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오만명을 제법 단기간 1)에 확보한 孫형이 서울로 돌아온 건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그제 새벽 4시께였다. 그는 고향 춘천에서 달포 이상 머물다가 충동적으로 서울행을 결행했다. 그가 내게 보내온 짧은 카톡의 내용 2)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은 모양이었다. 그 마음은 서울에서 춘천으로 향할 때부터 이미 깃들어 있었을 것이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나는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지 않고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지 않는 타입의 인간일 따름이다.

 나보다 여섯 살이 많은 손형은 다 자란 천애고아와도 같지만 당신 옆에는 나도 있고, 어느 사립대학에서 국문과 학생들을 상대로 전공필수 과목인 한국현대문학사를 삼십여 년 가르치다 은퇴한 뒤로는 평일에는 인근의 구립도서관의 디지털자료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지음이 운영하는 기원에서 소일하며 살아가던 중 코로나 19 때문에 기약 없는 폐쇄 결정이 내려진 뒤로는 전에 없이 시름시름한 표정과 몸짓이 몸에 익어버린 듯 여겨지면서도 그와 대비되게 다독, 다상량, 다작만큼은 여느 때와 같이 열정적으로 해 내면서 평일을 건뎌 내는 한편 역시 주말에는 기원에서 다를 바 없이 소일하며 살아가는 권선생님도 있다는 걸 조금은 알아 주었으면 하고 나는 바란다. 더불어 그걸 당신이 알든 모르든 그건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는 점을 부기한다.


 ...... 앗, 제물포에서 깡패를 하다가 입대했다고 알려진 선임 이야기를 허두로 떼다가 슬그머니 군대에서 즐겁게 축구한 이야기를,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대장들끼리의 자존심 싸움으로 말미암아 뜬금없는 목요일 오후에 목숨을 내놓았다는 심정으로 상대 중대와 축구시합을 한 이야기를 쓰려고 들어왔는데 아예 엉뚱한 길로 빠졌구먼?


 할 수 없지 뭐. 점심에는 뜨끈뜨끈한 국물이 있는 음식 3)을 먹어야겠다. 몸이 으슬으슬한 기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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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략 40여일 만에 4만명이 늘었다.

    자작곡을 만들어 공개를 했는데 이후

    하루에 1~2000명씩 구독자 수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전신 문신을 한- 두피와 목을 포함해야 한다- 사납게 보이는, 사실은 미남이지만,

    남성이

    시내를 돌아다니며 혹은 둘레길을 걸으며 또는 인공조림된 작은

 숲에 들앉은 채

    시청자들과 입에 쉽게 담기 약간 어려운 욕설을 서로 뱉으며

    척 봐도 시시한 내용으로 오랜 시간 심각하게 언쟁하는 유투버가

   알고 봤더니 랩을 몹시 잘하는,

    음감이 뛰어난 무명가수라는 사실에

   급격한 호감을 느끼는 시청자가 많았다고 나는 분석해 보는 바다.

    평소 칭찬에 인색한 만큼, 나름 모뉴멘탈한 기록이네요, 짧게 평가해 주었던

    기억이 어령칙하게 난다. 지금 생각해도 칭찬을 아낀 건 잘한 일 같다.

    감정 기복이 큰 인간에게는 칭찬을 아껴야 맞다. 내가 그건 아주 잘 안다. 


 2) 요약하자면, 춘천이 서울이고 서울이 춘천이라는 얘기였다. 

    '그곳이 어디든', '지금 여기'라는 얘기 같아서 고개가 절로 주억거려졌다.


 3) 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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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20-09-17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저도 될래요.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지 않고,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지 않는 타입의 인간.‘

2. 한수철 님은 제가 아는 한 만연체 문장을 가장 재미있게 구사하는 사람이에요.

3. 강릉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세 개 있습니다. 장칼국수(칼국수 국물에 고추장 푼 거), 짬뽕, 육개장.
셋의 공통점은 얼큰한 빨간 국물이라는 거죠.
제가 관찰한 바로 강릉 사람들은 뽀얀 초당순두부 별로 안 좋아합니다. 빨간 걸 좋아하죠.
국물이 아닌 음식도 일단 빨개면 강릉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초당불향주꾸미, 막국수처럼요.

한수철 2020-09-18 10:42   좋아요 0 | URL
1. 응원합니다. ;)

2. 오랜만에 받아보는 칭찬이네요. 하긴 받으려면 얼마든지 받고 살겠지만 귀찮아서 말예요....라고 썼다가 지웠다가 그냥 도로 씁니다. ....괜찮으시죠?ㅎㅎ^^

3. 오, 줄줄정보통!!!

그렇다면 저는 강릉 가서 살면 바로 정착할 수 있겠구먼요. 전 아무래도 술 때문인지, 국물이 빨개야 먹은 것 같고 그렇습니다.^^

페크(pek0501) 2020-09-17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현대문학사를 삼십여 년 가르치다 은퇴한 듯한 교수님 얘기에 저, 빵 터졌어요.
그냥 그 교수님의 등장에 웃깁니다. 그분에 관한 얘기를 여러 번 읽어서 그런지.
그 교수님의 얘기를 또 해 주십시오. ㅋ

한수철 2020-09-18 10:46   좋아요 1 | URL
아이고야, 사실 몇 년째 변죽만 울리고 있습니다.ㅎㅎ

음 서재에 완전히 정착하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완성 지향의 글 쓰기를 시도해 볼 것 같기도 해요. ;)

그 경우, 글에서 꼭 필요한 분이시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