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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소년 山이 되다 - 이시형의 깊은 사색집
이시형 지음 / 이지북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http://blog.naver.com/yyn0521/220010759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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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소년 산이 되다>는 그동안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세로토닌하라!>와 같은 책을 펴낸 정신과 의사 이시형의 사색집이다. 책에는 그가 '비움', '소년', '채움', '산'이라는 주제로 그린 그의 문인화와, 짧은 사색이 담긴 글, 그리고 그의 그림을 돋보이게 해주는 화가 김양수의 화평이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글도 글이지만, 화평도 적재적소 그림의 풍미를 더한다. 좀 더 그림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기도 하고. 이 책은 평소 그의 스타일과는 다른 스타일이었는데, 여든의 긴 세월을 살아온 그의 이야기가 담백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그윽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그의 새로운 도전의 기록이다. 나이 여든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자 했던 그는 평소 제일 자신이 없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를 두고 영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을 생각나게 해 서늘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꾸준히 그림을 그렸고, 문인화첩을 냈고, 이시형 개인전까지 열었다. 지금 20대인 나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에는 상당히 떨리고,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이 여든에 갑작스레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 먹은 그를 보니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문인화 수업은 내게 참으로 많은 걸 깨우치게 했습니다. 여든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것도 내 인생사에 획기적인 일입니다. (중략) 문인화를 하고 내 인생은 풍요로워졌습니다.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곤 합니다. 조용한 감동의 물결이 가슴 바닥을 흘러갑니다."라고 도전의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그의 그림에서 자주 엿보이는 건 달, 산, 길, 나무와 같은 자연이다. 일상의 자연물이 있어 마치 도시를 떠나 산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렸을 적 할머니집에 놀러가 듣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이 든다. 꼭 동화처럼 글도 맑고, 그림도 맑다. 처음엔 그리 잘 그린 그림은 아니네 하고 생각했었는데, 보면 볼수록 정겹고, 소박함을 느끼게 된다. 덕분에 이리저리 치이던 세상에서 치유를 받는 느낌이 크다. 더욱이 그림에 글을 곁들인 문인화다 보니 그림 감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담긴 더 깊은 의미를 알 수 있어 읽는 맛이 느껴지기도 했다. 김양수 화백은 그의 그림을 두고 잘 그린 그림이기보다 좋은 그림이라고 칭했는데 이것보다 더 잘 그의 그림에 맞는 표현은 없을 것 같다.
그림이 지나간 다음엔 '정신과 의사의 문인화 수업 체험기'라는 부제의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서 그에게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를 적었다. 몇 가지만 얘기해보면, '평소에 모든 사물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고 그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의식이 강해졌다', '모든 인간관계나 자연과의 관계가 더욱 친근해지고 정감이 간다', 무심코 하는 일상이 새롭게 다가오고 새로운 의미가 부각된다. 베란다의 꽃 한송이도 예사롭지 않다. 꽃 앞에 앉아 대화도 하노라면 꽃의 아름다운 감정이 내게로 전해온다. 평화로운 감정에 젖게 된다. 세상 누구도 꽃 앞에 앉아 원수를 갚겠다고 이빨을 갈지는 않는다. 생활의 전 영역에 걸쳐 힐링이 일어난다' 정도였다. 그의 문인화 예찬에 괜스레 그림엔 소질도 나까지 절로 관심이 생기게 됐고, 그림을 즐길 수 있게 된 그가 정말 부러워졌다. 그리고 그림은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그림을 쉽게 접하게 되니 그림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바쁜 일상에서 조금 쉬어가기를 하고 싶다면 읽어 봄직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