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란 무엇인가 - 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적 맥락과 집단학살의 본질
오카 마리 지음, 김상운 옮김 / 두번째테제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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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곁에 머뭅시다 -가자란 무엇인가


: 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적 맥락과 집단학살의 본질

 

오카 마리 지음 | 김상운 옮김 [두번째테제] (2024)

 



나는 그들이 테러집단인 줄 알았다. 몇 년 전, 이스라엘에 출장갔을 때 잠시 방문했던 가자 지구 앞의 한 초원을 떠올린다. 겨울이 풍요롭다는 지중해 끝자락이어서 그런지 초원 위에 양귀비를 닮은 붉은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바람소리만 들리는 넓은 초원의 고요함 속에서 헤엄치듯 평화롭게만 느껴진 순간이었다. 언덕 위에 서 있던 건물 벽의 무수한 총알 자국이 이 장소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는 곧이어 들렸던 총소리. 가자 지구를 향해 무수히, 무차별적으로 발사되었던 그 총소리에 그곳을 빠져나왔던 기억까지 생생하다.


 

이 책 가자란 무엇인가는 현대 아랍 문학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던 와세다대학의 오카 마리 교수가 강연한 기록 모음이다. 입말로 쓰여 있어서 이 문제에 관해 처음 입문하기에 좋다. 이 책을 만나고 나서야 나는 평생 한쪽의 입장만 반영된, 지극히 편향된 주장만을 상식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고전이 아니라도 내게는 도끼같은 책인 셈이다.


 

이스라엘인이라고 모두가 유대인은 아니라는 것. 이것은 1948년에 홀로코스트 이후 불시에, 그리고 갑작스럽게 난민이 된 유대인 25만명의 거쳐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제법상의 불법으로 점거하기 시작한 이스라엘의 행보 때문이다. 좀 더 조심스럽게 구별해야하고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모두가 시오니스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법적으로, 세계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거하며 선주민을 내모는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내는 일이 8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박힌 돌을 밀어내기란 시오니스트들을 주축으로 자행된 인종청소를 의미한다. 전문가들이 아무리 집단학살이 아니라고 해도, 유대인 역사학자 일란 파페는 점진적 집단 학살”(188)이라고 표현한다.


 

현재 이스라엘은 2007년부터 20년 가까이 가자 지구에 대해 완전 봉쇄/전면 봉쇄를 시행하고 있다. 장벽을 두르고 팔레스타인인들을 가둔 채, 각종 첨단 무기를 시험하고 있다. 완전 봉쇄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하자면, “살아 있으면서 죽으라는 것”(106)이다. 치밀하고 집요한 구조적 폭력이다. ‘집단 학살이라는 비난을 피하면서 한 지역에 230만 명을 가둬 놓은 다음 굶기고, 병들게 하고, 자신의 눈을 가린 채 폭탄을 퍼부어 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집단 학살의 학술적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인가?


 

여기에서 중세 이슬람 신비주의 사상가 만수르 알할라즈(Mansur Al-Hallaj)의 말을 다시 기억해본다.

 

지옥이란 사람들이 고통받는 곳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아무도 보려 하지 않는 곳을 말한다.”(119)

 


현재 가자지구를 천장이 없는 세계 최대의 야외 감옥”(197)이라고 부른다그런데 저자 오카 마리는 이 표현에서 나아가 질문을 던진다.

 

죄수가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이런 감옥이 있습니까? (...) 적어도... 감옥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이제는 절멸수용소입니다.”(197)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피해자였던 민족이 이제는 지독한 가해자를 자처하는 상황, 인간의 이 맹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다시 말하지만 이스라엘의 행보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보내는 여러 유대인 단체들이 많이 있지만, 현실 세계에 행사하는 권력에는 압도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하마스는 무력 저항을 해왔지만, 이스라엘의 주장처럼 테러리스트라고 할 수는 없다. 이들은 피점령 선주민으로서 국제법상 인정하는 저항권을 정당하게 행사한 것으로 보아야 맞겠다. 일제 강점기 치아에서 우리 선조들의 저항도 이와 마찬가지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가 질문의 방향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하마스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이스라엘은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오니스트가 유대인 국가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아랍인이나 무슬림에 대한, 유럽인의 인종주의에 기반한 식민주의적 침략과 폭력적인 인종청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193)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 첫 마디로, “나는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지지합니다.”라고 말하게 하고, 급진 좌파로 여겨진 버니 샌더스마저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추가 무기 공여안에 찬성표를 던지게 한 것은 친이스라엘 단체/세력의 정치 자금원이었다. 자금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대통령뿐만 아니라 상원의원 등의 정치활동도 막히도록 하는 이 단체/세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한 문제다.

 


이 책의 저자가 일본인이기에 우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문제도 함께 언급하는 대목이 인상깊다. 1980년 광주 항쟁의 기억을 담은 문부식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에 언급된 표현, “망각이 다음 학살을 준비한다.를 여러 번 인용하고 강조한다. 이어서 저자 오카 마리는 간토 대지진 당시 있었던 조선인 집단학살과 재일조선인 차별, 조선인학교에 대한 적대시와 같은 문제를 언급하며 이것이 일본의 책임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와 재일조선인에 대한 폭력과 차별의 문제는 식민주의 맥락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다. 두 문제 모두 결국은 국가가 후원하는 폭력”(176)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일본인 학자의 강연집이기에, 이 주제에 대해 처음 알고자하는 독자들에게 특지 좋을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한 집단이 만들어 낸 편향된 인식 속에서 살아왔는지 일깨워 준, ‘도끼같은 책이다.


 

가자에 희망은 남아 있는 걸까? 책을 읽으며 충격과 더불어 극심한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을, 그리고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끝으로 저자는 강연 참가자들과 이 책의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휴머니티야말로 우리의 무기입니다. 인간의 곁에 머뭅시다.”(163)라고. 다른 책에서 일본의 영화 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의 경험을 인용한 대목이 생각났다. 간토 대지진 당시 10대 소년이었던 그에게 이웃집 사람이 조선인들을 찔러 죽이라고 죽창을 손에 쥐어주었던 사건. 그는 자신의 손에 있던 죽창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는 회고였다. 집단 학살을 온전히 막을 수는 없을지라도, 이를 멈추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마음이 있어서 가능하지 않을까. 모두가 거리로 행동에 나설 수는 없겠지만, 저자의 당부대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역시 올바르게 아는 것, 제대로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가자 지구 주변에서 찍었던 사진들]


 

[다음에 읽어볼 책]


*일란 파페,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백선 옮김, 이희수 감수, 틈새책방, 2024


*일란 파페,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유강은 옮김, 교유서가, 2024


*슐로모 산드, <만들어진 유대인>, 김승완 옮김, 배철현 감수, 사월의책, 2022

 

 



[책 속으로]

[1] "식민주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자지구,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근대 500년의 유럽과 미국에 의한 전 지구적 식민주의의 역사와 인종주의의 모순들이 응집된 토포스(장소)입니다. ‘팔레스타인이 해방되면 세계가 해방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11)

[2]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정착민에 의한 식민지 국가이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아파르트헤이트 국가(특정한 인종의 지상주의에 기초한, 인종차별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라는 사실입니다."(39)

[3]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무장을 하고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습격하는 거죠. 집단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이나 차에 돌을 던지는 것은 일상다반사입니다. 팔레스타인 농가의 삶의 양식인 올리브나무 밭을 태우거나 집에 불을 지르거나 경우에 따라 죽이기도 합니다. 이런 짓을 그들은 이스라엘군의 보호를 받으면서 하고 있습니다. 2023년 1월부터 6월까지 반년 동안 무려 600건에 달하는, 이러한 정착민에 의한 폭력이 일어났습니다."(43)

[4] "인간을 한곳에 가둬 놓고, 도망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이런 폭격을 가한다는 것이에요. 2008-2009년 첫 번째 공격이 일어났을 때, 제가 교토대학에서 열린 집회에 ‘인간성의 임계’라는 제목을 붙였을 정도입니다."(46)

[5]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저격당해 살해된 언론인 시린 아부 아클레 씨의 경우(2022년 5월 11일)도 그랬지만, 이스라엘은 항상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아니, 그건 팔레스타인 측이 저지른 일이다’라는 거짓 대항 정보를 흘립니다.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해 온 짓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은 항상 자신들이 하는 짓을 상대가 한 일로 발신한다는 것입니다."(52)

[6] "19세기 말 유럽에서 ‘시오니즘’이라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정치적 프로젝트가 탄생합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1894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이었습니다."(60)

"드레퓌스 사건에 충격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입니다. 그는 1896년, 진정으로 우리 유대인이 인간적으로 해방되기 위해서는 유대인에 의한, 유대인을 위한, 유대인의 나라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유대 국가 Judenstaat>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정치적 시오니즘 운동이 탄생합니다."(62)


[7] "75년 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강타한 이 인종청소, 조국 상실의 비극을 아랍어로 ‘나크바 al-Nakbah, an-Nakbah‘라고 합니다. 영어로 하면 ’그레이트 카타스트로프 great catastrophe‘, 큰 재앙이라는 뜻입니다."(73)

[8] "이스라엘 건국과 같은 해인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됩니다. 그 제13조 2항에는 "모든 사람은 자기 나라를 포함한 어떤 나라로부터도 출국할 권리가 있으며 또한 자기 나라로 다시 돌아올 권리가 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즉,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은 기본적 인권이라는 것입니다. (...) 그러나 팔레스타인 난민은 75년이 지나 손자·손녀, 증손자 세대가 되어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76)

[9] "2011년에는 통칭 나크바 법이라고 불리는 법률이 이스라엘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인구의 20퍼센트는 팔레스타인인데, 이 법에 따라 나크바를 공적으로 애도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79)

[10]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테러 조직으로 간주하는 하마스를 집권당으로 선택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집단적 징벌로 2007년에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 봉쇄가 시작됩니다."(91)

[11] "나크바로부터 70년째인 2018년 3월 말부터 1년 반 이상에 걸쳐 가자지구에서 ‘귀환의 대행진’이라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적으로 벌어졌습니다. 하마스뿐만 아니라 여러 단체가 대동단결하여 주민들에게 참여를 호소했습니다. 이 행진에서 그들이 호소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자신들의 민족적 권리인 귀환 실현과 국제법 위반인 가자지구 봉쇄 해제, 그리고 같은 해 5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한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에 대한 반대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평화적인 행진을 통해 요구한 것입니다. (...) ‘귀환의 대행진’이 시작된 3월 30일부터 미국 대사관이 예루살렘으로 이전한 5월 14일까지 백 명 이상의 참가자가 살해되었습니다."(110)

[12] "지옥이란 사람들이 고통받는 곳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아무도 보려 하지 않는 곳을 말한다."(119)
[중세 이슬람 신비주의 사상가 만수르 알할라즈 Mansur Al-Hallaj의 말]

[13] "‘어떤 곳에 있든, 불의는 모든 곳에서 정의에 대한 위협이 된다.’ 즉, 가자지구의 집단학살이 이대로 계속되면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집단학살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124)

[14] "가자지구는 완전 봉쇄되어 있고, 주민들은 가지지구 밖으로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인구는 150만 명이었는데요. 150만 명이 갇혀서 도망칠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 가자지구에다가 매일 밤낮으로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미사일과 포탄 심지어 백린탄까지 쐈습니다."(137)

[15] "공격이 멈춘 후 가자지구에 대해 말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저는 한국의 문부식 씨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겐다이키카쿠시츠, 2005[삼인, 2002])라는, 1980년 광주 항쟁의 기억을 담은 책에서 인용되었던 구절, "망각이 다음 학살을 준비한다"를 여러 번 인용하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가자’ 뒤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번 ‘가자’ 앞에 있는 것이다. 이번에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일을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그 망각에 의해서 다음번 ‘가자’로의 길을 닦고 있는 것이라고요."(138)

[16] "이스라엘은 군사 점령한 동예루살렘을 병합해 그곳을 수도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국제법 위반입니다. 그러한 예루살렘으로 미국 대사관을 이전하는 것, 이것도 국제법 위반입니다. 이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는 주류 언론은 없었습니다."(148)

[17]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문학이, 문학의 말이 필요합니다. 문학은 인간에게 휴머니티를 되찾게 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문학으로 인간성을 되찾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들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 이것은 당연한 말입니다."(161)

"말과 휴머니티, 그것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 다시 한번 말하죠. 휴머니티야말로 우리의 무기입니다. 인간의 곁에 머뭅시다."(163)

[18] "우리는 정말 역사를 배우고 있는 것일까요? (...) 백년 전에 있었던 간토 대지진 그리고 그 참사의 충격으로 부채질된 형태로 일어난 조선인 집단학살이 이곳 도쿄에서, 가나가와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살육에 당시 언론도 가담했습니다."(164)

[19]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서 혹은 이라크에서 다수의 무슬림이 미군에 의해 아무런 증거도 없이 테러리스트 혐의를 받고 쿠바의 관타나모 감옥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장기간 구금되었습니다. 국제법을 위반한 중대한 인권침해입니다. 미국은 그야말로 초법적인 존재로서 초법적인 폭력을 행사해 왔습니다."(166)

[20] "베첼렘이라는 이스라엘 인권단체는 유대인 정착민의 폭력을 ‘국가가 후원하는 폭력 State Sponsored Violence‘이라고 부르며 웹사이트에 정착민의 폭력 행위를 촬영한 동영상 등을 올리고 있습니다."(175)

"점령당한 사람들이 점령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점령군에 무력을 사용해 저항하는 것은 국제법상 정당한 저항권 행사입니다."(178)


[21] "‘하마스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오히려 물어야 할 것은 ‘이스라엘이란 무엇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건국되었는가. 그것이 문제의 뿌리에 있는 원인입니다."(185)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해 행사하는 온갖 폭력을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점,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라는 점으로 정당화하며 자신들에 대한 모든 비판을 ‘반유대주의’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일본 언론은 마치 이스라엘=유대인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습니다."(185)

[22] "흔히 가자지구를 ‘천장이 없는 세계 최대의 야외 감옥’이라고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감옥 그 이상입니다. 죄수가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이런 감옥이 있습니까? 적어도 10월 7일 이후의 가자지구를 ‘세계 최대의 야외 감옥’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감옥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이제는 절멸수용소입니다. 문제 해결에 필요한 것은 정치적 해결입니다."(197)

[23] "가장 기본적인 것은 역시 올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우선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203)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점령으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는 것, 그것이 역사적으로 계속되어 온 투쟁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리는 것입니다."(205)

[24] "문제의 근원은 정착민에 의한 식민주의입니다. 여기서 묻게 되는 것은 식민주의적 침략의 역사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 역사의 문제, 일본에 사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류 언론은 거기에 발을 들여놓지 않습니다. 일본은 이런 점에서도 이스라엘과 역사적인 공법 관계, 동맹 관계에 있습니다."(205)

[25]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우리는 우리로서, 이 일본에서 지금도 계속되는 식민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일본에도 인종주의, 혐오가 있습니다. 하마스=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것과 조선학교를 적대시하는 것은 정말 똑같은 구조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투쟁을 제대로 하는 것도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206)

"팔레스타인을 통해 저는 일본의 식문주의 문제를 만났습니다. (...) 팔레스타인을 만나면서 저는 처음으로 조선 식민지 지배의 문제, 재일교포의 문제, 오키나와의 문제, 아이누모시리의 문제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208)

[26]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을 때, 첫마디가 ‘나는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지지합니다’였습니다. 그렇게 말함으로ㅆ 나는 이스라엘의 편입니다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자 친이스라엘, 친시오니즘 단체에서 거액의 기부금이 들어왔습니다."(210)

[27] "미국 상원은 이번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 대한 추가 무기 공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도 만장일치로요. 누구 하나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급진 좌파라 일컬어지는 버니 샌더스도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거기서 반대하면 다음 선거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낙선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국내 선거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거죠."(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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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교유서가 어제의책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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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가 알던 ‘상식’이 강자 중심의, 얼마나 편향된 인식이었는지 충격받고 놀라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외면함으로써 공범이 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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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연대기
라시드 앗 딘 지음, 김호동 옮김 / 사계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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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의 견문록 이후 다시 김호동 교수님의 작업을 다시 만났습니다. 책 속에 담긴 인류사의 거대한 발자취를 흥미롭게 따라가 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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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증언 - 간토대지진, 혐오와 국가폭력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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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101년 째 애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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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간토대학살이 일어난 지 101년이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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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년전 오늘 오전 11시58분... 간토(관동) 대지진이 발생했고,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낳았으나 더 큰 재앙은 곧 이어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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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일본 군부의 의도적인 도발에 일본 우익 세력이 가세했다. 이 일본인들은 군부의 묵인 하에 조선인을 색출하여 살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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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6600여명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이 살해당해야 했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나누었던 기준은, 단지 ‘15엔 50전’이라는 일본어 발음을 잘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외국인들, 특히 조선인들이 일본의 우익 세력과 이에 동조하는 일본인들에게 죽창과 칼에 찔려 죽어야만 했던 이유로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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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그러니까 지난 101년간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점은, 역대 어느 대한민국 정부도 이 문제에 대해 일본에 공식적인 조사와 해명 및 사과를 요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어느 대한민국 정부도 말이다. 이점이 가장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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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진 직후 살해당한 사람들 중에는 일본의 타지역 출신 일본인도 있었다. 그러니까 ‘15엔 50전’이라는 발음을 관동지방 사람들의 발음으로 읽지 못해 살해당해야했던 오사카 출신의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 <백년 동안의 증언>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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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일본 영화 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의 이야기도 기억난다. 간토대지진 당시 10대 였던 구로자와 아키라는 이웃 어른들이 어린 자신에게 죽창을 쥐어주며 ‘조선인놈들을 죽이라’고 했던 상황에 충격을 받은 순간을 기록한 대목이 있다. 그가 지성인의 자질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는 지점은 그의 손에 들린 죽창을 보며 ‘이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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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교 교수의 <백년 동안의 증언>을 통해 간토대지진에 대해 비로소 입문할 수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내용은 무겁지만) 작고 가벼운 이 책을 입문서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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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일제 부역자들이 자신들의 매국행위나 변절한 이유를 들어보면 상당 부분은 “조선이 해방될 줄 몰랐다.”였다. 이들은 대개 부와 권력을 손에 쥐고 일제의 영원한 통치를 굳게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마음 속에는 결정적으로 한 가지가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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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의 결핍요소를 ‘인간애’라고 생각한다. 깉은 인간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라는 마음의 불씨가 이들에게는 꺼져 잇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애라는 마음의 불씨가 꺼진 자리에는 패배주의와 열패감이 자리를 차지했다. 이들이 지킬 것이라고는 오로지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것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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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학살이 일어난 지 101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은 101년째 애도중이다. 홍범도가 사라지니, 지하철 안국역과 잠실역에선 독도가 사라졌다. 아마 교과서에서 이들이, 독도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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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이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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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 예술 과학 철학, 그리고 인간
케네스 클라크 지음, 이연식 옮김 / 소요서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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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정체성 탐구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되찾는 과정

- 문명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 지음 

이연식 옮김 [소요서가] | (2024)

 




누드의 미술사,그림을 본다는 것의 저자이자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가 서구 문명을 조망하듯 정리한 문명이 번역 출간되었다. 이로써 케네스 클라크의 서양 미술사 3부작이 완성된 듯하다. 특히 이 책 문명의 특징은 TV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유명한 영국의 BBC와 협력하며 직접 대본을 쓰고 엮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저자가 직접 미술관에서 도슨트를 하듯 서양의 미술작품과 역사를 함께 설명해주는 듯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원전 300여년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방대한 시기에 걸쳐 있는 서양의 회화/건축/조각 작품들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저자(출판사)는 이 책의 원제목을 문명 Civilization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고려하는 문명의 범주는 매우 제한적이다. 서유럽만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유럽 중에서도 문명의 정신을 대변하는 대상으로 프랑스 문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 책의 시작(아마도 첫 방송분)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파리의 퐁 데 자르라는 점이 상징적이다. 이 지역은 프랑스 지성의 산실인 프랑스학술원과 문화의 산실이자 미술관으로 사용되는 루브르 궁, 그리고 종교의 산실을 상징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모여 있는 곳이다. 서양 문화의 토대라고 하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정수를 한 장소에서 잘 보여준다. 다만 50여 년 전에 제작된 방송치고는 그의 입장을 표명하는 행보는 상당히 대담하다. ‘편견어린 견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는 행보를 (아마도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관점을 선명하고도 당당하게 표명하고 있다. 나는 처음에 이 점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자신의 견해와 지식, 이해정도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옮긴 역자 역시 이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저자는 문화 예술의 중심을 서유럽(그 중에서도 프랑스)이라 보고 있다고 말이다. 이 점은 논의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새롭게 드러나게 된 주변국과 문화의 강력한 비판을 일으킬 소지가 충분하다. 새롭게 알게 된 점은, 이 책(혹은 다큐멘터리 방송)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저술이 바로 미술 비평가이자 작가인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Ways of Seeing(1972)라는 것이다. 대강 이 정도의 구도만 보아도 이 책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자리와 서술 방향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문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줄곧 붙들고 확인한다. 그가 생각하는 문명이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은 곧바로 책의 핵심을 묻는 질문일 것이다. 다만 이 질문은 간단명료한 문장으로 정의내리기 어렵다. 책 전반에 흩어져 있는 문명의 속성을 언급하는 개념들을 모아 파악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문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직접적으로 얻기 전에, 저자는 문명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를 밝히며 시작한다.


 

문명의 적은 무엇일까요? 그건 무엇보다 공포입니다. 전쟁에 대한 공포, 침략에 대한 공포, 역병과 기근에 대한 공포.”(25)


TV다큐멘터리 대본으로 마련된 이 글은 1969년에 작성되었다. 저자가 연설하듯 이 말을 방송에서 반복하여 강조하며 말한 이 시기에 인류는 양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원자폭탄에 수소폭탄의 위력을 더한 위기의식을 체감했던 것이다. 특히 1962년 미국 본토의 앞바다에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두고 일어났던 쿠바 미사일 위기, 암울한 전망밖에 남지 않았던 당시의 정국을 보여준다. ·소 양국은 수소폭탄을 쌓아 놓고 힘겨루기를 했던 시기다. 세계대전을 통해 유럽인들이 목격했던 인간성의 실추와 인류 공멸의 위기의식이 최고로 치솟았을 시기였다. 무엇보다 문명이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저자의 이 반응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인간성에 대해 실망스러운 사태를, 세계 문명의 중요한 역할을 자처하는 유럽에서 겪어야 한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인류 각성의 필요를 느끼게 해주었을 법하다.


이제 저자는 문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다시 접근을 시도한다. “문명이란 활력과 의지와 창조력 이상의 무엇입니다. (...)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영속에 대한 감각입니다.”(40) 이 표현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문명의 큰 정체성 요소 하나가 등장한다. 문명이 영속에 대한 감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굳건함견고함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혹은 변화 없는 상태의 지속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런 의미일까? 그런데 조금 다른 문명의 요소를 찾을 수 있었다. 저자가 생각하는 문명의 과정이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것”(158)이라는 점이다. 이건 영속이 주는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다만 구체적인 그림은 아직 그려지지 않아 좀 더 단서를 찾아보면, ‘문명과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북유럽적 특징으로, 분별과 예의범절에 대한 조야하며 동물적인 적의’(218)를 꼽고 있다. 동물적인 적의북유럽적인 특징으로 보는 저자의 견해에는 여러 독자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분명한 건, 저자가 생각하는 문명의 특징적 요소에 영속’, ‘질서’, ‘분별’, ‘예의범절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문명이란, 인류 집단이 어떤 체계 속에서 분별과 질서를 유지하는 상태의 영속이라 정리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저자가 다른 존재 혹은 그들이 남긴 유산을 파괴하는 행위를 혐오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그가 문명화된 삶의 특질로서 제시하는 요건은, “모든 종류의 인간과 그들이 놓인 온갖 상황에 연민을 품으며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 관대하다는 것”(274)이다. 곧 타 존재에 대한 연민관대함으로 정리 해볼 수 있겠다.


 

이 즈음에서 우리는 저자가 생각하는 문명의 정체성의 윤곽을 대략 파악할 수 있다. 인간 존재의 영속에 기여하는 것, 혹은 이러한 지향에 기여하는 제반 활동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 이를 조금 달리 표현하면, 문명의 요건은 인간 존재에 대한 신뢰에 기반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영속성이든, 질서나 안정감이든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전제한다. 이 텍스트는 1969년에 정리되었다. 어쩌면 이 책은 인간이 20세기까지 인간이 반복적으로 겪은 끔찍한 살상 기록과 파괴, 폐허를 직시하고 목격한 저자의 위기의식에서 출발했을 것 같다. 대량 파괴와 인류 공멸의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상황 속에서 실추된 인간 정신을 다시 긍정할 필요가 있었을 테다. 인간으로서 자존감의 회복이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또 새로운 세대로부터 새 희망의 불씨를 찾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 케네스 클라크가 생각하는 문명의 윤곽을 정리해보니, 그의 견해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하게 나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문명개념은 남성적’, ‘굳건하고 조화로운’, ‘안정된 질서’, ‘합리적 이성과 같은 어휘를 곧바로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 이성의 지속적인 발달과 함양을 믿고 있는 듯하다.


 

한편 책을 읽어가면서 저자의 주장에 곧바로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이를테면, 저자는 서유럽이 이러한 이상을 이어받았습니다.”(24)라고 말하며, 이를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비범한 창조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때 저자의 주장은 꽤나 억지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논의의 범주를 서유럽의 역사에 한정하고 있음에도, ‘전체 인류의 역사를 무턱대고 언급하는 방식에는 논리의 비약도 보인다.

이 책이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음에도, 5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문명을 이해할 수 있는 풍부한 사례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역자 역시 이 책이 비판의 여지가 여러 군데 보이긴 해도, “비판적인 관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면 그 비판이 겨냥하는 쪽을 알아야 한다.”(473)고 언급한다. 견해가 다양하고 대립하는 공동체에서 건설적인 논의와 대화가 지속되려면, 우선 대화의 출발선에 함께 서야 한다. 논의의 전제에 대해, 기본 개념의 범주에 대한 공통의 이해와 기반이 마련되어야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사고의 경직성을 점검하는 리트머스 같은 책이 될 수도 있겠다. 상상 부분 저자의 견해에 공감하면서도 종종 내 의견과 틀어지는 지점이 발생하곤 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자신의 의견과 다른 목소리라고 해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태도만 있다면 언제나 좋은 토론 상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저자의 이 자신감 속에 바로 문명의 토대가 되어온 인간의 기본 자질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을 덮으니 표지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디자인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여러 점들 사이를 지그재그 형태의 선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다. 내게는 이 표지 그림이, 인류사적으로 여러 변곡점 사이를 왕복하는 듯하면서도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인류의 부단한 행보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말해, 인류의 역사에 나타나는 반복의 요소(‘역사는 되풀이 된다’)에 정확히 같은 지점으로 되돌아올 수 없기에 발생하는 차이가 더해져 발생하는, 일종의 리듬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더 간단히 말하자면, 이 그림은 인류 역사의 보편적인 리듬을 상징하는 그림처럼 읽혔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자 케네스 클라크는 이 책에서 혼란과 위기에 처한 인간의 윤리성과 신뢰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찾고 여기에 또다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질서를 다시금 부여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soyoseoga

#소요서가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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