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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흑역사 - 이토록 기묘하고 알수록 경이로운
마크 딩먼 지음, 이은정 옮김 / 부키 / 2024년 3월
평점 :
경이롭고 신비로운 인체 중에서도 가장 거대하고 심오한 수수께끼는 뇌일 것이다. 혹자는 우리의 뇌를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물이라고 부를 정도로 뇌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무지에 가까울 정도이다. 뇌는 구성하는 세포 수만 수천억에 달할 정도로 많으며, 그 연결을 통해 온전한 기능을 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 우리의 뇌를 구조적으로만 대략적으로 알고 있을 뿐, 그 상호작용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예를 들어 뇌전증과 같이 신체를 조절하는 기능이 훼손된 경우나 이 책에 나오는 것들과 같은 여러 이해하기 쉽지 않은 증상들이 발현되었을 때, 아직까지는 그 원인이며 치료 방법에 대해 갈피를 잘 잡지 못하고 그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은 이러한 뇌에 대해 단순히 학문적으로 접근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발생한 알 수 없는 이상으로 인해 평범한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기이한 현상들을 인지하고 경험한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통해 뇌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늑대 인간'이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영화 같은 곳에서 묘사되듯이 사람이 갑작스럽게 늑대로 변하는 모습이 떠오르고는 하지만, 놀랍게도 늑대 인간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lycantrope는 임상적라이칸스로피(clinical lycanthropy)라는 단어로 자신이 늑대가 되었다는 망상을 가지게 된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이용되고는 한다. 기록된 사례들은 다채로워 단순히 늑대로 변하는 것만이 아니라 뱀으로 변했다고 여기는 사람부터 고양이, 소, 말, 개구리 등으로 변했다고 여기는 사람들까지 전해진다.
사람들에게 상당히 널리 알려진 신경병증의 사례로는 사고 등으로 인해 신체의 일부를 절단한 사람들에게서 가끔 나타나는 환각지 증상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완전히 다를 것만 같은 이 두 종류의 증상들이 동일한 기원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신체와 '신체 도식'의 불일치이다. 신체 도식이란 신체를 뇌가 인지하고 있는 구조라고 이해하면 쉽다. 눈을 감고 팔이나 다리를 움직일 때, 움직인 신체가 어떤 위치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지를 어렴풋이 또는 상당히 뚜렷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 또한 우리의 뇌에 신체 도식이 있어 우리의 신체에 대해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상적라이칸스로피는 이러한 신체 도식에 문제가 생겨 신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에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체는 변하지 않았으나 이에 대한 뇌의 인식인 신체 도식이 변화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신체를 잘못 인식하게 될 것이고, 그 상황이 심해지면 임상적라이칸스로피와 같은 양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환각지의 경우에는 신체의 변화를 신체 도식이 따라가지 못해, 사라져 버린 신체의 일부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두 증상 모두 우리의 감각이, 특히 외부와도 관련 없이 우리 신체 자체에 대한 감각이 얼마나 심한 오작동을 일으키고, 그 결과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뇌와 관련된 것을 이야기하다 보면 뇌가 평균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에게 해롭기만 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매우 쉽다. 그러나 놀랍게도 뇌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 단순히 사람들에게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만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바로 '서번트 증후군'이다.
서번트(savant)는 프랑스어로 '박식한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보통은 발달장애나 뇌 손상으로 인해 생겨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게 되거나, 손으로 써서 풀어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중간에 계산 실수로 꼬여 버리기 십상인 어려운 계산도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해낸다. 또한 음악적, 미술적, 공학적 역량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거나 이와 같은 특징이 복수로 나타나는 등 소위 말하는 '천재'의 모습을 보인다.
서번트 증후군은 선천적인 것이 많지만 드물게 사고를 겪으며 후천적으로 생겨 배운 적 없는 피아노를 피아니스트처럼 칠 수 있게 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단순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생겨나 갑작스런 미술적 재능을 얻게 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여러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경우, 플라세보처럼 과도한 믿음으로 인해 경미한 증상에도 죽음에 이른 경우, 한 사이비 종교의 비극적 결말로 본 공유 망상, 외계인손 증후군 등 뇌를 꽁꽁 둘러싸고 있는 비밀들을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것들은 마치 짧은 SF 소설 혹은 환상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 같아 무아지경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서두에서 이 책의 이야기들은 전부 실제 환자 사례들이기에 환자나 환자가 일으킨 사건의 피해자의 고통이 흥밋거리로 소비될까 우려했던 것이 십분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행동 사례들을 소개하며 그 원인으로 추정되는 뇌의 작용도 함께 설명하고 있기에, 단순한 흥미 유발에 그치는 것이 아닌 미지의 뇌과학에 대한 알찬 지식을 제공하고 무한한 경이로움까지 느끼게 한다. 뇌과학이 다소 생소했는데 뇌의 신비한 비밀을 조금이나마 들춰 보여주는 『뇌의 흑역사』를 읽게 되어 정말 다행이고 행운인 것 같다.
뇌과학에 관심이 있지만 그 전문성에 접근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흥미진진하고 신기한 사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쉬운 설명이 이해를 쉽게 해주고 풍부한 내용이 알차고 다양한 지식을 얻게 해주어 지적 만족감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