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 까미노 - 스물아홉, 인생의 느낌표를 찾아 떠난 산티아고순례길
김강은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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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늘 그리운 이름, 산티아고순례길_

나도 10년 전에 걸었기 때문에 애정이 크다. 그래서 산티아고순례길에 대한 에세이는 꽤나 읽은 편이다. 내가 경험했었기에 더 공감할 수 있고 동시에 미처 다 걸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길에 대한 기대가 커지기도 한다. 이번에 읽은 《아홉수, 까미노》는 산티아고순례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한 이야기, 그리고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 생각을 솔직하게 담았다. 아주 대단한 깨달음을 아니지만, 걷는 그 길 위에서 보고 느끼게 되는 것들을 따라 가다보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책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자 사무국'에 따르면 작년 3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길을 찾았고 그 중 한국 사람은 1.7%(5665명)이었다고 한다. 여행 프로그램과 예능에서 소개되면서 우리들에게 더욱 익숙해진 곳이라 이 곳은 아주 신비롭기 보다는 누구나 한번쯤 걷기를 소망하는 길이 된 듯하다. (*출처: 국민일보 19.4.27일자 '순례길 걷는 그리스도인')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_

Camino는 길, Santiago는 그 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를 의미한다. 9세기 초 스페인 콤포스텔라에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야고보의 유해가 있음이 알려지고 산티아고 성당까지 많은 그리스도인의 순례가 시작됐다. 이 길을 종교적 순례로 걷는 사람이 절반 정도는 되지만 트래킹을 위해서, 그저 걷고 싶어서 등 종교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순례도 제법 많다.

저자는 2년 전 애인과 함께 순례길 중 '북쪽길'을 걸었다. 예상치 못한 갈등으로 연인에게는 작별을 고했고 어느덧 서른이 되려는 스물아홉 살, 그녀는 17년 지기 친구와 다시 한번 산티아고 순례길에 도전한다. 늘 확신이 없는 삶, 나답지 않은 않은 부자연스러운 일상에 느낌표를 찾아나선 길. 이 책은 30일간 '프랑스길'을 걸으며 남긴 기록과 사진, 그리고 그녀가 직접 그린 그림과 툰을 모은 여행 에세이다.

        

그림을 그리는 저자는 까미노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드로잉북과 빠레트를 챙겨 걷는다. 길 위의 풍경, 함께하는 사람들 그 모든 순간 순간을 남기고 싶을 때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고 이 책 곳곳에는 그림들과 그림 그리는 그녀의 모습이 담겨있다. 각자가 순례길을 추억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이 방식은 참 멋지고 근사하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작업을 마치려면 오래도록 바라봐야 해서 더 선명한 어떤 순간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그림을 보고있자니 까미노를 애정하는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온다.

 

산티아고라는 한 지점을 향하는 까미노는 보통의 여행이랑 다르다. 많은 것들이 다르겠지만, 그 중 가장 매력적인 차별점은 여행이라는 카테고리보다는 더 협소해서 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특수한 유대감을 주지만, 군대나 동아리 같은 집단보다는 개별적인 목적과 경험을 갖는다는 것이다. 똑같은 길을 걷기에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개개인의 경험이나 느낌이 조금씩 달라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게 참 좋다.

p.53-54, 7.7(Day4)

이 책에는 까미노에서의 독특한 문화가 잘 나와있다. 내가 그 길을 걸었을 때도 혼자였지만 콤포스텔라까지 갈 수 있었던 건 모두 함께 걸어준 순례자들 덕분이었다.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들 사이의 함께하는 동지애, 그리고 유대감은 처음 본 국적도 나이도 다른 사람들을 끈끈하게 묶어준다. 저자는 때로는 혼자 걸으며 자신만의 여행을 즐기기도 하지만, 함께 걸어가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목적을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닌, 그 길의 과정을 충실히 즐기기 위한 선택이었고 그건 좋은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랬지만, 까미노는 국토대장정을 하듯 이 악물고 앞사람을 쫓아가야 하는 길이 아니기에.

꼭 힘들게 순례길을 걸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여행의 방법에 옳고 그룸도 없다. 하지만 이 길을 오른 이유가 단순히 관광이나 버킷리스트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무게를 가늠해보기 위해 쉽지 않은 결정으로 오른 길이라면 내가 짊어진 배낭의 무게를 느껴봐야 하지 않을까. 한 걸음 한 걸음 두 발로 걸으며 내 짐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껴보려 해야 하지 않을까.

p.137 7.17(Day 14)

까미노가 단순히 버킷리스트에 밑줄 긋기 위한 게 아니라면 짐의 무게를 느끼며 오롯이 감당하며 걸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 메시지가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까미노는 쉽지 않은 길이기도 하다. 10kg이 넘는 묵직한 배낭이 어깨와 허리를 내리누르는 상태로 반나절을 오롯이 걸어야 하니 보통 체력과 준비로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길을 걷는 가치는 그 고생을 뛰어넘는다고 믿는다. 이 책 곳곳에 왜 걸어야 하는지 이유가 충분히 나와있으니, 까미노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겠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고, 젊음은 상대적인 것이다. 매일 같이 일어나 어둠 속에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걷는 시간도, 어둠 속에 이정표를 잃고 해매며 쩔쩔매는 시간도, 다리는 뻐근하고, 배는 고파서 투덜거리는 시간까지도, 언젠가는 이 순간들을 가장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이라 기억하는 날이 올 것이다. 너무 평범한 지금도, 못마땅한 순간들동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의 과거가 될 거라고, 노랫말이 속삭인다

p.72 7.10(Day 7)

 

 

까미노를 기억하면 나도 꼭 이런 기분이 든다. 그 때는 물집으로 실을 꿰맨 발가락, 삐걱이던 무릎이 너무 아파서 더 많이 보고 누리지 못했다. 한국에서 잘 준비해온 한국인 순례자들에 비해 운동화도, 우비도 제대로 된 것 하나 없이 책가방으로 쓰던 가방에 꾸깃꾸깃 짐을 싸고 제대로 된 한끼를 먹을 돈도 없어 마른 바게트빵에 초리소가 내 아침이자 점심이었다. 바르는 꿈도 꿔보지 못했고 어쩌다 쉬면 아픈게 다시 올라올까 무서워서 그냥 걸었다. 생각해보면 참 무식하고 왜 쓸데없이 고행을 했나 싶은데, 그런데도 문득문득 그립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과거다. 어느 정도는 미화되는 기억 때문이겠지만 그리움이 크다. 스페인을 사랑하는 만큼 까미노를 사랑한다.

여러 언덕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다양한 풍경을 품고 이쓴 까미노처럼, 인생이란 것도 하나의 큰 산이라서 정상이라는 꼭짓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작고 큰 언덕의 연속이라서 고개를 넘을 때마다 새로운 국면인 펼쳐지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 너머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 눈 앞의 풍경에 쉽게 ?아해서도 안 된다. 언덕을 넘극 과정도, 내려오는 과정도 그저 지나쳐 보내야 하는 과정들이 아니라, 인생을 이루는 중요한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p.133 7.17(Day 14)

많은 사람들이 까미노를 하면서 완주에 목표를 두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최종 목적은 완주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까미노 완주장'이 아니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거치는 과정, 즉 예상치 못한 위기와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 최선을 위한 고민, 이별과 아픔, 작은 깨달음과 행복에 이르는 길... 이런 모든 일련의 과정들인 것이다.

p.142 7.18 (Day15)

 

메세나 평원을 지나며 저자의 기록은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즐기지 못했던 과정이어서인지 더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 그 때는 그저 끝까지 가는데에만 안간힘을 쏟았다. 아파도 요령피우지 않고 내 배낭은 내가 메고 두 발로 걷는게 정석이니 그걸 해내야만 내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얼마나 어린 마음이었는지, 까미노는 그렇게 걷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느끼고 배웠다. 그 순간을 더 누렸어야 했다. 그래서 나도 두번째 까미노를 꿈꾸게 된다. 까미노 전체가 과정인 그 길을 다시 천천히 누리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언덕과 광활한 자연을 빠짐없이 내 안에 저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저자가 담아낸 풍경과 직접 그려낸 그림 속에 그 길을 걸어야만 하는 이유가 가득했다.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이 안되는 풍경도, 그 길의 소소한 일상도 그 어떤 30일 여행코스도 주지 못할 것들이 까미노에는 가득했다.

푸짐한 순레자 메뉴도, 디저트로 먹는 1유로짜리 아이스크림도, 길가의 바르도, 친구들과 매일같이 먹는 푸근한 저녁식사도, 국적도 나이도 다른 새로운 친구와의 만남도.. 이 당연한 듯한 일상들이 곧 끝나는구나. 우리게게 가장 그리울 순간은 거창한 풍경이나 커다란 추억이 아니라, 작고 소중한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상을 함께 공유한 친구들이다.

p.2285 7.30(Day 27)

 

 

함께 걷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 나도 함께 걸어주신 한국인 아저씨를 앙헬(천사)라고 생각했다. 아파서 느린 나를 혼자 두지 않고 끝까지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하고 뜨끈한 국물 먹고 힘내라고 사주신 뿔뽀도 잊지 못한다. 난 콜라 한잔 밖에 사드리지 못했지만 아낌없이 다 주시고는 홀연히 가셔서 제대로 인사도 못드린 것 같아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꼭 그 길 위가 아니더라도 나의 일상을 함께하는 가족, 친구, 나의 지인들에게 내 삶을 함께 해줌에 감사해야겠다.

이 여정이 끝이 났는데, 나는 내가 원했던 느낌표를 만들었을까. 잘 모르겠다. 인생을 뒤집는 대단한 깨달음 같은 것동 없는 것 같다. 하짐나 이 짧니만 긴 여정을 걸으며 순간순간 작은 깨달음들을 얻었다. 천ㅊ너히 걸어도 빨리 걸어도 포기하징 않으면 결국에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사실.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 하는 건 어렵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외롭게 싸우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이 훨씬 강하다는 것. 잘못된 선택이나 잘한 선택이란 건 없다는 진리. 오로지 그 선택을 믿고 받아들이고 만들어가는 내가 있을 뿐이라는 깨달음들...

P.249 8.2(Day 30)

오롯이 두 발로 걸어 도착한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서의 희열! 그 여정을 책 첫페이지에서부터 함께 했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또 나 역시 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삶이 흔들린다고 생각될 때,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 나의 까미노를 들추듯, 이 책을 다시 꺼내야겠다. 그리고 나의 두번째 까미노를 준비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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