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 간 소녀 라임 청소년 문학 28
소피 킨셀라 지음, 이혜인 옮김 / 라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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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청소년문학 시리즈 28번째 이야기는 《스타벅스에 간 소녀》입니다. 표지 삽화를 통해 흔히 청소년 소설에서 자주 다루고 있는 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겠거니, 지레짐작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학교 폭력 후유증을 극복는 하는 열다섯 살의 오드리, 게임 중독에 빠진 프랭크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이 여타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소재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배려하는 작가의 마음이 드러난 스토리는 그리 흔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사건에 주목하기 보다는 극복해가는 과정과 감정에 주목하고 있는 스토리와 어둡고 무겁기보다는 밝게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게 진행되는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열다섯 살의 모범생이었던 오드리는 지금 사회 불안 장애, 범불안 장애, 우울병 에피소드라는 병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러 온 프랭크 오빠의 학교 친구 라이너스가 불쑥 인사를 건네자 오드리는 너무 놀라 펄쩍 뛸 정도였고, 두려움에 숨이 점점 가빠지고 눈물이 차 오르며, 목구멍이 꽉 조였으며 공포에 질려 가슴이 펑 터져 버릴 정도로 반사 신경이 상당히 날카롭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오드리는 자신이 정말 멍청하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지요. 이런 오드리는 가족들의 눈과도 마주칠 수 없어 선글라스를 늘 쓰고 있습니다. 9월에 학교에 가기 위해 세인트 존슨 병원의 사라 선생님은 다큐멘터리를 찍어보는 것을 권합니다. 그렇게 오드리는 유쾌하고 정다운 우리 집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하지요.

 

<데일리 신문>에 나온 내용을 철석같이 믿고 매달리는 엄마는 '당신의 자녀가 컴퓨터 게임 중독이라는 여덟 가지 징후'라는 기사를 본 후 오빠 프랭크의 컴퓨터 게임에 간섭하기 시작합니다. 프랭크는 라이너스와 함께 <정복자들의 땅> 국제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연습을 해야하지만 엄마는 그보다 아들의 컴퓨터 중독이 더 걱정입니다. 엄마 역시 걱정 중독일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거짓말을 한 프랭크는 10일 컴퓨터 금지령을 받게 되지만, 새벽에 일어나 몰래 컴퓨터 게임을 한 것을 안 엄마는 노트북을 던져버리고 맙니다. 엄마는 프랭크에게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주기 위해 달리기, 기타 등을 권하지만 요즘 청소년들의 말과 태도를 실감나게 대변하고 있는 프랭크에게 컴퓨터 중독이라는 걱정 불안에 사로잡힌 엄마는 번번히 지고 마네요. 

 

사라 선생님은 다큐멘터리에서 타인을 인터뷰해보라 권하고, 스타벅스를 다녀오는 것을 숙제로 내줍니다. 이에 오드리는 그동안 쪽지를 통해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었던 라이너스에게 인터뷰를 해달라고 하고, 라이너스는 오드리에게 스타벅스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스타벅스에서의 첫 만남은 오드리에게 실패로 돌아갔지만, 자신을 이해해주는 라이너스에게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오드리는 세상에 대한 빗장을 조금씩 풀어가기 시작했고, 엄마의 간섭과 노력 덕분에 프랭크는 배우고 싶은 걸 찾아냅니다. 그리고 엄마 역시 프랭크가 하는 게임에 대해 알아가지요. 핸드폰, 스포츠카에 열중하는 아빠,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열중하는 엄마, 그리고 순수하고 귀여운 네 살배기 필릭스, 요즘 아이들의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프랭크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오드리, 이들 가족은 저마다의 불안과 걱정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를 괜찮다고 다독이며 유쾌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이모가 헛간에서 장군풀을 기르시거든. 겨울 내내 어둡고 따뜻하게 해 주려고 헛간에 촛불을 밝혀. 그래야 최상품을 수확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장군풀이라는 거야?

아닐 건 또 뭐야? 장군풀이 어두운 곳에서 기나긴 시간을 보내듯이 너도 그럴 수 있는 거지. (본문 91p)

 

사실 여타의 청소년 소설였다면 오드리가 겪은 사건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보여주면서 사건에 주목하고,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타벅스에 간 소녀》에서는 오드리가 겪은 그 사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처를 꺼내 마주해야 곪은 상처가 나을 수 있다는 여타의 결말과 달리 '반드시 서로 모든 것을 터넣고 드러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뭐든 혼자만 간직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밀로 간직해야 하는 상처도 있는 법이니까요. 지금까지 사건의 주목해서 읽은 청소년 소설에서 저는 피해자의 감정보다는 사건에 주목해왔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온전히 주인공의 감정에 주목하면서 현재의 상황과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린 저마다 들쭉날쭉한 그래프를 그리며 살아요. 오빠도, 엄마도, 심지어 필릭스도요. 내가 한 가지 깨달은 건 인생은 그렇게 올라가다 미끄러져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거란 사실이에요. 그리고 지금 미끄러졌다고 해도 괜찮아요. 계속 나아가는 게 더 중요하니까. 그거면 돼요, 계속 올라가는 거. (본문 296p)

 

《스타벅스에 간 소녀》은 사람들, 가족조차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혼자만의 동굴에 사는 오드리가 세상 밖으로 한 발짝 내딛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힘든 시간을 보내는 청소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있습니다. 더불어 너무도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 프랭크와 엄마를 통해서 서로 이해하는 법도 일러주고 있네요. 오드리처럼 상처를 겪고 있는 사람 뿐만 아니라 우리는 저마다 굴곡있는 그래프를 그리며 살아갑니다. 언제나 최고일 수는 없으니까요. 절망이라는 과정도 더 나은 삶을 향해 가는 과정임을 우리는 오드리를 통해 배워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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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쿠마몬
구마모토 현 지음, 임종민 옮김, 코야마 쿤도 감수 / 북폴리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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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몬(일본어: くまモン)은 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만든 마스코트이다. 2010년 규슈 신칸센 개통 이후 지역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쿠마몬은 국가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2011년 후반, 총칭 유루캬라라고 부르는 전국 마스코트 설문조사에서 280,000표를 얻고 1위를 기록하였다. 구마모토 현은 2011년 쿠마몬을 통해 28억 엔의 판매 수익을 올렸고, 경연에서 우승한 후에는 2012년 상반기에만 118억 엔의 판매 수익을 달성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中)

 

 

 

북폴리오에서 귀여운 캐릭터의 만화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에 엄청 기대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제 품으로 오게 되었네요. 그것은 바로바로 새빨간 뺨이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코믹 쿠마몬》입니다. 이 엄청난 귀여움을 가지고 태어난 쿠마몬 캐릭터가 웹툰의 캐릭터일거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구마모토 현에서 만든 캐릭터라고 합니다. 일본의 캐릭터 산업은 정말 대단한 거 같습니다. 쿠마몬은 국가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상품으로 출시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듯 하네요.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귀엽고 깜찍한 제품들이 눈길을 끄네요. 하지만 쿠마몬의 귀여움의 진가는 이 책 《코믹 쿠마몬》에서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코믹 쿠마몬》은 책 자체도 너무 귀엽습니다. 책 상단 하단에도 쿠마몬의 귀여움이 담겨져 있네요. 책표지는 쿠마몬의 앞뒷모습을 담아 놓았네요. 이 귀여운 책은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코믹 쿠마몬》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배경으로 쿠마몬과 구마모토 현 동물 친구들의 소소하고 즐거운 일상을 담은 4컷 만화입니다. 더불어 구마모토 현의 관광명소와 축제 등 다양한 일본 문화도 담아내고 있네요. 더욱이 긍정적이고 따뜻한 쿠마몬의 성격은 절로 힐링되고, 위로를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쿠마는 곰이라는 뜻, '몬'은 구마모토 사투리로 사람을 뜻하고 있다고 해요. 쿠마몬의 말투는 문장의 끝에 '몬'을 붙이면 되요. 우리나라 군대에서 '다''나''까'를 붙히는 것처럼 말이죠. 이해가 되셨나몬? 박장대소를 할만큼의 유머를 가진 책은 아니지만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됩니다. 쿠마몬의 열두달을 담은 이 이야기는 4월부터 시작되고 있어요. 1월부터 시작했을 우리나라의 구성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주었지만 월별 스토리들이 우리나라 월별 일상과 닮아 있는거 같아서 사람이 살아가는 건 다들 비슷하다는 생각에 위로가 되는 기분입니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져갑니다. 헌데 저는 이를 두고 남탓을 먼저 했던거 같아요. 각박해져가는 세상은 내가 아닌 타인의 탓이라고 생각했던 것죠. 헌데 마음 따뜻하고 느긋한 미덕을 가진 그리고 배려심을 가진 쿠마몬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네요. 일본의 언어, 생각, 유머 등을 잘 알지 못하는 탓에 쿠마몬을 모두 이해하지 못해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누구나가 힐링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어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캐릭터 쿠마몬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캐릭터 산업도 좀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만든 캐릭터가 한국, 중국, 프랑스까지 인기를 끌면서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일본의 캐릭터 산업이 대단하면서도 부러워지네요. 귀여운 캐릭터 쿠마몬의 모든 매력이 담겨진 《코믹 쿠마몬》으로 힐링되는 기분을 느껴보면 어떨까몬?

 

 

그나저나 뒷표지에 책갈피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데 이거 아까워서 절대 잘라 쓸 수 없을거 같은데 나만 그런가몬?

 

(이미지출처: '코믹 쿠마몬' 표지,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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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뭣 좀 아는 뚱냥이의 발칙한 미술 특강
스베틀라나 페트로바.고양이 자라투스트라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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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가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 책 《고양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책표지 만큼이나 저자에도 눈길을 끈다. 이 책의 저자는 러시아의 예술가이자 큐레이터인 스베틀라나 페트로바 그리고 고양이 자라투스트라이다. 고양이가 책의 저자라니! 흥미로운 책임에 틀림이 없는 듯 싶다. 저자는 2011년 FatCatArt 사이트를 개설하여, 자신의 사랑스러운 뮤즈이자 푸짐한 몸매를 자랑하는 고양이 자라투스트라의 사진을 거장들의 명화에 결합한 작품들을 공개했고, 이 실험은 곧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책으로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명화와 고양이의 결합이라? 신선한 느낌이 든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권리를 가져야 한다. 고양이까지도! (본문 16p)

 

항상 호기심이 강하고 새로운 분야를 파고들기 좋아하는 저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외동딸인 자신 외에 사랑을 쏟았던 진저 캣 자라투스트라를 데려다 키우게 되었고 어머니를 여읜 후 깊은 우울의 나락에 빠져있던 자신에게 한 친구가 자라투스트라와 뭔가 해볼 것을 권하자 왠지 모르지만 자라투스트라를 렘브란트의 <다나에>에 포토샵을 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곧 인터넷에 화제가 되었다. 이렇듯 자라투스트라가 이 책에 미친 영향이 워낙 커서 공동저자가 될 자격이 되고도 남지 않겠는가.

 

 

 

 

Fat Cat Art 프로젝트에서 디지털 부분은 중요하지만, 예술적인 감동을 주는 것은 비단 그것만은 아니다. 사실 컴퓨터와 내가 사진, 그림, 퍼포먼스를 복합적으로 잘 버무린덕이다. 난 이 새로운 기법을 '디지털 통합'이라고 부른다. 작업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새 작품에 대해 아이디어를 낸다. 주변의 삶에 대해 생각하거나 기존 작품들, 혹은 자라투스트라의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다.

2.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구한다.

3. 고양이 사진을 찍는다. 자라투스트라가 포즈를 취하고 싶을 때 촬영하고, 녀석은 포즈 취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자라투스트라는 사진을 찍으라고 조르고, 내가 그럴 짬이 없으면 토라진다!

4. 그림의 디지털 이미지에 고양이의 자리를 잘 잡아 신중하게 포토샵한다. 이 작업이 가장 오래 걸리고 까다롭다. 구도나 표현이나 자라투스트라가 맞아떨어져야 되고, 적당한 사진을 찍느라 몇 달 걸리기도 한다. 또 그림에 원래 있던 인물의 흔적이 없어야 한다.

5. 이따금 거장의 화풍을 모방하느라 사진 후반 작업을 많이 한다. 현대적인 디지털 사진인 고양이 이미지가 오래된 그림의 분위기에 맞아야 한다. 동시에 인터넷의 '귀요미 고양이'를 유지해야 한다.

6. 그러고 나면 설명을 붙이는 단계. 내가 그 글도 쓴다. 고양이는 특별한 언어와 특별한 말투로 말한다. 나는 자라투스트라가 말할 수 있다면 이런저런 인간의 삶에 대해 뭐라고 할지 상상한다. (본문 16,17,18p)

 

 

 

고양이 자라투스트라는 고대와 중세, 이탈리아 르네상스, 북유럽 르네상스와 16세기, 17세기 네덜란드 미술,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17세기의 플랑드르 미술, 17~18세기 스페인 미술, 17~18세기 영국 미술, 18세기와 19세기 초 프랑스 미술, 19세기 미국 미술, 18~19세기 러시아 미술, 19세기 일본 미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유럽 미술, 20세기 초 러시아 미술, 20세기와 요즘의 유렵과 신세계의 미술까지 이 그림 저 그림을 누비며 명화를 소개하고 있다. 작품을 보다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어떻게 저렇게 절묘하게 명작과 어울리는 표정과 자세를 취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원래는 어떤 명작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난다. 예술의 다양성, 작품을 접하는 다양한 시도 등을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고양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책이다. 물론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할지라도 작품이 가진 독특성, 특별함에 이끌려 읽어보게 될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고양이를 화자로 한 유머러스한 짧은 글, 고대부터 20세기까지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는 고양이로 인해 독자는 새로운 형식의 미술관을 경험하게 된다.

 

(이미지출처: 고양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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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위한 변명
그레고리 라바사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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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따라 작품이 주는 재미와 의미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고 책을 읽는 편이다. 그러다 <카뮈로부터 온 편지>라는 책을 읽으면서 번역에 대해 조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소설은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번역 연재를 했던 6개월의 시간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데다 실제 번역 과정을 소설로 재탄생시킨 일은 유례없는 일을 보여준 작품이었는데 이 책을 읽기전에는 번역에 따라 작품이 주는 재미와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크게 중점을 두지 않았었다. 서로 다른 두 언어가 딱 하나의 의미로 대응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 차이로 인해 작품의 의미가 훼손될 수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세종서적 《번역을 위한 변명》을 읽어보게 되었다.

 

누군가 번역 일에 관하여 묻는다면 나는 그저 이 책을 건네며 한마디만 덧붙일 것이다. "이게 다예요." _김명남(번역가)

 

이 책의 저자 그레고리 라바사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영어로 옮기는 번역가들 중 가장 저명한 사람으로 '번역가들의 대부', '번역가들의 번역가'로 통한다고 한다. 『백년 동안의 고독』의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나는 『백년 동안의 고독』영역본을 내가 쓴 스페인어 원본보다 더 좋아한다"라고 말하면서 라바사의 영역을 극찬했다고 한다. 그레고리 라바사는 2005년 자신의 번역 인생을 회고한 《번역을 위한 변명》을 펴냈고, 이 책은 펜(PEN)상을 받았으며, 「LA타임스」선정 '올해의 좋은 책'에 뽑혔다. 그 외에도 문학 번역에 크게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전미도서협회상과 문학예술아카데미 번역상을 받았고, 예술가에 수여하는 가장 최고의 상인 국가예술훈장 등을 수훈한 그레고리 라바사는 2016년 6월 14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제1부 반역의 시작, 제2부 번역 작품의 구체적 명세서, 제3부 판결을 대신하여'로 나누어 '번역은 반역'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한 그레고리 라바사의 답변을 수록하고 있다. 1부에서는 번역이 어떤 부분이 반역에 해당하는지 살펴보고자 제안하면서 변론의 포문을 열었고, 2부에서 라바사는 번역 작품에 관한 경험을 상세히 수록하고 있으며, 3부에서는 판결 선고 전의 최종 변론을 펼치면서 번역의 본질과 번역가의 역할을 되짚고 있다.

 

언어에 대한 배신은 많은 경우 단어들의 배신이고, 동시에 두 문화 사이의 의사소통에 끼어드는 장애물들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본문 19p)

번역자는 저자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그의 말들을 잘 정돈해야 한다. 저자가 자신의 문화적 범위 내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들로 번역해놓은 것을, 번역자의 언어와문화로 번역해 번역자의 것으로 만들려고 할 때, 번역은 아주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다. 그것은 반역의 행위인 것이다. (본문 20p)

 

《번역을 위한 변명》에서 저자 그레고리 라바사는 독특한 구성을 통해 번역을 옹호하며, 번역 방법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번역가가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책 또한 풍부한 일화를 통해 생생하게 제시하고 있기에 번역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 번역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귀중한 길잡이가 되어줄 듯 싶다. 번역에 관한 책이었지만 이론이 아닌 경험을 통한 생각을 수록하고 있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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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낮잠 노란상상 그림책 38
파토 메나 지음, 김정하 옮김 / 노란상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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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나면 졸음이 쏟아집니다. 사무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 덕분에 나도모르게 고개가 춤을 춥니다. 아마 학교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지 않을까요? 점심시간이 끝난 5교시, 여기저기 졸음과 사투를 벌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선생님한테 혼날까 싶어 눈에 힘을 줘보지만 졸음이 쏟아지는 눈꺼풀을 이길 방도는 없지요. 힘겨운 사투 끝에 찾아온 쉬는 시간, 10분간의 낮잠은 정말 세상에서 제일 달콤합니다. 그리고 여기 그만큼 달콤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란상상 그림책 시리즈 38번째 이야기 《완벽한 낮잠》이지요. 읽다보면 달콤한 낮잠을 자고 싶게 만드는 귀여운 그림책이에요.

 

 

이야기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 정글에서 시작됩니다. 갑자기 어디에선가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불어오자 재규어는 기분 좋은 바람 때문에 낮잠 자기 딱 좋다고 느꼈어요. 그 순간 재규어는 나뭇가지에 앚아 있는 코아티를 보게 되지요. 재규어는 코아티에서 이따가 정말 중요한 일이 있으니 10분만 이따가 좀 깨워달라고 부탁합니다. 지금 낮잠 자기 딱 좋은 산들바람이 불고 있으니까요. 코아티는 약간 겁을 먹고 그러겠다고 대답합니다. 재규어는 코아티의 말이 끝나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요.

 

 

 

그러자 코아티도 생각했어요. 이렇게 정말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부는데 낮잠을 안 잘 수 없다고 말이죠. 그래서 코아티는 옆에 앉아 있던 앵무새에게 10분 후에 재규어을 깨워 줘야 하니 10분만 이따가 좀 깨워 달라고 부탁합니다. 앵무새는 친절하게 깨워 주겠노라고 말하죠. 앵무새의 말이 끝나자마다 코아티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어요.

 

 

코아티가 잠이 들자 앵무새도 생각했어요. 정말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불고 있으니까요. 주변에 누가 없나 찾던 앵무새는 나무늘보를 발견합니다. 앵무새는 나무늘보에게 부탁합니다. 앵무새는 코아티를, 코아티는 재규어를 깨워줘야 하니 10분 이따가 깨워 달라고 말이죠. 나무늘보는 하품을 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곤 앵무새도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네요.

 

 

 

 

바로 그때 나무늘보 역시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불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다른 친구에게 10분 후에 깨워 달라고 하려고 했지만 이미 모두가 잠들어 있었지요. 나무늘보는 졸음과 싸우기 시작했어요. 나무늘보의 역사상 가장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거죠. 1분, 2분 …… 9분이 지났어요.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지요. 이제 단 1분이 남았을 때, 나무늘보는 완전히 깊은 잠에 빠져들었어요. 이거 큰일이네요. 나무늘보가 잠이 들어버렸으니 이제 앵무새를, 코아티를, 재규어를 어떻게 깨워야 할까요?

 

 

따뜻한 햇살에 시원한 산들바람, 정말 낮잠을 참을 수 없는 조건이네요. 졸음을 참는 나무늘보의 모습이 너무도 귀엽네요. 다양한 의성어, 의태어가 수록되어 있고, 반복적인 구성이라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해요. 동물들의 특징을 잘 잡아 코믹하게 그린 삽화도 볼만합니다. 나무늘보의 역사상 가장 치열한 싸움이 너무도 유쾌하게 그려진 그림책입니다. 졸음과 사투를 벌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해요. 저도 지금 달콤한 낮잠을 자고 싶네요. 하지만 회사인 관계로 나무늘보처럼 저도 치열한 싸움을 해야할 듯 합니다. 읽다보면 절로 웃음이 나는 정말 유쾌한 그림책 《완벽한 낮잠》이었습니다.

 

(이미지출처: '완벽한 낮잠'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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