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빨치산 책을 읽으면 피가 뜨거워 지는데 이 책은 따뜻해 지네. 본인의 부모님 이야기라 따뜻하게 그려서 그런 듯하다.내가 대학 1학년 때인 90년도에 나온 책인데 왜 몰랐을까. 너무 태백산맥에만 취해 있어 그런가 싶기도 하네. 괜히 작가님한테 미안해지네. 작가가 25살의 어린 나이에 써서 그런지 잘 영글지 않은 과일을 먹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드네. 이에 비해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주 잘 영글었다 볼 수 있겠다.
50 초반을 지나며 요즘 내게 제일 큰 고민은 나와 가족의 건강이나 자식이 공부 잘 해 좋은 대학 가는게 아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할아버지들의 산소를 어찌해야 할건가이다. 그렇다고 내가 집안의 장손 또한 아니다. 군대 다녀와 30년 세월을 큰집형들 따라 산소를 관리하다 보니 어느 틈엔가 자리잡은 고민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으며 그 고민이 점점 커져간게 혹시 마르케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 25년전쯤 일라나. 집에 가는 길이 었겠지. 2호선을 타고 가는데 젊은엄마가 이 소설 속 아기처럼 생긴 얼라를 앞으로 안고 의자에 앉아서는 아련한 눈빛으로 애기를 바라보는 그 눈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 애기의 먼 곳을 처다보는 눈도 떠오른다. 어렵겠지만 지금이라도 그 모자가 잘 살길 기원한다.
세상에 이렇게 무식할 때가 있는가. 책 좀 읽었다고 하기조차 챙피하다. 싱아를 읽고 그 산이를 읽었어야 하는데 거꾸로 읽었으니 참 무식 하기도 하여라.선생님이 대략 나보다 40년 윗길이신데, 일제 때 현저동이 내가 살던 70년대 봉천동 처럼 느껴지는건 ... 그래서 선생님의 책이 착착 내게 감기나보다.근데 엄마의 말뚝, 그 산이, 싱아, 나목 등 왜 비슷한 내용의 책을 이리도 많이 쓰셨을까. 걍 앗싸리하게 명작 하나만 남겨도 되셨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