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의 무게와 자식에 대한 사랑과인생 본연의 슬픔이 차올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이를테면땀 분비와도 같은 거였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눈물을 참을 수없을 만큼 거대한 사랑을 부담 없이 받아내는 것이 가능할까. 여기에 부모 자식 관계의 본질적인 슬픔이 있는 것 같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원래 그렇게 어긋나는 사랑인 것은 아닐까, 이 ^은 애초부터 비극의 요소를 품고 있는 장르가 아닐까, 이런 의심을 그래서 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할수록 뭉클하다. 엄마의 아픈 마음은 기도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곤 했다. 엄마의 미안함, 엄마의 슬픔, 엄마의 고통이느껴졌다. 나는 그게 불편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테리어 블로그에서 북유럽 스타일로 아기자기하게 디자인한 아기 방을 볼 때, 하율이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장난감이 착착정리돼 있는 아이 방을 볼 때 하율이와 하린이에게도 그렇게 예쁘게 방을 꾸며주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꾹 참고 있다.
결핍 이후에라야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기쁨이 있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하율이가 처음으로 자기 방을 갖게 되는 날, 나는 이제더 이상 하율이와 함께 잘 수 없음을 아쉬워하고 하율이는 드디어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된 것에 설렜으면 좋겠다. 그날 느낄 그미드 감정들이 나는 참 기대된다. 다음 집에서는 하율이의 방을 만들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부부는 그럴 수 있을까. 어쩌면 아이의 학원비는 내 불안감을 잠재우는 비용일지 모른다.
이 글의 마무리는 하율이가 열 살이나 열한 살쯤 됐을 때 지어야 할 것 같다. 닥치지 않은 일에 대해 무엇을 장담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내 불안감을 다스리는 비용이 그리 비싸지 않기를, 내가점점 단단한 내면을 갖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고단함을 이겨내려는 용기, 내가 하고싶은 일을 향해 직진하는 자신감, 이런 것들을 갖춘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게 나의 결론이 되었다. 결국 내가 아이를 향한 불안함을 어느 정도까지 참을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아이가 공부도 잘하면서 창작자의 재능도 보여준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만일 내 아이가 반에서 20등, 30등 한다면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소설을 좋아하거나 음악에 미쳐 있거나 영화에 푹 빠져 있는 내 아이가 성적이 안 좋아서 학교 선생님에게 무시당할 때(성적이 안 좋으면 학교 선생님이 무시한다는 이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어쩌랴, 도저히 안 되는 것을), 그때도 나는 아이에게 하율아, 창작자가 되면 좋겠어. 적어도 너의 여러 정체성 히하나라도 예술가가 된다면 그걸로 너는 행복할 거야 라고복할 거야˝라고 말하며 격려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