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소재원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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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 <소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예고편만으로도 딸을 둔 엄마인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기에 원작소설 <<소원>>을 앞에 두고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책을 읽는동안 화가 많이 날 것이고, 또 많이 울 것임을 알기에.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성폭행 사건은 딸을 둔 엄마에게는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이야기다. 그 중 2008년에 일어난 조두순 사건은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던 사건이었다. 8살의 아이는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 그 시간동안 아이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짐작할 수도 없는 그 고통의 시간을 어린 아이 혼자 감당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 괴물같은 인간에게 우리는 합당한 벌은 내리기는 한걸까? 도대체 왜!!!!! 세상에 이런 괴물들이 판을 치고 다니는 것인지....그 대답은 도대체 누가 해 줄 수 있을까? 점점 격앙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자꾸만 화가 난다. 슬.프.다.

힘겹게 책을 펼쳤다. 나영이아빠의 추천사를 읽으면서 이미 나는 울고 있었다. 아직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

 

"아빠, 나쁜 아저씨 징역 얼마나 받았어?"

"12년 받았으니 10년 조금 넘게 더 감옥에 있어야 나와."

"쳇!"

사회에 대한 짜증일까? 아니었다. 공포였다.

"10년이나 남았잖아."

"그때까지 내가 힘을 길러야겠다."

12년 여느 다른 사람에게는 가벼운 시간일 수도 있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다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하는 지독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만약 놈이 더 많은 형량을 받았더라면 아이의 스트레스는 그만큼 줄어들지 않을까? (본문 7,8p, 나영이아빠 추천사 中)

 

만취 상태라는 참작이 이루어져 검사가 구형한 20년 형량보다 가벼운 죗값을 받게된 그놈은 12년 형도 무거운 죗값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지윤아빠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 자식은 당당하게 이야기하는데 정작 우리는 도망가고 두려워하고 분노해야한다는 사실에 그는 울분의 눈물을 쏟아냈다. 가족이란 울타리를 거부한 지윤이, 엄마 말고는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은 지윤이를 위해 그는 가게 옆 원룸에서 혼자 지냈다. 지윤아빠는 5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소주로 가슴을 소독하며, 기억이 자신을 떠나갈 수 있게, 자신이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 기도하고 기도하며 숨 쉴 틈도 없이 술을 마셨다.

 

지윤엄마는 곤히 잠든 지윤이를 바라보고 있다. 잠을 자려는 순간 불안함이 찾아오는 탓에 5개월이 넘는 시간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낮이 되어야 겨우 수면제를 삼켜 세 시간의 수면만을 취하곤 한다. 잠시 자는 동안에도 지윤이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을 때면 눈이 절로 떠져 한 시간도 잠을 청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죽음으로도 속죄되지 않는 유일한 범죄를 저지른 자는 죄를 뉘우친다고 선처해달라고 호소한다.

 

"저 자식......알고 있을까? 판사는 알고 있을까? 세상의 모든 행복이 지윤이에게서 나오는 우리를. 지금 저들이 세상 모든 절망을 우리에게 선물했다는 것을." (본문 62p)

 

지윤엄마는 지윤이의 기억에서 그놈을 지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억울함과 힘겨움도 참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윤아빠는 어린애를 놔두고 맘 편히 수다나 떨고 있었던 지윤엄마를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이혼을 요구한다. 절망만 남은 그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예전과 같은 행복을 지켜낼 자신이 없었던 탓이다. 지윤엄마만 보면 원망이 터져 나오는 지윤아빠, 지윤이 앞에서는 굉장히 강하지만 남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두려워하는 지윤엄마, 그렇게 그들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있었다.

헌데, 설상가상 지윤아빠는 교통사고로 열 시간의 대수술을 받아야했고, 그 후유증으로 해리성 기억장애와 8살의 지능을 가지게 된 지능장애를 보였다. 이 모든 상황을 혼자 이끌어가게 된 지윤엄마는 힘든 상황을 이겨내가며 행복의 의미를 깨달아간다.

 

한자리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 한 식탁에 모여 가족끼리 함께한다는 소중함. 왜 나는 그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일까! (본문 166p)

 

"가족. 그 울타리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아직 행복한 거라 생각해요. 비록 처참하게 짓밟히고 망가졌지만, 아직 그 누구도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어요. 나, 깨달았어요. 갇혀 있지 않아도 우린 절대 서로를 놓지 않는다는 걸." (본문 183,184p)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그들을 가해자 보듯 했다. 거꾸로 된 세상. 정말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소설 속 세상은 바로 우리 현실과 다를 바 없다. 소설 속 지윤아빠와 지윤엄마는 영화를 통해 대화를 하고 추억을 공유했다. 그 중 <시네마천국>의 한 대사처럼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혹독하고 잔인하다" (본문 171p) . 어쩌면 현실은 이 소설보다 더 혹독하고 잔인할지도 모른다. 무섭다.

 

아빠를 본 순간 경기하며 고함을 지르며 오들오들 떨며 발작을 일으키고 스스로 자해를 하며 고통으로 두려움을 억누르기도 했던 지윤이가 "아빠"라고 부르던 장면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읽고 또 읽었던 장면이기도 하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그 순간, 그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했을 것이다.

상처받은 아이로 인해 흩어지게 된 가족, 무너진 울타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가족'이었다. 나영이아빠의 "잊으려 하면 안 돼요. 이겨내야지."(본문 286p)라는 말처럼 우리를 이겨낼 수 있게 해주고,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가족이 아닐까.

설경구, 엄지원 주연의 영화 <소원>의 원작소설이 된 소재원 작가의 <<소원>>은 인내하고 노력하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진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아동 성폭력에 대한 우리의 관심, 그리고 그에 따른 법의 개선 등에 대한 문제점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만취 상태가 참작이 이루어지는 엿같은 세상이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일이 없어지길 바라는 우리들의 생각이 곧 법이 될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더 필요할 것이다. 더불어 피해자를 다르게 보는 우리 시선 또한 사라져야 한다.

 

슬프고, 화나고, 안타깝고, 아프다. 읽는내내 정말 행복하지 않았던 소설이다. 그러나 그 결말은 너무도 행복하고 아름다웠다. 힘겨운 상황을 이겨내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분노의 눈물에서 감동의 눈물을 선물했다. 행복하지 않은 소재지만 우리가 직면해야하는 현실이기에 읽어보고 바꿔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에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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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섬옥수
이나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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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작소설집의 공간적 배경인 땅끝섬 역시 그 많은 섬들 중 한 곳을 염두에 둔, 가상공간이다. 제목의 한자에서 유추할 수 있듯, 태생지인 섬에서 나고 자라 바다에 순응하며 모진 삶을 이어온 원주민들, 스스로를 유폐시키려고 찾아들었거나, 생존을 위해 먹고살려고 모여든 외지인들이 섬이라는 특수성, 폐쇄성 때문에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갇힌 채 서로 부대끼며 갈등, 대립, 오해를 겪다 결국 사랑으로 구원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쓰고 싶었다. (본문 283p)

 

책 제목이 참 낯익다. 섬섬옥수는 가녀리고 가녀린 옥같은 손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을 나타낸다고 한다. 아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 뜻이리라. 헌데 띄어쓰기, 쉼표 하나 있을 뿐인데 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섬'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폐쇄, 고립의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신기하고 재미있고 귀엽게 들렸던 제주도 사투리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 사투리가 폐쇄의 느낌을 더해주는 듯 하다. 스토리의 분위기 탓이려나. 가끔 나는 인생이 꼬이는 느낌, 앞에 놓인 상황이 힘들어질 때 일탈을 꿈꾼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그곳이 무인도면 더 좋겠다)으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마음의 마음에 동화되는 느낌이었고 더불어 내가 가진 그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낸 마음의 감옥이었음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삶의 벼랑 끝에 선 이들이 다시 희망을 찾아가는 내용과 마주하고 있자니 삶의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잔잔한 파도를 가진 바당('바다'를 일컫는 제주도 사투리)같은 내 인생의 파도가 아니러니하게도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그동안 괜한 투정을 부렸구나 싶기도 한.

 

"욕심이 없으면 적이 없고 아는 게 없으면 걱정이 없고 싸우지 않으면 질 일도 없잖아요." (본문 24p)

 

섬에 사는 개들 사이에서조차 벌어지는 서열 싸움, 그리고 그와 다를 바 없는 탐욕으로 인한 섬 주민들간의 갈등, 오해로 빚어진 부부간의 갈등과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으로 인생의 실패를 겪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없이 잔잔했다가 한없이 포악해지는 변덕스러운 바다의 모습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희망은 죽지 못해 찾아온 고립된 섬, 그곳에서 죽음이 아닌 희망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섬을 '고립'이 아닌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아름답게 변모한다.

 

생명과 인연을 맺고 새 출발을 다짐하는 시점에서 다시 찾은 섬은 더 이상 땅끝이 아니다. 시작과 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려 있는 법, 내려오기로 치면 끝이지만 거슬러 올라가자면 국토의 시작 아닌가. (본문 264p)

 

그랬다. 땅끝섬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인연을 만나게 된 혜자처럼 말이다. 외지인이라 배척하는 원주민들과 텃세를 부리는 원주민들 사이에서 탐욕과 이기심으로 팽배했지만 결국은 또 인연을 만들며 살아가게 되지 않겠는가.

 

일 년 열두 달 바람이 첼렐레 팔렐레 부는 섬에는 숱한 사람들이 오가며 시절인연을 쌓고 허문다. 빈손 쥔 외지인이 먹고살아보겠다고 새로 들어오든, 한때 현금 만지는 재미 쏠쏠했던 원주민이든, 오래전 내남없이 어울려 정겹게 살아왔던 이 섬에서 또 새로운 관계를 쌓으며 살아갈 것이다. 죽살이가 그렇지 아니한가. (본문 264p).

 

죽지 못해 사는 심정으로 절망의 끝자락에서 찾아들었던 땅끝섬에서 미련과 애증, 회한을 다 내려두고 본래의 모습으로 마주한다면 스스로 만들어놓았던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으련만. 벗어버리지 못하는 미련과 애증, 탐욕과 이기심이 결국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음을 우리는 왜 인지하지 못할까? 작가가 의도했던 것처럼 <<섬, 섬옥수>>는 갈등, 대립, 오해 속에서 사랑으로 구원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부부관계, 자식에 대한 갈망, 정교수로 선발되지 못하는 삶의 귀로에 선 자애의 절망스러운 이야기로 시작되어 희망을 담은 자애의 이야기로 끝나는 그 여정 속에서 그 의도가 명확하게 보여지는 듯 했다.

 

뒤돌아보자. 절망의 끝자락에 서 있다고 생각할 때 뒤를 돌아서면 그 앞에 끝없이 펼쳐진 세상을 볼 수 있으리라. 이 작품은 이렇듯 거친 바다와 싸우면서 또는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섬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의 고됨을 위로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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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박주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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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대학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갔더라도, 그곳이 내게 무얼 해줄 거라고, 거기만 통과해 나가면 무언가 또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본문 19,20p)

 

온갖 경쟁을 헤치고 수능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여 대학에 들어가고나면 인생은 탄탄대로로 펼쳐질 줄 알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대학 입학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생각하지 못한 채 무작정 달려 대학교에 발을 들여놓지만, 정작 인생은 그 다음부터였다. 대학에 가면 뭐든 할 수 있다, 라는 사탕발림은 옛말, 이제는 취업란을 위해 또 무작정 달려야만 한다. 이렇게 열심히 달리지만 뜻대로 안되는 일은 너무도 많다. 그러다 문득 내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 또한 허망한 일이다. 얼마전 모 프로그램에서 대학생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한 여대생의 인터뷰는 현 사회의 청춘들이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있는 질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 스물일곱 살의 백수 윤승아가 있다.

 

그녀는 실생활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걸 전공하고 사 년 전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 입사했으나 일 년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잠깐잠깐 아주 별 볼 일 없는, 별 볼 일 없기에 더욱 견디기 힘든 일들을 하다가 지금은 아주 완전히 푹 쉬고 있는, 한마디로 백수다. 승아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이 살아가는 우울한 청춘이다.

날마다 찾아드는 다른 날은 사 년 꼬박 채워 다닌 대학이 아무 의미도 주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 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진열대 위에서 마냥 기다리는 청춘이지만,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붙여준 가격으로는 절대 자신을 팔지 않을 거라는 일말의 자존심은 있다.

 

학창시절 줄곧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큰 오빠는 정작 사회에 나와서는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큰 오빠와는 반대편으로 나아가 학교 성적도 엉망이었고, 툭하면 싸움질에 정서가 불안하다고 선생님이 부모님을 학교로 부르게 했던 작은 오빠는 지금 오히려 엄마의 기준으로 한다면 엄마를 창피하지 않게 살아주고 있는 사람이다. 학교와 사회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던 게다. 하지만 승아는 자신이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그런 일이 과연 있기나 한 건지, 내가 남들만큼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의문이다. 그렇게 승아는 희망을 잃어버린 듯한 우울한 이십대를 자포자기 상태로 보내고 있었다.

 

스물일곱이나 되어서 내가 잘하는 건 뭘까를 고민해봐야 소용없는 짓이다. 그걸로 돈을 왕창 벌거나 어마어마하게 유명해진다면 모를까, 그게 이전에 내가 하던 일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잘하는 일을 한다고 즐거우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좋아하는 야구를 해서 먹고살 만큼 돈을 버는 사람은 야구를 할 줄 아는 사람 가운데 지극히 극소수에 지나질 않는다는 얘기이다.

희망하고 애쓰고 실패하고 절망하고 다시 도전하고, 그렇게 복잡해지는 게 싫어서 나는 노래를 부른다. 나는 개미랑은 거리가 먼 베짱이. 나는 비관적인 베짱이. 자존심이 있으니 겨울이 오면 개미집 문을 두드리지 않고 그냥 얼어 죽고말 베짱이. (본문 65,66p)

 

엄마의 성화로 승아와 면담을 요청한 작은오빠는 좋아하는 것, 잘하는 걸 묻지만, 승아는 대답하지 못한다. 돈으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는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승아는 겉으로 태연한 체하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스스로를 힘겹게 붙들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서로 비밀없는 친구 효림이도 마찬가지다. 승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방구석에 자신을 구겨두는 것에 점점 더 익숙해져가는 것이, 이렇게 형편없는 우리가 정말 우리일까봐 무섭고 두려워한다.

 

효림도 나도 희망이라는 것에 지쳐가고 있다. 점점 더 약해지고 있고. 다만 버티기 위해서 자신을 다독거리는 것만으로 온종일 진이 빠진다. 그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삶 속에 지금 우리가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본문 105p)

 

꼭 뭘 해야 한다면, 만약 그래야 한다면 글이라고 써 볼까, 생각하던 승아는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몸과 마음을 움직여나간다. 물론 이 싸움에서 이길 확률은 몹시 희박하지만 그대로 싸워야 한다면 철저히 자신의 방식대로 싸우고, 이길 수 없다 해도 절대 사회의 기준에 맞춘 방식에 굴복하지 않으리라는 오기도 생겨난다. 불안하기만 한 희망이 사그라들까 걱정되지만 그녀는 무수히 탈락하고 거절당하고 거부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그럼에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아니 꿈을, 그리고 삶을 각오한다.

 

우리는 어딘가 있을 무언가를 아직 찾고 있다. (본문 180p)

 

어린 시절 책을 읽는 큰 오빠 옆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던 승아는 이제 소설을 쓰면서 달라질 것이며, 자신 안의 가능성을 믿기 시작한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승아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스물일곱의 우울한 청춘, 승아에게 세상은 기회도 주지 않았고,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조차 따져보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기회를 거두어가버리곤 했다. 승아의 이런 절망은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절망적인 심정을 너무도 잘 묘사하고 있다. 너무도 짧은 청춘의 유통기한이 허무하게 끝나는 것은 아닐까, 라는 불안한 심정이 승아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무언가를 찾고, 꿈을 그리고 삶을 각오하고 살아가려는 승아의 변화되어가는 심정 속에서 청춘들은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위로받고 있게 될 것이다. 꼭 뭘 해야 한다면, 만약 그래야 한다면, 당신을 무엇을 해보겠는가? 우울증하고 무기력한 당신에게 딱 한 번이라도 이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그것이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출입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승아가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는 젊고 아직도 못 해본 일이 많다. 분명한 것은 내가 오로지 내 힘만으로 해낼 수 있는 것, 그리고 기회란 것이 주어질 때 최선을 다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 또는 행운이랄 것이 따라주어야 할 것들, 그 모든 것을 절대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 (본문 1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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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야!
소마 고헤이 글, 아사누마 도오루 그림, 안미연 옮김 / 은나팔(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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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해전에 <말리와 나>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납니다. 천방지축 말썽꾸러기에다 무엇이든 물어뜯는 전혀 통제가 되지 않은 조그만 강아지 말리가 점점 나이가 들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이 담긴 영화였지요. 반려동물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처음 느끼게 되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조그만 강아지가 가족의 품에서 성장해가고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이 참 애틋하기도 했지요. 참 아름다운 영화였는데, 여기 말리를 능가하는 사랑스러운 개가 있습니다. 바로 '호두'지요.
그림책을 보면서 이 영화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 영화의 따뜻함이 이 그림책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나더군요.



호두는 화자인 소년이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기르던 개 입니다. 호두는 수컷이고 이제 나이는 열네 살이지요. '앉아!'하면 앉고, '손!'하면 왼발을 내밀고, '오른손!'하면 오른발을 내미는 영특한 개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밥 앞에서 침을 조금 흘리기는 하지만, '기다려!'도 할 줄 아는 최고의 개죠.
'먹보!'이나 '먹통!'을 해도 먹지 않고, '먹어!'했을 때만 먹는 호두는 정말 똑똑합니다.



소년의 호두 자랑을 끝없이 이어집니다. '점프!'하면 들고 있는 막대기를 훌쩍 뛰어넘고, '거기 서!'하면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서 있는데다, '이리 와!' 하면 쏜살같이 달려와 안겨 혀로 볼을 날름날름 핥는 호두는 정말 사랑스럽네요. 소년이 이렇게 자랑하는 이유를 알 듯 합니다.



하지만 열네 살인 호두는 사람이라면 꼬부랑 할아버지인 셈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앉아'해도 딴청을 부리고, '손!'해도 오른발만 내밀고, '먹보!'했는데 먹기도 하고, '점프!'해도 뛰지 않고 그냥 쓱 지나가기도 하는데다 '거기 서!'해도 쫓아오기도 하지요.
하지만 늘 그러는 건 아닙니다. 가끔, 아주 가끔 그러지요.



우리 호두는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나를 쫓아 달려.
하지만 호두는 열네 살이니까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려. (본문 中)

마지막 문구가 참 사랑스러운 그림책입니다. 호두는 소년에게는 배려해주어야 하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점이 담겨져 있는 말이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집에서 기르던 개인 빌리를 추억하며 썼다고 하네요. 빌리가 죽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떤 개를 봐도 '빌리가 더 귀여웠어.''빌리가 더 똘똘했어'라고 말하는 저자의 가족은 빌리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도 간혹 아프거나 나이든 동물을 버리거나, 학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행이도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흐뭇한 이야기도 함께 전해지고 있지요. 동물은 또 하나의 가족입니다. 오늘 이 그림책 속 두 주인공 호두와 소년을 통해서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두야!>>는 반려동물인 호두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생기게 되는 변화를 담고 있습니다. 소년은 호두의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배려하고 있지요. 이 그림책은 우리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가족인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 가족의 의미가 아닐런지요. 소년이 호두에게 보여준 사랑과 배려가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주는 그림책이었습니다.

(사진출처: '호두야!'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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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전(傳) - 대한민국 명사 12인을 키워낸 어머니들의 자녀교육법
EBS <어머니전> 제작팀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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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UN 사무총장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바로 반기문 총장 어머니의 자녀 교육법이다. 어머니 신현순님은 반기문 총장에게 겸손을 가르쳤고 어머니에게 배우고 자란 반기문 총장은 지금 최고의 리더로서 사무총장 연임에 이르게 되었다. 반기문 총장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명사들의 이야기를 살펴 보면 그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어머니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어머니들은 어떤 특별한 교육법으로 그들을 이끌어주셨을까? 자식을 최고로 키우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이렇듯 명사들의 성장과정과 교육법에 관심을 갖게 된다. EBS <<어머니전(傳)>>은 2012년 3월부터 2013년 2월까지 EBS 채널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으로 각 분야의 명사와 지식인, 자신의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들을 키워낸 어머니의 자녀교육 철학과 삶의 이야기를 담아냈고, 이번에 북하우스에서 책으로 출간되었다.

대한민국 명사 12인을 키워낸 어머니들의 자녀교육법을 읽다보면 그들만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비싼 과외, 학원이 이들 명사를 가르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영어 학원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 우리 아이만 뒤처질 것 같은 엄마들의 불안한 마음이 아이들을 학원으로 몰고 있는데, 이것이 결코 정답이 아니라는 걸 명사들의 어머니들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 어머니들의 교육열은 뜨겁다 못해 데일 지경입니다. 지나친 교육열로 인한 폐해도 심심찮게 들리곤 합니다. 그런 어머니들에게 자식 교육은 웃어른들에게 배우라는, 훌륭한 자식은 어머니의 몫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 새대 어머니들이 이 책에 담긴 윗세대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교육의 참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15p)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가장 닮고 싶은 리더 1위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어머니로부터 생명이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다. 반기문 총장의 어머니의 인성 교육은 말로서가 아니라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곤 하셨는데 어머니 역시 어린시절 할머니로부터 보고 배웠다. 반기문 총장의 성실함과 겸손한 동양적 리더십은 바로 어머님의 인성 교육에서 비롯되었는데, 청소년들의 사회문제로 인해 인성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는 요즘, 반기문 총장과 어머니의 교육을 통해 그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짐을 느끼게 된다.

세계를 제패한 전 역도 선수 장미란의 어머니는 장미란 선수가 약점이라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 생각을 바꾸어 장점으로 봐주었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재주가 덕을 앞서면 안 된다고, 기록이나 선수로서의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됨됨이라고 가르쳐주었던 어머니가 심어준 자신감은 장미란 선수가 세계를 제패할 수 있게 해준 힘이었다.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이자 정신건강 상담사, 대학 내 폭력문제 전문가인 조세핀 킴은 어머니가 올바로 세워준 자존감으로  어려움을 겪고도 이겨낼 수 있었고,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교수이자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의 아버지인 오준호 박사는 스스로 깨닫도록 이끌어준 어머니가 있었다.

이름보다 광고가 더 유명한 박웅현의 어머니는 자식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주었고, 그로인해 박웅현은 자신이 갈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주목할 것은 그의 창의력은 어머니와 함께 했던 문화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룡전문가 허민의 어머니는 그에게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아이의 성격을 나무라기보다는 아이를 어루만지고 그 성격을 키워주었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부모도 그걸 믿고 밀어줘야 아이가 큽니다. 뭔가 열심히 몰입해서 하는 거라면 부도가 도와줘야 하는 거에요. 부모에게 끌려 다니는 교육은 크게 되지 못해요. 남이 인정하지 않는 길이라도 아이가 좋아한다면, 열정을 가지고 가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길이라도 그 길이 좋다면 그 길로 가는 게 맞습니다.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뚫린 길, 남이 만들어준 길을 가고자 한다면 세계적으로 큰 사람이 되기 어렵습니다." (본문 121p)

 

한국의 에디슨이라 불리는 황성재는 고등학교 성적이 대부분 양, 가였던 완벽한 꼴지였지만 본인이 하는 일은 실패나 실수를 하더라도 믿고 기다려줬던 어머니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어 카이스트에 들어갈 수 있었고, 대한민국 워너비 모델 장윤주에게는 딸이 가진 개성을 인정해주고 믿어준 어머니가 있었으며, 세계여의사회 회장 박겨아 교수에게는 원칙과 소신을 가진 어머니의 교육철학이, 이야기꾼 영화감독 장진에게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어머니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다.

스타 셰프 샘 킴은 어떤 일이든 포기 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배웠고, 궁중음식전수자인 한복려, 한복선, 한복진 세 자매는 집념과 헌신을 일깨워준 어머니가 있었다.

 

대한민국 명사 12인을 키워낸 어머니들의 자녀교육법을 담은 ebs <<어머니전>>을 읽다보면 지금 젊은 어머니들이 잊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성적 1등보다는 인성 교육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과 아이들의 개성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믿고 기다려줘야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삶의 만족도는 47퍼센트로 절반도 넘는 아이들이 불만족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스스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대로 따라가고 있는 탓일게다. '가서 공부해'가 아니라 '다 괜찮을 거야'라는 말로 독립된 인간으로 받아주고 각자의 개성, 재능을 인정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하버드대의 재학생 중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부모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다 괜찮을 거야"라는 말이라고 한다. 지금은 어렵지만 네가 잘 이겨낼 것을 믿는다는 말은 아이의 높은 자존감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의 경우, 부모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가서 공부해라"라는 말이라고 한다." (본문 67p)

 

<<어머니전>>은 과도한 교육열, 넘치는 정보 속에서 혼란스럽고 불안한 엄마들에게 이 새대 명사들을 키워낸 어머니들이 전하는 자녀교육의 핵심 가치를 담았다. 명사들과 명사들의 어머니 이야기와 함께 수록된 [맞춤형 자녀교육 포인트]는 부모를 위한 실용적인 지침을 담고 있다. 자식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이 지나친 교육열로 나타났고, 우리 아이들은 점점 불행해지고 있다. 부모는 우리 아이가 영어 단어를 얼마나 잘 외우고 있느냐를 궁금해하기보다는 우리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궁금해해야 하는 건 아닐까? 명사 어머니들의 철학을 통해 지금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나의 교육방법, 철학(?)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 아이의 재능, 개성은 무엇이며, 자존감과 행복지수는 얼마나 될까? 지금 내가 알아봐야 할 것은 좋은 영어 학원이 아닌 바로 이것임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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