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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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삶을 글로 쓴 작가, 아니 에르노. 

그 한 남자가 그의 아버지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 이상 주인공이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가 거침없이 아버지에 대한 비난과 사랑을 퍼부었다는 점, 그리고 아니 에르노의 탄생부터 쭉 함께해온 사람에 대해 그만의 단어들로 풀었다는 건 낭만적이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의 눈에 비친 아버지라는 사람은 처음부터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노동자 출신으로 평생을 일을 했고, 어머니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넨 적 없던 차가운 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느 노동자와는 다르다>며 사랑으로 감싸주려 했던 어머니.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니 에르노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에 대한 좋은 감정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끝없이 감쌌던 어머니 덕분일까, 이 가족의 끝에 적어도 <파탄>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늘 저랬던 것은 아니야. P.47


아버지가 화를 낼 때마다 어머니께서 되뇌던 말이 나에게 울림을 준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나의 가족, 사랑하는 사람, 친구, 등 내 곁에 있는 사람이 한순간에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이건대,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 동하지 않는다. 그가 <늘 저랬던 것은 아니라>며 그를 두둔한다. 그 말에서 나는 참된 사랑을 봤다. 덤덤하면서도 가시가 있는 그의 말 한마디에 가슴 한구석이 저릿하다. 


다 끝났다. P.99


그래서일까. 아버지가 투병 후 돌아가신 뒤 어머니께서 계단을 내려오시면서 나지막이 내뱉은 말이 이토록 모순적이게 들려왔다. 보통 <다 끝났다>라는 말에는 속이 후련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내뿜어지지만,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왠지 그녀의 삶도 다 끝났다는 이중적인 의미가 달려있을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아버지의 긴 투병 생활이 가족 모두를 힘들게 했기에, 가족으로서의 <우리>의 고됨이 드디어 끝났다는 뜻일 수도. 어찌 됐든 이 네 글자에 대한 의미는 풀어보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내가 읽었던 그 어떤 소설보다 열려있는 결말일지도. 




살면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소설을 쓴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세상에 글감은 차고 넘치는데 왜 하필 아니 에르노는 본인의 <아버지>를 그린 걸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달랐다.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해서는 많이 읽어봤지만, 자식이 본 아버지의 삶. 

색다른 관점이었고, 생각하면 할수록 낭만적이고, 현실적이다. 


이것이 바로 <복잡 미묘>한 감정이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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