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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 학굣적 교과서에서도, 책으로도, 영화로도 수 없이 보아오고 들어오던 이야기였건만 "그땐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로 지나칠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볼땐 화가 나고 열이 뻗치지만 또 지나면 그 뿐이었던 시간들. 과연 이 책도 읽고 나면 그 뿐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그 어떤 책보다 더 가슴에 와 닿았던 이유가 뭘까요. 책을 읽는 동안 분노가 치밀어 올라 몇번이나 책을 덮었습니다. 이 책은 허구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 책이 소설속의 이야기이기만 할까요. 더 하면 더 했지, 절대 덜 하지는 않았을거라 감히 상상해봅니다. 나는 그동안 너무나도 무지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 책을 보고 있으니 한없이 작고 초라한 제가 보입니다. 1980년 5월 18일, 그곳에선 대체 어떤일들이 벌어졌던가요. 지나온 역사가 버젓이 진실을 품고 있는데 그저 들여다보기 싫어서, 겉으로만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말해 주는 것들을 그대로 믿고, 아..그렇구나 하고 이해해버린 나 자신이 오늘따라 너무 한심스럽네요.
동호...그 어린소년 동호가 대체 무슨 잘못이 있길래 그렇게 허무하게 짧은 생을 살다 가게 만든것일까요. 동호는 그 난리가 났던 그곳에서 친구인 정대가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친구가 총에 맞아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데도 달려가 부축해주지 못하고 골목 구석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 보아야 하는 동호의 마음. 달려 나가려는 동호를 옆에 있는 어른들이 막지 않았다면 동호 역시 정대 옆에 쓰러졌겠지요. 그렇게 무자비하게 어른 아이 할것없이 총질을 해대던 그 사건.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맞나요? 이건 분명 허구일거야. 지어낸 이야기일거야 라고 억지생각을 해보지만 그건 어김없는 사실입니다.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저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저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의 손에 총이 들려 있었겠지요.
얼마전 "난징의 악마"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며 얼마나 분노가 끓어오르는지, 얼마나 일본을 혼자서 욕해댔는지, 인간으로서 어쩌면 그렇게 잔악한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치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더 분노한건 같은 민족인데, 우린 같은 피를 나눈 같은 민족인데 어쩌면 그럴 수 있었던 건지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한창 혈기왕성한 그들에게 가해진 고문들은 또 어땠습니까. 더 악랄하게 시민들을 몰아부쳐라. 그럼 두둑한 보너스가 주어질 것이다. 라는 대목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무자비한 국가의 폭력이 이 순박하고 평화롭던 사람들을 한 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국가의 부조리에 맞서 싸운 결과가 이런것인데, 무고하고 어렸던 수많은 목숨들이 힘없이 스러져 갔는데, 국가란 것이 시민들에게 남긴 것이 고작 저러했었는데...
정대의 죽음을 목격하고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수습하는 일을 하고 있는 동호의 시선,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된 자신의 몸을 보고, 주변의 시체들을 보며 두려움에 떠는 정대의 시선, 상무관에서 동호와 같이 일 하는 형, 누나들의 시선, 그리고 동호 엄마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전개가 되는데요. 동호 엄마의 시선으로 써 내려간 그 글들이 어찌나 울컥울컥하게 만드는지...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엄마의 맘이 어땠을지 엄마의 입장이라 더 마음이 쓰렸나봅니다. 더 가슴이 아팠던건, 악몽 같았던 그 모든 것들이 끝이 난 후에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악몽속을 헤매고 있다는것입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영원히 기억속에 남아서 그들의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을 악몽들을..,.
피와 진물로 꾸덕꾸덕 얼룩진 흰 무명천을 들추면 길게 찢긴 얼굴, 베어진 어깨, 블라우스 사이로 썩어가는 젖무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밤이면 그 모습이 선연히 떠올라, 본관 지하 식당에서 의자를 붙여놓고 잠들었다가도 퍼뜩 눈이 떠졌다. 총검이 네 얼굴을, 가슴을 베고 찌르는 환각에 몸을 뒤틀었다. (44쪽)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동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