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 뇌공학의 현재와 미래, 개정판
임창환 지음 / Mid(엠아이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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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기술인가를 묻는 뇌공학자의 공학이야기


-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 뇌공학의 현재와 미래


임창환 지음 | [MID] | (2023, 개정판)



 

최근 뇌과학, 인공지능, GPT 등에 관한 소식이 큰 화두다. 생명활동을 하는 존재가 스스로 살아가는 데에는 다양한 수준의 지능이 관여한다. 우리가 의식이라는 명칭을 붙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특히 인간의 뇌는 체내의 신체적·정신적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의 20%가량을 소모하는 기관이라고 한다. 단 몇 분이라도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곧바로 뇌사에 이르기도 한다. 보다 복잡하게 발달한 생명체들에게는 뇌가 있음으로 해서 움직임을 조절하고 존재가 관여한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간다. 뇌는 생명체에 필수불가결한 기관인 것이다. 이제 연구자들이 뇌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이를 이용하고 있는 시대다. 여기에 뇌공학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눈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 마비를 겪는다고 상상해보자. 나는 상상만 해도 숨이 차고 갑갑한 기분이 든다. 잠수종과 나비의 저자 장 도미니크 보비가 겪은 일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그가 남긴 기록은 바로 당사자의 입장에서 힘겹게 써낸 글이기에 전 세계의 많은 독자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보비는 세계적인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었다. 멋지게 옷을 차려 입을 줄 알고, 문학과 스포츠카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에게 닥친 불운은 그가 뇌일혈로 쓰러진 후 3주가 지나 의식을 회복했을 때, 전신이 마비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몸은 예기치 않게 감옥이 되었다. 그의 정신은 말을 듣지 않는 육체 속에 영원히 유폐되어 버렸다. 그가 자신의 투병 기간인 15개월 동안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책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한쪽 눈을 깜빡거려 문자를 하나하나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비의 입장을 상상만 해도 아득하고 절망스러운 느낌이 밀려온다. 내가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를 읽으면서 뇌공학이라는 분야를 다시 보게 되었던 것은, 보비와 같은 입장에서 환자가 가족 혹은 다른 사람들과 보다 자유롭게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뇌의 활동 혹은 뇌파를 이용하여 뇌와 기계, 혹은 뇌와 컴퓨터 사이의 접속 시스템을 개발하면,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의도를 지닌 생각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뇌가 활동할 때 발생하는 미세한 뇌파를 감지하여 활용하여 정신적 타자기와 같은 접속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현실적인 제약은 아직 너무나 많다. 여기서 제약이라 하면 인간을 대상으로 검증을 해야 하는 상황과 이에 따른 윤리적 문제들, 접속 시스템을 거치면서 의사 전달의 속도와 정확도가 떨어지는 문제, 나아가 실수요를 고려한 경제적 타당성의 문제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여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아보고자 시도하는 생생한 연구현장의 이야기들을 이야기해준다.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도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선천적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장애는 불시에 찾아오기도 한다. 저자가 직접 만나본 루게릭 환자들의 꿈이 환자 스스로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글을 남겨보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공감하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저자의 연구실에서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열어주고자 하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다만 모든 과학기술에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이런 특수한 지식체계가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대해서이다. 예컨대 뇌파를 이용한 뇌 접속 인터페이스는 점차 발달하면서 점점 더 많은 개인의 내밀한 생각들과 상호작용을 매개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보는 개개인의 고유한 상황을 담은, 혹은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정보일 것이다. 이때 한 개인을 규정할 수 있는 이런 개인정보의 유출 가능성 같은 문제는 기계와 인간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지 싶다.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사례는 저자가 소개하는 거짓말탐지 기술이다. 저자는 책에서 거짓말탐기기가 개인의 사생활 침해 도구로 쓰일 가능성’(153)도 지적하고 있다. 나의 가족이나 애인이 매번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진실이 언제나 좋을 것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경우에 따라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언제나 진실을 모두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더 행복해질까? 이런 상상을 해보면 나는 아직 이런 기술에 대해 저항감을 먼저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또 만약 거짓말탐지 기술이 99%의 정확도를 가지고 개개인의 거짓말을 정확히 탐지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이 기술이 하나의 권위로 작용할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예를 들어 범죄에 연루된 누군가의 운명이 이 거짓말탐기기의 판독 결과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면 어떨까? 99%의 진실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해도, 그 또한 1%의 오류로 인해 무고한 누군가의 삶이 파괴될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이 주목하고 고민해야할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안심인 것은 연구 현장에서 저자와 같은 뇌공학자들은 기술과 더불어 윤리적인 검토와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철학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인식하며 이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저자의 연구 사례를 보면, 저자가 이끄는 연구팀은 뇌-컴퓨터 접속 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그룹임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특히 기억나는 점은 저자가 고민하는 기술이 경제성이 적어보이는 기술임에도 이 기술이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질문은 뇌공학자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을 다루는 모든 이의 가슴 속에 우선 필요한 요건이 아닌가 싶다. 저자가 소개하는 신기하고 놀라운 첨단 기술과 더불어 그가 고민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 애정이 함께 갖추어진 연구자들이 이 분야에도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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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우주로 흐른다 - 문명을 이끈 수학과 과학에 관한 21가지 이야기
송용진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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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수학의 대가가 말하는 인류 문명의 정수, 수학의 역할

- 수학은 우주로 흐른다》(2021)

 


송용진 지음 | [브라이트] | (2021)



 

말들에 누구나 수학이 중요한 분야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은 학창시절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우선 수학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필요하다. 진학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니까. 상급 학교로 진학한 이후에 전공과목이 아닌 이상 수학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좀 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학의 혜택을 단 한 순간도 받지 않는 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손에서 놓지 않는 휴대폰만 해도 수학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사용되는 물리적인 디스플레이나 소자뿐만 아니라, 운영체제와 알고리즘이 수학의 도움 없이 그 기본적인 지식체계가 정리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편리하게 사용하는 GPS같은 기능을 구현하는 데에도 수학은 핵심적인 연장통이 된다.


 

수학은 우주로 흐른다의 저자 송용진은 위상수학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재를 책임져온 교육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그는 수학과 과학이 우리 문명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폭넓게 고찰한다. 수학의 역사적 측면만이 아니라 수학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성찰이 책의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중심 화두가 되어버린 인공지능분야는 특히 수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다. 저자가 주목하는 수리 자본주의 시대의 핵심이기도 하다.


 

수많은 수학 영재들을 가르쳤던 교육자로서 저자가 제자들에게 수학의 필요성과 수학자의 역할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변이 인상적이다. 제자들은 어떤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적용할 것인지, 혹은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수학자의 역할이 점점 더 크게 기대된다는 언급도 덧붙인다. 단순히 모델을 기계적으로 실행시키는 작업에서 벗어나 문제점을 파악하고 평가하는 것은 결국 사람, 특히 수학자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결론이었다.


 

이 책은 그 동안 많이 보아온 외국 수학자의 저술이 아니라, 국내 수학자의 저술이기에 우리의 당면 과제와 이슈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리의 기초과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견주어볼만한 일본의 근대는 이미 이 시기에 상당한 수학 및 과학의 기반을 갖춘 상태였다는 사실을 지적한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일본은 외국의 지식을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일본은 이미 세계적인 수학자 과학자들을 배출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세계 기초과학을 리드하던 유럽 학계에 발을 담고 근대를 준비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안타까운 시간들을 크게 놓친 셈이다. 다행히 수많은 인재들의 노력으로 한국의 수학이 이제는 세계적인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수학자인 저자로부터 직접 듣게 되니 비로소 실감이 날 정도다. 나아가 최근 나로호와 누리호의 발사 경험까지 갖추게 된 우리가 아닌가.


 

문명이란 단어는 중립적인 인상을 준다. 인간만이 이룰 수 있었던 성취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인류의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가 되기도 한다. 인류의 운명과 관련지어 저자는 과학이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며, 인류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낼 것이다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개인적으로 이 견해에 대해서는 수학과 과학에 대한 저자의 긍정론을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우리의 문명 세계는 현재 수학과 과학에서 필수적인 이성과 합리성을 갖춘 이들이 제시해 놓은 방향을,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인류의 생존을 위해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 계층을 위한 자본 논리가 인류 문명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쓸모없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여기에 저자가 주장하는 수학 및 과학의 지속적인 발전에 대한 믿음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오히려 수학자, 과학자들의 냉철하고 비판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문명의 지속성이 수학자, 과학자들이 마련해 놓은 도구들에 대한 정치적인 활용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더욱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구체적인 수학을 현장에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수학적 사고나 판단력과 분별력은 문명인의 기본적인 소양이 되어야 할 것 이다.


 

결국 저자는 수학의 쓸모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의 수학적 소양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 문명의 생존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훈련된 수학적 사고로 합리적이고 올바른 분별과 판단을 내리게 되면, 우리의 운명을 숙고하고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하여 생존가능성이 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교육자로서 저자의 가르침을 받은 우리나라 수학 영재들이 수학 연구자체뿐 아니라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에도 관심을 가지는 인간적인영재들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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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먼 평전과 제임스 글릭의 교양과학서 4부작




 

어렸을 때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지나간 시간이 무척 아쉬운 일이다. 학창 시절에 읽은 책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성인이 되어 블로그와 온라인 서재를 통해 읽고 쓰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싶다. 책을 읽지 않은 아이였기에, 위인전 역시 좋아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그림이 들어간 장영실 위인전은 좋아했던 기억이 얼핏 나긴 한다. 하지만 이것도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였을 것이다. 게다가 위인전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위인전을 읽을수록 이들이 나와는 동떨어진, 태생부터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만 굳어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한 사람의 일생을 제3자가 갈무리한 평전 류의 도서들을 읽게 되었다. 평전이라면 기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작가의 숭배비판 혹은 평가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작가 연보가 아닌 이상 사실만 나열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평전들은 상당수가 숭배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다. 우리나라의 위인들만 완전무결한 존재일 리 없는 것이다. 반면 외국 인물에 대한 평전은 꽤나 솔직하다. 개인적인 치부도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건 무엇보다 인물에 대한 개인사가 출간물에서 허용되는, 혹은 터부시되는 영역이 문화권마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다. 위인의 모습과 성격이 어떠했는지 간에 그건 그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일 뿐이다. 평전에서는 인물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예를 들면, 수전 손택에 대한 평전 수전 손택(다니엘 슈라이버, 글항아리, 2020)이 바로 떠오른다. 이 책에는 제3자가 바라본 손택의 면모가 다층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손택의 천재적인 능력과 활동가적 지성인의 면모 등이 다루어져 있으면서도, 그녀의 인간적인 미숙함과 단점들(거짓말 잘하기 등), 심지어 찌질해 보이는 면모까지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문화계의 정서로는 익숙하지 않은 글쓰기 방식이다. 손택 개인의 치부가 평전에 담겨있다고 여길지도 모르나, 독자로서 나는 그녀를 함부로 폄하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 그녀의 삶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그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까닭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상처뿐만 아니라 남성 중심의 사회 질서에서 겪고 느꼈을 고통들에 맞선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위인에 대한 평전이라면 어땠을까? 기술되는 위인의 치부까지 노출되어 있는 평전이라면, 아마 그 저자는 후손들의 줄이은 소송제기로 곤란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문화권의 차이로 볼 수도 있고, 혹은 삶의 이해에 관한 관용도의 차이, 문화권마다의 정처 차이로 볼 수도 있겠다. 물론 정답이란 없는 문제다. 하지만 숭배로만 일관된 평전보다 독자에게 인물에 대해 보다 입체적으로 인물의 면모를 제시해주는 것이 평전의 역할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새해가 시작되고 첫 평전을 만나게 되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삶을 다룬 평전이다. 사실 절판되었던 천재가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파인먼 평전제목으로 새로 나오게 되었다. 십 수년 전에 나오고 절판되었는데, 다시 출간된다는 문구를 어느 책의 소개란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이제야 나오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주에 파인먼의 강연 몇 가지를 모은 책 과학이란 무엇인가?(승산, 2008)를 읽었는데, 마침 파인먼의 평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새로 출간된 평전의 저자는 제임스 글릭이다.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된 교양과학서의 전설 카오스를 쓴 저자이다. 나에게도 그랬지만, 전 세계에 카오스’, ‘나비 효과라는 용어를 각인시킨 인물이 바로 제임스 글릭이지 싶다. 



































 

지금 다시 보니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제임스 글릭의 저서 4권을 출간한 셈이다. 카오스를 비롯하여 인포메이션,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파인먼 평전이렇게 제임스 글릭 4부작이 완성되었다. 이번에 평전이 나온 김에 이 4부작을 다시 역주행을 해볼까 한다. 파인먼 평전을 시작으로, 학창시절에 읽고 나서 기억도 안 나던 카오스, 그리고 읽다가 멈추었던 인포메이션를 이어서 읽어봐야지 싶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일 텐데, 저자가 역사적으로 시간을 이해하려던 인물들의 이야기 조사를 엄청나게 했다는 인상만 남아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파인먼 평전은 번역자도 바뀌었다. 내가 믿고 구매하는 양병찬 번역가가 참여한 결과물이다. 올 초에는 파인먼 평전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제임스 글릭은 기본적으로 저널리스트다. 영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문학을 전공한 기자이자 작가가 과학 분야에 대한 방대한 교양과학서를 쓰고, 과학자에 대한 평전을 써낸 셈이다. 파인먼 평전의 구판인 천재를 읽어보았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대강의 흐름만 기억이 난다. 하지만 철학, 역사, 문학, 예술, 과학 분야를 아우르는 저자의 폭넓은 자료조사와 글쓰기를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것은 나뿐일까 싶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고등학교 때 동네 서점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후 파인먼의 교양서 몇 권을 읽어보았기에 파인먼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 파인먼에 대한 애정을 듬뿍 이야기하는 김상욱 교수도 학창 시절에 파인먼을 만난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학창 시절의 나는 처음에 그의 엉뚱하고 특이한 행동들에 흥미를 느꼈을 테지만, 이런 점들은 파인먼의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어쩌면 방송이나 기타 매체에서 파인먼이란 상품을 팔기 위한 표제로 파인먼의 기이한 행동들을 언급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일생 전체를 따라가는 일이다. 그 인물의 장점과 단점, 업적과 치부까지 모두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파인먼은, 어느 누구의 삶도 마찬가지이지만,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기이한 행동들로 단정하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그러한 특이한(?) 방식으로 물리학에 진정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평전은 인물의 천재성을 충분히 보여주겠지만, 이와 더불어 실수투성이의 인간관계와 인간으로서의 불완전함도 아울러 보여준다.


 

나에게 한 인물의 평전을 읽는 일이란 묘사되는 인물에 대한 작가의 숭배비판모두를 접하는 일이다. 평전을 썼던 제임스 글릭의 입장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물에 대해 글을 쓰는 이는 대상에 대한 비판 이전에 대상에 대한 애정, 숭배가 전제된다. 내가 평전을 읽는 이유는 세계에 의도치 않게 내던져진,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의 살아감그 자체가 내게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때론 기술되는 인물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서도,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에 공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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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1-29 2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만이라고 했었는데 뭐가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어요.
평전을 거의 못 읽고 있긴 합니다만 울나라에선 그런 경향이 있긴하죠.
성인용 위인전기. ㅋ 소송 골치 아프죠.
읽어보고 싶긴하네요.
김상욱 교수도 파인먼을 그렇게 좋아하던데..ㅋ

초란공 2023-01-29 20:57   좋아요 2 | URL
아 김상욱 교수도 있었네요. 저도 ‘파인만’이 익숙한데 언제부터 ’파인먼‘이 되었을까요^^;;

고양이라디오 2023-02-10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언제부터 파인먼이 된거죠?
파인먼씨 좋아하는데 이 책 꼭 읽어봐야겠네요ㅎ

제임스글릭의 책들도 기대가 됩니다ㅎ
 
인섹타겟돈 - 곤충이 사라진 세계, 지구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까
올리버 밀먼 지음, 황선영 옮김 / 블랙피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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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마저 사라진 실낙원을 상상하며

- 인섹타겟돈(The Insect Crisis)


올리버 밀먼(Oliver Milman) 지음 | [블랙피쉬] | (2022)

 



많은 사람들처럼 봄에 연초록 잎과 함께 피어나는 꽃을 좋아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각별한 기억이 있는 꽃은 아카시아 꽃이다. 입영 통지서를 받고 훈련소에 갔던 때가 5월이었다. 부대 담장을 둘러싸고 흐드러지게 피어 흩날리던 아카시아 꽃과 진한 향기를 아직도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의 사랑과 아카시아 향기는 멋모르고 시작했던 훈련소 생활을 견디게 하고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기억과 함께 맡던 아카시아 향기의 기억이 한낱 과거 속 사건으로 영원히 끝나게 된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일까? 당장 변해버린 현실을 상상해내기란 어렵다. 그런데 요즘 주변을 보면 이 상상이, 정말로 현실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 두렵다. 언젠가부터 규모는 작지만 양봉을 하시던 친척의 벌집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꿀벌의 군집이 겨우내 모두 죽어버리거나 벌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이 꿀벌의 이상 행동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피부로 실감한 것은 바로 친척이 관리하던 벌집 소식이었다. 그러던 중에 지난 달 신문기사를 보고 그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짐작할 수 있었다.


(기사 관련 주소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212270936001#)


 

이 기사는 지방의 한 지역에서 꿀벌 대량 폐사 및 실종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꿀벌에게 먹이를 공급할 수 있는 숲을 축구장 4700개 면적에 조성한다는 계획을 소개하고 있었다. 물론 꿀벌이 대량으로 죽거나 사라지는 사례는 최근 1-2년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카시아 향기와 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카시아 꿀을 구하는 일이 예전만큼 쉽지 않게 되어버린 변화를 조심스럽게 감지하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걸까? 미디어에서는 전자파의 피해라고 하기도 했다. 또 어느 곳에서는 기후 온난화를 주범으로 들기도 했다. 어떤 경우든 너무나 흔해보였던 꿀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유가 정말로 궁금했다. 특히 최근에 환경과 인간의 운명에 관한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책 여섯 번째 대멸종을 읽은 후여서 그런지 이 현상은 내게 더욱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다.


 

이런 위기감 속에서 손에 쥐게 된 책이 바로 인섹타겟돈이다. 이 책은 환경 전문 기자 올리버 밀먼이 곤충이 사라지는 현장과 관련 연구자들을 만나 기록한 보고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인섹타겟돈이란 용어는 곤충을 가리키는 인섹트insect'대량 멸종을 시사하는 아마겟돈amageddon’이 더해진 표현이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곤충의 집단 폐사 혹은 소멸 현상을 가리킨다. 과연 곤충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인류가 유입되기만 하면 대형 동물이 사라져버린 사실을 떠올려보면 짐작이 가는 원인 제공자는 있다. 바로 인간 자신이다.


 

그동안 곤충은 작고 미약하면서도 너무나 개체수가 많기에 큰 우려를 자아내지 못했다. 이에 비해 환경 위기를 알리는 대표적 동물인 고래, 북극곰과 같이 카리스마 있는 대형 동물은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데 효과적으로 언급되던 존재였다. 수십 억 마리로 추정될 정도로 많았던 북아메리카의 나그네 비둘기가 수십 년 만에 멸종했던 역사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이 땅에서 사라지는 데에는 인간의 수명으로 한 두세대면 가능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까지 이야기하던 파리나 모기마저도 지구 위의 생태계에서 각자 나름의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저자는 여러 연구자들과 그 결과물을 빌어 일깨워 준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관심사였던 꿀벌의 운명에 대한 정보도 더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현재 전 세계에서 대규모로 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미 미국 전역에서는 4종의 호박벌(bumblebee) 96%가 감소했다고 한다(57). 그럼 과학자들은 꿀벌들의 대량 폐사 원인이 무엇이라고 지목하고 있을까. 자연 생태계는 그 구성원들의 선형적 관계망이 결코 아니다.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는 결코 파악할 수 없을 만큼의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유지되는 영역이다. 그 원인을 한 가지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기후 변화와 서식지 파괴, 그리고 무분별한 살충제의 사용을 들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거대 제약회사 바이엘이 인수한 몬산토는 라운드업 RoundUp'이라는 제초제로 유명한 기업인데, 전 세계에 이 화학약품을 공급했다. 이 약품의 주요 성분은 글리포세이트인데, 연구에 의하면 벌의 장내 박테리아를 방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꿀벌이 걸릴 수 있는 노제마(장내 기생충)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벌을 비롯한 곤충을 집적 겨냥한 살충제 역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현재 가장 효과가 좋은 살충제 성분은 니코틴과 유사한 새로운 살충제’(168)라는 의미를 지닌 네오니코노이드. 이 약품은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이 만든 제품으로, 지난 30여 년 간 전 세계에 뿌려졌다고 한다. 이 약품의 위험성은 레이철 카슨의 저서 침묵의 봄으로 사용 금지된 살충제 DDT보다 7000배 더 해롭다.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는 것도 큰 문제다. 유충일 때 이 약품에 노출된 벌은 학습과 기억을 관장하는 뇌 영역이 비정상적으로 쪼그라든 벌이 된다고 한다. 화학물질 때문에 영구적인 뇌손상을 입었다는 말이다. 그 결과는 꿀벌의 먹이 활동에 실패하고, 그 결과 꿀벌 집단은 치명적인 운명 앞에 놓이게 된다.


 

물론 이런 상황은 꿀벌에게만 해당하는 현상은 아니다. 이처럼 우리가 해충이라고 분류한 곤충뿐만 아니라 꿀벌, 그리고 나비, 딱정벌레를 비롯하여 결국 우리 인간에게로 돌아와 그 영향이 미치게 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나비가 대량으로 사라졌으며, 이탈리아에서는 쇠똥구리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생명력 강하다고 알려진 잠자리마저 핀란드에서는 사라졌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대형동물뿐만 아니라 이 작고 미약한 곤충들에게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걸까? 이 와중에도 살충제를 제조하여 판매하는 회사들은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 약품을 꼭 사용해야 한다고 홍보한다.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이들의 위험한 이기심이 인류의 운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들은 정치권에 로비를 벌이고, 제초제와 암과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려는 과학자들을 비난하며 이들의 결과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심지어 직장에서 쫓아내며 방해하기도 한다. 생물학 교수 데이브 굴슨이 이런 인간의 모습을 보고 인간이 같은 실수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187)라고 말하지만, 이는 분명히 실수가 아니다. 이들의 위험한 행보와 일반인들의 무지는 결코 실수가 아닌 것이다. 앞으로 더 이상의 실수가 반복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 인류에게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있을까. 이제는 우리가 생태계에 저지른 잘못을 만회할 기회가 남아있기나 한지조차 의문스럽다.


 

이 책은 곤충이란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곤충은 작고 미약해보여도 우리 생태계를 지탱하는 먹이그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주요 구성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곤충은 우리 생태계의 근본을 이룬다.’(211) 이 책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곤충들이 사라졌을 때 인류를 기다리게 될 것은 재앙뿐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기후변화나 동물 서식지의 파괴, 살충제와 같은 독성 물질의 사용으로 꿀벌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세상을 맞게 될까. 그때야말로 모든 이들 앞에는 모든 생태계의 구성원들이 생존을 위한 무분별한 투쟁 앞에 놓이게 되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정말로 이런 상황 속에 놓이게 된다면, 타락한 인간 세계에 남은 최후의 인간, 5월의 아카시아 향기가 어땠는지 기억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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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온 - 살인 단백질의 네 가지 얼굴
D. T. 맥스 지음,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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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 주는 프리온 질환

- 프리온를 읽고



 

D.T. 맥스 지음 |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2)



 

2000년대 후반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제기된 미국산 수입 소고기의 위험성 문제는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당시에 나는 논란의 핵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뉴스를 통해 9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소들이 주저앉고,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정도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질병의 원인이나 위험성은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프리온을 만나고 나서야 이 질환에 담겨 있는 배경과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편집자를 거쳐 작가로 활동하는 D.T. 맥스가 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 관련 질병을 포괄적으로 조사·정리한 결과물이다. 책이 지닌 특별한 점은 저자 자신이 프리온 질환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단백질 구조 이상에서 비롯된 신경근육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프리온이란 단어는 199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스탠리 프루시너가 처음 제안한 용어다. 그는 우형 해면상 뇌병증(광우병, BSE),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 양의 스크래피(scrapie) 등을 일으키는 감염성 병원체가 무생물 단백질임을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 감염성 병원체를 통칭하여 '프리온(prion)'이라 명명한 것이다. 이 병원체는 일반 세균(박테리아)이나 그보다 작다고 알려진 바이러스보다도 더 작은 단백질 알갱이다. 프리온은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인간에게 병을 일으킨다. 우선 이탈리아 베니스 근교에 기반을 둔 어느 가문의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FFI)처럼, 대물림(유전)되는 경우가 있다. 희생자 모두 프리온이 갉아 먹은 뇌로 숙면을 취할 능력을 상실하고 기진맥진해서 죽음에 이르렀다. 이 가문이 겪은 역사와 고통은 저자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과 마찬가지로 병을 이해해보고자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원서의 제목(The Family that couldn't sleep)이 암시하듯, 이 책에서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또 다른 발병 경로는 우연히 발생하는 경우로,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이 그 예다. 책에서는 이 경우를 산발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다만 프리온 질환은 잠복기가 대체로 길기 때문에(수년에서 수십 년), 세 번째 발병 경로인 외부 감염의 사례와 구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1990년대에 세계를 흔들어 놓은 광우병이 대표적인 감염사례다. 여기에는 50년대에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이족에게 들이닥친 쿠루(kuru)병도 포함된다. 포레이족이 겪은 재앙은 이들이 50년대에 시작한 식인풍습에 기인한다. 포레이족에 관한 이야기는 신경정신과 의사 올리버 색스의 책 모든 것은 그 자리에나 저널리스트 작가 리처드 로즈의 죽음의 향연에도 자세히 소개가 되어 있을 만큼 유명하다.

 

쿠루병을 통해 인류가 새롭게 얻은 통찰은 무엇보다 인류가 인간 존재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는 점이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에세이집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에서도 지적하듯, 인류는 모두 한때 식인종이었다. 식인 풍습은 초기 인류사의 어느 시기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었다. 저자의 말대로 인류가 서로를 먹었다는 증거는 넘쳐난다. 물론 인류는 그 대가를 만만치 않게 치러야 했다. 식인풍습에 의한 프리온 질환이 인간 사회에 유행하여 높은 사망률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류가 식인풍습을 버리게 한 어떤 계기나 행위로 80만 년 후 우리의 생명을 구했다는 점이 경이롭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프리온 질환은 여러 발병 경로를 거칠 수 있다. 그 원인이 무생물 단백질인 만큼 일반적인 발병의 특징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신체는 외부의 침입자에 의해 감염되었을 때 면역반응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는 생명체의 신비하고 놀라운 기능이지만, 생명체는 프리온을 감지하지 못한다. 어떤 원인(유전자의 변형에 영향을 주는 원인)에 의해 변형된 프리온 단백질이 몸에서 만들어지고 나면, 이 단백질이 신체 내부의 다른 정상 단백질을 변형시키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변형된 단백질로 사멸한 세포의 뒤엔 텅 빈 공간을 남기게 된다. 프리온 질환에 걸린 양이나 소, 고양이, 인간의 뇌에 구멍이 숭숭 남아 있는 이유다. 결국 면역 체계가 작동하지도 않는 상태(발열이 없다)에서 감염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적은 바로 생명체 내부에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정상적인 유전자 발현에 의해 프리온 단백질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이 변형되는 경우 단백질은 생명체 자체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프리온은 생명체의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치명적인 단백질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산업 혁명의 기운과 인구 급증으로 생존의 압박이 사회 전반에 가해졌다. 농업생산성 향상도 빠른 시일 내에 요구되었다. 18세기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인간의 지식과 이성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로 충만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한 축산업자가 적은 사료로 더 많은 양고기와 양모를 얻기 위해 동종교배 기법을 도입했다. 인간의 눈에 유리한 특징을 지닌 양은 끊임없이 자손을 낳아야 했다. 그 결과 발생한 프리온 질병이 바로 스크래피. 양뿐만 아니라 영국의 소에도 인간의 손길이 닿았다. 광우병은 인간이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소를 비롯한 다른 동물을 갈아 넣은 동물 사료를 소들에게 먹였기 때문이다. 우유를 생산하려면 소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단백질보다 더 많이 필요했다. 이처럼 18세기 영국에서 양이나 소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위험한 육종 방식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도입되었다. 그 결과는 21세기인 지금, 한국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걸쳐 인간은 프리온 질병에 대해 그동안 쌓은 지식을 통합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어느 이탈리아 가문의 유전병, 포레이족이 겪은 쿠루병, 알츠하이머와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등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90년대 광우병 문제는 거대축산업의 발달과 생산성 향상에 대한 산업 사회의 무리한 요구로 다시 드러나게 되었다. 영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하자 정부는 사태를 감추는 데만 급급했다. 자국의 쇠고기와 우유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고, 수많은 소가 살처분 되었다. 미국에서 광우병 증세가 보고되었을 때도 정부, 특히 미국 농무부(USDA)는 영국 정부와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모든 소에 대한 검사 요구를 중단시키고, 태만과 비밀주의로 문제를 더 키웠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정부와 미국정부가 보여준 대응 방식은 많은 시민과 산업뿐만 아니라 결국 국가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었으며,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불신을 주었다. 어느 경우든 커다란 이해가 달린 시장을 지키기 위해 취한 조치가 자국민들과 세계를 위험에 몰아넣었다. 이는 예고된 인재였다. 이런 과정을 반복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3년이 넘도록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 감염증의 특징은 원래 다른 종의 동물로부터 왔다는 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종간 경계를 넘어 형태와 독성이 변해온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프리온 질환 단백질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기능상 자기 복제를 한다는 점에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유사성을 갖는다. 저자는 프리온 단백질의 경우, ‘종의 장벽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283)고 언급하지만, 이 또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프리온도 종간 경계를 뛰어넘으면서 형태와 독성이 변할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광우병(우형 해면상 뇌병증, BSE)이 염소에게도 전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BSE는 음식을 통해 고양이도 감염시키기도 했다. 물론 인간에게도 영향을 준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프리온이 드물더라도 양이나 소, 고양이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인간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다.

 

프리온 질환을 일으키는 잠재적 감염원을 살펴보면 채식주의자가 프리온 질환, 특히 광우병에 걸릴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저자가 언급하는 감염원은 프리온 질환에 걸린 사람이 모르고 한 혈액을 수혈 받는 경우, 단백질 보충제나 의약품에 사용되는 소 단백질, 소 부산물로 만든 화장품 등이 있다. 인간광우병(CJD)은 사람의 뇌하수체에서 추출한 성장호르몬을 맞고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의료 치료 가정에서 채식주의자가 고대 인류의 식인풍습으로 영향을 받았던 프리온 질환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긴 해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권위도 확고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크로이츠펠트 자코뱅당원)의 슬로건처럼,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317).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문명이 고도화·산업화되면서 인간은 그로부터 혜택을 누리게 되었지만, 프리온 질환에도 걸릴 수 있는 여지는 여러 방식으로 남아있다. 우리 문명은 여전히 초기 인류의 식인풍습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앞서 언급한 올리버 색스나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라고까지 언급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처럼 말이다. 인류는 이제 첨단과학기술의 발달로 스스로의 편의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프리온 질환을 끊임없이 초대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저자 역시 프리온 질환과 유사하게 단백질 구조 이상에서 비롯된 질병을 앓고 있다. 다만 그의 증세는 이탈리아 가족이 겪고 있는 급성 신경변성질환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하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신경근육질환이다. 유전자 가운데 어느 한 부분에 변이가 일어나 신경에서 근육으로 전기 신호를 보내는 데 필요한 단백질 구조나 양에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자신의 병과 마주하여 이를 이해하고자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아울러 200년 넘게 가문의 저주라고 불리는 불면증으로 기진맥진한 상태로 사망에 이르는 질병을 프리온 질환의 큰 범주에서 이해해보고자 한 시도이기도 하다. 분명 자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이탈리아 가문에 대한 사명감도 저자의 절실한 글쓰기를 해나가게 해준 원동력일 듯싶다. 프리온 질병을 이해하고자 한 글쓰기는 호모 사피엔스의 민낯을 그대로 비추어 준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 무제한적인 경제 성장에 대한 요구라고 하면 우리와는 무관한 거창한 명분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르게 말해 우리에게 편한 삶을 누리고자 추구하는 모든 행위는 분명 프리온 질환의 원인이 된 배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며 프리온 질병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고 자신의 병도 언젠가는 치료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기도 한다. 당장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 책은 우리 인류가 어떤 모습을 지닌 존재인지 보여주는 거울처럼 다가왔다.



[1]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존재다."(46)

[2]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을 비롯한 많은 신경병증 및 신경근육질환은 전통적인 의미의 감염이나 면역반응이 아니라, 프리온 질환처럼 단백질 구조 이상에 의한 질병이다."(47)

[3] "프리온은 정확히 인간의 야망과 자연의 예측 불가능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 구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48)

[4] "우리는 지식이 완벽함을 향해 빠르게 진보하는 분주한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자연과학은 모든 분야가 새로운 발견과 진보로 충만하다."(72)
-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의 말

[5] "포레이족의 식인풍습에 관해 꼭 기억할 것은 인육을 맛있는 음식으로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즐겼던 거죠."(인류학자 셜리 글래스의 말)

"이들은 죽은 이들을 사랑했고, 먼저 애도 기간을 가졌다. 하지만 애도 기간이 지나면 먹는 일로 돌아갔다."(146)

"쿠루는 유전병이 아니라 감염병이었다."(157)

"초기 인류가 죽은 이를 매장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서로를 먹었다는 증거는 넘쳐난다."(288)

[6] "(프리온은) 외부에서 희생자를 감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의 몸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194)

"(프리온은) 희생자의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치명적 단백질이었다."(195)

[7] "원래 초식동물인 가축에게 억지로 다른 가축의 고기를 먹인 행위는 결과적으로 이들을 동종포식 동물로 만든 셈이었다."(248)

[8] "프리온 질환에서는 결정화crystallization 비슷한 과정, 즉 하나의 변형된 단백질이 다른 단백질과 접촉해 변형을 일으키는 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건강한 프리온 단백질이 병원성 단백질로 전환된다. 알츠하이머 단백질도 역시 이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269)

[9] "단일한 질병이 아니라 단일한 발병 원리를 보았던 것이다."(270)
- 연구자들의 연구를 통해 프리온 유전자와 알츠하이머 단백질 유전자가 다른 염색체에서 발견되었으며, 두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 순서도 달랐음을 밝히며 정리한 말.두 질병은 별개의 것이지만 같은 발병 원리를 보인다는 의미.

[10] "생명이란 핵형성이며, 형태 변화이며, 복제다."(275)
- 1976년 쿠루병 관련한 연구로 197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가이듀섹의 말

[11] "광우병이 이윤추구에서 비롯되었다면, CWD는 명예욕이 문제였다. 이 병은 사슴과 엘크를 침범하며, 현재 미국 내 대여섯 주와 캐나다 및 한국의 동물 집단에서 발견된다."(307)

[12] "하필 내가 변형된 신경근육질환에 걸려야 할 이유는 없지만, 걸리지 않을 이유도 없다."(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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