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화양연화 - 책, 영화, 음악, 그림 속 그녀들의 메신저
송정림 지음, 권아라 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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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나이는 서른 아홉, 아니 빠른 75년생인 관계로 마흔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늘 '빠른'이라는 것을 강요하곤 하는 나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왠지 나이가 들수록 '빠른'이라는 말을 빼놓으려고 한다. 불혹의 나이 마흔을 조금이라도 더 늦게늦게 마주하고 싶은 마음 탓이리라. 젊은 시절에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참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마흔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지금,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다. 가장 예뻤고, 가장 열정적이었고, 가장 아름다웠던 20대, 그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렇게 마흔 앞에서 허황된 꿈을 꾼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중년의 나이에 당황할 것 없습니다. 오히려 어서 오라고 반갑게 맞아 줄 일입니다. (본문 6p)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라는 질문에 나는 20대의 나를 떠올린다. 이제 다시는 내 삶에서 화양연화는 일어날 수 없을테니 말이다. 곧 마흔이 된다는 서글픔에 이 가을이 더욱 싸늘하게 느껴질 때 <<내 인생의 화양연화>> 책이 찾아왔다. 책에 대한 정보가 없이 그저 예쁜 표지에 호기심이 일어 읽은 책인데, 저자가 마흔 무렵부터 자신의 마음에 주는 선물처럼 한 편씩 써내려 갔다는 이 글은 마흔을 앞둔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마흔이 되는 나는 앞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이가 아니라, 때로는 아이처럼 풋풋하게, 때로는 청춘처럼 뜨겁게, 때로는 어른처럼 우아해질 수 있는 나이인 것이다. 얼짱, 몸짱, 뇌짱은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맘짱은 될 수 있으며 예쁘기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나이가 비로소 되었음에 기뻐할 수 있도록 생각을 전환시켜 준 셈이다. 사실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들어왔던 익숙한 이야기임에도 나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주인공들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아마 마흔이라는 동질감에서 오는 위안과 호감이리라.

 

 

불혹의 나이 마흔에 더욱 흔들리는 당신에게, 마음 깊속한 곳에 순수를 품고도 그것을 찾지 못하는 당신에게, 그래서 슬픈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사랑하기를, 아름다워지기를, 꿈꾸기를.....이 모든 것을 절대 멈추지 말기를.

지금 이 순간이 당신 삶 중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본문 7p)

 

<<내 삶의 화양연화>>는 책, 그림, 노래, 그리고 자연 속에서 불혹의 나이를 보낸 그녀들이 어떻게 상황을 극복했고, 어떤 마음을 느꼈는가를 통해 저자가 사랑과 꿈을 커닝해 답을 구하여 전선이 얽히듯 복잡하고 어지러운 중년의 날들을 정돈한 책이다. 시몬느 드 보봐르의 소설 <위기의 여자>를 통해 저자는 절망 속에서 일어나는 법을 이야기한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인생의 르네상스 시대를 일으킬 수 없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한 내 인생에 대한 우울함에 저자는 기분을 추스르면 한없는 가능성이 열릴 수 있음을 통해 나를 다독인다. 에리카 종의 소설 <날기가 두렵다>에서도 말한다. 진짜 날개는 다른 사람이 달아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나 자신에게 달아 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타인의 보폭에 걸음을 맞추지 말기. 나에게 맞는 보폭으로 나에게 맞는 길을 걸어가기. 내 인생을 타인에게 묻지 말기. 내 안에 고수가 살고 있으니 나에게 맞는 목표를 정하기. 타인에게 내 꿈을 기대지 말기. 나 스스로 꿈을 세우고 그 꿈을 향해 가기. 뛰지 말고 날려고도 하지 말기. 그저 꿋꿋이, 당당하게 걸어가기 (본문 75p)

 

청춘일 때는 나이가 더 들면 가는 길이 분명히 보이리라 생각했으나, 인생의 센터, 전반전을 치르고 후반전에 돌입하는 하프타임 지점인 지금도 어디로 갈지 막막하고, 어디쯤이 종착역인지 아득하고, 보이지 않아 불안한데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자각으로 더 위태롭다. 하지만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의 예쁘고 착한 젊은 여자도 아니며, 아이가 셋이며 두 번 이혼한 아줌마인 주인공을 보라. 내가 쓰이는 곳이 어딘가에 있으며, 내게 의지하는 사람이 누군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며, 슬픔을 함께해 줄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럼 우리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던가.

 

고개 숙이지 말아요. 어깨 내릴 거 없어요.

당신에게 있는 장점을 최대한 극대화해서 불러오기를 하세요. 감성 9단, 낭만 9단, 낙관 9단, 청소 9단....잘하는 것을 모두 합하면 당신은 고단자, 인생의 고수 소리를 들어도 됩니다.

하늘을 보세요. 어깨를 펴세요. 그리고 당당하게 걸어가세요.

에린 브로코비치, 그 아줌마처럼 소리치면서.

"오~ 예!" (본문 43p)

 

이제 다시 내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오늘이라고 말하겠다. 산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며, 나이가 든다는 건 그것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했다. 희망을 품는 순간마다 인생이 깊어지고, 인생이 익어 가는 탓에 나이가 든다는 것은 와인처럼 향기로워지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늘 오늘이어야 한다. 어제보다 오늘 나는 조금씩 더 향기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불혹의 나이가 더는 서글프고 우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오~ 예!'라고 소리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고, 인생의 눈물과 비극을 처리하는 비법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만일 최후의 날에 단 한 사람과 시간을 보낸다면 그 시간이 얼마나 절실하고 소중할까요? 지금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내 생애 가장 멋진 날, 가장 황홀한 시간입니다. 오늘은 내 생의 절정이고, 새로운 '시작의 날'이며, '한창때'입니다. 오늘은 내 남은 생에서 가장 젊은 날,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꽃봉오리, '화양연화'입니다. (본문 232p)

 

(사진출처: '내 인생의 화양연화'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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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개정판
김정현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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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처음 읽은 것은 17여년 전이었다. 1996년 즈음에 출간되었던 작품이었으니 아마 그 때가 맞지 싶다. 나름 혼란스러웠던 십대를 보내고 이십 대에 들어선 지 얼마되지 않았던 그 때, 이 책은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무능하고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찾지 못했던 부성애를 느끼게 했고, 아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그 때 당시 작품에 대한 큰 호응에 힘입어 배우 박근형 주연으로 영화로 제작된 바 있었는데, 사실 영화는 소설에 비하면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흐른 탓에 이 작품에 대해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2012년 자음과모음에서 재출간된 사실을 얼마 전에 인터넷서점을 둘러보다가 알게 되었다. 문득 그 당시 내가 아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던 감정들이 솟구치면서 다시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른만큼 나의 아버지는 더 나이가 드셨고, 알츠하이머와 파킨슨 병을 앓게 되면서 자식들과 떨어져 홀로 요양병원에 계신다는 지금의 상황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더욱 간절하게 했는지 모른다. 친정 아버지는 딸인 나를 기억하지 못했고, 그렇게 예뻐하시던 손주도 기억하지 못했다. 뒤늦게 딸인 나를 알아보셨다는 사실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온 터라 이 책이 눈에 밟혀 다시 읽어보게 되었는데, 처음 읽어봤던 당시보다 더더욱 나를 슬프게 했으며 더더욱 나를 아프게 했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의 슬픔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묵직함이 나를 짖눌렀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내 아버지와 진배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힘겹게 했나보다.

 

이름 없는 지방대학 늦깍이 1년생의 인간승리적 행정고시 합격에도 불구하고 동문, 동향, 혈연 그리고 의도적으로 이어지는 인맥 어느 울타리에도 얽혀 들지 못했던, 야심에 날뛰고 그것을 위해 연을 찾아 쫓아다닐 성격 조차 되지 못했던 정수는 동기들에 뒤처지면서 승진에 누락되고 한직에 맴돌기만 했다. 누구보다 맑고 아름다웠던 아내 영신과의 행복했던 시절은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하게 되면서 어느 덧 각방을 쓰기에 이르렀고, 언제나 이른 출근, 늦은 귀가,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의 정수와 아이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멀어졌다. 대개의 동년배들이 겪는 증상인 소화불량, 식욕부진, 체중감소, 무기력, 위경련 같은 복부통증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정수는 친구인 남박(남박사)로부터 췌장암진단을 받고 앞으로 남은 인생이 5개월 뿐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정수는 죽음에 대한 미움, 분노, 거부의 욕망, 삶에 대한 체념, 아쉬움, 남은 시간에 대한 초조, 인생에 대한 허탈, 허무....등으로 머릿속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정수는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을 술에 의지하게 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가족은 술에 쩔어있는 정수의 모습에 경원해하는데, 딸 지원은 그런 아버지에게 실망과 분노늘 담은 편지를 보낸다. 점점 외로워져가는 정수는 일식접에서 만난 소령이라는 여인와 사랑하게 되면서 허전한 마음을 기대게 된다. 정수의 인생 어느 부분을 뒤져도 가슴속 가장 큰 자리에 그 아내와 자식을 비워 둔 적이 한 순간도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남박은 정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리게 되고, 가족은 뒤늦게 정수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을 깨닫게 된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남은 가족에 대한 걱정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정수는 끝내 가족을 위해 마지막 결단을 내리게 된다.

 

"자존심이라고? 내게 남은 자존심이 어디 있는데? 이미 자네에게 죽음을 사정할 때부터 난 다 무너진 거야. 사랑하지 않는다고? 아니야, 사랑해. 자넨 몰라, 더는 괴롭힐 수 없어. 그만 갈래. 그게 사랑하는 마지막 방법이야. 내가 남아 있어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데. 이제 아내 앞에서, 자식 앞에서, 그토록 사랑하는 지원이, 희원이 앞에서 이렇게 무릎 꿇고 애원할 일만 남았어...아내는 힘들게 밤을 지새며 쓰러지고, 자식 또한 편히 한 번 눕지 못하는데...나만 약에 취해 편안히 드러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뻔뻔함 또한 견딜 수 없네." (본문 301,302p)

 

표현에 서툰 우리네 아버지는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에, 가족 사이에서 늘 외톨이가 되어간다. 언젠가 읽어본 인터넷 기사에서 현 사회를 살아가는 40~50대의 아버지들은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혼자가 되어가고 있다고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무뚝뚝함 속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없이 깊고 넓게 자리잡고 있음에도 말이다. 자식을 위해 밤낮으로 수많은 경쟁자들 속에서 투쟁을 벌어야 했던 아버지, 그러나 편히 쉬고 싶은 가정에서도 그들은 홀로 외로움을 느껴야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의 아내, 그리고 자녀들에게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따져 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야말로 공허한 것이라 해도 그것은 외로움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그 자신에게만 미루지 못할 무엇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그들의 지나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비단 정수뿐만 아니라 남 박사 자신도 그러한지 모른다. 또 대부분의 남편, 아버지들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본문 140p)

 

<<아버지>>는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가족들 안위를 걱정한 한 중년의 남성과 그것을 알지 못했던 가족들의 화해와 사랑을 담아낸 지금 우리 시대의 아버지의 자화상을 담아냈다. 누군가로부터 정을 느끼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살아 있음을 느끼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 정수를 통한 심리 묘사를 통해 너무도 절절히 그려졌다. 아버지를 향한 딸의 경원과 분노에도 그것이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아버지들의 넓고도 깊은 마음이, 사람 냄새가 너무도 그리운 우리 아버지들의 마음이 정수를 통해 전해진다. 지금쯤 홀로 병원에서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있을 친정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여전히 내 가슴을 맴돌고 있다. 아버지를 향한 지원의 편지 속에 내 마음을 담은 듯한 글귀가 있어 옮겨본다. 그 마음이 홀로 계실 아버지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아빠, 얼마나 서운하셨어요, 얼마나 노여우셨어요.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셨어요? 얼마나 허무하셨어요?

아빠를 사랑해요.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아빠를 사랑해요. (본문 211,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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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골 떡 잔치
한미경 글, 문종훈 그림 / 은나팔(현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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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 하듯이 작은 아이 역시 떡집 앞으로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바람떡, 꿀떡, 무지개떡, 절편을 특히 좋아하기도 하지만, 곧 다가올 추석에 먹게 될 송편도 무척이나 좋아하지요. 예로부터 우리는 생일날, 제삿날, 사업의 번창 등에 떡을 준비하고 했습니다. 아이의 돌을 맞이하여 준비하는 돌떡은 아이의 무사함과 건강을 기원하고, 수험생을 위하여 준비하는 찹살떡에는 합격을 기원하고, 어른신의 생신 잔칫상에 오르는 떡은 부모의 수복강녕을 기원하며,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돌리는 떡은 사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지요. 떡보다는 빵에 더 익숙한 우리 아이들에게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떡을 찾았던 우리 조상들의 깊은 뜻을 알려주는 것은 우리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갖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에 <<호랑이골 떡 잔치>>는 떡을 소재로 한 옛날 이야기를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떡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호랑이 골 떡 잔치>>는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운율이 있는 내용으로 담아 마치 동시를 읽듯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요.

떡장수 할멈이 장날에 떡을 팔고 눈 덮인 고개를 넘어 집으로 가던 중에 난데없는 잇꽃이 피어있는 걸 보게 되었지요. 할머니는 소담한 꽃 꺽어다가 붉은 물을 우려내어 쫄깃쫄깃 맛난 떡에 잰득잰득 물들이면 보기 좋고 맛도 좋아 할아범도 잘 먹을 듯 싶어 꽃을 꺽기로 했어요. 헌데 꽃을 한참 꺽던 할머니는 졸음이 쫓아져 한숨 자고 일어났다가 호랑이 품인 걸 알고 깜짝 놀랐지 머에요.

 

 

할머니는 하나 남긴 떡을 주며 물러가라고 했지만, 호랑이는 호랑이골에 가서 떡 한 번만 해달라고 졸라댑니다. 이유인 즉, 호랑이의 어머니가 그믐날에 마을에 내려갔다가 할머니 차린 떡 잔칫상을 보고는 고운 떡이 아른거려 아무것도 드시지 못한다는 군요. 앓아누운 호랑이의 어머니가 가여워 마음 약한 할멈은 떡을 만들어주기로 하지요.

쌀을 불리고, 치자랑 잇꽃으로 색을 물에 우려내고,불린 쌀을 곱게 빻아 떡 반죽을 만들고 떡메로 곱디곱게 쳐서 떡자루로 밀어 어미 호랑이 꿈에 그리던 떡 잔칫상을 차려냈지요.

할머니는 떡 무늬마다 뜻하는 바를 이야기하며 어미 호랑이에게 덕담을 해주었고, 호랑이골 떡 잔치를 벌여주고는 복을 받게 되었답니다.

 

 

운율이 있어 아이들이 재미있게 책을 읽는데다, 코믹한 삽화가 보는 즐거움도 더하지요. 무엇보다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속에 숨겨놓은 떡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떡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나 떡의 무늬마다 뜻하는 내용들은 아이가 처음 접하는 내용이기도 했지요. 부록으로 수록된 떡의 유래나 계절별로 먹는 떡을 담은 떡타령 등의 알찬 내용도 좋았구요. 옛날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권선징악의 결론도 놓칠 수 없는 장점이지요.

 

<<호랑이골 떡 잔치>>는 우리 아이들에게 평소에 접하기 힘들었던 우리 전통 문화인 '떡'을 소재로 옛날 이야기라는 장르를 통해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한 구성이 정말 마음에 드는 그림책이었습니다.

 

 

떡 사오 떡 사오 떡 사려요

정월 대모름 달 떡이요

이월 한식 송병이요

삼월 삼짇 쑥떡이로다

사월 팔일 느티떡에

오월 단오 수리취떡

유월 유도에 밀전병이라

칠월 칠석에 수단이요

팔월 가위 오례 송편

구월 구일 국화떡이라

사월 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동짓날 새알심이

섣달에는 골무떡이라 (민요 '떡타령')

 

 

(사진출처: '호랑이골 떡 잔치'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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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찌는 못생겼어 내책꽂이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박경현 옮김, 양정아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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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찌는 못생겼어>>를 읽고 나니, 오래 전 TV 광고가 하나 생각납니다. 한 친구를 위해 다른 친구들이 모두 머리를 밀었던 훈훈한 내용의 OO파이 광고였지요. 아주 오래된 광고였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아픈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 함께 머리를 밀고 해맑게 웃던 아름다운 모습때문이지요. 그리고 여기 <<루찌는 못생겼어>>에도 그에 못지않은 너무 예쁜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화요일 마지막 수업 미술시간에는 모두 가을날의 숲을 마음껏 그리고 있었습니다. 헌데 루찌의 그림은 회색을 마구 칠해 놓아 언뜻 검은색으로 보이는 탓에 나무도, 풀도, 아무것도 없는 듯 했지요. 가을 숲이 아니라는 선생님에게 루찌는 평소의 루찌와는 너무도 다다르게 화난 목소리로 비가 와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흰 피부에 금발 머리인 루찌는 조용한 아이었고 치아 교정기를 낀 뒤로는 더욱 말수가 줄었어요. 교정기를 끼고 말을 하면 발음이 새는 탓에 아이들은 '루찌부비'라는 이름 대신에 '루찌부찌'라고 부르며 놀린 탓이지요. 그런 루찌가 이번에는 선생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없애 버리겠다며 그림을 갈기갈기 찢기까지 했으니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당황했답니다.

수업이 끝난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선생님의 말씀에도 루찌는 날쌔게 교실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루찌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이 제니는 신경이 쓰였어요.  어제 부모님 몰래 본 텔레비전 영화에서처럼 협박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도둑질을 했을지도 모르고, 부모님한테 맞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루찌와 이야기를 나눠 봐, 그러면 루찌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친구 사이에는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 (본문 28p)

 

 

제니는 엄마의 말씀처럼 오늘도 역시나 혼자인 루찌에게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단짝인 에이미와 함께 루찌에게 말을 걸었지만 루찌는 신경쓰지 말라며 소리칠 뿐이었지요. 제니는 루찌가 말할 수 없는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되고, 결국 다음날 루찌의 집을 찾아가게 되지요. 그리고 루찌의 고민을 알게 됩니다. 제니는 단지 바보 같은 파란색 테 안경 때문에 루찌가 고민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엄마로 인해 루찌의 고민을 이해하게 되었고 루찌와 안경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마침내 제니는 멋진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 제니네 반에는 제니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까지 파란색 테 안경을 끼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아파하지요. 교정기를 낀 탓에 놀림을 받던 루찌는 이번에는 안경까지 끼게 되었으니 친구들에게 더 많은 놀림을 받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루찌의 이 고민은 결국은 내성적이었던 루찌를 난폭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다행인 것은 달라진 루찌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와준 제니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외모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외모지상주의에 따른 사회적 풍조도 있겠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따돌림도 문제가 되고 있지요. 혹 친구의 외모를 가지고 놀린 적은 없나요? 그 놀림으로 친구는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우리는 나 자신도 모르게 친구들을 루찌처럼 만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키케로는 친구는 기쁨은 두 배로 늘리고 슬픔은 절반으로 줄인다고 했어요. 루찌처럼 말 못할 고민으로 아파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먼저 다가가보면 어떨까요?

친구와 함께하는 것, 좋은 친구가 되는 법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제니처럼 관심을 가져주면 되는 것이지요.

 

<<루찌는 못생겼어>>는 루찌에게 관심을 갖고, 그 마음을 이해해가는 제니가 참 예쁘게 그려진 동화책이죠. 이 책은 분명 아이들 마음 속에 따듯함을 선물해 줄 것입니다.

 

(사진출처: '루찌는 못생겼어'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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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학교 푸른숲 어린이 문학 31
크리스티 조던 펜턴 외 지음, 김경희 옮김, 리즈 아미니 홈즈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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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알래스카 주, 그린란드, 캐나다 북부와 시베리아 극동에 퍼져 사는 이누이트는 북극에 사는 원주민을 말하는데, 15세기 무렵, 유럽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자원이 풍부한 미지의 땅을 찾아 탐험을 떠났다가 지금의 캐나다 땅에 하나둘 정착하기 시작했다. 자원이 풍부한 캐나다 땅을 지배하기 위해 외지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고, 이에 집과 상점을 열 자리가 필요해짐에 따라 원주민들을 쫓아내려 했으나 조상 때부터 살아온 땅을 어떤 좋은 물건으로도 바꾸려하지 않자, 외지 사람들은 원주민들의 전통 문화를 없애 버리고 자기네 문화로 흡수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원주민 어린이들에게 '서양식' 교육을 시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원주민 기숙 학교다.

 

IBBY 어너리스트 수장작 <<나쁜 학교>>는 캐나라 북부에 있는 뱅크스 섬에서 사는 주인공 올레마운이 어클라빅의 학교에 들어가면서 겪은 일을 통해 원주민 기숙 학교의 문제점을 되짚는다. 올레마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일제시대에 조선어 교육 폐지, 일본어 사용, 창씨 개명 등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잠재우려했던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여전히 기숙 학교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원주민 기숙 학교 출신 이누이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지만, 우리의 민족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올레마운이 태어나기도 전에, 외지 사람들에게 이끌려 학교에 간 배다른 언니 아유니크가 사년 동안 학교생활을 한 후 뱅크스 섬으로 돌아왔을 때, 언니의 이름은 '로지'로 바뀌어 있었고 만날 책을 끼고 살면서도 학교 이야기를 좀체 입에 담으려 하지 않았다. 올레마운은 로지 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매번 정신을 쏙 빼놓곤 했는데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수많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곤 했다.

 

"그런데 앨리스는 왜 토기를 따라 굴에 들어간거야? 사냥을 하려는 거야?"

"아니, 앨리스는 호기심 때문에 따라간 거야."

'굴속은 무척 길고 캄캄할 텐데.....앨리스는 무척 용간한 아이인가 봐.' (본문 10p)

 

지난 사 년 동안 여름마다 외지 사람들이 찾아와서 올레마운을 데려가려 했지만, 아빠는 매번 안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글을 배우고 싶어하는 올레마운의 고집에 아빠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이 돌멩이 보이니? 이 돌멩이도 한때는 끝이 날카롭고 뾰족한 돌덩이였단다. 하지만 바닷물이 철썩철썩 때리고 또 때려서 모진 부분을 다 없애 버렸지. 이제는 그저 조그만 돌멩이에 지나지 않아. 이게 바로 외지 사람들이 학교에서 너에게 하려는 일이란다."

"하지만 아빠, 바닷물이 돌멩이 자체를 바꾼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전 돌멩이가 아니라 사람이에요.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요. 전 바닷가에 영원토록 처박혀 있지 않을 거예요." (본문 19p)

 

 

글을 배우고 싶었던 올레마운이 매부리코 수녀를 따라 학교에 들어서면서 한 일은 머리채를 뭉텅뭉텅 잘린 일이었고, 끔찍한 교복을 입고, '마거릿'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영어로만 말을 해야하는 것이었다. 먼지 떨 때 외에는 책을 한 번도 제대로 만져 보지 못한 채 지나간 첫 날과 마찬가지로 올레마운은 얼음이 어는 가을까지 화장실의 구린내나는 양동이를 처리하는 법과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해야했다. 매부리코의 까마귀 수녀는 아는 게 많다고 뻐겨 대면서도, 글을 가르치는 일보다 허드렛일을 시키는 데 더 신경을 썼다. 까마귀 수녀가 제아무리 못살게 굴어도 어느 누구보다 읽기와 쓰기와 셈을 부지런히 연습한 올레마운은 여름이 오면 어클라빅을 떠나서 다시는 학교에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쉬는 시간에도 책을 읽곤 했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푸른 북극광에 기대어 책을 읽어 보려 애썼다. 책을 읽을 때만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밤중에도 책장을 밝혀 줄 찬란한 태양이 어서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본문 65p)

 

 

올레마운은 까마귀 수녀가 자기 마음대로 교육시킬 수 없도록 했으며, 맥퀼런 수녀님은 그런 올레마운에게 힘을 주곤 했다. 토끼처럼 호기심을 따라 아주 멀리까지 갔다가 꼬박 두 해를 보내고서 집으로 돌아온 올레마운은 외지 문화에 익숙해져버렸지만, 자신은 여전히 이누이트임을 알고 있기에 예전의 올레마운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들어간 앨리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것만으로 올레마운은 만족스러웠다.

 

원주민 기숙 학교에서 고되게 일을 했던 아이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간 후에 외지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부모님이 가르쳐 준 말도, 생활하는 방식도 깡그리 잊어버렸던 탓에 그야말로 미운 오리 새끼가 되었다고 한다. 결국 학교에서 학대받을 때만큼이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아이들은 먼나먼 도시로 일거리를 찾아 떠나기도 했단다. 이제 그들은 아픈 기억을 벗어던지고, 자신이 이누이트라는 사실에 대해 자신감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이누이트 언어를 다시 배우기도 하고 다양한 문화 활동을 벌이기도 하고 있는데, 이 책도 그런 문화 나눔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나쁜 학교>>에서는 이 년 동안의 기숙 학교 생활로 이누이트로서의 모습을 잃어가는 올레마운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후 <두 개의 이름>에서는 올레마운이 이누이트 사회로 돌아와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고군부투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고 한다. 바닷물이 돌멩이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는 올레마운의 마음은 이누이트인으로서의 자신감을 되찾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저자 마거릿 포키악 펜턴이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작품은 자아정체성과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부당한 일에 기꺼이 맞섰던 올레마운의 용기는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부당한 일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누이트의 아픈 상처를 기억해주고 관심을 가져준다면 그들에게는 용기와 자신감이라는 더 큰 선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올레마운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들려줄 차례가 아닐런지.

 

(사진출처: '나쁜 학교'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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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페파 2013-11-18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보고갑니다!

봄덕 2013-11-30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