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의 야망 - 자연의 완전성을 탐구하는 연금술의 역사
윌리엄 뉴먼 지음, 박요한 옮김 / 길(도서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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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학혁명을 이끈 연금술의 전통 들여다보기

- 프로메테우스의 야망를 읽고


 

윌리엄 뉴먼 지음 | 박요한 옮김 [도서출판길] | (2023)




 

이 책 프로메테우스의 야망은 연금술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학술적 성격의 책이지만, 이 분야에 대해 궁금한 독자라면 읽기에 난해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연금술의 전통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데 작은 벽이 될 수는 있겠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무엇보다 주석을 포함하여 꼼꼼하게 번역한 역자를 한 명 알게 된 듯하다. 이 책이 첫 번째 번역서라고 하는데, 성실한 젊은 학자를 알게 된 것 같아 반가웠다. 또 상당수의 국내 논픽션 도서가 흔히 간과하는 한글 색인 작업까지 추가로 정리한 노력이 눈에 들어와서, 비전문가 독자로서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독서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과학을 전공하긴 했으나 연금술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어쩌면 이 점 때문에 이 책이 나의 관심을 끌었던 셈이다. 읽고 나니 연금술의 전통이 근대, 특히 근대 화학이 탄생하는 데 실천적인 학문으로서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약간의 감을 잡게 해주었다고 평가해본다.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신으로 알려져 있다. ‘야망을 가진 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지니고, 인간에게 불을 비롯한 이성과 지식을 가져다준 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내게는 프로메테우스라는 신이 대표하는 성격은 인본주의적인 신, 인류에게 문명을 가져다 준 신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저자 윌리엄 뉴먼은 오히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생물의학 연구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앗아갈 것을 경고하며 언급한 프로메테우스의 야망이란 표현을 이 책의 제목으로 차용했다고 말한다. 과학과 종교의 오랜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암시하는 표현을 과학사 도서의 제목으로 가져온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거칠게 정리해보자면, 연금술이 (아랍 과학을 동양의 전통에 넣을 수 있다면) ·서양의 오랜 전통으로서, 그리고 오랜 시간 엄연히 존재했던 문명의 기예로서 그 자체로 분명한 자리가 있음을 독자에게 설득하는 책이다. 저자가 펼치는 논의가 적용되는 시기는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인 기원전 4-5세기 즈음부터 과학 혁명 즈음까지에 해당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물론 연금술의 기원을 기원전으로 보고는 있지만, 이 전통은 주로 아랍 학자들이 연구하고 기록에 남긴 것에서 비롯된다. 중세(대략 9세기) 서양에서 학자들이 아랍어 저작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본격적으로 유럽에 재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유럽에 연금술과 관련한 논쟁이 격화되었던 것은 12세기 즈음으로 보인다.

 


연금술이라고 하면 우리는 구리나 철 같은 일반 금속을 으로 바꾸고자 했던 전통을 말한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사이비 과학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이 전통은 진지한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의가 되었던 것이 알려져 있다. 일례로 아이작 뉴튼과 로버트 보일이 교환한 서신에서 연금술의 전통과 관련된 현자의 돌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주의해야할 것은 이 때 이들이 주로 주목했던 연금술의 영역은 신비주의적인 주술의 영역보다는 실천적인 비법, 시행착오를 다룬 실험 화학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초등학생들이 해볼 수 있는 화학실험 가운데 연금술의 전통을 떠올리게 하는 실험이 있다. 이를테면, 유황소금을 물에 녹여 검은 색의 유황소금 용액을 준비한다. 이 용액에 은으로 만든 반지나 은장신구를 넣고 30초에서 1분 정도 기다리면, 백색광이 나던 반지의 표면에서 유황성분과 결합하여 표면이 노란색으로 변색된다. 변색이 적절하게 잘 되면, 정말 금반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은 이 반지가 은반지인지 금반지인지 판단해볼 수 있는데, 방법은 금과 은이 가진 고유의 특성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고, 이 것이 정말 금인지 은인지 판단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물질 고유의 특성인 밀도가 다르다는 정보, 혹은 은반지의 부피와 질량을 이용하여 밀도가 다르다는 점을 파악해내면, 색이 변한 은반지가 금아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변색된 은반지를 원래 색으로 되돌리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금물에 알루미늄 호일을 넣고 끊인 물에 다시 넣으면 변색된 은반지가 원래의 은색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이번에는 금속 원소의 이온화 경향차이에 따라 변색된 은반지의 표면에 결합된 유황성분이 떨어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아마 이 실험이야말로 실천적이고 시행착오를 거쳐 형성된 연금술의 경험으로부터 알게 된 지식일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연금술이란 우선 저급한 금속 재료를 금과 같이 귀한 금속으로, 질적으로 변환시키는 것을 추구했던 방법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을 모방하고자 시도해보고, 수없이 실패하면서 조금씩 탁월함에 이르는 과정이었던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에 대한 모방을 넘어 자연을 변형시키고, 보다 나은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던 셈이다. 은반지 변색 과정 실험은 연금술의 역사가 과학과 맞닿아 있는 지점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자연에 대한 모방(미메시스)’로서의 시도는 이 책에도 여러 번 언급되는 화가 제욱시스에 관한 이야기에서 잘 볼 수 있다. 이 제욱시스에 관한 에피소드는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도 언급되고 있다. 제욱시스가 어느 날 동료 화가와 사실적인 그림그리기 내기를 하는 에피소드다. 그림 내기는 자연의 사물을 실제처럼 그려낼 수 있는 지, 누가 더 가깝게 자연을 묘사할 수 있는지로 승자를 결정하는 내기였다. 제욱시스가 벽에 진짜 포도나무처럼 그림을 그리자 새가 날아와서 앉으려다 부딪쳐 죽었다고 한다. 이건 자연에 대한 모방기예를 겨루는 작업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이 사례는 회화의 전통에서 자연을 실제처럼 실감나게 그려내는 문제와 이어져 있다. 아마 이러한 전통 혹은 논쟁에 확실히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은 아마도 19세기 초(1820년대)에 이루어진 사진의 발명이 아닐까 싶다.

 


사진의 발명으로 이제 자연에 대한 화가들의 모방작업이 더 이상의 논쟁이 되지 못했을 테다. 이후 화가들의 관심은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나 세계를 어떻게 그리고 표현해야 하는가가 아니었을까. 이 때 화가들이 주목했던 것이 마침 유럽에 들어와 있던 새로운 전통, 특히 일본의 호쿠사이가 작업한 판화그림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명 우키요에 판화의 전통을 통해 유럽인의 색채에 대한 관심, 빛에 대한 묘사에 주목한 인상주의에 영향을 주게 된 것으로 확장해볼 수도 있겠다. 여기에 은을 이용한 사진의 현상·인화술에 관계된 화학 역시 연금술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근대 사회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연금술의 전통을 단순히 마녀 과학’, ‘미신으로 치부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연금술의 전통이 무엇보다 실천적 기예로서 화학의 역사와 전통에 분명히 자리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전통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의학공부를 했던 연금술사 파라켈수스에 특히 주목한다. 파라켈수스는 의학을 공부한 지식인이었지만, 정통 의학의 길에서 벗어나 당시에는 보다 천하게 여겨졌던 일종의 실험 의학(외과)’에 참여했다. 그리고 당대에 전통적인 의학의 권위로 영향력을 발휘하던 4원소설의 아리스토텔레스나 그 맥을 잇는 4체액설(병의 원인이 체내의 체액 사이에 발생하는 불균형에 따름)의 갈레노스의 의학적 견해를 비판하고 병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입장에 섰다.


 

문외한의 관점에서 정리해보자면, 갈레노스의 의학은 오히려 체내 기관의 기능 불균형에서 병의 원인을 찾는 관점을 고려할 때 한의학의 관점을 닮았다. 반면 외부에서 유입된 병의 원인을 퇴치하려는 관점에서 볼 때 파라켈수스의 의학적 견해는 오히려 현대 약리학의 전통에 맥이 닿아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파라켈수스의 주장과 실천 중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병을 유발하는 원인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사용하는 것, 특히 이를 위해 금속 성분을 약으로 처방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매독을 치료하기 위해 수은을 처음으로 처방했다 것이다. 저자가 연금술 역사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주목하는 파라켈수스의 연금술에 대한 내용은 매우 흥미로웠다. 다만 파라켈수스가 흥미로운 인물이긴 하지만, 연금술을 반대하는 학자와 교회 세력에 의해 파라켈수스를 비롯한 연금술사들이 마법사들과 함께 불경스럽고 미신적인사람들로서 악마화되는 과정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에서 출발하여 모든 존재의 근원을 입자로 보는 질료입자론에 도달하는 데 연금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보는 것 같다. 좀 더 자세히 부연하면, 실험과학으로서 얻은 지식의 축적을 통해 연금술사, 과학자들은 점차 물질에 대한 입자설로 구체화해갔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입자설의 전통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다르다.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자설에서는 모든 질료를 무한히 나눌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은 진공을 혐오한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관점에서 모든 질료를 무한히 나눌 수 있다고 본다면, 세계는 무한히 잘게 쪼개져서 빈틈을 가질 수 없고, 결국 이 세계에 진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설명할 수가 있게 된다. 어쩌면 반대로 자연에는 진공이 없다라는 명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물질의 입자는 무한히 쪼개질 수 있다는 이른바 연속설을 주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주장이 기원 후 초기의 카톨릭 교부들(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형성된 스콜라 철학이 권위로 작용하여 중세를 지배했다는 사실이다. 반면 카톨릭 세력,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지지하는 세력의 견제와 비판을 받은 이 이론과 달리,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로 대표되는 원자설의 전통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 원자설은 모든 질료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아이스토텔레스의 연속설과 출발점을 같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차이점은 이 입자를 작게 쪼개다보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원자(atom)’를 가정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스콜라 철학의 주요 토대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속설(연속입자설)’에 기반을 둔 반면, 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이론이 바로 원자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원자설의 관점에서 보면 갈릴레이의 제자이기도 했던 토리첼리가 발견한 진공개념도 설명할 수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비전공자로서 여기에 주목한 이유는, 이 책 프로메테우스의 야망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에서 근대 과학의 주춧돌을 놓은 보일, 라부아지에 등의 질료입자론전통에 연금술이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반면 내 견해는 조금 다르다. 나는 고대 그리스에는 이미 두 가지 입자설의 전통이 있다고 보는 것에서 이해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속설이라고 표현한 입자설의 전통에 이미 기대고 있었다고 이해했다. 반대로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등의 맥을 잇는 관점에 따른 입자 이론은 원자설에 해당한다. 결국 입자를 무한히 작게 나눌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자개념은 연속설, 데모크리토스의 입자개념은 원자설로 나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입자설이 건전하게 대립과 경쟁을 통해 각자의 견해를 입증하고자 했다면, 세계의 질료에 대한 이해가 몇 세기는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속설은 스콜라철학의 교리 형성, 교황 세력의 비호아래 중세에 지배적인 관념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하지만 데모크리토스로 대표되는 원자설의 전통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이 전통을 지지하는 과학자들 물의 전기 분해와 같은 화학 실험을 통해 원자의 존재를 재발견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근대 화학 혁명의 핵심이라 볼 수 있고, 이 위상 변화에 결정적으로 연금술이 영향을 미쳤다고 이해해보는 것이다. 다시말해 연금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속설전통에서 (근대 화학의 기원이 된) 데모크리토스로 대표되는 원자설전통에 결정적으로 힘을 실어 주는 역할을 했다고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이 부분은 과학사 전공자가 이를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다시 분명히 확인해보고 싶은 점이기에 내가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겨둔다. 이 분야의 대가가 쓴 책을 오독했을 확률이 99%이긴 하나, 조금 다르게 읽어보는 재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특히 흥미로운 주제인 호문쿨루스에 관한 이야기가 할애되어 있다. 이 부분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은 사람이면 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호문쿨루스에 대한 주제는 SF작가 테드 창의 당신의 인생 이야기에 실린 단편 일흔두 글자와 관련지어 흥미롭게 읽었다. 이 소설에서 호문쿨루스와 유대 신비주의 전통에서 나온 골렘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진흙으로 빚은 존재에게 생명력을 주는 것은 문자()’라는 모티브가 매우 생소한 소설이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의 야망에서 이야기해주는 골렘의 전통에 관한 내용을 읽고서야 비로소 테드 창의 이 단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단편은 유대 신비주의에서 나온 골렘에 관한 믿음을 충실하게 자신의 소설에 적용하고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회에 보다 자세히 현재적인 주제나 관련 도서와 함게 정리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 책 프로메테우스의 야망은 연금술이 과학혁명, 특히 화학 분야에 미친 영향을 암시하는 선에서 끝나지만, 화학사의 관점에서 연금술의 전통이 과학혁명기에 미친 영향의 단면을 살펴보려면 장하석 교수의 물은 H2O인가?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연금술은 우리가 자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인류의 역사에서 자연을 알고자 오랫동안 이루어진 도전 과정을 담고 있다. 보다 거칠게 말하면, 오래 시행착오를 거친 실천적인 방법론으로 이해해볼 수 있겠다. 이점은 연금술이 기여한 역할 가운데 하나로서, 근대의 과학혁명에 주도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물론 중요한 점은 화학분야의 과학혁명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며, 이미 중세시대에 큰 변화, 내지는 혁명이 이루어질 발화점 아래에서 만만치 않은 논쟁이 부글거리며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점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또 다른 영향은 연금술의 전통이 여전히 그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연금술의 현재성이다. 여기에는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왜곡된 태도를 낳은 부정적인 측면도 포함된다. 정통 카톨릭 교리에 부합하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문제부터, 악마의 개입에 대한 논쟁, 이후의 마녀 사냥에 미친 영향, 우생학의 씨앗을 낳은 문제,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 생명 공학과 인공지능에 까지도 연금술의 영향은 미치고 있다.


 

최근, 논문 조작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황우석 박사가 현재 국내를 떠나 아랍에미리트(UAE)에 정착하여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는 낙타를 비롯하여 150마리 이상 동물 복제를 한 상태라고 한다. 이 기사를 보면서 생명을 복제하고 자연을 통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과 도전이 연금술의 전통으로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특히 중세에 연금술 논쟁을 일으킨 거대한 자료의 보고였던 아랍지역에서 동물 복제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뉴스가 연금술의 역사를 고려할 때 상징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메테우스의 야망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전통이다. 다만 우리는 저자가 이 책에서 의도한 대로, 연금술을 단순히 사이비 지식으로만 뭉뚱그려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다시금 느끼는 점은, 연금술이라는 전통은 인류의 문명 속에서 도도히 흐르고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기예, 혹은 인간의 의식 및 삶과 공진화해온 인류의 기예로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1] "자연에 기반을 둔 기예는 자연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아지도록 사물을 이끌거나, 아니면 자연을 그저 모방한다."(65)
-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학》에서 언급한 내용.

[2] "이전의 저작들 대부분과는 달리 《역학 문제들》은 자연을 강력하게 정복하는 것을 오히려 바람직한 목표로 설정한다. 기계를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향해 실질적인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75)
-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담은 어느 후대 학자의 저서에 담긴 내용.

[3] "회화와 조각, 살아 있는 듯 보이는 오토마타를 제작하는 기예와는 달리 연금술은 자연적 생산물을 재생산하되 그 안에 포함된 모든 내부 성질까지도 재생산하기를 추구했던 기예였다."(78)

[4] "이처럼 확신 있는 표현들(‘자연적인 것보다 더 나은 것’, ‘참으로 은보다 더 나을 것’)은 대(大)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나타난 태도와 동일한데, 그는 인간이 만든 향료와 염료가 그것들이 따랐던 자연의 원본을 ‘정복했노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83)

[5] "마법은 천상의 힘을 물리적 물ㅊ에 이식함으로써, 의학은 인간의 몸을 병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건강함으로 이끎으로써, 농업은 씨앗을 정성 들여 지배하고 경작함으로써, 자연적인 것을 더욱 탁월한 완전성으로 이끌 수 있다고 여겨졌다."(93)

[6] "다른 어떤 주제와도 다르게 연금술은 중세와 근대 초 사람들 모두에게 자연과학과 기술의 도덕적이고 존재론적인 한계를 깊이 성찰하게끔 하는 초점을 제시했다."(94)

[7] "연금술이 서유럽에 유입된 시기는 대개 로베르투스 케테넨시스가 유명한 아랍어 문헌을 라틴어로 번역했던 1144년으로 추산된다."(108)

[8] "마법의 기에는 신으로부터 허락된 악마의 능력과 지식을 수단으로 삼아 작용한다."(111)
- 중세 연금술 논쟁에서 반대했던 알베르투스의 맥을 잇는 페르투스의 언급.

[9]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상학》 제4권에서 종이 변성될 수 없음을 연금술의 기예가로 하여금 알게 하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악마들은 [종을 변성시킬]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오로지 기예를 통해서만 일하기 때문이다."(112)
-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논증(연금술 비판/반대의 입장).

[10] "우리의 의도는 이러한 연금술 토론문제들을 일일이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연금술이 기예-자연 논쟁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탐색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표본이 될만한 가장 중요한 몇 가지 문헌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140)

[11] "실제로 《헤르메스 서》를 비롯한 중세의 여러 연금술 문헌이 채택한 인공-자연 구별의 경험주의적 접근법은 베이컨과 그의 17세기 후예들인 로버트 보일, 존 로크의 입장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141)

[12] "기본 금소의 황금변성에 관해 게베르는 원소들이 상호 변성된다는 질료형상적 설명을 입자론적 설명으로 대체했다. 그의 전복적인 사고는 17세기에 이르러 다니엘 제네르트와 로버트 보일의 입자론적 화학을 통해 그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160)

[13] "가장 중요한 계기는 교황 요한 22세가 연금술을 정죄하는 교서 <그들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다>를 반포했던 사건이었는데, 이 교서는 변성이 ‘사물의 본성 안에 있지 않다’고 논증함으로써 연금술사들에게 위조범이라는 딱지를 붙였다."(170)

[14] "스위스의 주목할만한 의학 및 종교 저술가이자 파라켈수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테오프라스투스 폰 호헨하임(1493-1541)은 자연마법 및 비의적 실천과 깊게 연결된 근본 과학으로서의 연금술을 옹호했던 갑작스러운 인물이었다."(209)


"파라켈수스의 연금술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기술을 의학에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실험실 기술로 생명의 여러 과정을 설명하는 진정한 화학적 생리학으로 확장되었다. (...) 파라켈수수스의 우주론적 의화학에 필적할 만한 포괄적인 사상이 중세에는 없었다고 말해야 정당할 것이다."(210)

[15] "비링구치오가 활동했던 1520년대 후반의 피렌체는 연금술을 향한 관심이 집중된 도시였다."(245)

[17]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모든 광물과 돌은 하루 동안에 만들어졌으며, 그 가운데 어느 것도 불완전하지 않았다. 신은 각각의 모든 종을 온전하게 창조했으므로 그것을 변성시키려는 시도는 불경한 것이다."(270)

[18] "인공 생명에 관한 고대 후기 및 중세의 이론은 두 가지 주요 범주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저작들이 제시해놓은 개요에 따른 자연 발생 이론에 기초한 범주이고, 다른 하나는 주엣 유대교의 골렘처럼 창조주 신의 우주론적 신화에 기초한 범주다."(298)

[20] "정자는 형상이고 생리혈은 질료라는 관점으로 태아의 발생을 설명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이후로 도전을 피할 길은 없었을 테지만, 그의 이론은 중세 전체를 지배하는 규범이 되었다."(305)

[21] "조시모스는 기원후 1세기에 성립했던 그 유명한 철학 및 종교 대화 모음집인 《헤르메스 전집》의 저자로 알려졌던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를 추종했던 인물이다. 《헤르메스 전집》에서 눈에 띄는 주제는 몸이 영혼의 감옥이라는 영지주의적 아이디어였다. 헤르메스에 따르면, 물질적 세계는 영혼으로 채워져 활성화되었지만 타락에 의해 오염되었다."(307)

[22] "살라만-압살 설화가 이미 보여주었듯이, 인공적인 인간 생명이라는 주제는 이슬람 문명권에서 열정적으로 채택되었다. 특별히 아랍 문화에서 이 주제는 서로 구별되면서도 부분적으로는 겹치는 두 가지 전통으로 계승되었다. 하나는 비의적 성질을 다루는 가장 뛰어난 분야, 즉 라틴 중세에서 자연마법(magia naturalis)이라고 불리던 분야다. 다른 하나는 물론 연금술이다."(316)

[23] "유대교 학자들이 생각했던 인간 생명 복제의 작업 방식은 우리가 지금까지 검토해왔던 어떤 전통들과도 전혀 다르다. 골렘(Golem)은 종교적 마법이라는 수단을 통해 생명을 얻은 인공 인간이다."(324)


"골렘은 카발라(Cabala)라는 다소 막연한 이름으로 불리는 전통적인 유대교 신비주의의 산물이다. 카발라는 가장 오랜 출발점에서부터 히브리어 단어와 문자의 의미를 강조해왔다."(326)

[24] "유대학자 게르숌 숄렘과 파라켈수스 연구자 발터 파겔은 골렘이 16세기 파라켈수스의 호문쿨루스를 미리 보여주었다고 논증한다."(329)
- 게르숌 숄렘은 유대계 독일학자 발터 벤야민의 절친이었음.

[25] "발생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창조주와 평범한 피조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파라켈수스의 호문쿨루스는 히브리 골렘과 가장 먼 대척점에 서 있다. 파라켈수스의 호문쿨루스는 유대교의 골렘과는 달리 공격적이지도 않고 위협적이지도 않기에 파괴될 필요가 없다. 벙어리가 된 존재로서 말을 하지 못하는 골렘은 어떤 점에서는 열등한 하위 인간이다."(330)

[26] "오늘날과 비교하는 것이 경솔한 일이 아니라면 어쩌면 골렘은 보통의 생물학적 과정이 비-생물하적 방법에 의해 제거되거나 복제되는, 로봇공학이나 사이버네틱스, 인공지능의 세계와 같은 ‘딱딱한’(hard) 인공 생명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에 진정한 의미의 호문쿨루스는 생물학을 제거하기보다는 변화시키는, 즉 시험관 수정이나 클로닝, 생명공학과 같은 ‘축축한(wet)‘ 세계의 소산이다."(331)

[27] "1957년 파올로 로시의 탁월한 연구서 《프랜시스 베이컨: 마법에서 과학으로》가 출판된 이래, 이 고명한 대법관 베룰람 남작(베이컨)이 연금술 문헌으로부터 의미 있는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 책에서 로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베이컨의 주제가 연금술 및 자연마법 저작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했다."(437)

[28] "베이컨이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사이의 본질적인 동일성을 확장해 실험으로부터 도출된 지식에 우선권을 부여했던 것은 기예-자연 논쟁에서 기예를 지지하는 입장의 주된 근간이 되었던 ‘제작자의 지식’ 개념으로부터 그가 빚을 졌음을 보여준다."(458)

"베이컨이 기예를 자연에 동화시킨 것은 전혀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지만, 그의 견해는 실험을 향한 그의 빈틈없는 태도와 결합해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주목할 만한 결실을 맺었다. 아마도 베이컨주의적 태도를 지녔던 가장 유명한 인물은 이제 우리가 살펴볼 ‘자연주의자’ 로버트 보일일 것이다."(459)


[29] "과거 한태의 인식과는 달리 최근에는 보일이 연금술로부터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애에 걸쳐 기본 금속을 금으로 변성시키려고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수수께끼 같은 스승이었던 아메리카 망명자 조지 스타키를 비롯한 연금술사들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게다가 보일은 자신의 물질 이론의 상당 부분을 연금술적 화학으로부터 비롯된 아이디어 위에 세워두었다."(460)

[30] "더 흥미로운 사실은 보일이 기예-자연 구별에 대한 자신의 수정된 입장을 가지고 스콜라주의의 질료형상론을 공격하는 무기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보일이 보기에 기계론의 가장 큰 적은 실체적 형상 이론이었다."(461)

[31] "물질적 세계에 관한 우리의 지식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접근 불가능한 실체적 형상이라는 관념적인 존재가 아니라 다름 아닌 이러한 접근 가능한 속성들이다. 로크 자신이 직접 변성 연금술에 관여했다는 점, 그리고 보일이 죽을 때까지 현자의 돌이라는 주제로 아이작 뉴턴과 서신을 주고받았다는 점은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473)
- 로크가 연금술적 의화학에 관여했다는 증거도 연구되어 있다.

[32] "그(괴테)의 작품 가운데 연금술이 가장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다름 아닌 《파우스트》 제2부 제2막에서다. 여기서 우리는 파우스트의 현학적인 조수 바그너가 환상적인 연금술 실험실에서 편히 앉아 호문쿨루스를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과 마주치게 된다."(497)

[33] "1829년 겨울, 괴테는 에커만에게 《파우스트》 제2부 제2막을 들려주었다. 괴테는 호문쿨루스가 단지 조수 바그너 혼자만의 피조물이 아니라 그 제작 과정에 메피스토펠레스도 능동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관객들에게 충분히 분명하게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면서 걱정하고 있었다. 호문쿨루스의 기원에 악마적 요소도 포함된다는 강조점에도 불구하고, 괴테는 자신이 공감했던 지점에 어떠한 의심도 남겨두지 않았다."(501)

[34] "우리 시대의 신문 삽화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여전히 15세기에 토스타도가 염려했고 16세기에 파라켈수스의 후계자들이 즐거워했던 수많은 이슈에 의해 에워싸여 있다. 체외 발생과 복제, 여성의 ‘대리모’, 유전 공학이 불러오리라 예견되는 결과들은 근대 이전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결과들 속에 이미 나타나 있다."(506)

[35] "뉴먼에 따르면, 중세 후기 연금술사들은 질료를 입자로 이해하는 구체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연금술사들의 이른바 질료입자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롯되어 중세 스콜라주의를 지배했던 이념인 질료형상 이론과는 대척점에 놓여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질료형상 이론 또는 실체적 형상 이론이 근대 초 화학자들의 등장으로 극복된 것이 아니라 이미 중세에서부터 만만치 않은 경쟁자와 대결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미 있는 관점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549)
- 옮긴이 해제

[36] "뉴먼은 연금술사들의 실험 행위야말로 중세 후기의 입자론을 고대 그리스 및 헬레니즘 시대의 원자론으로부터 구별해주는 핵심적인 단서가 된다고 주장했다."(549)
- 옮긴이 해제
-내가 이해하는 관점은 뉴먼과 달리, 연금술의 실험 행위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롯되어 중세를 지배했던 ‘연속적 입자론’으로부터 고대 그리스 및 헬레니즘 시대의 ‘원자론’을 재발견하고 그 맥을 화학 혁명으로 이어지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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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가 있었다 - 사라지고 살아남고 살아가는 생명 이야기 푸릇푸릇 지식 1
이자벨 핀 지음, 전진만 옮김 / 시금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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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시각과 인간에 의한 과잉살육의 폐해를 모든 세대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 눈에 잘 보이는 큰 동물들뿐만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에게도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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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의 시간 - 길 잃은 물고기와 지구, 인간에 관하여
마크 쿨란스키 지음, 안기순 옮김 / 디플롯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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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는 인간의 운명을 알려주는 지표다

- 연어의 시간를 읽고

 


마크 쿨란스키(Mark Kurlansky) 지음 | 안기순 옮김 | [디플롯] | (2023)

 




연어의 조상은 약 1억 년 전, 공룡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인간의 조상은 현생 인류를 넘어 유인원까지 포함하더라도 200-300백만 년에 불과하다. 인류는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 공룡들을 본 적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까마득한 후배인 인간이 불과 몇 세기만에 선배인 연어의 생존마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환경 및 역사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해온 작가 마크 쿨란스키는 연어의 시간에서 민물과 바다를 오가는 대표적인 소하성 어류인 연어를 고찰하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준다.


 

현생 인류가 출현했을 때 이들은 자연의 두려움뿐만 아니라 풍요로움도 만끽했을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지식과 상상력으로 도달하기 힘든,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켈트족의 전설에 나오는 연어를 이야기해준 대목이 인상적이다. 켈트족에 따르면, 연어는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마다 더 많은 지식을 얻는다. 연어는 이미강과 바다를 모두 정복한 존재였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지식을 지니는 존재였다는 믿음이었다. 내게 이러한 믿음은 자연의 존재에 대한 신뢰와 경이, 존중이 담긴 상호관계성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모든 환경·생태 문제들은 인간의 그릇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이 오만해지면서 자연에 대한 경이감과 존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고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은 이제 자연이 내어주는 풍요로움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연어의 시간에서 저자는 유럽의 백인들로 대표되는 인간이 유럽 본토를 포함, 신대륙(특히 북아메리카 대륙)을 어떻게 유린하고 황폐하게 만들어갔는지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백인은 물고기를 식량과 거름으로 사용하다가 급기야 (강에) 댐을 세우고, 나중에는 빌레리카 운하를 건설하고, 로웰에 공장을 세우면서 물고기 이동(연어/섀드/에일와이프 등)에 종지부를 찍었다.”(139)


 

이 대목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39년 메리맥강에서 형과 함께 카누를 타면서 연어의 회유 경로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고 적은 기록이다. 이 기록만 보더라도 인간이 연어의 생존에 위협을 가한 시기는 적어도 200년은 족히 된 셈이다. 미국 역사에서 1848년은 세계사적인 시점이자 하나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바로 캘리포니아주에서 금광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 세계에서 약 30만 명이 사금을 찾아 이곳으로 몰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해는 연어에게 암울한 미래의 시작을 알리는 해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강에서 사금을 채취하고, 광산을 개발하면서 연어 서식지가 급속하게 파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새크라멘토강에서는 사금찾기가 시작된 지 5년이 지나자 연어 떼가 사라지기도 했다. 소로가 살던 시기에 그가 보았던 문제들은 어쩌면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가 안고 있는 보다 큰 문제는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행보에 머뭇거림 없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의 운명은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의 풍요로운 자연을 목격한 15세기 말 이후, 자연에서 나오는 산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유럽으로 가져가기 시작하면서 이미 암울한 전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북미 지역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연어 회유장소나 다름없던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템스강도 연어가 회유하던 곳이었으나 이곳에서 연어가 잡혔다는 기록은 1833년 이후 남아 있지 않다. 책에서 저자는 자기고백적인 태도로 다음과 같이 고찰한다.


 

영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산업 강대국이 되었고, 뉴잉글랜드는 영국에 버금갔다. 오염되고, 숲은 벌거벗고, 강에 유독물이 흐르고, 물고기는 죽었다. 하지만 중요한 목표는 달성했다. 유럽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과정을 되풀이할 작정이었다. 유럽인은 식민주의자들이었다. 심지어 반식민주의 미국인들도 제국주의 정복자들이었다.”(164)


 

자신이 속한 사회의 역사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성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점이 내가 발견한 이 책의 진가이기도 하다. 저자의 관점은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연어가 살아남지 못하면 지구도 생존할 희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 연어가 강과 호수, 바다 모두를 정복한존재이기에, 연어가 지구의 건강을 가늠하는 지표라고 하는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 연어를 살리고 되돌아오게 하려면 강을 깨끗하게 하면 되는 걸까?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다. 연어는 무엇보다 우거진 숲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은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야 한다. 저자가 연어와 강 그리고 숲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73)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 책은 연어의 경이로움에 관한 책이면서 인간과 연어의 관계에 관한 역사, 특히 인간에 의한 연어 수난사를 이야기한다. 인간이 연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연어를 바라보는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비판적인 안목으로 재검토한다는 점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그릇된 신념은 연어의 남획과 환경파괴로 인한 연어 개체수의 감소를 초래했다. 이러한 신념이 이제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마저 위협하고 있다. 인간은 종족의 생존이 시험대에 오를 때마다 지혜를 모아, 난국을 극복해왔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념도 이제는 다시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활동에 의해 야생 연어의 개체수가 감소했지만, 양어장을 구축하면 줄어든 개체수를 대체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기만이다. 뿐만 아니라 긴밀하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서로 의존하며 존재하는 생태계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기도 하다.


 

현재 연어의 개체수는 19세기 초반의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북반구에는 수많은 연어 어장이 있었다고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여파, 벌목과 관개 등의 개발활동과 산업 활동 등으로 숲과 강이 훼손되어 이제는 수많은 강에서 연어가 사라져버렸다. 러시아, 일본, 미국의 원주민이 식민주의 정치 세력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어업권을 박탈당하는 동안 연어도 고향을 잃어간 셈이다. 이 책은 연어를 통해 이들이 자연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생명체이며,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위협적이거나 자극적인 자료를 통해서가 아니라 단호하지만 차분히 우리가 선택하여 나아가야할 방향을 일러주는 책이다



[1]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연어가 살아남지 못하면 지구 또한 생존할 희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37)

[2] "연어는 북반구에만 서식하지만 늘 지구의 건강을 가늠하는 일종의 지표였다. (...) 연어를 통해 인간이 환경에 가한 폭력의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37)


[3] "어째서 연어는 이토록 많은 종으로 진화했을까? 끊임없이 적응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연어는 환경 변화에 맞춰 유전적 특성을 조정한다."(60)

"같은 종이면서 다른 강에서 태어난 두 연어의 DNA차이는 두 사람의 DNA 차이보다 훨씬 크다."(61)

"갈 곳을 잃고 표류하던 연어가 새로운 강에 들어가면 그곳에 적합한 특성을 지닌 새로운 종이 생겨난다."(62)

[4] "연어와 강 그리고 숲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73)

[5] "네덜란드는 남획뿐 아니라 수력발전 댐을 건설해 강을 오염시켰다. 네덜란드가 유럽 최대 어획량을 달성한지 100년이 지나자 라인강에는 연어가 귀해졌다."(119)

[6] "바다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풍부한 광산보다 낫다."(131)
- 뉴잉글랜드 정착을 추진했던 존 스미스 선장의 말.

[7] "벌목꾼, 소몰이꾼, 나라를 쥐고 흔들었던 석유업자를 비롯해 환경을 파괴하는 거칠고 용감한 남성을 미화한 이야기는 미국 문화에서 흔하다."(141)

[8] "16세기까지 (일본의) 아이누족은 연어를 낚으며 전통적인 삶을 고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낚시에 대한 권리와 접근성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1872년 아이누족의 소유지는 없다는 법이 공표되었다. 1899년 교묘하게 말을 꾸며 완곡하게 표현한 ‘홋카이도구 원주민 보호법’은 아이누족이 일본에 완전히 동화되어 비민족(nonpeople)이 되었으므로 땅에 대해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158)

[9] "영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산업 강대국이 되었고, 뉴잉글랜드는 영국에 버금갔다. 오염되고, 숲은 벌거벗고, 강에 유독물이 흐르고, 물고기는 죽었다. 하지만 중요한 목표는 달성했다. 유럽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과정을 되풀이할 작정이었다. 유럽인은 식민주의자들이었다. 심지어 반식민주의 미국인들도 제국주의 정복자들이었다."(164)

[10] "명확하고 단순하게 자연을 다루면 거의 틀림없이 실패한다. 자연법칙은 언뜻보면 단순하지만, 항상 결과를 추측하기조차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226)

[11] "양어장 운영 방향은 잘못됐다. 야생 물고기를 잃은 만큼 양어장 개체가 그 부족분을 항상 상쇄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258)

[12] "우리는 경제를 번영시킬 때 자연에 더 많은 손해를 가한다."(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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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의 상상력, 자유로움에 대하여

:파인먼 평전중에서





 

 


















올해 제임스 글릭의 작품들을 역주행해보기로 했는데, 

아직 <파인먼 평전>에서 머물러 있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 인상적인 문장들. 파인먼이 예술과 다르게 과학에서 과학자들의 창조성과 상상력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다.

 



파인먼은 과학적인 창조성이라는 것은 구속복 속의 상상력이라고 말했다.”(533)


 

혁신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자유롭게 떠올린 만족스러운 생각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리학 법칙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발상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알려진 자연의 법칙과 명백히 모순되는 대상을 우리가 진지하게 상상하도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물리학자가 떠올리는 상상력이란 꽤나 어려운 게임입니다.”(533)


 

파인먼이 말했다. ‘과학자들의 상상력은 소설에서처럼 거기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상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단지 이해하기 위해 생각을 가능한 한 최대로 펼치는 것입니다.’”(534)

 



현대 예술가들에게 참신함, 자유로움은 무엇을 의미할까. 비예술가의 입장에서 예술가들에게 요구 혹은 기대되는 자유로움, 참신함은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자유로움보다 훨씬 모호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자유로움과 참신함에는 파인먼이 구속복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보다 분명한 제약이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학자는 자연을 관찰하고 설명해내기 위해 자연에서 보다 보편적인 어떤 원리를 찾아낸다. 바로 여기에 과학자들의 상상력이 요구된다. 다만 상상된 결과는 과학자들의 지식과 이해의 범주에 적합해야 한다. 곧 자연 현상과 일치하고 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구속복처럼 과학자의 상상력 주위로 상당한 제약이 가해지게 되는 셈이다.  



 

"파인먼은 과학적인 창조성이라는 것은 구속복 속의 상상력이라고 말했다."(533)

"혁신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자유롭게 떠올린 만족스러운 생각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리학 법칙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발상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알려진 자연의 법칙과 명백히 모순되는 대상을 우리가 진지하게 상상하도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물리학자가 떠올리는 상상력이란 꽤나 어려운 게임입니다."(533)

"파인먼이 말했다. ‘과학자들의 상상력은 소설에서처럼 거기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상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단지 이해하기 위해 생각을 가능한 한 최대로 펼치는 것입니다.’"(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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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 동아시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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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가 그려준 파인먼 초상




천재 물리학자 파인먼의 35주기,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시 만나다

- 파인먼 평전을 읽으며

 

제임스 글릭(James Gleick) 지음 

양병찬·김민수 옮김 | [동아시아] | (2023)

 



 

Of all its many values, the greatest must be the freedom to doubt.

Richard Phillips Feynman(1918.05.11-1988.02.15)

 


이 문장은 고등학교 때 동네 서점에서 파인먼을 발견한 이후, 대학 시절 내 책상 앞에 줄곧 붙여두었던 문구다. 처음에는 알 듯 모를 듯 했던 표현이었으나, 삶의 경험치가 쌓이고 여러 상황에서 이 문구를 떠올리곤 했다. 내겐 괴짜 과학자 같았던 그의 이미지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의혹을 제기하는 인물의 전형으로 나의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셈이다. 최근 파인먼 평전을 읽고 있는데, 마침 오늘(215)이 파인먼의 35주기이기에 간단한 독서 기록을 남겨본다.


 

우선 파인먼은 동유럽 유대인 이민자의 후손이다. 따라서 위에 인용한 문구는 유대인의 후츠파(chutzpah)’ 정신을 우선 떠올리게 한다. ‘후츠파는 히브리어에서 온 말로, 문자 그대로는 무례함, 뻔뻔함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표현은 도전하는 정신, 용기, 배포 등의 맥락을 포함한다. 정통 유대교를 신봉하지 않았던 파인먼의 집안 분위기에서 그가 평생 가식과 권위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이에 도전했던 모습과 연결 지을 수 있겠다. 이 평전에 언급된 것처럼 그는 세상 사람들의 가식과 권위를 그토록 경멸하던 홀든 콜필드’(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였던 셈이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두고 우리는 어떤 표현으로 정리해볼 수 있을까. 우선 파인만은 많은 이들에게 괴짜이자 천재 과학자로서 알려져 있을 테다. 이미 20대일 때 핵폭탄 개발 연구 작업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촉망받는 과학자로 참여한 인물, 국가 기밀문서를 보관한 금고를 모두 열어버린 인물, 양자전기역학을 포함한 물리학의 여러 분야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노벨상 수상자 등의 사례에서 파인먼이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말해주는 수많은 지표를 보여준다. 또 다른 한 면으로는 사랑하는 첫 부인과의 사별 후 보인 여성편력과 세 번째 부인을 만난 이후 가정적인 삶으로 돌아간 이후의 모습들, 봉고 드럼과 같은 리듬악기를 연주하거나 그림 그리기를 배우는 등 아이와 같은 호기심을 지니고 삶을 누리는 데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된다.


 

파인먼의 다양한 모습들 가운데 내게는 그가 가식을 싫어하고 권위에 체질적으로 거부감을 보였던 모습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학창시절에 처음 알게 된 파인먼을 이제는 제임스 글릭의 파인먼 평전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미국이 세계초강대국이 되어가던 시기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던 시대를 가로질러 살았던 한 미국인 과학자의 삶을 재구성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미국이 몰락하기 시작하는 상징적인 사건가운데 하나가 바로 챌린저호 폭발사건이라고 본다. 거대한 관료집단이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비효율적인 상태가 되어버린 상황, 냉전 시기 이데올로기의 대결 구도 속에서 성공에 대한 압박으로 과정 그 자체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면서 재난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된 것. 나는 이 증상이 바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보았다. 파인만은 이러한 삶의 한가운데에 서서 역사의 현장들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었다.


 

이 책을 읽기가 만만치 않지만, 책을 읽을 때 몇 가지 방식을 염두에 두면서 시도해볼만 하다. 우선 파인먼을 둘러싼 인물들에 주목해보는 것이다. 파인먼과 다른 인물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주목해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예를 들면, 파인먼과 줄리언 슈윙어를 견주어보는 것. 두 인물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1918년 생으로 동갑인 물리학자들이었다. 다만 각자의 캐릭터는 너무나 뚜렷하면서 스타일도 확연히 달랐다. 두 사람은 모두 유대인이었고, 196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함께 받았지만, 강의 스타일이나 말투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슈윙어가 좀 더 화려하고 격식을 갖춘 완벽함을 지향했다면, 파인먼은 우아함보다는 솔직하고 격의 없으며 빠른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두 사람의 오랜 라이벌 구도를 통해 두 동갑내기 물리학자가 어떻게 서로 경쟁하고 발전해나가는지 따라가 보는 일은 흥미롭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파인먼과 같은 직장의 동료 물리학자 머리 겔만과의 관계, 파인먼과 프리먼 다이슨 사이의 일화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제임스 글릭은 파인먼과 겔만을 유명한 미국 배우들을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다. 옷을 잘 차려 입는 신사 같은 이미지로 영화에 등장하곤 했던 아돌프 멘주는 겔만에, 그리고 코미디언으로 희극적인 배역을 많이 맡아 등장했던 미국의 배우 월터 매사우는 파인먼에 비유하는 식이다(635). 겔만도 파인먼처럼 유대인이었으며, 과학뿐만 아니라 폭넓은 교양을 갖춘 르네상스적인 인물이었다. 이와 달리 파인먼은 문학, 특히 시 같은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자연과학에 관해 외곬수적인 관심사를 보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미국은 여전히 귀족이 사회의 지도층을 점유하고 있는 영국처럼 정도가 심하지는 않으나 서양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말투는 그 사람의 배경을 규정지어주는 인덱스로서 기능하는 것 같다. 파인먼의 경우, 그가 명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빠르게 말하는 방식이 노동계급의 특징으로 먼저 인식되었던 것 같다. 젊은 시절 파인먼은 노대가 닐스 보어와의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는데, 귀족 가문인 보어는 파인먼의 노동자 계급을 떠올리게 하는 언어와 말하는 방식에 호감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파인먼을 둘러싼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평전이 두껍긴 해도 보다 더 입체적으로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파인먼 평전의 원제는 Genius. 이 제목을 염두에 두면, 천재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글에 저자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저자가 천재()란 과연 무언인가?’하는 물음을 쫓아 과거 여러 지식인들이 고민했던 행적을 따라가며 천재의 정체성을 탐구해나간다. 인류 역사상 많은 천재들이 나타났지만, 천재란 어떤 면모를 지닌 사람을 그렇게 부르는 것인지 저자는 궁금해 했을 법하다. 참고로 파인먼의 아이큐는 125였다. 낮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마술사 천재라고 불린 파인먼에게 기대된 아이큐에는 훨씬 못 미치는 값이다. 이걸 보면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천재라고 불릴 수 있는 보편타당한 특질이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과연 그런 특질이 존재하는 것일까? 저자는 결국 과학적 업적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말과 함께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파인먼의 한 마디를 덧붙인다. 결국 우린 모두 고만고만한 존재라고 말이다.

 


사람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올랐던 높이만 보고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하진 않는다. 사람은 무엇보다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길을 가는 가운데 그 사람의 마지막을 보고서야 그의 삶이 어떠했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파인먼도 두 번째 암이 재발하여 몸 속에 큰 혹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챌린저호 폭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작업에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참여했다. 내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파인먼의 모습은 다른 이들의 판단을 스스로 검토하지 않고 조금의 의혹도 지나치지 않았던 지적 성실함이었다. 여기엔 어떤 형태의 권위에 대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후츠파정신이 엿보인다. 파인먼 평전을 읽으며 느끼는 점은 파인먼의 구체적인 업적 이전에, 기존의 것에 스스로 합리적인 의문을 제시하고 자연의 비밀을 알아내고자 끊임없이 호기심을 지녔던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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