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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아스 딜레마 - 성과주의 사회의 치명적 허점을 해결하는 정의의 리더십
폴 우드러프 지음, 이은진 옮김 / 원더박스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성과주의 사회의 치명적 허점을 해결하는 정의의 리더십"
책을 받아들고 표지를 살펴보다가 ['형평성'은 조직과 기업을 망치는 덫이다] 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형평성이 조직과 기업을 망친다고? 언듯 생각하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조직에서 형평성이 없으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조직원들의 불만과 갈등의 원인중 형평성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제일 빈번하고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형평성이 오히려 조직을 무너뜨리는 덫이라니....
처음부터 이런 의문을 가지고 책을 펼쳐들었다. 누구나 어렴풋이 알고있는 아이아스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대충 이렇다.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이 9년간의 지리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트로이성 앞에 진을 치고있는 트로이군은 최고의 장군인 아킬레우스를 잃게 된다. 아킬레우스의 유일한 약점인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은 탓이다. 그래서 아킬레우스가 입고 있던 갑옷을 그리스군에서 가장 우수한 군인에게 상으로 주려고 한다.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물인 이 갑옷은 헤파이스토스 신이 올림포스에 있는 작업실에서 귀한 금속으로 만든 것이다.
후보자는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다. 각자 자기가 갑옷의 주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승자를 뽑기 위해 그리스 지휘관들이 배심원을 소집했다. 일반적으로 군인에게 기대하는 자질 면에서 따지자면 아이아스가 단연 최고다. 가장 크고 가장 강하고 가장 용감하고 가장 충성스럽다. 아이아스는 기본 전술에도 능한 전술가이기도 하다. 전쟁터에서 자기가 필요한 자리가 어디인 줄 알고 항상 자기 자리를 지킨다. 전우들의 목숨도 많이 구했다.
오디세우스는 언변에 능한 최고의 지휘관이다. 전쟁터에서도 재빠르지만 무엇보다 언변에서 오디세우스를 따라올 자가 없다. 또한 오디세우스는 의뭉스럽고 권모술수에 능하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거짓말로 모면할 수 있다. 이제는 트로이인도 자기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이 오디세우스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속임수가 아니면 트로이의 단단한 성벽을 뚫을 방도가 없다.
결국 배심원은 만장일치로 오디세우스에게 상을 주기로 한다. 결과를 보고 놀란 아이아스는 화가 치민다. 자기가 받아야 마땅한 상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든다. ‘최고의 명예는 당연히 내 것이어야 한다. 배심원이 매수당한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면 오디세우스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토록 사랑했던 그리스군과 아가멤논 왕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아이아스는 미쳐 날뛰다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과연 누구에게 갑옷을 주는 것이 옳았을까? 인간의 왕이라고 불리던 아가멤논은 진정한 정의를 실현했다고 믿었다. 공정한 절차에 의해서 한치의 부정도 없이 승자를 가려냈고 그 승자가 오디세우스였다. 하지만 그의 선택에 의해서 그리스의 가장 용맹한 전사를 잃었다. 오디세우스의 술수인 트로이의 목마 덕분에 트로이를 함락시키기는 하지만 그가 진정 왕으로서 정의를 실현한 것이었을까?
저자는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은 곧 보상을 의미한다. 보상은 사람들 앞에서 공로를 인정받는 것이다. 즉 누구에게 어떤보상을 하느냐에 따라 그 조직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으 받지 못한다면 당연히 분노와 모멸감을 느낄 것이고 아이아스 또한 어쩌면 그런 당연한 분노로 인해서 죽음이라는 비극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의가 진정한 정의일까? 이런 의문에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의미있는 말을 전한다.
"정의는 사람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다. 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정의란, 각자가 당연이 받아야 할 존중을 받게 하는 것이다. 당연히 표해야 할 경의를 표하는 것이 정의다. 여기에는 감정적인 부분도 포함된다." _ p18
사실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를 다룬 많은 문헌이 아이아스가 갑옷을 받아야 한다고 논증하고 있다고 한다. 즉 오디세우스가 갑옷을 받는게 합당하든 합당하지 않든 아이아스 처지에서는 이미 응당 받아야 할 존중을 받지 못한 것이다. 한마디로 정의가 무너졌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오디세우스에게 갑옷을 주기로 한 결정이 옳은 결정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결정이 지금 비판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소통하고 결정을 내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의 말과 행동, 심리상태를 통하여 정의, 리더십, 형평성 그리고 더 나아가 현재 사회 조직의 문제점을 파악하고자 한다. 사실 철학적인 접근으로 인해서 다소 깊은 사색과 고찰을 필요로 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조직에서의 진정한 정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수있는 책이었다.
단순한 공평함이 정의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사람에 따라서 정의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아이아스라는 인물을 통해서 조직의 구성원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정의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것 같다. 마지막으로 처음 내가 가졌던 의문에 대해서 완벽한 대답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슴에 새겨야 할 말 문구가 있어 적어본다.
"형평성 하나만으로는 보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완강하고 투명한 형평성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 쉽다. 형평성을 확입하기 위해 완강하고 투명한 기준을 세우면 줄 수 있는 보상이 몇 가지 안 될 뿐더러 진정한 보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훌륭한 관리자라면 구성원들이 공동체에 가치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공로를 인정해 주려고 애써야 한다. 또한 승자에게 보상할 때는 시합에서 진 사람이 모욕을 느끼지 않도록 보상하려고 애써야 한다. 그러려면 훌륭한 승자와 훌륭한 패자, 그리고 현명한 리서십이 있어야 한다. 결국 평형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왔다. 우리에게는 정의가 필요하다."
_ p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