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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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세번째 장편소설이다. 왕따 소년 못과 모아이가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세계로부터 배제되어 버린 개인이라 생각하며 비참한 현실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는 중학생들이다. 그러다가 못과 모아이는 탁구를 친다. 탁구를 치면서 세상을 더 깊이 알아간다. 사실은 그리 대단할 것도, 정의로울 것도 없는 세상의 진실들이 탁구공처럼 탁구대 위를 통통 튀어 오른다.
못과 모아이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우연히, 그러나 사실은 필연적으로 인류의 대표들과 탁구 시합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인류의 운명을 걸고서 말이다. 왜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그저 해야만 하는 것이다. 못과 모아이가 이긴다면 인류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 즉 인스톨하거나, 언인스톨 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의 운명을 건 7전 4선승제 탁구 시합! 과연 승자는 누구일까?

「핑퐁」은 여느 박민규의 소설처럼 역시 경쾌하고, 빠르다. 그리고 웃기고, 기발하다. 이 세계가 현재 1738345792629921 : 1738345792629920의 아슬 아슬한 듀스 포인트에 놓여 있다는 발상이나, 소설속에 존 메이슨이라는 가상의 작가가 쓴 가상의 소설이 이야기 되는 부분 등은 재밌고, 놀랍고, 날카롭다. 특히 소설의 전반에 걸쳐 존 메이슨이라는 작가의 소설들이 여러편 소개 되는데 이 서브 스토리들이 「핑퐁」이라는 메인 스토리보다 오히려 더 흥미로울 정도였다.

그러나 「핑퐁」은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나 「카스테라」에 실린 몇몇의 뛰어난 단편들(그렇습니까? 그린입니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갑을 고시원 체류기, 카스테라 등)에 비해서는 재미도, 감동도, 위트도 조금씩 떨어지는 듯하다. 즉 한국소설 치고는 재미있는 편이지만, 박민규의 소설 치고는 범작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조금 아쉬웠다, 조금.
그냥 단편 정도로 썼다면 더 좋았을 내용을 지나치게 길게 늘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재미와, 위트와, 감동은 전작들에 비해 조금 떨어진 대신, 진지함과 뚝심은 더 올라간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작가 박민규의 진짜 모습은 「삼미 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보다 「핑퐁」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12월에 박민규의 신작 소설이 또 나온다고 한다. 그 소설 역시, 박민규니까, 무조건, 일단, 아무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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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밀리언셀러 클럽 50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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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길을 잃어버린 아홉살 소녀가 있다. 소녀는 홀로 길을 찾아 나선다. 소녀는 외로이 고군분투한다. 소녀가 싸워야 할 상대는 자연이다. 때때로 자연은 말없이 가만히 있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존재로 돌변할 수 있다.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인간을 절망 속으로 완전하게 옭아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녀가 궁극으로 싸워야 할 상대는 자연이 아니라 자신이다. 끊임없이 공포에 속박되어 버리려는 내면의 소리들에 맞서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소녀는 끝없이 싸우며 걷는다. 그런 소녀에게 유일하게 힘이 되어 주는 것은 라디오에서 중계되는 톰 고든의 야구시합이다. 아니 톰 고든 그 자체이다.

이 소설은 한번 길을 벗어나면 다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고통이 따르는 지에 대한 공포와 교훈을 함께 보여 준다. 한번 어긋난 길을 다시 찾기 위해서 얼마나 맹렬한 의지와 굳건한 신념이 필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소설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벗어난 정도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싸우고, 의지할 수 있는 희망을 찾고, 아프고, 눈물 흘리고, 극복하고, 걷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는 소설이다.

소녀는 마침내 해낸다. 숲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뒤를 따라 다니던, 끊임없이 자신을 위협하던, 끊임없이 많은 공포와 상상을 불러 일으키던 그것과 싸워 이겨낸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길었던 공포를 극복하고 가까스로 원래의 길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녀는 다시 성장할 것이다. 길이 아닌 곳으로 발을 들여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알면서도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 할지도 모르고, 또 가까스로 극복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성장하고, 부딪히고, 극복하고, 다시 성장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소설 속 소녀는 애정이 가는 캐릭터다.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은 길을 찾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캐릭터다. 아홉살 어린 소녀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이끌 줄 아는 캐릭터다. 킹이 창조한 아이들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는 중편 분량의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이야기가 주는 재미와 주제에서 느껴지는 교훈과 감동의 깊이는 여느 장편 못지 않다. 훌륭한 소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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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덱스터워드의 비밀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변용란 옮김 / 영언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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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신병원의 한 병실에서 환자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환자의 이름은 찰스 덱스터 워드라는 26세의 젊은이. 탈출을 했다기 보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더 알맞은 정도로 그의 실종에는 의문이 많이 따른다. 그는 과연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비밀을 알기 위해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찰스의 과거로 간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과 역사, 족보학에 관심이 많던 찰스는 조상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섬뜩하고도 흥미로운 사건 하나를 접하고 그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찰스가 연구에 몰두하면 몰두 할수록 그의 주위에서는 괴기스런 일들이 발생한다.
악마의 웃음 소리가 들리고 집 주위에 알 수 없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광체가 번쩍이는가 하면 코를 찌르는 지독한 악취가 풍겨나고 마을의 무덤이 파헤쳐지며, 흡혈귀가 출몰한다. 사람들은 찰스에 대해 두려움과 적개심을 드러내고, 그러는 사이 아무도 모르게 찰스의 집에서는 엄청난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찰스도 변해간다. 찰스가 몰두하는 연구는 과연 무엇이며, 찰스 그 자신과 마을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공포의 근원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소설은 마지막 순간에 소름끼치는 반전을 드러내며, 공포의 끝은 소설의 시작과 기막히게 맞물린다.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은 다소의 인내와 집중력을 요구한다. 문장은 각이져 있는듯 단단한 느낌이 들고, 서사는 자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독자의 의식을 수시로 환기 시킨다. 그러나 천천히 성정을 다해 한글자, 한글자 꼼꼼히 읽어 나가며 서사의 흐름에 의식을 맞추게 된다면 어느 순간부터 굉장한 마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것은 일시적인 쾌감이나 흥분이 아니라 인간의 심연을 오래 자극하는 근원적인 공포와 상상력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페이지가 많이 넘어 갈수록 읽는 이의 마음속에 공포는 누적되어 쌓이고, 마지막장이 다가오면 그 무게에 몸과 정신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소설 속에 몰입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정확히 어떤 느낌이냐면 작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져 종이 위에 쓰여진 허구의 한 이야기를 단순히 읽는 느낌이 아니라, 러브 크래프트라는 작가의 머리 뚜껑을 열고 그 질퍽거리는 뇌속으로 한 발자국씩 직접 들어가다가 어느 순간 머리 뚜껑이 닫히고 작가의 뇌속에 영원히 갇혀 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질식할 것 같은 무겁고 음습한 공포의 느낌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러브 크래프트의 뇌수가 내 정신의 일부분으로 흘러 들기라도 한것처럼 말이다. 찰스덱스터 워드의 비밀은 한편의 공포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공포와 재미를 독자의 눈꺼풀 속으로 직접 집어 넣듯 생생히 보여주는 소설이며, 허구의 이야기를 넘어 작가의 폭발할 것 같은 맹렬하고도 처절한 삶의 뜨거운 숨결과 천재적이고 광기어린 재능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러브 크래프트를 왜 공포 소설의 대가라고 부르는지 이 한권의 소설만 읽어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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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의 랑데부 동서 미스터리 북스 54
코넬 울릿치 지음, 김종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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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하는 여인 도로시를 기다리는 남자, 조니 마. 불이 켜진 작은 잡화점 진열장 앞에서, 그는 매일 밤 연인을 기다린다.
그러나 연인은 오지 않는다. 도로시는 이미 죽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술병에 머리를 맞고, 어이없이, 너무도 허망하게 조니의 곁을 떠나 버렸다.
그러나 조니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기다린다. 그의 의식 속에서는 아직 연인이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살아 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그녀가 자신을 찾아 올 것만 같다. 그래서 조니는 계속 기다린다. 한 경솔한 경관이 그를 그 자리, 오지 않는 도로시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서 있던 그 잡화점 진열장 앞에서 내쫓기 전까지. 

어느날 갑자기,
조니는 사라진다. 
그리고 복수가 시작된다.
도로시의 머리 위로 떨어졌던 술병. 그 술병을 던진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 시각에 도로시의 머리 위로 한 대의 경비행기가 지나갔음을 알 뿐이다. 그 시각, 그 경비행기에 탑승해 있던 다섯 명의 승객들. 그들 모두에게 복수의 칼날이 날아간다. 그들은 차례차례 상복과 랑데뷰하게 된다.  

코넬 울리치는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로 아름답고 잔혹한 복수극을 그려낸다.
조니가 벌이는 다섯 번의 살인극. 사랑하는 도로시를 죽였을 것이라 짐작되는 다섯 명의 용의자들 모두에게 자신이 당한 것과 똑같은 고통을 선사하는 조니의 끔찍하도록 집요한 복수극.
그러나 독자는 조니를 미워할 수 없다. 다섯 번의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이미 떠나간 연인을 잊지 못해 가슴아파하는 사나이의 뜨거운 사랑과 우수어린 뒷모습을 오히려 연민과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와 가슴 떨리는 로망스의 절묘한 랑데뷰. 날카로운 추리와, 애틋한 감성의 아름다운 조화. 코넬 울리치 소설이 매혹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코넬 울리치의 추리 소설에는 항상 슬픈 드라마가 깔려 있다. 그래서 더욱 소설에 몰입될 수 밖에 없다.  

도로시를 향한 사랑의 열정과, 복수의 집념에 한꺼번에 사로잡힌 비운의 사나이, 조니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독자는 소설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그 운명의 종극을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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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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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극초정밀 밀실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고층건물의 최상층, 이중강화 유리로 고정된 유리창, 고성능 센서 감지기와 보안 카메라가 설치된 복도,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올라올 수 있는 엘리베이터, 복도를 지키는 세 명의 비서, 옥상으로도, 계단으로도, 천장으로도, 배기구로도 도무지 침입할 수 없는 완전한 밀실!
일요일 한낮, 도심 한 복판의 완전한 밀실 속에서 간병 회사 사장이 살해당한다.

패기만만한 젊은 여자 변호사와 노련한 보안 전문가가 등장하고, 사건 당일 회사에 있었던 주요 간부들부터 세 명의 비서, 경비원들, 간병 원숭이, 간병 로봇까지... 작고 미비한 모든 존재들까지 용의의 대상에 오른다.
철저하게 현장을 재조사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가능한 몇 개의 가설들을 만들어가지만... 가설들은 모두 벽에 막히고 처참하게 무너진다. 도무지 이 살인은 불가능하다는 결과로밖에 귀결되지 않는다.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고...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누가, 살인을 저질렀나, 가 아니고, 어떻게, 살인이 가능했나,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중, 삼중의 철저한 감시망을 뚫고 완전하게 보였던 밀실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을까...

소설의 첫 장을 여는 순간부터 독자는 기시 유스케가 만들어 놓은 밀실의 마력에 완전히 빠져들고 만다. 기시 유스케는 그 명성에 걸맞게 근래에 볼 수 없었던 정통 밀실 추리의 진수를 유감 없이 보여주며, 라스트에는 독자들을 위해 작은 반전까지 준비해 둔다.
견고하게만 보였던 밀실이 무너지는 순간, 또 견고하게만 보였던 완전범죄가 무너지는 순간, 독자는 극적인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조사와 취재, 전문지식의 탐구를 바탕으로 4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원고와 씨름했을 기시 유스케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작가가 작가다우려면 모름지기 이 정도는 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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