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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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라는 이름만으로 가슴 설Ž던 지난 2년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서점을 찾았다. 새롭게 쏟아지는 문예지들 속에서 보석처럼 숨겨진 박민규의 소설을 찾기 위해서였다. 아니 그의 소설은 숨겨져 있지 않았다. 문예지에서 그의 이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는 새로운 소설로 이런 저런 문예지의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지난 2년동안 내가 읽은 소설만 해도 무려 12편이다. 12편. 웬만한 작가라면 4년 정도에 걸쳐 발표했을 분량이다.
작가의 대단한 필력에 놀랐다. 그 필력에서 뿜어지는 거침없는 경쾌함에 다시 한 번 놀라고, 지금도 놀라고 있다. 기존의 틀이나 경향 따위는 전혀 상관않겠다는 듯 묵묵히 자신만의 색깔로 한국 문단의 한 모퉁이를 채색해가는 작가의 모습이 이질적이면서도 신선하다. 마치 문학이라는 다소 까다로운 존재를 향해 자신만의 걸음걸이로 편안하게 다가가고 있는 한 마리의, 도도새 같다.

형식에서도 내용에서도 확실하게 자신만의 색깔을 낼 줄 아는 작가다.
박민규의 소설은 기존의 문학 아우라를 멀찌감치 벗어나 있다. 지구만이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믿고 있는 지구인들을 바라보며 냉소짓는 수성인처럼.

실제로 박민규 소설의 괴팍함은 기존 문단계의 비위를 건드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지구영웅전설과 삼미... 로 등단하기 전에 신춘문예 및 각종 공모전에 많은 단편소설을 보냈다고 한다. 그 중 본선까지 올랐던 작품은 '카스테라' 단 한 편 뿐이었다고 한다. 과연 그랬을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보기에 그의 소설은 확실히 보기 좋은 것이 아니었고, 마치 개복치를 맨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어딘지 모르게 꺼림직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감히 자신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당돌한 소설로, 작가로 여겼을 것이다.
그랬던 그의 소설이, 신춘문예와 공모전에서 많이도 떨어졌던 그의 소설이, 그가 등단한 이후에는 이상문학상을 비롯한 국내 유수의 문학상 후보에 끊임없이 올랐고, 각종 평론가, 작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리스트에도 오른 것이다.
신춘문예 예심에도 못 올랐던 소설이 갑자기 급상승 기류를 타고 올해의 최고 소설로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것은 넌센스가 아닌가. 박민규 소설만큼이나 웃기고 황당한 이야기다.

지금의 박민규 소설을 바라보는 기존 문단의(어른들) 시선은 어떨까?
아직은 곱지 않은 듯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수긍해주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좀 기분이 나쁜 듯 하다. 그래도 점점 더 칭찬해 줄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왜냐하면 박민규라는 작가는 이제 스타니까. 문학의 위기니, 소설의 위기니 하는 소리들이 심심찮게 터져나오는 지금의 시점에서 현문단에 가장 필요한 것은,
아마도, '스타'일 것이다.

카스테라가 출간되자마자 저자 싸인본이 들어간 책으로 곧장 구입을 했다. 그리고 이미 읽었던 소설들을 다시 읽어 나갔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간절한 바램이 생겨났다.
박민규가 도도새처럼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까부는 이들이 있으면 헤드락을 걸어 꼼짝 못 하게 하고,
기존의 문단과 절대 타협하지 않기를...
그 재미있고 슬프고 통쾌한 문장의 색깔을 잃지 않기를.. 
끝까지 너구리로, 기린으로, 개복치로, 대왕오징어로, 펠리컨으로 남아,
때로는 요구르트 같은, 때로는 카스테라 같은 소설을 계속 써 주길...
가난과 슬픔과 고독에 찌든 삼류 밑바닥 현대인들에게,
쉴 곳과 누울 곳을 마련해주는 갑을고시원 같은 소설을 계속 써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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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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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공지영은 단편보다 장편이 더 좋은 것 같다. 예전에 무슨 문학상 최종 후보로 올랐던 공지영의 단편을 읽다가 도무지 지루해서(길어봐야 고작 열 몇 장에 불과할 단편이 지루하면 얼마나 지루하다고) 끝까지 읽지 못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직전에 공지영의 장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었기에 그 단편에 대한 지루함의 강도는 더욱 크고 당혹스러웠었다. 이 후 또 어느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그녀의 단편을 읽게 되었는데 역시 지루했다. 도대체 뭔 얘기를 하려고 이리도 지루하게 끄는가, 속으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사이에 소설은 끝이 나 있었다. 이 후로도 문예지에 실린 소설들을 읽다가 공지영의 단편들을 가끔씩(결코 자주는 아니었다) 접하게 되었지만 모두 그냥 넘기고 말았다. 지난 해 가을 공지영의 새로운 단편집 ‘별들의 들판’이 출간되었을 때 살까말까를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의 단편에는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장편은 달랐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해 주듯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근래에 읽은 한국 소설 가운데서 보기 드물게 쉽고 재미있게 읽힌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쉬운 소설이다. 그것이 소설의 최대 매력이자 장점이다.

제목부터가 쉽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란다.

책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그녀와 그가, 혹은 그와 우리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쉽게 읽히는 가운데 보편적인 감동을 느끼게 한다. 보편적인 감동이지만 카타르시스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가치 있는 감동이다.

사형을 언도받은 자와 자살을 시도하는 자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듯 하면서도 서로 닮아있는 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되짚어 보자는 것이다.

인생이란 결국 긴장을 풀고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어둠 속에서 입체적으로 떠오르는 아름다운 구름과 무지개와, 귀여운 동물들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 매직아이와도 같은 것이다. 아주 작은 각도의 차이지만 그 차이로 인한 결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칼의 날을 쥐면 그 자체가 나를 공격하는 대상이 되어 버리지만 손잡이를 쥐면 나에게 도움을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작은 차이를 깨달아 가는 과정인 것이다. 바로 인생이란, 삶이란 것이...

자살을 시도하는 자에게는 삶 그 자체가 절망이 되지만 사형을 언도 받은 자에게는 삶 그 자체가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은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친 문유정이라는 여자와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사형을 언도 받은 정윤수라는 남자가 운명처럼 만나 상처로 얼룩졌던 과거를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치유와 구원의 길을 함께 걸어간다는 아주 교훈적인 이야기다.

섣불리 쓰면 유치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공지영은 유치함이 아닌 순수한 감동의 수위를 꾸준히 유지하며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힘 있게 끌어간다. 물론 도를 벗어나는 듯한 신파도 보이긴 했다. 유정이 윤수에게 마침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의 죽음에 정말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는 것 마냥 그토록 애달파 한다는 설정은 읽기에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과잉은 어쩌면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러니까 네 인생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겠는가, 라는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조금만 다른 각도로 인생을 돌아보면 행복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 것인지, 얼마나 쉽게 행복을 잡을 수 있는지를 새삼 일깨워 주고 싶었을 것이다.

 

떡 한 조각을 씹고, 차 한 잔을 마시며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털어 놓을 수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어주는 대상을 만날 수 있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아니 그 짧은 순간들이 인생의 모든 행복이 되어 버렸던, 정윤수라는 남자의 인생을 통해 유정이, 그리고 우리들이 자각하고 반성해야 할 바는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을 찾는 일이란 그야말로 찻잔 속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그 안에 차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쉽고 간단한 것이다.

인생은, 삶은,

살아갈 수만 있어도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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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사랑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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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최고 매력남을 다시 만날 수 있어 기뻤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두 번째 장편 소설 '안녕 내 사랑아'를 통해서였다. 말로는 여전히 냉소적이고 비정했으며, 여전히 멋있었다. 이 친구의 일과를 따라가다 보니 탐정이라는 직업이 참 부럽기까지 했다. 

안녕 내 사랑아는 전작인 빅 슬립보다 더 잘 읽혔고 더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아름답고 애처로운 소설이기도 했다.

이 소설에는 사랑 하나에 모든 것을 바칠 줄 아는 순정파가 등장한다. 쇠처럼 차갑고 단단한 가슴을 지닌 비정한 우리의 주인공 말로와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눈물이나 질질 짜고 과장되게 감정을 자극하는 그런 진부한 로맨스가 연출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폭력이 난무하고, 음모와 배신이 도사리는 가운데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가 진행되고... 비정한 어둠 속에서 옛 사랑을 찾아 떠나는 한 남자가 있고, 그를 지켜보는 또 다른 남자가 있고, 살인자가 있다. 살인자를 쫓는 경찰이 있고, 거짓말을 하는 노파가 있고, 부패한 경찰도 있고, 베일에 가려진 어둠의 세력들이 있고, 다시 힘겹게 옛사랑과 대면하는 남자가 있고, 변해버린 여자가 있다. 그리고 차갑고 무서운 사랑이 있고, 애처롭고 나약한 인간들이 있다. 그렇게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렇게 범죄가 진행된다.

 

이번에도 책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는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역시 일 년은 지나버린듯 많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많은 이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다 읽고 나면 말로와 거구의 사내가 만났던 첫 장면이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진다. 잊혀진 사랑의 기억이 꿈 속의 실루엣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듯...

챈들러의 문장은 얼음 조각처럼 차갑고 단단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물이 되어 녹아버리듯 짙은 허무와 슬픔을 자아낸다. 사랑 이야기가 전면에 녹아 흐르는 이 소설에 두 말할 나위없이 어울리는 문장들이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고, 하나의 범죄가 끝나도, 혹은 하나의 생명이 사라져도...

부패하고 비정한 세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삶도 계속되고, 사랑도 계속되고 있다. 잊혀지고 상처받는 것은 삶도, 사랑도 아니다. 시간의 굴레에서 버둥거리는 인간들일 뿐이다.

말로는 마치 불멸의 철학자처럼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그는 비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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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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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분명 김영하의 장편 대표작이 되어도 무방할 것 같다. 전작인 나는 나를... 이나 아랑은... 을 압도하는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그것은 작가적 내공이 심오한 자만이 뿜어 낼 수 있는 기운인데, 김영하는 검은 꽃을 통해 마침내 그런 고수의 반열에 올라선 듯싶었다. 
10권 분량으로 써도 무방했을 방대한 내용을 김영하는 한 권에 담아 냈고, 나는 이 책을 8일만에 완독했다. 읽는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김영하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짐짝처럼 어깨에 짊어지고 불편한 마음으로 첫 장을 열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어깨는 너무도 가벼워 졌다. 이런 작품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은 충동이 생겨났다. 재미있게 본 영화를 두번, 세번 감상하듯. 아니, 재미라기 보다도 여운이 길게 남는 작품이 재감상을 부른다. 검은 꽃도 그랬다.   

애초에 검은 꽃에 별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는 과연 동인 문학상을 수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하는 의문도 품었었다. 의문이 아니라 의심일 수도 있었다. 언뜻 책장을 넘겨 보아도 따옴표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따라서 대화가 없는 재미없는 소설일 것이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어쩌면 그럴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지도 모른다. 김영하의 전작들에서 등장한 캐릭터들이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런 캐릭터들을 만들어 낸 작가조차도 탐탁치 않았기에 이번 작품도 재미없기를 기대했는지 모른다. 
이 소설은 그런 나의 예측을, 혹은 기대를 완전히 배반했다. 

매스컴의 극찬대로 검은 꽃은 과연 근자에 출간된 한국 소설 가운데서 보기 드문 수작이다. 우선 압축의 미가 대단했고, 서사의 힘이 강렬했다. 물론 김영하 특유의 (개인적으로)짜증나는 캐릭터들은 여전히 소설 군데군데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이야기에 있다. 변화무쌍한 태평양의 파도처럼 끝없이 다른 모습으로 끈질기에 이어지는 이야기의 힘이 바로 이 소설의 힘이며 미덕이다. 이 소설은 방대한 역사의 이야기이며, 수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수난 이야기이며,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이고, 사랑 이야기이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 맨 앞장을 펼쳐 다시 첫 페이지를 읽으니 무언가 아련하고 가슴저리는 감정이 밀려왔다. 여명 속에서 빛을 잃어가는 별을 바라볼 때, 그 별이 강렬하게 빛을 발했을 지난 밤을 생각할 때, 그 때 느껴지는 감정과도 비슷했다. 
 

* 소설 속 캐릭터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역시 주인공인 김이정이었다. 소설 초반에는 참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중, 후반으로 흐를수록 점점 애정이 가는 캐릭터였다.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한마디 한마디, 동작 하나 하나에서 배어나는 짙은 허무와 곧 사그라질 것 같은 들뜬 열망들이 가련함과 연민을 느끼게 했으며, 운명처럼 겪게 될 비극을 예견케 해 주어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소설을 다 읽고 다시 앞부분을 읽어보니 처음 읽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정의 초반 행동들에서도 연민과 애정이 느껴졌다. 정말 묘한 매력을 지닌 주인공이었다. 반면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캐릭터는 여주인공인 이연수였다. 그녀는 김영하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짜증나는 캐릭터의 전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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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반점 - 2005년 제2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한강 외 지음 / 문학사상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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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은 과연 최고의 단편 소설에게 주어지는 상인가?

과거 깊고 푸른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숨은 꽃, 하나코는 없다 등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정말 최고의 소설이구나, 라고 감탄을 하면서 이상 문학상 대상 수상작들을 읽었었다. 소설을 많이 읽던 시절이 아니었고, 아직 어린 나이였다.

그때는 과연 그런 작품들이 최고의 단편 소설들인 것 같았다. 참 어찌 이리 신기하게도 최고의 작품을 정확히 뽑아 상을 주고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를 해 주는가... 심사위원들이 대단해 보였고, 소설가가 위대하게 보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이상 문학상 수상작을 읽지 않게 되었다.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던 시절부터였다. 포우와 알베르 카뮈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요시모토 바나나와 하루키의 소설을 죄다 구입해서 읽고, 토머스 해리스와 스티븐 킹의 소설들을 탐독했으며, 엘러리 퀸과 애거스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들에 열광했었다.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 생쥐와 인간 같은 소설들을 읽으며 과연, 이것이 최고의 소설들이구나, 찬사를 아끼지 않았었다. 대부분 외국 소설들을 읽었지만 젊은 날의 초상, 난쏘공 같은 국내 걸작 소설들도 읽었고, 김승옥과 손창섭, 양귀자, 신경숙, 은희경의 소설들을 읽으면서도 물론 감탄하고 만족을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도 이상하게도 이상문학상 수상집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까지는 그래도 끝가지 읽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이상문학상 수상작을 끝까지 다 읽지 못 했다. 몇 번 그러다 보니 아예 관심을 끊게 되었다. 재미가 없었다. 감동도 없었다. 의심이 들었다. 이것이 과연 오늘날 최고의 단편 소설이 맞는가? 싶었다. 그렇다면 과거에도 그랬던 것인가? 책을 많이 읽지 않던 시절이라 무슨 소설이든 다 재미있고, 대단해 보였던 것일까? 그러나 그게 아니다. 아닌 것 같다. 과거의 이상문학상 수상작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숨은 꽃, 하나코는 없다 등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감탄을 금치 못하고, 또 과연, 최고였다. 

요컨데 과거의 명성을 따라가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의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이... 

작년에 김훈의 화장을 읽으면서도, 언론과 비평가들이 너무 극성스럽게 칭찬을 해댔던 탓인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이게 그렇게 잘 된 소설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정말 오래간만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돈을 주고 구입했고, 작정하고 거기에 실린 모든 소설들을 읽었다. 그리고, 역시... 몽고반점. 이것은 작년의 화장보다도 더 못 한것 같다... 형부와 처제의 불륜이다. 그러나 별로 충격적이지는 않다. 엇비슷한 설정을 이미 다른 장르, 다른 매체를 통해 여러 번 봐왔기 때문일까.... 심사위원들의 말처럼 읽히기는 잘 읽혔다. 설정이 설정이니 만큼... 그러나 그것말고는 심사위원들이 한 말에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순수로의 회귀, 예술적 승화... 예술은 보이지 않았다. 예술가의 고뇌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본능을 주체하지 못 하는 이해할수 없는(혹은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인간들만 보일 뿐이었다. 정말 소설 같고, 영화 같은 이야기였다. 잘 읽혔지만 읽는 내내 불편하고 불쾌했다. 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나, 싶었다. 몽고반점보다 한강의 자선 대표작인 아기부처가 훨씬 나았다. 내가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이고 한강에게 상을 줄 것 같았으면 아기부처로 일찌감치 주었을 것이다. 한강의 전작 중에서 내 여자의 열매 라는 작품도 몽고반점 보다는 좋았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이 아니라서 그런지 몽고반점의 어디를 보고 그토록 극찬을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저, 역시... 과거의 명성에는 못 미치는 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이상문학상에 대한 내 기대가 또 한번 꺾였다. 이제는 과거처럼 심사위원들이 대단하게 보이는 일 따위는 없다. 역시,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다행히, 마냥 아쉽지만은 않았다. 한 줄기 희망이 있었다. 박민규의 소설 때문이다. 이번 작품집에 실린 소설 가운데 가장 빛나는 소설은 대상 수상작인 몽고반점이 아니라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였다. 실망스러웠던 이 작품집에 별점을 네 개나 준 이유는 바로 박민규의 소설 때문이다. 그의 소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작품집을 사지도 않았을 것이다. 박민규는 작년에도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라는 작품으로 우수상에 이름을 올렸었다. 왜, 이 작가에게 상을 주지 않는지 알 수 없다. 물론 몇 년 후에는 분명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해진 수순처럼 우수상에 몇 번 더 이름을 올리고 마침내는 대상을 수상하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강도 그런 과정을 거치고 대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꼭 그래야만 하는가... 몇 년이 지나면 과연 박민규의 소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완성도가 높고 좋아지는 것일까? 정말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좋아지는 것일까? 모르겠다. 한강의 경우 아기부처 이후 몽고반점까지 과연 어떤 발전을 보였기에 상을 준 것인지, 단적으로 몽고반점이 아기부처보다 얼마나 더 잘 된 작품이고 얼마나 더 이상 문학상에 부합하는 작품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이 아니니... 나에게는 과연 최고를 가려내고 평가할 수 있는 눈이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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