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절 - 어떤 역사 로맨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책을 두 권정도 읽었는데 사실 나랑은 좀 안맞는...아니, 나에게는 좀 어려운 책들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이 뜻하는 바도 잘 모르겠고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도 잘 몰랐...ㅠ 그런데 많은 분들의 칭찬이 자자한 작가님이라 역시 나의 내공이 부족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임신중절>이라는 이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읽기전에 좀 걱정을 했습니다. 역시나 이 책도 어렵겠지?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읽었습니다. 한자 한자 꼭꼭 씹어가며...근데 의외로 잘 읽혔습니다. 내용도 아주 단순했습니다. 이거 뭐지? 이렇게 싱겁나? 싶을만큼. 책을 덮고 곰곰히 생각에 잠겨 봅니다. 과연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그러나, 작가의 의도도 중요한 요소이고, 작가의 의도를 알면 더 깊은 독서를 할 수 있겠지만 저는 독서를 일종의 기호식품이라고 생각하므로 내가 느끼는 대로의 독서를 즐기고 싶기에 그냥 내 느낌을 끄젹여 봅니다.




옛날 옛적, 호랑이가 곰방대 피던 시절, 저는 글을 몇줄 썼었습니다. 글이라고 하기에도 웃긴 아주 비루한 글이었지만 당시 나의 상황이 십분 담긴 그런 진솔한 글을 다른사람 이야기인냥 소설처럼 끼적였던 적이 있었지요. A4용지 너댓장 되려나요? 그걸 쓰고는 직장 동료 언니에게 달려가 보여주었습니다. 나이가 한참 많았던 언니는 그 글을 읽더니 "니 얘기구나!"라며 금방 알아버립니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부끄러워서 "아니에요~~" 라며 얼른 뺏어들고 내 자리로 왔어요.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네요. 무슨 근자감으로 그걸 남에게 보여줄 생각까지 한건지...어떻든 그 종이가 어딘가 잘 보관이 되어 있을것 같은데 오늘 이 책을 읽다보니 책속에 나오는 도서관이 실존한다면(실제로 "브라우티건도서관"이라고 밴쿠버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네요) 거기로 보내면 되겠다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에게 내보일 만한 자신감은 없고 그대로 사장시키기엔 좀 아쉽고. 루저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자존감이 좀 부족한 사람들이 쓴 책들을 보관하는 도서관이라고나 할까요.



소설 속 "나"는 위와 같은 도서관에서 근무합니다. 집도 필요없고 돈도 필요없는, 도서관에서 모든 생활을 해결합니다. 심지어 새벽 2시던 3시던 언제 어느때라도 책을 가지고 와서 벨을 누르면 "나"는 달려나가 손님을 맞이합니다. 지루하고 무료 할법한 이 생활에 만족을 하며 살아가던 어느날 자신의 몸에 대해 쓴 책을 가지고 온 바이다. 마치 광고같은 일상을 보내는 바이다는 자신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것이 싫어 몸을 가리고 다니기도 하고, 땅만 보고 걷기도 했지만 도서관에서 만난 "나"와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고 둘은 "임신"이라는 문제에 봉착을 하게되죠. 당시 낙태가 불법이었던 미국과는 달리 낙태가 허용이되었던 멕시코로 임신중절 수술을 떠나는 두 사람. 수술도구를 물로 씻고 불로 소독하던 시절. 언제 어떻게 비명횡사할지도 모를 그런 곳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다행히도 무사히 끝내고 다시 돌아온 도서관에 "나"의 자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도서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생활했던 "나"는 바이다를 만나 사랑도 하고 임신중절이라는 산을 넘어 다시 돌아왔지만 자신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결국엔 물질문명속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참으로 순수한 영혼을 지닌것 같은 주인공들입니다. "나"는 남들 다 누리는 물질문명의 혜택을 받아보지도 원하지도 않는 삶을 살았고, 바이다는 누구보다 월등한 그녀의 외모를 뽐내지도 않습니다. 책을 다 읽고 곰곰히 생각해도 알 수 없던 작가의 생각을 이 글을 쓰면서 어렴풋이 조금이나마 알것도 같습니다. 책소개를 보면 이 소설은 조금 서툰 커플의 엉뚱한 연애 이야기로 읽어도 흥미롭고, 소위 총천연색 ‘루저’들의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로 읽어도 유쾌하고, 작가가 내내 천착한 상실, 죽음, 폐허 등의 키워드로 읽어도 의미 있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엉뚱한 연애 이야기와 더불어 자존감이 조금 부족한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로 읽었습니다. 깊이가 있는 책은 언제라도 다시 들춰보게 됩니다. 다시 들춰본 그때는 처음 읽었을 때와는 참 많이 다른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 책도 언젠가 다시 한 번 들춰볼 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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