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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ㅣ 한창훈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p347 “배가 한 척 생긴다면 당신은 어떤 항해를 하겠는가.”
작가 한창훈이 마지막에 던진 질문이다.
다소 철학적이기도 한 이 물음은 사람의 삶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자, 이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기 고백하듯 이야기한다. p112 “흔들리며 나아가는 것.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배는 전복되거나 떠밀린다. 떠밀림의 끝은 전복이다. 배가 그냥 있으면 훨씬 심하게 파도를 탄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싣고 있으면 더하다. 그러니 가야 한다. 울어도 가야 한다. 바다가 늘 그러하듯이 세상이 우리를 내보낸 이유는 이렇게 흔들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무거운 짐을 싣기도 하고, 홀가분 마음으로도 세상을 살아간다. 어떨 땐 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들고, 파도가 덮쳐와 금방 뒤집어 질 것 같더라도 우리는 세파를 견디며 앞으로 나간다.
이 책은 읽어나갈수록 술 한 잔 생각나게 하는 “권주가”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배를 타며, 북극을 항해하며, 무한한 바다 사랑을 따뜻하면서도 다소 에로틱하게(?) 풀어낸 권주가라 생각된다.
사람은 슬퍼서 술 마시고, 즐거워서 술 마시고, 외로워서 술 마신다고 하면, 저자는 그런 인간의 기분들을 절실하게 느끼며 술 한 잔 기울인다.
석양을 바라보며 낚싯대를 바다에 던져놓고 소주한잔 기울이고 있는 표지의 사진만큼 저자는 특유의 외로운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 하며, 근심 없는 세상은 없으니 넉넉히 견디고 살자고 타이른다.
p65 포장을 벗기면 똑같은 모양과 표정을 하고 있는 스무 개비의 담배처럼 하루하루가 그렇다.
이렇게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는 것일까, 혼자 묻는다. 그리고 답한다. 글쎄. 이게 아니면 뭐겠어. 훌륭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안 하는 게 가장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냥 단순한 삶을 노련하게 사는 것만 있을 뿐이다.
p68 쓸쓸함은 환경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유쾌하고 즐거운, 흥분되고 기대되는, 어쩌다 생기는 짧은 그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쓸쓸하고 외롭다는 것. 인류는 그것을 느끼고 자각하게끔 진화되어왔다.
끝없는 외로움과 지루함을 견디고 살아가는 게 삶이라면 저자는 외로움의 철학을 가슴 깊이 녹여 내온 말들을 쏟아낸다.
사는 게 외로움을 견뎌나가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힘들지만 살아야 하고 외롭지만 견뎌내야 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왜 사는가? 에 대한 끊임없는 자문이 철학을 만들어 냈듯, 저자의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에 녹여낸 삶이야기는 숙취에 시달리면서도 술을 먹고, 깨고 나면 먹지 말아야지 하는 도돌이표의 말처럼, 힘들고 권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는 소주 한잔이다.
p19 이 별의 특산품이 무언가요, 물어온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눈물입니다" p61 우리는 시간이 안 간다고 몸살을 떨다가 늙어서는 단 하루 더 못 사는 것을 원망하는 그런 이상한 족속이기는 한데, 하여 지루한 시간이면 나중 죽기 직전 이 시간을 얼마나 아까워할까를 일부러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쓸쓸함을 견디기가 용이하지는 않다. p74 사람은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바라본 것을 닮는다. 내가 죽을 때 바다를 닮은 얼굴이 되어 있다면 좋겠으나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 최소한 빈 술병이라도 닮기를 희망한다. 당신은 어떤가. 혹시 비씨카드나 돈의 얼굴을 하고 죽을 수도 있다고 상상해본 적 없으신가. p87 꿈과 가난은 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 두 개의 가지이다. 이룰 수 있다면 그게 꿈이겠는가. p110 저는 취했을 때 아름다운 사람을 최고로 칩니다. 흥취가 솟아났는데도 부드럽고 조심스럽다면 그 사람은 진짜입니다. 그런 사람은 꼭 붙들고 평생 친구로 지내야 합니다. 그런 친구 있나요? 저는 몇 명 있습니다.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러니 어찌 함께 안 마실 수 있겠어요. 아름다운데. p112 "지금 생각해보면 배를 타는 것은 시간을 돈과 바꾸는 행위였어." 은퇴한 노항해사의 말이다. 외로움을 견디는 게 첫 번째 업무인 직업도 드물다. p122 "이별만큼은 아무리 해도 훈련이 안됩디다." p138 술맛은 당시의 심리 상태와 무엇보다도 술 마실 때의 배경이 되는 물리적인 환경 때문에 생긴다. p203 한 아가씨가 말했다. "전요, 섬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아주 아름답고 멋질 거라 생각해서 스스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너무 지루하고 심심하고 사람들은 거칠고…… 실망하고 있어요." p261 아침에 깨어난다는 것. 잠 속에 빠져 있다가 문득 돌아와서 어제 했던 짓을 다시 되풀이하는 것.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고작 이런 것이다. p274 우리는 아주 기가 막힌 하루를 위해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다. 라고 나는 『내밥상 위의 자산어보』작가의 말에 썼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p343 무슨 짓을 당해도, 어떤 참혹한 일이 일어나도 다음날 해는 천연덕스럽게 떠오른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가 세상의 주인이 아닌 것 만큼은 확실하다. p346 사람만 처연한 풍경을 사랑하는 것이다. 슬픔과 아름다움. 그건 삶을 인식하니 죽음도 인식할 수밖에 없는 능력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종교와 철학과 문학이 생겼다. 음악과 미술도. 그리고 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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