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츠마 이야기 - 살인사건 편
타케모토 노바라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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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인 <시모츠마 이야기>를 보고
'인간 사이의 정이란 실재하는가?
친한 척 할 뿐, 이상적인 우정이란 건
책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에 휩싸였던 나...

친한 척 우정놀이나 하며 자신이 약하지 않음을 믿으려 드는 아이들보다
혼자서도 잘 노는 모모코같은 아이가 강하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럼 우정놀이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그런 고민.
그 고민이 꽤나 풀리지 않았기에,
<시모츠마 이야기>는 내게 인상적인 책으로 남았고
내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속편인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을 보고 나온 결론은...

이치고가 있기 때문에 모모코는 강해지는 것이다.
인생의 행복은 인간 사이의 '정'에 있는 것이다.
이상적인 인간관계란 게 소설이나 만화에만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도 날 좋아해'라고 믿어야 한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라도 괜찮다. 내가 그렇게 믿으면 내게는 그것이 진실이다.
누군가의 웃는 얼굴을 보지 못하는 인생이라면, 살아갈 희망이 없을 것이다.

이치고와 모모코의 우정은 참 보기에 좋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우정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건, 책 속의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모모코가 이치고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얻고 싶으면 줘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인생에서 자신의 목숨 귀한 걸 모르고 달려들 정도로 소중한 걸 찾는다는 건 의미가 크다.
자신의 안위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이치고를 구하기 위해 싸웠던 모모코이니까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이치고와의 우정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모츠마 이야기>는 꿈과 우정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꿈은 그것이 아무리 남들에게 비웃음을 살 정도로 유치하거나 소박한 것이라 해도,
주눅들지 말고 자신이 행복이라 믿는 길을 나아가야 한다는 것.
우정은 가식이나 연기가 필요없는 것.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친구가 가진 가치관이나 꿈을 무시하지 않는 것.
비록 헤어져 있어도, 꿈을 이뤘을 그 친구를 떠올리면 행복해지는 것.
이 책에서 말하는 꿈과 우정의 정의는 그런 것이다.

나도 내 장래희망을 친구들에게 말했을 때, '이루어질 것 같다'고 해준 친구들의 말...
그 고마운 마음을 잊지 말도록 해야지.
캐릭터가 개성있고 정이 가서 1권을 읽은 사람은 반드시 2권도 읽게 될 것 같은 책,
<시모츠마 이야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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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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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아들은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안개를 뚫는 유일한 것이 소리라지만, 소리조차 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농아가 아니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켜야 될 것이 있는 모든 이들은 불의 앞에서 쉽게 소리를 낼 수 없다.
아니,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소리를 낸다고 해도,
자신의 아주 사소한 불의가 밝혀지는 순간 정의의 사도를 연기하는 것도 머뭇거려진다.
강인호가 아이들을 지켜주려 했다가, 자신의 과거가 까발려지고
자신이 했던 행위가 연애인지 성폭행인지도 애매모호해지는 것처럼.
정작 성폭행범들은 아무런 심한 벌도 받지 않고 멀쩡히 사는데
착한 일을 하려던 강인호는 아주 조그만 잘못으로 인해 성폭행범으로 몰려 욕을 먹는다.

재판에선 이기지 못했지만, 아이들의 상황은 어떻게든 개선이 된 것 같아 안도했다.
결국 법정은 나라의 이익을 대변하므로,
부자들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씁쓸하긴 하지만.
주인공인 강인호 역시 자신이 믿는 정의를 끝까지 추구하지는 못했다.
그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긴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세상에선 이기는 이가 돈많은 이, 힘있는 이인 경우가 많다.
또한 나쁜 사람이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긴’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그런 것에 너무 연연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슬프지만...)
착한 이가 이기지는 못해도, 행복해지기만 한다면 그것 또한 해피엔딩이 아닐까.
왜냐하면 피해자, 가해자 이외에는 다 사건이 지나가면 흥미를 잃어버릴 남들 뿐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용도의 승리라면 필요없다.
다만 이 소설은 중요한 것-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양심,
진실을 관철하는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 의해 그 정신은 이어질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의 존재 의미이다.

당한 이들, 착한 이들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승리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게 이 소설이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건 착한 이들이 승리하는 이야기가 아닌지도 모른다.
독자로 하여금 착한 이들이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자신이 착한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소설을 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성공적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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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
류헝 지음, 홍순도 옮김 / 비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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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장따민이라는 이름의 키작고 못생겼고 가난하지만 말빨 하나는 끝내주는 남자이다.
그는 그 재치 덕분에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소꿉친구와 결혼하게 되지만,
장따민의 남매들도 연이어 결혼하게 되면서
안 그래도 좁은 집에 사람들이 미어터지게 된다.
장따민은 장남으로서 남매들과 어머니를,
거기다 가장으로서 자신들의 가족까지 부양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는 페인트 회사에서 뼈빠지게 일한 덕분에 승진할 수 있게 되지만
불공평하게 자신의 헌 집을 헐리고 원하지도 않는 새 집을 분양받게 된다.
장따민은 원통함에 난동을 부리다가 회사에서 잘리고, 보온병 판매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글은 웃기게 쓰여 있지만, 알고보면 가난하고 남루한 인생을 그린 이야기이다.
하지만 남루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장따민의 성격이나
화끈하고 정 있는 장따민 부부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단편 <빌어먹을 식량>은 혹 있는 여자가 가난한 남자에게 시집을 와서
그 난폭한(?) 성질머리로 가족들을 먹여살리는 이야기이다.
남자의 가족은 똥까지 끓여먹어야 할 정도로 가난한데, 보면서 맘이 아팠다.
주민들이 식권을 배급받아 연명하는 사회 배경이 흥미로웠다.
중국의 역사나 생활상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시푸시>는 영화 <국두>로 만들어지기도 한 소설이다.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소설 중에서 <푸시푸시>를 가장 재밌게 읽었다.
늙은 삼촌과 젊고 튼튼한 조카, 그리고 삼촌이 사온 젊은 아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늙어서 이제 자식밖에 희망이 없는 삼촌은
애기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숙모를 심하게 구타한다.
말만 조카지 삼촌에게 머슴으로 부려먹히는 조카는
자신과 동년배인데도 삼촌에게 학대당하는 숙모에게 연민과 동질감을 느낀다.
조카와 숙모는 젋은 혈기에 서로 눈이 맞아 금단의 사랑을 하게 되고,
그 사랑의 결실로 숙모는 덜컥 아기를 가지게 된다.
삼촌은 그 아이가 자기 자식이라 오해하고 그때부터 숙모를 예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삼촌은 중풍에 걸려 폐인이 되고,
조카와 숙모는 비로소 삼촌에 대한 복수심을 터뜨리려는 듯이
쓰러져있는 삼촌에게 보란 듯이 노골적으로 연애를 시작한다.
그 꼴을 보던 삼촌은 결국 홧병으로 앓다가 죽게 되고,
이제 두 젊은이에게 거리낄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 보였으나...
삼촌이 죽었는데 두 남녀 사이에 아기가 생길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그들은 피임 문제로 고생하고...
거기다 삼촌의 자식으로 되어 있는 그들의 아이가 감시를 해서 맘껏 사랑도 할 수 없게 되는데...

금단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푸시푸시>에서는 금단의 사랑이 불러오는 실질적인 폐해를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작가는 중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주인공 삼아, 그들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려나간다.
너무 사실적이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지만,
문장 곳곳에서 빛나는 재치는 독자를 피식피식 웃게 만든다.
그 때문인지 소설이 길어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푸시푸시>는 손에 땀을 쥐고 읽었다. 손가락을 멈출 수 없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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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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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는 정치, 이념 등의 거대 담론 대신
소비문화, 대중문화, 영상문화가 주는 쾌락과 환상이 국민들의 눈을 현혹시켰다. 
위정자들은 정치, 이념 대립, 노동의 힘겨움과 같은 것들로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멀어지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거기서 태어난 것이 바로 '프로야구'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학생들이 강제로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던 시대를 포함한다.
‘나’는 머릿속에 이념을 세뇌당하며, 자기 의견을 당당히 말할 수도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단지 경쟁과 승리, 최고만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나’에게 유일한 꿈과 희망이 되어 주는 것은 프로야구,  
그 중에서도 삼미의 야구팀이었다.


그러나 어린 ‘나’의 꿈과 희망은 삼미의 연달은 패배로 인해 무참히 꺾여 버린다.
알고 보니 ‘프로야구’라는 이름의 대중문화도 현실 못지않은 비참한 세계였다.
프로야구의 세계에서 삼미를 좋아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마치 부르주아가 질 높은 예술을 소비하여 자신의 권력을 뽐내듯,
야구팬들은 강한 팀의 팬이 되는 행위를 통해 우월감을 맛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약한 야구팀인 삼미의 팬들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나’에겐 그것이 다행이었다.
인간이 오아시스의 물에 중독된다는 것은 대중문화의 포로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야구팀에선 야구를 잘 하는 것뿐 아니라, 돈을 많이 버는 것 또한 목적이다.
야구선수가 광고모델 일을 하는 이면에는 야구와 소비문화의 결탁이 숨어 있는 것이다.
하물며 야구선수와 여자 탤런트의 결합은 어떻겠는가. 성(性)까지 야구에 연루된 것이다.
대중문화는 소비와 쾌락의 환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일종의 눈속임이다.
국민들의 눈을 끄는, 프로야구를 둘러싼 이슈들은
타인보다 뛰어난 ‘체력’, ‘재력’, ‘미모’가 권력이 되는 이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하니 ‘나’는 현실에서도, 대중문화에서도 위안을 얻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인간이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어딜까?
박민규는 ‘팬클럽’이라는 이름의 ‘하위문화’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인간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 기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노력을 한다면 그것은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노력이어야 한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노력은 삶을 긍정적으로 만든다.
그것은 팬클럽의 마음과도 같다.
인간은 슈퍼스타처럼 살기보다, 팬클럽처럼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슈퍼스타는 다른 선수와 경쟁하랴, CF를 찍어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들으랴,
오르락내리락하는 연봉을 보며 가슴 졸이랴, 언론의 장난감이 되어 가슴아파하랴…
아무튼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것이다.
그에 비해 팬클럽은 어떤가.  
팬클럽이 하는 일은 그 대상을 ‘좋아하기’라든지 ‘흉내 내기’, ‘연구하기’ 밖에 없다.
그 세계는 돈도 권력도 성(性)도 연루되지 않는 순수한 애정의 세계다.
프로 선수들이 야구를 통해 뭘 얻으려 하는 것과는 달리, 팬클럽은 뭔가를 얻으려는 욕심이 없다.
오로지 ‘사랑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팬클럽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기업체의 슈퍼스타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그 때보다,
팬클럽으로서 야구를 할 때 더욱 행복을 느낀다.
인간이 자발적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는 때는 뭔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이다.


‘나’는 자신보다 잘난 이들에게 허리를 굽혀야 했던 아버지를 흉내 내지 않는다.
그는 어설픈 야구팀 삼미 슈퍼스타즈를 어설픈 방법으로 흉내 내는 키치의 정신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사실은, 훌륭한 것을 흉내 낸 작품은
원작보다 싸구려처럼 보이는 운명을 피할 수 없는 반면,
저급한 것을 흉내 낸 작품은 원작보다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원작이 아무리 저급해도 팬클럽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빛나 보이니  
win-win이라 해야 좋겠다.
삼류가 삼류를 모방함으로써 다 같이 승리한다는 것.
그것은 일류만을 추구하는 시대를 향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제시하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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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나
케이트 브라이언 지음, 한진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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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다이어리>를 읽은 직후, 공주라는 단어에 급 예민해진 나.
쉽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던 중, <공주와 나>의 재기발랄한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간단히 말해 이 책은 <왕자와 거지>의 여자판이다.
바인랜드라는 나라의 공주인 카리나와 LA에 사는 가난한 고등학생인 줄리아.
이 둘은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치고, 깜짝 놀란다.
둘의 얼굴이 기가 막힐 정도로 닮았던 것이다.
서로의 처지를 동경해왔던 두 소녀는 한번 역할을 바꿔 살아보기로 계약한다.
그리고 벌어지는 해프닝... 은 상상에 맡기겠다. ^^


특히 존경스러웠던 캐릭터는 줄리아였다.
진짜 엄청나게 가난한데, 공부를 열심히 하여
장학금을 받으려 노력하는 그 모습이 멋졌다.
줄리아의 엄마에게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만든 작품을 항상 소지하면 좋은 기회가 온다’는 것!!
모자 디자이너인 줄리아의 엄마는 항상 자신이 만든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그 모습을 카리나의 어머니인 왕비가 보고는 반해서
그녀에게 왕궁 전속 모자 디자이너가 되어달라고 요청한다.
이것은 자신이 만든 작품을 직접 착용하고 다녔기 때문에 찾아온 행운이다.
예술가를 꿈꾸는 나로서는 참고할만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왕자와 거지>와 내용이 비슷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가볍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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