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가 있었다 - 사라지고 살아남고 살아가는 생명 이야기 푸릇푸릇 지식 1
이자벨 핀 지음, 전진만 옮김 / 시금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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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시각과 인간에 의한 과잉살육의 폐해를 모든 세대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 눈에 잘 보이는 큰 동물들뿐만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에게도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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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의 시간 - 길 잃은 물고기와 지구, 인간에 관하여
마크 쿨란스키 지음, 안기순 옮김 / 디플롯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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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는 인간의 운명을 알려주는 지표다

- 연어의 시간를 읽고

 


마크 쿨란스키(Mark Kurlansky) 지음 | 안기순 옮김 | [디플롯] | (2023)

 




연어의 조상은 약 1억 년 전, 공룡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인간의 조상은 현생 인류를 넘어 유인원까지 포함하더라도 200-300백만 년에 불과하다. 인류는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 공룡들을 본 적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까마득한 후배인 인간이 불과 몇 세기만에 선배인 연어의 생존마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환경 및 역사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해온 작가 마크 쿨란스키는 연어의 시간에서 민물과 바다를 오가는 대표적인 소하성 어류인 연어를 고찰하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준다.


 

현생 인류가 출현했을 때 이들은 자연의 두려움뿐만 아니라 풍요로움도 만끽했을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지식과 상상력으로 도달하기 힘든,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켈트족의 전설에 나오는 연어를 이야기해준 대목이 인상적이다. 켈트족에 따르면, 연어는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마다 더 많은 지식을 얻는다. 연어는 이미강과 바다를 모두 정복한 존재였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지식을 지니는 존재였다는 믿음이었다. 내게 이러한 믿음은 자연의 존재에 대한 신뢰와 경이, 존중이 담긴 상호관계성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모든 환경·생태 문제들은 인간의 그릇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이 오만해지면서 자연에 대한 경이감과 존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고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은 이제 자연이 내어주는 풍요로움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연어의 시간에서 저자는 유럽의 백인들로 대표되는 인간이 유럽 본토를 포함, 신대륙(특히 북아메리카 대륙)을 어떻게 유린하고 황폐하게 만들어갔는지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백인은 물고기를 식량과 거름으로 사용하다가 급기야 (강에) 댐을 세우고, 나중에는 빌레리카 운하를 건설하고, 로웰에 공장을 세우면서 물고기 이동(연어/섀드/에일와이프 등)에 종지부를 찍었다.”(139)


 

이 대목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39년 메리맥강에서 형과 함께 카누를 타면서 연어의 회유 경로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고 적은 기록이다. 이 기록만 보더라도 인간이 연어의 생존에 위협을 가한 시기는 적어도 200년은 족히 된 셈이다. 미국 역사에서 1848년은 세계사적인 시점이자 하나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바로 캘리포니아주에서 금광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 세계에서 약 30만 명이 사금을 찾아 이곳으로 몰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해는 연어에게 암울한 미래의 시작을 알리는 해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강에서 사금을 채취하고, 광산을 개발하면서 연어 서식지가 급속하게 파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새크라멘토강에서는 사금찾기가 시작된 지 5년이 지나자 연어 떼가 사라지기도 했다. 소로가 살던 시기에 그가 보았던 문제들은 어쩌면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가 안고 있는 보다 큰 문제는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행보에 머뭇거림 없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의 운명은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의 풍요로운 자연을 목격한 15세기 말 이후, 자연에서 나오는 산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유럽으로 가져가기 시작하면서 이미 암울한 전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북미 지역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연어 회유장소나 다름없던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템스강도 연어가 회유하던 곳이었으나 이곳에서 연어가 잡혔다는 기록은 1833년 이후 남아 있지 않다. 책에서 저자는 자기고백적인 태도로 다음과 같이 고찰한다.


 

영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산업 강대국이 되었고, 뉴잉글랜드는 영국에 버금갔다. 오염되고, 숲은 벌거벗고, 강에 유독물이 흐르고, 물고기는 죽었다. 하지만 중요한 목표는 달성했다. 유럽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과정을 되풀이할 작정이었다. 유럽인은 식민주의자들이었다. 심지어 반식민주의 미국인들도 제국주의 정복자들이었다.”(164)


 

자신이 속한 사회의 역사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성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점이 내가 발견한 이 책의 진가이기도 하다. 저자의 관점은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연어가 살아남지 못하면 지구도 생존할 희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 연어가 강과 호수, 바다 모두를 정복한존재이기에, 연어가 지구의 건강을 가늠하는 지표라고 하는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 연어를 살리고 되돌아오게 하려면 강을 깨끗하게 하면 되는 걸까?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다. 연어는 무엇보다 우거진 숲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은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야 한다. 저자가 연어와 강 그리고 숲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73)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 책은 연어의 경이로움에 관한 책이면서 인간과 연어의 관계에 관한 역사, 특히 인간에 의한 연어 수난사를 이야기한다. 인간이 연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연어를 바라보는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비판적인 안목으로 재검토한다는 점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그릇된 신념은 연어의 남획과 환경파괴로 인한 연어 개체수의 감소를 초래했다. 이러한 신념이 이제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마저 위협하고 있다. 인간은 종족의 생존이 시험대에 오를 때마다 지혜를 모아, 난국을 극복해왔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념도 이제는 다시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활동에 의해 야생 연어의 개체수가 감소했지만, 양어장을 구축하면 줄어든 개체수를 대체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기만이다. 뿐만 아니라 긴밀하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서로 의존하며 존재하는 생태계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기도 하다.


 

현재 연어의 개체수는 19세기 초반의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북반구에는 수많은 연어 어장이 있었다고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여파, 벌목과 관개 등의 개발활동과 산업 활동 등으로 숲과 강이 훼손되어 이제는 수많은 강에서 연어가 사라져버렸다. 러시아, 일본, 미국의 원주민이 식민주의 정치 세력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어업권을 박탈당하는 동안 연어도 고향을 잃어간 셈이다. 이 책은 연어를 통해 이들이 자연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생명체이며,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위협적이거나 자극적인 자료를 통해서가 아니라 단호하지만 차분히 우리가 선택하여 나아가야할 방향을 일러주는 책이다



[1]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연어가 살아남지 못하면 지구 또한 생존할 희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37)

[2] "연어는 북반구에만 서식하지만 늘 지구의 건강을 가늠하는 일종의 지표였다. (...) 연어를 통해 인간이 환경에 가한 폭력의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37)


[3] "어째서 연어는 이토록 많은 종으로 진화했을까? 끊임없이 적응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연어는 환경 변화에 맞춰 유전적 특성을 조정한다."(60)

"같은 종이면서 다른 강에서 태어난 두 연어의 DNA차이는 두 사람의 DNA 차이보다 훨씬 크다."(61)

"갈 곳을 잃고 표류하던 연어가 새로운 강에 들어가면 그곳에 적합한 특성을 지닌 새로운 종이 생겨난다."(62)

[4] "연어와 강 그리고 숲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73)

[5] "네덜란드는 남획뿐 아니라 수력발전 댐을 건설해 강을 오염시켰다. 네덜란드가 유럽 최대 어획량을 달성한지 100년이 지나자 라인강에는 연어가 귀해졌다."(119)

[6] "바다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풍부한 광산보다 낫다."(131)
- 뉴잉글랜드 정착을 추진했던 존 스미스 선장의 말.

[7] "벌목꾼, 소몰이꾼, 나라를 쥐고 흔들었던 석유업자를 비롯해 환경을 파괴하는 거칠고 용감한 남성을 미화한 이야기는 미국 문화에서 흔하다."(141)

[8] "16세기까지 (일본의) 아이누족은 연어를 낚으며 전통적인 삶을 고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낚시에 대한 권리와 접근성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1872년 아이누족의 소유지는 없다는 법이 공표되었다. 1899년 교묘하게 말을 꾸며 완곡하게 표현한 ‘홋카이도구 원주민 보호법’은 아이누족이 일본에 완전히 동화되어 비민족(nonpeople)이 되었으므로 땅에 대해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158)

[9] "영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산업 강대국이 되었고, 뉴잉글랜드는 영국에 버금갔다. 오염되고, 숲은 벌거벗고, 강에 유독물이 흐르고, 물고기는 죽었다. 하지만 중요한 목표는 달성했다. 유럽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과정을 되풀이할 작정이었다. 유럽인은 식민주의자들이었다. 심지어 반식민주의 미국인들도 제국주의 정복자들이었다."(164)

[10] "명확하고 단순하게 자연을 다루면 거의 틀림없이 실패한다. 자연법칙은 언뜻보면 단순하지만, 항상 결과를 추측하기조차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226)

[11] "양어장 운영 방향은 잘못됐다. 야생 물고기를 잃은 만큼 양어장 개체가 그 부족분을 항상 상쇄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258)

[12] "우리는 경제를 번영시킬 때 자연에 더 많은 손해를 가한다."(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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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의 상상력, 자유로움에 대하여

:파인먼 평전중에서





 

 


















올해 제임스 글릭의 작품들을 역주행해보기로 했는데, 

아직 <파인먼 평전>에서 머물러 있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 인상적인 문장들. 파인먼이 예술과 다르게 과학에서 과학자들의 창조성과 상상력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다.

 



파인먼은 과학적인 창조성이라는 것은 구속복 속의 상상력이라고 말했다.”(533)


 

혁신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자유롭게 떠올린 만족스러운 생각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리학 법칙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발상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알려진 자연의 법칙과 명백히 모순되는 대상을 우리가 진지하게 상상하도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물리학자가 떠올리는 상상력이란 꽤나 어려운 게임입니다.”(533)


 

파인먼이 말했다. ‘과학자들의 상상력은 소설에서처럼 거기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상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단지 이해하기 위해 생각을 가능한 한 최대로 펼치는 것입니다.’”(534)

 



현대 예술가들에게 참신함, 자유로움은 무엇을 의미할까. 비예술가의 입장에서 예술가들에게 요구 혹은 기대되는 자유로움, 참신함은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자유로움보다 훨씬 모호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자유로움과 참신함에는 파인먼이 구속복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보다 분명한 제약이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학자는 자연을 관찰하고 설명해내기 위해 자연에서 보다 보편적인 어떤 원리를 찾아낸다. 바로 여기에 과학자들의 상상력이 요구된다. 다만 상상된 결과는 과학자들의 지식과 이해의 범주에 적합해야 한다. 곧 자연 현상과 일치하고 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구속복처럼 과학자의 상상력 주위로 상당한 제약이 가해지게 되는 셈이다.  



 

"파인먼은 과학적인 창조성이라는 것은 구속복 속의 상상력이라고 말했다."(533)

"혁신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자유롭게 떠올린 만족스러운 생각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리학 법칙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발상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알려진 자연의 법칙과 명백히 모순되는 대상을 우리가 진지하게 상상하도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물리학자가 떠올리는 상상력이란 꽤나 어려운 게임입니다."(533)

"파인먼이 말했다. ‘과학자들의 상상력은 소설에서처럼 거기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상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단지 이해하기 위해 생각을 가능한 한 최대로 펼치는 것입니다.’"(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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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 동아시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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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가 그려준 파인먼 초상




천재 물리학자 파인먼의 35주기,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시 만나다

- 파인먼 평전을 읽으며

 

제임스 글릭(James Gleick) 지음 

양병찬·김민수 옮김 | [동아시아] | (2023)

 



 

Of all its many values, the greatest must be the freedom to doubt.

Richard Phillips Feynman(1918.05.11-1988.02.15)

 


이 문장은 고등학교 때 동네 서점에서 파인먼을 발견한 이후, 대학 시절 내 책상 앞에 줄곧 붙여두었던 문구다. 처음에는 알 듯 모를 듯 했던 표현이었으나, 삶의 경험치가 쌓이고 여러 상황에서 이 문구를 떠올리곤 했다. 내겐 괴짜 과학자 같았던 그의 이미지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의혹을 제기하는 인물의 전형으로 나의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셈이다. 최근 파인먼 평전을 읽고 있는데, 마침 오늘(215)이 파인먼의 35주기이기에 간단한 독서 기록을 남겨본다.


 

우선 파인먼은 동유럽 유대인 이민자의 후손이다. 따라서 위에 인용한 문구는 유대인의 후츠파(chutzpah)’ 정신을 우선 떠올리게 한다. ‘후츠파는 히브리어에서 온 말로, 문자 그대로는 무례함, 뻔뻔함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표현은 도전하는 정신, 용기, 배포 등의 맥락을 포함한다. 정통 유대교를 신봉하지 않았던 파인먼의 집안 분위기에서 그가 평생 가식과 권위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이에 도전했던 모습과 연결 지을 수 있겠다. 이 평전에 언급된 것처럼 그는 세상 사람들의 가식과 권위를 그토록 경멸하던 홀든 콜필드’(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였던 셈이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두고 우리는 어떤 표현으로 정리해볼 수 있을까. 우선 파인만은 많은 이들에게 괴짜이자 천재 과학자로서 알려져 있을 테다. 이미 20대일 때 핵폭탄 개발 연구 작업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촉망받는 과학자로 참여한 인물, 국가 기밀문서를 보관한 금고를 모두 열어버린 인물, 양자전기역학을 포함한 물리학의 여러 분야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노벨상 수상자 등의 사례에서 파인먼이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말해주는 수많은 지표를 보여준다. 또 다른 한 면으로는 사랑하는 첫 부인과의 사별 후 보인 여성편력과 세 번째 부인을 만난 이후 가정적인 삶으로 돌아간 이후의 모습들, 봉고 드럼과 같은 리듬악기를 연주하거나 그림 그리기를 배우는 등 아이와 같은 호기심을 지니고 삶을 누리는 데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된다.


 

파인먼의 다양한 모습들 가운데 내게는 그가 가식을 싫어하고 권위에 체질적으로 거부감을 보였던 모습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학창시절에 처음 알게 된 파인먼을 이제는 제임스 글릭의 파인먼 평전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미국이 세계초강대국이 되어가던 시기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던 시대를 가로질러 살았던 한 미국인 과학자의 삶을 재구성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미국이 몰락하기 시작하는 상징적인 사건가운데 하나가 바로 챌린저호 폭발사건이라고 본다. 거대한 관료집단이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비효율적인 상태가 되어버린 상황, 냉전 시기 이데올로기의 대결 구도 속에서 성공에 대한 압박으로 과정 그 자체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면서 재난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된 것. 나는 이 증상이 바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보았다. 파인만은 이러한 삶의 한가운데에 서서 역사의 현장들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었다.


 

이 책을 읽기가 만만치 않지만, 책을 읽을 때 몇 가지 방식을 염두에 두면서 시도해볼만 하다. 우선 파인먼을 둘러싼 인물들에 주목해보는 것이다. 파인먼과 다른 인물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주목해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예를 들면, 파인먼과 줄리언 슈윙어를 견주어보는 것. 두 인물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1918년 생으로 동갑인 물리학자들이었다. 다만 각자의 캐릭터는 너무나 뚜렷하면서 스타일도 확연히 달랐다. 두 사람은 모두 유대인이었고, 196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함께 받았지만, 강의 스타일이나 말투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슈윙어가 좀 더 화려하고 격식을 갖춘 완벽함을 지향했다면, 파인먼은 우아함보다는 솔직하고 격의 없으며 빠른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두 사람의 오랜 라이벌 구도를 통해 두 동갑내기 물리학자가 어떻게 서로 경쟁하고 발전해나가는지 따라가 보는 일은 흥미롭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파인먼과 같은 직장의 동료 물리학자 머리 겔만과의 관계, 파인먼과 프리먼 다이슨 사이의 일화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제임스 글릭은 파인먼과 겔만을 유명한 미국 배우들을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다. 옷을 잘 차려 입는 신사 같은 이미지로 영화에 등장하곤 했던 아돌프 멘주는 겔만에, 그리고 코미디언으로 희극적인 배역을 많이 맡아 등장했던 미국의 배우 월터 매사우는 파인먼에 비유하는 식이다(635). 겔만도 파인먼처럼 유대인이었으며, 과학뿐만 아니라 폭넓은 교양을 갖춘 르네상스적인 인물이었다. 이와 달리 파인먼은 문학, 특히 시 같은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자연과학에 관해 외곬수적인 관심사를 보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미국은 여전히 귀족이 사회의 지도층을 점유하고 있는 영국처럼 정도가 심하지는 않으나 서양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말투는 그 사람의 배경을 규정지어주는 인덱스로서 기능하는 것 같다. 파인먼의 경우, 그가 명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빠르게 말하는 방식이 노동계급의 특징으로 먼저 인식되었던 것 같다. 젊은 시절 파인먼은 노대가 닐스 보어와의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는데, 귀족 가문인 보어는 파인먼의 노동자 계급을 떠올리게 하는 언어와 말하는 방식에 호감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파인먼을 둘러싼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평전이 두껍긴 해도 보다 더 입체적으로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파인먼 평전의 원제는 Genius. 이 제목을 염두에 두면, 천재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글에 저자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저자가 천재()란 과연 무언인가?’하는 물음을 쫓아 과거 여러 지식인들이 고민했던 행적을 따라가며 천재의 정체성을 탐구해나간다. 인류 역사상 많은 천재들이 나타났지만, 천재란 어떤 면모를 지닌 사람을 그렇게 부르는 것인지 저자는 궁금해 했을 법하다. 참고로 파인먼의 아이큐는 125였다. 낮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마술사 천재라고 불린 파인먼에게 기대된 아이큐에는 훨씬 못 미치는 값이다. 이걸 보면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천재라고 불릴 수 있는 보편타당한 특질이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과연 그런 특질이 존재하는 것일까? 저자는 결국 과학적 업적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말과 함께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파인먼의 한 마디를 덧붙인다. 결국 우린 모두 고만고만한 존재라고 말이다.

 


사람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올랐던 높이만 보고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하진 않는다. 사람은 무엇보다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길을 가는 가운데 그 사람의 마지막을 보고서야 그의 삶이 어떠했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파인먼도 두 번째 암이 재발하여 몸 속에 큰 혹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챌린저호 폭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작업에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참여했다. 내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파인먼의 모습은 다른 이들의 판단을 스스로 검토하지 않고 조금의 의혹도 지나치지 않았던 지적 성실함이었다. 여기엔 어떤 형태의 권위에 대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후츠파정신이 엿보인다. 파인먼 평전을 읽으며 느끼는 점은 파인먼의 구체적인 업적 이전에, 기존의 것에 스스로 합리적인 의문을 제시하고 자연의 비밀을 알아내고자 끊임없이 호기심을 지녔던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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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 뇌공학의 현재와 미래, 개정판
임창환 지음 / Mid(엠아이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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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기술인가를 묻는 뇌공학자의 공학이야기


-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 뇌공학의 현재와 미래


임창환 지음 | [MID] | (2023, 개정판)



 

최근 뇌과학, 인공지능, GPT 등에 관한 소식이 큰 화두다. 생명활동을 하는 존재가 스스로 살아가는 데에는 다양한 수준의 지능이 관여한다. 우리가 의식이라는 명칭을 붙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특히 인간의 뇌는 체내의 신체적·정신적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의 20%가량을 소모하는 기관이라고 한다. 단 몇 분이라도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곧바로 뇌사에 이르기도 한다. 보다 복잡하게 발달한 생명체들에게는 뇌가 있음으로 해서 움직임을 조절하고 존재가 관여한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간다. 뇌는 생명체에 필수불가결한 기관인 것이다. 이제 연구자들이 뇌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이를 이용하고 있는 시대다. 여기에 뇌공학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눈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 마비를 겪는다고 상상해보자. 나는 상상만 해도 숨이 차고 갑갑한 기분이 든다. 잠수종과 나비의 저자 장 도미니크 보비가 겪은 일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그가 남긴 기록은 바로 당사자의 입장에서 힘겹게 써낸 글이기에 전 세계의 많은 독자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보비는 세계적인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었다. 멋지게 옷을 차려 입을 줄 알고, 문학과 스포츠카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에게 닥친 불운은 그가 뇌일혈로 쓰러진 후 3주가 지나 의식을 회복했을 때, 전신이 마비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몸은 예기치 않게 감옥이 되었다. 그의 정신은 말을 듣지 않는 육체 속에 영원히 유폐되어 버렸다. 그가 자신의 투병 기간인 15개월 동안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책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한쪽 눈을 깜빡거려 문자를 하나하나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비의 입장을 상상만 해도 아득하고 절망스러운 느낌이 밀려온다. 내가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를 읽으면서 뇌공학이라는 분야를 다시 보게 되었던 것은, 보비와 같은 입장에서 환자가 가족 혹은 다른 사람들과 보다 자유롭게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뇌의 활동 혹은 뇌파를 이용하여 뇌와 기계, 혹은 뇌와 컴퓨터 사이의 접속 시스템을 개발하면,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의도를 지닌 생각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뇌가 활동할 때 발생하는 미세한 뇌파를 감지하여 활용하여 정신적 타자기와 같은 접속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현실적인 제약은 아직 너무나 많다. 여기서 제약이라 하면 인간을 대상으로 검증을 해야 하는 상황과 이에 따른 윤리적 문제들, 접속 시스템을 거치면서 의사 전달의 속도와 정확도가 떨어지는 문제, 나아가 실수요를 고려한 경제적 타당성의 문제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여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아보고자 시도하는 생생한 연구현장의 이야기들을 이야기해준다.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도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선천적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장애는 불시에 찾아오기도 한다. 저자가 직접 만나본 루게릭 환자들의 꿈이 환자 스스로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글을 남겨보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공감하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저자의 연구실에서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열어주고자 하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다만 모든 과학기술에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이런 특수한 지식체계가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대해서이다. 예컨대 뇌파를 이용한 뇌 접속 인터페이스는 점차 발달하면서 점점 더 많은 개인의 내밀한 생각들과 상호작용을 매개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보는 개개인의 고유한 상황을 담은, 혹은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정보일 것이다. 이때 한 개인을 규정할 수 있는 이런 개인정보의 유출 가능성 같은 문제는 기계와 인간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지 싶다.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사례는 저자가 소개하는 거짓말탐지 기술이다. 저자는 책에서 거짓말탐기기가 개인의 사생활 침해 도구로 쓰일 가능성’(153)도 지적하고 있다. 나의 가족이나 애인이 매번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진실이 언제나 좋을 것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경우에 따라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언제나 진실을 모두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더 행복해질까? 이런 상상을 해보면 나는 아직 이런 기술에 대해 저항감을 먼저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또 만약 거짓말탐지 기술이 99%의 정확도를 가지고 개개인의 거짓말을 정확히 탐지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이 기술이 하나의 권위로 작용할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예를 들어 범죄에 연루된 누군가의 운명이 이 거짓말탐기기의 판독 결과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면 어떨까? 99%의 진실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해도, 그 또한 1%의 오류로 인해 무고한 누군가의 삶이 파괴될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이 주목하고 고민해야할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안심인 것은 연구 현장에서 저자와 같은 뇌공학자들은 기술과 더불어 윤리적인 검토와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철학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인식하며 이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저자의 연구 사례를 보면, 저자가 이끄는 연구팀은 뇌-컴퓨터 접속 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그룹임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특히 기억나는 점은 저자가 고민하는 기술이 경제성이 적어보이는 기술임에도 이 기술이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질문은 뇌공학자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을 다루는 모든 이의 가슴 속에 우선 필요한 요건이 아닌가 싶다. 저자가 소개하는 신기하고 놀라운 첨단 기술과 더불어 그가 고민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 애정이 함께 갖추어진 연구자들이 이 분야에도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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