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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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는 일전에 영화로 히트를 친 '눈먼 자들의 도시’의 원작자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1984년 작품이다. 워낙 영화와 책을 재미있게 접한 터라, 지금에서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으며 아직까지도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주제 사라마구의 책이 궁금해졌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제2차 세계 전쟁 이후 출간된 소설이라는 점이 흥미로웠고, 특히 1930년대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방황하는 영혼과 정치적 격변을 다룬다는 이야기가 관심을 갖게 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시를 쓰는 의사인 히카르두 헤이스가 페소에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이민을 떠났던 브라질에서 고향인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16년 만에 돌아와 9개월간 겪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인 히카르두 헤이스는 아마도 죽기 위해 고향에 돌아왔으며,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헤이스를 종종 찾아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포르투갈의 위대한 작가 페르난두 페소에의 이야기 속에서 그시대를 신랄하게 풍자하며, 저자 특유의 문체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저자는 분신인 헤이스가 창조자인 페소나 보다 9개월을 더 살면서 무덤 속의 패소 아를 불러내 새로이 우정을 다진다는 긴박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내가 잠을 받아들인다면, 그건 꿈을 꾸기 위해서일세. 꿈을 꾸는 건 이곳에 부재하는 것, 이면에 가 있는 것이지. 하지만 인생에는 두 가지 면이 있어, 페소나, 적어도 두 가지일세, 그런데 우리가 삶의 이면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꿈뿐이지, 죽은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은 직접 경험한 바에 따라 삶의 이면에는 죽음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테지. 글쎄, 난 죽음이 뭔지 모르겠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삶의 이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게 맞는지 별로 확신이 안 들어, 내 생각에 죽음은 그냥 있는 것으로 스스로를 한정하거든. 죽음은, 그것은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것이다. 그럼 그냥 있는 것과 존재하는 것이 서로 다른가. 그래, 친애하는 헤이스, 그냥 있는 것과 존재하는 것은 서로 다르네, 단순히 두 표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니야, 오히려 그 둘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두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해야지



인간에게 있어 삶과 죽음이라는 토론 주제는 다양한 듯 심플할 때가 많이 있는데, 책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는 628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페소에 와 헤이스의 대화를 통해 저자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몇 번이고 곱씹으며 읽어야 할 소설임이 확실하다.



우리와 함께 돌아다니는 것, 우리에게 동무가 되어주는, 참을 만한 외로움. 그런 외로움이라 해도 때로는 참을 수 없어진다는 점을 자네도 인정해야 하네, 우리는 누군가의 존재, 목소리를 갈망하니까. 때로는 그 존재와 목소리가 외로움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네.

굳이 포르투갈이나 세계 2차대전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없어도 인간에 대한 주제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는 없으니 철학이라는 어려운 말 대신 이를 다양한 주제로 등장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유럽소설, 주제사라마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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