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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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위기에 처한 인류의 미래를 생생하게 구현해낸 소설!

아주 작아 보이는 것들이 일으키는 파동을, 여린 온기가 불어넣은 생명의 힘을 희망으로 엮어낸 놀라운 작품!

 

 

 

 

[헤데라 트리피두스Hedera trifidus, 일명 모스바나. 송악속의 상록성 덩굴식물로 흔히 키우는 관상용 담쟁이의 근연종이다. 다른 식물들에 피해를 입힐 정도로 강한 침투성 식물이고, 땅에서도 넓게 퍼져 잘 자라지만 주로 벽이나 나무를 타고 오른다. 독성이 있어 피부염이나 알레르기를 유발하고, 식물의 거의 모든 부위가 사람에게 위험하며 특히 잎과 열매는 더 강한 독성을 가진다.]

 

 

 

  때는 2129, 더스트생태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아영은 산림청으로부터 모스바나라 불리는 식물의 샘플을 분석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겉은 평범해 보이지만 피부에 닿으면 매우 간지럽고 따끔해 일명 악마의 식물이라 불릴 정도로 위험한 이 식물이 최근 강원도 해월의 한 폐허를 중심으로 이상 증식하고 있다는 마을 주민들의 제보가 빗발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태연구원인 아영에게도 독성을 지닌 덩굴식물이 한 야산을 다 뒤덮을 만큼 이상 증식을 하는 광경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곳이 한때 한국의 최대 로봇 생산지였으나 기계들의 집단 오류로 이제는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한 해월인 것도 의아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모스바나는 더스트 시대, 이른바 더스트 폴이라 불리는 먼지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 어떤 유기체도 살아남기 힘들었던 멸종의 시대에 독점종의 지위를 차지하다가 더스트가 종식되고 마침내 인류가 재건되기 시작하면서 서식지가 급격히 감소했고, 최근까지도 국내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종이었기에 의문은 더욱 짙어진다.

 

 

 

  대체 왜? 끔찍한 바이러스나 세균 테러도 아니고, 생물 테러라기엔 단지 성가신 식물을 증식시켜 방제 담당 직원들을 괴롭히는 것 정도에 불과한 것을 굳이 왜? 해월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원한을 품거나, 농사를 방해할 목적이거나 그도 아니면 자연 생태계를 교란시키려는 목적으로? 대체 누가 그런 의도로 하필이면 모스바나를 이용한단 말인가. 그렇게 누가 봐도 선뜻 의미를 알 수 없는 기이한 광경과 마주한 아영은 문득,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장면을 어디선가 목격한 것 같은 기시감을 느낀다. 괴상한 탈것과 인간형 로봇들이 쌓여있는 창고, 잡초와 모스바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덩굴식물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던 정원, 그 가운데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종종 꾸벅꾸벅 낮잠을 자거나 허리를 굽혀 한참동안 식물들을 들여다보고, 이따금 재미있는 식물 이야기나 더스트 시대에 자신이 보았던 흥미로운 존재들에 대해 들려주곤 했던 한 노인. 더스트가 종식된 후 자취를 감추었던 모스바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지금, 그동안 잊고 있었던 노인 이희수에 대한 기억을 건져 올리게 된 건 과연 우연일까. 아영은 물론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이 미스터리한 현상 사이에서 어쩐지 이제껏 묻혀 있었던 혹은 보지 못했던 세상의 비밀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예감에 빠져들게 된다.

 

 

 

그건 생존과 번식, 기생에 특화된 식물이지요. 더스트 시대의 정신을 집약해놓은 것 같다고 할까요. 악착같이 살아남고, 죽은 것들을 양분 삼아 자라나고, 한번 머물렀던 땅은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한자리에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멀리 뻗어 나가는 것이 삶의 목적인…… 그 자체로 더스트를 닮은 식물이지요.” / 106p

 

 

 

  이후 모스바나에 대한 아영의 의문은 에티오피아에서 랑가노의 마녀들이라 불리며 마녀이자 성인, 구원자로 통하는 아마라와 나오미 자매에게로 향하게 한다. 그들은 모스바나를 에티오피아 곳곳에 도입한 장본인이자, 그 누구보다도 모스바나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를 이용해 더스트로 고통 받던 사람들을 치료까지 했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영은 이 만남을 통해 한때 인류를 멸망 위기에 몰아넣은 더스트가 휩쓸고 간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대한 돔 시티와 소규모의 돔 마을을 구성한 사람들, 돔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해진 폭력, 더스트에 내성을 갖고 있던 이들이 내성종이라고 불리며 착취당했던 과거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해듣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이 당도한 프림 빌리지라 불리는 한 도피처에 관한 이야기도 듣게 된다. 한 식물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와 그곳에서 개량된 더스트 저항종 식물들, 그 식물을 심으며 함께 살았던 사람들, 그들이 세상 밖으로 전한 것들까지. 아영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이제껏 알지 못했던,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멸망의 위기를 극복해낸 인류 재건의 또 다른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서서 남들을 짓밟았던 이들이 공헌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 63p

 

 

세계 곳곳에 더스트를 피하기 위한 거대 돔이 세워졌을 때 사람들은 숲이나 들판의 생물들을 위한 돔은 만들지 않았다. 많은 종이 멸종을 향해 갔지만, 빠르게 더스트에 적응해 변이한 식물들도 있었다. 학자들은 더스트 자체가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유도해 빠른 변이를 촉진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 더스트로 죽은 숲 위에 새로운 생물종이 숲을 꾸리는 덧생태계도 나타났다. 그렇게 생겨난 변형종들은 더스트가 사라진 이후에도 한동안 자연을 지배하면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21세기 후반부터는 더스트 적응종들이 더스트가 없는 환경에 맞추어 다시 변하며 생태계의 풍경을 바꾸고 있었다. / 83p

 

 

 




 

 

 

 

  이처럼 지구 끝의 온실은 모스바나라는 한 식물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출발하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힐 뻔했던 인류 구원의 한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SF소설이다.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도피처인 온실로부터 파생되어 온 인류 재건의 역사는, 어떤 위대한 발견과 뛰어난 능력을 가진 특정한 누군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끝끝내 살아남아 그저 내일을 믿고, 희망의 씨앗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며 가꿔온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멸망 속에서 새로이 일으킨 지구의 역사를 식물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은 우리가 왜 김초엽이라는 작가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증명한다. 인간들이 부단히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하느라 지워낸, 동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 그리고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온기를 불어넣은 그녀의 작업은 소설이 우리 시대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아영에게는 모두 소중한 연구 대상인데, 왜 하필 연구비를 들여 그 식물들을 복원하고 보존해야 하냐는 질문 앞에서는 늘 할말이 없어지곤 했다. 가장 그럴싸한 건 생물자원으로서의 가능성, 즉 식용이나 화훼 작물로의 쓸모나 약리적 성분을 강조하는 거였지만 아무 식물에나 그런 코멘트를 붙일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맛있거나 예쁘거나, 하다못해 약으로 쓸 수 있는 식물 외에는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30p

 

 

당신은 재건의 역사를 식물들의 관점에서 재구성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 작업이 수행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인류는 그간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역사만을 써온 것일까요. 식물 인지 편향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오래된 습성입니다. 우리는 동물을 과대평가하고 식물을 과소평가합니다. 동물들의 개별성에 비해 식물들의 집단적 고유성을 폄하합니다. 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를 보지 않습니다. 문질러 지운 듯 흐릿한 식물 풍경을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 365p

 

 

 




 

 

 

 

  인류의 이기로 인해 초래된 지구 위기, 김초엽이 소설 속에서 보여준 미래가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좀처럼 종식되지 않고 있는 코로나 시대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전해주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로 하여금 독자들이 각자 그 해답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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