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비행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초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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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제약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간 도약 

- 마법의 비행


(원제) Flights of Fancy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지음 | 야나 렌초바(Jana Lenzova)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



 

지난 5(202285)에 날아올랐던 대한민국 최초의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가 순항중이라고 한다. 달에 도착하면 달 궤도를 돌면서 탐사활동을 하게 된다. 다누리를 탑재한 로켓이 하늘로 솟구치는 장면에서 어린 시절 할머니의 흑백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우주왕복선 콜럼비아호의 비상 장면을 떠올렸다. 꽤나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장면이었다. 마침 이번에 생물학자이자 저술가 리처드 도킨스가의 마법의 비행을 읽으면서, 그가 비행을 중력으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의 탈출이라고 언급한 대목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생물학자로서, 도킨스는 수많은 육상 동물뿐만 하늘을 나는 동물들(, 곤충 등)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간직했을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마법의 비행은 비행에 대한 저자의 호기심과 설레임이 담긴 책이 아닐까하는 인상을 받았다. 창조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진화론을 강력하게 옹호해온 과학자로서, 그에게 이번 책은 비행이라는 키워드 아래 동물의 비행과 인간이 쌓아 올린 비행으로의 도전 과정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가 이 책을 엔지니어이자 테슬라 자동차의 창업자,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 X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에게 헌정한 것도 어쩌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처음 던지는 질문은 생물들에게 비행이 필요한 이유다. 특히 진화적 관점에서 비행이 지니는 이점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많은 생물들이 날아다니게 된 것일까. 우선 주목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생존을 위해 이주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지구는 자전축이 공전면에 대해 일정한 각도로 기울어져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돈다. 이것이 주기적인 계절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말은 지구상의 지역에 따라 거주 동물의 서식 환경이 변화한다는 의미다. 이 때 비행은 생물 종의 생존을 보장하는 해결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북국제비갈매기의 사례를 보자. 이 새는 두 달 간 북극권에서 남극권 사이를 오가며 매년 겨울 없이 여름만 두 번 보낸다고 한다. 날개가 있다는 것따라서 비행은 특정 생물이 환경 변화에 대해 융통성 있게 대응하도록 해주었다.

 


이와 달리 어느 지역 환경이 좋아서 생물이 이주할 필요가 없다면 어떨까? 특히 천적이 없고 이동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 살았던 새는 날아다닐 필요가 없게 된다고 도킨스는 말한다. 한 사례로, 날개가 있지만 날 필요가 없게 된모리셔스 섬의 도도를 떠올려볼 수 있다. 이 새는 비둘기과의 대형조류로 유럽에서 온 선원들에 의해 17세기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도와 마찬가지로 날 필요가 없게 된 새에는 날개가 퇴화해버린 뉴질랜드의 국조 키위, 아프리가의 타조, 남아메리카의 레아, 호주의 에뮤, 지금은 멸종해버린 뉴질랜드의 모아, 그리고 역시 멸종한 마다가스카르의 코끼리새가 있다. 도도를 제외하고 지금 언급한 새들은 모두 날지 못하지만 튼튼한 다리로 달리기를 잘하는 주금류(ratite, 走禽類)에 속한다.


 

여기에서 다시 궁금해지는 것은 북극제비갈매기와 도도가 모두 날개를 지니고 있지만, 어느 종은 날개의 기능을 다 하지만 또 다른 종에게 날개의 기능이 퇴화되는 이유다. 비둘기과에 속한다는 도도의 선조가 날 수 있었다면, 멸종하던 시기의 도도는 왜 날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냥 나는 기능을 유지하면 되는 것 아닐까싶은데 말이다. 저자는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을 던지고 있다. 도킨스에 따르면, 비행이라는 것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진화적 관점에서 생물이 비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이 점을 짚고 가보겠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비행은 생물들에게 보기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 기능이다. 생물이 이 기능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다. 깃털처럼 가벼운 벌새의 경우, 정지비행을 비롯한 정교한 비행 기술을 펼치기 위해서 몸집에 비해 매우 큰 용골돌기(가슴뼈)와 잘 발달된 날개근육을 필요로 한다. 반면 날개가 있는 여왕개미나 흰 개미 여왕은 평생 한 번 하는 짝짓기 후 자신의 날개를 떼어내는 행동을 한다(64, 67). 이들에게 날개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도구일지를 보여준다. 새뿐만 아니라 말벌도 비행을 위한 날갯짓에 엄청난 당을 태워야 한다. 게다가, 튼튼한 날개를 자라게 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결국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65). 따라서 모리셔스 섬의 도도처럼 날개가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 이유도, 생존을 위해 날아야 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는 비행에 필요한 엄청난 에너지를 절약하여 이를 번식과 종족 보존에 더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곧 종의 생존 과정에는 한정된 자원과 생존을 위해 이 자원을 사용한 무기 장착 과정 사이의 경제학이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가 진화는 기회주의적이다.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보다 기존의 것을 땜질해 쓰곤 한다”(114)라고 한 이유를 검토해볼 수 있다. 예컨대, 칼새는 알을 낳고 품을 때만 지상에 내려오는 반면 짝찟기를 비롯하여 일생 대부분을 하늘에서 보낸다. 이렇게 에너지가 훨씬 많이 드는 비행을 칼새는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다. 반면, 갈비뼈가 양옆으로 나온 구조를 활공에 사용하는 날도마뱀이나(290) 갈비뼈를 양옆으로 내밀어 몸 전체를 납작하게 만들고 30미터를 활공하는 날뱀(309), 가슴의 겉뼈대가 자라 갖추어진 곤충의 날개(183)처럼 생물은 생존에 필요한 몸의 특정 기능을 새로 만들어내기 보다는 기존의 해부학적 구조를 변형 또는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모든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고자 하지만, 조류의 깃털이 파충류의 비늘에서 변형된 것(119)이라는 설명은 여러 생물들이 자연의 제약 조건 아래에서 비행을 향해 보여주는 진화 과정(수렴 진화)을 잘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특정 개체, 혹은 종이 갖추게 된 생존전략의 실패는 곧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물들은 거창하게 생존을 위한 장치부터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설계를 조금씩 변형해가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여러 변이를 통해 생존 확률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다. 물론 다양성을 갖추게 되는 변이의 과정이 이를 위한 목적을 갖추고 여기에 따른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양성을 갖춘 변이를 통해 특정 환경에서 생존에 유리한 개체들이 결과적으로남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환경이 주는 선택압과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을 총동원하여 필요한 기능을 갖추되, 이를 이루기 위한 균형점을 찾는 융통성이 필요하게 된다. 이처럼 진화의 관점에서 생물의 비행은 생존에 필요한 경우 몸을 변형시켜서라도 갖추게 되지만, 어떤 이유로 필요 없어지면 곧바로 퇴화해버리는 값비싼 기능이었던 셈이다.


 

도킨스는 진화론의 옹호자로서, 그리고 무신론자로서 줄곧 창조론자들과 논쟁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동료 과학자들과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논쟁을 해온 과학자다. 자신의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이나 만들어진 신 비롯한 여러 작업을 통해 거침없고 신랄한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면밀한 관찰자로서 도킨스의 섬세한 설명이 돋보이는 부분도 만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인간의 동력 비행과 작동방식을 다룬 장에서 비행기 날개가 기류와 만나는 각도가 커져 비행기의 속도와 안정성이 크게 떨어지는 현상(실속)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그는 왜가리나 백로 같은 큰 새가 착륙할 때 일부러 실속(통제된 실속)을 일으킨다고 언급하는데, 이 새들이 내려앉을 때 뒤쪽 깃털이 위로 솟아오르는 것은 바로 이 실속 때문이라는 것이다. 항공기 전문가였다면, 새의 이런 미묘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 이유를 항공기 날개의 구조와 연관 지어 이처럼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도킨스의 섬세한 설명과 글쓰기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마법의 비행에서 다소 아쉬운 점 몇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앞부분에서 했던 내용이 뒤에서 여러 번 중복되어 설명되고 있어서 짜임새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 나온다. 또 뒤로 갈수록 앞에서 유지되던 글의 힘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른 아쉬운 점은 이 책에 참고도서 목록이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이 애초에 청소년 대상으로 집필된 책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외국의 교양과학서에 빠지지 않는 참고도서 목록이 원서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참고도서 목록이 없다는 것은, 독자가 저자의 주장이나 근거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비행이라는 기능에 도달하고자 했던 노력을 종합하며 흥미 있게 전달한다. 생물학자의 관점에서 비행을 둘러싼 자연의 제약과 생존 전략 사이의 균형을 찾아온 자연의 사례를 흥미롭게 제시했다. 말벌이나 여왕개미와 같은 곤충의 날개나 흰 개미 여왕의 날개, 날다람쥐의 활공을 돕는 비막이나 박쥐의 날개 사례는 서로 독자적으로 몸의 일부 구조를 변형 또는 보완하여 비행이라는 기능을 갖춘 자연의 수렴진화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에게 달 궤도 탐사선의 비상이 갖는 의미처럼, 인류에게 비행은 중력을 극복하여 인류가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간 도약을 의미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인간의 이성에 기반 한 과학 활동을 통해 가능했다는 점이었다. 이에 저자는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322)고 과학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수정 건의]

(41) ‘태양을 기준으로 을 수 없다 을 수 없다

(70) “한편 비둘기의 몸집은 점점 커졌다.” 도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비둘기를 언급하는데, 이 부분은 도도가 비둘기(pigeon & dove)를 포함하는 과(family)에 속하기 때문에 도킨스가 도도를 the pigeon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역주를 추가적으로 달지 않는 한, ‘비둘기를 그냥 도도라고 번역하는 것이 혼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1] "외딴섬은 대체로 포유류가 아니라 조류의 세상이다."(54)
- 모리셔스 섬의 도도와 이웃 섬의 날지 못하는 새(특히 주금류)에 대한 언급을 하며

[2] "진화는 기회주의적이다.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보다 기존의 것을 땜질해 쓰곤 한다."(114)

"진화는 기계 설계자처럼 처음부터 새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설계를 조금씩 하나하나 변형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각 변형 단계에서 번식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278)

[3] "깃털은 세계의 경이 중 하나다. 공중에 띄울 수 있을 만치 튼튼하면서 뼈보다 딱딱하지 않은 경이로운 장치다."(116)

[4] "복잡한 기관과 행동은 많은 작은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단순한 규칙을 따를 때 출현한다. 즉, 복잡성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출현한다."(193)
- 찌르레기들의 군무와 창발(emergence)의 원리에 대한 언급.

[5]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322)

"비행이 중력으로부터 세 번째 차원으로의 탈출인 것처럼, 과학은 일상생활의 평범함으로부터 나선을 그리면서 상상력이 점점 희박해지는 높이까지 탈출하는 것이다."(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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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모든 순간의 과학 - 내 방에서 우주 끝까지, 세상의 온갖 법칙과 현상을 찾아서
브라이언 크레그.애덤 댄트 지음, 이종필 옮김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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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학 속에 산다

- 그림으로 보는 모든 순간의 과학


브라이언 클레그(글), 애덤 댄트(그림)

이종필 옮김 [김영사] (2022)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P. Feynman)은 자신의 강의록을 담은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에서 별의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했다. 시인들은 으레 과학자들이 별은 단순히 기체 원자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음을 이야기하며 별의 아름다움을 앗아가 버린다고 말이다. 하지만 과학자인 자신 역시 사막의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여기에 더하여 별들의 패턴과 형성 원리, 존재의 이유를 더 숙고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취지로 언급했다. 그러니 과학자들은 자연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제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연의 심오한 아름다움을 더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이들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도 어쩌면 편견일 뿐이다.


 

현대인은 방대한 인터넷의 바다에서 무한에 가까운 정보를 검색하고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무제한에 가까운 방대한 사전을 곁에 지니고 다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 꽤나 특이한 종류의 과학 사전이 있다. 빽빽하게 그림이 채워진 페이지를 지나면 그림의 각 부분에 관계된 과학 현상이나 과학 법칙이 간단히 소개되어 있는 사전이다. ‘내 방에서 우주 끝까지, 세상의 온갖 법칙과 현상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달린 그림으로 보는 모든 순간의 과학(이후 모든 순간의 과학)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 저술가 브라이언 클레그와 수차례 국제적인 상을 수상하고 MoMA(뉴욕현대미술관)나 리옹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 경력을 갖고 있는 예술가 애덤 댄트가 힘을 모아 만든 과학 사전이다. 저자들은 이 방대한 인터넷 기술의 시대에 왜 이러한 형태의 과학 사전을 만들었을까? 앞에서 언급한 파인만의 말에서 한 가지 실마리를 떠올리자면, 그건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 인식을 확장할 수 있을 때 우리 주변의 모든 대상에 대한 아름다움을 보다 깊게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우선 이 책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자. ‘모든 순간의 과학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부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과학에서 시작하여 대우주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자연 현상과 과학법칙을 책 속의 그림과 더불어 간단히 설명해놓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을 정리해보자면, 우선 각 장의 첫 페이지에 배치되어 있는 전면 그림을 찬찬히,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해본다. 예를 들어 4장 과학관 편을 보자. 그림의 한 가운데에 물리학자 파인만의 초상이 신전 모양의 구조물 지붕에 올라가 있다. 각 장마다 주요 과학자 한 명씩 등장하는데, 4장을 대표하는 과학자가 바로 파인만이었다. 책의 부록을 참고하면 파인만에 대해 좀 더 자세한 프로필이 나와 있다. 프로필 설명을 보면 그의 주요 업적으로 빛과 물질에 대한 과학인 양자전기역학(QED)를 개발한 공로를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문에는 파인만이 개발한 파인만 도형그림과 함께 양자전기역학에 대한 표제어를 간단히 설명해놓았다(45). 물론 이 설명만으로 관련 표제어의 내용에 대해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학생 혹은 일반 독자들은 이 표제어를 출발점으로 삼아 시작해볼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독자들에게 분명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책이다. (아래 사진 참조)


 




여러 장면이 빼곡하게 들어찬 그림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들어간 경우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액자 속에서 호랑이가 나오는 장면을 찾아보자(40-41). 이 그림은 어떤 과학 현상 혹은 법칙을 염두에 두고 그려졌을까? 알쏭달쏭하다. 책장을 넘기면 전체 그림 가운데 특정 부분을 가져와 설명해놓은 부분이 나온다(44). 내가 궁금해 했던 이 그림은 바로 레이저로 3차원 영상을 만드는 홀로그램이라는 표제어를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또 이 책이 과학사전인만큼 앞에서부터 끝까지 책을 읽어나갈 필요는 없겠다. 무엇보다 이 책의 묘미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이나 장면이 과학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있다. 아울러 추가적인 공부에 대한 확장 가능성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책을 즐기는 법 하나는 각 장의 처음에 등장하는 그림들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어떤 과학이 관련되어 있을지 상상해보는 일에서 지적 탐험을 시작해볼 수 있다.


 

반면 모든 순간의 과학을 통해 어떤 과학 법칙이나 현상에 대해 곧바로 이해하기에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아쉬움은 있다. 각 개념에 대해 상당히 간결하고 핵심적인 설명만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목적과 용도는 오히려 분명하다. 일상에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사례들을 과학과 연관 짓고, 이를 발견하여 새로운 앎으로 나아가도록 해주는 마중물이 되는 일이다. 본문을 볼 때 여기에 소개된 번역 용어들의 원어도 함께 표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책 뒤의 색인을 보니 우리말 용어를 기준으로 분류되어 있고 여기에 영어로 된 용어가 함께 제시되어 있었다. 따라서 해당 표제어를 출발점삼아 관련 사항을 더 찾아보려고 할 때 검색의 실마리로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정리하면, 이 책은 이 한 권으로 과학에 대해 지식을 습득하도록 의도된 책이 아니다. 반면 독자의 호기심과 지식의 확장을 준비하는 여정에 출발점이 되어주는 책이라고 그 성격을 규정해볼 수 있다.


 

이 책은 여러 과학 영역을 넘나들며 주요 핵심 용어들을 담고 있다. 각 과학 영역은 인간이 정한 기준에 따라 나눈 것일 뿐이다. 자연은 그 스스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을 나누지 않는다. 또 우리의 소소한 일상 한 가운데에 과학이 존재한다. 과학은 어느 순간, 어느 장소든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천체 물리학자이자 작가였던 칼 세이건은 자신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인간의 이성, 그 중에서도 과학이 이루어낸 성취를 집대성했다. 인류의 조상이 자연과 우주와 만난 어느 시점에서 과학은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주술에서 마술로, 그리고 마술이 다시 과학으로 말이다. 모든 순간의 과학은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지닌 독자가 세계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던 과정을 직관적으로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림의 어느 부분에서 호기심이 일었다면 해당 그림에 대한 항목을 찾아보고 궁금증을 풀어갈 실마리를 얻는 것이다. 그림으로 가득한 이 과학책이 내게 준 메시지가 하나 있다면 그건 우리가 과학 속에 살고 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깨달음이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때, 대상에 대한 아름다움을 감수하는 능력도 더욱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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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레이첼 카슨 외 지음, 스튜어트 케스텐바움 엮음, 민승남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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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품은 관계성을 바라보기

-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2022)


(원제: Visualizing Nature)

레이철 카슨 외 19명 지음 | 민승남 옮김 | [작가정신]


 


우리는 자연이라는 용어에 친숙하다. 익숙해서 잘 알고 있다고 믿기 쉽다. 하지만 자연이 뭐야?’ 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에는 여러 사상가, 지식인들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그 중 레이철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를 보고 잠시 읽기를 멈추었다. 레이철 카슨이 가장 좋아하는 자연의 정의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25)라는 표현이었는데, 이제 행성 지구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자연은 명료하게 정의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무언가로 다가온다. 실체가 있다고 믿어지지만 또한 어떤 대상을 명확히 지시하기 어려운 무엇. 영어 단어 nature가 품고 있는 여러 의미처럼, 존재물의 성질이나 본성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닐봉지나 통조림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 마리아나 해구에서 발견되고, 미세플라스틱이나 환경 호르몬이 알라스카의 이누이트 족이나 북극곰 체내에 가득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선뜻 레이철 카슨이 말하는 자연의 정의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는 DDT와 같은 살충제의 폐해를 경고하는데 큰 역할을 한 장본인이었지만, 태평양 한 가운데에 한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는 거대한 쓰레기섬 GPGP와 같은 풍경이나 미세플라스틱의 폐해를 알기 전에 사망했을 터이므로 이 자연의 정의를 고수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반면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를 다시 뜯어보면 자연이란 실체와 인간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이 바탕이 된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정확한 용어를 찾긴 어렵겠지만, 카슨의 자연은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미개척지로서의 야생(wilderness)’과 더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혹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행성 지구 위의 장소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카슨의 자연과 달리 이제 우리는 자연의 다른 정의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에서 처음 만난 글에서 잠시 머뭇거린 이유는 내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이 물음을 갖고 나는 계속 여러 저자들의 에세이를 읽어나가게 되었다.

 


이 책은 시인이나 작가, 저널리스트, 조경학자, 생물학자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저자들이 자연을 주제로 쓴 짧은 에세이를 담고 있다. 숲이나 늪지에서, 바다 속에서, 나무를 쓰다듬으며 바라보는 자연에 대한 단상이 모여 있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이들의 글이지만 이들에게서 결이 맞는느낌을 받는다면 그건 이들이 모두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말을 걸 때, 이들은 이에 귀를 기울이고 여기에 화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엮은이의 말에 따르면, 이 저자들은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에 담겨 있는 주제들을 숙고하고, 오늘날 마주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머슨은 당대에 마거릿 풀러,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소통하며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사상가다. 따라서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의 저자들은 한편으로 에머슨의 후배 사상가라고 이해해도 되겠다.


 

레이철 카슨이 언급한 자연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다른 저자들의 글을 읽어보니 자연이란 어쩌면 관계성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자연이란 관계성을 품은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싶다. 편집자로 오래 일했던 아키코 부시는 기억이라는 지리라는 제목의 글에서 장소와 상호작용하는 존재(인간)의 기억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연을 파악하려는 활동으로서 디지털 지도를 만드는 우리의 모습과 시간을 두고 기억에 새겨진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반세기 전에는 목초지였던 숲을, 지난 6월까지는 연못이었던 초원을, 한때 단풍나무가 서있었던 움푹 팬 땅을 생각한다. 우리 인간에겐 사물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는 습성이 뿌리박혀 있다.”(112)


 

저자는 불과 한 인간의 일생이 지나는 시간 동안 변해버린 숲의 모습, 그리고 몇 개월 사이에 인간의 영향으로 변해버린 땅, 장소를 바라보고 성찰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하지만 이제는 사라져버린 자연의 장소는 바로 인간과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가 아닌가. 만약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에 따르면 인간의 활동으로 변해버린 장소는 자연의 지위를 잃은 것일까. 인간이 행성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긴 하지만,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다. 그러므로 인간에 의해 변해버린 지구의 모습,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장소, 그리고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된 공간 역시 자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관계성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보면 어떤 환경이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 행성 지구가 갖추게 된 모습은 결국 또 하나의 자연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제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아마존 밀림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문명 속에서 살게 된 인간에게 도시는 또 하나의 자연이 된 셈이 아닌가. 관계성을 염두에 둘 때, 콘크리트에 덮인 도시가 현대인들에게는 새로운 자연이 되어버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인간과 도시의 새로운 공진화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성의 관점에서 읽다보니, 진 바우어의 글에도 주목해본다. 그는 여러 책의 저자이면서 먹거리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글의 서두에서 그는 거리의 자동차 범퍼 스티커 문구 하나를 인용한다. “인간은 지상의 유일한 종이 아니다.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다.”(163) 바우어에 따르면, 이 말은 인간의 오만함, 인간이 자연에 끼친 해악을 암시하고 강조한다. 인간으로서의 우월감과 특권의식을 경고하면서, 특히 먹거리에 관심을 두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전한다. 육식 보단 채식을 함으로써 건강과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연을 존중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인간은 지구에서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가 언급하는 인류세의 특징 중 인상적인 표현은 인간이 닭 뼈가 수북하게 박힌 지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악영향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고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먹거리를 변화시킴으로써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 시점에서 일흔일곱이 된 저자 월리스 코프먼의 에세이가 기억난다. 삶은 삶으로 이어진다는 글에서 그는 딸에게 자신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바람을 전한다.


 

일흔일곱 해를 산 지금, 나의 마지막 소망은 소박한 관에 담겨 땅에 묻히고 내 위에서 검은 호두나 도토리가 아래로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하는 것인데, 딸이 그 소망을 이루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부활하여 세상의 영주자가 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상태일 것이다.”(174)


 

월리스 코프먼의 이 바람 역시 생명이 또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자연 속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성찰이 아닌가. 나 역시 나의 마지막 모습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땅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학교에서 자연에 대해서 배우지 않아도 자연과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혹은 태어나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저자들의 글들을 보면 각자 자신의 배경에 따라 자연과의 관계를 숙고하고 자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원제는 visualizing nature'. 글로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했던 시도가 아니었을까싶다. 각자가 경험한 자연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독자에서 제시하는 활동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중 누구도 자연이란 무엇인가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명의 저자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이들 모두 자연이란 실체에 대해 경이로움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에세이들은 현대인이 자연과의 대화가 중단되거나 자연과의 연결고리를 잃은 모습을 일깨워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자연을 보여주려는행위는 인간이 자연과의 대화를 다시 이어가고자 하는 시도이면서 자연과의 우주적 합일을 바라는 주술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길은 자연에 대한 경이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에 있던 한 문장으로 마무리해보려 한다. 이 문장이 이 책의 정신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숭배의 교훈을 배우는 일이다.”(13)

 




[책 속으로]

[1]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숭배의 교훈을 배우는 이다."(13)
-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 제7장 ‘정신‘에서 재인용한 문장

[2] "이 책에는 2차림에서, 사막에서, 늪지에서, 산호초에서, 수백 년을 사는 나무들에서, 저지Jersey해안에 부서지는 파도에서 온 소식들이 담겨 있다. 그건 아마도 아직 세상에 조화로움이 존재한다는 소식일 것이다."(19)

[3] "제가 좋아하는 자연에 관한 정의는, ‘자연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입니다."(25)
- 레이철 카슨, 「자연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에서 재인용한 ‘자연’의 정의.

[4] "브리슬콘소나무는 가능성의 가장자리에서 산다. 그 뒤틀린 나무들은 경게에 선 보초들이다."(63)

"브리슬콘소나무는 ‘긴 시간’을 산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틀린 말인지도 모른다. 이 나무들은 긴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을 산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만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66)
- 데이비스 해스컬, 「로키산의 노장들, 브리스론소나무를 찾아서」에서 인용.

[5] "나는 솔방울이나 벌보다 위대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와 운명 사이의 문제다. 나를 필요로 하지도 보살피지도 않으면서 내가 이룰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환영해주는 세계에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의 완벽한 본보기다."(73)
- 후안 마이클 포터 2세, 「자연의 무심함 속에 사는 영광」에서 인용.

[6] "나는 반세기 전에는 목초지였던 숲을, 지난 6월까지는 연못이었던 초원을, 한때 단풍나무가 서 있었던 움푹 팬 땅을 생각한다. 우리 인간에겐 사물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는 습성이 뿌리박혀 있다."(112)
- 아키코 부시, 「기억이라는 지리」에서 인용.

[7] "수중 세계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고요하리라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요란하다. 산호들이 펑펑, 비늘돔이 오도독오도독 소리를 낸다."(131)

"나는 단편적으로만 체험할 수 있는 이 림보에 계속 머물 수 있는 암초상어가 부럽다."(133)
- 폴 베넷, 「산호초가 부르는 더 깊은 곳으로, 프리다이빙!」에서 인용.

[8] "자동차 범퍼 스티커 문구 중엔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은 지상의 유일한 종이 아니다.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다.’ 이 재치 있는 말은 우리 종의 오만이 다른 동물들과 자연,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심각한 해악을 끼쳐왔는지를 강조한다."(163)

"이제 과학자들은 우리가 인류세를 살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지질시대는 인간의 지배, 멸종, 플라스틱과 닭 뼈가 박힌 화석 기록이라는 특징을 지니게 될 것이다."(164)
- 진 바우어, 「우리는 본래 농업 인류였다」에서 인용.

[9] "나의 묘비명:
여기 잠든 남자/ 그의 삶은 길었고/ 의지는 약했고/ 모은 튼튼했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망은/ 생각을 키우고 말(언)을 수확하며/
세상의 경이를 키우는 것./ 이제 그는 위에 있는 나무를 키운다."(174)
- 월리스 코프먼, 「삶은 삶으로 이어진다」에서 언급한 자신의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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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7-11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건 좀 딴 얘긴데, 초란공님의 글은 글자가 커서 좋습니다.ㅋㅋ

초란공 2022-07-11 20:3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이젠 글자가 커야 답답하지 않더라고요 ㅋㅋ^^;;

페크pek0501 2022-07-23 1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연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 자연이 개발이다, 뭐다 해서 그 영역이 좁아지고 있는 게 문제예요. 당장의 이익에만 급급해서 말이죠. ^^
 
퀀텀 라이프 - 빈민가의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하킴 올루세이.조슈아 호위츠 지음, 지웅배 옮김 / 까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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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씨앗을 틔우고 돌보는 일의 위대함

- 퀀텀 라이프》(2022)

 



1970년대 당시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마치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는 짐승과 같았다.”(14)


 

나는 거의 엄마의 매버릭 안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다.”(23)


 

여기에서 엄마의 매버릭이란 70년대 미국에서 자동차 회사 포드(Ford)에서 출시했던 소형 승용차를 말한다. 위의 인용문은 퀀텀 라이프의 저자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에서 가져온 것이다. 안전한 집 없이 빈민가를 전전하던 어머니와 저자의 어린 시절에 흑인이라는 변수가 더해져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가 내린 것 같이 여겨졌다. 분명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삶이다. 학교 친구들과 작별 인사는커녕 엄마의 낡아빠진 매버릭을 타고 매년 다른 학교를 다녀야 했던 생활을 단지 상상해 볼 뿐이다.


 

흑인 저자들의 책을 읽을 때마다 발견하곤 하는 사실은 이들이 성장하며 각자의 세계가 커짐에 따라 어느 시기에 반드시 인종차별이라는 거대한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저자가 어린 시절에 전전하던 지역은 뉴올리언스 주나 미시시피 주의 시골이었다. 이곳은 모든 것이 느리게 변하는 세계였다. 빈민가의 흑인 학생들은 폭력과 마약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운명에 어떤 변화와 개선의 가능성 보다는, 무언가에 단단히 고정되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10대 학생들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이런 상황이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하고 있었다. 퀀텀 라이프에는 저자가 편견과 차별,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에서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가 거대한 벽과 마주하여 어떻게 이를 깨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개인의 성공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어떻게 이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으로 향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미국에서 빈민가의 흑인 소년이라는 조건은 마치 정해진 도식과도 같은 삶의 굴레를 예고하는 듯했다. 많은 10대의 흑인 학생들은 마약에 빠지고 학교를 중퇴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후에도 끝없이 나락으로만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들은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빈민의 경계 안에서 맴돌게 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에 기여하고 이끌 수 있는 인물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영에 가깝다. 자주 쓰는 표현처럼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결코 아니었던 것. 10대 시절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한 인물의 이야기가 언론에 소개된 사례는 이 과정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를 반증한다. 하지만 그의 삶을 단순히 아주 드문 가능성에서 벗어나 기적처럼 발생한 일탈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암울한 환경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을까.

 



 

책과 사람 - 희망이란 씨앗


 

책을 읽으며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저자의 높은 지능이나 높은 성적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가 책을 많이 읽었다는 점이었다. 단지 많이읽은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책마다 닥치는 대로읽었던 것이다. 책이 귀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초등학교 시절 그가 알렉스 해일리의 뿌리 Roots를 발견하고 독파했던 이야기가 인상 깊다. 내가 뿌리의 마지막 부분에서 느꼈던 전율을 저자도 틀림없이 느꼈을 테다. 그의 엄마는 자유로웠던 크리올 출신(흑백 혼혈)이었지만, 아빠는 뿌리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쿤타 킨테처럼 서아프리카에서 끌려와 노예가 되었던 가문의 후예였다. 백인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 이름마저 바꾸도록 강요받았던 쿤타 킨테의 삶이 책을 통해 저자와 연결되었다. 빈민가의 한 어린이에게 책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여주었으며, 이 세계를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책을 구하기 어려웠던 저자는 우연히 백과사전까지 읽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마주쳤던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에 대한 설명은 분명히 그의 삶을 크게 흔들어 놓았던 모양이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이제 내가 괴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대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암호를 주고받는 어떤 비밀단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았다.”(87)


 

한 독자가 책읽기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이와 연결되는 경험을 말한다. 그 중에서 저자가 백과사전에 나온 상대성이론 부분을 읽고 거리의 갱들을 상대로 실험을 하는 장면이 기발하고 재미있다.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된 흥분과 기쁨을 엿볼 수 있었다. 비록 집 밖의 거리는 안전한 적이 없었고, 남들에게는 나쁜 놈처럼 행동해야 했지만 이미 희망의 씨앗이 그의 안에 심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씨앗이 싹을 틔우는데 씨앗을 심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싹이 트고 자라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실내에서 식물을 키워본 이들이라면 규칙적으로 물만 잘 준다고 성장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알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초보 재배가들은 식물에 물을 너무 많이 주어 식물이 썩게 만들기도 한다. 식물에는 햇빛뿐만 아니라 통풍도 매우 중요한 것처럼, 하나의 씨앗이 온전한 식물로 성장하려면 여러 조건이 적절히 잘 갖추어져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빈민가 흑인 아이의 곁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폭력과 마약에 노출되어 있고 갱스터 흉내를 내야 했지만, 제자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지해주었던 학교 선생님들이 있었다. 저자에게 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던 교장 선생과 크로스 선생님, 과학전람회에 나갈 수 있게 값비싼 컴퓨터마저 집으로 가져가게 허락했던 과학교사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 뿐인가. 핵엔지니어를 제안 받아 입대했던 해군에서는 자신을 열정적으로 격려해주고 지지해주었던 게이지 상사도 있었다. 대학원시절에는 양자역학을 11로 지도해주었던 틸 박사나 박사학위 자격시험을 준비할 때 도와주었던 다비드 같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저자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던 인물은 대학원 시절의 지도교수 아서였다. 아서 역시 흑인이었다. 그는 유색인들의 능력이 뛰어나도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적 능력에 의심을 제기하는 백인들의 편견 및 인종차별적인 유산과 평생 싸웠던 사람이었다. 저자에게 아서는 격려와 질책으로 큰 스승이 되어주었고 나아가 학교 밖의 더 큰 세계와 연결해주었던 스승이었다.


 

유색인이었던 저자는 자신의 길을 찾게 되기까지 마약중독과 유색인들에 대한 편견, 제도적인 인종차별이라는 벽과 씨름해야했다. 비록 암울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는 결국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여기에 많은 이들이 곁에서 그가 자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었다. 재능이 있는 한 사람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데에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주목해볼만하다. 물론 저자의 삶은 희망이라는 씨앗이 있다면 아주 미약한 가능성이라도 싹을 틔우고 자라날 수 있으며, 여기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분명히 알려 준다. 그건 바로 당사자에게 주어지는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 돌봄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양자역학의 한 현상과 비교했다. 하나의 입자가 아주 드문 가능성의 벽이라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터널링 현상에 빗댄 것이다. “나는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분명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5)라고 말한다. 여기에 양자역학의 원리처럼 우리의 운명이 결코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책의 제목을 통해서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바로 자신이 그 증거라고 말이다. 저자의 삶은 영화나 소설만큼이나 극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만 여기에는 분명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들(책과 사람들)이 있었음에 다시 주목해본다. 이 책에는 한 인물이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방벽을 극복한 성공스토리가 담겨있다. 제임스 플러머 주니어라는 이름을 하킴 올루세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자기 결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성공스토리는 한 사람이 온전히 자신의 몫을 해낼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해준 주변의 모든 이들이 함께 이루어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1] "나는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분명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5)

"나 자신이 바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삶은 이 양자역학의 원리에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15)

[2] "집 안의 가전제품들은 마치 누군가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면서 두고 간 쿠키 점시와도 같았다. 나는 그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을 너무나 알고 싶었다."(36)

[3] "《뿌리》를 다 읽자마자 당장 다른 사람들과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책을 실제로 다 읽은 사람을 주변에서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86)

[4] "그렇게 힘든 나날 동안, 학교 선생님들만이 나의 유일한 생명줄이었다."(131)

[5] "그(해군의 게이지 상사)는 마치 황금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대했다. 또 그는 나의 ‘고결한 인품’에 대해서 끊임없이 칭찬했다."(194)

[6] "나는 너무 힘들고 너무 중요한 시기를 너무 많이 흘려 보내고 있었다. 나는 마냥 중독자가 되거나 살해될지도 모르는 삶을 살고 있었다. (...) 그러나 날이 갈수록 나와 거래하던 마약 중독자의 눈동자에서, 그들과 똑같아지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252)

[7] "나는 난생처음으로 앞으로 어떤 과학자가 되고 싶은지를 고민했다."(270)

"나는 안전하다고, 그리고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꼈다."(271)

[8] "나는 나의 의지와 자기 결정의 의미로,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406)

"유년기를 극복하기까지는 정말 긴 시간이 걸렸다. 나는 서른 살이 되어서야 다른 사람들을 위협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들에게도 위협을 가하지 않을 만큼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 그때부터 나는 미래가 나의 손에 달린 삶을 살게 되었다."(406)

[9] "그들(아빠와 지도교수 아서)은 내가 그들의 길을 따르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나만의 여정을 마쳐야 했다. (...) 이제 미래로 향하는 길을 나 스스로 구축할 때가 되었다."(414)

[10] "나는 과학분야에서 나만의 능력을 발견하고자 했고, 사회가 나에게 계속 투영했던 부정적인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멈추고 나서야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연구자가 될 수 있었다."(415)

[11] "아이들이 꿈을 구는 한 한계는 없다. 수천억조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우리 우주는 매우 광활하다. 그러나 무한하지는 않다. 유한하다. 내가 관측한 것 중에 무한에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희망이다."(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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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1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11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2-07-11 1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재밌을 거 같아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역시 사람을 키우는 건 책과 사람들이군요!!!

[3] 글 너무 공감가네요.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그 경험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데 아무도 없는 현실ㅠㅠ 그래서 다들 온라인으로 소통하나봐요.

˝내가 관측한 것 중에 무한에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희망이다.˝ 멋진 글입니다!!!

초란공 2022-07-11 14:30   좋아요 2 | URL
마치 영화처럼 이야기가 전개되었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일까 하면서 말이에요. 그래도 아무 것도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책 재미있습니다!

scott 2022-08-10 16: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추카!
이 책 작가님이 배우급이네요 !
이 책 찜 ^^

초란공 2022-08-14 21:27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시원한 연휴 보내세요!!

mini74 2022-08-10 16: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디 초란공님 *^^*

초란공 2022-08-14 21:57   좋아요 1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mini74님도 당선 축하드려요~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8-10 16: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우리가 사는 세상엔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게 감동이예요!

초란공 2022-08-14 21:05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며칠 간 로그인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제야 들어와서 서재글을 보고 있어요. ^^;;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인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2-08-10 17: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역시 멋진 리뷰는 당선되는거 같아요 ^^

초란공 2022-08-14 21:40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감사해요~ 지난 달에는 몇 편밖에 쓰지 못했는데, 뽑아주신것만 해도 감지덕지죠! ㅋ

이하라 2022-08-10 22: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초란공 2022-08-14 21:29   좋아요 3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이하라님도 축하드리구요! 남은 연휴 시원하게!!

thkang1001 2022-08-11 13: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초란공 2022-08-14 21:35   좋아요 2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내일 부터 또 비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건강한 연휴 보내시길요!

고양이라디오 2022-08-12 04: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당선 축하드려요^^
덕분에 책 재밌게 읽었습니다ㅎ

초란공 2022-08-14 21:47   좋아요 3 | URL
고양이라디오님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보람이 있네요^^ ㅋㅋ 고양이라디오님의 ‘스포일러‘... 계속 기다립니다.^^

thkang1001 2022-08-16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시간의 강물에 소용돌이가 생길 때


-  미치오 가쿠의단 하나의 방정식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집에서 전자석을 처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대못을 커다란 펜치로 잡고 가스레인지의 불에 한참을 달군 다음 천천히 조심스럽게 식혔다. 지금의 부모들이 알면 불장난 한다고 경악을 했을 텐데, 그 때는 부모님이 모두 일하시는 동안 집에서 놀 거리를 이렇게 혼자 찾았던 모양이다. 이후 식은 못을 기름종이와 같은 얇은 종이로 한 번 싼 다음 구리선을 촘촘히 감는다. 못대가리를 기역자로 구부린 함석판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 나무판에 고정시킨 후 배터리를 연결하면 전자석이 완성 된다. 여기에 스위치를 하나 달면 일종의 모스 송신기처럼 전원을 연결할 때마다 전자석이 된 못대가리에 함석판이 들러붙었다. 선행학습이란 것을 해본 적 없는 나에게는 집에서 했던 이런 놀이가 사물의 이치를 경험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런데 내가 하던 이런 과학 체험활동은 일본계 미국 물리학자 미치오 가쿠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동네 전파상과 고물상에서 중고 부품을 수집하여 소형 입자가속기 베타트론을 혼자서 만들었다고 한다. 베타트론은 전자를 가속시키는 장치다. 따라서 전자를 만들어 쏠 수 있는 전자총(electron gun)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전자총이 장착되어 있던 장치는 바로 브라운관식 텔레비전이었다. 여기에 전자총에서 방출 된 전자를 가속시키기 위해 전기장을 걸어둘 고전압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가쿠와 같은 과학자들의 어린 시절을 보면 거의 틀림없이 이렇게 과학 실험을 직접 하며 시행착오를 거쳤던 선체험이 있다. 요즘 아이들은 아쉽지만 이런 기회를 수많은 학원을 다니느라 박탈당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자연과 사물에 대한 감각이 상당히 둔화되어 있는 것이다. 어렵고 기나긴 수련을 거쳐야하는 과학의 길에는 미치오 가쿠와 같은 괴짜가 많이 필요한 분야다.


단 하나의 방정식의 저자 미치오 가쿠는 아인슈타인 키드이기도 하다. 그가 1947년생이므로 아인슈타인이 사망했을 때인 1955년에 8살이었을 것이다. 8살이면 당대의 아인슈타인이 과학계의 세계적인 거물이었다는 정도도 알았을 것이다. 어린 가쿠는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완성하지 못했던 통일장 이론을 자신이 완성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만물의 이치를 설명할 수 있는 통일장 이론은 결국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힘(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을 하나로 통일하는 작업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물리학에서 우주의 시작과 끝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방정식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이처럼 큰 뜻을 세웠던 어린 과학자는 훗날 끈이론이라는 분야를 일구어낸 인물이 되었다. 국내에 소개된 과학자들 중에 (내가 현재까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끈이론의 선구자 혹은 지지자 계보에는 미치오 가쿠와 레너드 서스킨드(블랙홀 전쟁, 우주의 풍경, 물리의 정석 등 저술), 그리고 브라이언 그린(엔드 오브 타임, 엘리건트 유니버스,우주의 구조 등 저술)이 포함된다. 반면 끈이론의 지지자들의 대척점에는 고리양자중력이론의 선구자 카를로 로벨리(모든 순간의 물리학,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등 저술)가 있다. 이들은 모두 우주 혹은 존재의 근본 원리를 설명하고, 그 시작과 끝을 설명하고자 시도한다. 물론 지나친 일반화가 되겠지만, 이 구도만 보면 우주의 시작과 끝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에 미국 학계와 유럽 학계의 경쟁구도가 이루어져 있는 모양새다.


 

저자가 소개하는 바에 따르면, 인간의 먼 조상은 이미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한 상상을 펼쳐보곤 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우주가 나일강에 떠 있는 우주 알(cosmic egg)’에서 시작되었다고 믿었다. 어쩌면 이런 믿음이 인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어 세계 여러 민족의 시작을 알리는 신화가 되었을 것 같다. 새끼를 낳는 사례보다, 알에서 생명이 나올 때 감각되는 탄생의 장면이 더욱 극적이고 생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현대에 이르면 우주의 시작은 빅뱅으로 설명된다.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무에서 일어난 양자요동이라고 말한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빅뱅 직전의 우주는 불확정성원리에 따라 에너지가 0인 상태는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우주는 마치 물이 끊기 직전에 공기방울이 표면에 올라오며 일으키는 표면의 요동과 같은 상태에 있다. 여기에 우연의 요소가 가미되어 방울 하나가 급격히 계속 팽창하고, 이것이 결국 우주로 자라난다는 것이다.


 

시작이 있다면 모든 존재에 최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인간의 조상도 다르지 않았다. 고대 바이킹족은 세상의 최후를 라그나로크(Ragnarok)’, 신들의 황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영원히 산다고 믿었던 신들에게도 마지막이 오고야 말 것이라고 인식했던 것일까. 라그나로크라는 표현은 나치 독일이 가져와 사용하기도 했다. 히틀러가 자신들의 마지막을 지칭할 때 썼던 표현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맞이할 수 있는 종말을 빅프리즈(Big Freeze), 빅크런치(Big Crunch), 빅립(Big Rip) 세 가지로 정리한다. 현대 물리학계는 우주가 점점 더 빠르게 팽창한다고 본다. 하지만 우주에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존재와 역할 정도에 따라 여러 가능성을 예측한다. 현재의 우주가 팽창을 멈추고 얼어붙듯 멈추게 되거나(빅프리즈), 다시 수축하여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며 으깨지거나(빅크런치), 아니면 계속 팽창하여 파열하듯 종말을 맞이할 것(빅립)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모든 가능성들은 현재 우주에 존재한다고 알려진 암흑 물질(우주의 총 에너지 중 26% 차지)과 암흑 에너지(우주의 총 에너지 중 68% 차지)에 대한 이해의 정도에 달려 있다고 한다. 우리가 여태껏 살아오고 관측하며 이해한 일반 물질의 질량에너지는 우주에 존재하는 전체 양의 5%에 불과할 뿐이다.


 

과학의 중요한 특징 중에는 검증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론 물리학자인 저자가 이야기하는 우주의 시작과 끝, 끈이론의 전제가 되는 우주의 10차원 혹은 11차원에 대한 이야기들을 증명할 길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학창시절에 아인슈타인이 이루지 못한 과업, 곧 만물의 이론을 정립하려는 포부를 갖고 평생 연구했다. 저자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태초의 우주를 기술하는 방정식은 하나뿐이라고 단언한다. 방정식이 낳는 해, 그러니까 우주의 존재 양식은 무수히 많을 수 있지만 말이다. 아인슈타인도 하나의 방정식이 주는 심미적인 집착이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만물의 이론은 아름다운 수학 이론을 넘어 최후의 순간에 인류의 유일한 생존수단이 될 것이다”(261)라고 언급한다. ‘최후의 순간이 온다면, 인류가 손을 쓸 도리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저자는 물리학자로서 심미적인 이유 너머를 통찰한다.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해 말하고, 시간과 공간의 정체에 대해 탐구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나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다. 과연 시간 여행은 가능할까? 이를 테면 현재에서 과거로 갈 수 있을까하는 문제다. 역시 직접적인 검증은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이지만 20세기 후반에 일군의 물리학자들은 시간 여행이 이론적으로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앞에서 우주의 시작인 빅뱅이 생겨난 원인이 무에서 일어난 양자요동이라고 한 것과 비슷한 논리다. ‘시간의 강물에 소용돌이가 생길 때과거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이 시간의 강물에 생기는 소용돌이는 순간순간 열리며 과거로 갈 수 있는 통로인 셈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모두 저자가 만물의 이론을 설명하는 하나의 방정식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물론 이 방정식을 찾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물리학 법칙에 근거하여 우주의 시작과 끝을 생각하는 연구자들은 결국 철학자가 되는 모양이다. 저자 역시 자신을 신의 존재에 관한한 불가지론자라고 밝힌다. 사변적인 이유만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과학자들이 우주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내면 우주에 대한 예측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궁금해진다. 과거로 갈 수 있는 시간의 소용돌이의 존재 역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다.


 

끈이론의 선구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물리학이 나아가는 방향을 대중 독자에게 친숙한 언어로 이야기해 주었다. 미치오 가쿠의 책은 이번에 처음 접해보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국내에 잘 알려진 브라이언 그린의 책은 때론 설명이 너무 자상하여장황한 인상을 줄 때가 있다. 반면 가쿠의 책은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접근성이 좋은 것 같다. 또 설명이 간결하지만 때론 너무 함축적인 경우가 있어 설명의 비약이 느껴지기도 하는 카를로 로벨리의 책보다는 구체적이고 설명이 매끄럽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은 끈이론의 선구자가 평생 추구해온 자신의 학문적인 길을 정리하고 독자에게 자상하게 안내하는 지도 같은 책이다.


 




[1]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면서 다른 어떤 것보다 흥미로운 문제는 자연에서 인간의 위치를 확립하고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다."(245)
- 이 표현에 있는 사고방식(‘인간의 위치 확립‘)은 해석에 따라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당대의 서양 지식인들이 갖고 있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2] "우주의 최종 방정식은 하나밖에 없다. 방정식의 해는 무수히 많을 수도 있지만, 방정식 자체는 단 하나뿐이다."(255)

[3] "에너지가 0인 상태는 불확정성이 없는 상태여서 불확정성원리에 위배된다."(256)

[4]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그 원인은 무에서 일어난 양자요동일 가능성이 높다. 무의 상태에서 입자-반입자 쌍이 수시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 이것이 바로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비결이다. 호킹은 이를 시공간 거품 spacetime foam이라고 불렀다."(256)

[5] "우주에서 우리의 존재 의미는 우리가 부여하는 것이다."(258)

[6] "만물의 이론은 아름다운 수학 이론을 넘어 최후의 순간에 인류의 유일한 생존수단이 될 것이다."(261)

[7] "만물의 이론은 결국 우주의 대칭을 통일하는 문제로 귀결되었다."(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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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10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 소개된 책 중에 두 권 읽었네요 ㅎㅎ 어려운데 왜 읽고싶어지는건지 ㅠㅠ ㅎㅎ 당선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 2022-06-10 09:5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과학 서평집도 읽으시는데 과학에 너무 진심 아니세요? ^^ㅎㅎ

새파랑 2022-06-10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물리는 어렵지만...이 어려운걸로 당선이라니~!! 초란공님 당선 축하드려요~!!

초란공 2022-06-27 21:25   좋아요 1 | URL
방문해주신지 2주가 넘어서 컴터로 로그인했어요. ㅋㅋ 새파랑 님도 당선 늦었지만ㅋㅋ 축하드려요. 습한 여름 건강하게!

이하라 2022-06-10 1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기쁘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초란공 2022-06-27 21:26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도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기쁜 주말 보내셨길요. 또 한 주 건강하게!

얄라알라 2022-06-14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자주 못 놀러와서 죄송해여~~

반가운 소식, 축하드리러 왔습니다!

초란공 2022-06-27 21:29   좋아요 1 | URL
얄라님 무슨 말씀을. ^^ 요새 제가 다른 분들 서재 방문도 잘 못해서 아쉽네요. 좀 더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길 바랄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