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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뭔가 자세 바로잡고 뜨겁고 쓴 커피한잔과 함께 안테나 바짝 세우고 읽어야 할 책인것 같았습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우선 새파란 표지에 새빨간 피 같기도 하고 꽃 같기도 하고 또는, 갑자기 솟구쳐 나온 피가 물속에서 몽글몽글 퍼져 나가기 시작하는 모습과도 같은 강렬함이 눈길을 사로 잡은 책 <모방살의>를 읽었습니다. 서술트릭이라는것이 일단 작가가 글로서 트릭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속된말로 작가가 독자를 속이기로 작정한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서술트릭"으로 쓰여진 책이다. 라고 하는것 자체가 일단은 모든 등장인물들을 의심의 눈빛으로 보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게됩니다. 그렇게 시작을 하더라도 눈치 빠르신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백발백중 다 속아넘어갑니다. 그래도 직장동료들이 제가 책 읽는거만 보면 장래희망이 탐정이냐고 놀리는 지경인데도 말입니다. 그냥 전 이런 책 읽으며 눈치채고 파헤치고 이런거 없이 그냥 작가분들이 놓인 덫에 척척 걸려주면서 즐기기만 좋아하는가 봅니다.
그건 그렇고 이 책이 1970년대 초반 작품입니다. 무려. 우아! 물론, 더 오래된 책들도 많겠지만 특이할 점은 이 시절엔 대부분의 추리작가들이 사회파 미스터리에 집중하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서도 나카마치 신 작가는 서술트릭을 시도한 1세대라고 하니 대단한 개척정신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엔 독자들과 비평가들로부터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뭐든 첫 시도는 아주 초획기적이지 않은 이상 관심을 받기가 어렵긴 하죠. 그렇지만 이렇게 복간이 되어 늦게나마 어마어마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니 저 같은 독자들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시기가 작가님의 사후(死後)라는게 좀 안타깝긴 하지만 말입니다.
알리바이 뒤집기라면 혐의가 짙은 인물을 반쯤 범인으로 허용한 형태로 전면에 내세워야 하지. 작가가 쓰고 싶은 건 범인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범인이 어떻게 견고한 알리바이를 구축했으며, 그것이 탐정에 의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가잖아. 뭐, 지금 말한건 종래의 낡은 방식이기는 하지만. (52쪽)
사카이 마사오라는 추리소설 작가가 7월 7일 오후 7시에 사이다에 탄 청산가리에 중독사한 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한 무명 작가의 신변 비관 자살로 일단락될 뻔한 이 사건은 그와 관계있는 두 사람이 동시에 다른 방향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사고경위를 파고 들면서 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야기의 전개 역시 이 두 사람의 교차서술로 이어집니다. 사카미와 같은 작가 동문 모임에서 알게된 쓰쿠미는 쓰쿠미대로, 사카미와 연인관계에 있었던 아키코는 아키코대로 각자 관련있는 사람들과의 탐문과 조사로 사카이의 사인은 두 방향에서 점점 좁혀져 갑니다. 두 사람이 지목한 용의자는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이쯤에서 난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도 분명 범인같고, 저 사람도 분명 범인같습니다. 그렇지만 둘 중 한명은 분명히 범인이 아닐텐데 대체 누가 진범인거지? 내 나름의 추리는 포기하고 그냥 궁금해 하며 읽어주기. 끝까지 읽다보면 범인은 나오니까요. 그리고 생각지 못한 반전에 화들짝 놀람주의.
문이 잠겨 있었어요. 하는 수 없이 사람을 불러다 문을 부수기로 했어요. 간신히 문에 구멍을 뚫고 안에 손을 넣어서 도어체인을 풀 수 있었죠. 집 안으로 들어갔을 대 사카이 씨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어요. 입에서 피를 토한 채....주스에다 청산가리를 넣어 단숨에 들이켠 모양이었어요. (250쪽)
서술트릭으로 쓰여진 책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이 도착시리즈로 유명한 오리하라 이치의 <그랜드맨션>이었는데 단편이면서 연작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책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거든요. 이 책을 읽고 서술트릭이 이런거구나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모방살의>는 먼저 읽으신 어떤 이웃님이 두 번 읽으시길 권하셨는데 한 번 읽고 보니 한 번 더 읽어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은요. 이 <모방살의>에 이어서 시리즈격인 <천계살의>도 곧 출간된다고 합니다. 천계살의는 모방살의의 응용편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하니 좀 더 대중적이고 좀 더 흥미로울것 같습니다. 얼른 만나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