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고단함을 이겨내려는 용기, 내가 하고싶은 일을 향해 직진하는 자신감, 이런 것들을 갖춘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게 나의 결론이 되었다. 결국 내가 아이를 향한 불안함을 어느 정도까지 참을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아이가 공부도 잘하면서 창작자의 재능도 보여준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만일 내 아이가 반에서 20등, 30등 한다면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소설을 좋아하거나 음악에 미쳐 있거나 영화에 푹 빠져 있는 내 아이가 성적이 안 좋아서 학교 선생님에게 무시당할 때(성적이 안 좋으면 학교 선생님이 무시한다는 이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어쩌랴, 도저히 안 되는 것을), 그때도 나는 아이에게 하율아, 창작자가 되면 좋겠어. 적어도 너의 여러 정체성 히하나라도 예술가가 된다면 그걸로 너는 행복할 거야 라고복할 거야˝라고 말하며 격려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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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식들의 교육에 목을 매는가. 자식들이 더잘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계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타이타닉 승객들이 구명보트의 몇 안 남은 빈자리에 자식을 태우는 심정으로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 이건 ‘더나은 삶 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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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형의 단편소설 〈굿바이는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기나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순백의 상태로 태어나는 이유는 천사가 태중의 아기에게 찾아와 지혜와 지식을 가져가기 때문이라느 것이다(작가는 《탈무드》를 인용한 심보선의 시 〈인증을 긁적이며〉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복중의 태아가 지혜를 잃기 전, 엄마에게 건네는 말이 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당신은 기꺼이 이름을 바꾸려 할 것이다. 처음 보는 종교의 사원에 들어가 절을 하려 들 것이다. 가슴 뛰지않는 것에 활짝 웃거나 동의하지 않는 것과 악수를 할지도 모른다. 베어야 할 때 칼집에 칼을 도로 넣고, 대답해야 할 때 침묵할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을 당신은 반성 없이 소명처럼 받아들일 것이다. 어린 당신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어떤 어른들처럼, 명쾌하게 말할 수 없는 사정을 몸속에 품고 무거운 빛깔의 덩어리가 되어가는 당신이 내게는 보인다. 내 귀에는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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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율이와 하린이가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본인의 감정에충실한 사람이기를 바라고, 부당한 일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정도의 용기는 갖춘 사람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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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사랑받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데 엄마는 얼른 자˝ 라고대답하는 꼴이다.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불통의 대화를 내가아이를 상대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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