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실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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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여인, 소설가 김명순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이란 꺼지지 않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가야 하는 일과 다름없었다. 책을 다 읽고 소설의 표지 속에 발그레한 두 볼과 단정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여인에게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인텔리한 여성의 고고함이 그 첫인상이었다면 책을 읽은 후에는 사뭇 달라졌다. 인텔리는 그녀가 내리 붙잡고 놓지 못했던 ‘쓰고 싶다는 열망’의 허울이었을 뿐, 고고함 뒤에는 발 딛고 서있을 곳을 잃은 처지만큼이나 위태롭고 처연해 보이는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시절을 잘못 타고나 그 운명을 끝끝내 밝게 피우지 못한 인물이야 한둘이 아닐 테지만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라는 나름의 문학사적 의의조차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던 것은 내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이렇듯 소설 <탄실>은 자칫 역사에 묻혀버릴 뻔했던 한 여인의 치열한 문학에의 열망을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해 복원한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100편에 가까운 시와 20편에 가까운 소설과 에세이, 희곡 등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름을 오늘날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의 삶을 생생하게 구현해내는 작업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 안에서 산다고 했던가. 부족한 기록과 삶의 행적 및 진실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김명순의 작품 속 인물과 배경, 드러나거나 혹은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목소리 마저도 들을 수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미실>을 씀으로써 우리가 미처 몰랐던 ‘미실’의 존재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김별아 작가 특유의 힘이 <탄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작가 김명순의 복잡다단한 삶과 배움에의 열망, 극한으로 치달은 그녀의 위태한 감정까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디테일하게 완성했다.

   명순은 평양 성내에서 고집쟁이 기생이라 불리는 산월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동강 변에서 무역상을 하는 김희경으로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해서 재산이 넘쳐날 정도였다. 하지만 기생인 어머니가 정실로 들어갈리 만무했고, 명순은 늘 기생첩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했다. 꽤 똑똑하여 학교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동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고, 사랑하고 사랑받길 기도했지만 늘 진실로 마음을 둘 데를 찾지 못했다. 외로움, 그녀가 평생 지고 갔던 아픔은 이미 유년 시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만인을 위한 축제는 없다. 벚꽃이 난분분한 한봄에 치명적인 자살이 시도된다. 완전해 보이는 세계의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균열을 감지케 하는 건, 외로움이다. 외로운 사람만이 삶의 표층 아래 균열된 실금을 본다. 삽시에 모든 것이 오싹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홀로이 전율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외로운 사람들은 무감한 세계로부터 겁쟁이로 취급된다. 그리하여 더욱 외로워진다. / 57p


  불행하게도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고 그가 죽음에 이르면서 어머니는 물론, 그녀와 그녀의 동생들은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녀는 빈털터리 고아가 되었지만 아버지를 대신해 유일한 혈육인 김희선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조선 학생들에게 동경은 꿈의 동산처럼 이상향을 펼칠 수 있는 곳이었다 하니, 명순은 자신의 불타는 학구열을 마음껏 펼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운명은 엉뚱한 곳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김희선의 소개로 알게 된 육사생도 리응준에게 겁탈을 당하는 불의의 사고로 이것이 조선에까지 추문으로 나돌게 된 비극이 벌어진 것이었다. 피해자는 자신이지만 아픔은 그녀가 모두 감내해야했다. 이미 한 번 벌어진 비극의 틈으로 수많은 억측과 오해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왔고, 사실이 아니라고 밝힐 수 있는 방법이란 그녀의 작품 밖에 없었다.

   명순은 살기 위해서 글을 썼다. 죽지 않기 위해 문학을 부여잡고 창작에 몰두했다. 그녀의 첫 단편소설인 「의심의 소녀」는 육당 최남선이 주간하는 잡지 《청춘》공모전에서 기성 작가였던 이상춘과 주요한에 이어 3등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이가 그 유명한 이광수였다. 전근대적 교훈성에서 완전히 벗어난 작품을 썼다는 극찬과 함께 근대 최초의 여성 소설가로 조선 문단계에 등단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후 다시 일본으로 유학길을 올랐고 《창조》로부터 동인으로 참가할 것을 제안 받기도 했다. 하지만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이 그녀의 일생은 늘 위태로웠다. 늘 외로웠기에 사랑 앞에서 연약했던 그녀는 늘 그로인해 희생을 당해야했고, 그것은 그녀의 명성을 추락시켰으며 여전히 추악한 소문들이 발목을 잡았다.

   안타깝게도 그 중심에는 의외의 인물들이 숨어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감자」, 「배따라기」의 저자인 김동인과 은파리라는 가명에 숨어 악랄하게 명순에게 독설을 퍼부은 이는 다름 아닌 소파 방정환이었다. 『상록수』로 유명한 작가 심훈 역시 짓궂은 장난으로 명순이 기자 시절 함께 일했던 여기자를 놀려대기도 했다. 충격적이었다. 문학사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 김명순을 폄하하고 그녀의 삶을 망쳐놓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들은 글로써 권력을 휘둘렀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사생활로 문단을 어지럽혔다고 생각한 그녀에게 자신들의 권력을 내세워 형벌을 내린 셈이었다.


맞서 싸워야 할 적이 보이지 않거나 적과 맞붙기를 두려워할 때, 사람들은 새로운 적을 만든다.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만만한 상대를 찾는다. ‘안정기’에 접어든 식민지의 작가들은 그렇게 서로를 물고 뜯었다. 그중에서도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이 없고, 돈도 집도 친구도 없는 그녀는 무방비 상태로 가느다란 목덜미를 드러내 약적(弱敵) 중의 약적이었다. / 19p

마침내 돌아왔다. 내처 평양으로 가지는 못하고 제2의 고향인 경성에 낡은 트렁크를 내렸다. 후미진 골목에 자리한 여관의 작은 방에선 쿰쿰한 냄새가 났다.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냄새를 풍긴다. 삶과 삶이 구겨져 접힌 지점에 곰팡이가 피어난다. 외로움이 푸른 꽃을 피운다. / 221p


  ‘풍랑은 모든 영혼을 살아 쳐가고 부패는 모든 육체를 점령하다’
   두 번째 유학마저 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동경에서 쓴 마지막 시구는 그녀의 고단한 처지를 대변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녀를 음해하기 위해 쓰인 글이 신문화 운동의 중추적인 역학을 한다는 종합 잡지에 버젓이 실리는 현실은 변함없었다. 문학을 사랑했고, 그 속에서 살기를 희망했으나 그녀는 그저 스캔들 메이커에 방종한 자유연애주의자로 낙인찍혀 끝끝내 삶을 살아가는 의지마저 잃어버렸다.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터리의 그녀에게 그나마 마지막 남은 바람이 있다면 ‘아이’를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바람 앞의 등불인 처지에도 ‘모성’이란 감정이라도 붙들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이 안쓰러웠다. 거리에서 그녀와 마찬가지로 떠돌이가 된 아이를 자신의 양자로 삼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죽음을 택했을지도 몰랐다.


유달리 솔방울을 많이 매단 소나무가 있다. 가지가 휘어져라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솔방울을 매달고 고부라져 있다. 번식의 본능이 왕성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그때, 그러나 소나무는 건강치 않다. 솔잎은 빳빳하게 뻗치지 못해 휘늘어지고 푸른빛이 바랜 듯 누렇게 들뜨며 나무줄기는 말라 벗겨진다. 소나무는 죽어가고 있다. 죽어가는 소나무가 가장 많은 솔방울을 매단다. 일평생을 한자리에 붙박여 보낸 식물에게조차 번식의 본능은 그다지도 절박하고 처연하다. / 312p


  탄실은 그녀의 아명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딸이 열매처럼 탐스럽게 여물기를 바라며 부모가 지어 불렀던 이름이었다고. 그나마 사랑으로 충만했던 시절은 그때뿐이었기에 그녀는 작가가 된 후에도 필명으로 즐겨 사용했으며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랑 받고 싶었지만 사랑 받지 못했고, 사랑하고 싶었지만 사랑할 수 없었던 현실의 벽을 외로이 글로써 이겨냈던 김명순. 그녀가 전하는 깊은 울림으로 인해 새삼 무엇으로든 표현할 수 있는 이 시대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사랑을 받고 줄 수 있는 사람임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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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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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서사가 되는 기이하고 놀라운 작품
노르웨이 문학의 정수, ‘나’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치열한 자기 고백



  탄생과 죽음. 삶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한 개인의 삶 속에서 낱낱의 일상, 사랑과 슬픔, 행복과 절망, 상처 등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글로 담아내는 작업이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나’의 민낯을 들여다보기 위해 자기 투쟁적 고백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숱한 불면의 밤과 자기 내부를 갉아먹는 치열함에 맞서 싸워야하는 것과 다름없다. 더구나 그것이 소설이라면, 픽션이라는 살을 덧붙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소설적 요소를 배제하고서 자신을 거침없이 드러낼 수 있는 일이란 가능한 것인가. 단순한 일기조차도 우리는 진실을 모두 다 담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투쟁>의 저자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스스로와 주변의 모든 존재들로부터 타협하기를 거부한다. 자신의 내밀한 본능과 욕망, 자기 경멸의 순간까지 생생한 민낯을 고백하기 위해 스스로를 분해하고 해체하는 작업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러한 소설이 있을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다소 생소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문학이 일어나고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강렬한 세부적 요소들을 분해하고 해체해야 한다. 분해하고 해체하는 작업이 바로 ‘글쓰기’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창조라기보다는 오히려 파괴에 가까운 작업이다. 랭보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감탄할 만한 점은, 랭보가 너무 젊은 나이에 이것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것을 자신의 삶에도 적용했다는 것이다. 랭보에게는 글쓰기뿐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자유가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 자유 때문에, 그는 심지어 글쓰기도 옆으로 밀쳐두었다. 그는 글을 쓰는 작업이 어느 사이엔가 자신을 얽어매는 집착과 구속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이를 분해하고 해체하게 되었다. 자유는 파괴에 움직임을 더한 것이다. / 302p



   <나의 투쟁> 1권은 저자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인 크나우스고르의 유아기, 청소년기, 장년기와 현재를 교차 반복하여 진행되는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은 ‘죽음’의 이미지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여덟 살 때 우연히 TV에서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된 기억으로부터 이야기는 전개된다. 시작이 그러했듯 소설은 시종일관 죽음이라는 그늘에서 쉬이 떠나질 않는다. 단순히 삶과 생명의 종식을 뜻하는 죽음이 아니라 숨결이 부재하는 사물처럼 자신의 방 안에 있는 벽과 바닥, 천장과 창문에서도 죽음을 느낀다.


   그 중심에는 집안을 불안으로 채우는 ‘아버지’가 존재한다. 어쩌면 아버지 자체가 그에게 불안을 주는 존재인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하는 행동만 보아도 어떤 감정인지 알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던 그에게 때로는 엄격하고, 때로는 너그러워지는 아버지의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마주할 때 혼란스러워지는 자신에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땅의 많은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느끼는 감정이 이와 유사할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한없이 따뜻한 존재, 아버지는 적대적인 듯 그러나 가장 강한 팔로 가족을 굽어 살피는 기둥 같은 존재. 가족이라는 집단 속에서 가장 양가적인 감정을 지닐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아버지가 아닐까.


의미에는 충만함이 필요하고, 충만함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시간에는 저항이 필요하다. 지식은 사물과 현상과의 간격이고, 정체적 상태이며, 의미의 적이다. 1976년 그날 저녁, 내 머릿속에 그린 아버지의 모습은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그 당시 여덟 살 소년의 눈으로 본 아버지의 모습이다. 예상이 불가능하고 조금은 두려운 존재. 또 다른 하나는 지금의 내 눈, 즉 아버지와 비슷한 또래의 성인 남자의 눈으로 본 모습이다. 거쳐간 시간에 따라 삶의 의미가 하나하나 뜯겨져 나간 그런 존재 말이다. / 21p



   소설은 이런 아버지와의 관계, 한 가정을 이루어 스스로 아버지가 된 저자의 모습,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와 그의 죽음을 수습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 또한 저자가 자신의 형과 함께 아버지의 죽음을 정리하는 과정에 있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아버지의 처참하고 추악한 죽음이 낳은 흔적들은 그의 정신을 통째로 뒤흔든다. 나 또한 할머니의 죽음을 목도했고, 얼마 전 아무 것도 먹지 못하면서 몸속에 있는 것마저 토해내며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외할머니를 보고 온 탓에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먹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존재가 마치 살아서 나를 두텁게 휘감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마치 아버지의 무덤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여긴 말 그대로 무덤이야. 우린 마치 아버지의 무덤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아. 아버지가 앉아 숨을 거둔 그 의자는 아직도 거실에 있어. 그뿐 아니라 과거의 것들은 모두 여기 있어. 그러니까 내가 어렸을 때 접했던 모든 것이 아직도 여기 남아서 나를 덮쳐오곤 해. 이해할 수 있겠니? 어떤 면에서 보면, 난 이것들에 너무나 가까이 닿아 있기 때문에 괴로워. 나의 지난날, 아버지의 지난날… 과거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나를 덮쳐와.” / 580p



   가장 원초적인 감정과 자기 인식으로 점철된 이 소설을 완성함에 있어 저자는 주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주저하지 않는 듯하다. 아버지의 추악한 죽음뿐만 아니라 저자의 삶과 주변을 둘러싼 모든 인물에게까지도 지독할 정도로 사실적이기를 요구한다. 아버지가 원고를 봤다면 고소를 했을 거라는 형의 말처럼, 실제로 작가의 삼촌과 숙모의 실명이 거론된 탓에 명예훼손으로 법정에 섰을 정도라 하니 그의 거침없는 진솔함은 혁신적이기까지 하다. 소설 속의 그의 태도는 굉장히 이중적인데 이 또한 서슴없이 드러낸다. 때로는 여성적인 것을 혐오하는 완곡한 남성에 가깝다가도 아버지의 죽음에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다. 모든 것들로부터 한 발 물러난 사람처럼 겉돌지만 사소한 순간과 공기의 흐름까지도 기억에 담아 내밀하게 문장을 통해 담아내는 섬세함은 놀라울 정도이다. 개성 있는 문장가는 아니지만 일상에 기민한 감각의 촉수를 드리우고 진득하게 글쓰기를 실천한다.


나는 슈트케이스에 달려 있는 조그마한 바퀴들을 혐오한다. 너무나 여성적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남자다우려면 뭔가를 직접 들어서 옮겨야지, 쩨쩨하게 바퀴 위에 놓고 굴리면 안 된다. 내가 슈트케이스의 바퀴를 싫어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건 간편함과 지름길과 값싼 지질함과 싸구려 이성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조그맣고 무의미한 것들이라도 이런 요소를 포함한 것들을 보면 반발하곤 한다. 세상 속에 살며 세상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로 산다 할 수 있는가.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면 우린 가벼운 그림 한 장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힘을 쓰지 않고 모아둔다면, 모아둔 힘은 도대체 어디에다 써먹을 생각인가. / 359p


내 속에도 어제의 감정들이 남긴 자취는 찾아볼 수 없었다. 느낌과 감정은 물과 같다. 항상 주변 상황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하니 말이다. 당시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거웠던 감정,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오래도록 지속될 것만 같았던 느낌들조차도 자취를 남기지 않는 까닭은 그것들이 무뎌지고 단단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니 감정과 느낌은 무뎌지고 단단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상태를 유지할 뿐이다. 막힌 웅덩이 속의 물이 고요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 396p



   앞서 말했듯 전개 과정은 현재와 과거, 또는 더한 과거로 훌쩍 넘어갔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는데 의외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자아내지는 않는다. 현재의 순간을 붙드는 찰나의 기억이 있다면 그것까지 모두 끄집어내는 그의 글이 자신과의 투쟁에서 비롯됨을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속도감 있는 전개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개의치 않는다. 그런 것에 민감한 작가라면 애초에 이런 글쓰기의 과정이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이런 새로운 문학에 좀 더 마음을 열어도 좋을 것 같다.

   현재 노르웨이 문단에서는 입센 이후로 이 젊은 거장의 등장을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또한 그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라 하니 이어지는 그의 고백에 계속 귀를 기울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투쟁> 1권이 600쪽 이상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한 권에 그치지 않고 곧 2권과 3권 혹은 그 이후의 권들까지 계속 출간될 것 같으니 미리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독자들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 여담이지만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사진을 보는 순간, 그의 섹시한 아우라에 심쿵 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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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교육대기획 시험 - 최상위 1% 엘리트들의 충격적이고 생생한 민낯!
EBS <시험> 제작팀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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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공화국 대한민국의 교육 실태를 파헤치다!
진정한 시험의 의미와 미래 교육에의 방향을 제시하다!

 

 


  대한민국은 시험공화국이다. 현재 한국 교육의 중심은 ‘시험’이며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치열하고 과열된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교육의 본질이 무엇이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란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굳어져있음은 물론, 시험을 잘 치른 사람이 보다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즉, 시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험’이라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타당한 것인지, 시험은 어떻게 태어난 것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그 근본적인 가치를 의심해본 적이 있었던가? 시험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수없이 그것을 치러왔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기에 요즘 같이 교육 시스템에 회의감이 팽배해있는 시대에 대한민국의 시험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할 때가 온 듯하다.

   EBS 교육대기획 <시험>은 EBS 제작팀에서 기획하여 이미 방송을 통해 진행된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도서이다. 총 다섯 가지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해당 주제마다 노벨상 수상자 및 국내외 석학들의 인터뷰, 실험 데이터 연구, 전 세계 교육 현장을 탐사하고 각종 국가고시 시험 준비생들을 1년 동안 면밀히 살펴보고 기록한 결과들을 통해 시험을 둘러싼 진실과 우리 교육의 현실을 심도 있게 파악한다.
   
   제 1부 ‘시험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에서는 인도, 중국, 프랑스, 독일 네 나라의 시험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치르는 시험 형식과 추구하는 의미들을 살펴본다. 가장 인상적인 나라는 프랑스와 독일이었다. 프랑스에서는 개인의 인생에 대입 시험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상은 그리 높지 않다. 시험의 목적을 못하는 학생을 가려내고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인간의 성장 가치를 중요시함에 있어 한국 교육에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나치 시대의 뼈아픈 과거를 딛고 이겨내기 위해 중앙의 연합 정부가 시험을 주도하지 않고, 주 정부 연합이 협의를 통해 진행하며 나치 독일의 과거를 미화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역사를 직시하며 이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는 독일 또한 인상적이다. 물론 이러한 교육에도 문제점이 존재했다. ‘독해력’, ‘수학 계산력’, ‘자연과학 이해도’ 등의 평가에서 뒤떨어질뿐더러 평등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저소득층 및 이주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매우 낮았다. 이에 독일은 충격에 빠졌고, 후속 조치로 학업 교육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교육의 현주소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교육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개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주요 사례로 우리 교육이 가야할 길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완벽한 교육은 없어요. 교육은 단순히 시험을 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합니다. 인격의 감각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불완전성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토피아적인 발상에서 나온 이상을 통한 국제적인 교육이면 좋겠지만,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많은 문제점을 발견할 겁니다. 교육을 다시 가다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를 완벽하게 하는 것보다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노력들이 더 중요합니다. 문제는 항상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하는 의지이고 노력입니다. - 크리스티앙 볼프강(독일 교육 정책 입안자) / 54p



   2부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험 결과의 원인을 환경적인 요인이 아니라 유전적인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시험을 잘 보는 유전자가 따로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콤트 유전자에는 전사형, 걱정쟁이형, 중간형이 있는데 평상시 환경에서는 걱정쟁이형의 언어능력과 기억력이 우월한 데 비해 긴장과 스트레스가 가해지는 상황에서는 이들이 도파민을 천천히 분해하기 때문에 전사형보다 낮은 점수를 보이는 결과가 발생한다. 이것이 시사하는 점은 유전자가 시험에 영향을 끼친다면, 시험 하나만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시험에는 시험을 잘 치르는 기술이 통한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시험을 잘 본다는 것은 시험이 요구하는 기능을 잘 파악하는 것으로, 그 기술을 잘 갈고 닦은 사람들이 점수를 더 잘 받는 게 현실이다. 시험 기술이 성적에 많은 영향을 미칠수록 사교육 규모는 비대해지고, 수능과 같은 표준화 시험에서 더욱 유리하게 작용될 것이다.


 

하나의 시험으로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며, 표준화 시험에 등장하는 객관식 문제조차도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시험은 완전하지 않으며, 시험을 통해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시험자들의 대략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현재의 표준화 시험은 1, 2점 차이로 시험자들의 ‘역량’을 평가한다. 1, 2점 차이는 당일의 컨디션, 시험에 대한 익숙함, 유전자, 환경 등의 외부적 차이에 의해 손쉽게 갈리는 사소한 차이지만, 표준화 시험은 이를 객관적인 역량의 차이로 인식하게 만든다. / 139p



   안타깝게도 표준화 시험의 객관식 문제가 아이들의 실력을 완벽하게 평가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지만, 당장에 폐기할 수 없는 것은 나름대로의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보다 창의성과 비판 정신, 다양한 상상력이 중요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러한 시험 정책에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만과 미국에서도 실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는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표준화 시험이 가진 일관성과 타당성, 공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실력들을 다양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도입해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제 3부에서는 ‘정답의 역설, 서울대 A+의 비밀’로 놀라운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서울대학교 재학생들을 상대로 ‘서울대 우등생들의 공부 방법’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좋은 학점을 받은 학생들에게서 일정한 패턴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교수의 말을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필기를 하거나 녹취를 하고, 강의 내용을 모두 완벽하게 암기하였다는 것이다. 즉, 수업에 대해 생각하고 분석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갖기보다는 수용적인 태도로 교수들의 생각을 흡수한 것이다. 반면,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미시간대 학생들에게 똑같은 연구를 한 결과, 그들은 자신이 직접 핵심을 정리한 노트를 보며 공부하고, 자신만의 생각과 지식으로 비록 교수의 의견과 다르다하여도 학점을 낮게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두 대학교의 비교를 통해 얻은 결론은 서울대학교의 문제가 단순히 학생에게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생각을 배재한 채 교수의 생각대로 수용적인 태도를 가진 학생들이 고득점을 획득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창의적인 사고를 중요시하면서 정작 창의적인 학생들의 생각을 독려하지 않는 교육 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우리 교육의 미래는 어둡다.

    이어 4부에서는 ‘시험의, 시험에 의한, 시험을 위한’을 주제로 시험공화국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직시한다. 매일 늦은 밤까지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를 지식을 암기하며 수능이라는 혹독한 레이스를 겪는 고3 수험생들, 좁은 문틈을 뚫고 일발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험의 잔혹성과 치열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성장과 모험, 혁신보다 안정을 추구하게 된 젊은 세대들이 모두 공무원 시험에 올인하는 이 기형적인 사회를 과연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중요한 시험은 ‘공부를 평가’하는 역할보다는 ‘서열화’하는 선별의 기능이 강하다.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의 기초 철학은 더 좋은 학생을 선발하고 더 적합한 공무원을 선발하는 데 있다. 그러나 선발 과정 자체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나머지, 시험은 점차 ‘시험을 위한 시험’이 된다...(중략)... 학별, 연령과 상관없이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며, 시험에 통과하기만 하면 안정적인 평생직장이 보장되는 길. 우리는 그렇게 시험 공화국에 진입한다. / 253p



   5부인 ‘어떻게 생각의 힘을 키울 것인가’에서는 이제 새로운 질문과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가 왔음을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제시한다. 제주도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외모도 성격도 제각각 다른 아홉 명의 학생들을 섭외하여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이들에게 개별적으로, 때로는 팀을 이루어 과제를 수행하게 하여 전문가들이 카메라를 통해 그 역량을 평가하도록 했다. 이 중에는 수능만점자도 있고, 수능 꼴찌도 있으며, 청소년 영화제를 비롯한 다양한 대회에서 많은 상을 수상한 학생도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돋보였던 이들을 가만 살펴보면 공부 외에 다양한 경험이 풍부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는 핵심능력은 공부가 전부인 것이 아니며 시험이라는 하나의 평가 잣대 대신 다양한 평가의 기준이 필요함을 시사하는 연구였다.


다양한 능력은 문제해결능력과 연관된다.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실용적인 목적 중 하나다. 이 프로젝트에서 볼 수 있듯이 삶을 살아가는 데는 문제는 파악하는 능력, 협동능력, 계획성, 추진력,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 모두 중요하다. / 283p


오늘날 가장 성공하는 학생은 누구일까? 무엇보다 비판적 사고와 효율적인 소통능력,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집요함이 있는가?’, ‘성공과 실패에서 배운 것들을 다음의 학습 기회에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가?’, ‘수동적이지 않고 주도권을 갖고 생각할 수 있는가?’, ‘차이를 만들고, 더 나은 것을 창조하기를 갈망하는가?’ 등의 가치를 내면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 298p



  우리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놀랐던 것처럼 현대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인간이 기계보다 경쟁 우위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해결책을 창조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오는 능력이 필요하다. 더더욱 창의성이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결과를 정해놓고 그것대로 답이 도출되지 않았다고 해서 전부 틀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해주도록 변화해야 한다. 부모가 된 입장으로 평소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싶지 않고, 또 내가 정해놓은 틀 안에 아이를 마음대로 들여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덕분에 그러한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다지게 된 이 책을 많은 교육 종사자들과 부모들에게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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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기는 글렀어
사라 앤더슨 지음, 심연희 옮김 / 그래픽노블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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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칫흠칫 공감 100%, 이건 내 얘기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아이를 위한 재미 만점 그래픽 노블!

 

 

 

   책 제목을 본 순간, ‘어머, 이건 읽어야 해’ 하는 느낌을 마구 들게 하는 <어른이 되기는 글렀어>. 커다란 눈에 볼 빨간 얼굴을 한 천진난만의 캐릭터와 새하얀 토끼가 그려진 표지를 보고 있으면 유아기적 감성이 느껴지는 어른아이의 모습이 연상된다. 뉴욕에서 재능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가로 활동 중인 사라 앤더슨이 ‘나이만 어른’ 동지를 위해 그린 카툰을 모은 책으로 이미 독자들의 별 5개 만점 세례에 힘입어 아마존 여성만화부문 1위 자리를 오랫동안 지켰다고 하니 더욱 흥미가 가는 않을 수 없다.


 

 

   대개 이 책의 소개 및 저자의 말이 들어가곤 하는 책과 달리 이 책은 단도직입적으로 카툰을 선보인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어라, 이 책 뭐지?’하는 얼떨떨한 기분도 잠시 카툰을 보자마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오고, 공감 충만한 내용에 뜨끔뜨끔하다가 어느새 책 한 권이 뚝딱 끝나버린다. 한 권 읽는데 걸린 시간이라고 해봤자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정도랄까.



 

   뉴욕에 살고 있는 저자와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나와 얼마만큼의 접점이 있을까 의아했는데, 뜻밖에도 대부분의 내용이 세계를 불문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공감과 재미를 충분히 전달할 듯하다. 길어봤자 4~5컷에 불과한 그림 속에서 시대와 정서를 공유할 수 있음이 참으로 놀랍다.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할 것이다. 대단한 선물보다 사랑하고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말 한마디가 소중한 법인데, 때로는 그것을 너무 자주 확인하려고 해서 남성들을 피곤하게 경우도 있다. 어쩔 때는 원하는 답을 들었음에도 건조하게 말하는 그의 음성에 낙심하기도 하고,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종용할 때도 있지 않을까.


 


  그 외에도 여성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겪는 아픔을 재미있게 표현한 부분도 흥미로웠고,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친구와 마주칠 때 느끼는 곤란함과 피하고 싶은 마음을 그린 부분도 공감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또 하나 더 있다. 바로 이 책의 원서도 함께 실어놓았다는 점이다. 카툰을 샀는데 영어 원서가 하나 더 따라온 듯한 기분으로, 원서가 주는 묘미도 함께 느낄 수 있다.



  가벼운 터칭과 스토리라인으로 세상의 어른아이들을 위로하는 <어른이 되기는 글렀어>를 킬링타임용으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실 시간 동안에 쓰윽 읽어보며 기분을 정화해볼 것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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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방 - 4000명 부자의 방을 보고 알아낸 공간의 비밀
야노 케이조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4.0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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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제대로 활용하면 운명이 바뀐다!

부자들이 실천하는 주거 습관의 비밀을 파헤치다!



  “당신은 왜 그 집에 살고 있나요?”


   <부자의 방> 저자 야노 케이조는 이렇게 묻는다. 누군가에게 집은 그저 형편에 맞게 구했거나, 회사와 가깝거나 하는 등 현재 상황을 고려한 곳일 수도 있고 내 집 장만의 꿈을 실현한 희망의 공간일 수도 있다. 혹자에게는 그저 먹고 자는 기본적인 삶을 안정적으로 제공받는 단순한 의미의 공간이기도 할 것이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형편에 맞는 집을 구해 살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성공한 부자들은 집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라이프스타일이 명확하고 그 장소에서만 얻을 수 있는 목적을 분명하게 가진 채 집을 선택한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부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킬 수 있는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부자의 공간을 들여다보는 일이란 괜한 자격지심 혹은 이질감만 느끼고 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공간을 살펴보고 이해한다고 해서 내가 부자가 될 수 있는 것 또한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부자의 공간 속에 어떠한 비밀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이 책을 우려 반, 궁금한 마음 반으로 읽기 시작했다.



  <부자의 방>은 일본의 국가공인 1급 건축사로 4000명에 가까운 부자들의 집을 설계했다고 한다. 건축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고급스러운 디자인 감각 덕분에 지금도 일본 최고의 부자들이 그에게 집 설계를 의뢰하려고 줄을 섰다 하니 그에게는 남다른 노하우와 특별한 감각에 있는가보다. 오랫동안 부자의 집과 사무실을 설계하고 지으면서 그는 성공한 사람들이 집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연구했고, 이를 통해 주거환경이 성공과 행복 여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이 짓고 만드는 집과 방은 그곳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 운명을 결정하다. 다시 말해 집과 사람은 상호 작용을 한다. 집에는 분명 사람을 성공하게 만드는 힘이 깃들어 있고, 반대로 뭘 해도 안 되게 만드는 에너지도 숨어 있다. 그래서 집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다. / 40p



  주거환경의 중요성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깨달은 저자는 ‘환경의 덫’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과 공간은 서로 기를 주고받는데, 집이나 사무실과 같이 자신이 오래 머무르는 공간의 기가 불안하거나 좋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좋은 기와 에너지를 빼앗겨 능률이 오르지 않는 것이다. 환경을 간과한 채 무턱대고 자신을 탓하기만 했다면, 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새겨들어볼 필요가 있는 말이다. 이사를 할 때도 방향을 따져보고 소위 손 없는 날이라고 해서 이사 날짜도 따져서 정하는 이유도 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자들은 이러한 환경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풍수의 법칙을 활용하고, 장차 이루고 싶은 일을 실현할 수 있는 집인 가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집은 사는 사람의 마음 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해 그대로 인생이 흘러가게 한다. 그러니 이사를 하기 전에는 반드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점검해보고, 그 집에 살면서 얻게 될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봐야 집으로부터 좋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또 새로운 집에서 가족 구성원이 어떤 꿈을 이루어갈지, 모두가 공간에 만족하는지를 세심하게 따져보는 작업도 선행되어야 한다. / 62p


 

 

 

   비록 이 책의 제목이 <부자의 방>이기는 하나, 읽다보면 ‘공간 활용의 중요성’과 함께 그것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과 궁합이 맞는 장소를 찾는 법, 나침반으로 지자기를 확인하여 그것이 교란되지 않는 공간에 머무를 것, 공간에 깃든 나쁜 기억을 뒤집을 것, 가볍게는 접지로 전자파를 차단하고 중요한 비즈니스나 미팅, 회의 등을 할 때는 기둥을 피해야 할 것까지 다양한 공간 활용법을 전달한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있다 보니 ‘공부방이 아이의 기질을 결정한다’는 내용에서 더욱 흥미를 느꼈다. 집 안에 아이들이 꿈을 향해 몰두하는 공간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가족 모두가 행복지고 생기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하니 조만간 이사를 할 때 이 점을 특히 고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공부방을 만들 때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여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만들면 집중이 더 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의외로 아이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식당이나 거실처럼 누군가가 지켜보는 곳에서 지낼 때 안심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용기를 얻는다. 곁에 어른이 있으면 ‘나는 해낼 수 없어’라며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되고, 자신감을 갖고 과제에 임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 더불어 주변에 사람이 있는 곳에서 공부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어떤 환경에서든 집중할 수 있다. 아이가 만약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인 경우에는 방을 따로 마련해주되 책상의 위치가 방문을 바라보게 배치하는 편이 좋다. 아이의 뒤통수가 방문을 향하고 있으면 부모 입장에서는 감시하기 좋지만, 아이는 공부에 몰입할 수 없다. 누가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 75p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구성원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고, 장기적으로 그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이 집이 없었더라면 제 꿈은 실현되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말했던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 가족의 꿈이 보다 많이 실현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여 ‘우리 집이 제일 좋아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자는 반드시 이사를 하거나 큰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바꿀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집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만 바꿔도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집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집을 소중히 여기면 집을 정돈하게 되고, 이로써 인생도 좋은 방향도 흘러간다는 말은 우리 집에 대한 마음가짐을 점검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건축사에게 집 설계를 의뢰하든 자신의 힘으로 집을 짓든, 단순히 ‘심플하게’ 혹은 ‘모던하게’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꿈을 끄집어내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길 바란다. 건축사로서는 나는 의뢰인의 말 속에 숨겨진 꿈과 로망을 해독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결과물로써 의뢰인을 만족시켰을 때 최상의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 110p



  개인적으로 책이 있는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많은 책이 채워져 있지 않더라도 그것을 채워나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작지만 아늑한 공간에서 나만을 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작은 도서관이 있는 집이었음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러한 소망이 더더욱 이루고 싶은 마음이다. 반드시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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