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71 | 7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는 누구인가 - 현대인과 기독교의 만남을 위하여
손봉호 지음 / 샘터사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인들에게 기독교가 왜 필요한가를 알기 쉽게 역설한 수상집"


부제가 말하고 있듯이 이 책은 "현대인과 기독교의 만남을 위한 책"이다. 최근에 쓴 책인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1987년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에 쓴 책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자의 확대된 관점을 토대로 내용의 일부를 수정하여 올해 다시 수정하여 개정판을 낸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에 있어서, 70년대와 80년대는 부흥기이자 확장되었던 시기였고, 최근 기독교는 점차 신도 수와 교회 수가 줄어드는 때로 바뀐 것을 보면 《나는 누구인가》는 더 필요성이 높을 때 등장한 책이다. "왜 기독교가 필요한가?"를 두고 기독교 신자나, 비기독교 신자나 의문을 가진 적은 있으나, 그 의문에 대하여 스스로 명쾌한 답을 내리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는 누구인가》는 기독교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을 열어주는 책이 될 수 있다.


저자는 단번에 "기독교가 필요하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서두에 강력하게 말하며 독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우리 삶에 특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다시 4가지 질문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나님은 과연 계시는가", "현대인에게도 성경이 필요한가", "현대인에게도 예수가 필요한가", "현대인에게도 교회가 필요한가". 이 4가지 질문은 기독교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대인에게 기독교를 믿음으로, 신앙으로 가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신학자와 철학자의 생각과 목회 생활을 하며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쉽게 풀어서 설명한다. "현대인이 하나님을 믿기 어려워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중요시하기 때문이요, 가슴에 심어진 하나님에 대한 느낌이 온갖 외적인 관심들에 의하여 억눌려지거나 여러 가지 매혹적인 이론들에 의하여 설명되어버리기 때문일 것"이라는 말은,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이유로 신앙을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그의 조언이다. "인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존재론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성숙한 모습일 것"이며, 우리에게 예수가 필요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가르침과 행위를 통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의미를 확인하고,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가장 예민한 교회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 저자는 현대 한국 교회의 부패에 대하여도 비판을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사랑의 훈련장은커녕 오히려 미움과 시기의 운동장이 되고 있음은 매우 슬픈 일이라고 말한다. 신앙의 공동체로 교회가 필요한 이유가 책에서 말하는 주제의 핵심이기 때문에 현대 한국 교회의 한계와 그 나아가야 할 바는 작지만 교회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교회화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현대인에게도 교회가 필요한가"장에 잘 나타나 있다.


"중요한 것은 감히 이런 질문을 해보는 것이며, 성경의 가르침에서 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이다."


4가지 질문에 대한 저자의 논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기본적인 질문을 한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그렇기에 질문 통해 자신의 위치와 삶의 자리를 되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질문을 하지 않으면 답을 얻을 수 없으며, 자신이 진정으로 질문을 하지 않으면 그 질문의 답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간다움이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는 것이고, 자신의 현재 상태와 자신이 하는 일을 스스로 의식하는 것에 있다면, 삶의 가장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다른 중요한 질문도 많지만, 개인의 삶에 있어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질문의 중심에 놓은 건 "사랑"이다. 그렇기에 사랑에 대하여 저자는 정성을 쏟아 설명하고, 특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아가페 사랑'과 아가페 사랑이 인간의 삶과 얼마나 잘 조응하는지를 강조한다.


"우리는 단 하나이며 한 번밖에 없을 우리의 삶을 가장 값있고 뜻있게 보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무도 자신을 무시할 권리가 없고 무의미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마지막 순간 일생을 되돌아보았을 때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정말 가치 있었던 삶이었다고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눈으로 보셨을 때 착하고 충성된 삶이었어야 한다. 사랑의 삶만이 살 가치가 있다."



저자의 의견에 대하여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저자의 글을 읽으며 모든 부문을 수용적 자세로 읽었던 것은 아니다. 내 의견과 생각 그리고 고민이 존중받는 것처럼 《나는 누구인가》의 생각 역시 동일하게 존중하며 글을 읽었다. 기독교에 대하여 저자와 다른 입장이라도 자신의 마음의 시야를 넓혀 읽는다면 《나는 누구인가》에서도 충분히 내 마음을 빛나게 해줄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Just Sit 일단 앉으면
수키 노보그라츠.엘리자베스 노보그라츠 지음, 김훈 옮김 / 김영사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명상도 역시 하나의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몸보다 마음의 병이 전 세계를 강타하는 요즘, 사람들은 마음을 챙기기 위해 '명상'에 관심을 가진다. 명상을 떠올리면 고요한 산 혹은 방에서 허리를 펴고 가부좌로 앉아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내가 될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무려 5천 년, 혹은 그 이상 된 명상이 정말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좋아 보이지만 좀처럼 내가 해가 한번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부터 명상을 조금씩 내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바로 《 Just Sit 일단 앉아봐》다. "천만 명의 미국인은 명상을 하고 있고, 그중 6백만 명은 의사의 권유에 따라서 명상을 하고 있다"라고 한다. 명상을 떠올리면, 인도의 요가나 불교의 수도승을 떠올려 동양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진한 데도 이들이 명상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명상이 의사들은 건강을 유지하고 장수하기에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아도 명상을 하도록 설득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오랜 시간 명상을 직접 실천하고, 전 세계 다양한 곳에서 명상을 경험하고 이에 대해 공부한 결과를 토대로 명상에 대한 유쾌한 수업이자, 수다를 풀어놓은 책을 썼다.






명상이 그토록 대단한 것이라면 어째서 모든 사람이 다 그걸 하지 않는 거지?
... (중략) ...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저 딱 한 가지만 하면 됐어요.
앉기, 탐구하고, 여행하고, 더 자주 앉는 것.


총 8 chapter로 나뉘어 있다. "시작은 쉽게: 앉는데 도움이 되는 지침, 어째서 명상을 하지 않는가?, 무슨 일이 있어도, 앉아, 명상: 나에게 맞는 방식 찾기, 명상을 위한 몸만들기, 마음공부: 당신 마음의 주인은 누구인가?, 명상과 나: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마음 챙김 훈련: 당신의 삶 속에 존재하라"로 나뉘어 있다. 2분 동안 짧은 명상을 시작해, 20분이라는 자기발견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돕기까지. 차근차근 명상 속으로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한마디로 명상을 시작할까 말까 망설이거나, 명상을 막 시작한 초보자들을 위한 책이다. 명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명상의 장점, 명상에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좋은 방법에 이르기까지. '한 권으로 배울 수 있는 명상에 대한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첫 번째 방법이자, 가장 좋은 명상 기법은 "당장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들어 마시고 내뱉는 호흡을 천천히 헤아리며 하는 '호흡 세기' 기법을 할 것을 권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앉아서 호흡을 세는 것만으로도 "이리저리 마음이 헤맬 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삶을 과감히 바꾸고 싶다면,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저자가 가장 반복해서 말하는 건, "시작하라."라는 것입니다. "명상에 관한 가장 큰 비밀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오로지 직접 실천하는 것뿐이라는 점입니다. 굳이 빼어나게 잘해야 할 필요가 없어요.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알 필요조차도 없어요. 그저 매일매일 실천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절로 알아서 이루어질 거예요." 명상은 신체 활동으로 할 수 없는, 내 생각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즉시 하는 것이다. "명상은 등대처럼 두려움을 환히 비춰준다." 명상을 함으로써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달라지는 건 시작해야 일어난다. 저자는 초반부에 반복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앉아"있을 것을 권한다. 매일 50㎞씩 걸었던 간디도 매일 두 시간이나 명상을 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바쁘다는 핑계가 쏙 들어갔다. 명상보다 더 나에게 유익한 활동이 많아 보인다. 중요한 것은 명상만큼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적인 신념에 반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며 내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깨달을 수 있으며,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명상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 안타깝게 명상 말고 생각과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듯싶다. 그리고 명상만큼 스스로에게 지적 통찰을 주는 활동도 없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전 세계적으로 지적 통찰력을 발휘한 저작 『사피엔스』,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명상을 즐겨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홍콩의 무술인이자 배우, 영화제작자, 철학자, 시인, 절권도의 창시자인 이소룡 역시 매일 수없이 명상을 하고 팔굽혀펴기를 했다고 한다. 몸을 단련하는 것만큼 마음을 단련하는 것이  지적 활동이나 신체 활동에 큰 도움이 되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There is nothing you cannot do"


명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얻을 수 있는 것은 개개인마다 다르고, 이에 대한 감도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신 개개인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이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얻을 수 있는지 그 방법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한 것에 놀랄 것이다. 명상할 때 앉기 좋은 방석이 무엇인지, 수정이나 타로카드, 에센셜 오일이나 플라워 에센스같이 명상할 기분이 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소품들을 추천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명상 제단을 꾸미는 것이었다. 명상에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정말 다양했다. 또 명상 자세, 명상할 때 얼굴, 손동작, 명상 자세 스트레칭하는 법도 빼놓지 않는다. 고요히 앉을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이 다양한 방법 중에 자신에게 딱 맞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참고로 명상은 가만히 앉는 것만이 아니라, 살짝 움직임을 추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명상 법과 다른 방법에 놀라기도 하고, 어떤 걸 해볼지 생각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명상을 실천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 속에 현존하고 싶어 한다면 꼭 마음을 챙겨야 합니다.


결국 명상은, 마음 챙김과 닿아 있다. "우리 모두 주의 깊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마음 챙기는 걸 자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집중하고 있지만 마음은 이리저리 산만하게 방황하기도 하고, 다른 생각으로 옮겨가게 만든다. 명상은 그 움직임을 알아차리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알아차리는데 명상만큼 큰 도움이 되는 건 없지 않을까. 명상만큼 주의 깊게 살아가는 방법은 없으며, 지금의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도 없을 것이다. 내 마음을 확인하는 걸 있는 걸 기억하도록 만드는 명상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저자는 말한다.
"명상은 당신이 더 주의 깊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켜줄 것이고, 마음 챙김은 당신을 더 나은 명상가로 만들어줄 겁니다."
명상은 우리를 우리로 존재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저자의 말처럼, 2분 타이머를 맞추고 명상을 하려고 시도했으나. 쉽지 않았다. 역시 명상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을 할까 했지만. 조금 더 시도해보려 한다. 내 마음이 몹시 불안할 때 눈을 감고 숫자를 세며 내 마음을 지그시 들여다보면 더 '나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명료하게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때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일단, 앉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기분 좋은 가을의 기온이 피부를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가을 방학 같은 소설! 『남은 날은 전부 휴가』를 읽고 든 생각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유일하게 방학이 없는 계절. 바로 가을이다. 하지만 가을만큼 방학과 쉼이 필요한 계절도 없다. 더위에서 추위로 변하는 계절이라 더더욱 쉼이 고픈 계절이다. 게다가 단풍 구경도 가야 하니. 정말 가을은 쉼이 필요하다. 물론 기분 좋은 추석 연휴가 있지만. 휴식이란 길면 길수록 좋으니까. 그리고 방학은 더 이상 없는 어른들에게 휴가가 더더욱 필요하다. 원하는 가을방학이나, 가을 휴가는 없지만 대신 읽은 소설 『남은 날은 전부 휴가』는 유쾌하고 즐겁고 또 감동을 안겨주며 쉼을 주었다.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미 익은 이름 '이사카 코타로'. 저자는 사회 문제를 글 속에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녹아내는 솜씨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스타일은 『남은 날은 전부 휴가』에서도 여전하다. 오히려 더 가벼워진 느낌이랄까. 가족해체, 스토커, 아동학대, 협박, 복수 등 잔인하고 무서울 수 있는 소재를 어떻게 이렇게 풀어낼 생각을 했을까 싶어 놀랐다. 

"뭐랄까, 자네는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헷갈리는걸"

『남은 날은 전부 휴가』는  평균적인, 어쩌면 평균적인 삶조차 벅찬 사람들의 인생의 전환점을 만드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전환점을 만들어주는 사람은 자신 역시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한 남자다. 제대로 된 직업도 없고, 그렇다고 거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사는 걸까 싶지만, 그는 꽤나 멋진 인생을 살아간다. 물론 그가 인생의 매 순간을 멋지게 사는 건 아니다. 때때로 이따금 멋지게 살아간다. 그런데, 그 어쩌다 한 번이 한 사람의 인생을, 한 가정을 바꾸어 놓는다. 그 순간마다 그는 정교하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파고들고 적절한 때에 다시 나온다. 마냥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도 아니고, 무심하게 다가선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그는, 역시 나쁜 듯 보이지만 좋은 사람이란 결론을 내리게 된다. 

소설은 5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다섯 편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미조쿠지와 오카다의 삶이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두 사람의 인생은 이사카 고타로의 장기인 '퍼즐식 구성과 복선'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고,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뒤에 이야기를 짜잔 하고 멋지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뭉클한 감동을 준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할지도 모르지만, "어른들의 성가신 오지랖"이 기억에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력은 최악이지만 그 인간이 최악인 건 아니니까."라는 말을 하며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이에게 섣부르게 아버지를 욕하거나 도망치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인 오카다 역시 아동학대를 버텨야 했던 과거가 있었다. 그는 말한다. 
"안심해, 나도 폭력을 휘두를 생각은 없으니까. 애초에 그런 인간은 맞아봐야 화만 낼 뿐이야. 미조구치 씨도 말했지만. 그보다는 심리적으로 '학대했다가는 큰일 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지. 그거 알아? 그런 부모는 자신이 완벽한 줄 착각하고 있어. 자신이 가장 옳다고 말이야." 그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꽤 선명해서 놀랐고, 그 뒤에 내놓은 해결안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다. (소설로 확인해보길 권한다.) 폭력을 가하는 아빠에서 폭력을 휘두르면 어떤 결과가 올지를 아는 아빠로 바꾸는 방법이었다. 마치 일본 드라마 <장미가 없는 꽃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마스크를 쓰고 가정 폭력을 당하는 아이를 구해내는 그런 장면 말이다. 물론, 아이는 누가 자신의 아버지를 바꾸었는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인생에 적당히 들어갔다, 눈치채지 못하게 빠져나오는 솜씨가 참 좋았다. 

"다 그런 거야." 어머니는 말했지만 그 '다 그런 거'가 나는 무서웠다. 
그래서 종종, 그 영화를 떠올렸다.
연인을 잃은 주인공이 마지막에 내뱉은 대사다.
"슬픔을 잊어야만 했지. 나에게는 아직 남은 시간이 있었어."
그 말 그대로 나는 아직 열 살이었다. 슬픔은 잊어야만 했다. 
남은 시간이 아주 많았으니까. 


착한 사기꾼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어쩌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닮아 있다. 도둑 세 명이 나미야 잡화점에서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는 편지를 쓰듯. 누군가의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줬던 미조쿠지와 오카다는 자신도 모르게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책의 카피처럼 "하찮은 인생에도 괜찮은 순간"이 찾아온다는 그 마법을 믿게 만드는 힘이 두 사람에게 있다. 무언가 대단한 위치에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건 아니다. 나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내가 이해하고 있는 삶의 깊이로 누군가의 인생에 전환점을 만들어줄 수 있다. 그 깊이가 깊지도 얕지도 않아서. 그래서 두 사람의 엉뚱한 나날들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잃어서 잊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안겨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앞으로 가, 제멋대로."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수 있음을. 
무엇을 해도, 인생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의 순간에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기억하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1~2 세트 - 전2권
케빈 콴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덧붙여 영화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전권)은 책 소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신데렐라 스토리에 막장이 적당히 섞인 것 외에 들여다볼게 많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싱가포르의 베일에 가려진 0.01% 부자의 삶을 다룬 작품답게, 무대는 싱가포르지만 영국, 호주, 미국, 말레이시아, 중국을 오가는 스케일과 각종 명품 브랜드와 산해진미는 글로 쓰인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적절히 녹아든 그들만의 은어(진짜 그들만의 은어인지는 알 수 없지만.)와 사람들에게 어떻게 과시하는 지 소설은 사건 외에도 읽는 이로 하여금 달라지는 장면을 계속해서 상상하는 즐거움이 크다. 그래서 읽다 보면, 괜히 영화로 이 모든 걸 어떻게 구현했을지도 궁금해진다.


「이쪽은 상황이 달라. 아무리 우리 문화가 발전했다 해도 여전히 여자들은 결혼에 대한 압박을 엄청나게 받지. 이곳에서는 여자가 전문적으로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기 전까지는 완벽하지 않은 거야. 왜 아라민타가 그렇게 결혼하려고 안달이었을 것 같아?」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2, 21쪽


성별에 따라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나누어 공부시키고, 일을 하고, 정략결혼으로 막을 내리는 삶이 상식이라고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레이철은 한 부모 가정에서 자라, 공부만 잘한 사람일 뿐이었지만, 이에 자존감이 약해지지 않는 레이철의 모습은 멋있었다. 확실히 레이철은 싱가포르 상위 0.01%에서 마주한 여느 여자들과 비교해 여러모로 굉장히 달랐다. 그리고 이렇게 남다른 레이철은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만났듯이, 싱가포르 최상위권 집안의 니컬러스 영과 사랑에 빠진다. 다아시는 고모 외에 특별히 엘리자베스와 사랑을 방해하는 가족들이 없었지만, 니컬러스 영은 달랐다. 전 세계에 레이철과 닉의 사랑을 막기 위해 안달인 가족과 싱가포르에 닉의 신부가 되고 싶은 여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모든 걸 모르게 레이철이 닉의 가족들이 있는 그의 고향 싱가포르에 간다는 데 있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예요, 엄마. 이제야 드는 생각인데 닉은 저에 대해, 그리고 우리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요. 근데 저는 그의 가족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네요.」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1, 110쪽


그저 닉이 열심히 공부하고 매력적인 뉴욕대 역사학 교수라고 생각한  레이철은 그가 자신과 비슷한 심하면 조금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라는 가정은 했지만, "신보다 부자"라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크레이지 리치일 거라는 가정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 특히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자신을 극도로 싫어하며, 떼어놓기 위해 정말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건 레이철뿐만 아니라 닉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후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모두가 상상하는 대로다. 닉과 레이철 사이를 훼방 놓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내용의 연속이다. 한마디로 막장 드라마의 파격적인 전개가 장마다 펼쳐진다. 호텔에 죽은 생선을 가져다 놓거나 말로 사람을 비꼬거나 레이철이 알 수 없는 닉의 과거를 말하며 속을 긁는 등. 닉이 있을 때와 닉이 없을 때 행동을 순식간에 바꿔간다.


닉의 가족들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엄청난 사람들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왜 그는 이 상황이 닥치기 전에 그녀에게 마음의 준비를 조금 더 시켜 주지 않았을까?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1, 277쪽


파격적인 전개에 한 축을 담당하고, 푹 빠져들 수 있게 만드는 건 결혼을 생각하는 단계인 레이철과 닉의 이야기와 동시에 진행되는, 5년 차 부부 아스트리스 렁과 마이클 테오의 이야기다. 영 가문에서 손에 꼽히고, 전 세계가 주목했던 만인의 연인이었던 아스트리스 렁은 군인 출신의 IT 업계에 종사하는 마이클 테오와 결혼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마이클 테오가 레이철과 같은 입장이었고 닉과 같은 아스트리스와 결혼한 후 어떤 결혼 생활을 했고, 현황을 보여준다. 마치 닉과 레이철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일을. 큰 생각 없이 초상류 사회에 들어갔다가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한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이클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안쓰러운 건 아스트리스였다.


레이철만큼이나 아스트리스 역시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레이철과 또 다르게, 강인한 성격과 미에 대한 탁월한 감각 그리고 자기 신념이 분명한 아스트리스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를 배려하며 어떻게 관계가 틀어질 수 있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이는 닉 또한 마찬가지였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이해한 닉은 레이철이 어떤 일들(막장 드라마에서 봤을 법한 일)을 겪었는지 알고, 이별을 말하는 레이철을 차마 붙잡지 못한다. 흥미로운 건, 이 일이 싱가포르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 전후로 벌어진다는 점이다. 결혼식이 화려해지면 화려해질수록 두 커플의 관계는 더 깊게 멀리 벌어진다. 


「저는 오늘 밤에 보석 장신구를 단 하나도 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텅가 사람으로 태어났어요.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제 자신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전혀 없답니다.」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2, 191쪽


마치 실제로 채울 수 없는 재력의 차이만큼이나, 관계가 어긋나 벌어지기만 한두 커플의 이야기가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의 줄거리다. 이미 굉장한 부를 가지고 있지만, 더 큰 부와 명예를 가진 또 다른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사람이나, 자신과 모든 사라 사이를 구별 짓는 사람들의 태도는 흥미롭다. 레이철의 표현처럼, 「나도 이 사람들이 누군지는 전혀 모르겠어.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해. 이 사람들은 신보다도 부자야.」. 신보다도 부자인 이들의 행동은 그리 고상하지 않다. 싱가포르 초상류 사회가 배경이기에 검색하지 않으면 가늠조차 되지 않는 화려한 일상생활과 함께 자신의 우월감을 저마다 방식으로 나타내는 모습은 꽤 인간적이다. 말도 안 되게 화려한 파티를 즐기며 흥청망청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는 렁가, 영가 사람들의 태도는 부자들 사이의 또 다른 위계질서를 세운다. 돈은 기본이고 명예, 가문을 내세워 구별짓고, 자신들보다 가난하고, (그들이 생각하기에) 한미한 가문의 사람들을 철저히 무시한다. 하지만 반대로 자식 세대에서 데리고 온 이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한방 먹기도 한다. 키티 퐁의 파격적인 행보에 놀라는 그들과 달리 깔깔 웃었다.


「내게는 의미가 있어. 닉, 나는 이 문제를 끝없이 고민해봤어. 처음에는 내 과거에 대해 알게 돼서 충격을 많이 받았지. 우리 어머니의 거짓말에, 내 이름도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에 상심이 컸어. 내 정체성 자체를 빼앗긴 기분이었어. 그러다 곧 깨달았지 …… 그런 것은 다 중요치 않다고. 이름이 대체 뭐라고? 우리 중국인들이나 집안 성씨에 집착이 심하지. 나는 나만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내가 일군 나라는 사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2, 327쪽


엘리자베스와 묘하게 닮은 레이철이 멋진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놓치지 않는 데 있다. 그녀는 냉정하고 이성적이게 상황을 즉시 하고, 자신의 삶에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녀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두 사람이 얼마나 통했는지 차근차근 나오지만, 싱가포르에서 보낸 일련의 사건 끝에 그녀는 닉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고는 당황하며 깨달았다. 실비아의 말이 맞았다. 방금 전까지 그녀와 함께 여섯 시간 내내 심도 있게 대화한 이 남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 중 하나의 가사를 전부 아는 이 남자, 그녀의 옆에 서 있는 이 남자를 보니 처음으로 진짜 자신의 남편감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난생처음으로 남편감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 남자라도 말이다.


게다가, 때때로 자신의 올바르지 않은 판단을 하면 이를 인정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한 사람의 의견을 적극 수용한다. 또 크레이지 리치들 사이에서 좀처럼 나누기 힘든 진심이 담긴 '제대로 된 대화'를 끌어낼 줄 안다.  「한 부모 가정에서 크면…… 특히나 모두들 그림처럼 완벽한 가족의 모습을 제시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곳에서 크면 정말 주변과 이질감을 느끼게 되지. 나는 언제나 어머니를 너무 일찍 여읜 여자애였어. 하지만 있지, 그것도 그 나름의 이점이 있어. 그 덕에 나는 세간의 들끓는 이목에서 벗어날 수 있었거든.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뒤,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학교로 보내졌어. 거기서 대학까지 다녔고. 그래서 내가 남들과 조금 다른가 봐.」  레이철은 자신과 비슷한 결핍을 가진 사람에게 적당히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다.  닉을 빛나게 만들 부분보다 레이철이 빛날 대목이 더 많기도 했지만, 닉보다 레이철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절대 시도를 포기하지 않겠지. 그는 극복 불가능한 상황을 가지고 뭐든 가능하게 만들 거야.」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2, 340쪽


로맨스 소설답게 결국 레이철은 가장 레이철답지 않은 결정을 내리지만. 언제든 레이철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 정확하고 신속하게 그 불행의 순간에서 빠르게 깨고 스스로 행복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꽉 닫히지 않은 결말이 마음에 든다. 레이철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바깥에서 보이는 화려함의 이면을 모두 본 레이철이 그 불빛만 쫓아 들어가지 않을 사람으로 그린 점이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덧붙여 영화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 『크리이지 리치 아시안』 (전권)은 책 소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신데렐라 스토리에 막장이 적당히 섞인 것 외에 들여다볼게 많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싱가포르의 베일에 가려진 0.01% 부자의 삶을 다룬 작품답게, 무대는 싱가포르지만 영국, 호주, 미국, 말레이시아, 중국을 오가는 스케일과 각종 명품 브랜드와 산해진미는 글로 쓰인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적절히 녹아든 그들만의 은어(진짜 그들만의 은어인지는 알 수 없지만.)와 사람들에게 어떻게 과시하는 지 소설은 사건 외에도 읽는 이로 하여금 달라지는 장면을 계속해서 상상하는 즐거움이 크다. 그래서 읽다 보면, 괜히 영화로 이 모든 걸 어떻게 구현했을지도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속임수의 심리학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김영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설마 당할까." "그 사람이 나를 속일까."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믿고, 쉽게 속아 넘어간다. 사기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고, 누구나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사기다. 이미 당했을지도 모르고, 언제 당할지 모르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담긴 책, 《속임수의 심리학》이다. 전 재산을 날리고, 사람을 잃는 것만 사기일까. 《속임수의 심리학》을 보면 나도 사기를 당할 뻔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란다.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크고 작은 사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사회적 제도에 기대어 속임수를 피하기에 속임수는 나날이 새롭고 정교해지고 있다. 보이스 피싱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잃고, 사회적 공론화가 되어야 사기 수법이 널리 퍼져, 그 대응책이 나오니. 안일한 마음으로 있다가는 나도 속임수의 표적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속임수를 피해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나를 속이려는 마수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 

현재 검찰청 수사과장으로 재직하며 각종 형사 사건을 처리해온 25년 차 베테랑 검찰 수사관인 김영헌 씨가 파헤친 '속임수'의 비밀과 우리 삶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말한다. "속지 않으려면 생각이 아닌 객관적인 '사실'에, 주관적인 느낌이 아닌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속임수는 객관적인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하며, 주관적이 생각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라고. 이렇게 정리한 문장으로만 보면, 굉장히 평범한 이야기인 듯싶지만. 사례와 함께 차근차근 읽다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합리적 판단보다 주관적 생각에 따라 쉽게 결정하고 판단을 내린다는 걸 알 수 있다. 

"사건과 사건, 현상과 현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습관, 좁게 보고 구체적으로 따지는 습관을 기른다면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쉽게 가려낼 수 있다." _ 《속임수의 심리학》 182쪽

과연 우리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우리가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저자는 하나하나 차근차근 집어낸다.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도록 말이다. 사기의 첫 번째 심리는 사람의 욕심과 관련되어 있다. 쉽게 많이 돈을 벌고 싶은 마음,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마음, 공짜를 기대하는 마음, 나에게만 행운이 반복해서 올 것이라는 믿음이 사기로 가는 지름길이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 사기꾼의 미끼에 반응을 보이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지만, 내 마음이 욕심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큰 대가를 지불하고 교훈을 얻는다. 저자는 끊임없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실제 사례를 통해 사기의 마수에 걸리지 않도록 마음을 지키는 법을 알려준다. "왜 나에게 이 행운이 올까?"라는 당연한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한 합리적 답을 내릴 수 없다면 그건 속임수다. 
 
욕심만큼이나 사람을 잘 속게 만드는 두 번째 사기의 심리는 불안이다. "사람은 불안할 때 출처가 불분명하고 그럴싸한 이야기에 쉽게 귀를 기울인다."  또 불안은 "다른 사람을 쉽게 조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불안은 다른 사람들 말에 이리저리 자신의 마음을 옮기게 만든다. 예를 들어 미신이지만, 뜻이 안 좋거나 화를 부르는 이름이라는 이야기에 개명을 하거나,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라는 이야기에 투자를 하는 등의 일은 결국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한 속임수다. 누구 하나 믿기 힘들고 불안한 감정이 사회 전체에 감돌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조차 강하지 않은 사람에게 사기꾼은 접근한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만큼 자신의 말에 쉽게 속을 거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속임수에 당하지 않으려면 쉽게 불안해하지도,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도 말아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믿는 마음이다.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도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뭘 했는지, 어떻게 평가하는지 등에 둔감해야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욕심을 없애야 한다. 욕심이 많아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기보다 자신이 잘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_ 《속임수의 심리학》 174-175

하지만 이런 자세를 갖추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저자가 말한다. "결정을 미루라고." 조바심에 져서 당장 무언가를 하기보다, 결정 자체를 미루는 것이 좋다고 말이다. 빨리 결정하도록 마음을 부추기더라도, 조바심 내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저자 말처럼,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고서야 일상에서 급하게 결정해야 할 상황은 거의 없으며, 안정된 상태에서 결정해야 실수가 더 적기 때문"이다. 빨리 입금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조바심을 내서 입금하지 말고 결정을 미루고, 황급하게 투자해야 할 상황에서도 한숨 돌리는 여유가 결국 속임수의 마수를 빗겨나가게 만드는 작은 팁이다.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면 속임수를 의심해보고, 한숨 돌리듯 여유 있게 결정을 미룰 때 우리는 속지 않을 수 있다. 

거짓말은 참말에 비해 죄책감, 발각에 대한 두려움, 속이는 즐거움을 낳는다고 설명했다.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죄책감과 발각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두 가지 감정을 증폭시켜야 한다. _ 《속임수의 심리학》 282


 

《속임수의 심리학》에서 저자는 당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속이는 사람을 가까이서 관찰하며 얻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한다. 속임수를 피하는 법에서 점점 속임수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피해 가는 방법까지 읽고 나면 "어떤 속임수가 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 마음조차 경계할 것을 저자는 말한다. 덧붙여, 이 책을 이제 막 성인이 된 대학생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대학에 갓 입학하면 만나는 이상한 종교 단체의 사람을 피해 가도록, 학교의 이름을 내걸며 반 강매하는 어학 강의나 컴퓨터 자격증 프로그램 수강 전단지에 현혹되지 않도록 말이다. 가족과 부모님의 울타리 속에서 지킴을 받는데 익숙해 나를 지키는 법이 서투른 사람들이 꼭  《속임수의 심리학》을 읽었으면 좋겠다. 완전, 강력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71 | 7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