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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여행을 만나다
동시영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6월
평점 :

여행은 단어가 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여행이란 말만 들어도 괜한 설렘과 기대감이 부푼다. 낯섦에 기대를 가지면 설렘이 되고 두려움을 가지면 겁이 된다는 말처럼 여행은 낯섦에 대한 기대인 것이다. 낯설음에 두려워 하는 사람도 여행 앞에서는 흥분과 떨림으로 자신을 재무장하고 충전된 자아을 만나게 된다.
여행이 주는 의미와 추억이 바로 여기 있다.
우리는 다양한 목적과 자신만의 테마를 가지고 여행을 한다. 이별 여행, 사랑 여행, 문학 기행, 역사 기행, 홀로 여행, 사진 여행... 저자는 문학 여행을 선택한 것이다. 문학 작품을 통해서 상상하던 배경과 작가의 행선지를 따라가며 시공간을 이동하고 있다. 작품의 공간 속에 들어가서 시간 여행을 하는 환상과 같은 황홀한 여행을 체험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작가의 동선과 감성을 그대로 따라가며 함께 향유하는 여행자가 된 것이다.
폭풍의 언덕 끝 대목에선 히스클리프 무덤 근처에 피어 있었던 히스 꽃, 샬럿이 12월 추위 속 벌판을 헤매어 생의 마지막에서 앓고 있는 에밀리를 위해 꺽어 주었다는 그 히스 꽃이 곳곳에 앉아 있는 길이 내게 소설 폭풍의 언덕 을 한 페이지씩 다시 읽어 주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 있는 폭풍의 언덕에서......바람 속에서 모든 인접한 것들은 포옹이다. 더러는 피할 수 없는 섞임이다. 웅혼하고 검푸른 하늘, 세찬 바람의 옷자락, 숨차게 말하는 듯, 아뜩아뜩 들릴 듯 말 듯......P36
문학을 통한 여행만이 안겨줄 수 있는 황홀한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는 구절이다. 소설 속에서 만났던 그 장소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브론트 자매들이 너무 좋아했던 꽃을 내 두 손으로 만져보는 그 소중한 감정들을 작가는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게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책상 위에서 읽던 문학이 아쉽기만 한 우리에게 작가의 여행은 또다른 문학의 세계로 안내해준다.
작가는 공간 이동을 통해 음악, 건축, 역사 모든 문학의 접점을 다 드러내고 있다. 같은 박물관을 다녀 왔음에도 나는 괴테의 생각을 미처 읽지 못했고, 키츠나 호머를 자랑스러워 하는 현지인들과의 대화도 시도조차 못해 봤으니 작가의 책으로 위안 받고 있다.
소설 속 첫 장면이, 신비론 아름다움을 지닌, 눈 속의 역을 마음에 떠올렸지만 옛 그대로의 공간은 없었다.
세상은 그냥 멈추어 있지 않다. 변화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들을 사랑한다. 변화하는 사람들은 새것을 끊임없이 좋아하고 그래서 그들이 쓰는 공간도 끝없이 새것으로 변화하는지 모른다. P228
우리는 과거의 그 기억을 소환하고 싶어 같은 여행지를 찾을 때도 있고,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핫한 장소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막상 마주했을 때 변해버린 장소에 대한 아쉬웠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작품 속에서 기대했던 공간은 변하고 없었지만 그 때 그 소설 속의 눈과 현재의 눈을 오버랩하며 지금의 시공간안에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아마도 여행은 같은 작품을 읽더라도 내가 서있는 공간이 어디냐에 따라 작가와 작품에 대한 온도를 다르게 바꿔놓을 것이다.
이반 군둘리치를 만나고 싶다면 두브로브니크로, 드라큘라의 성 브란성을 만나고 싶다면 루마니아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던 푸시킨을 만나고 싶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앙리마티스를 만나고 싶다며 모로코 탕헤르로, 고갱을 만나고 싶다면 타히티로 작가는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작가와 문학 작품, 그리고 여행지를 동시에 만나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이 맞춤이다.
여행을 따라 문학을 배우고, 문학을 통한 여행으로 한층 더 의미있는 나를 찾을 수 있다면, 여기에 바로
우리가 문학을 읽어야 할 이유, 우리가 여행을 사랑해야 할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 무엇을 선택하든 온 마음을 다해 발길을 내딛는 사람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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