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삶 시대의 아이콘 평전시리즈 2
앤 C. 헬러 지음, 정찬형 옮김 / 역사비평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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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에 이방인이 된다는 것

-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삶



C. 헬러 지음, 정찬형 옮김, [역사비평사] (2021)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삶은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대한 짧고 강렬한 평전이다. 잡지 편집자이면서 인물에 관한 논픽션작가인 앤 C. 헬러의 군더더기 없는 글이 돋보인다. 간결한 평전인 만큼 아렌트의 대표적인 정체성을 규정하는 세 가지 사항에 크게 초점을 맞추었다. 저자는 먼저 아렌트를 세계적인 논란의 중심에 서게 했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서 철학자의 세계관에 영향을 주었던 젊은 시절을 조명한다. 특히 그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의 공적·사적 관계, 그리고 유럽 대륙이 나치의 광풍에 휘말린 1930년대에 아렌트가 자신의 운명과 마주해야했던 경험 및 그가 지나야 했던 삶과 죽음의 경계로 독자를 이끈다. 마지막으로 아렌트가 미국으로 망명 한 후 그를 다시 깨어나게 한 사건, 곧 유대인 여성 라헬 바른하겐에 관한 연구를 언급하고, 이어서 그를 지식인 사회에서 인정받게 했던 역작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한 배경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단지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았다.”(32) 이 말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 중에 남긴 유명한 말이다. 아렌트는 <뉴요커>지의 기자 자격으로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을 지켜보고 생각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그는 책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썼다. “정치에서 복종과 지지는 동일한 것”(44)이라고 말이다. 아이히만 자신은 상부에서 시키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말했지만, 아렌트의 기준에 따르면 아이히만의 복종은 나치를 지지한 행위나 다름없다는 말이 된다.



어렸을 때 흔히 볼 수 있었던 학교 폭력 현장을 생각해보자. 눈앞에서 폭력이 이루어지고 있을 경우, 이 상황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방관자로 있었다면, 이 방관자는 결국 폭력에 대한 지지나 다름없다는 경고가 된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왔을 때는 또 어떤가. 집단 자체가 하나의 모순 덩어리인 상황에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 종종 거대한 생산 장치를 이루는 하나의 작은 부품처럼 되어야 한다. 부당한 것, 불합리한 것들이 있을 때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 방관자로서 살아갈 때 결국 우리는 우리 삶을 규정하는 거대한 부조리를 지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아렌트는 현대 사회와 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유형을 진지하게 고찰하여 우리에게 경고를 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우리를 어떤 선택의 경계로 내몬다. 더 이상 방관자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삶을 이루는 모든 문제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달리 말하면 사회의 각 구성원의 판단과 행동 그 자체가 곧 정치라는 의미로도 이해된다. 우리 삶의 문제점을 보다 더 진지하게 마주할수록 우리는 방관자일 수 없다.


 

저자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탁월하게 요약해놓았다.

 


아렌트의 숨은 의도는 아이히만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대중사회의 인간’, 즉 사회적으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외롭게 표류하며 경제적으로는 소모품에 불과한 존재로, 허무주의와 전체주의의 표적이 되기 쉬운 특성을 지닌 후기 산업주의 사회 특유의 반마르크스주의적 인간 유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37)


 

이 문장만을 본다면 아렌트는 시대를 너무 빨리 태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아렌트는 바로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고 비추어 놓은 것만 같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의식은 그가 미국으로 망명을 한 이후 쏟아낸 글들을 거치며 보다 총체적인 시각을 형성해 갔고, 결국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발표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한편 아렌트에게 재능을 갖춘 유대인 여성 라헬 바른하겐에 관한 연구는 또 다른 심대한 영향을 주었던 듯하다. 아렌트가 유대인의 문제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고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야말로 비로소 그에게 고유한 문제, 그와 불가분의 관계인 정치적문제가 되었던 셈이다. 유럽 역사에서 유대인에 대한 혐오/증오는 꽤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 어느 사회든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했던 유대인들에게는 개신교를 비롯한 현지의 종교 및 문화에 대한 동화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유대인에게 동화의 문제는 꽤나 다층적이고 복잡한 문제였다. 단순히 종교를 포기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유럽인들은 유대인들을 경멸의 시선을 바라보곤 했는데, 이들에게 동화의 문제는 곧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내면화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106). 이는 곧 자기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유대인들에게 이 상황이야말로 창과 방패의 관계, 곧 모순이었다.


 

또 유대인들에게는 동화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태어나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야만 했던 유대인들에게는 단순히 고향을 떠나고, 고향을 상실하는 문제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언어를 사용해야 했다는 것, 곧 언어도 잃어버릴 위기를 에 놓이는 걸 의미했다. “가장 간명한 표현 수단인 ... 언어도 잃어버렸다.”(162) 이 말은 아렌트의 어머니 마르타가 미국으로 망명하여 고립된 생활을 하며 남긴 하소연이었다. 표류하는 이방인으로서 유대인이 처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표현이다. 이렇게 다층적인 삶의 조건이 아렌트에게는 자신과 전혀 무관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이에 그는 자신이 당면한 문제들을 마주하며 치열하게 사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렌트가 미국으로 망명 한 후 9년 째 되던 1949년에 발표한 전체주의의 기원이 바로 치열한 사유의 결과물인 셈이다. 저는 이 책을 고독, 뿌리, 소속의 상실에 관한 명상록’(164)이라는 문구로 요약하면서, 책의 목적이 사람을 잉여란 존재로 만드는 사악한 의도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한다.


 

전체주의는 인간의 고독과 소속감의 상실이라는 경험에 터 잡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격렬하고 절망적인 경험을 자양분으로 살아간다.”(165)

 


이 대목을 읽는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고독’, ‘소속감의 상실은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뚜렷하게 목격할 수 있는 징후가 아닐까 해서다. 계층과 세대 간 갈등과 소외, 역사 및 전통과의 단절과 괴리가 이토록 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런 증상은 이미 뚜렷하게 드러난다. 여기에 후기 산업사회의 모습, 이를테면 고도의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노동자의 소외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와 여건이 70여 년 전 아렌트가 했던 경고를 떠올리게 하지 않은가. 우리 삶을 점점 더 좌지우지하고 정치력을 거머쥔 대기업은 현대적인 맥락에서 전체주의 세력과 다를 바 없다는 자각을 준다. 아렌트가 말한 상황과 현재 우리 사회의 조건이 잘 부합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얼마나 취약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 아렌트의 사상에 비추어 더욱 실감하게 된다.


 

저자 헬러는 아렌트가 가장 어둡고 위험했던 시대에도 언제나 이방인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아렌트의 행보는 어린 시절부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던 경험에서 나왔을 것이라 이해된다. 그럼 어두운 시대에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밝힌 바를 이용하여 정리해보면 이방인이 되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내 안의 작은 아이히만과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다. 아렌트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우슈비츠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된 순간, 그리고 라헬 바른하겐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이런 문제들은 그에게 고유한 문제, 자신과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비로소 자각하게 되었다. 그가 단순히 방관자로만 살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게 된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어두운 시대의 삶은 아렌트의 사상과 저작들에 이미 익숙한 독자들보다는 입문자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아렌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대표 저작 몇 가지를 중심으로 여기에 영향을 준 아렌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 앤 C. 헬러는 태생적 조건(20세기 전반 유럽의 유대인)으로 경계인이 된 아렌트가 단순히 방관자로만 있지 않고, 이방인이 되고자 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익숙함과 구태와 거리를 두고 새롭고 공정한 시각으로 이방인이 되기를 선택했던 한 정치철학자의 삶을 소개해주었다. 여기에 더하여 그래픽노블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도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될 수 있겠다. 이 책은 탈출이라는 키워드로 미국으로의 망명 이전의 한아 아렌트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책이다. 이 그래픽노블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좀 더 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책 속으로]


[1] "나는 단지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았다."(32)
- 재판을 받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말

[2] "아렌트의 숨은 의도는 아이히만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대중사회의 인간‘, 즉 사회적으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외롭게 표류하며 경제적으로는 소모품에 불과한 존재로, 허무주의와 전체주의의 표적이 되기 쉬운 특성을 지닌 후기 산업주의 사회 특유의 반마르크스주의적 인간 유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37)


[3] "사람들이 모두 내면에 작은 아이히만을 갖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 바로 그것이었다."(42)

[4] "정치에서 복종과 지지는 동일한 것이다."(44)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렌트가 마지막에 쓴 문장


[5] "최소한 하이데거가 아렌트의 장점들을 강화시키고, 그녀가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여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 변호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인물임은 분명하다."(111)


[6] "단순히 방관자로만 살 수는 없었다."(117)
"유대인이라는 것이 나의 고유한 문제가 되었고, 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그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었다."(121)


[7] "내 삶을 바꾸어놓은 결정적인 계기는 아우슈비츠에 대해서 알게 된 날이었어요."(156)


[8] "(대규모) 만장일치는 합의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광신과 히스테리의 표현과 다름이 아니다."(159)


[9] "전체주의는 인간의 고독과 소속감의 상실이라는 경험에 터 잡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격렬하고 절망적인 경험을 자양분으로 살아간다."(165)


[10] "가장 어둡고 위험했던 시대에도 그녀는 언제나 이방인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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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0-03 1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픽 노블로는 좀 아쉬었는데
최근에 나온 새로운 평전이 인기
라 해서 일단 수급은 해두었답니
다.

<아이히만>도 다시 읽고 리뷰
를 써야지 했는데 결국 다시 읽
지도 리뷰도 남기지 못했네요.
 
팡세 : 분류된 단장 (프랑스어 원전 번역, 양장) 기독교 명작 베스트 6
블레즈 파스칼 지음, 김화영 옮김 / 선한청지기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도전해보는 파스칼의 호교론

- 팡세 - 분류된 단장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지음 | 김화영 옮김

[선한청지기] (2022)

 



몇 년 전에 파스칼의 팡세를 읽어보려고 책을 펼쳤지만, 오래가지 않아 한쪽으로 치워두었다. ‘고전이라는 이유도 시도해보았지만, 아무런 맥락 없이 시도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기대치는 높은 반면 분절된 단상 형식의 글에 익숙하지 않아서였을까. 책을 무작정 읽으며 저자의 생각을 단번에 이해해보고자 했던 것이 중단의 이유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이 고전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번역자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번역자이자 파스칼 연구자인 김화영 교수가 이전에 참여했던 번역 작업에서 남겨놓았던 글들이 기억났다. 그의 글은 서문이나 에필로그 혹은 역자의 말 형태로 만났던 것인데, 언제든 작품에 대한 역자의 깊은 이해와 존중, 그리고 독자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팡세를 읽다보면 역자의 주석에 몽테뉴의 에세에서 가져온 문장들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된다. 출생으로만 따지면 90년 늦게 태어난 파스칼이 몽테뉴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몽테뉴의 글을 읽어본 기억을 떠올려보면 인간에 대한 그의 정밀한 관찰과 이해가 얼마나 놀라운지 깨닫곤 했다. 39세의 생애로 삶을 마감했던 파스칼 역시 인간에 대해 깊은 성찰을 팡세에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거의 4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다. 인간에 대한 적나라하고 놀라운 통찰이 담긴 파스칼의 문장과 만날 때마다 밑줄치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번역자의 상세한 해설에 따르면, 파스칼은 진보적인 수학자이자 과학자로 이른 나이에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31세가 되던 1654년의 어느 날, 그는 성경에서 예수를 발견하고 회심을 하게 된다. 이 일생일대의 경험은 파스칼의 글이 몽테뉴의 것과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특징이 된다. 몽테뉴의 글은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집필되었지만, 파스칼은 유신론자의 확신으로 써나갔다. 두 사람의 글이 갖는 공통점은 바로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점이겠다. 몽테뉴는 인간과 세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대상을 진실로 이해하고자 면밀히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에 주목했다. 따라서 에세의 근간을 이루는 관심사를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라는 몽테뉴의 질문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이렇듯 몽테뉴의 관심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점이 자기 자신을 향한다. 이런 맥락에서 몽테뉴의 글이 회귀적이고 성찰적인 성격이 강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파스칼의 글이 몽테뉴와 마찬가지로 인간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의 관심은 결국 신을 향해 나아간다. 역자의 표현을 사용하면, 기독교적 신앙을 옹호하고 이를 되찾기를 바라는 호교론적인 성격을 갖는다. 몽테뉴의 관심이 자신을 향하는 회귀적인 글이라면, 파스칼의 글은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며 독자를 설득하여 기독교 신앙으로 안내하는, 점진적이고 직선적인 접근방식을 보여준다. 신앙을 설파하는 글로는 상당히 인식론적이고 지적인 방식을 취하는 셈이다. 여기에서 파스칼은 일반적인 수학자 혹은 과학자들처럼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 혹은 이성이 지니는 우월함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이성을 경계한다. 파스칼이 파스칼의 정리같은 수학적 업적이나 진공의 존재에 대한 실험을 통해 과학적 사실을 증명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당대의 누구보다도 이성의 힘과 그 한계를 잘 인식했던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회심의 경험 이후, 인간의 이성만능주의에 대해 경고하고 신 앞에 보다 겸허한 자세를 취했던 것 같다.


 

팡세에는 파스칼이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 인간이 위치한 지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에서 그는 이중적인 인간의 조건을 이야기한다. 바로 비참하고 비열한 존재로서의 인간과 위대하고 유일무이한 존재인 인간의 모습이다. 상반되고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인간의 모습은 바로 이성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와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한 과정에서 제시된 인간의 조건이다. 이 점에 대해 파스칼이 인간이란 얼마나 괴이한 존재인지 이야기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인간이란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가? 얼마나 진기하고 괴기스러우며, 혼돈하고 또 얼마나 모순투성이이며, 얼마나 경이로운가? 만물의 심판자이면서 쓸모없는 벌레, 진리의 수탁자이면서 불확실한 오류의 시궁창, 우주의 영광이면서 우주의 폐기물 같은 존재다.”(114)


 

파스칼은 이처럼 인간에 대한 촌철살인의 통찰을 가끔씩 꺼내 독자에게 보여준다.


 

한편 인간에 대한 파스칼의 통찰에서 놀라움과 감탄을 느끼면서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파스칼이 적어내려 갔던 생각들에 모두 동의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파스칼이 거역할 수 없는 기독교 권위 위에 수립된 신앙의 진리 두 가지를 언급한 대목이 그렇다.


 

하나는 인간은 창조의 상태에서든, 은총을 입은 상태에서든 모든 자연 만물보다 높은 위치로 창조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서 신성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죄와 타락의 상태에서 인간은 처음 상태에서 추락하여 짐승과 같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두 명제 모두 견고하며 확실한 것이다.”(118)


 

우리는 인권과 더불어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논의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맥락에서 독자가 파스칼의 생각과 만나면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여럿 나올 것이다. 인간에 대한 파스칼의 성찰에 감탄하는 부분이 훨씬 많이 나오지만, 이런 대목은 시대적인 변화와 역사적·문화적 차이로 이해할 수 있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본성은 400년 만에 변할 리는 없다. 인간에 대한 파스칼의 깊은 이해를 여전히 참고하고 배울 수 있는 이유다. 반면 독자가 신앙을 회복하도록 의도한 파스칼의 접근 방식은 지금과 달리 당대에는 어떠했는지 이해하는 차원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파스칼이 언급한 것처럼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다른 종에 대한 인간의 우월적 시각은, 파스칼이 비판하는 데카르트의 세계관과 더불어 현재 독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파스칼의 글이 단상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빠르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일관된 사고의 흐름 속에서 따라가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앞에서 언급했던 주제가 뒤의 단장에서 다시 변주되면서 반복되곤 한다. 따라서 팡세는 오히려 책의 첫 장부터 순서대로 읽어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접근이 가능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부터 읽어나가면 주석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읽어나갈 수 있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제1부에서 권태라는 소제목으로 묶인 단장을 읽고 나서 이번에는 오락/기분전환이라는 소제목 아래의 단장들을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치워두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읽으며 이해를 더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책에 좀 더 흥미를 느끼고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번역자의 서문과 세심한 해설 때문이다.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평생 프랑스 문학, 특히 파스칼을 연구해왔던 역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적극적으로 가미된 번역본이 다른 번역본과 다르게 느껴졌다. 한 번 도전 했다가 덮었던 파스칼의 책이 이번 기회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면 무엇보다 역자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겠다. 역자는 클레오파트라의 코에 대한 번역 표현을 위해 서양의 코에 대한 미학적·관상학적 측면까지 고민하고, 파스칼의 육체적 질병에 대한 사항까지 염두에 두고 번역을 했다. 고전 번역은 일반 독자로서 엄두가 잘 나지 않는 작업임에는 분명하다. 나아가 역자의 꼼꼼한 해설은 파스칼의 시대와 팡세가 집필된 이유와 맥락을 파악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수학과 과학에 큰 기여를 하며 영민함과 오만함이 흘러 넘쳤을 청년 시절뿐만 아니라, 회심 후 인간에 대해 이해하여 인간의 비참함과 위대함을 설파하며 신에게 다가가고자 했을 30대의 파스칼까지. 이번 독서를 통해 파스칼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다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마무리하면서 책의 구성에 대한 생각을 추가해본다. 우선 주석이 본문과 분리되어 책읽기가 편하지 않았다. 독자마다 책 읽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주석을 읽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고, 주석이 너무 많다고 평점을 낮게 주는 독자도 보았는데, 나는 책을 천천히 읽더라도 주석을 대체로 다 읽는 편이다. 그러므로 팡세와 같은 책을 읽을 때는 본문 내에 주석이 괄호 안에 삽입된 형식이나 책 뒤에 주석이 들어가는 형식은 문장을 놓치게 되거나 피로감을 쉽게 느끼게 된다. 앞에서 끊어진 문장 뒤에 이어지는 지점을 찾거나, 책장을 계속 앞뒤로 들추어야 해서 읽는 흐름을 놓치고 산만해지기 때문이다. 역자의 주석이라면 나는 각주 형태를 선호한다.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궁금한 점을 곧바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석이 편집되어 있는 형태 중에 가장 피곤한 구성은 주석이 분리되어 각 장 뒤에 달린 형태인데, 아쉽게도 팡세-분류된 단장이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 폰트 크기가 작아서 읽기도 쉽지 않다. 주석의 폰트를 좀 더 크게 하고 각주 형태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1] "상상력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49)

[2] "(우리는) 과거와 미래 속에서 헤매면서도 자기에게 속한 유일한 시간, 즉 현재를 고려하지 않는다."(52)

[3] "자신을 알아야 한다. (...) 이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다."(71)

[4] "생각하는 갈대. 나의 가치는 공간적 차원이 아니라, 생각을 조절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 우주가 공간으로 나를 포함하면 나는 하나의 점처럼 삼켜진다. 반면, 나는 생각으로 우주를 포함한다."(100)

[5]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오만한 이성의 떠들썩한 움직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겸허한 굴복에 있다."(118)

"이성의 굴복과 활용. 참된 기독교는 이에 근거한다."(168)

[6] "인간 본성 전체를 이해한 다음에. 어떤 종교가 참된 것이 되려면 우리의 본성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위대함과 비루함, 그리고 각각에 대한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한다. 기독교 이외에 어떤 종교가 그것을 알고 있었는가?"(207)

[7] "성경의 유일한 목적은 사랑이다."(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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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9-08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추석보내세요 ~

그레이스 2022-09-08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2-09-08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팡세 엄청 어려워보입니다 ㅡㅡ 그래도 역시 당선! 축하드립니다 초란공님~!!
 



















20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할버슈타트에 무슨 일이?

- 194548일 할버슈타트 공습



알렉산더 클루게(Alexander Kluge) 지음 | 토마스 콤브링크 주해

이호성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1)



그 상품들은 아래 도시로 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주 비싼 물건들이지요. 실용적 관점에서 보아도 고향에서 많은 노동력을 들여 생산한 것을 산이나 빈 들판에 그냥 버릴 수는 없습니다.”(81)

 

인용문만을 보면 UN이나 국제인권단체에 속한 사람이 난민들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의 사람들에게 구호물자를 전하는 임무를 맡은 상황을 떠올려볼 수도 있겠다. 숭고한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의 자부심 어린 진술처럼 보이니 말이다. 여기에서 상품이란 무엇일지 짐작할 수 있는가? 바로 폭격기에 매단 폭탄을 의미한다. , 다시 위의 인용문을 읽어보자.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 말을 한 인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8공군 여단장이었던 프레드릭 L. 앤더슨으로, 그가 한 독일 기자와 했던 인터뷰에서 가져왔다.



194548일 할버슈타트 공습의 작가 알렉산더 클루게는 독일의 소도시 할버슈타트 출신이다. 독일 작가이자 영화감독, 방송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무엇보다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여겨진다. 유대인 철학자 테어도어 아도르노와도 아주 가까운 교우관계를 맺었고, 그를 통해 프리츠 랑을 만나 영화계에도 입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클루게가 1932년 생이므로, 고향 할버슈타트가 연합군의 폭격기가 떨어뜨린 값비싼 상품으로 불타오를 때 겨우 13살이었다. 이 책은 할버슈타트 폭격 당시 살아남았던 여러 시민들의 증언도 기록하고 있다. 클루게의 경험담은 이 책의 해설을 담당한 토마스 콤브링크의 재인용으로 등장한다.


 

고폭탄의 폭발은 깊게 파인 자국을 남긴다. (...) 194548일 그런 것이 떨어져 파고드는 것을 나는 10미터 떨어진 곳에서 경험했다.”(197)





지금의 체코지역에서 태어난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1912년에 이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 할버슈타트를 방문하면서 자신의 일기에, ‘완전히 오래된 도시로 묘사했다. 사람들이 창 안에 기대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다고도 기록해 놓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도시는 서기 804년에 카를 대제로부터 주교령으로 지정되어 종교적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오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던 독일 북부의 작은 도시는 194548, 30분 가량 이어지던 공습으로 고폭탄 504톤과 소이탄 50톤이 투하된 후 도심의 80%가 파괴되고, 2000명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작가 클루게는 이 폭격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시청사를 포함하여 도심부가 빈터로 변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숱한 잔해와 수많은 시신, 피의 냄새를 맡았으리라. 이 기록들이 소위 연합군의 적국 시민이 남긴 기록이므로, 그 피해가 과장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당시 연합군에 소속되어 있던 미래의 유명 작가의 말도 들어보자.

 


내가 떠올린 이 작가는 바로 커트 보니것이다. 그는 제2차 대전 당시 육군 정찰병으로 참전했다가 치열했던 벌지 전투에서 독일군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 이후 그는 독일의 동부 지역 도시인 드레스덴에서 전쟁포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여기 있을 때 저 유명한 드레스덴 폭격을 직접 경험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25년 후에 쓴 소설이 바로 5도살장이다. 지금은 드레스덴이 독일의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첨단 도시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방공호도 거의 없었고, 담배 공장이나 클라리넷 공장 정도가 전부였던 낙후된 중소도시였다고 한다. 폭격이 시작되자 보니것은 지하 2층의 거대한 고기 저장소로 몸을 피했는데, 폭격이 끝나고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는 도시가 사라져있었다고 했다. 참고로 작가 맬컴 글래드웰은 어떤 선택의 재검토에서 영국 공군이 수행한 3일간의 폭격으로 65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드레스덴 중심지를 파괴하고 민간인 25000명을 죽였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구약 성경창세기에는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느님이 보기에 이 도시의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질러 의인이 남아있지 않았기에, 유황과 불을 소나기처럼 퍼부으며 도시를 멸망시켜버렸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파괴해버리는 도착적이고 모순적인 신에 관한 이야기는 제쳐두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 힌두교의 신들 역시 창조와 파괴 행위를 하나의 우주 원리처럼 받아들이고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적국의 시민 클루게와 연합군 소속 보니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값비싼 합성 마그마에도 끄떡없이 하느님이 지켜주었던 의인이었던 것일까. 물론 이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오로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이 운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주제의 책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클루게의 전후 기록문학의 성격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기로 한다.



 

전쟁과 자본주의의 논리


 

위에서 인용한 미 8공군 여단장 앤더슨의 말에는 전쟁의 본질에 관한 중요한 진실이 담겨있다. 클루게는 본문에서 할버슈타트의 여러 시민들이 남긴 증언과 자신이 기록한 내용을 종합해두었다. 하지만 이는 공습에 대한 분석보다는 1차 사료로서 중요성이 드러난다. 클루게의 기록들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은 주해를 맡은 콤브링크의 도움으로 좀 더 생각해볼 수 있다. 콤브링크에 따르면, “클루게는 공중전이 수요와 공급 체계를 통해 규율된다는 점과 이것이 경제 분과의 하나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공중전을 도덕적 이유에서 좀처럼 정당화할 수 없을지라도 사람들은 실업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222) 이 진술은 클루게가 주목하고 지적하고자 했던 전쟁의 본질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말하자면 할버슈타트 공습을 포함한 폭격전, 나아가 전쟁은 전쟁을 치르지 않는 후방의 고향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산업이라는 말이었다. 이는 전쟁이 어떤 근사한 명분을 내세우든, 혹은 얼마나 참혹하고 잔인할 수 있든, 우리의 일자리가 보전되고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대중은 한 전쟁에 한쪽 눈을 감고 찬성표를 던질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클루게는 전쟁 뒤에 가려진 자본주의의 논리를 이토록 생생하게 간파해내고 있었다.


 

그러면 연합군의 폭격 정당성을 주장하는 연합군 측의 진술도 살펴보자. 당시 준장이었던 로버트 B. 윌리엄스는 도시를 파괴함으로써 거기 사는 주민들의 저항 정신을 없애버려야 합니다”(185)라고 말했다. 일견 그럴듯한 견해다. 전쟁은 한편으로는 심리전이기도 하다는 맥락에서 그렇다. 그리고 전쟁을 최소한의 노력으로 빠른 시기에 종결짓는다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이들의 논리도 그럴듯해 보인다. 이 논리는 독일 도시들을 폭격했던 미 공군의 두 군부집단(폭격 마피아)의 논리를 보여준 맬컴 글래드웰의 저서 어떤 선택의 재검토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논리다. 이 두 집단의 차이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쓸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이 논리는 제2차 대전, 혹은 지금까지도 적국의 시민들로 하여금 사기를 떨어뜨림으로써 전쟁을 더 효과적으로 빠르게 종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준다. 곧 적국의 시민들을 대상화함으로써 이들을 폭격대상으로 삼는 데 어떤 도덕적 논의도 불필요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맬컴 글래드웰도 책에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듯이, 연합군이 독일 도시를 폭격할 때 우선 적용했던 폭격 방식으로 우선 도살자 해리스라고 불렸던 영국 공군 사령관 아서 해리스의 융단 폭격방식을 꼽을 수 있다. 해리스는 앞서 보니것이 경험했던 드레스덴 폭격을 직접 지휘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 폭격의 효과를 보다 높이기 위해 불에 잘 타는 목재가 많은 지역, 특히 구시가지의 빈곤한 지역을 중심으로 폭격이 계획되고 작전이 수행되었다. 할버슈타트의 구시가지는 30여년 전 이곳을 방문했던 카프카가 자신의 일기에 남겼던 것처럼 중세식 목골조 건물이 많고 인구가 조밀한 지역이었다. 여기에 고폭탄뿐만 아니라 합성 마그마나 다름없던 소이탄(화염방사 폭탄)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해보라. 소이탄은 하버드 대학의 화학 교수가 점성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달라붙어 복사에너지를 전달한다는 목표로 일본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 무기다(맬컴 글래드웰, 어떤 선택의 재검토 7장 참조). 이를 쉽게 풀어 이야기하면 소이탄은 불꽃이 작게 나뉘어져도 불을 끄기 매우 어려워 달라붙은 모든 대상을 끊임없이 태우는 무기다.


 

또 소이탄(혹은 네이팜탄)은 베트남 전쟁 당시 숲과 민간인을 불태우는데 무수히 떨어졌던 폭탄인데,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이 인천의 월미도와 주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때 사용했던 무기이기도 하다. 이 무기는 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더욱 두렵기도 하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문제는 이 무기가 적국 시민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과 모순이 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우군이었음에도 우리 시민들은 소이탄으로 무차별 폭격을 받았다. 한 마을에 함께 살던 일가친척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생각해보라. 여기에는 미 군부가 주장하는 어떤 엄정한 도덕적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보기에 폭격 마피아들에게는 오직 현재 전쟁이 일어나는 지역이 어디인가만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도시는 전혀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82) 이 말은 앞에서 언급했던 미 8공군 여단장 앤더슨의 진술이다. 클루게의 기록에 앤더슨은 이런 말도 덧붙인다. ‘폭격에 침착한 접근이란 없으며, ‘의심 속의 접근만이 존재 한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앤더슨으로 대표되는 폭격 마피아들의 논리는 적군이거나 적군과 내통할 수 있다고 보이는 모든 시민들을 싹쓸이하듯 폭격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논리다. 여기에 어떤 도덕적 정당성이 들어갈 여지가 있을까? 이들이 하는 말이 다 개소리라고 여기는 이유다. 오히려 앞에서 값비싼 상품(폭격기에 매단 폭탄)을 산이나 빈 들판에 그냥 버릴 수는 없다고 했던 프레드릭 앤더슨의 대답이 솔직하게 들린다. 이 폭격 마피아들이 주장하는 도덕적 정당성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며 부실한 주장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만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콤브링크의 해설에 따르면, 클루게 역시 사기 저하용 폭격이라는 생각이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근거는 당시 폭격을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가 지적하는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클루게는 폭격을 당하는 도시의 시민들이 처한 극단적이고 무력한 상황을 언급한다. ‘방어력이 전무한 상태에 있는 시민들과 폭격기 비행단 사이에 존재하는 동등하지 않은 부당한 관계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아주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콤브링크가 곁들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주민들은 항복 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공격자와 공격당하는 자 사이에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접촉을 할 수 없기’(211) 때문이다.

 


또 현실적으로 폭격을 위해 값비싼 상품을 잔뜩 싣고 이륙한 폭격기들은 실제로 주민들이 항복 신호를 보내와도 발견하기 어렵고, 항복 신호를 보았다고 해도 이들이 현장에서 폭격을 중단할 권한은 없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오가는 이 순간에, 몇 시간이나 걸릴 수 있는 비행단 책임자들의 판단을 기다릴 수 있는 폭격수는 아무도 없다. 뿐만 아니라 폭탄을 잔뜩 싣고 돌아와서 착륙하는 행위는 또 다른 자살행위나 다름없이 위험한 행위다. 그러니 이 상품들은 이륙한 이상 반드시투하되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의 제약은 보다 큰 범주에서, 그러니까 자본주의 체제 아래의 전쟁이라는 범주 아래에서 이해될 수 있다. 파괴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후방의 고향에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경제를 부흥한다는 실질적인 효과에 비하면 논의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클루게의 할버슈타트 공습은 바로 서방에서 수행하는 전쟁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이런 맥락을 제공한다.



 

전후 독일인들이 안게 된 도덕적 딜레마


 

독일 시민에 대한 공습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도살자 해리스’(영국 공군 사령관 아서 해리스)의 논리는 독일이 먼저 도시들을 공습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독일 시민의 이익에 관해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볼 때 이들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도덕적 감수성의 수준은 딱 이정도 수준에서만 작동했다. 얼마나 좋은 학교를 졸업했고, 얼마나 많은 책을 읽은 것과 무관하다. 또 이들이 가정에서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훌륭한 가장이자 부모였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조건과 별개로 현실은 보니것이 포로로 있던 드레스덴에 융단 폭격으로 싹쓸이하도록 지시했던 지도자의 도덕성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1942년 영국 공군 선전 영화에서 아서 해리스가 구두로 한 표현을 콤브링크가 재인용한 대목을 다시 보자.


 

나치들은 마음대로 다른 누구나 폭격할 수 있는데 절대로 거꾸로 폭격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상당히 유치한 미신을 가지고 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로테르담, 런던, 바르샤바와 거의 반백(半百)에 가까운 다른 장소에서 상당히 어리석은 자기 이론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바람의 씨를 부려놓았는데, 이제 그들은 폭풍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189)


 

나는 이 대목이 특히 소름이 돋았는데, 문득 생각나는 장면에 대한 기시감 때문이었다. 구약 성경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아의 홍수이야기가 등장한다. 하느님이 물로 세상을 멸망시킨 이후 노아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서다. 영어판 성경에는 이 대목이 The fire next time!이라고 적혀있다. 이 표현은 이번에는 물로 했지만, 다음에는 불로 멸할 것이라고 전하는 하느님의 경고의 메시지였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해리스의 모습이 보복하는 신과 오버랩되었다. ‘도살자 해리스는 자본주의를 작동시켜주는 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서다. 아서 해리스는 내가 좋아하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 등장하는 한 인물도 떠올리게 한다. 누구와 닮았을까? 나는 해리스의 진술을 읽으면서 나의 다리를 물어뜯어 갔으니 너는 나의 복수를 받을 것이다라고 외치던 선장 에이해브의 광기를 떠올렸다.


 

전후 기록문학으로서 클루게의 공습 기록을 높이 평가한 인물은 같은 독일인이었던 W.G. 제발트(Sebald)였다. 이 책의 해설을 담당했던 콤브링크의 언급에 따르면, ‘제발트는 공중전에 관한 모든 소설과 이야기들의 실제적인 숫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중전에 대한 질적 분석이 더 중요하다’(200)면서 클루게의 할버슈타트 공습을 높게 평가했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연합군의 독일 도시 공습에 관해 강연하고 정리한 공중전과 문학에서 제발트는 클루게의 기록을 상당히 비중 있게 언급했다. 제발트는 할버슈타트 공습가운데, 폭격 직후 방공삽을 들고 영화관을 치우려 했던 영화관 직원 슈라더 부인의 이야기를 인용하는데, 이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슈라더 부인은 영화 상영이 시작될 오후까지 폭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영화관을 치우려고 했다. 그녀는 영화관 지하실에서 발견한 불에 탄 시체 부위를 모아 빨래용 솥단지에 담으며 주변을 정리했다는 것이다(공중전과 문학, 61). 이 이야기의 진실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불타는 도시 한 가운데에서 살아남았지만 판단이 중지된 인물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달리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

 


제발트가 제기하는 또 다른 물음 가운데 전후 독일인들이 안게 된 도덕적 딜레마가 있다.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간 민족이 이를 응징하려던 연합군의 폭격을 받은 상황에서 시작해보자. 콤브링크는 히틀러를 권좌에 올려놓은 이 독일인들이 가해자인가 아니면 피해자인가를 물었던 제발트의 문제의식을 가져온다. 콤브링크는 이런 도덕적 책임에 관한 질문이 할버슈타트 공습과 같은 사건들에 대해 독일인들이 이야기를 꺼내길 주저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희생자는 자신에게 벌어진 부당함을 고발할 수 있고 다른 이들에게 해를 입힌 사람은 그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자기 말을 들어줄 누군가를 찾기 힘들다.”(189)고 말이다. 이런 상황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인권을 유린하며 자원과 재화를 약탈했던 일본 정치계 및 군부의 입장과도 조금 다른 결을 갖는다. 이들은 피해 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언제나 자신들도 피해자임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이야기하는 피해자에는 순수한 일본인들만이 포함되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까다롭고 안타까운 상황 속에 있다.


 

제발트는 공중전과 문학에서 공중전에 대한 양적 분석 말고도 질적 분석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앞에서 언급했다. 그 이유 가운데 한 가지를 생각해보면, 피해 보상에 대한 문제보다 희생된 자국 국민에 대한 애도가 전무한 상황 때문이다. 제발트는 희생자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 이들에 대한 애도가 없는 독일 사회에 분노하고 이를 비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폭격을 받는 도시의 시민들은 이 순간 항복 할 수 있는 길이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또 폭격 이후에도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망각되어 갔다. 할버슈타트 공습 당시에 불 폭풍한 가운데 있던 당사자로서 클루게는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를 자신과 당시 시민들의 증언으로서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공중전과 폭격에 대한 양적 분석만으로 도덕적 우월성을 결코 논할 수 없다. 콤브링크가 인용한 볼프강 벤츠의 국가사회주의 백과사전에는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 공습으로 독일 시민 약 60만 명이 사망했다고 언급되어 있다(188). 우리는 나치에 의해 사망한 600만 명의 유대인과 독일 시민의 희생자 수를 단순히 비교하여 도덕성을 결정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이 일본에 두 개의 원자 폭탄을 떨어뜨리기 전에도 1945년의 6개월 간 일본의 도시 67개국을 공습했으며, 원자폭탄과 더불어 수 십 만 명의 희생자를 낸 것도 일본이 적국이어서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었을까? 우리는 제발트의 지적을 염두에 두고 이런 문제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이를 계속 이야기해야만 한다.



 

전쟁에 당연한 것이란 없다: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


 

클루게가 할버슈타트 공습을 발표한 이후 제발트와 같은 지식인들의 인정을 받았겠지만, 많은 이들의 비판과 의구심도 받았을 테다. 특히 가해국의 시민이 제기하는 이런 문제는 특히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할버슈타트의 영화관 직원 슈라더 부인의 이야기는 믿기 힘들거나 과장된 이야기라고 의심할 수도 있겠다. 반면 기록문학으로서 그리고 폭격이 이루어지고 있던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작가의 이야기이므로 독자는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기록문학, 다큐멘터리 작업은 으레 진실이라고 여겨지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여겨지지만, 콤브링크는 기록문학의 본질적인 문제도 놓치지 않고 언급한다. 바로 여러 사건과 글의 소재를 작가가 선별하고 조합한다는 문제다. 콤브링크는 작가가 개입하기 때문에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이 융합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문제에 대한 클루게의 입장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무언가 더 그럴듯하게 보이면 보일수록 더 미심쩍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는 항상 현실인 듯한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저는 현실이란 가장 거짓말을 잘하는 자라고 보기 때문에 저에게는 종종 오류들이야말로 소위 팩트로서 더 정확한 증거가 됩니다.”(207)


 

따라서 아무리 핍진성을 전제로 하는 기록문학, 다큐멘터리 작업이라고 해도 내게는 작가가 어느 지점에 서서 문제를 바라보는가를 독자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만약 절대 현실이라는 것이 있다면, 다큐멘터리의 현실은 이 절대 현실과 맞닿아 있는 어느 지점에서 형성된 하나의 구성된 현실이라는 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전쟁의 현실에서 당연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에 기록문학 작가에 의해서 재구성된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건을 제시해도 누군가에게는 그렇다면 다른 방식의 폭격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공중전을 정당화한 이들의 논리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아마도 이들이 지나치게 자본주의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이 불합리해서가 결코 아니다. 다만 당신이 자본주의가 어때서? 라고 묻는다면, ‘자본주의만이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은 것이다. 오로지 모비 딕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이 한 가지에만 미쳐 있는 에이해브 선장의 일신주의적 광기와 무엇이 다른가 묻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 알렉산더 클루게나 제발트뿐만아니라 독일인들이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마주하고 극복해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클루게가 기록해놓은 대목 가운데 한 독일인 기자가 미 공군 여단장 프레드릭 앤더슨과 했던 인터뷰 중 질문하는 대목이 나온다. 기자는 독일 도시 폭격에 대한 대화를 나눈 후, 앤더슨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 공격이 미칠 영향에 대해서 상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83)라고. 물론 이들은 폭격 전에 면밀하게 상상해보긴 했을 것이다. 불에 잘 타는 목재가 많이 있는 구시가지에 집중적으로 폭격할 때 만들어지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가져오는 굴뚝효과에 대해서 말이다. 이 거대한 불기둥은 도시 주변의 신선한 공기를 계속 화재 지점으로 끌어와 부채질할 것이라는 점을 치밀하게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기자가 정말로 물었던 것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타게 될 도시에 있던 수많은 죄인들이 폭격으로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았냐는 질문이었다.


 

다시 정리하면, 전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들여다보아야 하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공중전과 공습은 산업화된 문명을 굴러가게 하는 바퀴의 한쪽 축이었다. 자본의 논리는 전쟁의 국면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무화시키는 절대 교리인 셈이다. 그럼에도 폭격에 희생당한 모든 이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 이점이 알렉산더 클루게의 194548일 할버슈타트 공습이 내게 준 강력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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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07 17: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 반갑네요
읽으려고 쌓아놓고 있거든요
다른 일정에 밀려서 조금 늦춰지긴 했는데 조만간 읽으려구요

노아시대 불의 심판은 세상의 마지막날까지는 이런식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아는데...;;;
그 전의 전쟁과 고통은 인간들로부터 비롯된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초란공 2022-08-07 20:34   좋아요 1 | URL
불의 심판 모티브를 따오긴 했는데 제가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군요^^;;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이 워낙 다르게 느껴지긴해요. 요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와 신의 설계를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하고요. ^^;;
 
에코페미니즘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 외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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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 모든 존재의 생존을 위한 언어이자 행동 강령

- 마리아 미스·반다나 시바에코페미니즘(2014) 읽고


 

나는 해방 후 시공간에서 화가 이쾌대가 그린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을 들여다본다. 옥색에 가까운 두루마리를 입고 다소 굳은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는 화가의 반영이다. 왼쪽 배경에 작게 그려진 인물들은 우리의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다. 반면 그는 중절모를 쓰고 서양식 채색도구(붓과 팔레트)를 손에 쥔 모습이다. 재일조선인 서경식 교수는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서 분열이라는 키워드로 이 그림을 읽어냈다. 내가 주목한 지점은 이 분열이라는 맥락을 만들어낸 요인이었다. 인간은 그가 살아간 특정 시간과 공간 속에서 타인을 포함한 공동체 및 환경과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하나의 문화적 기호이기도 하다. 그를 단 몇 개의 키워드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쾌대의 자화상이 품고 있는 맥락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단서 하나는 식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세기 말에 출간되어 페미니즘 분야의 새로운 고전이 된 에코페미니즘을 읽으면서 간간이 이쾌대의 자화상을 떠올렸다. 그는 출생부터 32년간 일제 강점기 식민지인의 입장에서 미술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다가 어느 날 강제 해방된 공간으로 던져진 지식인이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뒤엉키며 격하게 대결하던 1940년대 말, 이제 30대 중반이 된 화가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듯 했다. 그렇게 화가의 굳은 얼굴이 계속 생각났다. 이 때 그가 바라본 현실은 어땠을까. 해방과 함께 물러났던 친일세력은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을 틈타 되돌아왔고, 나라의 앞날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정국이었을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통제 권한을 넘겨받은 또 다른 제국주의 세력으로 대체되어가고 있었다. 한반도에서 식민주의적 착취와 억압은 이제 또 다른 얼굴의 식민주의적 구도로 이어졌다.

 

이 책의 저자인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는 페미니즘 이론가이면서, “우리는 행동파 학자다”(30), “경험과 투쟁이 이론적 연구보다 우선한다”(32)라는 구호를 모토로 삼았던 활동가다. 페미니즘 및 환경과 관련한 사안에 두 사람은 모두 현장에서 직접 행동해온 인물이다. 동어반복일지 모르지만, ‘에코페미니즘은 인권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과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포함하는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자각과 실천이 접목된 사상으로 이해된다. ‘에코페미니즘이 내게 호소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보다 개별적으로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 깃든 본질 혹은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민중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이를 현실에서 실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특히 참여자들은 생존투쟁을 통해 생물학적·문화적 다양성과 상호연관성이란 가치를 지켜나가고자 한다. 에코페미니즘은 환경의 구원자로서 여성의 역할이 중심을 이루지만, 환경과 관계를 맺는 모든 존재를 포용한다.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가 우선적으로 비판하는 대상은 성장 중심의 가부장적 경제 모델이다. 저자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패러다임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인류사에서 농업혁명으로 호명되는 8천년 전후의 시기에 재구조화된 공동체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에 들어와 자본주의와 결합되면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쾌대의 자화상을 통해 이야기한 식민주의는 이런 배경이 가져온 부정적인 영향이다. 성장 중심의 경제는 잉여 생산물을 낳았고, 이를 소비할 구매자를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몇몇 국가들은 세계로 눈을 돌려, 자원을 착취하고 생산물을 내다 팔 시장을 확보하고자 했다. 식민주의는 이런 맥락에서 태어났다. 이쾌대가 경험했던 한반도의 식민주의는 근대 서구의 환원주의적 관점이 가부장제와 결부되고 보강되어 한반도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반다나 시바는 이렇게 식민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경제 모델이 식민지의 억압과 착취에 의존하면서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 문화를 낳았다고 보았다. 나아가 이런 관점이 여성을 포함한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데까지 용인하게 되었다고 여겼다. 이 과정에서 지역적인 특색은 사라지고 획일화된다. 가까운 예로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종군 위안부강제 동원, 한반도 자원과 식량 수탈,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언어를 말살하기 위해 펼친 정책 등에서 여성에 대한 착취와 억압, 문화적 다양성이 파괴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식민지 현실에서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모순을 안고 있었다. 이것이 이쾌대의 자화상에서 읽을 수 있는 배경적 맥락으로서 분열증적 징후가 아닐까 싶다.

 

이제 현대로 들어오면, 이러한 식민주의적 자본주의는 새로운 모습, 새로운 페르소나를 갖게 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는 이 경제 모델이 내세우는 키워드가 전지구주의, 세계화, 민영화, 핵 발전, 개발주의, 포스트모던적 상대주의라고 지적한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새로운 분리가 이뤄지고 경계선이 확정되고 있고, 반면 초국적기업의 투자와 시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세계질서전 지구적 통합이라는 거창한 계획을 촉진하도록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사실이다.”(61)

 

여성과 자연, 이민족을 착취하며 성장했던 식민주의적 국가가 이제는 다국적 기업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계보학이다. 저자들은 이런 맥락 속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여성 및 토착 민중과 손을 잡고 생명과 공유자산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다. 따라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국적 기업과 통제에 순응하는 삶이 아니라 자급하는 삶이 된다. 이를 위한 전제가 바로 생명의 다양성과 사회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다양성을 갖춘 공동체 및 환경은 구성원의 지혜를 모아야 지속가능한 생존이 보장된다. 이는 환경 내의 모든 존재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총체를 이루고 있음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쾌대의 자화상이 분열증적 징후를 담고 있다는 것은 착취와 억압에 기반한 식민주의적 현실을 겪은 지식인의 몸에 각인된 기억일 것이다. 분열증적인 징후로서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극심한 양극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양극화 경향은 공공자원을 점유하고 강탈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런 환경에서 공동체 내의 다양성과 상호연관성이 파괴되면 생존이 어려워지고 회복이 더디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우리 사회의 검찰을 비롯한 정치권력은 자본의 노예가 되어 비윤리적인 기업을 비호하는 세력이 되어버렸는데, 이러한 권력이 신봉하는 것은 분열하여 통치하라는 만트라다. 근대적 식민주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우리가 이쾌대의 자화상에서 느껴지는 분열증적 징후, 혹은 지독한 현기증을 여전히 느끼는 이유는 새로운 신자유주의 모델이 근대의 식민주의 모델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극심해진 양극화로 취약해진 이들은 벌어진 격차를 넘어 반대편 극으로 가고자한다. 이들은 기업의 논리를 내면화하여 스스로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착취를 쉽게 용인하게 된다. 이제 분열증적 징후는 더욱 탄력을 받아 심화되어간다.

 

반다나 시바가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도 수십 년 전에 통에 받아 마시던 지하수가 이제는 상당부분 기업의 소유가 되어 버린 현실을 마주했다. 수원(水原) 주변으로 담장이 쳐지고 경호 인력이 고용된다. 이것이 민영화라는 이름의 기업 지배 양상이 정부의 민영화와 더불어 경찰국가로 변해가는 모습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원주민에게서 뺐었을 때 토머스 모어가 적용했다는 논리, ‘쓸모없이 비어 있는 땅을 취할 때 몰수가 정당화된다’(95)는 논리는 이제 전 지구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국내에서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민영화되었던 생수산업이 그 사례다. 이처럼 기업의 영리, 기업의 성장만을 추구한 결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값싼 노동력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 노동자에 대한 처우는 더욱 열악해졌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희박해진 논리는 생태계파괴와 환경오염에 대한 불감증도 낳기 쉽다. 이러한 관점은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모든 대상, 이를테면 종자, 식량, 토지, 생명 등으로 확장된다. 자연과 더불어 공동체 내에서 공유되었던 자산들이 이제는 기업의 상품이 되어 버렸다.

 

댐건설은 또 어떤가. 반다나 시바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진행되는 전형적인 댐건설 과정은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의 차관을 받은 국가의 정부가 강물을 막아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지역적으로 관리하던 분권화된 물 관리 주체가 정부주도의 중앙집권적인 구조로 전환되기도 한다. 여기에 차관을 제공한 경제 기구는 외국 기업이 들어와 사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을 협정 조항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차관을 받아 국책사업으로 댐건설을 한 개발도상국에서 물과 같은 공공자원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권한이 민영화된다. 그럼 이 관리 권한은 누가 갖게 되는 걸까. 바로 외국의 기업으로 넘어가게 된다. 저자는 이런 개발과정을 통해 차관과 엄청난 세금, 국민의 피와 땀으로 지어진 댐과 수자원이 외국 기업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는 메커니즘을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노동력만 투입되는 것으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댐건설로 수많은 수몰민이 발생하고 이들은 강제이주를 강요받게 된다. 반다나 시바가 인용한 2000년 이전 자료에 따르면, ‘지난 40년의 개발과정에서 인도의 1500만 명 인구가 고향에서 뿌리 뽑힌 채 쫓겨났다’(190). 물론 이 수치는 댐건설을 포함한 광산, 발전소, 군 기지 개발을 포함한 자료다. 이후 20년 간 인도뿐만 아니라 중국도 초대형 삼협댐을 비롯하여 수많은 댐이 건설되었다. 수몰민과 해당 지역의 터전이 사라지면서 피해자들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공동체가 삶의 터전과 맺어온 문화적 다양성 역시 소멸되어 버렸다. 또 주변 지역의 생태계가 품었던 생명의 다양성 역시 감소하게 되었다. 이는 금액으로 환산이 불가능한 가치를 잃는 일이다. 지역 주민은 점점 영세해지는 반면, 소수의 기업은 막대한 개발 이익을 얻었다. 이들 기업의 이익은 무엇보다 자연과 지역 주민의 착취를 통해 얻어진 것이다.

 

에코페미니즘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모델을 거부하고 그 폐해를 탈피하려는 시도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삶은 이제 기업에 상당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코페미니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자급적 관점이다. 마리아 미스에 따르면, 가부장적 자본주의사회의 생산자는 더 많은 상품, 더 많은 영리를 추구하지만 소비자들은 오염되지 않은 환경과 음식, 안전한 생활을 원한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분열증적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제한된 자연과 자원을 외면한 채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코페미니즘은 비착취적, 비식민지적, 비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비전을 추구한다.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도구적 비전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자유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 자급적 생산과 기술이 필요하다. 삶의 새로운 균형감각을 회복하고자 하며, 이는 삶의 방식을 새롭게 재조직해야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에코페미니즘은 상호연결성, 총체성의 가치를 중요시하며 기존의 가부장적 경제 질서가 광범위하게 만들어낸 문제를 그 원인부터 치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한 출발은 서문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오직 연계하라’(10)는 구호에서 시작할 수 있다.

 

에코페미니즘은 모든 존재자와 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에 주목한다. 이들이 환경과 맺는 안전하고 건강한 관계성 속에서 각자의 존재 가치를 포용한다. 이분법적이고 분열증적인 개발 논리를 벗어나기 위해 비착취적인 관점을 추구한다. 에코페미니즘은 자급적 관점을 중시하므로, 이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중심을 이루면서도 세계의 다른 구성원인 남성에게도 책임을 요구한다. 저자는 자급적 관점은 남성들이 지구생명체를 창조하고 보존할 책임을 실제로 분담하는 것을 의미 한다”(513)고 언급한다. 이는 기존의 가부장적 경제 모델에서 배제된 영역에 속하는, ‘생산자가 곧 소비자인 노동, 혹은 그림자 노동을 주로 담당했던 여성과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무엇보다 생명보존을 위한 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성들이 가사, 어린이와 노약자 돌보기, 지구를 치유하는 환경 작업, 새로운 형태의 자급생산 등 무임금 자급노동을 분담해야 한다’(513)는 의미다. 이러한 맥락에서 에코페미니즘은 성장만을 추구하는 경제 질서에 대항하며, 여성과 남성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상호 연관성에 기반을 두는 새로운 언어이자 실천적인 행동강령이기도 하다.

 




이쾌대,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유화, 1948-49년 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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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4-01 0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쾌대 자화상을 맨 아래 보물처럼 숨겨두셨군요. 읽으면서 내내 상상했거든요. 반다나 시바의 책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초란공님

초란공 2022-04-01 01:51   좋아요 1 | URL
좀 전에 얄라알라님이 생각났었는데요 ㅋㅋ 요새 제가 글쓰기든 책읽기든 의욕을 좀 잃었는지 활동성이 떨어진 바이러스마냥(?) 움츠리고 있네요. 누스바움 여사 읽기도 미뤄두고요 ㅜㅜ 봄타나봅니다 ㅋ
 
제국의 시대 - 로마제국부터 미중패권경쟁까지 흥망성쇠의 비밀
백승종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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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새로운 지향점을 찾는 일

- 백승종의제국의 시대(2022)


 


역사가들은 왜 끊임없이 역사책을 쓸까? 우선 과거의 행적을 기억하고 후대에 전하며 이를 평가하기 위함일 것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역사는 현재를 성찰할 때 유용한 기준이 될 수 있기도 하다. 이게 역사학의 효용이다. 역사에 동일한 사건은 없지만, 과거의 사건은 현재 당면한 과제에 판단의 근거가 되고, 가까운 미래를 전망하거나 계획할 때 영감을 불어 넣는다.


 

미시사를 전공한 백승종 교수는 제국의 시대를 쓰면서 다양한 제국의 역사를 가로지른다. 1차 사료를 비롯한 다양한 자료로부터 관심을 갖는 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구체적인 생활상을 재구성하던 관점을 넘어,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제국의 운명을 들여다보았다. 로마 제국을 시작으로 현재에 이르는 2000여 년의 통시적 관점과 현재 전 세계를 아우르는 공시적 관점이 접목되고 있다. 급격히 변하는 국제사회의 질서를 고려하면, 이 책은 역사가가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해보고 다시 써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제국이란 황제가 지배하는 국가를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보다 넓은 의미로 제국의 개념을 사용한다. 어느 국가의 영향력이 자국 영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우, 제국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의 국가가 제국의 범주에 포함된다. 특히 현대 러시아나 중국에서 국가 원수의 권력은 과거 전통적인 어떤 제국의 황제보다 막강하다. 이 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원고가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이 전쟁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여러 면에서 이를 예견하고 있어서 마지막으로 가면서 특히 실감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이 전쟁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미국은 세계 대전 이후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세계에 부상하여, 공산주의 국가를 확대하고자 했던 구 소련과 대립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를 구성하여 소련의 확장 야욕을 견제했는데, 이 때 형성된 기본 구도가 현재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NATO의 존재가 팍스 아메리카나를 가장 뚜렷하게 상징한다고 말한다. 20세기에 미국은 세계 경찰의 역할을 자임하며 단연코 세계를 손에 쥐고 있었다. 미국무부의 정책 자문을 맡기도 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저서 거대한 체스판이란 제목이 상징하듯,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세계를 하나의 게임장처럼 보고 있었다. 따라서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의 씨앗을 심은 것은 서방 세계의 NATO 설립과 연결되고 있으며, 여기에 가장 책임이 있는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인 셈이다.


 

1992년에 당시 미국의 국무차관보 폴 울포위츠가 작성한 미국의 전략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유라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적대 세력이 지배권을 쥐지 못하게 막는 것이 미국의 목표다.” (396)

 


울포위츠의 보고서는 1991년에 구 소련이 붕괴 후, 미국 중심의 세계 지배 전략을 개편하면서 마련된 것이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인 조 바이든은 1992년 당시 상원의원이었는데, 이 전략이 실효성이 없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례처럼, 미국 혹은 미국 중심의 세계 연합 체제는 한 강대국이 주변국을 위협에 몰아넣어도 이를 제재할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기에 당시 미국은 중국이 훗날 세계 2위의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로 자임하며 외교·정치·경제 영역의 패권을 유지해왔다. 반면 로마 제국의 사례와 같이 세계 주요 지점에 군대를 주둔시킨 것은 오늘날 재정 적자에 허덕이게 한 주요 원인이었다.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미국의 국가 채무는 코로나19로 인해 연간 총생산량보다 많아진 상태라고 한다. 저자가 오늘날 미국은 고대 로마공화정이 붕괴하던 때와 많이 닮았다.”(413)고 지적하는 이유도 국가의 재정난과 극심해지는 양극화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과거의 제국들이 국가 내부와 외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 전쟁을 일으켜왔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일부 역사가들이 앞으로 20년 내에 제3차 대전의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거 없는 예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뿐 아니라 현재의 러시아나 중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몰락한 제국 러시아는 여전히 막대한 군사력과 자원을 등에 업고 마지막 발악을 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점차 노골화되는 상황도 심상치 않다. 미국은 인도 편을 들어 국경의 긴장을 조성하고, 중국의 일대일로프로젝트를 견제하는 행보를 보인다. 히말라야 국경에서 인도군과 중국군이 대립하고 무기가 배치된 상황 뒤에는 중국과 미국의 갈등과 대립이 있었다. 이는 전 세계가 단합하지 못하고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분열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신 냉전이란 용어를 굳이 붙일 필요도 없다. 이 대립 양상은 편나누기를 기본적인 존재양식으로 삼는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전염병 및 기후 변화 문제와 같이 국경을 넘어서는 전 지구적인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해나가는 길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저자는 지난 2000여 년 간 역사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제국들과 현대의 제국들 9개국을 선별하여 이들의 운명을 검토했다. 여기에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6가지를 키워드(전쟁, 지정학적 위치, 종교 및 정치사상, 지도자 및 시민의 역할, 전염병 및 기후변화)로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제국의 운명에 지정학적 위치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의 영향력이 고스란히 남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강대국의 세력 싸움에 한국 전쟁이라는 세계사적 사건 역시 상징적이다. 한반도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이념의 대리 전장(戰場)이 되었고, 전후 일본의 부흥이 여기에 직접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한반도에서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을 여전히 실감할 수 있지 않은가.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나와는 전혀 무관한 과거의 사건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몽골 제국을 거쳐 ‘100년 전의 동아시아 3에 이르자 답답한 마음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일본이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부상했던 반면, 청나라와 조선은 외세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쇠락해가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서양세력과 중국의 대립으로 시작된 아편전쟁이 청나라의 몰락을 자초하고, 일본에게 대륙 진출을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은 뼈아픈 교훈이다. 이 역사의 한 장면에서 조선은 패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한반도가 유린되었다. 이렇게 저자가 제시하는 세계사적인 흐름에서 보면 아편 전쟁과 한반도의 역사, 나아가 대한민국과 일본과의 역사 갈등은 모두 연결 되어 있었다.


 

동학농민혁명 역시 세계사와의 관련 속에서 그 의미가 새롭게 이해되었다. 저자의 지적에 따르면, 일본은 200여 년에 걸쳐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이루어냈다. 이와 달리 조선 사회는 너무나 폐쇄적이고 침체되어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이러한 사회의 모순을 낱낱이 드러내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이 과정에서 무능한 조선 조정은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고 일본이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할 구실을 주었다.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가 한반도에서 긴장의 수위를 높였고, 결국 청일 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전쟁에서 모두 이긴 일본이 한반도를 삼켰던 것은 이들에게 당연히 따르는 절차였을 뿐이다.


 

지정학적인 위치를 고려할 때 일본과 우리나라는 유라시아와 태평양이 만나는 길목에 있다. 여러 강대국이 대립하는 경계에 있는 것이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원자폭탄이 일본에 떨어졌다. 일본인은 패전국으로서 희생당했지만, 함께 희생당했던 외국인들(조선인 포함)은 전쟁과 무관한 상태에서 희생당해야 했다. 천만 명의 이산가족과 수백만 명의 목숨이 사라진 한국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저자는 우리가 하기에 따라 앞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얼마든지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다’(319)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만약에 동북아시아에서 다시 전쟁의 불길이 타오른다면 그 무대는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318)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같은 이유에 근거한다.


 

앞에서 역사가가 역사책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이들이 끊임없이 역사를 연구하고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이유가 뭘까. 과거에 살았던 인간들의 삶에 대한 앎이 그 목적일 것이다. 삶의 판단 근거로서 말이다. 이는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선택하는데 영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내린 결정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또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새로운 지향점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앎이 지혜로 바뀌는 순간이란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싶다.


 

이번 독서에서는 여러 제국들이 겪은 흥망성쇠의 모습을 살펴보고 현재 우리가 놓인 상황을 비교해볼 수 있었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의 갈등 뒤에는 ‘21세기의 로마 제국이라는 미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드러난 것처럼, 전염병과 기후 변화 문제는 전 세계 국가의 결속과 유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세계의 불확실하고 해체된 연대의 모습만을 확인하고 있다. 이제 이 문제의 해결은 지구에 사는 모든 이가 어떻게 힘을 모을지에 달려 있다. 우리는 망망대해에 띄운 한 척의 배에 함께 타고 있는 공동 운명체다. 우리가 안고 있는 공동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지구인의 운명이 달려 있다. 역사가는 당대의 절실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저술로 남긴다. 독자는 이로부터 가장 절실한 교훈을 얻어낸다. 이 모든 행위가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한 첫 걸음일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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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이 2022-03-13 17: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뜻을 같이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