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는 웃었다. "새니까 노래하게 놔둬. 새니까 뭐라고 하게 내버려둬."
그는 유명한 발라드 한 구절을 인용했다.
페이지 : 71page
 
   

자신의 영혼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세속적 욕망을 부정하며 살아온 '나'는
여행길에서 조르바라는 이름의 자유로운 노인을 만나게 된다.
'나'와는 달리 계집도 수백명 품어보고, 살인도 여러 번 해보고,
아무튼 안 해본 것이 없는 이 늙은이는
'나'가 그토록 추구하는 거룩한 영혼을 부정한다.
조르바는 말한다.
"이 세상에 얼마나 즐길 게 많아? 이것저것 재지 말고 그냥 즐겨!"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페이지 : 356page
 
   

조르바는 일할 땐 확실하게 일하고, 놀 땐 확실히 놀고,
사랑할 땐 진실로 사랑하는 '집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한편 '나'는 세상만사를 경험해본 드라마틱한 조르바의 인생을 동경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자신의 영혼이 더럽혀진다고 생각하여
좀처럼 욕망에 솔직해질 수 없는 책벌레이다.

   
  "여자란 무엇인가요? 왜 이렇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지요? 말해 보시오.
나는 저 여자란 것의 의미가 뭔지 묻고 있는 거요."
그는 남자나 꽃 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자신에게 묻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페이지 : 81page 
 
   

조르바를 보고 있자면, 소극적인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놈의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하고 싶은 일도 맘껏 못 하고,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나.
생각해보면 생은 짧은데, 또 남들의 말에 일일이 신경쓰고 행동하기엔,  
남들이란 단지 내 인생에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인데.
왜 난 좀처럼 용기를 내지 못하는 걸까.

   
  "<아니, 할아버지 편도나무를 심고 계시잖아요?>
그랬더니 허리가 꼬부라진 이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며,
<오냐, 나는 죽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란다.>
내가 대꾸했죠. <저는 제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살고 있군요.>
자, 누가 맞을까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똑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페이지 : 55page
 
   

내일이 없을 것처럼 도전하고, 내일이 있을 것처럼 노력하라.
앞으로 삶에 소극적인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조르바를 떠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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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츠마 이야기 - 살인사건 편
타케모토 노바라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전편인 <시모츠마 이야기>를 보고
'인간 사이의 정이란 실재하는가?
친한 척 할 뿐, 이상적인 우정이란 건
책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에 휩싸였던 나...

친한 척 우정놀이나 하며 자신이 약하지 않음을 믿으려 드는 아이들보다
혼자서도 잘 노는 모모코같은 아이가 강하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럼 우정놀이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그런 고민.
그 고민이 꽤나 풀리지 않았기에,
<시모츠마 이야기>는 내게 인상적인 책으로 남았고
내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속편인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을 보고 나온 결론은...

이치고가 있기 때문에 모모코는 강해지는 것이다.
인생의 행복은 인간 사이의 '정'에 있는 것이다.
이상적인 인간관계란 게 소설이나 만화에만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도 날 좋아해'라고 믿어야 한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라도 괜찮다. 내가 그렇게 믿으면 내게는 그것이 진실이다.
누군가의 웃는 얼굴을 보지 못하는 인생이라면, 살아갈 희망이 없을 것이다.

이치고와 모모코의 우정은 참 보기에 좋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우정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건, 책 속의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모모코가 이치고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얻고 싶으면 줘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인생에서 자신의 목숨 귀한 걸 모르고 달려들 정도로 소중한 걸 찾는다는 건 의미가 크다.
자신의 안위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이치고를 구하기 위해 싸웠던 모모코이니까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이치고와의 우정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모츠마 이야기>는 꿈과 우정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꿈은 그것이 아무리 남들에게 비웃음을 살 정도로 유치하거나 소박한 것이라 해도,
주눅들지 말고 자신이 행복이라 믿는 길을 나아가야 한다는 것.
우정은 가식이나 연기가 필요없는 것.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친구가 가진 가치관이나 꿈을 무시하지 않는 것.
비록 헤어져 있어도, 꿈을 이뤘을 그 친구를 떠올리면 행복해지는 것.
이 책에서 말하는 꿈과 우정의 정의는 그런 것이다.

나도 내 장래희망을 친구들에게 말했을 때, '이루어질 것 같다'고 해준 친구들의 말...
그 고마운 마음을 잊지 말도록 해야지.
캐릭터가 개성있고 정이 가서 1권을 읽은 사람은 반드시 2권도 읽게 될 것 같은 책,
<시모츠마 이야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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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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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농아들은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안개를 뚫는 유일한 것이 소리라지만, 소리조차 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농아가 아니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켜야 될 것이 있는 모든 이들은 불의 앞에서 쉽게 소리를 낼 수 없다.
아니,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소리를 낸다고 해도,
자신의 아주 사소한 불의가 밝혀지는 순간 정의의 사도를 연기하는 것도 머뭇거려진다.
강인호가 아이들을 지켜주려 했다가, 자신의 과거가 까발려지고
자신이 했던 행위가 연애인지 성폭행인지도 애매모호해지는 것처럼.
정작 성폭행범들은 아무런 심한 벌도 받지 않고 멀쩡히 사는데
착한 일을 하려던 강인호는 아주 조그만 잘못으로 인해 성폭행범으로 몰려 욕을 먹는다.

재판에선 이기지 못했지만, 아이들의 상황은 어떻게든 개선이 된 것 같아 안도했다.
결국 법정은 나라의 이익을 대변하므로,
부자들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씁쓸하긴 하지만.
주인공인 강인호 역시 자신이 믿는 정의를 끝까지 추구하지는 못했다.
그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긴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세상에선 이기는 이가 돈많은 이, 힘있는 이인 경우가 많다.
또한 나쁜 사람이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긴’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그런 것에 너무 연연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슬프지만...)
착한 이가 이기지는 못해도, 행복해지기만 한다면 그것 또한 해피엔딩이 아닐까.
왜냐하면 피해자, 가해자 이외에는 다 사건이 지나가면 흥미를 잃어버릴 남들 뿐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용도의 승리라면 필요없다.
다만 이 소설은 중요한 것-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양심,
진실을 관철하는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 의해 그 정신은 이어질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의 존재 의미이다.

당한 이들, 착한 이들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승리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게 이 소설이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건 착한 이들이 승리하는 이야기가 아닌지도 모른다.
독자로 하여금 착한 이들이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자신이 착한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소설을 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성공적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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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
류헝 지음, 홍순도 옮김 / 비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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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인공은 장따민이라는 이름의 키작고 못생겼고 가난하지만 말빨 하나는 끝내주는 남자이다.
그는 그 재치 덕분에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소꿉친구와 결혼하게 되지만,
장따민의 남매들도 연이어 결혼하게 되면서
안 그래도 좁은 집에 사람들이 미어터지게 된다.
장따민은 장남으로서 남매들과 어머니를,
거기다 가장으로서 자신들의 가족까지 부양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는 페인트 회사에서 뼈빠지게 일한 덕분에 승진할 수 있게 되지만
불공평하게 자신의 헌 집을 헐리고 원하지도 않는 새 집을 분양받게 된다.
장따민은 원통함에 난동을 부리다가 회사에서 잘리고, 보온병 판매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글은 웃기게 쓰여 있지만, 알고보면 가난하고 남루한 인생을 그린 이야기이다.
하지만 남루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장따민의 성격이나
화끈하고 정 있는 장따민 부부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단편 <빌어먹을 식량>은 혹 있는 여자가 가난한 남자에게 시집을 와서
그 난폭한(?) 성질머리로 가족들을 먹여살리는 이야기이다.
남자의 가족은 똥까지 끓여먹어야 할 정도로 가난한데, 보면서 맘이 아팠다.
주민들이 식권을 배급받아 연명하는 사회 배경이 흥미로웠다.
중국의 역사나 생활상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시푸시>는 영화 <국두>로 만들어지기도 한 소설이다.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소설 중에서 <푸시푸시>를 가장 재밌게 읽었다.
늙은 삼촌과 젊고 튼튼한 조카, 그리고 삼촌이 사온 젊은 아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늙어서 이제 자식밖에 희망이 없는 삼촌은
애기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숙모를 심하게 구타한다.
말만 조카지 삼촌에게 머슴으로 부려먹히는 조카는
자신과 동년배인데도 삼촌에게 학대당하는 숙모에게 연민과 동질감을 느낀다.
조카와 숙모는 젋은 혈기에 서로 눈이 맞아 금단의 사랑을 하게 되고,
그 사랑의 결실로 숙모는 덜컥 아기를 가지게 된다.
삼촌은 그 아이가 자기 자식이라 오해하고 그때부터 숙모를 예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삼촌은 중풍에 걸려 폐인이 되고,
조카와 숙모는 비로소 삼촌에 대한 복수심을 터뜨리려는 듯이
쓰러져있는 삼촌에게 보란 듯이 노골적으로 연애를 시작한다.
그 꼴을 보던 삼촌은 결국 홧병으로 앓다가 죽게 되고,
이제 두 젊은이에게 거리낄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 보였으나...
삼촌이 죽었는데 두 남녀 사이에 아기가 생길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그들은 피임 문제로 고생하고...
거기다 삼촌의 자식으로 되어 있는 그들의 아이가 감시를 해서 맘껏 사랑도 할 수 없게 되는데...

금단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푸시푸시>에서는 금단의 사랑이 불러오는 실질적인 폐해를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작가는 중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주인공 삼아, 그들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려나간다.
너무 사실적이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지만,
문장 곳곳에서 빛나는 재치는 독자를 피식피식 웃게 만든다.
그 때문인지 소설이 길어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푸시푸시>는 손에 땀을 쥐고 읽었다. 손가락을 멈출 수 없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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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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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는 정치, 이념 등의 거대 담론 대신
소비문화, 대중문화, 영상문화가 주는 쾌락과 환상이 국민들의 눈을 현혹시켰다. 
위정자들은 정치, 이념 대립, 노동의 힘겨움과 같은 것들로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멀어지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거기서 태어난 것이 바로 '프로야구'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학생들이 강제로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던 시대를 포함한다.
‘나’는 머릿속에 이념을 세뇌당하며, 자기 의견을 당당히 말할 수도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단지 경쟁과 승리, 최고만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나’에게 유일한 꿈과 희망이 되어 주는 것은 프로야구,  
그 중에서도 삼미의 야구팀이었다.


그러나 어린 ‘나’의 꿈과 희망은 삼미의 연달은 패배로 인해 무참히 꺾여 버린다.
알고 보니 ‘프로야구’라는 이름의 대중문화도 현실 못지않은 비참한 세계였다.
프로야구의 세계에서 삼미를 좋아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마치 부르주아가 질 높은 예술을 소비하여 자신의 권력을 뽐내듯,
야구팬들은 강한 팀의 팬이 되는 행위를 통해 우월감을 맛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약한 야구팀인 삼미의 팬들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나’에겐 그것이 다행이었다.
인간이 오아시스의 물에 중독된다는 것은 대중문화의 포로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야구팀에선 야구를 잘 하는 것뿐 아니라, 돈을 많이 버는 것 또한 목적이다.
야구선수가 광고모델 일을 하는 이면에는 야구와 소비문화의 결탁이 숨어 있는 것이다.
하물며 야구선수와 여자 탤런트의 결합은 어떻겠는가. 성(性)까지 야구에 연루된 것이다.
대중문화는 소비와 쾌락의 환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일종의 눈속임이다.
국민들의 눈을 끄는, 프로야구를 둘러싼 이슈들은
타인보다 뛰어난 ‘체력’, ‘재력’, ‘미모’가 권력이 되는 이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하니 ‘나’는 현실에서도, 대중문화에서도 위안을 얻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인간이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어딜까?
박민규는 ‘팬클럽’이라는 이름의 ‘하위문화’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인간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 기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노력을 한다면 그것은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노력이어야 한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노력은 삶을 긍정적으로 만든다.
그것은 팬클럽의 마음과도 같다.
인간은 슈퍼스타처럼 살기보다, 팬클럽처럼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슈퍼스타는 다른 선수와 경쟁하랴, CF를 찍어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들으랴,
오르락내리락하는 연봉을 보며 가슴 졸이랴, 언론의 장난감이 되어 가슴아파하랴…
아무튼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것이다.
그에 비해 팬클럽은 어떤가.  
팬클럽이 하는 일은 그 대상을 ‘좋아하기’라든지 ‘흉내 내기’, ‘연구하기’ 밖에 없다.
그 세계는 돈도 권력도 성(性)도 연루되지 않는 순수한 애정의 세계다.
프로 선수들이 야구를 통해 뭘 얻으려 하는 것과는 달리, 팬클럽은 뭔가를 얻으려는 욕심이 없다.
오로지 ‘사랑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팬클럽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기업체의 슈퍼스타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그 때보다,
팬클럽으로서 야구를 할 때 더욱 행복을 느낀다.
인간이 자발적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는 때는 뭔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이다.


‘나’는 자신보다 잘난 이들에게 허리를 굽혀야 했던 아버지를 흉내 내지 않는다.
그는 어설픈 야구팀 삼미 슈퍼스타즈를 어설픈 방법으로 흉내 내는 키치의 정신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사실은, 훌륭한 것을 흉내 낸 작품은
원작보다 싸구려처럼 보이는 운명을 피할 수 없는 반면,
저급한 것을 흉내 낸 작품은 원작보다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원작이 아무리 저급해도 팬클럽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빛나 보이니  
win-win이라 해야 좋겠다.
삼류가 삼류를 모방함으로써 다 같이 승리한다는 것.
그것은 일류만을 추구하는 시대를 향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제시하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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