사, 세계관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인정받는 상황에서,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는 일본 및 중국의 학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우리 나름의 준거를 마련해주었다고 평가한다. 서평자가 이 책에 대해 짚어주는 의의를 들으니 이 책의 가치가 새롭게 보였다.


노경희는 저자 김명희가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에서 시도한 해석을 대담하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사실 학자의 일이란 다른 학자들의 주장 혹은 견해에 공감하고 동의하는 일을 훨씬 넘어선다. 저자처럼 후마 교수의 연구를 인정할만한 점과 비판할만한 점을 지적하면서도, 다양한 차원에서 주제에 접근하여 우리 나름의 시각을 마련하는 일은 당연히필요하고, 또 요구되는 일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노경희 교수의 서평을 통해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의 이해를 위한 실마리 내지는 책을 읽으며 지닐 만한 화두를 얻은 셈이다. 이 책이 지니는 의의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되니, 앞으로 애착을 갖고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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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7-04 12: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천안에 갈일이 있어서 근처 가볼 곳이 없을까하다 홍대용 과학관을 갔었어요
홍대용이 천안 출신이고 천안의 자랑인걸 그 때 알았어요.
과학관은 정말 훌륭했어요. 천제망원경으로 관측을 할 수 있게 미리 수업도 하고 관측도 하고요.
그리고 혼천의 등 여러 조선의 관측 기구도 있었고요.
무엇보다도 홍대용이 남긴 글과 시를 보고 놀랐습니다.
우선 중국에서 서양문물을 접하고 지전설을 아시아최초(맞을거에요)로 말했고
칼 세이건처럼
우주의 저 수많은 별들을 보면 우리 인간은 얼마나 작은가라는 시는 감탄을 금치 못했어요.
또 한번 우리 선조의 우수함과 그 우수함이 발현되지 못한것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

초란공 2021-07-04 12:52   좋아요 3 | URL
아~ 홍대용 선생이 천안 출신이었군요! 선생의 이름을 딴 과학관이 따로 있다니 놀랍네요~ <열하일기>에도 ‘삼환부공설‘(우주 공간에 해/지구/달이 떠있다는 얘기)을 중국 학자들과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왔는데, 홍대용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레삭매냐 2021-07-10 12:14   좋아요 0 | URL
저도 홍대용 과학관 이야기를 들어서
언제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집에서 딱 100KM 라 선뜻 걸음이 떨
어지질 않네요 ㅋ

그레이스 2021-07-04 17: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천재적인 인물인듯요!

레삭매냐 2021-07-10 1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다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책값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초란공 2021-07-10 13:03   좋아요 1 | URL
가격이 ㅋㅋ 만만치 않습니다. ^^ 그래도 입김이 센 중국/일본 학자들의 조선 지성사 연구에 우리도 주도적으로 이 시기를 조망하는 책이 나온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바로 읽을 시간을 내기 힘들듯하여 아내의 외할아버님(올해 만 89세 되셨죠)께 이 책 재미있을 듯하다고 선물드렸더니, 재미있다고 아주 좋아하십니다. ㅋㅋㅋ 제 나이의 두 배가 되는 어른과 이 책으로 소통이 되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