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제프 다이어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읽게된 <그러나 아름다운>은 작가의 자유로운 글쓰기와 해박한 지식, 그리고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식이 새로운 만큼 익숙하지 않은 글쓰기는 독자에게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새로운 장면에서 묘사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모른 상태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듯한 에피소드와 지시대명사 '그' 그리고 '당신'의 사용으로 집중해서 따라가지 않으면 글 속에서 행위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답답함을 느끼게 만든다. 궁금증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너무 많다면 쉽게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점에서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재즈를 다루는 글에 어울리는 실험적인 형식임에는 틀림없다.

여기서 형식의 새로움/불편함과 더불어 또 다른 점이 불편했는데 새련되지 목한 우리말 표현이 아닐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번역의 문제를 지적할 때, '번역이 엉망이라 이해하기 힘들다'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보아왔지만, 이 표현이란 다소 모호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번역물이 오독이 많은 것이 문제인지, 아니면 번역자가 이해한 바를 우리 말로 표현한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용어의 선택에 독자들이 문제를 느끼는지 분명히 구분해서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내가 구해서 읽고 있는 <그러나 아름다운(구판)>은 2014년 전면 개정판이 나오기 전 현재는 절판된 버전으로 여러 독자들이 지적하는 것은 번역자의 오독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구판에 남아있는 100자평을 보니 대부분이 번역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나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던 것이 아닌 모양이다. 평을 보면 '이 책은 그냥 원서를 읽어야 한다.'와 같은 평까지 있다. 내가 현재 절판된 구판을 보니, 뭔지 모르게 우리말 표현이 매끄럽지 못한 인상을 받았다. 소설가로 등단한 번역가의 작업에 대해 이런 비판이 존재한다면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해봄직하다.

우선 보통 (원전 텍스트 오독의 가능성은 배제하고) 1년 남짓 기간동안 전면 개정판이 나오게 된 주된 이유는 아마도 번역에 대힌 독자들의 문제제기가 아닐까 싶다. "그는 끝내주게 멋진 강도질을 저지르고 싶어했다."(237면)와 같은 표현을 예로 들면 분명히 저자의 오독은 아니지만, 어쩌면 텍스트 뒤로 번역자가 다소 무책임하게 물러나있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면 예컨대 너무나 부유한 집안의 자녀가 '가난한 이들' 또는 '가난'에 대해 글을 써야할 때, '가난'이 도대체 뭔지 모르는 상황과 비슷한 괴리감을 준다고 할까.

2014년 '전면 개정판'을 보지는 못했으나, 2014년 개정판에 쓰여진 100자평은 번역에 대한 언급 없이 4개 모두 별 다섯 개에 극찬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2013년 책이 나오고 번역에 대한 여러 개의 짧은 반응을 보고나니 1년 후 전면 개정판이 나온 후의 이런 극적인 변화에 오히려 어리둥절하다. 마치 국정원 댓글부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은 비단 나뿐일까. 2014년 개정판을 구해 읽어보지는 않겠지만 개정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이 이 아름다운 텍스트를 보다 잘 느낄 수 있도록 개선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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