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책 읽을 시간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해야 할 일이 여러 개 밀려 있을 때, 한 꺼번에 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주말에도 일을 붙들고 있다. 시험 전날 항상 책상 정리를 하게 되거나 의식 같은 뭔가를 해야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그런가보다. 주말에 일을 붙들고 있다가 우연히 보게 된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의 강연을 보고 이 책에도 아주 관심이 많이 생겼다. 이 책은 이미 2017년에 출간되었고, 2018년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기도 했다. 제목은 많이 들어봤지만, 지금까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국내의 소설가가 쓴 소설이 영어로 번역되어서 좋은 반응을 얻었나보다 이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왜냐면 한국계 미국인이 한국식 이름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활동을 하는 것은 흔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이 책이 일본에 있는 자이니치(한국계 일본인)에 대한 소설인 줄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아마 이 책이 나올 때 즈음에 나는 회사일로 바빴을 지도 모른다. 책 제목이 '파친코'니 도박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소재로 했겠거니 생각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민진 작가는 7세 때 미국으로 이민간 이민 1.5세대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일하다가 전업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물론 현재는 교수의 직함을 달고 있지만, 때때로 저널리스트로서도 활동을 했다는 것 정도를 더 알게 되었다. <파친코>가 자이니치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더 흥미로웠던 점은 작가의 남편이 일본계 미국이라는 점도 있었고, 이 소설을 구상부터 탈고까지 30년이 걸렸다는 사실이었다. 작가의 강연 및 작가와의 만남을 담은 영상을 통해 작가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니, 작가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이 든다. 시간만 있다면 밤새 읽고 싶지만 당분간은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쉽지 않을 듯하다. 왜 하필 바쁠 때 더 읽고 싶은 책이 눈에 보일까 싶다. 내게는 <파친코>가 그런 책일 듯 하다.    


요즘 일본 정부와 우익들의 행태와 일본 사회의 면면을 보면 어떻게 일본이 이렇게 망가져버렸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일본이 그동안 많은 분야에서 앞서나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들의 신뢰마져 제대로 얻지 못한 상태로 자기들만의 길을 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정부와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국민들과의 간극이 상당히 커 보인다. 이 현상은 무엇보다 동일본 대지진과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일본 정부의 무능력과 비도덕성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와중에 일본의 폐전 이후 자이니치에게 가해진 차별 정책과 그로인해 더욱 어려워진 이들의 삶이 이민진 작가의 오랜 작업으로 전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이민진 작가는 '역사에서 투명성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어느 국가도 완벽하게 도덕적이고 성숙한 역사를 가진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우리 역사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후손이 자신의 역사를 투명하게 접근하여, 과거의 성취와 과오를 모두 조망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참고로 이 소설이 애플 TV드라마로도 곧 만들어진다고 하니 기대가 되긴 한다. 하지만 작가의 영상에서 보니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처럼 책 이외에 만들어지는 2차 저작권에 대해 작가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 모양이었다. 이 역사 소설이 외국인의 손으로 제작될 때, 어떤 작품이 만들어질지 궁금하면서도 우려가 앞선다. 작가도 이 부분에 대해서 걱정이 많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만약 이 애플 TV 제작에 일본인들의 압력으로 중요한 부분이 은폐되거나 보다 흥미 위주로만 가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윤여정 배우도 <파친코>영화 제작에 참여중이라고 들었다. 영화가 언제 나올 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 또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일본 우익들의 방해도 예상되지만, 한편으로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본의 자이니치가 겪어온 역사와 현실에 눈을 뜨게 하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싶다. 1910년부터 1989년 까지 80년에 가까운 근현대사의 한가운데에서 한 자이니치 가족이 겪는 에피소드를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하다.    


이민진 작가는 PBS(우리 나라의 EBS와 같은 교육 방송)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작가로서 큰 영향을 주었던 소설이 있다면 무엇입니까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조지 엘리엇의 <미들 마치>'라고 망설임없이 대답한 바 있다. <파친코>이 한 가족의 역사, 나아가 자아니치라는 대표성을 가진 공동체를 그려낸 것처럼, 작가는 '공동체'를 그린 소설에 매력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그런 소설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 같다. 다만 내가 이해하기로는 조지 엘리엇의 나레이션이 톨토스토의 소설처럼 '서술적'인 부분에서 또 상당한 독자가 편하게 읽기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덧붙이고 있기도 하다. 대신 미국식 스타일로, 간결하게 쓰는 좋은 작가로 애니 딜러드, 조앤 디디온, 존 업다이크, 그리고 존 맥피를 언급한다. 특히 존 맥피는 아름답고 깔끔한 문장을 쓰는 작가라고 말했다. 아마 능력이 된다면 원서로 읽어보아야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파친코>보다 먼저 출간된 작가의 책으로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이 있다. 이 소설 역시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정체성이 말해주듯 한국계 미국인 그리고 주인공의 가족이 겪는 삶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끊임없이 한국인에 대해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작가의 강연 중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도 더 많은 한국계 미국 작가가 활약했으면 하는 바램이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주목받지 못한 '인간의 조건'에 대해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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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9-24 0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된 한글책을 읽고 나서 원본이 더 궁금해지더라고요...조지 엘리엇의 작가는 모르지만, 왠지 원본을 읽으면 조금 알게 될 수도 있겠네요..^^
 












한 생애의 발자국들 뒤에

내 발자국을 얹어본다.’


: 시인 파울 첼란의 흔적을 찾아서 [2]

 

 

지난 글에서는 파울 첼란의 발자국을 상상하며 따라가 보았다. 오늘은 다른 작가의 글에서 우연히발견한 파울 첼란의 흔적을 더듬어 본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독일문학비평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폴란드 유대인으로서 20세기 전반이라는, 인류사의 유례없는 굴곡을 살아낸 인물이었다. 그런 까닭에 말년에 그가 남긴 회고록 나의 인생 Mein Leben을 인상 깊게 읽었다. 그런데 우연히 다시 그의 회고록을 넘기다가 라니츠키가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를 언급한 대목을 발견했다. 사실 우연히 파울 첼란의 전집이 나온 것과 비슷한 시기에 라니츠키의 회고록을 읽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시의 발견을 출발점으로 삼아 첼란의 삶을 좀 더 이해해볼 수 있을까 했던 것이 이번 기획(?)의 동기다.

 

라니츠키의 회고록 중에서 나의 눈길을 붙들었던 대목은 이렇다.

 

이튿날 토지아(결혼 전의 아내) 아버지의 장례가 치러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대인들은 땅에 묻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얼마 후면 유대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에 나오는 공중 무덤뿐일 것이다. 유대인의 자살이 아직은 생소하던 때라 묘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나의 인생, 178)

 

다시 이 부분을 읽어보니 무척이나 생소하다. ‘공중 무덤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나는 자살을 미화할 의도는 없다. 다만 모든 자살에는 메시지가 있다고 믿는다. 이 메시지의 앞에는 세상을 향한’, 혹은 사회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더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행동함으로써 언어로 이야기되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일이다. 여기에 인용한 대목은 나치의 위협과 굴욕적인 대우를 받던 폴란드 망명 시절 이웃집에 살던 랑나스씨가 자살한 사건을 언급한 부분이다. 어머니의 요청으로 랑나스씨의 딸을 위로해주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지만 랑나스씨의 죽음으로 두 사람의 인연은 결혼으로, 그리고 정말로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게 된다. 삶과 죽음 사이를 지나는 역사의 굴곡 속에서 맺어진 인연이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다.

 

마침 전영애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된 적 있는 죽음의 푸가(민음사, 2011)를 먼저 구하게 되어, 공중 무덤이란 표현이 등장하는 시를 찾아보았다. 이 시는 1952년에 출판된 첼란의 시집 양귀비와 기억에 실린 죽음의 푸가라는 제목의 시다. 그리고 이 시는 아우슈비츠를 소재로 삼고 있으며, 이 시집에서 가장 유명해진 시라고 한다. 참고로 시인의 집에서 전영애 교수는 이 시집이 1953년에 출판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97), 큰 문제는 아니겠으나, 출판연도가 1952년인지 아니면 1953년인지 정확한 것으로 수정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이 시집은 이미 첼란이 파리에 정착한 1948년에 적은 부수로 출판한 시들을 재수록한 것이라고 한다.

 

죽음의 푸가는 그다지 길진 않은 시지만, 번역자의 저자권 문제도 있으므로 여기에서 전문을 인용하지는 않는다. 이번 글에서는 시에 대한 소개와 출처를 밝히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공중에선 비좁지 않게 눕는다.

 

(...)

 

우리는 너를 마신다 낮에 또 아침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

 

그가 외친다 더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하라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가 외친다 더 어둡게 바이올린을 켜라 그러면 너희는 연기가 되어 공중으로 오른다

 -  (죽음의 푸가민음사, 전영애 옮김, 2011, 40-41)

 

내가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시인이 무엇을 보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너무나 어두운 얘기만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이 시를 상상해보기 위해 아버지를 화장하던 날 재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던 검은 연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딛고 있는 땅에 나를 낳아 준 존재가 매여 있다는 느낌, 더듬을 수 있는 형체가 사라져버렸다는 황망함이란 대체불가 한 것이었다. 그렇게 비쩍 마른 한 몸도 편안히 누울 수 없었을 수용소의 유대인들은 매일 가스실로 향하는 행렬과 굴뚝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검은 연기를 목격해야 했을 테다. 그들은 수용소에서 매일의 의식처럼 이들의 재를 들이마셔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동포들의 재를 들이마셨던 수용소 생존자들이 하나 같이 우울증으로 고통 받았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치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나 파울 첼란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것을 단순화해서는 안 되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과 같은 것은 아닐까라고 자문한 적도 있다. 이런 경험을 했던 사람들의 의식을, 경험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다만 상상할 뿐이다.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첼란의 시는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쓴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라는 글을 읽었던 기억으로 이어졌다. 식인 부족의 문화를 연구하기도 했던 그는 서양인들이 이 부족들을 미개인이라고 치부해버리는 편견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오히려 야만적인 자신의 문화를 돌아보았다. 식인 행위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부모나 지인을 태운 재를 마심으로써 이들을 자신의 내부에 모시는의식에 더 가깝다.


고고학자 강인욱의 책 테라 인코그니타에서도 식인 행위의 첫 번째 배경을 사랑의 발로라고 언급했다. 떠나간 가족, 친구를 보내는 환송 의식의 하나로 그 사람의 신체 일부를 먹음으로써 죽은 사람이 우리 곁에 영원히 함께 한다고 믿는 사랑의 발로”(63)라는 해석이다. 물론 첼란이 경험했던 비통하고 비인간적인 경험과 레비-스트로스의 관점, 그리고 일반적인 식인 행위의 시각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려는 것이 나의 목적은 아니다. 첼란이 살아남의 자의 죽음을 증언하는 언어를 따라가다 보니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라는 문제가 나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겠다. 곧 다른 동기에서지만, 타인의 재가 내 몸 안에 들어온다는 것의 경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청년 파울 첼란의 무대로 돌아온다. 지난 글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청년 시인 첼란과 미래의 문학비평가 라이히라니츠키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유럽을 관통했던 역사를 기록했다. 193811, 독일에서는 나치가 유대인의 건물을 파괴하고 재산을 빼앗았으며, 폭력을 자행했던 수정의 밤사건이 발생했다. 조국에서 유대인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길이 막힌 파울 첼란이 프랑스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위해 프랑스로 가던 시점에, 라니츠키의 가족은 불과 며칠 전에 독일에서 추방당했다는 것은 앞선 글에서 언급했다


폴란드로 쫓겨 간 라니츠키의 가족은 나치군인들이 자행하는 폭력적인 위협을 경험한다. 라니츠키의 증언에 따르면 독일군은 할례를 받는 유대인들을 색출하기 위해 남자들의 바지를 내리게 했고, 여자들에겐 관공서 바닥을 닦을 때, 이들이 입던 속옷을 벗어 걸레로 사용하게 했다. 어느 날 독일군에 호출된 라이츠키 형제는 우리는 유대인 개새끼들이다. 우리는 더러운 유대인이다. 우리는 인간도 아니다.라는 구호를 수도 없이 복창해야 했다. 우리는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인간의 놀라운 회복탄력성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선 경험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망가져버린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지 그들은 살아가는 동안에는 상황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로 연기하는 것일뿐인지도 모른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결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여기에 의문의 여지는 없다. 인간의 기억은 신체 전체를 통해 각인되니까. 그리고 의식은 신체와 분리가능한 대상이 아니다. 그저 몸과 하나를 이루는 몸의 일부이면서 몸의 전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존자들의 경험과 기억이야말로 비가역적 법칙을 따른다. 이런 행위를 강압에 의해 따라야 했던 이들뿐만 아니라, 이를 강요했던 이들까지도 말이다. 이들의 경험을 조금이라도 상상해보려면 이들이 남긴 증언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히틀러의 건축가이었던 알베르트 슈페어의 회고록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이라면 가해자의 입장을 조금은 상상해볼 수 있을까. 한나 아렌트가 남긴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증언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 같다. 알베르트 슈페어는 히틀러 정권의 전쟁 물자 생산을 총괄한 군수장관이었기에, 나치의 범죄 행위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내밀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일부의 비판처럼 자기 방어에만 급급한책인지는 읽어보면서 판단해볼 일이다. 최소한 리영희 선생이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달은 정황이 있으니,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이번엔 다른 작품에서 파울 첼란의 시를 살펴보려 한다. 그의 시 죽음의 푸가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작가가 이 시를 분명히 읽었음직한 정황이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 작가 홋타 요시에의 장편소설 시간 時間에서 그 정황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일본군이 자행한 난징 대학살의 면모를 그려내었다. 공교롭게도 난징 대학살이 발생했던 시기(193712- 19382) 역시 독일에서 발생했던 수정의 밤’(193811)과 시간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은 가해국(일본)의 작가가 피해국(중국) 장교의 시선으로 썼다는 점이다. 그는 난징 대학살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써내려가며 가해국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여기에 첼란의 시를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 나오는 것이다.

 

검은 점 하나로 응축된 검은 세발솥이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 세발솥은 옛사람들이 우주를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우주를 데우기 위해서 수탄(獸炭)을 썼다고 한다. 세 개의 두꺼운 다리 옆에 시체 두 구가 너부러져 있다. 시체 두 구를 숯으로 해서 우주가 데워지고 있다. 아지랑이처럼 사람의 피와 기름이 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의 난징을 상징하는 듯이.

(시간 時間, 박현덕 옮김, 글항아리, 73-74)

 

일본군이 수 개월간 유린한 난징의 모습을 시내로 나간 화자가 관찰하는 대목이다. “아지랑이처럼 사람의 피와 기름이 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라는 대목에서 나는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를 떠올렸다. 그 이유는 홋타 요시에가 이 소설을 발표한 것이 1955년이라는 시점과, 1918년생인 그가 30년대 말 혹은 40년대 초에 게이오대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는 것을 바탕으로 상상해볼 뿐이다. 나아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 죽음의 푸가가 실린 시집 양귀비와 기억1952년 혹은 1953년에 출판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미 1948년에 자비로 소량 출판한 책에 실려 있었기에 추정해보는 것이다. 요시에는 대학시절(30년대 말, 40년대 초) 이미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했기에,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당대의 시인들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보았을 법하다. 물론 첼란은 파리라는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 독일어로 시를 쓴 시인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요시에가 첼란의 시를 읽었는지 여부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첼란이 세상에 내놓은 살아남은 자의 증언을 요시에가 읽었다면, 그리고 첼란의 부모와 지인을 죽인 자들의 언어로 시를 쓴다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그 정황을 요시에가 인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던 것이다. 소설을 쓰기 전에 선체험으로 요시에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말이다. 나는 그 가능성에 주목하고 상상해보고자 했다. 요시에가 시간 時間을 씀으로써, 어쩌면 자신의 신변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을 이러한 글쓰기를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첼란의 언어가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상상해보는 것이다. 반성적인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첼란(1920년생)과 라이히라니츠키(1920년생)과 동년배인 요시에(1918년생)가 겪은 세계사적 사건들을 함께 바라볼 때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시인의 마지막 길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은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특수한 그의 삶을 닮았다. 시인은 투병을 시작하고, 가족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으로, 센 강 근처의 집을 얻어 따로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704월 어느 날 그는 파리 센 강에 투신한다. 투병 중이던 그의 방에는 카프카의 책이 펼쳐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고독 속에서 병마와 싸웠을 그는 당신이 나를 버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버림받은 느낌이고 외롭습니다”(시인의 집, 69)라는 카프카의 구절에 밑줄을 쳐놓았단다. 언젠가 파리에 가게 된다면 시인이 보았을 거리와 파리 식물원의 플라타너스 나무를 보았으면 한다. 그의 경험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플라타너스의 잎뿐”(시인의 집, 89)이라던 시인의 시선을 떠올릴 수는 있을 테니까.

 

추가로 파울 첼란의 삶과 작업에 보다 가까이 가기 전에 두 가지 작품에 주목해본다. 하나는 첼란의 후기 시집 숨결돌림 숨결수정이라는 시에 관심이 간다. 이 시는 아내 지젤의 판화작업과 나란히 영감을 주고받으면서 이루어진 공동작업이라고 한다. “이 공동작업은 아름다운 부부애의 예로 꼽힌다”(93)라는 전영애 교수의 말을 기억해두기로 한다. 시인과 화가 부부가 만들어낸 판화 시화집이 나온다면 꼭 소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 허수경 시인의 번역으로 나온 파울 첼란 전집 2권에는 숨전환(1967)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 것 같다. 전영애 교수가 시인의 집에서 언급한 시집 숨결돌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숨결수정이라는 시가 파울 첼란 전집 2권에서는 어떤 제목으로 소개가 되어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또 주목해보고 싶은 첼란의 작업 하나는 독일 시인 잉에보르크 바하만(1926-1973)과 파울 첼란이 주고받은 편지 묶음 마음 시간 Herrzeit이다. 전영애 교수에 따르면, 이 제목은 첼란이 바흐만에게 써준 스물세 편의 시 중 쾰른, 암 호프라는 시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 시는 파울 첼란 전집 1권에 실려 있다. 쾰른, 암 호프는 두 사람이 쾰른에서 재회했을 때 첼란이 써준 시다. 시인의 말년에 두 사람은 시를 매개로 하여 많은 교감을 나누고 사랑했던 사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전후 독일 문인들의 모임인 47그룹에서 서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그룹에는 독일 문학계의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모여 있었다. ‘47그룹은 첼란과 바흐만을 비롯하여 귄터 그라스, 하인리히 뵐, 문학비평가 라이히라니츠키까지 참여하던 모임이었다.


시를 떠나 두 시인의 배경을 살펴보면 두 사람이 얼마나 이질적인 조건을 지닌 사람들인지 알 수 있다. 첼란은 나치에 의해 부모를 잃고, ‘살인자의 언어인 독일어가 모국어인 까닭에 독일어로 시를 써야 했던 시인이었다. 국적을 잃은 이방인으로서 살아가야 했던 첼란과는 달리, 바흐만은 골수 나치 당원의 딸이었으며 독일 문단과 문화계의 주목을 받기까지 했던 시인이라고 한다. 이들은 오로지 시를 매개로 교감을 나누고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도 대조적이다. 첼란은 센 강에 투신했고, 바흐만은 로마의 집에서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길지 않은 이 시인들의 삶 후기에 이루어졌던 작업들을 이 작품으로 접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참고: 함께 언급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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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애의 발자국들 뒤에

내 발자국을 얹어본다.’

: 시인 파울 첼란의 흔적을 찾아서 (1)

 

 

작년(2020) 말에파울 첼란 전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시 전집은 1920년에 출생한 첼란의 탄생 100주년, 사후 5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으로 나오게 되었다. 특히 이 작품은 시인 허수경의 유고 번역작업이기도 하여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파울 첼란이라는 시인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내가 그의 시를 읽어본 것은 없다. , 한두 편은 있을 것이다. 독문학자 전영애 교수가 독일어권 시인들의 자취를 찾아다니며 써내려간 시인의 집에 인용된 시 몇 구절과 만난 인연은 있다.

 

시는 언제나 읽어보고자 하면 번번이 높은 장벽을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전문 번역자에게도 매우 난해하다고 알려진 첼란의 시에 굳이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시인의 집을 통해 알게 된 시인의 삶을 조금 들여다보고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인들이 마주해야 했던 삶을 조금이나마 상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여러 번 읽어보았던 책이지만, 다시 파울 첼란이 살던 집과 자취를 찾아간 대목을 읽어보니 처음 읽는 것 같이 새롭다. 언젠가 허수경 시인의 번역으로 만나는 파울 첼란 전집을 읽어보길 바라며, 충동적(?)으로 첼란의 삶을 가능한 한 조사하고 기억해두고 싶었다. 오늘은 전영애 교수의 시인의 집을 기반으로 하면서, 그동안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앞서 지나 간 첼란의 흔적을 밟아 따라가 보고자 한다.

 

먼저 파울 첼란은 루마니아의 끝자락인 부코비나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192011). ‘너도밤나무숲혹은 너도밤나무가 많은 곳을 의미한다는 부코비나에서 성장했단다. 하지만 가혹한 역사는 식물을 유난히 사랑하던 유대인 청년을 가만히 놔주지 않았다. 나치에 끌려간 부모는 그가 23세일 때 목숨을 잃었다. 그가 18세 일 때(1938) 의대로 진학하고 싶었으나 루마니아에서는 이미 유대인에 대한 엄격한 정원제를 실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에 있는 의대로 진학하기 위해 프랑스로 가던 중 독일을 지나게 되는데, 그 다음날이 바로 나치가 유대인들의 건물을 급습하여 파괴를 일삼았던 수정의 밤(1938119)’이었다고 한다. 수정의 밤이란 이름은 깨져버린 수많은 유리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밤의 불빛에 반짝반짝 빛났던 광경에서 나온 명명이라고 알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수정의 밤이 발생하기 며칠 전에, 훗날 평론가로 이름을 날리게 될 또 다른 유대인 청년이 독일에서 추방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독문학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가족이 추방당해 폴란드로 갔던 것이다. 게다가 라니츠키는 파울 첼란과 동갑인 1920년 생이었다. 수정의 밤 사건이 발생하던 시기,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 청년은 프랑스가 있는 서부로,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청년은 다시 폴란드가 있는 동부로 이주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을 떠올려보게 된다. 수정의 밤 이후 나치는 10,000명에 가까운 유대인을 독일 부헨발트 수용소로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전영애 교수에 따르면 이 부헨발트라는 이름 역시 너도밤나무숲혹은 너도밤나무가 많은 곳을 의미한다고 한다. 순간, 같은 의미를 지닌 부코비나에서 출생한 첼란의 삶이 교차한다. 그에게 이 나무의 의미가 어떻게 다가왔을지 짐작해볼 뿐이다.

 

나치의 손에 부모를 잃고, 노동수용소에서 우연히살아남은 시인은 전후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19487월부터 파리의 센 강에 몸을 던졌던 19704월 까지 22년 간 이곳에서 국적 없는 유대인이자 철저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독일에는 평생 한 번도 살아 본 적도 없지만, 독일어가 모국어였던 시인이다. 달리 말해 자신의 부모를 죽인 이들의 언어를 모국어로 해야 했던, 뒤엉켜버린 실타래 같은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던 시인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부모를 수용소에서 잃고, 부모를 죽인 이들의 문학을 이들의 언어로 평생 글을 써야 했던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삶이 다시 소환되는 지점이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거대한 운명의 물결을 누군들 거스를 수 있었을까? 라이히라니츠키는 자서전 나의 인생에서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첼란과 라이히라니츠키의 운명을 일별해보니 이들과는 또 다른 대척점에 있는 한 유대인의 삶을 떠올린다. 바로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다. 그는 무엇보다 질소고정법으로 공기에서 질소를 얻고, 이 질소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합성비료를 만드는 데에 하버의 발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하버는 이 공로로 1918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친구이기도 하며 역시 유대인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하버가 살충제 개발을 한다는 명목으로 청산염 개발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과학저술가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금지된 지식에 따르면, 이 청산염은 세포의 신진대사를 방해해서 신체 내부 질식’(175)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나치가 대량 학살에 사용했던 치큰론베라는 독가스의 원리를 하버가 만들었던 것이다. 유대인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독가스가 자신의 형제자매를 학살하는데 사용되었던 모순적인 역사의 진실을 읽을 수 있다.


다시 첼란의 파리로 되돌아온다. 전영애 교수는 시인의 자취를 따라간 기록에서, 시인의 시선을 상상하며 시인이 보았을 법한 풍경을 바라본다. 교수는 주소 몇 개와 지도 한 장만을 가지고 시인이 살았던 집들과, 걸었음직한 장소를 찾아 길을 나섰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플라타너스의 잎뿐이라는 첼란의 문구를 기억하는 교수는 시인이 바라봤음직한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들을 발견한다. 문득 시집 한 권과 지도를 들고 길을 찾아 헤매던 전영해 교수의 시 읽기가 궁금해졌다. 나도 시를 읽는 방법과 관련하여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까해서다. 전영애 교수는 파울 첼란을 읽는 일로 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며, ‘(첼란의 시가) 쉽게 읽히지 않지만 소중히 읽을 수밖에 없는 시라고 말한다. 시인의 집을 펼칠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교수는 시인의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이 또다시 새로운 이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 생애의 발자국들 위에 내 발자국을 얹어본다.”(66) 한 줄 한 줄 시를 읽어나가는 과정뿐만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는 유독 시와 거리가 먼 유형의 사람이지만, 시인의 삶과 이들이 지나간 길을 따라가다보면, 이들은 자신의 작업물을 발견하고 따라가는 이들에게 초라하고 작은 삶을 소중히 하라는 복음(?)을 전하는 임무를 지닌 이들이 아닐까도 생각해보았다. 다음 글에는 여러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첼란의 흔적으로 이어가보려고 한다. ‘역사와 언어에 대한 회의를 표현했다고 하는 첼란의 언어를 일부나마 들여다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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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섬

: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장 지글러(Jean Ziegler) 지음 |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한 해를 마무리하며 환대의 전통을 생각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할퀴어버린 한 해가 저물어간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경제적 어려움과 고립감을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요순시대를 제외하고는 태평한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 싶다. 어느 시대건, 지구상의 어느 곳이건 사람에게든, 동식물에게든 태어나 살아가는 일은 지난한 과업인 것 같다. 우리 조상도 어려운 시절에 서로 돕고 상대방을 품어주던 풍습이 있었다. 서양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우연히 고대 철학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처음 접했다.

 

그 중에서 특히 플라톤은 특이하게도 대화형식을 빌어 자신의 철학을 문학작품처럼 집대성해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플라톤의 대화편인데, 여기에는 종종 고대 그리스에 있었던 환대(xenia, 크세니아)’의 전통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어떠한 이유로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타인 혹은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상대방(주인)은 도움을 요청한 이(손님)를 환대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리고 이 전통이 고대 그리스의 정의관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대의 전통은 시기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오디세이에서도 언급되고 있으며,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도 이 환대의 전통에 따른 인물들의 행동을 찾아볼 수 있다. 나아가 환대의 전통에 따른 당대의 정의관에 따르면, 주인의 도움을 받은 손님은 주인에 대한 빚을 적절하게 보답하는 것 또한 (기대되는) 올바른 응답이기도 했다.


국내의 여러 그리스 고전 연구자들이 쓴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에서도 이 환대의 전통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방인에 대한 환대(크세니아)는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이었고, 제우스는 크세니아를 보호하는 신이었다.”(41) 그러니까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주요 배경인 트로이 전쟁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 환대의 전통에 따른 정의관을 어겼기 때문에 발발한 사건이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의 왕국에서 환대를 받고서는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데리고 떠났기 때문이다. 또 어떤 면에서는 헬레네가 트로이 전쟁 중에도 파리스와 트로이의 보호를 받은 것 역시 이러한 전통이 양쪽 사회에서 당연히 지켜지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조금 책장을 넘기고 있는 플라톤의 자연철학을 담은대화편티마이오스에서는 아예 자연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대화의 도입부에서 이 환대의 전통에 얽힌 상황이 등장한다.

 

티마이오스: “어제 당신에게서 제대로 손님 대접을 받은 마당에, 우리 남은 이들이 열의를 다해 당신께 보답하려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온당치 않은 일일 테니까요.

(티마이오스, 17b, 김유석 옮김, 아카넷, 25)

 

이처럼 고대 그리스에 명백하게 존재했던 환대의 전통을 장황하게 꺼내들은 이유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장 지글러의 신간 인간 섬의 주요 배경이 바로 그리스의 여러 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인간 섬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고대 그리스의 환대의 전통을 떠올렸다. 이 책은 유럽 연합이 유럽으로 유입될 수 있는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전쟁과 고문, 국가의 파괴 등을 피해서 그리스 해안으로 접근하는 수천 명의 난민들을 받아들이는’(12) 핫 스폿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핫 스폿은 그리스와 터키 사이의 에게 해에 있는, 특히 소아시아 지역에 가까운 다섯 곳의 그리스 섬들을 가리킨다.

 

유엔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하기도 하고,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저자가 핫 스폿 중 특히 가장 큰 섬인 레스보스 섬의 난민 시설을 방문하고 기록한 내용이 책의 주를 이룬다. 책에는 사진이 없어서 그 현장의 충격이 덜하겠지만, 가족이 몰살당할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과밀한 보트를 탄 채 에게 해를 건넜을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환대의 전통을 갖고 있던 그리스가, 공식적으로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의 생존에 대한 요청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핫 스폿, 특히 이 책의 주요 무대인 레스보스 섬에서 이렇게 환대의 전통이 사라져 버린 현실에 그리스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이 책에는 유럽 연합의 자금을 받고 난민들을 몰아내는 그리스 경찰들도 나오지만, 난민 구조 및 인권 보호 활동을 하는 여러 시민 단체들의 활동도 언급되고 있다.

 

인간성의 극단을 시험하는 난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이 화산섬 레스보스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 섬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기원전 7-6세기에 유명했던 시인 사포의 고향이면서 레즈비언이란 용어의 기원이 된 장소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 섬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포스의 부름을 받고 펠라로 가서 어린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치기 바로 전의 2년 간 머문 곳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섬에서 물고기와 철새들을 연구하며 동물지라는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탐구방법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관찰하고 증거에 기반 한 보다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방법에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지는 서양생물학의 시작을 알리는 작업을 했으며, 이 작업이 바로 이 섬에서 마련된 것이다. (참고 아리스토텔레스 조대호 지음, 아르테, 92-104)

 

이런 배경들을 고려해볼 때, 오늘날 환대의 전통을 보여주었던 그리스의 전통이 서양인들의 삶을 지배하게 된 자본에 의해 무력화되고, 인간성의 위기를 겪는 모습을 인간 섬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환대의 정의관에 따르면, 그리스는 공식적으로 야만의 길에 서기로 결정한 셈이다. 환대의 전통이 고대 그리스에서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이었다는 한 고전 연구자의 글에서 오늘날 이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대의 아이러니를 읽는다.

 

레스보스 지역을 비롯한 그리스-터기 지역은 지진이 특히 많이 일어나는 곳으로 유명한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지난 10월에도 강도 7.2의 강진이 그리스-터키 지역에 발생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핫 스폿에서 난민 대기자들이 코로나 팬데믹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경험했을 지진을 상상해보려 했다. 우리도 전쟁과 공포, 배고픔을 극복하고자 터전을 떠난 조상의 역사가 있었음을 떠올려본다면, 이 난민 대기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 것이 옳은 일일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당장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해도, 최소한 우리는 이들이 처한 상황과 이들이 느낄법한 감정들을 이해해보도록 상상력을 발휘할 수는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환대를 응당 해야 할 의무로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보다, 도움을 요청하는 손님과 주인과의 관계가 인간사에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상상력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 인간 섬을 읽고, 저물어가는 한 해를 되돌아보며, 올해를 마무리하는 생각으로 환대의 에토스를 떠올려보았다. 내년에도 우리는 한동안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모두가 어렵지만 내년에는 나부터도 내 주변을 돌아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언급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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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O 망각의

이반 일리치 지음 | 안희곤 옮김 | 사월의책


젠더

허택 옮김 | 사월의책
















이제는 나오지 않을 줄만 알았던 이반 일리치의 책을 년간의 공백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 이반 일리치를 검색하면 대부분의 결과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검색되곤 하여 다소 번거롭긴 하지만, 내가 이야기 하는 이반 일리치는 물론 다른 사람이다. 1926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일리치는 뭐랄까 상당히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타이틀을 뭐라고 딱히 정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상가의 면모와 역사가의 면모에 카톨릭 사제이기도 철학자라고 있을까. 일리치의 저작을 단지 권만 읽어보았을 뿐이지만, 나는 일리치를 우리에게 문제를 던지는 문제아라고 평가한 적이 있었다. 일리치의 글쓰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다르게 있는 여지를 극대화한다. 그리고 해결책 혹은 답을 독자에게 주지는 않는다. 악동처럼 독자에서 질문을 던지고 독자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에 미셸 푸코를 알고 싶어서 그의 책을 두어 읽어보았는데, 일리치와 푸코는 물론 많은 점에서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가지 유사한 점도 발견할 있었다. 사람 모두 현대의 어떤 문제점을 분석할 , 역사적 관점에서 그리고 계보학적 관점에서 과거의 언어나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는 작업을 한다. 사람 모두 1926 생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 사람이 관심을 가졌던 대상에는 전문가의 문제 있다. 다만 푸코는 현대사회에서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가 집단의 전략적 위치에 주목하고 눈여겨본 바가 있다. 반면 일리치는 전문가가 지녀온 권력, 우리가 전문가라는 집단에 권위를 맡겨버린 현상에 대해 비판한 바가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전문가라는 집단에 대해 반대 입장에 서서 이야기한 바가 있었다. 물론 나는 아직 사람을 어설프게만 알고 있다고 미리 자백하겠다. 그러니 사람의 철학에 대해서는 이상 아는 척을 하지는 않겠다.


     이반 일리치가 현대 사회에 던지는 생각거리, 질문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랑의 기술》 저자 에리히 프롬의 옆집에 살면서 절친으로 지내기도 했던 일리치는 주장의 독특함으로 인하여 실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우파로부터 총격을 받기도 하고, 천주교 사제이면서도 교황청을 비판하여 마찰을 빚다가 사제직을 관두기도 했다. 좌파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많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반 일리치라는 사람이 정도라면 그는 인성이 이상한 사람이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질만도 하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일리치에게는 현대 사회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다시보기 다르게 보기 대상이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할 있는 모든 대상을 의심해보고 따져보고 질문을 던져본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리치의 여러 저작을 떠올려보면, 그는 대체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줄기를 이루고 있는 같다. 푸코가 권력 개념에 기반하여 병원, 정신병원, 감시 시설, 통제,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과 배제 등의 주제에 대해 문제제기와 분석을 했다면, 일리치 역시 병원, 학교의 문제, 남녀문제 등을 현대 문명과의 관련성 속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했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관점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푸코의 철학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 자본주의, 현대 문명에 대해 다시 보고, 다르게 바라볼 것을 요청하는 일리치의 사상 역시 진지한 독자들에게 유의미한생각 거리를 던져줄 있다고 생각한다.   


       이반 일리치는 우리가 물의 화학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H2O 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전에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이반 일리치,데이비드 케일리 지음, 권루시안 옮김, 물레2010) 읽다가 H2O 망각의 이라는 텍스트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내용이 상당히 궁금했더랬다. 아마도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중에서 9 질료가 제거된 세대라는 제목의 글에서 의미를 따지며, 의미의 변천을 따라가는 내용이 소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인간이 인식하는 이라는 대상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분석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에 영감을 주는 신화적 상상력의 있었다면, 과학혁명을 지나 물이 H2O라고 인식 이후의, 혹은 현대 자본주의 문명에서 갖는 위상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같다. 짐작이 맞는지를 알아보려면 읽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텍스트가 과연 번역되어 나올까 하는 아쉬움과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결국  H2O 망각의 통해 그동안의 궁금증을 해소할 있게 되어 무엇보다 반가울 따름이다.        














이미 출간된 이반 일리치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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