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차가운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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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와카타케 나나미는 1991년 어느 날 악몽 같은 사건으로 회사를 그만둔다. 4년 이상 근무한 회사에 대한 나쁜 기억만 남았기에 우울한 마음에 토할 때까지 술을 마신 와카타케는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 문득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긴다.


하코네 행 로맨스카에 올라탄 와카타케는 우연히 이치노세 다에코라는 여성과 합석을 하게 되었고, 둘은 서로 맞지 않은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졌음에도 하코네를 함께 돌아보게 되었다.

하코네에서 돌아온 뒤 친구가 일하는 회사에서 임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이치노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듯하더니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날에 만나자는 말을 했고, 곧이어 자신의 회사에 관찰자가 있다며 '관찰자, 실행자, 지배자'를 잊지 말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12월에 들어 워드로 청서淸書와 작은 바에서의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던 와카타케는 불현듯 다에코와의 약속을 떠올리고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연령이 느껴지는 목소리의 묘령의 여인이 혼자 사는 다에코 집 전화를 받았고, 그녀는 다에코가 자살 미수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그 정체 모를 여인은 다에코의 자세한 상태와 자살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을 친구라고 밝힌 와카타케에게 다에코의 친구일 리 없다는 말을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렇게 충격을 받고 집에 돌아온 와카타케를 '친구' 다에코가 보낸 맨 위에 연필로 '수기'라고 쓰여진 두꺼운 워드 원고 뭉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앞으로 배달된 수기의 임자이자 아마 그녀의 '친구'가 말한 '관찰자, 지배자, 실행자'일 남자를 찾기 위해 친구가 다녔던 회사에 아르바이트로 나가게 된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범인을 찾아낼지도. 우연히도 그 회사는 대학시절 친구 아버지가 상무로 있는 회사여서 친구 아버지의 소개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와카타케 나나미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중의 한 명이다. 물론 나는 그녀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와 요즘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를 읽은 게 전부지만 그 소설들 속에 나타나는 허를 찌르는 반전들과 가독성이 뛰어난 글들과 특히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에 간간이 나오는 그녀 특유의 유머를 무척 좋아한다.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중 하나인 『나의 차가운 일상』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와카타케가 '수기'를 받는 모습과 그 후로 다에코가 보낸 수기의 내용과 회사에 들어가 수기를 쓴 사람을 추리해 나가는 '현실'이 번갈아 가며 나온다. 2부는 와카타케가 다에코의 입원 소식을 들은 19일 다음 날인 20일부터 24일까지의 하루하루의 이야기와 추리가 나와 있다.


'수기' 때문에 읽는 내내 심리 스릴러를 보는 듯한 오싹한 기분을 느꼈고, 현실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에서는 '그녀'가 들어간 회사의 모두가 범인인 듯한 의심이 들며 긴장감에 심장을 졸이며 봤다. 그리고 수기를 쓴 사람이 밝혀졌을 때 전개되는 이야기에는 잠시 벙쪄서 '아니 이게 뭐지? 내가 뭘 읽고 있지?'라며 잠시 사고가 이해의 수준을 넘어가며 삐걱거려 앞부분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읽으며 나의 이해를 도와야 했다.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가 주는 반전을 좋아하지만, 와~ 이렇게나 제대로 뒤통수를 친다구?

충격으로 나간 정신을 부여잡고 읽어 나가지만 여전히 예상치 못한 곳에서 훅 치고 들어오는 또 다른 반전. 앞에서 그게 이런 내용이었다구?

작가님, 대체 왜 이러시는데요. 제발 깜빡이라도 켜고 들어오세요.

소설은 완전 독자를 마음껏 요리하고 있다.


결말이 약간 씁쓸하긴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소설이 자꾸 마음에 걸리고 더 생각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태껏 사람들에게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를 추천하고 다녔지만 이제 이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를 적극 추천할 것이다.

매력적인 와카타케 나나미의 일상 미스터리의 세계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들어오세요.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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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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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쯤 되는 회사 사나다 건설 컨설턴트에 다니는 와카타케 나나미는 회사일이 재미없어 그만두려고 하던 차에 사내보를 만드는 일을 전담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학교 다닐 때 회지를 만들며 잠깐 편집장을 맡은 경험은 있었지만 거의 경험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던 와카타케는 같은 부서 선배들의 도움을 받으며 사내보 편집 방향을 정하고 제작 방법을 익히며 준비를 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회의 시간에 사내보에 딱딱한 내용의 글이 아닌 오락성 짙은 하이쿠나 여행기나 소설을 실어 달라는 의견이 나와 고민하던 중 소설을 쓰던 대학교 선배 사타케 노부히로에게 편지를 써 한 달에 한 편씩 일 년 동안 연재할 수 있도록 12회분의 단편 소설을 부탁한다.

하지만 사타케는 자신은 불가능할 것 같다며 미스터리풍의 단편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


사타케의 친구는 창작은 서툴렀지만 자신의 체험이나 실제 있었던 이야기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하는 재능이 있었고 와카타케의 제안에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단, 그가 요구한 유일한 조건은 작가의 신원이나 이름 등을 일절 공개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타케는 친구가 쓴 원고를 와카타케에게 동봉했고, 와카타케는 그 익명의 작가의 단편을 사내보에 싣기로 결정한다.



사내보에 실린 익명의 작가가 쓴 12편의 미스터리 단편과 편집장 와카타케 나나미의 편집 후기로 구성된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은 1991년에 발표된 와카타케 나나미의 데뷔작이다.

그런데 데뷔작…맞나? '역시 와카타케 나나미는 와카타케 나나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소설 속 편집장의 이름이 와카타케 나나미여서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이야기인가 하고 혼란스러웠던 적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은 허구이다.

사내보에 실린 단편들은 각각 20~30쪽 분량으로, 화려한 미사여구 없는 간결한 문체는 최고의 가독성을 자랑하며 너무나 쉽게 잘 읽혔다. 이야기는 일상 속에서 보여주는 미스터리가 대부분이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다루며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마냥 허구라고 여겨졌던 단편들의 사내보 연재가 끝난 뒤, 편집 후기에서 소설 속 편집장 와카타케는 익명의 작가를 만나 모든 단편들을 정리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추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충격을 받은 나는 소설 뒷부분에 나오는 와카타케와 익명의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앞으로 되돌아가 언급한 이야기 부분을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헉, 단편들이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나 치밀하게 관련이 있고 이게 그런 의미였다고? 나 대체 무얼 읽은 거지?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은 일상 미스터리, 코지 미스터리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와카타케 나나미의 매력과 진면목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미스터리 추리 소설 초보자 혹은 이미 미스터리 추리 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사람 모두를 사로잡을 매력을 지닌 작품이라 생각된다. 꼭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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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스마트폰 사진 한 장 - 감성쟁이으니의 사진 여행
조정은 지음 / 성안당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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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도 예술 작품이 나오던데 저는 완전 일회용 스냅사진기로 찍은 결과물이 나와요. 이 책을 보고 따라 하면 제대로 된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건가요?? 똥손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기대감 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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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 일주 책세상 세계문학 4
쥘 베른 지음, 이세진 옮김 / 책세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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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링턴 가든스의 새빌로 7번지에 필리어스 포그라는 영국 신사가 살고 있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영국 상류 사회에서 가장 잘생긴 신사이며 리폼 클럽의 회원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한결같이 변함없는 습관을 가지고 사는 인물이었기에 하인에게도 시간 엄수와 자신의 습관에 맞춘 이례적인 규칙성을 요구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10월 2일 오전, 하인 포스터가 면도할 때 쓰는 물의 온도를 1℃ 낮은 온도로 내왔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그리고 그날 바로 자신의 조건을 충족시켜 줄 하인 장 파스파르투를 새로 고용한다.


새로 고용한 하인 파스파르투를 저택에 남겨두고 평소와 같이 리폼 클럽에 간 포그 씨는 평소 게임을 같이 하는 동료 회원들과 며칠 전 영국은행에서 발생한 5만 5000파운드의 도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대화는 사건의 범인이 검거될 것이라는 고티에 랠프와 그런 믿음과 거리가 먼 앤드루 스튜어트와의 논쟁으로 번지고 어느새 교통기관의 발달로 세상이 예전보다 작아졌다는 이야기로 흐르면서 세계 일주에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는 데까지 이른다.


결국 모든 예상 가능한 불의의 상황을 고려해서 세계 일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80일이 걸린다는 계산을 내놓은 포그 씨를 상대로 동료 회원들이 불가능하다는 데 돈을 걸며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2만 파운드가 걸린 내기로 번진다. 내기를 하기로 한 여섯 사람은 그 자리에서 약정서를 작성했고, 그날 저녁 포그 씨는 오전에 새로 고용한 하인 파스파르투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필리어스 포그와 파스파르투는 열차와 여객선을 이용해 런던을 떠나 수에즈에 도착한다. 그런데 수에즈에서는 영국은행 절도 사건으로 세계 주요 항구에 파견한 형사 중 한 명인 픽스가 모든 여행자들을 감시하고 있었고, 마침 영국 영사관에서 비자 날인을 받기 위해 파스파르투가 들고 있던 포그 씨의 여권을 보고는 거기에 작성된 인상착의가 런던 경찰청장이 보내준 절도범의 인상착의와 일치한다고 생각해 포그 씨를 은행 절도범으로 오인한다.

파스파르투로부터 내기로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픽스는 다음 행선지가 뭄바이라는 말을 듣고는, 런던 경찰청장에게 필리어스 포그에 대한 체포영장을 뭄바이로 보내 달라는 전보를 보낸 뒤, 그들을 따라 인도 뭄바이행 몽골리아호에 몸을 싣는다.


뭄바이에 도착한 포그 씨와 파스파르투는 열차를 타고 콜카타로 가던 중, 중간 지점인 콜비에서 알라하바드까지 철로가 완공되지 않아 발이 묶일 뻔했으나, 파스파르투가 이동 수단으로 코끼리가 있음을 알아와 코끼리를 구입해 타고 이동 거리가 짧은 숲을 가로지른다. 그런데 그곳에서 '사티'로 산 채로 죽은 남편과 함께 화장 당할 위기에 처한 젊은 인도 여인 아우다 부인을 발견하고 구출하는데….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비롯해 『해저 2만 리』, 『15소년 표류기』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소설들이 쥘 베른의 작품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에게는 항상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을 저술한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상상과 공상에만 기대어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작품을 쓰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조사하여 정확한 과학적 지식에 기반하여 쓰도록 노력하였기에 '공상 과학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며 후대 과학 소설들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필리어스 포그와 하인 파스파르투가 내기로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하는 소설로, 그들이 세계 일주를 하며 겪게 되는 좌충우돌 다양한 모험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소설은 이 소설이 쓰여진 19세기 당시의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모습과 독특한 풍습, 그곳의 거리 모습 등을 사실감 넘치게 그리고 있어 당시의 모습을 보지 못한 우리들에게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소설 중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과하지 않은 유쾌한 유머는 지금 읽어도 기분 좋은 웃음을 유발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펼쳐지는 기막힌 반전.


소설은 포그가 세계 일주하는 나라 중 아시아 국가로는 당시 홍콩과 일본 요코하마의 모습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있는 조선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읽으면서 '만약 소설이 지금 쓰였다면 우리나라가 들어갔겠지?'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파스파르투가 아무리 홍콩이나 일본에서 고생을 했다고 하더라도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배에서 아우다 부인에게 중국이나 일본 같은 희한한 나라들을 여행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관문인데 이미 그 단계를 지나 문명국들로 돌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데서 당시 유럽인들이 아시아의 국가들을 문명국이 아닌 희한한 야만국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씁쓸했다. 어쩌면 이 소설에 조선이 언급되지 않은 것이 더 다행일지도.


소설은 마지막에 '포그가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는가'를 묻고 있다.

돈? 명예? 매력적 반려자?

이 질문을 보며 나는 나에게 여행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얻고자 했고 무엇을 얻었는지를 자문하며 소설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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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의 것들 이판사판
고이케 마리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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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여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얼굴>은 혼자 살던 모친이 자택에서 홀로 죽은 뒤 유품을 정리하러 고향에 내려간 구니히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쿄로 돌아가는 날 주위의 풍경이 그리워 농로를 따라 잠시 걷다가 문득 주변이 고요해지며 구니히코는 언짢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러고는 멀리서 자신 쪽으로 기이하게 확확 다가오는 낡은 기모노에 양산을 쓴 여인과 맞닥뜨린다. 지나쳐 갈 때 갑자기 뒤로 젖혀지는 양산에 밑으로 드러난 반야면을 쓰고 있는 여인. 순간 구니히코의 머릿속에 옛 기억의 단편들이 떠오르는데….


두 번째 단편 <숲속의 집>에서 '나'는 15년 전 산장 근처에서 일어난 버스 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 미사키와 그녀의 아버지 쓰치야 씨 생각에 상실의 슬픔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포와 불안으로 깊은 숲속에 있는 쓰치야 씨의 작은 산장에 오는 것을 망설였다. 그러나 이번엔 굳게 마음먹고 미사키의 오빠의 부인 아유미 씨에게 연락해 산장 이용을 허락받는데….


<히카게 치과 의원>에서는 바람난 남편과 이혼 후 외사촌이 사는 지방 도시로 이주한 가스미는 과자를 먹다 벗겨진 크라운을 치료하러 치과를 찾아 낯선 도시를 헤매다가 '히카게 치과 의원'이라는 오래된 치과를 발견하고 들어가서 치료를 받는데….


그리고…

남편 조노우치 아키라의 사십구재를 마친 1주일 뒤, 외출에서 돌아온 '나'가 길고 어둑한 복도에서 예전에 자살한 오스트리아인 망령 조피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조피의 장갑>.

프로그램 제작사를 운영하는 다키타에게 자신의 심령 특집 프로그램을 위해 심령현상에 밝은 사람이나 무서운 경험을 한 사람의 소개를 부탁한 연출자 미스즈와 그 이야기가 나오는 <산장기담>.

피처럼 진한 저녁놀을 보면 어린 시절 정신이 이상한 남자에게 납치될 뻔했던 기억과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과 이웃으로 살며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을 삼키며 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미에코의 이야기 <붉은 창>.



일본 소설계에서 여러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호러 분야에서만큼은 독보적인 존재로 '호러 소설의 명수'라고 불리는 고이케 마리코의 소설을 『이형의 것들』로 처음 접했다.

소설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결코 원색적이거나 가볍지가 않다. 슬그머니 척추를 따라 올라오며 천천히 전율하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정교하고 섬세한 표현들로 인해 호러 소설도 고급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느끼게 하는 중독적인 공포였다.


<산장기담>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접해본 방식의 충격적 전개를 주는 강렬한 이야기지만, 나머지 단편들에서 이형의 것들을 맞닥뜨리는 인물들은 이 세상에 발을 걸치고 있는 저세상의 것들을 호들갑스럽지 않게 받아들이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렇게 이형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 그들과 인간의 공존은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소설을 다 읽은 뒤에도 공포가 내 몸에 흐르는 피에 아로새겨진 듯 불현듯 스멀스멀 되살아나 이형의 존재가 내 주위에 실재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잔잔하지만 강렬하고 아름다운 호러 소설 『이형의 것들』에 한동안 빠져 지낼 것 같다.

고이케 마리코의 또 다른 호러 소설이 국내에 빨리 출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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