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국내 최초 스페인어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6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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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쉬우면서도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삶에는 정답이 없기에 그저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려 끊임없이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렇게 선택의 기로에서 내린 결정과 그 선택으로 나아가는 길이 올바른지 확신하지 못해, 자신의 선택과 걷고 있는 길을 계속 의심하고, 고르지 않았던 다른 선택들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렇게 삶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우리는 주위의 인생 선배들이나 책에서 조언을 구한다.


인생을 바르게 이끌어주는 조언들을 건네는 책들은 우리의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삶을 가치있게 살아낼 지혜와 용기를 준다. 그러나 그러한 책들은 대부분 너무나도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하여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한 책들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면 『사람을 얻는 지혜』를 읽을 때 약간의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책은 단지 이상적인 말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어쩌면 세속의 때가 묻어 보이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조언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속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아이러니하게도 17세기 스페인의 신부이자 작가였다. 우리에겐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유럽에서는 마키아벨리와 쌍벽을 이루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라시안의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인생 조언은 니체와 쇼펜하우어, 몽테뉴, 파스칼 등 세계적인 철학자나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이 책을 늘 가까이에 두고 읽었고,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또한 이 책을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 밝혔다.

<현대지성>에서 나온 『사람을 얻는 지혜』는 그라시안의 원본 저서를 국내 최초로 직접 번역하여 출간한 것이다. 여태까지 출판되었던 책들과는 달리 300개의 글 전체를 생략하거나 편집하지 않고 원문 순서 그대로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다.



그라시안의 조언들은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우리에게 신의 교리가 아닌 인간 본성에 따라, 추상적이 아닌 현실적 인생을 그대로를 들여다보게 하며 세상 풍파에 맞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알려주고 있다.


한 예로 그라시안은 이 책에서 '자기 장점을 다 드러내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우월함은 늘 남의 반감을 사기 마련이고, 특히 윗사람보다 우월하면 더 많은 반감을 사기 때문이다. 윗사람은 도움받는 것은 좋아하지만 아랫사람이 자신을 능가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신중하게 감출 줄도 알아야 한다는 조언을 하고 있다.

그라시안은 '간계를 쓰지 말라'가 아니라 '간계를 쓸 때는 절대 들키지 말라'고 조언한다. 간계를 쓰되 남용하지 말고, 간계를 쓰되 티 내지 말라고 한다.


또한 그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을 강조하며, 비록 수단이 옳지 못해도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 황금빛이 되니,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규칙을 어기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수단은 결과에 이바지할 때만 빛난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외에 '겉모습이 별로면, 실제로 의도가 좋아도 부족해 보인다', '희생양을 두는 것도 갖춰야 할 능력이다' 등 놀랍도록 현실적이고 인간의 욕망과 본질을 꿰뚫어보고 이해하는 돌직구들을 날리고 있다. 그는 모든 조언에서 신의 이상적인 말씀을 거론하는 일이 결코 없다.


이 책은 세월의 괴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무한 경쟁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지침서임에 틀림없다.

인생을 풍요롭고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한 해답과 길을 『사람을 얻는 지혜』에서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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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ck 스틱! (15주년 기념판) - 1초 만에 착 달라붙는 메시지, 그 안에 숨은 6가지 법칙
칩 히스.댄 히스 지음, 안진환.박슬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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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오래 남는 메시지는 뭘까?


한 시간 동안 수업을 들었다. 중간중간에 재미있는 농담도 들었다. 그래도 상당한 양의 정보를 배웠다. 수업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어떤 내용에 대한 수업이었고, 대충 뭐가 있었는지는 아주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나기는 한다.

더 짜증 나는 것은, 중간에 들은 시답잖은 농담마저도 기억에 남는데, 정작 수업의 내용은 지우개로 쓱 지워버린 마냥 떠오르지 않는다.

대부분 이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벼락치기를 했을 때 가장 허무해지는 게 뭔지 아는가? 바로 벼락치기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정작 잠깐 쉬려고 유튜브에 들어갔을 때 얼핏 본 흥미로운 광고의 내용 같은 전혀 쓸 데가 없는 것들은 잘만 기억나는 것이다. 오히려 더 많이 보고 신경을 쓴 쪽은 공부인데, 잠깐 본 것이 더 기억에 남으니, 어이가 실종되다 못해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지워지려 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광고가 더 중요해서? 아마 아닐 것이다.

난생처음 보는 것들도 많고, 실질적으로 나한테 쓸모가 있는 것들이 거의 없더라도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으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껏 생각해낸 것은 '광고가 더 재미있어서!'인데,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으니, 바로 광고에 담겨있는 '고착성(stickness)'을 강화하는 요소들이다.

『스틱!』에서는 이러한 고착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단순성', '의외성', '구체성', '신뢰성', '감성', '스토리'를 꼽고 있다. 이 여섯 가지 요소들의 첫 글자(영어로)를 연결하면 'SUCCES'인데, 복수를 표현하기 위해 억지로 뒤에 s를 하나 더 붙이면 비로소 'SUCCESs', 즉 성공이라는 단어가 된다.

『스틱!』의 저자들은 이러한 고착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을 잘 활용하는 것이 성공을 위한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의외성'은 말 그대로 의외의 상황을 제시하는 것이다.

신형 미니밴 인클레이브의 광고가 있다. 전형적인 가족의 화목함을 보여주는 요소들이 다 담겨 있다. 4인 가족이 웃으며 인클레이브를 운전하고, 주변 풍경은 매우 아름답다. 신호 앞에서 멈췄다가 초록불이 켜지자 출발하였다.

갑자기 어떤 차가 초고속으로 옆을 들이받고, 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져버린다.

화면은 어두워지고, 예상하지 못하였을 거라는 말과 안전벨트를 꼭 착용하라는 말이 화면에 떠오른다.


사실 인클레이브라는 미니밴은 존재하지 않고, 이 영상은 미국 공익광고협회가 제작한 것으로, 안전벨트 착용을 강조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공익광고와는 달리 예상치도 못한 방식으로 안전벨트 착용을 잊지 말라는 내용을 전달한다.

아마 이 광고를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예상치도 못한 내용이었기에 충격을 받은 것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고, 또 광고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정말 예상치도 못한 사고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요소 중 하나인 '단순성'도 가미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이 광고는 그 어떤 천 마디, 만 마디 말보다도 더 '고착성'이 뛰어날 것이고, 더 효과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 메시지가 딱 박히게 하고 싶다면,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한 방법을 이용하고,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내용들을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메시지가 기억에 남고, 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내용을 전달하는 아주 효과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방법이 있는데, 이는 바로 '스토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신생아가 있었다. 그런데 피부색이 창백해지기도 하며, 점점 상태가 나빠졌다. 의사들은 폐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 판단하여 이에 대한 처치를 하려고 하였으나, 간호사는 심장이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의사들은 심전도 장치를 보여주며 심장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이에 간호사는 다른 사람들이 말리기도 전에 청진기를 이용하여 신생아의 심장 소리를 들었고,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로 인해 신생아는 무사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짧다고 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심전도 장치를 과하게 믿지 말아라", "때로는 직관이 기계부터 뛰어날 수도 있다", 또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였음에도 직관에 따라 판단을 내렸던 간호사의 태도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무엇이든 간에 '스토리'가 가지는 힘이 대단하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하나하나 말로 하였으면 기억에 많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는 내용을, 한 가지의 이야기로 머릿속에 확실히 고정시켰으니 말이다.

이처럼 '스토리'를 이용하면 때로는 핵심만 말하는 것보다는 길지는 몰라도 더 확실하게 기억에 남게 할 수도 있다.


유독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광고나 문구 같은 것들이 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것들이지만, 『스틱!』을 읽고 나니 그것들에 공통적으로 숨어있던 요소들이 하나둘씩 보이고,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요소들에 대해 명확하게 알게 되니, 스스로 '고착성'이 뛰어난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광고 같은 것에도 중요하지만, 『스틱!』에서 다루고 있는 '고착성'을 증가시키는 요소들은 일상 속 대화 같은 것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단지 말주변이나 글주변이 없어서 흥미를 끄는 메시지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달변이나 달필이었으나 자신의 정확히 어떤 부분이 이러한 성과를 내는지 몰라 이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을 알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나만의 한 줄 평 :

『스틱!』은 착 달라붙는 메시지들에 대한 '고착성'이 매우 높은 '달라붙는' 설명이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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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집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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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전문 필자로 활동 중인 주인공(화자)은 지인의 부탁으로 도쿄에 있는 한 집의 평면도를 접하게 된다. 필자의 지인은 그 집이 마음에 들어 구매하고 싶었으나, 평면도에 그려진 1층의 정체 모를 공간을 보고 뭔가 모를 묘한 찜찜함을 느끼며 그 집을 살지 말지 고민이 돼 필자에게 조언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건축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필자는 대형 건축사무소 설계사이자 미스터리와 호러 애호가인 구리하라 씨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평면도를 본 구리하라 씨는 정체 모를 수수께끼의 공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공간임을 말한다. 그리고 그 공간뿐만 아니라 그 집의 전체적인 구조가 일반적인 주택과는 다른 비정상적인 '이상한 집'임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 집이 일반적 주거가 아닌 어떠한 다른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집이라는 자신만의 생뚱맞은 가설을 이야기한다.


필자는 구리하라 씨의 이야기를 듣고 구리하라 씨가 한 믿기지 않는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라도 알려줄 생각으로 자신에게 평면도를 부탁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 지인은 그 집 근처에서 토막 난 시체가 발견되어 집 구매를 이미 포기했음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구리하라 씨의 가설에 무게를 실어주며 필자가 그 집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다 친분 있는 편집자에게 그 집을 소재로 기사를 써보라는 조언을 받은 필자는 그 집에 대한 구체적 지명과 겉모양은 숨긴 채 평면도와 구리하라 씨의 가설과 집 근처에서 발견된 시신 이야기를 발표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기사를 접한 한 여성이 그 집 구조에 대해 짚이는 것이 있다며 꼭 만나기를 원하며 연락을 취해오는데…….




'평면도'라는 평범하지 않은 소재를 다루는 이 소설은 책으로 출간되기 전 SNS와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었고 모두를 경악에 빠뜨렸던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책이 출간되며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던 나는 화제가 되었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평면도를 보며 할 이야기가 있으면 얼만큼 있을까?'라는 조금은 미심쩍은 생각을 가지며 책을 집어 들었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거침없고 놀랄만한 이야기 전개와 평면도로 추측해 내는 충격적인 사실에 숨도 못 쉬면서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그리고 '평면도만으로 충분히 할 이야기가 많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게 많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야기에 나오는 가설은 처음엔 '단지 평면도만으로 비약이 너무 심한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게 했지만, 이내 곧 비약이 아닌 설득력으로 무장한 가설이 된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뒤통수치는 반전이 등장하기도 하며, 도저히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몰라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책장을 넘겨야 했다.

이야기는 처음 등장한 집이 아닌 다른 집으로 연결되며 점차 '이상한 집'이 가지고 있는 비밀의 근원에 다가서게 된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이야기의 결말은…….


등장인물들의 대화 위주로 전개되는 소설은 최고의 가독성을 자랑하며 내가 그 자리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철저하고 빈틈없는 스토리 구성은 갈수록 소름 끼치는 공포를 선사하면서도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최고의 흡입력과 몰입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몇몇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연민을 자아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먹먹함도 느끼게 했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 위해 벽을 철거했는데 벽 사이 공간에서 폐자재가 몇십 톤이 쏟아져 나왔다느니, 이상하게 빈 공간이 발견되었다느니 하는 뉴스가 가끔 보도되곤 한다. 그러니 이러한 소설이 단순히 허구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읽는 순간 이야기는 진실이자 살아있는 공포로 다가올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집에도 창문 없는 중간방이 있었는데…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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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데스의 유산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 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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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시치리 소설은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을 속시원히 이야기해주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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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괴담 스토리콜렉터 104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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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괴담』은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 모음집이다.


<은거의 집>

주인공 '나'는 어릴 적 일곱 살 생일을 맞이하기 직전, 어머니가 입혀준 깔끔한 외출복 차림으로 아버지를 따라 집을 나섰다. 아버지와 열차를 몇 번이나 갈아탄 후에 민가가 드문드문 있고 주위에 논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한적한 시골에 내리게 되었다. 그 시골마을에서도 한참을 걸어들어가 작은 산에 도착한 아버지와 나는 그 산을 올라 목적지인 그 산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밭이 펼쳐져 있었고, 그 너머에 가는 대나무 울타리에 빙 둘러싸인 집 한 채가 있었다. 그 집에서 기모노 차림의 한 할머니가 나타나 나만 울타리 너머로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곧바로 목욕을 한 뒤 준비되어 있던 옷으로 갈아입었고, 내가 입고 있던 속옷을 포함한 옷과 신발은 보자기에 감싸 울타리밖에 있던 아버지에게 건넸다. 그렇게 아버지는 되돌아갔고, 그날부터 일곱 밤이 지나 내가 일곱 살이 되는 당일까지의 '은거'가 시작되는데….


<예고화>

초등학교 신임교사인 구보타 나오토는 관례와는 다르게 1학년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나오토는 반 아이들을 차별 없이 대하려고 항상 주의하며 노력하였다. 그런 그에게 아메미야 다쓰토라는 아이는 신경이 쓰이는 존재였다. 다쓰토는 공부는 잘했지만 자기가 먼저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얌전한 아이였고, 쉬는 시간에도 언제나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의 조짐이 가정방문 시기 이후에 보이기 시작했다.

가정방문 당시, 나오토는 아이들의 등·하굣길 안전을 위해 통학로를 꼼꼼히 체크했었는데, 다쓰토가 지나다니는 길에 길 가는 사람들을 향해 심하게 짖는 개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체크해 두었다.

얼마 후, 나오토는 미술 시간에 아이들에게 '통학로'를 테마로 그림을 그리게 했다. 다쓰토와 같은 길을 지나다니는 고코로는 마구 짖어대는 개의 그림을 그렸지만, 다쓰토의 그림에는 개는 없고 쇠사슬과 개 목걸이만 있었다. 뭔가 이상했지만 나오토는 이 그림에 대해 그냥 넘어가고 잊었다.

그러나 며칠 뒤 고코로로부터 그 무서운 개가 개 목걸이와 쇠사슬만 남겨둔 채 갑자기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쓰토의 그림을 떠올리는데….


<모 시설의 야간 경비>

모 문예지의 신인상 단편 부분에 응모해 수상한 센바 아츠오는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곧바로 작가 일로만 먹고 살 수는 없었던지라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경비원에 지원하게 되었고 경비업체에 채용되었다. 나흘간의 경비원 연수가 끝난 뒤 현장 업무에 배정받게 된 아츠오는 경비업무에 적응해가며 집필 작업에도 진척을 보였다.

경비원이 된지 반년 정도 후, 아츠오는 '광배회'라고 하는 신흥 종교 단체의 야간 경비업무에 배정을 받게 되었고, 그곳에서 건물이 아닌 '십계원'이라는 이름의 기묘한 설치 공간의 순찰업무를 맡게 되는데….


<부르러 오는 것>

대학생이었던 아이다 나나오는 오봉 연휴에 친구들과의 여행을 계획했다가 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고 여행을 포기하고 본가에 갔다. 그런 나나오에게 할머니는 오봉 당일 오랜 지인의 집에서 열리는 법사에 가 불단에 향전을 바치고 오라는 부탁을 했다. 그러면서 그곳까지 가는 방법과 법사에서의 예의를 포함한 주의사항을 알려주는데….


<우중괴담>

어느 날 작가에게 30여 년 전에 같이 작업을 했던 적이 있다는 마쓰오라는 장정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름이 기억에 없던 작가에게 마쓰오는 같이 작업했던 책 제목들을 보내왔고, 그것을 보고는 작가는 어렴풋이 기억이 떠올라 마쓰오에게 연락했다. 마쓰오는 작가가 연재한 괴기 단편들을 잘 봤다는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의 작품에 관해 꼭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에 작가는 마쓰오의 디자인 사무소로 직접 찾아갔다. 간단하게 옛 추억을 이야기한 뒤 마쓰오는 30여 년 전에 체험했던 경험을 작가에게 이야기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인지 소설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다섯 편의 단편들은 각각 '나'라는 작가의 이야기가 나온 뒤 '나'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각색하거나 혹은 그대로 적는다고 밝히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나'가 이야기하는 커리어 부분의 이야기가 실제 작가의 이야기와 일치했기에 그 외의 '나'가 하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포함한 이야기들이 실제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는 <예고화>, <모 시설의 야간 경비>, <우중괴담>이다.

<부르러 오는 것>은 읽는 도중 혈압이 상승해서 죽는 줄 알았다. 무서운 이야기가 주인공의 답답한 행동으로 덮여버리는 기분이었다.

세 명의 어른들이 향전을 바치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는 충고를 했는데, 왜 대학생이나 되는 여자가 그것을 못 떠올리는지 뒷목 잡고 쓰러지는 줄 알았다. 창고까지 꾸역꾸역 찾아가서 신발 벗고 들어가 친절히 부르는 모습에는 진짜 멱살 잡고 끌고 나오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은 아까워서 믿을지 안 믿을지 모르는 남편에게 사정을 말해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자신을 키워준 부모에게는 아버지는 안 믿어주고 어머니는 너무 믿을까 봐 말을 안 했다는 게 너무 어이없고 화가 났다.


이야기들은 공포의 정체를 끝까지 밝히지 않음으로써 더 찝찝함을 남기면서 무섭고 섬뜩했다.

여기서 말하는 괴담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특이한 일이 아니라, 우리가 생활하는 도중에 맞닥뜨릴 수 있지만 설명 불가한 기괴한 이야기들로, 그렇기에 그것으로 인한 정체불명의 공포는 그 어떤 것보다 심장을 바짝 조이며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그리고 모호하게 끝나는 이야기들은 궁금증을 자아내며, 그 일들은 단순히 있었던 일들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발생 가능한 공포를 의심하게 했다. 그렇지만 그런 공포는 결국 인간의 의지로 극복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서히 스며들어 끝없는 의심으로 인해 헤어 나올 수 없는, 끈질기지만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의 진수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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