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만리장정
홍은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행기를 타든 배를 타든 자동차를 타든 생계를 위한 여행이 아닌 자유로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특히 거둬야 할 처자식이 있는 사람이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잠시 접어두고

가장 원시적인 탈 것, 자전거로 떠난 여행이라니 날 것의 싱싱함이 예상된다.

 

 

 

사진으로만 보면 오십 이라는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만큼 군살 없어 보이는 포즈가

섹시하기까지 하다. 하긴 자전거 바퀴가 원형에서 십이각형, 육각형, 결국은 사각형으로

변하는 동안 그의 삐죽했던 살들이며 덧께낀 일상들은 다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칠 년전 미국 대륙을 80일간 횡단한 경험이 있다는 그의 이번 중국 여행은 대학에서 동양사학과를

전공할 때부터 자신의 옆구리를 간질이는 나라였다고 했다.

미국 대륙 횡단 여행의 자신감이 그동안 내려놓지 못한 꿈을 부채질 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만리장정은 상하이-시안-베이징을 세 꼭짓점으로 중국대륙에 삼각형을 그리는 여정이다

확실히 그가 만난 중국은 과거와 현재, 타성과 변화가 공존하는 거대한 대륙임을 실감한다.

많은 민족과 언어뿐만이 아니라 길을 물어도 속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할만큼 대국인(大國人)의

느릿한 공간지각력같은 것이 만리장성이나 수로를 몇 백년에 걸쳐 완성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중국도 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쳐왔지만 속으로는 이게 혹시 나이듦에 대한 무망한 저항,

더 나쁘게 말해서 세월의 흐름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발악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228p

 

'죽의 장막'이었던 중국이 닫혔던 문을 열고 '세계화'에 동참한 시간을 길지 않다.

아무리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회주의의 모습을 여전히 뒤집어 쓴 채 이제 막 돈맛을 알게된

사람들이 이방인을 안전하게 돌려보내줄지 불안하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불혹을 지나 나이듦에 익숙해져 더 이상 아무것도 해보지 못할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컸을 수도 있다.

 

 

 

오히려 단순하기만 한 미국식 아침보다 자신의 입맛을 자극했던 국수맛을 잊지못해

그가 달렸던 312번 국도를 쌀과 밀가루의 수없이 많은 국수 변주곡을 체험할 수 있는

'누들로드'라고 했을만큼 그의 면요리여행이 더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유럽의 신도시처럼 멋있다는 상하이에 엉킨 교통도로안에서도 그들만의 질서가 있었듯이

반갑다고 연신 인사를 해대다가도 바가지를 옴팡 씌우고 달아나는 기사처럼 마이너가 있었다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꼬마가 건네주었던 따뜻한 물 한잔같은

따뜻함이 공존하는 나라, 그 곳이 바로 중국의 참모습이다.

 

흔히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부터 정치, 경제 문화에 박식한 저자를 따라 나선 자전거여행에서는

볼 것, 느낄 것들이 많아 호텔예약부터 비행기 삯까지 자세히 전달해주는 기존의 여행서라기

보다는 조금은 가볍지만 튼실한 인문서를 읽은 느낌이다.

미국과 중국에 이은 다음 여행지는? 나 말고도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글쎄 남미나 호주 어디쯤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을 그가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토리 오브 엑스
A. J. 몰로이 지음, 정영란 옮김 / 타래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제목으로만 보면 마치 스파이가 나오는 미스터리쯤 짐작되었다.

하지만 오호라...완전 에로틱스릴러가 아닌가.

풋풋하게 청춘이 피어나던 어느 날이던가 한 두번쯤은 읽어 봤음직한 에로틱한

사랑이야기에 더운 날씨에 자꾸 몸이 더워져서 혼났다. 그럼에도 마지막장을

덮을 때 까지 책을 놓지 않았던 건 꼭 에로틱한 상상때문만은 아니었다.

과연 마지막 여섯번 째 미스터리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탈이아의 멋진 도시 나폴리는 지금 쓰레기와의 전쟁중이라는 보도를 들었었다.

그 쓰레기 전쟁에는 마피아가 관련이 있다는 것까지.

아름다운 도시에 쓰레기가 방치되어야 하다니..더구나 이제부터 두 남녀의 뜨거운

사랑놀음이 펼쳐지려 하는데 말이다.

스물두 살의 알렉산드라 백크만은 미국태생으로 자신의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나폴리에

왔다. 친구들은 그녀를 간단히 X라고 부른다. 베프인 제시의 옆집에 세를 얻은 X는

아직까지 섹스도 해보지 못한 순결한 처녀였고 이 여행에서 그 딱지를 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띈 남자는 미남인데다 바람둥이처럼 생긴 마크 로스캐릭이다.

마크는 제시와 X가 마신 술값을 대신 내주면서 서로가 호감을 느꼈다는 걸 깨달은 X는

논문자료를 수집하는 척하면서 마크에게 접근한다.

마크와 X는 불꽃처럼 뜨거운 사랑을 시작한다. 미끈하고 잘생긴 마크는 엄청난 부자인데다

싱글이다. 마크는 X의 첫 섹스를 황홀하게 치러준다. 그야말로 두 사람은 불꽃튀는 섹스를

즐기게 된다. 물론 마음이 함께하는 멋진 의식으로 말이다.

 

마크는 X에게 자신을 계속 만나기 위해서는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첫 번째 미스테리로

안내한다. 비밀스런 장소에서 벌어지는 다섯 번의 미스터리는 성(性)의 향연이었고 두 번째,

세 번째 이어질수록 변태스런 행위가 더해진다.

 

도대체 X는 수상한 미스터리를 수행해야만 할까. 미스터리를 포기하면 더 이상 마크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몸과 마음 모두 마크에게 길들여진 X는 마크를 놓칠 수 없어 치욕스럽게

보이는 미스터리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무슨 마법의 힘인지 속옷도 입지 않은 맨몸으로

여러사람들 앞에서 치부를 드러내는 그 의식들이 묘한 욕망과 오르가즘을 이끌어낸다.

 

의식이 끝날 때마다 X는 미스터리의 비밀을 풀기위해 검색을 해나간다.

그 미스터리의식의 배후에는 마피아가 있으며 아주 오래전 종교의식에서 비롯된 이 의식이

마피아의 돈과 권력을 지탱해주는 위험한 의식임을 알게된다.

 

마지막인줄 알았던 다섯번째 미스터리에서 마크는 X의 손을 잡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게 된다.

차마 그 미션만은 마크 자신도 용납이 안될 만큼 무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밀스런 의식을 배반한 댓가는 바로 목숨이다.

과연 두 남녀의 폭풍과도 같은 사랑은 해피엔딩이 될 것인가.

 

A. J. 몰로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쓴다는 이 소설의 작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한다.

하긴 이렇게 적나라한 에로틱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특별한 베일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같다.

누군가 곁에서 이 책을 흘끔거릴까봐 신경쓰일 정도의 낯뜨거운 묘사는 자신이 직접 경험했거나

아니면 간절히 원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표지에 붉은 색으로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고 붙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사랑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커플이라면,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살 닿는 것조차 짜증나는

오래된 부부들이라면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사춘기 아들녀석이 보지 못하게 꽁꽁

숨겨놔야 할 것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500일간 세계를 누비다! 시리즈 1
태원준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낭여행을 꿈꿔본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환갑의 엄마와 함께 배낭여행이라니.

서른 살이란 나이를 먹은 사나이가 연인과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늙어가는 엄마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타이틀은 살짝 늙어가고 있는 나에게는 눈이 반짝거릴 일이다.

세계여행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젊어서 나도 몇 몇 나라를 여행해본 적이 있었다.

소원을 물어오는 친구에게 '나 이담에 걸어다닐 수 있을만큼 체력이 있다면 아들녀석하고

배낭여행을 하고 싶어'했었다.

한데 그건 내 소원일 뿐이고 아들녀석의 소원은 멋진 여자친구와의 여행쯤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내심 가망없는 소망을 품은 내게 이 책은 '할렐루야'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갑작스럽게 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죽음을 겪게 된 아들은 엄마의 환갑잔치에 쓸 돈을 모아

엄마에게 '세계여행권'을 안겨드린다.

하긴 요즘 누가 환갑잔치를 하냐만, 문제는 이 여행권이 뽀대나는 크루즈여행권쯤 되면

좋으련만 배낭여행이란다. 아무리 인생은 육십부터라지만 그 나이에 배낭여행은 무리가 아닐까.

심지어 아직 환갑이 먼 나조차도 지방여행 2박 3일에 일주일간 몸살이 기본인데 말이다.

 

계란 세판의 나이를 합친 두 사람의 여행은 그리 낭만적일 것이란 기대는 없었다.

아무리 핏줄이 땡기는 가족이라 해도 기나긴 여행, 그것도 빈티지한 여행에 부딪힐 일이 한 두가지

였을까.

인천공항이 아닌 인천국제여객선터미널에서 칭다오로 향하는 배에서 시작된 여행은 육로로 이어지는

반도의 끝 싱가포르에 이를 때까지 만만한 여정이 아니었다.

미처 봄이 오기전 시작되었던 여행은 꽃피는 봄이 가고 제발 더위만은 먹지 말아달라는 아들의

기원에도 불구하고 여린 엄마를 쓰러뜨릴 만큼 지독한 무더위에 시달리는 계절을 지나간다.

 

 

'아들 몇 푼 아끼겠다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에 빨리 숙소 잡고 좀 쉬자'라고

폭발하는 엄마에게,

'엄마 나는 우아한 백조가 아니에요. 물속에 잠겨 허우적거리는 제 발은 안보이시죠?'

라고 아들은 항변한다.

결국 한국으로 되돌아갈 위기는 다시 봉합되고 예전과는 다르게 좀 더 여유있는 일정을 갖게 된다.

왜 좀더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지 못했을까.

여행을 떠나보면 우리는 생소한 나라의 경치만 보는 것이 아니다. 결국 만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이제 생각보다 중국은 조금씩 청결함을 찾아가는 것같고 순대속처럼 채워지는 기차안의 승객들은

언젠가는 우리처럼 느긋한 기차여행을 즐길 날이 올 것이다.

전쟁의 상처로 여전히 미국인에 대해 비자 내주는 것을 꺼린다는 베트남은 우리가 일본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주 오랫동안 아픔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순진무구했던 동남아의 사람들은 이제 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때문에 돈맛을 알아가고 순간의 욕심이

자신의 나라를 먹칠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될 것이고.

캄보디아쯤으로 여행갈 계획이었던 나는 툭툭이 기사를 어떻게 섭외할지 벌써부터 고민이 된다.

특히 불친절과 바가지의 나라 라오스는 절대 가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필리핀의 마닐라는 패스트푸드점앞에도 장총을 든 경비원이 서있을 정도의 치안이라니 갑자기 우리나라가

고맙게 느껴진다.

스리랑카에서는 차장대신 엄마가 승객들에게 차비를 받고..정말 대한민국 아줌마의 힘은 위대하다.

하필이면 '쟈스민 혁명'에 휩싸인 이집트에 도착한 모자는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 날 쏘아댄 축포에

놀라지만 축제에 휩싸인 거리에서 무바라크의 30년 독재가 막을 내리는 현장을 목격한다.

하지만 1년후 그 희망의 대통령이 다시 축출될 것임을 그 거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막의 땅에서 발견한 '오아시스'처럼 인생은 가끔 이렇게 오아시시를 만나 지친 몸을 쉬어도 좋지 않을까.

아하..이집트 사람들도 유대인처럼 남자들이 장을 보는 군.

팔레스타인들의 땅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여전히 낯이 두꺼워서 원 예수님이 나셨던 고향이라는게

믿어지지가 않을만큼 까다롭고 인정머리 없는 나라이고. 나 역시 평생 갈일은 없겠어.

 

'부러우면 지는거다' 하지만 부럽다.

내 나이 환갑이면 아들녀석은 아직 서른에 이르지 못한 나이가 된다. 그래도 아들아 너도 내 손잡고 같이

배낭여행 안해줄래? 이 책을 녀석이 잘 볼만한 곳에 놓고 하루에 한 장씩 읽게 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해 아들아. 우리도 이런 책좀 써보자. 엄마 성질 안부릴게 약속해.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원준씨 모친 동익씨, 사람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다.

그저 나의 마음을 먼저 전하면 될뿐...이라던 말씀 잊지 않을게요. 진심으로 부럽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순 다섯살의 여인이 킬러라니...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닌 어설프고 부당하고 비루한 삶이 부여된 열두 살의 소녀는

일곱 평짜리 집에서 6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옆으로 누워 칼잠을 자야할만큼 비좁은 방안에서 부모는 어찌 어찌 그 짓을 해서

기어이 주르륵 고추를 떼고 나온 딸들 밑으로 막내 아들을 보았는지 기가막힌 노릇이지만,

남들 하는데로 새끼들은 가난과 상관없이 죽 질러놔야 하는지는 어떻게 알았을까.

귀한 막내아들을 어떻게 써먹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투전판을 전전하던 애비가

돈을 벌어 보겠다고 집을 떠난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입하나 덜 요량으로 제법 산다는 당숙모집으로 옮겨진 소녀는 촌수로는 식모보다

끝발 하나가 위였지만 식모 보조가 되어 입에 풀칠 걱정은 덜었다.

일남 일녀와 두 내외의 단촐한 가족 구성원과 처음보는 살림살이에 넋이 나간 소녀는

혼담을 앞둔 언니의 패물을 훔쳤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쫓겨나게 된다.

 

류를 만난 것은 소녀의 운명이지 싶다.

다시 되돌아간 집에는 가족들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당숙모네로 되돌아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을 때, 류와 그의 아내 조는 선뜻 소녀의 손을 잡아 준다.

류의 소개로 들어간 클럽에서 부엌시중을 들던 소녀는 자신을 덮치려는 미군의 목구멍에

꼬치를 박아넣고 이를 목격한 류의 도움으로 뒷처리를 한 후 류와 조, 소녀는 도망치게 된다.

 

이후 소녀는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는 조와 한 집에서 살게 된다.

아내가 묻지 않는 그 일!

소녀는 류에 의해 그 일을 전수받게 된다. 흔히 방역이라 불리는 살인청부업.

류는 말했었다. -이거 소질있네.

 

한 번 발을 들여 놓으면 병원에 실려가거나 생명이 다하는 날이나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그 세계에 발을 딛은 소녀는 '손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후에 다시 '조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여자는 류와 조와의 묘한 삼각관계를 이루고

떠나려는 '조각'을 주저 앉히면서 류는 말한다.

"네가 없으면 이제는 내가 불편해. 그러니까 관둬."

류에게 조각은 어떤 의미였을까. 조각에게 류는 또 어떤 의미였을까.

 

조각은 예순 다섯살이 된 어느 날 방역을 하던 중 다치게 되고 다니던 병원에서 강박사를

처음 만나게 된다. 서른 여섯살의 이 남자가 조각의 가슴에 박히게 된다.

사실 조각은 사랑다운 사랑을 해보지 못했었다.

아버지 같기도 오빠 같기도 했던 류가 조각이 아는 남자의 전부였다.

 

조각을 죽이려는 투우에게 딸이 납치된 강박사가 그녀를 향해 내가 살려서는 안될 사람을

살려놨나요...라고 묻자 그녀의 마음이 대답한다.

'미안합니다. 그건 나 때문입니다. 내 눈이 당신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 눈으로

심장을 흘리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269p

 

한 때 그녀의 몸에 머무르다 떠나 보낸 아이를 기억해 낸것일까?

강박사의 딸아이를 납치한 투우와 마지막 일전을 벌이던 중 조각은 투우가 왜 자신을 끝까지

죽이려 했는지 알게된다.

자신의 죽여온 수많은 사람들과 남겨진 어린아이들..

죽어가던 투우의 말대로 생명의 불꽃이 꺼지는 마지막 순간에 주마등처럼 모든 것이 떠오를까.

 

언젠가 불리던 '손톱'이란 이름을 버리고 '조각'된 여인은 이제 거친 피부와 으드덕거리는

관절이 가진 노부인이 되었다.

이제는 다섯 손가락만 남겨진 칙칙한 손톱위에 무지개빛 메니큐어가 얹어지고 그녀는 여전히

류에게 갈 시간이 아직은 오지 않았음을, 그래서 지금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임을

받아들인다.

 

 

'파과'라는 소설이 저자의 냉장고에서 비롯되었다는 마지막 말이 인상깊다.

누구나 냉장고안에 수많은 비밀들이 담겨있고 썩어가고 있지만 세상에 이렇게 멋지게 재탄생시켜

내놓을 이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 여자의 쓸쓸한 인생이 그것도 사람의 목숨을 떼어내는 방역업을 하는 여자의 미처 달구어지지

못한 사랑이 애달파 헛헛해지는 가슴을 자꾸 문질러 본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 소설이 언젠가 영화화가 될 거라는 예감때문에 읽는 내내 과연 예순 다섯살의

'조각'이란 여인을 누가 연기할 것인가가..숙제처럼 다가왔다.

이 정도 멋진 킬러역을 해내려면 '안젤리나 졸리'급은 되어야 하는데..

'은교'를 읽을 적에도 그랬었다. 누가 '적요'를 연기할 것인가...결국 내 예감대로 은교는 화려한

필름을 감고 세상에 나왔었다. 글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공을 넘겨야겠다.

'조각'은 어느 배우가 어울릴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클라이머즈 하이: 뭐에 홀린 듯 미친 듯이 고도를 높여가는 것, 흥분상태가 극한까지 달해

공포감이 마비되어버리는 상태.

 

얼마전 아시아나 여객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추락하는 사건에 이어 이 소설의 주무대인

군마현 오스타카산과 경계에 있는 나가노현 중앙 알프스산에 등산을 갔던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실제 1985년 8월 12일 도쿄에서 오사카로 향하던 JAL123편이 정비불량으로 추락한 사고와

이 사건을 취재하는 특종을 향한 기자들의 전쟁과도 같은 사투가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마흔 살의 유키는 군마현의 지방신문 '긴타칸토신문'의 프리핸드 기자이다.

어린시절 일찍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몸을 팔아가며 자신을 키웠다는 상처를 가진 유키는

열 세살이 된 아들 준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음을 알고 고민한다.

8월의 그 날은 회사의 등산동호회인 '오르자'팀의 안자이와 '산악인의 성지'라고 불리는

쓰이타테이와에 오르기로 약속이 된 날이었다.

하지만 유키와 안자이는 결국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된다.

안자이는 조토마치의 길바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고 유키는 JAL기의 추락사고를 취재하는

총괄데스크를 맡았기 때문이다.

 

 

유키는 기자들을 사고 현장에 배치하고 신문에 실릴 기사를 고르는 등 특종을 향한 기자들의

전쟁은 시작된다.

누가 사고 현장인 오스타카산에 먼저 올라 기사를 쓸 것인가.

등산장비도 없이 사고 현장에 오른 두 기자는 참혹한 현장에 충격을 받고 트라우마에 빠진다.

과연 그 현장을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언론인의 자세일까. 읽는 독자들을 배려해서 전쟁터같은

현장의 모습을 채색하는 것이 옳은지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옳은지, 모든 것은 유키의 판단으로

결정하게 된다.

불우한 어린시절의 아픈 상처외에도 자신의 부하였던 모치즈키 료타의 죽음에 얽힌 상처가 있었던

유키는 자신으로 인해 후배기자들이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신문사내에 존재하는

'사장파'와 '전무파'간의 알력에 휘둘려 사사건건 벽에 부딪히게 된다.

 

한편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안자이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는지를 파헤치던 유키는 어린시절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직장 동료 이토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서들과 성추문을 일으키는 '사장파'를 쓰러뜨리기 위해 '전무파'인 이토가 은근히 동조할 것을

요구하지만 유키는 거절한다.

 

항공기 사고에 얽힌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특공작전과 같은 기자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주요신문사를

제치고 특종을 잡을 수 있는 순간 유키는 기사를 포기한다. 혹시라도 오보가 될지 모를 위험때문이었다.

과연 기자출신의 저자만이 쓸 수있는 '총괄데스크'만의 고뇌가 절절히 느껴진다.

더구나 과거의 딜레마였던 모치즈키 료타의 사촌여동생의 투고를 실은 책임을 지고 유키는 좌천되고 만다.

 

많은 세월이 흘러 유키는 안자이의 아들 린타로와 쓰이타테이와에 오른다.

산을 오르면서 유키는 언제나 자신과 거리를 두었던 아들 준이 나이든 아버지를 위해 하켄을 박아두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녀석은 아버지를 미워한 것이 아니었다.

 

삶은 '악마의 산'이라고 불리는 쓰이타테이와를 오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종을 향한 기자들의 치열함도 자신을 멀리하는 아들을 이해하는 일도 모두 까마득한 산을 오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삶의 어느 순간 자신을 잊고 미친듯이 빠져버리는 '클라이머즈 하이'에 빠질때가 있다.

기자로서 유키는 그런 순간이 있었고 아버지로서, 클라이머로서도 치열한 그 순간을 맞이했다.

산에 오르기로 약속한 친구와의 약속을 그의 아들과 지킴으로서.

 

항공사고와 산에 오르는 두려움이 교차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전혀 알지 못했던 기자들의 치열한

전쟁과도 같은 삶을 알게 되었다. 아마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매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배달되는 신문의 기사들속에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기자들의 땀과 수고가

있음을 알게되었다. 전작 '64'에서 느꼈던 따뜻한 부정(父情)이 이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저자인 요코야마 히데오는 분명 좋은 아버지일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