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아이야
응구기 와 시옹오 지음, 황가한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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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이름이 참 생소합니다. 처음에 이 작가님 이름을 들었을때 두 사람이 공동 집필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에 일제강점기가 있었다면 아프리카 케냐에도 식민지 시절이 있었다고 하네요. 바로 영국통치를 받던 1900년도 초반부터의 이야기인데요. 전쟁을 겪으면서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잠식하고, 통치하고, 죄없는 사람들을 몰살하고...지구라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정말 손톱만큼 작은 우리나라와 일본만 보더라도 그 아픈 역사는 가슴 한곳에 잊혀지지 않는 고름같은 존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케냐 역시  그런 아픈 역사가 있었다니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새로운 역사입니다.




응구기 와 티옹오 작가는 영국 식민치하 당시 케냐에 살고 있었던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 속 은조르게 소년의 가족이야기로 승화를 시켰습니다. 은조르게의 아버지는 영국사람의 저택에서 일을 합니다. 그는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땅을 빼앗기고 소작종으로 전락한 뒤, 겉으론 표현을 안하지만 속으로 고통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은조르게의 큰형 보로는 동생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에 끌려가 동생을 전쟁에서 잃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돌아온 인물입니다. 그러한 어려움이 있어서였는지 현실에 강한 반발심을 품은 인물인데요. 백인을 향한 반발심이 젊은이들로 부터 시작되고 노동력의 착취, 제대로된 급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시민군이 형성되고, 보로는 그 선봉에 서게되죠. 또한 우리의 일제강점기 시절을 보면 꼭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이 있지요. 여기에서도 자코보라는 사람이 영국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데요. 운명의 장난인건지 자코보는 은조르게가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입니다. 일본인보다 일본인 앞잡이들이 더 심하게 민족을 탄압하고 억압한 사실을 책을 통해, 그리고 영상을 통해 보고 들었는데요, 자코보라는 인물도 백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동네 사람들로 부터 원흉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지닌 케냐의 이야기는 독자들로부터 강한 공감을 이끌어 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케냐의 암흑같은 미래의 구원(?)을 위해 은조르게는 열심히 공부해서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는데요. 은조르게가 동네를 떠나 상급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어느 날, 은조르게의 가족이 몰락의 위기에 몰립니다. 아버지는 죽어가고, 게릴라군이 되어 그 선봉에 선 형은 쫓기는 신세가 되고...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보며 그 당시 케냐에 불어닥친 혼란스러운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는듯 했습니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만의 아픈 역사는 다 있는것 같아요. 우리의 역사가 어두웠기에 잘 알지 못했던 케냐의 역사를 오늘 접하며 그 당시 우리 선조들의 힘들고 아팠을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이렇듯 직접 식민지 시절을 경험했던, 고통으로 가득찬 작가 자신의 이야기였기에 더욱 사실적이고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이었습니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은조르게라는 아이를 통해 케냐의 격동기시절, 여러 인간 군상들과 역사의 아픔을 잘 묘사한 책인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의 결말을 보면 공부가 오로지 미래를 밝게 해줄거라는 그들의 생각이 틀린건 아닙니다. 하지만 과감하게 일어나 싸우는 선봉의 인물이 있었기에 은조르게 같은 인물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기에 누군가는 공부를 해야겠지만 또 누군가는 자손들을 위해 과감히 자신의 삶을 바쳐야 합니다. 앞으로 은조르게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지만 아무것도 손에 쥔것 없이 끝나버린 이야기. 그렇지만 그가 희망을 품고 걸어왔던 길이 있기에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을거라는 바람입니다.




힘든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교육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의 차이가 무엇이건 간에 지식과 공부에 대한 관심은 보로, 자코보, 응고토 같은 사람들 간의 유일한 일치점이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키쿠유족은 늘 자신들이 구제받을 길이 교육에 있다고 봤다. 그래서 은조로게가 떠날 때가 다가오자 많은 사람들이 그가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돈을 기부했다. 그는 이제 응고토의 아들이 아니라 키쿠유랜드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본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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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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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 학굣적 교과서에서도, 책으로도,  영화로도 수 없이 보아오고 들어오던 이야기였건만 "그땐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로 지나칠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볼땐 화가 나고 열이 뻗치지만 또 지나면 그 뿐이었던 시간들. 과연 이 책도 읽고 나면 그 뿐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그 어떤 책보다 더 가슴에 와 닿았던 이유가 뭘까요. 책을 읽는 동안 분노가 치밀어 올라 몇번이나 책을 덮었습니다. 이 책은 허구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 책이 소설속의 이야기이기만 할까요. 더 하면 더 했지, 절대 덜 하지는 않았을거라 감히 상상해봅니다. 나는 그동안 너무나도 무지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 책을 보고 있으니 한없이 작고 초라한 제가 보입니다. 1980년 5월 18일, 그곳에선 대체 어떤일들이 벌어졌던가요. 지나온 역사가 버젓이 진실을 품고 있는데 그저 들여다보기 싫어서, 겉으로만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말해 주는 것들을 그대로 믿고, 아..그렇구나 하고 이해해버린 나 자신이 오늘따라 너무 한심스럽네요.




동호...그 어린소년 동호가 대체 무슨 잘못이 있길래 그렇게 허무하게 짧은 생을 살다 가게 만든것일까요. 동호는 그 난리가 났던 그곳에서 친구인 정대가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친구가 총에 맞아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데도 달려가 부축해주지 못하고 골목 구석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 보아야 하는 동호의 마음. 달려 나가려는 동호를 옆에 있는 어른들이 막지 않았다면 동호 역시 정대 옆에 쓰러졌겠지요. 그렇게 무자비하게 어른 아이 할것없이 총질을 해대던 그 사건.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맞나요? 이건 분명 허구일거야. 지어낸 이야기일거야 라고 억지생각을 해보지만 그건 어김없는 사실입니다.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저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저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의 손에 총이 들려 있었겠지요.




얼마전 "난징의 악마"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며 얼마나 분노가 끓어오르는지, 얼마나 일본을 혼자서 욕해댔는지, 인간으로서 어쩌면 그렇게 잔악한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치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더 분노한건 같은 민족인데, 우린 같은 피를 나눈 같은 민족인데 어쩌면 그럴 수 있었던 건지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한창 혈기왕성한 그들에게 가해진 고문들은 또 어땠습니까. 더 악랄하게 시민들을 몰아부쳐라. 그럼 두둑한 보너스가 주어질 것이다. 라는 대목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무자비한 국가의 폭력이 이 순박하고 평화롭던 사람들을 한 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국가의 부조리에 맞서 싸운 결과가 이런것인데, 무고하고 어렸던 수많은 목숨들이 힘없이 스러져 갔는데, 국가란 것이 시민들에게 남긴 것이 고작 저러했었는데...




정대의 죽음을 목격하고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수습하는 일을 하고 있는 동호의 시선,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된 자신의 몸을 보고, 주변의 시체들을 보며 두려움에 떠는 정대의 시선,  상무관에서 동호와 같이 일 하는 형, 누나들의 시선, 그리고 동호 엄마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전개가 되는데요. 동호 엄마의 시선으로 써 내려간 그 글들이 어찌나 울컥울컥하게 만드는지...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엄마의 맘이 어땠을지 엄마의 입장이라 더 마음이 쓰렸나봅니다. 더 가슴이 아팠던건, 악몽 같았던 그 모든 것들이 끝이 난 후에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악몽속을 헤매고 있다는것입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영원히 기억속에 남아서 그들의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을 악몽들을..,.




피와 진물로 꾸덕꾸덕 얼룩진 흰 무명천을 들추면 길게 찢긴 얼굴, 베어진 어깨, 블라우스 사이로 썩어가는 젖무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밤이면 그 모습이 선연히 떠올라, 본관 지하 식당에서 의자를 붙여놓고 잠들었다가도 퍼뜩 눈이 떠졌다. 총검이 네 얼굴을, 가슴을 베고 찌르는 환각에 몸을 뒤틀었다. (44쪽)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동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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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아도 행복한 프랑스 육아 - 유럽 출산율 1위, 프랑스에서 답을 찾다
안니카 외레스 지음, 남기철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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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중 하나는 역시 육아입니다. 요즘엔 육아휴직이 많이 개선이 되어 많은 워킹맘들이 그나마 편하게 육아에 전념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진것 같더라구요. 제가 결혼하고 육아를 시작할땐 거의 대부분이 직장을 그만두는 분위기여서 저 또한 그렇게 아이를 키웠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낳고 1년 반 정도의 기간동안 육아를 독박으로 담당하고 또 다시 직장을 구하고...이런 식이었죠. 워낙에 휴직 기간이 길지가 않았던지라 완전 갓난쟁이를 놀이방이나 어린이집에 보내고 직장을 다닌다는 생각은 사실 좀 하기가 힘들었죠. 아이에게 너무 몹쓸 짓 같기도 했고 왠지 저 어린것을 남의 손에 맡긴다는것이 엄마로서 아이한테 죄 짓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때 그시절(?)엔 그런 생각이 뿌리깊게 박혀 있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만.




오늘 읽은 이 책은 그런 고정관념을 싹 없애주는 책이었습니다. 물론 각 나라마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문화가 다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문화는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단 저자는 독일분이신데 프랑스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독일은 우리나라와 많은부분에서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일단 이 책에서 보면 육아부분인데요. 제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엄마들이 힘들어하는 육아. 직장때문에 아기때부터 어린이집이나 여타 기관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맡긴다라는 생각이 대부분일겁니다. 독일 역시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더군요. 더군다나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엄마라면 아이를 어디 맡긴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죠. 집에서 놀고 먹는데 아이를 맡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엄마들은 달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맡기는것이 아닌 부모를 위해, 더 나아가 아이를 위해 맡긴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유를 누린다고 해서 아이들이 고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부모의 자유가 온 가족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든다.(17족)






참 여러부분에서 독일의 부모와 한국의 부모가 비슷한 생각을 하는것 같아요. 또 다른 비교를 해보자면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인데요. 좀 심한 표현을 하자면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들이 쉬는 꼴(?)을 못보죠. 학교가 끝나면 피아노, 태권도, 영어, 수학....수 없는 학원으로 아이들을 돌립니다. 아이들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변명을 하지만 사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차라리 아이들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것 같긴 합니다. 저라도 우리아이가 집에서 혼자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하고, 불안하고 그럴것 같지만 프랑스 교육 전문가들은 아이들을 혼자 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이들은 할 일이 없는 게 좋다. 그래야 무엇이든 혼자서 해나가는 방법을 체득한다" 라고. 아이들에게 바쁜 일정이 없다고 해서 그 부모가 능력이 없거나 나쁜 부모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다. 아이들에게는 지루한 시간도 필요하다.(166쪽)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은걸 느낍니다. 멋모른 어린시절(?) 아이를 키울때 정말 많이 힘들어했고 우울하기도 했고, 손에서 내려 놓기만 하면 우는아이가 너무너무 힘들어서 어떨땐 정말 혼자 훌쩍 떠나버리고도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모든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이 책을 읽다보면 그 모든 것들이 한때 지나가는 일들일 뿐이고 그 지나가는 일들을 조금이라도 즐겼다면, 다시 오지 않을 그 시기를 그렇게 아이에게 짜증내고 미워하기도 하며 보냈던 그 짧다면 짧은 1년, 또는 2년 이라는 세월이 참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 당시엔 이런 육아서를 읽을 생각도 못했지만(너무 예민한 아가때문), 그래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육아에 임했다면 아이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괜히 미안한 맘이 듭니다. 이 책은 저자가 독일분인지라 대부분 독일과 프랑스의 육아에 대해 비교하는식으로 엮여져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생각들은 참 배울 부분이 많은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일은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이랑 생각하는게 많이 비슷하구나 하는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참 새롭네요. 




독일에서는 아이들이 식탁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집이 많다. (중략) 독일 가정에선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먹는 음식과 다른 음식을 만들어주며 아이 친구들이 찾아와도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내오는 경우가 많다. 결국 아이들도 자연스레 그런 일에 익숙해진다.(중략) 그릴 파티가 열린 날, 지인들은 조금씩 음식을 가져왔다. 그런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은 아이들도 어른과 똑같이 대접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날 우리 집에 온 프랑스인들은 부모와 아이들이 앞마당에 놓인 긴 식탁에 함께 앉아 똑같은 음식을 즐겼다. (239~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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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선 Oslo 1970 Series 2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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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라 함은 심장이 쫄깃쫄깃 해질만큼 긴장감이 넘치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은 살인을 밥먹듯이 하며, 그 살인이라는 것도 썰고 베고 피철철...이런류의 이야기를 나는 흔히 스릴러라 합니다. 그러한 이유때문에(?) 즐겨 읽는 장르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오늘 읽은 이 책은 과연 스릴러라는 장르에 갖다 붙일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굳이 "감성적 스릴러"라는 제목을 달아 꼭 갖다 붙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요 네스뵈의 책이니까요. 너무나 쎈 스릴러에 익숙해져 있는 장르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분들은 좀 약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실겁니다. 하지만 저는 쎈걸 좋아하는 독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울프라는 남자. 킬러라고 하기엔 너무나 약해빠진 그 남자에게는 빠져나올 수 없는 묘한 매력이 느껴집니다.


전작인 <블러드 온 스노우>에 등장했던 올라브. 그는 그가 모시던 보스의 여자를 사랑하면서 보스를 배신하게 되고 궁지에 몰리자 암흑가의 인물인 "뱃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죠. 그 "뱃사람"의 부하로 있던 울프. <미드나잇 선>은 이 울프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같은 사람인가 싶었을 만큼 올라브와 울프는 많이 닮아 있습니다. 울프 또한 자신의 보스인 "뱃사람"을 배신하고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킬러인 울프는 상대방의 눈을 보게되면 총을 쏘지 못하는 징크스(?)가 있는 나약한 남자입니다. 보스가 죽이라는 인물을 찾아가 총을 쏘기 직전 그 남자의 눈을 봐버린 울프는 오히려 그 남자가 제시한 조건을 수락함으로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추격해오는 뱃사람으로부터 피해 한 밤중에 내린곳은 노르웨이 최북단 핀마르크고원의 코순이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한 밤중임에도 불구하고 태양을 향해 눈을 찡그려야하는 백야의 땅. 종교가 지배하는, 폐쇄된 조그만 마을 코순. 도망자가 숨어 지내기엔 왠지 적절해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레아와 그녀의 아들인 크누트의 도움으로 사방이 훤히 트인 곳에 덩그러니 있는 오두막에 숨어 지내게 된 울프. 이 마을에서 과연 그에게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우린 살면서 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려고 하거든.
그러니까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많아.
심지어 후타바야마도 연승 행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계속 졌지.
그러니까 앞으로 더 자주 하게 될 일을 잘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니?



스릴스릴하고 심장 쫄깃함은 부족했지만 등장인물 하나하나 참 정감이 가고 배경에서는 왠지모를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얼마전 보았던 영화 <레버넌트>에서 글래스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죽은말의 내장을 들어내고 그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장면이 참 인상깊었는데요, 자신의 뒤꿈치까지 쫓아온 뱃사람의 부하를 피해 죽은 순록의 내장을 들어내고 그 속에 숨은 울프도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가족으로 부터, 그리고 사랑으로 부터 늘 도망만 해 오던 울프의 삶. 어쩌면 지금의 도망 역시 킬러보다 그에게 어울리는 삶이었을까요. 올라브도 울프도 사랑하지 않아야 할 여인들을 사랑합니다. 올라브는 그 사랑으로 인해 파멸했을지 모르지만 울프도 그럴까요. 어쨌든 두 사람은 다른듯하면서도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범죄발생율이 정말 낮다고 하는 북유럽. 북유럽에서도 노르웨이 오슬로의 1970년대를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편 이야기도 너무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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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오렐리 발로뉴 지음, 유정애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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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할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셔서 할아버지의 정을 못 받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 할아버지가 그렇게 괴팍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엄마가 참 힘들었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저는 그런 할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엄마한테는 좀 죄송하네요. 친정이나 시댁에 가면 아이들이 참 할아버지를 좋아합니다. 시댁의 할아버지는 묵묵하게 말씀이 없으신 반면, 아이들에게 너무너무 친절(?)하세요. 아이들이 귀찮게 질문을 자꾸 던져도 정말 성의껏 말씀해 주시고 아이들이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하면 손수 아이들 손을 잡고 가게에 가서 과자도 사주시거든요. 뭐 모든 할아버지들이 그렇긴 한가요?ㅋㅋ 그런 반면 저희 친정 아버지는 또 아이들을 많이 웃게 해 주십니다. 우리아버지가 그렇게 유머러스한 분이 아니신데 아이들만 오면 그렇게 변하시더라구요.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아이들이 좋은가봐요. 아무튼 이런 할아버지들을 보면서 저도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누구나 이 책을 보면 떠오르는 책이 있을것 같아요. 바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오베라는 남자>인데요. 두 권 다 80세가 넘은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책들입니다. 저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만 읽어보았는데 할아버지가 주인공인데 어쩜 그렇게 재미난지! 정말 지루 할 틈 없이 책장이 훌훌 넘어가던데 말이죠. 이 책 <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도 역시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페르디낭은 괴팍하긴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인것 같아요.


페르디낭 할아버지는 고집불통에 괴팍해서 이웃들과 어울리는것이 쉽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의 그런 괴팍함에 부인과 딸 마저도 곁을 떠나고 할아버지 곁엔 애완견 데이지만 남아 있습니다. 페르디낭이 살게된 아파트는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자주 모여 게임도 하고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데이지와 둘이 살게된 할아버지는 같은 아파트의 이웃들과의 소통이 쉽지가 않습니다. 우선 아파트 관리인인 쉬아레부인은 원리원칙을 따지는 깐깐한 할머니인데 페르디낭은 그런 원리원칙을 따르려 하지않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쉬아레부인과 사이가 나빠집니다. 그러던 어느날 페르디낭의 하나뿐인 가족 데이지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건 데이지의 차가운 주검이었습니다. 세상을 잃은 것 같은 페르디낭. 그렇게 실의에 빠져있던 페르디낭에게 윗집 꼬마인 줄리엣이 찾아옵니다. 처음엔 귀찮게 구는 꼬마가 싫었는데 하루, 이틀 자꾸 찾아오는 꼬마가 이제는 기다려지는 페르디낭입니다. 줄리엣과 페르디낭은 좋은 친구가 됩니다. 그러나 평온한 생활도 잠시, 심장마비로 죽은 관리인 쉬아레부인의 살인용의자가 되어 페르디낭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모든 게 단순하다. 교활함이 없다. 속박이 없다. 애정을 미끼로 하는 협박 따위도 없다. 소소한 배려든 부드러운 말이든 찔끔찔끔 인색하게 굴 필요가 없다. 어찌 되었든 그는 그런 걸 할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데이지가 어제 저녁부터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페르디낭은 피가 마르는 것 같다. 데이지는 그가 사는 마지막 이유다. 그는 데이지를 기다릴 것이다. 어쨌든 여든두 살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본문중)




요즘은 혼자사는 노인들이 참 많습니다. 저희 시부모님 친정부모님들도 모두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두 분이서 오순도순 사시는 모습이 어떨때 보면 참 외로우시겠다 싶다가도 또 어떨때보면 두분이서 산책다니시고 시장구경 다니시고 하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더라구요. 저희 엄마, 아버지께서도 두분이 사시는게 편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두 분 중 어느 한분이 안계실땐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물론 페르디낭 할아버지가 사시는 아파트처럼 주변에 또래 노인분들이 많으시면 같이 재미있게 보내시겠지만 그렇지 않을땐 너무 외로우실것 같으니까요. 이 책은 오렐리 발로뉴 작가의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처녀작 같지 않은 노련한 전개와 작품의 짜임새가 참 탄탄한것 같습니다. 괴팍하고 고집불통이지만 여든의 나이임에도 옆집과 윗집 할머니에 대한 풋풋한 사랑이 느껴지는 귀여움도 발산하는 페르디낭 할아버지. 늙음에 대해,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었습니다.



 가라앉지 않기 위한 비법은 죽음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예요. "늙는다는 것은 남들이 죽는것 을 보는 것이다." 누가 이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딱 맞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본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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