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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간 - 인문학자 한귀은이 들여다본 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와 그림
한귀은 지음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열둘, 스물여섯, 서른넷, 서른아홉, 마흔둘, 쉰, 예순셋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녀의 시간'
여자에게 시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놓은 이 책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 나름대로의 정의를 찾아갈 수 있게 해준다.
읽으면서 생각할 것이 많았던 책이라 더 나이가 들고 그때 다시 한번 읽으면 또 느낌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나오는 나이를 하나 둘 겪으면 좀 더 그녀들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읽는 것 같은 이야기, 나를 그린 것 같은 그림…
그녀들의 시간을 읽는 것은 내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디쯤을 지나고 있을까?
책 속에서는 여자의 시간을 하나하나의 글로 만들어 풀어낸다. 헌팅, 동희언니, 지금은 별거 중, 터키 행진곡, 미자의 레스토랑, 엄마의 소울메이트, 두 여교수 7개의 이야기는 현실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각 내용들은 전부 독립적이라 순서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 그리고 먼 미래에 한번쯤 만날지도 모를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이야기들과 함께 더해진 그림들은 책 속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림과 함께 글이 탄생한 것만 같았다.


'그녀의 시간'은 현실적인 내용을 가져와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첫 이야기 헌팅은 그런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명은은 물건을 사냥함으로써 마음의 허기를 달랜다. 그녀는 고독하며 자아를 잃어버린 사냥꾼이었다.
'능력은 있지만 자신의 능력을 모르고 자신감 없는 여자들이 많다. 그런 여자는 그 능력으로 자신을 학대한다.' (18p)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 나이대의 고민을 안고 어딘가 불안하고 결여되었다라는 느낌을 받게한다. 시간에 따른 이야기를 가감없이 솔직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를 배려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만든 듯, 작가는 그것을 끄집어내어 이야기라는 수단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챙겨줄 수 있도록 여전히 동생으로 남을 것이다 (85p) 라고 말하는 동희언니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어딘가 모자라 보이기만 했던 언니를 자신이 아이를 가지고 이해하게 되면서 독자도 함께 동희언니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모녀사이와 언니 동생으로 남을 수 있는 관계, 서로 기댈 수 있는 사이는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의 인생을 같이 살아가고 이해해가면서 챙겨주고 챙김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외로움이 덜어진다는 뜻이다. 이는 자식을 키우는 한편 자기자신을 찾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뒷 이야기 지금은 별거중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지켜야할 자식이 있는 어머니는 긴 방황끝에 결국 자기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글 속의 주인공들이 품고 있는 감정은 어린 소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어린 나이라도 그 나이대에 맞는 고민과 어려움이 있는 법. 터키 행진곡의 도도하고 성숙한 소녀는 피아노 발표회라는 사건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아가고 세상에 맞춰가며 소녀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나이 오십 장래희망을 가져야한다. 안그러면 노년을 어떻게 보낼까?라고 말하는 50대의 미자도 비로소 자기자신을 찾고 성장해나간다. 여자임을 잊고 산 세월. 그렇기에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당혹스럽고 또 안쓰러워 보인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후 만들어갈 다른 세상이 기대되는 것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그밖에 힘겹게 가족과 사랑을 지켜가는 엄마, 나이먹고 외로운 영혼이 되어 사랑을 갈구하는 한편 두려워하고 후회하는 60대의 여자의 이야기 등등...
'그녀의 시간'은 아이에서 노인까지 성장과 인생을 다루고 있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가끔은 자기자신에 대해 생각해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을때가 있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땐 꼭 남의 이야기를 듣고 접하면서 깨닫는다. 아 내 삶도 저렇게 흘러가고 저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그리고 지금 나와 비슷하다라는 동질감을 느낀다.
이 책이 나에겐 그런 책이었다. 뭐라고 딱 정의할 수 없는 상황은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고 정리된다. '그녀의 시간'을 읽는동안 나는 주변의 그녀들에게 공감할 수 있었고 왠지모를 동질감에 위로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