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율이와 하린이는 필연적으로 서로 의식하고, 경쟁하고, 극복하려 애쓰며 자랄 것이다. 엄마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너를사랑한다고 끊임없이 말해주는 거겠지. 너는 너만의 매력이 있는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생각날 때마다 이야기해야겠다. 내가무의식중에라도 뱉을지 모를, 그래서 부지중에 상처를 줄지 모를, 둘을 비교하는 말, 그걸 덮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그게 ‘비교하는 말 듣지 않게 해야지‘라는 다짐보다 훨씬 현실성 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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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가 상처를 주는 메커니즘이 늘 그렇듯 내게 악의가 없었기 때문에 동생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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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될 기회인 것 같다. 우리가 자동적으로 훌륭해진다는 게 아니라 그럴 기회를 얻는다는 뜻이다. 절대적으로 강자인 내가 철저히 약자인누군가에게 가슴 깊이 우러나는 존중감으로 최선의 배려를 하는것, 자식이 아니면 내가 누구를 상대로 이런 사랑을 해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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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였다. 계속 화가 났던 이유는 내가 그녀에게 어떻게 할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가 화내도 되는‘ 대,
상이었던 것이다. 내가 화를 내도 내게 크게 해를 끼칠 일이 없는사람. 마치 식당의 진상 손님이나 콜센터 직원에게 분풀이하는저열한 고객처럼. 생각해보면 회사 상사와 같이 내가 어떻게 할수 없는 상대일 경우에는 부스스 화가 가라앉게 마련이었다. 비겁한 나의 감정이여.
 어떻게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 약자에게 힘을 드러내지 않는 것, 그게 성숙한 인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인인나는 예수의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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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짜리 아이가 아저씨 앞에서 울음을 참는 게 신기했다고남편에게 이야기하자 남편은 말했다. 근데 하율이한테는 엄마‘
도 ‘나‘인가 보네. 아저씨가 내리고 나서 엄마를 보면서 울었잖아. 그러다 이제 나이 들면 엄마한테도 그런 맨얼굴은 안 보여주는 거고, 더 나이 들면 나 자신한테도 안 보여주는 거고, 그러다 그런 얼굴이 있었다는 것도 잊어버리는 거고, 그런 거 아니겠어?˝ 그렇게 잊었던 내 모습을 아이를 낳고 다시 떠올리게 되다.
니, 이것이 인생이 만들어내는 뫼비우스의 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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